1967년 7월 런던 UFO 클럽에서의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
미국이 샌프란시스코였다면, 영국은 런던이 사이키델릭 록의 중심이 되었다.

자, 앞에서 했던 사이키델릭 록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본다면 어떤 흐름의 방향상 차이가 있게 된다. 앞서, 미국이 로큰롤을 발명하고, 그 로큰롤이 영국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여 미국을 정벌하였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그렇다면, 사이키델릭 록은 처음에 로큰롤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간 것을 빼고 얘기한다면, 영국이 다시 미국으로부터 음악적 양식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라는 것이다. 물론 1968년을 정점으로 할 이 시기의, 히피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전반의 정치적 내지는 영적 변화의 추구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한 흐름에서 나타난 하위 문화의 음악적 규정 형태를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한다면 영국 또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음은 사실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이키델릭 록이 미국만큼 폭발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로커와 모드의 힘은 아직 꺼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영국식 사이키델리아를 얘기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의 스타일이 매우 천차만별이었다는 것은 이미 얘기한 바지만, 영국에서 사이키델릭 록의 선구자격이었던 것은 아마 야드버즈(Yardbirds)일 것이다. (스타일이 천차만별인 만큼, 블루스적 색채가 많았다는 것은 이상할 일이 못 된다)헤비해진 스타일에 블루스를 전기 음향으로 재해석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물론 야드버즈뿐만 아니라 롤링 스톤즈도 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시도한 것이었지만, 야드버즈는 스톤즈와는 달리 연주에 긴 시간을 할애하였고, 특히나 야드버즈의 비르투오시티는 사이키델릭 록의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영국의 사이키델리아의 중심에 있었던 밴드라면 아무래도 야드버즈 이후에 나타났던 트래픽(Traffic)이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소프트 머신(Soft Machine) 등의 밴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Spencer Davis Group)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가 주축이 되었던 트래픽은, 사실 윈우드가 참여한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에릭 클랩튼과 함께 했던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와 자신의 솔로작일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좀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브리티쉬 블루스에 소울, 클래식에 재즈적 요소까지 받아들였던(관악기까지 도입했던) 특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밴드였다. 사실 뒤의 소프트 머신이나 이들 같은 경우는 이에 따른 실험적 연주 파트를 통상 사이키델릭 록의 범주로 얘기되는 이상까지 확장하기도 했고, 뒤에 이야기할 재즈록 퓨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Traffic - Dear Mr. Fantasy. 1972년 산타모니카에서의 라이브

핑크 플로이드는 물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이전에 밴드의 음악을 주도했던 시드 배럿(Syd Barrett)의 재적기에는 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하였다(뭐 그래봤자 1집뿐이구나). 밴드 이름 자체가 배럿이 좋아했던 블루스 뮤지션인 Pink Anderson과 Floyd Council에서 따서 명명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이야기이다.

1967년 싱글 ‘Arnold Layne’ 과 ‘See Emily Play’ 로 데뷔한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작이었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은 곧 당대 최고의 영국 사이키델릭 록 앨범의 하나로 꼽히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에피소드로는, 이 앨범의 녹음 당시 비틀즈가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를 녹음하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나 삐걱거리는 기타 연주와 릭 라이트(Rick Wright)의 오르간 연주는 물론, 거의 무조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격렬한 애드립 등이 돋보이는 ‘Interstellar Overdrive’ 는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록 역사에서 유명한 ‘싸이코’ 였던 배럿이 정신질환을 이유로 밴드를 떠난 뒤에 사이키델릭적 색채는 약해졌지만,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가 가입하면서 밴드의 우주적 색채는 유지되었고, 이후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서 활동하게 된다.

Pink Floyd - Interstellar Overdrive. 듣기 좀 '빡센' 곡이니 모르시는 분들은 유의하시길.

