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라고 하든 ‘현상’이라고 하든, 혹은 그냥 ‘인기’라고 하든 세상 천지에 지금의 BTS만 한 것이 있을까 싶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아직도 한창 앳되어 보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점령한 데 그치지 않고 2015년부터 발매된 일곱 장의 앨범 모두 사실상 전부 빌보드 200에 차트되어 있는 이 경이로운 수준의 지속적이고 강렬한 팬덤 현상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마디씩 논평을 보태고 있다. 미술이나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조차 ‘예술혁명’으로서의 BTS를 논하고, 혹은 상처받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니체나 비트겐슈타인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철학자로서의 BTS에 대해 말한다.

 

심지어 철학자나 교수들이 스스로 BTS의 열성팬 ‘아미’를 자청하는 현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들에 비해 BTS에 대해 결코 잘 안다고 할 수 없어서 그저 ‘오 그렇구나! 진정 굉장하구나! 놀랍다! 멋지다!’식의 순수한 감탄사 말고는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었다.

 

방탄소년단이 5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 무대에 올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러다 허리케인 플로렌스의 영향권 아래서 미국의 도시를 순회공연 중인 BTS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정확히 많게는 400만원, 심지어 800만원까지 한다는 BTS 공연 암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의 모습을 공연장 밖에서 찍은 동영상이었다. 그런데 표가 없어서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팬들이 일찍부터 모여 길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잘못된 것 같은 엄청난 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계속 춤을 췄다. 우산도 없이, 한데 엉켜 춤을 추며 놀았다. 영어보다는 스페인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이 히스패닉 쪽 소녀들이 많은 것 같았고 걔중에는 배 나오고 나이 많은 아저씨도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어울려 빗속에서 BTS의 춤을 추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그 동영상을 찍은 ‘올리버쌤(8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유튜브에서 그에게 영어와 미국 문화에 대해 배운다)’의 말처럼, 그렇다, 아름다웠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현장에서 진정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걸 목도한,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는지. 혹시 그건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 모두가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하고 있다는 방증 같은 게 아닌지? 젊은이도 나이 든 사람도 모두들 자기 폰과 함께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고립되어 살지 않은가?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직접 만나는 일은 많지 않고 모바일폰이나 컴퓨터 매신저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며.

 

심지어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게 대세인 시대. 그런 시대에 BTS는 공연장 안팎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같이 노래하고 춤추게 한다. 소리로, 몸으로 서로를 느끼게 한다. 음악과 춤으로 공명하며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악수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묻겠지. 디지털 기기와 함께 저마다 점점 더 개별화되어 가는 시대에 이만 한 ‘예술혁명’이 또 있겠는가?

 

심지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BTS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 어려운 군무와 노래를 따라하면서 자신들을 둘러싼 비이성적 분리주의와 편견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뭉클해진다.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왜 비오는 BTS의 공연장 밖 풍경을 보며 우리가 함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는지.

 

이쯤 되면 BTS를 우리 시대의 비틀스(BeaTleS)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방탄소년단 본인들은 말도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끝없는 투어로 스스로 소모되지 않으려고 하는 멤버들의 각성과 열성팬을 자처하는 이들(스스로 BTS를 지키는 ‘아미’라 부르는)의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컨대 비틀스의 광팬들은, BTS의 음악을 더 높은 순위에 올리기 위해 24시간 스트리밍시킨 채 학교에 가고 한국어 가사를 번역해 유튜브에 올리고 함께 안무 동작을 익히고 심지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BTS의 아미와 그 ‘클래스’가 달랐다. 그들은 그저 괴성을 질렀다. 심지어 비틀스 멤버들은 그 괴성 소리에 콘서트장에서 본인들의 연주조차 들을 수 없음에 완전히 질려버렸고, 1966년 세 번째 미국 투어를 끝내고 “이제 그만 됐다”(조지 해리슨), “비틀스 콘서트는 더 이상 음악과 아무 상관이 없다”(존 레넌)고 말한 후 투어 중단을 선언할 때부터 사실상 팀 해체의 싹이 돋아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가 다르다 하지만 결국 ‘영어’는 ‘영어’다. 하지만 한국어는 다르다. 낯선 외계의 언어나 다름없는 ‘한국어’로 BTS가 미국인들의 심장을 훔칠 수 있었던 건 말이 필요 없는 고난도 퍼포먼스와 스스로 온몸으로 부딪쳐 깨우친 세상에 대한 그들만의 진정성 있는 철학적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운 세계에 아직 입문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보시라. 시스템 안에 안주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 발견한 나를 ‘살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의 눈부심, 아름다움! 그 영광과 숭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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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홈페이지에서 ‘BTS SEWOL’을 치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봄날’ 해설 영상이 나온다. ‘봄날’에 나오는 버려진 옷가방과 산더미처럼 쌓인 옷, 녹슨 놀이기구, 놀이기구에 붙은 노란 리본, 나무에 걸린 운동화가 세월호 참사를 은유한다는 것이다. 이 영상에는 생존자의 증언, 촛불시위, 세월호 유가족,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언론도 등장한다. 영상을 만든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외국인 팬이다. 

