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 영국의 젊은이들은 로큰롤과 함께 백인의 블루스를 개발했다(그런데 사진은 별로 젊어 보이지가...)


비틀즈가 영국산 로큰롤이었다면, 영국산 블루스를 연주하는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서 잠깐, 비틀즈가 영국을 넘어 세계를 정복하는 모습을 살펴보기 전에, 영국의 다른 밴드들 - 특히 영국판 블루스의 모습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비틀즈이건 이들이건 미국에서는 로큰롤의 황금기 이전에는 그런 폭발적인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최전선에 있었던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하의 뮤지션들의 본격적인 등장보다는, 단순 시대상으로는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 먼저일 수 있기 때문이다)비틀즈가 최전선에 있었지만, 영국의 로큰롤에는 그와는 구별되는 블루스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비틀즈가 블루스와 무관한 밴드는 아니지만.

앞에서 6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의 흑인 음악의 움직임을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 차별의 존재는 분명했다. 물론 앵글로색슨이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사실 영국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지만, 영국의 경우는 미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로큰롤의 몰락 이후 미국에서 ‘폭발력 있던’ 블루스도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뒤에 나올 얘기지만, 지미 헨드릭스의 몬테레이 페스티벌 이전의 주 활동 무대는 영국이었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블루스를 하기에는 영국이 더 적합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흑인 뮤지션들이 보여주던, 컨트리 앤 웨스턴과 뒤섞인 ‘춤추기 좋은’ 블루스가 아닌, 소위 ‘진짜배기 블루스’ 를 더 즐기던 이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즉, 백인들이 연주하는 ‘화이트 보이 블루스’ 가 빛을 본 것은, 블루스의 본고장인 미국이 아닌 영국이었던 것이다.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적어도 크리스 바버(Chris Barber)가 50년대에 연주하던 블루스부터 얘기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굵직한 이름에는 먼저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가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1949년에 21살의 나이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는 50년대부터 이미 시카고 지역의 음악인들과 교류를 가지다가 1955년 블루스 인코퍼레이티드(Blues Incorporated)를 결성하면서 이후의 영국 블루스에 명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대부분에게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와 믹 재거(Mick Jagger)가 활동했던 밴드로 더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알렉시스 코너의 영향력 하에서는, 아마 잭 브루스(Jack Bruce)와 진저 베이커(Ginger Baker)를 배출했던 그레험 본드 오거니제이션(Graham Bond Organisation)와 존 메이올(John Mayall)이 가장 주요한 인물일 것이다. 특히나 존 메이올은, 영국 화이트 블루스의 전형을 얘기할 경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미국은 얘기가 좀 틀린데, 폴 버터필드 같은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존 메이올의 블루스브레이커스(Bluesbreakers)는 그들 자신의 음악의 영향력 외에도, 뒤에 영국 록 음악을 주름잡을 많은 뮤지션들을 배출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를 테면,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의 피터 그린(Peter Green), 롤링 스톤즈의 믹 테일러(Mick Taylor) 등이 대표적이다.

야드버즈(Yardbirds)는 사실 밴드의 유명세에 비해서 오늘날 알려진 곡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밴드는 초기에 밴드를 주도했던 에릭 클랩튼은 물론, 그 뒤를 이은 제프 벡(Jeff Beck)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e)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모두 거쳐간 밴드로서 이름이 높다. 말하자면 계속 생기는 빈 자리를 계속 괴물들로만 채웠던 셈이다. - 역시 되는 놈들은 계속 된다는 교훈이... - 정통적인 블루스 사운드로 시작했으나 뒤에는 약간은 실험적인 사운드로 경도된 바도 있었지만, 야드버즈가 기타리스트가 밴드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재정립한 역할에 대해서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릭 클랩튼은 이후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와 함께 슈퍼 밴드였던 크림(Cream)을 결성하게 된다. 특히나 클랩튼은, 당시 런던 빌딩의 벽에 ‘클랩튼은 신이다’ 는 낙서가 나올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크림은 가장 주목받는 밴드이기도 했다. 크림은 아마도 비틀즈 이후에 60년대 그룹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밴드들 중 하나일 것이다. 크림은 3인조라는 구성에 있어서도 다른 밴드들과 달랐고, 당대 최고의 실력파들이었던 멤버들의 대단한 연주력에 기반한 파워풀한 연주 및, 비교적 긴 솔로잉 등을 중시하여 사이키델릭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크림은 1966년부터 데뷔에서, 68년 고별 공연까지 3년도 채 활동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강력한 사운드는 블루스와 하드 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Sunshine of Your Love’ 같은 곡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헤비했던 것이다.