소프트 머신(Soft Machine)도 많은 밴드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인상적인 활동을 하였던 밴드였다.(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들과 같이 소위 ‘캔터베리 씬’ 에 속하던 밴드들은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공(Gong)의 데이빗 앨런(Daevid Allen)이 잠깐 같이 하기도 했던 이 밴드는(물론 데이빗은 마약 문제로 입국이 금지되어 프랑스에서 공을 결성하고 따로 놀게 된다) 앞서 나온 트래픽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과는 상당히 다른 사운드를 연주했고, 어찌 보면 예전 모드족의 이상을 히피의 방식으로 실현한 밴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의 음악은 그런 만큼 멜로디 지향의 팝적인 모습이 분명히 있었고(데뷔작의 ‘We Did It Again’ 같은 곡은 확실히 킹크스를 연상시킨다),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들과는 달리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밴드였다.

밴드를 이끌었던 로버트 와이엇(Robert Wyatt)과 케빈 에이어즈(Kevin Ayers. 뭐 1집만 내고 이 분은 나가시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이 분이 오래 있었던 밴드는 없었다)은 이후에도 매칭 몰(Matching Mall)이나 솔로 활동 등으로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Soft Machine - Why Are We Sleeping?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의외일 정도로 복잡한 리듬 섹션에 주목할 것

그리고 의미심장한 것은, 처음에 비틀즈나 버즈 같은 밴드의 ‘팝송’ 으로 시작했던(사실, “Sgt. Pepper...” 앨범은 록이라고 해도, 팝이라고 해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은 그 모습을 계속 변형시켜 가면서 팝송 이상의 것처럼 보이는 것이 되어 갔다는 것이다. 기존 록 음악의 비트 반문화나 포크의 공동체적 진정성 등은 이 시대에 오면서 모두 대체되었다. 복잡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사이키델릭 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적 진정성이었고, 록 음악은 이제는 쾌락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록 음악은 히피를 중심으로 한 반문화의 음악적 언어가 되면서, 다른 팝 음악과는 다른 것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록 음악의 진정성(같은 케케묵은) 논의 같은 것은 그렇다면 이 시기에 도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시대적 의미라는 걸 찾는 게 좀 그렇기도 하지만)사이키델릭 록의 시대적 의미라면 이런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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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즈. 밴드도 그랬지만, 특히 짐 모리슨은 사이키델릭 록을 대표하는 페르소나였다.

그렇지만 당대 로스앤젤레스의 사이키델리아를 대표했던 것은 역시 짐 모리슨(Jim Morrison)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보유했던 도어즈(the Doors)일 것이다.

(음악 틀어 주는 바들 중 ‘도어즈’ 라는 이름의 업소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자. 내가 술 많이 먹는다는 얘기가 아님, 어흠)앨더스 헉슬리(Alders Huxley)의 알칼로이드 흥분제에 대한 책의 서문에 수록되었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 에서 이름을 딴 것이었으니, 블레이크의 구절이지만 대충 사이키델릭과도 어울리는 이름이었던 셈이다. 특이하게도 도어즈는 베이시스트가 없는 밴드였으나, 모리슨의 카리스마적(달리 말하면, 정말 약 먹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목소리라는 뜻이다)인 보컬과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의 복고적이면서도 환각적인 오르간 연주는 다른 밴드들과는 구별되는 퇴폐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도어즈는 안하무인적이고 거친 스테이지 매너로도 유명했다. 특히나 짐 모리슨은 무대 위에서 성행위를 흉내내거나 동물 학대 등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선 스테이지 매너를 보여주었다(오죽했으면 코네티컷주에서는 모리슨을 외설행위로 유죄를 인정했을 정도. 밴드의 데뷔작의 ‘The End’ 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도 이 쯤 되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 어찌 보면 로큰롤의 시대 이후, 로큰롤 영웅의 신화를 재현했던 것은 아무래도 짐 모리슨일 것이다. 1972년 짐 모리슨이 약물과용으로 사망하기까지 도어즈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을 꿈꾸던 젋은이들의 ‘컬트’ 로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물론 모리슨 사후에도 밴드는 활동을 했지만, 모리슨이 없는 도어즈를 상상하기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The Doors - Light My Fire