 

대체, 이 놀라운 방탄의 팬들은 누군가? 뉴스에 묻혀 사는 기자도 ‘봄날’을 처음 들을 때는 친구나 연인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연가인 줄 알았다. 방탄이 ‘빌보드 200’에서 1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방탄의 팬덤인 ‘아미’다. 해외 아미들은 비영어권 노래를 모르는 현지 라디오 DJ에게 선곡 요청 매뉴얼까지 만들고, 방탄의 노래가 방송에 소개됐을 때 DJ에게 감사 인사와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단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철학자 이지영은 <BTS 예술혁명>이란 책을 내고 방탄과 팬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문화·미학적 변화를 ‘방탄 현상’이라고 했다. 국어학자 한성우는 <노래의 언어>와 작가 박지원은 <아이돌을 인문하다>에서 방탄의 노랫말을 분석했다. 학자들이 대중문화를 소재로 책을 낸 적은 종종 있었다. 가장 유명한 책은 2003년 슬라보이 지제크 등 세계적인 철학자 17명이 영화 <매트릭스>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글 15편을 묶어 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란 책일 것이다. 플라톤, 도스토옙스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마르크스, 레비-스트로스, 아도르노, 라캉, 사르트르,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과 작품을 통해 영화의 의미를 설명했고, 기독교와 불교 이론을 분석틀로 사용하기도 했다. <매트릭스>를 놓고 철학자들이 이처럼 다양한 분석을 쏟아낸 것은 블록버스터를 넘어 철학적·사회적 함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학자들이 방탄을 주목한 이유도 좋은 멜로디와 칼군무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뭔가 세계와 통한 방탄의 시그널이 있다는 거다.

 

철학자 이지영은 질 들뢰즈의 리좀 이론으로 방탄현상을 설명한다. 리좀은 뿌리 줄기 또는 뿌리 식물이다. 뿌리와 가지로부터 영양분을 받는 수직적 구조인 나무 기둥과 달리 리좀은 수평적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뿌리와 연결하며 성장한다. ‘이 체계에는 거대 자본이나 이와 연계되어 있는 미디어 권력 같은 단일한 권력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미와 방탄은 어느 하나가 중심이 아니라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BTS 예술혁명)

 

SNS나 유튜브로 스타의 일상을 내보낸다고 해서 이런 팬덤이 형성될 수는 없다. 일부는 청년의 고단한 현실이 담긴 사회성 짙은 노래를 팬덤의 뿌리로 본다.

‘금수저로 태어난 내 선생님/ 알바 가면 열정 페이/ 학교 가면 선생님/ 상사들은 행패/ 언론에선 맨날 몇 포 세대….’(뱁새)

 

‘약육강식 아래/ 친한 친구도 밟고 올라서게/ 만든 게 누구라 생각해 what….’(N. O)

청년의 암담한 현실을 노래한 아이돌은 많다. 빅뱅의 ‘루저’, 에프엑스의 ‘레드 라이트’, 슈퍼주니어의 ‘돈돈’, 엑소의 ‘마마’ 등도 사회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방탄의 노래 중엔 사회비판적 내용이 다른 아이돌에 비해 더 많은 편이긴 하다.

 

다른 입과 다른 귀를 가진 사람들이 공명하려면 서로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이것은 개인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2016년 이화여대생의 대학 점거 농성 당시,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였다. 군부독재시대에 태어난 386세대는 1980년 광주항쟁 후 탄생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과 분리해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다만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태어난 이대생들은 살아온 정치·경제·사회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시민사회단체의 개입과 연대를 거부하고 ‘모두 알고 있는 노래를 찾다가’ ‘다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음악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각인된다.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치매환자, 뇌 기저핵이 망가진 사람도 음악에 반응한다. 그래서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음악은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했다.