Cream - Sunshine of Your Love

에릭 버든(Eric Burdon)과 애니멀스(Animals)는 짧았던 활동 기간 때문에 많이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떤 흑인 보컬리스트에 못지 않게 열정적인 - 레이 찰스의 영향이 다분한 - 목소리를 가졌던 에릭 버든은 당시 자신만의 사운드를 가진 뮤지션 중 하나였다. 버든 외에도, 앨런 프라이스(Alan Price)의 오르간 연주가 애니멀즈를 특징짓는 부분이었으며, 67년 해산하기까지 ‘House of the Rising Sun’ - 이 곡 때문에 밥 딜런(Bod Dylan)이 전기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기도 - , ‘Don't Let Me Be Understood’ 등의 곡들을 남겼다. 에릭 버든은 이후에도 사이키델릭 밴드였던 워(War)나, 애니멀즈의 간헐적인 재결성 등을 통해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베이시스트였던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는 뒤에 매니저로서 지미 헨드릭스를 발굴하여 영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Animals - House of the Rising Sun. 많은 뮤지션들이 연주했던 트래디셔널 송이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밴 모리슨(Van Morrison)과 그의 밴드 뎀(Them)은 전형적인 록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소울(‘블루아이 소울’ 의 전형이라 불리는 사람이니) 뮤지션이지만, 소울만이 아니라 재즈, 블루스, 로큰롤, 리듬 앤 블루스, 켈틱 포크 등 많은 영역을 탐구하였고, 동시대의 다른 어느 밴드보다도 탐미적인 편이었다. 그리 자극적이지도, 멜로디가 명확하지도 않았던 그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모리슨의 “Astral Weeks” 는 최고의 명작으로 회자되며(물론 상업적으로는 대실패였다. 현재까지도 25만장이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뎀도 ‘Gloria’ 등의 히트곡을 남기며 흔적을 남겼다.

Van Morrison - Madame George. "Astral Weeks" 가 놀라운 점의 하나는, 이틀만에 녹음되었다는 사실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캐번 클럽(Cavern Club). 비틀즈가 주로 공연하던 클럽이었던 곳으로 로큰롤의 '성지' 중 하나일 것이다


로니 도네건의 추종자였던 존 레넌(John Lennon)이 처음 밴드를 결성했던 것은 1957년이었다.

도네건이 스키플 사운드를 알린 이후(물론 스키플이 처음 나타났던 것은 미 대공황기라고 해야겠지만 - 즉, 영국에서의 스키플 열풍은 그러므로 ‘리바이벌’ 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영국에는 엄청난 수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 56년과 57년 사이, 영국에는 거의 5천 개 가량의 스키플 밴드가 존재했다고 하니 매우 열광적이었던 셈이다. 
하긴 스키플은 거의 ‘Do It Yourself(DIY)’ 의 전형에 가까웠다. 기타 코드 세 개 정도와 리듬 섹션만 어떻게 한다면(즉, 꼭 드럼을 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빨래판을 긁더라도 리듬만 만든다면) 되는 것이었으니 아무나 밴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밴드 이름은 처음에는 블랙 잭스(Black Jacks)였으나, 곧 쿼리멘(Qurreymen)으로 바뀌었고, 동네 밴드가 보통 그렇듯 멤버의 변동이 심하다가 - 꼭 금방 싫증내는 친구들이 있는 법이다 -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를 영입한다. 
무려 ‘기타 조율’ 을 할 줄 알았던 폴의 기타에 놀란 레넌이 - 즉, 이 당시 레넌은 기타 조율도 할 줄 모를 정도의 ‘허접한’ 수준이었던 셈이다. 전설적인 밴드도 처음엔 다를 게 없다 - 쿼리멘의 가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58년에는 멤버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생긴 공석에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들어오게 된다.

