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이 최근 방영 400회를 맞았다. 어느덧 햇수로는 9년째다. 한때 30%까지 치솟았던 시청률 상승의 시기는 지났지만, <무한도전>은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주 방영된 400회 특집은 그 지속적인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에피소드였다.

방송은 400회 특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보통 때와 다름없이 소박하게 진행됐다.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24시간을 함께하는 에피소드였다. 제작진의 어떠한 개입도 없이, 단둘이서 자유 시간을 보내는 것에 어색해 하던 멤버들은 곧 목적지를 정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관계와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무한도전>은 이 400회 에피소드에 ‘비긴 어게인’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치유와 재기의 서사를 담아낸 동명 영화처럼 위기로부터 다시 새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제목이다. 이 새로운 시작점에서 멤버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준 것은 <무한도전> 진화의 힘이 그 성찰에 있다는 것을 새삼 증명한다.

오는 18일로 400회를 맞는 MBC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10년간의 대장정을 자축하며 팬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정형돈. (출처 : 경향DB)


돌이켜보면,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위기설이 크게 대두될 때마다 성찰적 질문을 통해 그것을 정면 돌파해왔다. 2010년의 미션을 결산하며 문제점을 토론했던 ‘연말정산 특집’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찰적 질문은 2012년, 300회 특집에 이르러 조금 양상이 바뀌게 된다. 300회에서 멤버들은 방송 7년여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무한도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밝히고 ‘무한도전과 나의 예능 인생도 함께할 것’이라는 눈물 어린 고백을 남겼다. ‘연말정산 특집’이 외부의 시선으로 문제점을 들여다봤다면, 이때부터는 멤버들 자신의 성찰적 고민이 주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무한도전>이 겪은 최대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바로 지상파 방송3사 동시 파업이라는,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다. <무한도전>은 5개월 넘게 결방했고, 방송 운영진으로부터 폐지 위협까지 받았다. 방송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쌓여왔던 멤버들의 고민과 진심이 300회 특집의 내밀한 토크 시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파업 여파는 컸다. <무한도전>만이 아닌 지상파 예능 전체의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MBC <놀러와>, <나는 가수다>, <황금어장-무릎팍 도사> 등이 파업과 맞물려 줄줄이 폐지되고, 간혹 <아빠! 어디가?>처럼 성공한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복제품들이 줄을 이었다. 파업 이후 자유로운 표현과 실험이 더 위축되고, 창의성이 효율성 논리로 대체되며, 안정적인 경향만을 추구하게 된 결과다.

역으로 이러한 위기는, 과거에도 지금도 새로운 시도와 성찰을 멈추지 않는 <무한도전>의 가치를 더 강렬하게 확인시켜준다. 특히 올해 초 선보인 ‘선택 2014’는 가장 빛나는 사례다. 향후 10년을 책임질 차세대 리더를 뽑는다는 미션 아래, 실제를 방불케 하는 선거전을 벌인 이 특집에서 <무한도전>은 ‘위기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진리와 함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담아냈다. 이는 2012년 대선 이후 실종된 정치풍자개그의 가능성을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정국과 맞물려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널리 회자된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이 시대의 잠재적 낙원의 문은 지옥 속에 있다.” 재난이 파괴의 디스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는 통상적 인식과 달리, 연대적 공동체를 통해 유토피아로 나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폐허 속에서 이전의 가치에 의문을 갖고 본질을 응시하는 것이 새로운 길을 여는 가능성이라 말한다. 갈수록 폐허가 되어가는 방송가에서 <무한도전>이 끊임없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은 저자가 말한 그 대안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김선영 |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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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이들에게 ‘최종훈’이란 이름 석 자는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라면 분명 반가워할 것이다. MBC-TV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자주 목 놓아 부르던 그 ‘최코디’이니 말이다. 특출한 예능감을 자랑하며 얼굴을 알렸던 그는 요즘 친숙한 호칭을 내려놓고 ‘배우’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활동 무대는 달라졌지만 친근하고 소박한,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 그대로.




무르익은 진심이 가져다준 기회


국내 최초 ‘군디컬’ 드라마(군대에서 경험하게 되는 소소한 상황을 메디컬 드라마처럼 비장미 넘치는 전개로 풀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 ‘푸른거탑’의 인기가 심상찮다. 지난해 tvN ‘재밌는 TV 롤러코스터2’의 한 코너로 방영되던 ‘푸른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지난 1월 말부터 60분물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이례적인 케이스로, 그만큼 인기가 높다는 뜻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분가’ 이후 더욱 흥미진진해진 이야기 전개와 디테일한 묘사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군대 내무반에서 펼쳐지는 전우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푸른거탑’이 이토록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보편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재치 넘치는 패러디와 실제 군 생활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있다. 실감 나는 에피소드와 특색 있는 여섯 캐릭터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전역한 예비역들과 현역 장병들은 물론이고 언젠가 입대해야 할 예비 군인들 가까운 사람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혹은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까지 전 국민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게다가 틈만 나면 무용담처럼 등장하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진저리치는 여성 시청자들까지도 포섭했다.