프랭크 자파(Frank Zappa)의 경우는 좀 독특하다. 1993년에 사망하기까지 거의 1년에 3장 가량의 앨범을 낼 정도로 정력적인 뮤지션이었던 자파는 흑인음악적 전통 외에도 스트라빈스키나 베베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84년에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와의 협연 앨범인 “Boulez Conducts Zappa :  The Perfect Stranger” 를 발매했을 정도이다. 게다가 날카로운 유머(B급문화적인 이미지도 물론이다)를 앨범에 꾸준히 섞어 온 자파는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의 ‘광적인 절충주의’ 를 가장 충실하게 실천했던 뮤지션이었을 것이다.

거의 사이키델릭 풍의 오라토리오라 할 만한 “Absolutely Free”, 현대음악풍의 오케스트라 앨범인 “Lumpy Gravy”(말이 오케스트라지 거의 무조음악이다, 유의할 것) 나, 앨범 커버부터 풍자로 넘치는 “We're In It For The Money”(이 앨범에서 자파는 이제 사이키델릭 문화까지 씹기 시작한다), 재즈록 풍의 “Hot Rats” 등 그의 음악은 매우 폭 넓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에인슬리 던바(Aynsley Dunbar)나 스티브 바이(Steve Vai), 테리 보지오(Terry Bozzio), 장 뤽 퐁티(Jean Lun-Ponty) 등의 뮤지션들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사진은 “We're In It For The Money” 앨범 커버. 비틀즈 생각이 나지 않는가?)



Frank Zappa - Cosmik Debris. 중간의 블루지한 기타 솔로는 Steve Vai의 연주이다

동네도 틀리고 음악도 틀리지만, 뉴욕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가 존재했다.

웨스트코스트의 사이키델릭은 물론 앞서 말한 바 같이 다양한 성향들을 같이 지니고 있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들의 음악이어서 그랬는지 로맨틱한 면모를 분명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뉴욕식의 ‘냉소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뭐 요새 유행하는 말로, ‘차도남’ 스타일로. (여성 멤버도 있기는 하다만 어쨌든 뉴요커들 아닌가)

우리에게는 아마도 영화 “접속” 에 삽입되었던 ‘Pale Blue Eyes’ 가 제일 유명하겠지만, 사실 그런 서정성 넘치는 곡들을 생각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접한다면 꽤나 놀랄 것이다. 시인 지망생이었던 루 리드(Lou Reed)와 현대음악에 대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던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루 리드와 함께 밴드의 기둥이었던 존 케일(John Cale)이 만나 결성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히피의 전성기에 비트족의 면모를 간직하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였고, 당연히 음악은 히피들의 순진성에 대한 비트족의 비아냥과 같은 면모를 보였다. 밴드 이름 자체가 마이클 리의 사도-마조히즘적 소설의 제목인 것처럼 이들의 음악도 그런 특징을 보인 탓에(예를 들어 ‘Venus in Furs’) 클럽들에서 환영받지 못하던 이들을 발굴한 것이 팝 아트의 기수였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이었다. 워홀의 추천에 따라, 독일 출신 모델이었던 니코(Nico)가 합류하여 나온 밴드의 데뷔작(보통 ‘바나나 앨범’ 으로 알려져 있는)은 팝 음악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히피의 시대에 이런 냉소적이고 퇴폐적인 앨범은 먹히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바나나 앨범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의 안티테제라는 평이 있었을 정도)덕분에 이 앨범은 무려 앤디 워홀의 후광을 업고도 상업적으로는 대실패를 거두었다. 물론 밴드의 다른 앨범도 상업적으로는 실패였고(밴드 이름부터가 언더그라운드라니...) 덕분에 그 활동은 곧 끝장나 버렸지만, 당시의 사이키델릭 록과는 달리 소외나 고통, 좌절과 같은 정서를 표현했던 이들의 음악은 프로토-펑크와 같이 평가되고, 이후의 음악적 조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된다. 흔히 인용되는 말인데, ‘그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레코드를 구입한 사람은 적었지만, 그들은 모두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Velvet Underground & Nico - Femme Fatale. 워홀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물론 영상의 여자는 니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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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건, 그런 다양한 사이키델리아의 구현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이었던 지방은 샌프란시스코였다(다양한 사이키델릭 록의 모습들 덕분에, 이 장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되기보다는 보통은 지방에 따라 설명되는 편이다). 
소위 샌프란시스코 4인방이라고 불리던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 그레이트풀 데드(Greatful Dead),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컨트리 조 앤 더 피쉬(Country Joe & the Fish) 등이 대표적이었고, 그 중 사이키델릭 록을 대표하는 밴드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아마도 그레이트풀 데드일 것이다. 