비틀즈라는 이름은 60년 8월부터 사용하게 된다.

물론 그 전에도 쓰던 이름이 있었다. 쿼리멘은 베이스에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와 드러머에 피트 베스트(Pete Best)가 들어오면서 조니 앤 문독스(Johnny & Moondogs), 다시 조니 앤 실버 비틀즈(Johnny & Silver Beatles) 등으로 바뀌었고, 다시 비틀즈(Beatles)가 되었다. 이전의 긴 이름들은 확실히 버디 홀리를 기념하는 작명이었고, 비트(beat)의 말장난이었던 비틀즈 또한 일종의 버디 홀리에 대한 찬사였다.

(우측 사진 : 피트 - 조지 - 존 - 폴 - 스튜어트의 순서, 함부르크에서)

주로 리버풀의 클럽들(특히, 음주가 금지되어 사고가 적었던 캐번 클럽)과 함부르크에서 공연했던 비틀즈도 무명 시절은 배고팠다. 60년 겨울의 함부르크 투어는 아직 18세가 되지 않았던 조지가 클럽에서 일하는 것이 독일에서는 불법이었던 덕에, 멤버 세 명이 강제 추방당하면서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 시절의 활동은 비틀즈에게 점차 명성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오늘날 기억되는 비틀즈의 모습에 비해서는 좀 더 거칠고 다른 모습(밴드는 기타리스트가 세 명이었고 - 클리프 리처드 앤 더 섀도스를 연상시키는 - , 가죽옷을 입고 다니는 ‘로커’ 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위 사진 참고)이었지만, 스튜어트의 애인이었던 아스트리드 키르허의 제안으로 길고 빗어내린 ‘비틀커트’ 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리버풀 다운타운의 음반점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bstein)이 61년 말에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고, 다음 해 스튜어트의 사망 및 드러머 피트가 밴드에서 퇴출되면서 새로 리처드 스타키, 즉 링고 스타(Ringo Starr)가 드러머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사실 당시 밴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멤버가 피트였다는 것인데, 꽤 잘 알려진 조지 해리슨과의 불화 및, 다른 멤버와는 달리 내성적이었던 피트의 성격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너무나 유명한 4인조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Beatles - Love Me Do



EMI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은 비틀즈를 대번에 마음에 들어했고, 곧 첫 싱글 ‘Love Me Do’ 가 발매되었다.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이 곡 자체가 그렇게까지 훌륭하다거나, 독창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오래 된 칼 퍼킨스(Carl Perkins)의 컨트리 히트곡 ‘Sure to Fall’ 이 이 곡의 자양분이 되었고, 패턴은 단조로운 편이며, 이들과 유사한 수많은 밴드들이 리버풀의 클럽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비틀즈도 'Sure to Fall' 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Beatles - Sure to Fall(In Love with You)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틀즈가 음악 제작에서 유지되고 있던 전문가적 전형을 분명히 파괴했다는 것이었다. 


조율도 할 줄 모르던 젊은이들이 투어를 돌면서 실력이 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전문 연주자들의 수준이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책상에서 작곡가들에 의해 빈틈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으며, 처음의 원형은 있었겠지만, 이들의 곡은 클럽들에서 공연하면서 청중들의 반응을 통해 조금씩 변해 나가 왔던 것이었다. 
연습량의 부족과 신선함을 오히려 강조해서 강렬함을 이끌어낸 연주 방식도 기존의 개념과는 매우 틀린 것이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기민함은 이와 같은 음악을 처음으로 시장의 주도적 회사와 계약하도록 한 것이다. 
조지 마틴은 비틀즈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이전에 브라이언이 찾아갔던 데카(Decca) 레코드는 퇴짜를 놓았음 - 뭐 역사에 남을 ‘삽질’ 이었던 셈이다 - 을 생각해 보자.