 

대중음악은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분석틀이었다. 음악성, 정치성, 사회성, 팬과의 ‘소통성’까지 중요한 시대인 것은 틀림없다. 사람들이 방탄, 방탄할 때조차 BTS의 시그널이 잘 잡지 못하던 내 귀에 쏙 들어온 노래가 있다. ‘귀가 있어도 듣질 않어/ 눈이 있어도 보질 않어….’(Am I Wrong?)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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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빌보드를 점령한 뉴스를 접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훗날 ‘문화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서태지가 데뷔한 지도 벌써 26년이 지났다. 서태지가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방탄의 청년들이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하여가’는 1993년 6월 발표된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서태지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미 데뷔 앨범으로 태풍을 몰고 온 서태지는 2집 앨범이 200만장 이상 판매되면서 음악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너를 볼 때마다 내겐 가슴 떨리는 그 느낌이 있었지/ 난 그냥 네게 나를 던진 거야 예이예이에.’ 서태지의 원맨쇼로 만들어진 음악은 기성세대에겐 생소한 속사포 랩과 힙합 패션, 회오리춤을 무기로 10대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레게머리를 규제했으며, 저항적인 노랫말에 재갈을 물렸다. 그러나 김덕수의 사물놀이를 랩과 결합시킨 ‘하여가’는 1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이후 서태지는 기성세대의 간섭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통일을 염원(발해를 꿈꾸며)하고, 학교교육을 비판(교실이데아)하는가 하면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에 저항(시대유감)하는 노래들을 발표했다.

 

서태지는 많은 걸 바꿔놓았다. K팝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음악시장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노래와 퍼포먼스가 결합한 버라이어티한 쇼무대가 보편화된 것도 서태지의 영향이다. 10대들이 힘을 모아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갖게 된 것도 서태지가 만든 팬덤에서 시작됐다.

 

‘방탄소년단’은 10대들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작명이라고 한다. ‘아이들’에서 ‘소년단’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다만 서태지의 노래에 이 땅의 10대들이 열광했다면, 방탄의 노래에는 전 세계 10대들이 열광한다. 그것도 한국어로 된 노래에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젊은이들이 환호한다. 실로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오광수 출판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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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팝송을 듣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가 첫 번째 노래였다. 들리는 대로 그저 따라불렀다. 영어 공부도 할 겸 팝송 가사를 구해서 적는 착실한 친구도 더러 있었으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 아이들은 정확한 발음도, 가사 내용도 모른 채 그냥 듣고 흥얼거렸다. 몰라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세 살 때 캐나다로 살러온 우리 딸아이가 케이팝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지루해서 그랬는지 한글학교 가기를 줄곧 꺼리던 아이가 그즈음 우리 말과 글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케이팝 때문이었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착실한 어릴 적 내 친구들처럼 케이팝 가사를 적으면서 우리 말과 한글 실력을 키워나갔다.

 

아이는 곧 케이팝의 ‘열혈 팬’이 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2011년부터였다. 그해 10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 인 뉴욕> 공연에 가고 싶어했다. 나는 딸을 태우고 10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뉴욕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모르던 세계가 있었다.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소녀시대 에프엑스 샤이니 등 SM 소속 한국 가수들의 뉴욕 데뷔 공연인데 1만5000여 객석은 외국인 팬들로 가득 채워졌다. 맨해튼 거리에 홍보 포스터 한 장 붙지 않았었다. 온라인으로 티켓을 발매하자마자 단 몇 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그 표를 쥐고 22시간 버스를 타고 온 여대생 팬들도 있었다.

 

그 공연 이후 딸아이는 케이팝 팬으로 거듭났다. B.A.P라는 보이그룹을 좋아하면서부터 전 세계 팬들과 온라인으로 교류했다. 토론토 팬 수백 명은 커뮤니티센터를 빌려 정기적으로 행사를 열었다. 영상과 음악 위주로 이루어지는 그 모임에서 한국 아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를 만난 케이팝은 물을 만난 물고기 같았다. 북미 젊은 대중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깊이 사로잡았는지 토론토에 사는 나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2018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정규 3집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2년 전 세계를 춤추게 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케이팝은 정점을 찍고 하향 추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미국에서 나왔다. 공장 시스템으로 제작·관리된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싸이를 통해 케이팝 저변이 넓어지자 새로운 팬들이 케이팝 세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형 기획사 SM·YG·JYP 소속이 아닌 낯선 보이그룹에 열광했다. 방탄소년단(BTS)이다. 빌보드200 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딴따라’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난 100년 가까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 대중가요의 저력이 방탄소년단을 통해 드러났을 뿐이다.