그레이트풀 데드.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이자 최고의 라이브 록 밴드의 하나일 것이다.
앞에 동굴에서 살다 나오신 듯한 외모의 기타 겸 보컬이 제리 가르시아.



사실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던 밴드였지만, 밴드는 리더였던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1995년 사망하기까지 미국에서 공연 수입 10걸 안에 꾸준하게 들던 밴드였고(비틀매니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레이트풀 데드의 경우에도 데드헤즈(deadheads)라는 말이 있을 정도), 아마도 록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라이브에 충실했던 밴드의 하나일 것이다. 




Greatful Dead - Dark Star. 최고의 라이브 밴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규작은 별 반응이 없었다. 
본인들은 좋아했을까?


장고 라인하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가르시아는 물론 밥 위어(Bob Weir), 필 레시(Phil Lesh), 미키 하트(Mickey Hart), 빌 크로이츠만(Bill Kreutzmann), 빈스 웰닉(Vince Welnick) 등 멤버 전원이 각자의 음악 스타일을 가져온 밴드였던 그레이트풀 데드는, 그런 밴드의 성향상 사이키델릭 록은 물론 포크나 블루스, 컨트리까지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 밴드였고, 자유로운 즉흥 연주에 능하여 오늘날 잼 밴드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포크 밴드로 시작하였으나, 여성 보컬인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들어오면서 두 번째 앨범인 “Surrealistic Pillow”부터 사이키델릭 록을 연주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 또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였다. 
약물이나 자유로운 사랑 외 사회 참여 등을 가사에 녹여내었던 밴드는 히피의 반문화를 대변하는 밴드였고, 특히 ‘White Rabbit’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그 하얀 토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 이나 ‘Somebody to Love’ 같은 곡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밴드는 이후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제퍼슨 스타쉽(Jefferson Starship), 스타쉽(Starship)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거치면서 팝 밴드로도 인기를 얻었다. 
물론 라인업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아마 리더인 폴 캔트너(Paul Kantner)의 음악적 융통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이다.

(비교해서 들어봅시다. ‘White Rabbit’ 은 이 시기의 곡이고, ‘Nothing Gonna Stop Us Now’ 는 Starship으로 활동하던 80년대의 곡이다)




Jefferson Airplane - White Rabbit




Starship - Nothin Gonna Stop Us Now. 보다시피 추억의 영화 ‘마네킹’ 에 수록되기도 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리즘은 곧 미국의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앞에서 얘기했던 버즈를 필두로 한 많은 포크 뮤지션들 또한 사이키델릭의 영향을 비껴 간 것은 아니다. 버즈 외에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 등도, 사실 사운드적으로 사이키델릭한 것은 아니었으나 - 그런 이미지로 보이기에는 지나치게 정상적인 분들 - 적어도 가사는 사이키델릭 록의 방향성이 엿보인다. 
물론 음악적으로 영향받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아더 리(Arthur Lee)가 이끌었던, “Forever Changes” 나 “Da Capo” 같은 앨범을 발표했던 러브(Love)와, 포크와 사이키델릭 록이 복합되면서 중동풍의 분위기까지 가져왔던 음악을 들려주었던 캘리포니아 출신의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 - 동명의 멕시코 밴드와 영국 밴드와 혼동하지 말 것 - 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만큼 강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와중에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은 로스앤젤레스였다. 