또한 그들의 음악은, 밴드는 스키플에서 시작했지만 분명히 미국식 로큰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보통의 스키플 밴드와는 달리 다양하면서도 텐션이 강하게 걸린 코드들을 사용했고, 거친 로큰롤의 면모 외에도 티니밥의 면모도 동시에 가짐으로써 (노홍철식 표현으로는)‘소녀떼’를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물론 밴드는 ‘미국식 로큰롤’ 은 물론 가스펠 등의 흑인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가스펠/두왑 그룹들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밴드의 풍요로운 코러스는 당대의 많은 밴드들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것이었다.

‘Love Me Do’ 에 이어 63년 1월에 나온 ‘Please Please Me’ 는 밴드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2월 22일에는 드디어 곡은 차트 1위에 올랐고, 이후의 싱글들도 마찬가지였다. 새 싱글이 나올 때가 됐지만 이전 싱글들의 판매가 전혀 떨어지지 않아 발매를 미룰 정도였다. 
비틀즈만이 아니라 리버풀의 다른 밴드들도 차트의 톱 텐을 휩쓸어 버리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잘 팔리는 가게이긴 했지만 어쨌든 ‘음반점 매니저’(그러니까 그냥 '아저씨') 정도였던 엡스타인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계 인사의 하나가 되었다. 지배적인 보수주의적 여론은 당연히 이런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비틀즈의 폭발력을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었다. 




Beatles - Please Please M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TAG 비틀즈,


뉴욕 브릴 빌딩. 60년대 중반까지의 틴 팬 앨리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많은 스타일이 나타난 이 시대에 좀 더 혁신적인 음악이 존재했다.

모타운, 스택스 등과 비교하여, 흑인 음악의 전통과는 좀 더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물론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로큰롤의 전통을 버리지는 않고, 동시대 브릴 빌딩의 틴 팬 앨리 팝을 일신시켜 대중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인물은 필 스펙터(Phil Spector)였다. 틴 팬 앨리(Tin Pan Alley)는 본래 뉴욕 맨하탄 28번가와 브로드웨이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대중 음악계의 의미는 물론 백인 중산층의 음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로큰롤의 등장 이후에는 전통적인 재즈 팝과 로큰롤이 접목된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미국만의 ‘스탠더드 팝’ 이 틴 팬 앨리였던 셈이다.

그리 뛰어나지 않은 외모에 심지어 유태인이었던 스펙터는 뮤지션으로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빛을 본 부분은 이후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이었고, 1961년 필리스(Philles) 레코드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사운드 메이킹의 실험을 시작한다. 멜로디 중심의 당대의 음악의 일반적 모습과는 달리 그는 리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프로듀서로서 그는 곡을 ‘완만하게’ 다듬으면서도 로큰롤의 강렬함을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캐롤 킹(Carole King)과 제리 고핀, 엘리 그리니치와 제프 베리 등의 당대 최고의 송라이터들을 끌어들인 뒤,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라는 새로운 레코딩 기술을 통해 동시대의 어떤 음악보다도 강렬하고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월 오브 사운드는 원래 제트기가 음속을 처음 돌파했을 때 현대 문명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었다. 많은 연주자와 가수들을 같은 공간에 몰아 넣고, 장시간의 녹음 및 멀티트래킹(multitracking)과 에코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두터운 벽과 같은 사운드는, 단순한 구조를 가졌던 스탠더드 팝에 격정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비평가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가 이를 ‘바그너풍의 로큰롤’ 이라 칭한 것은 그런 면에서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또한 그가 - 뮤지션이기도 했었지만 - ‘프로듀서’ 라는 것이 중요하다.