 

요즘 세계 젊은 대중은 중·고교 시절 내가 팝송을 듣고 따라 부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케이팝을 즐긴다. 카세트테이프 녹음기에서 스마트폰으로 기기만 바뀌었다. 최근 뉴스를 보면 한국에서는 유독 정치권에서만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판문점에서 조용필이 불러갖고 노래하고 생쇼하는 것 보세요”라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또한 어느 언론의 북한 관련 기사 논평에서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도 적용되는 크로스체크가 왜 이토록 중차대한 일에는 적용되지 않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우리 대중음악가(연예인)들은 지금 정치인들이 그렇게 쉽게 호출하여 은근히 비교 폄하할 만한 딴따라가 더 이상 아니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이들만큼 널리 알린 한국인은 지금까지 없었다. 50년을 한결같이 우리 국민을 즐겁게 하고 위로해준 국민가수가 조용필이다. 50년은커녕 단 5년이라도 조용필만큼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 정치가가 있기는 했는가. 한국 이미지를 우리 가수들만큼 드높인 정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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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오후 6시에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는 ‘학교 3부작’에 이은 ‘기승전결 4부작’의 정점에 걸맞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웬만한 A급 아이돌 컴백의 꼬리표처럼 돼버린 ‘음원차트 올킬’을 빼고도 그렇다. 발매 한 시간 만에 멜론 진입 이용자 수 역대 1위를 달성했다. 10만7885명이 한 사이트에서 그들의 새 앨범을 들었다. 나흘 후인 21일, 85만장의 음반이 팔려 나갔다. 역대 보이그룹 음반 초동 판매량 순위 경신이다. 해외 기록은 더욱 놀랍다. 아마존 예약이 시작된 이후 판매량 1위와 2위를 넘나들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19일,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 65개국 1위, ‘톱 송’ 차트에서는 52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사이트인, 하지만 국내 서비스는 되지 않는 스포티파이에 전곡이 ‘글로벌 톱 200’ 차트에 진입했다. 뮤직비디오 공개 4시간55분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뷰를 달성했다. 24시간 달성 뷰는 3590만, 2018년 유튜브 최고 기록이자 역대 3위 기록이다. 화룡점정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였다. 새 앨범 컴백 무대를 이 행사에서 가진 데 이어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들은 지난해에도 이 상을 받았다. 2연패다.

 

방탄소년단.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의 광폭행보, 그리고 빌보드 어워드 2연패가 의미하는 건 단순명쾌하다. 이제 그들을 K팝의 신흥대표주자로 분류하는 건 부족하다는 거다. 그동안 K팝의 주된 해외시장은 아시아권이었다.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일본이 팬덤의 주류였다. 엑소, 트와이스를 비롯한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결성 당시부터 다른 동양권 멤버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첫번째 증거이며, SNS를 통해 보이는 팬덤 역시 아시아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이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팬덤은 북미권 10대가 초강세를 차지한다. 2016년 말 400만명이던 트위터 팔로어 수는 1년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

 

그중 북미권 사용자, 즉 기존에 K팝에 관심없던 층이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이렇게 생성된 신규 팬덤은 아미(Army)라는 이름에 걸맞게 SNS에서 방탄소년단에 엄호사격을 퍼부었다. 그들과 별 관련 없는 이슈에조차 #BTS를 붙여가며 온라인에서의 이슈몰이를 도왔다. 그 결과가 소셜 아티스트 부문의 수상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 특유의 충성도 높은 팬덤 문화가 해외 팬들로 확산된 결과다.

 

방탄소년단 이전, K팝 카테고리를 넘어선 이는? 누구나 싸이를 떠올릴 것이다. 반은 맞다. 이 말은 곧 반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유는? ‘탈K팝’의 주인공은 싸이가 아니었다. ‘강남 스타일’이었다. 원 히트 원더였다. ‘젠틀맨’을 비롯한 싸이의 어떤 후속곡도 ‘강남 스타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하나의 ‘히트곡’이 아닌, 그들 자신의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LOVE YOURSELF 轉 ‘Tear’>의 파죽지세와 초반 성과는 ‘DNA’를 내세웠던 지난 앨범을 넘어서고 있다. 빌보드 2위라는 기록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싸이는 한 번도 갖지 못한 미국 주요 시상식의 트로피를 방탄소년단은 두 번 연속 차지했다. 저스틴 비버에 이은 미국 10대의 대통령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 히트 원더를 넘어 팝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는 이유는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도 한몫하리라 본다. 어릴 때부터 기존의 미디어가 아닌 SNS와 유튜브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접하고, 장르와 계보 대신 해시태그와 큐레이션으로 취향의 영역을 쌓아가는 세대 말이다. 이들 앞에서 인종과 언어의 선입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 안의 예술적 성과에 상관없이 산업적 수치를 중시하는 빌보드 어워드에서 ‘소셜 아티스트’라고 하는, 뉴 미디어 시대를 상징하는 부문에서의 연속된 수상은 이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를 주도하게 될 때 바뀔 세상의 모습을 예습하는 것과 같다. 기술은 인식의 토대를 바꾸고, 이 바뀐 토대에서 세계의 질서와 장벽은 또 한번 크게 재편되리라. 지금의 세상이 1990년대의 네이티브 인터넷 세대에 의해 바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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