샌프란시스코와는 달리 어떤 무브먼트를 구성하기보다는 음악적 영감이 충만했던 개개인들만이 존재했던 이 곳은, 덕분에 혁신적인 음악을 들려주면서, 동시에 본인의 삶도 파란만장하기 그지 없던 뮤지션들을 배출한 곳이었다. 앞서 나온 러브는 물론, 프랭크 자파(Frank Zappa), 캡틴 비프하트(Captain Beefheart),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야말로 ‘인생이 사이키델릭’ 이었던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있었던 도어즈(Doors)가 있었다. 

물론 다른 뮤지션들이 더 유명하겠지만, 여기서 캡틴 비프하트 얘기를 잠깐만 하자. 

백 밴드였던 매직 밴드(Magic Band)와 함께 활동했던 캡틴 비프하트는 본래는 조각가였던 돈 반 블리에트(Don Van Vliet)가 프랭크 자파의 도움을 얻어 음악을 시작하게 되고 만든 밴드로(실제로 캡틴 비프하트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자파였다), 처음부터 멤버 전원이 가명을 사용하는 등 ‘우리는 멀쩡한 음악을 할 생각이 없다’ 는 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 우리에게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덕분에 좀 알려진. 사실 그 반대가 되어야 제대로겠지만 - 라이 쿠더(Ry Cooder)도 있었던 이 밴드는 프랭크 자파가 프로듀스했던 “Trout Mask Replica”부터 비평적 성공을 거두면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비프하트는 머더스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의 보컬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컬트적 팬층을 얻었다(말하자면 시종일관 인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불협화음적이었고 불규칙적인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록 음악 외에도 블루스, 아방가르드 재즈나 현대 클래식 음악이 괴팍하게 결합된 것이었고, 이후 데보(Devo)나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그리고,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같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다. 
물론 이 괴팍한 양반은 1982년 갑자기 음악을 접더니 그 이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계시지만. 역시 기인은 기인인 셈이다.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문희준을 이 시대의 캡틴 비프하트가 되려고 하는가?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참 ‘골 때리는’ 인상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을지도)





Captain Beefheart - Safe as Milk. 곡명부터 범상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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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나 포크 록 외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서서히 사이키델릭(psychedelic rock)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통상 애시드 록(acid rock)이나 드럭 록(drug rock)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장르를 이끌었던 것은 사실상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문화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히피(hippie)들일 것이다. 즉, 사실 일반에 많이들 퍼져 있는, 남루한 - 뭐 그냥 지저분한 - 차림새에 장발을 늘어뜨린 사람들이 환각제 등을 사용하면서 즐기는 음악의 이미지의 전형은 사이키델릭 록에서 나온 셈이다. 