스펙터는 곡의 녹음만이 아니라 창작의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한 프로듀서였다. 스튜디오에서 구현되는 완벽한 형태의 사운드는 무대에서 승부하는 다른 가수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배출했던 그룹들이 몰개성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크리스털스(Crystals)나, 스펙터의 아내가 되기도 하는 베로니카 베넷(Veronica Benette)가 있었던 로네츠(Ronettes)는 당시의 걸 그룹들이 ‘수줍게 노래하는’ 모양새였다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활달하게 노래하는 이들은 남자들만큼 도발적이지는 못했지만(그런 거 가만 놔둘 시대가 아님을 생각해 보자) 충분히 개성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음악적 ‘언어’ 를 만든 것은 분명 필 스펙터였으며, 비틀즈가 등장하여 좀 더 원초적인 에너지를 중요시하는 상황이 도래하기까지(66년에 이르러서는 필 스펙터 본인도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음악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Ronettes - Be My Baby. 아마도 영화 '더티 댄싱' 의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할 것이다. 특히 너무나 유명한 드럼 인트로에 주목.
 
 
스펙터는 이후 이전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조지 해리슨이나 존 레넌, 라몬스(Ramones) 등의 레코딩에 참여해 오다가, 작년에 여배우 라나 클락슨의 살인 혐의로 2급 살인죄를 인정받아 복역 중이다.

필 스펙터가 내놓은 그룹들 외에도, 인기를 끌었던 그룹에는 뉴욕의 조지 ‘섀도’ 모턴이 레드 버드(Red Bird) 레코드를 통해서 내놓은 샹그리라스(Shangri-Las)가 있었다. 사실 당대에 가장 빠르게 성공했던 걸 그룹이라면 단연 샹그리라스일 것이다. 두 쌍의 백인 자매로 구성된 이 그룹은 ‘Leader of the Pack’ 을 통해 차트의 정상을 정복함은 물론이고, 사생활에 있어서도 로큰롤의 반항적인 ‘남성들’ 에 못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뮤지션들의 분투에도,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가 음악의 중심 무대에서 밀려난 이후, 미국의 음악계의 활력이 잦아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50년대 말부터 등장해 온 십대들을 위한 백인 우상들이나, 플래터스 등의 보컬 그룹 등은 음악의 제작은 이제 음반 제작자들의 업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예였고, 젊은이들이 50년대에 그랬던 것과 같이 ‘자신들의 음악’ 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을 발견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로큰롤은 미국이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후 그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의 대중 음악을 50년대 당시 지배하고 있던 것은 사실상 BBC였고, BBC는 보수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문화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던 BBC의 음악/오락 방송은 무비판적인 청중의 모습을 전제하고 있었고, 대중음악의 미학에 대해서 50년대 이전의 스윙 기악곡에 가까운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50년대 중반까지 영국의 팝 음악이 거의 스윙 스타일의 댄스곡들로 점철되어 있었음은 의미심장하다.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빅터 실베스터(Victor Sylvester) 오케스트라 밴드일 것이다. 물론 주요 음반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BBC의 지침을 수용해야 한다. ‘Rock Around the Clock’ 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영국의 언론은 이런 자신들의 대중문화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보수화되었으나(주로는 ‘상업주의적인 미국 문화에 우리의 아이들을 더럽힐 수 없다!’ 식의 형태를 띠었다) 로큰롤은 곧 영국의 노동계급 십대들에게 자신들의 이미지를 전달해 주었고, 미국과는 달리 2차대전 이후 식민지들의 통치권을 상실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 빠졌던 영국에서 로큰롤은 미국에서의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로니 도네건(Lonnie Donegan) - 1966년 월드컵 주제가를 부른 것으로도 유명한 - 으로 대표되는 스키플(skiffle)은 한계에 이른 기성의 통제와 로큰롤에 대한 요구의 절충적인 모습이었을 것이고, 곧 그 토양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비틀즈(Beatles)였다.

Lonnie Donegan - Rock Island Lin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TAG 비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