히피들. 시위 및 시민 운동, 반전 운동, 파업, 유색인종의 저항 등 격변기의 사회 체제에서의 탈피를 꿈꾸었다


비틀즈 등의 밴드들의 차림새는 사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는 꽤 단정한 편이었다. 물론 그들의 음악도, 많은 혁신이 존재해 왔지만, 50~60년대의 로큰롤 등의 음악이 기존 대중 음악의 컨벤션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정도였다면, 반문화로서의 록 음악의 모습에 가까운 이미지는 사이키델릭 록에 와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여 준 뮤지션들은 앞서 보았듯이, 밥 딜런 등의 파이오니어들을 제외한다면 결코 많지 않았다. 특히 밥 딜런과 함께 언급할 것은 버즈(Byrds)이다. 포크의 사이키델릭의 융합은 버즈의 개성을 보여 주는 한 부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The Byrds - Eight Miles High. 마약 경험에 대한 내용의 가사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록 음악은 우리 주변에서 급격하게 전개된 모든 변화의 근원이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겪은 모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포괄한다. 이러한 사실은 로큰롤이 2차 대전 이후 성장한 모든 이들에게 이 나라에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최초의 혁명적인 통찰력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
(페터 비케, “록 음악 : 매스미디어의 미학과 사회학”, 남정우 역, 204p에서 재인용)


본래는 제도권의 권력 다툼이나 경쟁 등을 거부하는 지식인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히피는 이런 새로운 저항의 세대 - 60년대 그 시절이 얼마나 격동의 시대였는지를 생각해 보자 - 에도 나름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던 셈이다.
조금은 흘러간 세대가 되었지만 역시 저항적이었던 비트족의 후예였던 이들은 미국의 문화 운동을 주도해 가기 시작했고,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나 드럭 무브먼트(Drug Movement)가 그 대표격일 것이다.
사실 그 유명한 ‘California Dreamin'’ 은 바로 이 운동들의 송가이기도 했다. 물론 그 곡이 삽입되었던 유명한 영화는 그 맥락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말하자면 사이키델릭 록은 반문화로서의 록 음악의 모습의 중심에 있었던 장르였던 셈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사이키델릭 록의 ‘효시’ 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보다는 미국의 다른 지역과 영국에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법하다.
서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13th Floor Elevators)는 텍사스 출신이었지만 1966년에 발표한 “The Psychedelic Sound of 13th Floor Elevators” 는 최초의 본격적인 사이키델릭 록 앨범으로 보통 평가된다.


(물론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동경했다고는 한다. 사진은 서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 물론 전혀 약 하시는 분들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13th Floor Elevators - Baby Blue



영국의 야드버즈나 비틀즈 등도 사이키델릭 록과 무관하지 않다.
컨셉트 앨범이자 비틀즈의 사이키델릭 록 앨범으로 평가되는 - 혹자는 영국 사이키델릭 록의 효시라고 하기도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나(물론 “Revolver” 의 몽환적 분위기도 사이키델릭이라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제프 벡(Jeff Beck)이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로서 들려 준 퍼즈 톤의 기타 사운드는 사이키델릭 기타의 한 전형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틀즈가 저런 걸 내는데 롤링 스톤즈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앨범이 기존의 스톤즈의 좀 더 남성적이었던 로큰롤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꽤 의미심장한 모습이었다.





 Beatles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곡명을 잘 보면 약자는 LSD가 된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앞서 영국 블루스 밴드라는 식으로 얘기되던 야드버즈나, 블루스/로큰롤 밴드라던 롤링 스톤즈, 심지어 비틀즈 같은 밴드들도 사이키델릭을 구사하였다는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이 한 장르로서 인정받기는 했지만, 사실 그 외연은 매우 넓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후 등장하는 도어즈(Doors) 등의 밴드들의 음악은 사이키델릭으로 분류되지만 그 음악들은 정형적이라기보다는 포크, 블루스, 비트 음악, 로큰롤 등 많은 스타일이 혼합되어 다르게 나타났고, 그 전까지는 대중 음악에 이용되지 않았던 많은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비틀즈의 “Revolver” 에 라비 샹카(Ravi Shankar)가 참여해 시타를 연주했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러한 면모들은 사이키델릭 록으로 분류되는 밴드들을 일률적으로 얘기하기 어렵게 만들고, 이후 사이키델릭 록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더라도 후대의 밴드들이 나름의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는 모습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사이키델릭 록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비틀즈도 이런 거 할 때는 확실히 좀 꼬질했다. 사진의 우측이 라비 샹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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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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