사실 ‘푸른거탑’의 선전을 견인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연기자들에게서 나온다. 배우들은 각자 독특한 캐릭터의 특색을 맛깔나게 살려낸다.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섯 전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꼭 한 명씩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겹치지 않고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 최종훈(35)을 비롯해 김재우, 김호창, 백봉기, 정진욱, 이용주는 마치 실제처럼 끈끈한 전우애를 자랑하며 열연을 선보인다. 덕분에 스타급 배우나 인지도 높은 인물 없이도 이처럼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이가 바로 말년 병장 역의 최종훈이다. 제대를 코앞에 둔 말년 병장 최종훈은 입버릇처럼 “말년에 …라니”를 내뱉으며 각종 훈련과 작업에서 빠지기 위해 온갖 꾀병과 요령을 피운다. 하지만 매번 발각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지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큰 웃음을 이끌어낸다. “통증이 대뇌의 전두엽까지”라는 대사는 어느덧 유행어가 됐다.


“처음엔 저도 작가님께 ‘전두엽이 어디에 있는 거예요?’ 하고 여쭤볼 정도였는데, 이게 이렇게 유행어가 될 줄은 몰랐네요. 대사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년 병장의 심각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재미있게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제 경험도 떠올려보고 제작진이나 동료들과 의견도 조율하고요. 정말 최대한 진지하고 비장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죠.”


‘깔깔이’와 한 몸이 돼 종일 만사 귀찮은 얼굴로 반쯤 누워 있을 것만 같은 말년 병장의 이미지를 100% 표현하고 있는 최종훈은 실제로는 육군이 아닌 의경 출신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육군 병장 연기를 위해 온갖 자료를 섭렵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구했다. 특히 군대 관련 한국 영화를 모조리 찾아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군 영화라기보다는 군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전부 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그러다 영화 ‘실미도’를 보는데 설경구씨의 비장한 톤을 차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나오는 임원희씨 캐릭터도 눈에 들어왔고요. 작가님께서도 대본에 ‘오버스러울 정도의 정극 연기’가 필요하다고 써놓으셨거든요. 사실 원래 저는 말년 병장 역으로 캐스팅된 것도 아니었어요. 원래 맡았던 박성호 선배님께서 일정 문제로 빠지시면서 제게 기회가 온 거예요.”


기회는 운 좋게 찾아왔지만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오랫동안 착실히 준비하고 기다려온 노력의 힘이었다. 한 줄 대사밖에 없는 단역으로 출연하기로 했지만 대본 전체를 꿰고 있었고, 나름 다른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해보았다. 덕분에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 못한 박성호를 대신해 그가 대본을 읽었을 때 흡족해했던 관계자들이 사정상 공백이 생기자 역할을 맡기게 된 것이다. 지금의 말년 병장 캐릭터는 결국 처음부터 그가 만든 모습 그대로인 셈이다.


“굉장히 운이 좋았죠. 한편으로는 딱히 같이 연습할 것도 없는데 대본 리딩에 참석하게 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갑작스럽게 역할이 결정되고 나서는 ‘해내실 수 있습니다’라며 용기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그래서 더욱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촬영 때 리액션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게 되고요. 제게 기회를 주신 분들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을 불태워야겠단 결심을 했죠(웃음).”


그는 노력을 통해 인생의 큰 기회를 잡은 데 대해 그저 감상에만 젖어 있지 않고 또 다른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방송 직후 쏟아진 ‘의외의 발견’이란 찬사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시청자들의 관심이 이를 증명한다. 아마도 지금의 결과는 긴 시간 착실하게 간직해온 꿈과 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오랜 방황 끝 선택, 그리고 다시 시작


개그맨 정준하의 매니저로 방송에 간간이 얼굴을 내비쳤던 그의 원래 꿈은 연기자였다. 학창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을 잘 웃기는 것으로 유명했고, 영화배우 박중훈을 보며 ‘꼭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바람을 품었다.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박중훈은 그의 우상이자 롤모델이었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밝은 웃음을 전하는 코미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우선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지만 안타깝게도 떨어졌고, 군 복무 후 잠시 방송국 FD를 거쳐 한 개그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다. 정준하를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다. ‘노브레인 서바이버’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정준하를 도와주기로 하면서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무한도전’에 등장한 뒤로 유명세를 얻으며 주변에서는 예능 활동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바쁘고 또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불편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메말라 있던 가슴속에 불을 지핀 계기는 뮤지컬 ‘라디오 스타’ 출연이었다.


“제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계시던 준하 형이 본인이 출연하는 작품에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그 작품 배경이 강원도 영월인데, 어느 날 연출자께서 지역 방송국 엔지니어 역을 강원도 출신 연기자에게 맡겼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신 거예요. 제가 주문진 출신이거든요. 합류가 결정되고 나서 주어진 이틀 동안 대본을 독파했어요. 아무래도 매니저 하던 사람이 갑자기 역할을 맡았다는데, 기존 배우들이나 스태프 입장에서는 못 미덥고 불편해하실 수 있잖아요. 제 입장에서도 어렵고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연습해서 드라마 리허설에 들어갔어요. 그때 다들 ‘너 어디서 연기 배웠니?’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아, 내 연기가 낙제점은 아니구나’ 싶어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요.”




이후 언제나 ‘잘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베테랑 배우들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연기를 보며 자신을 고쳐나가기도 했다. 많이 부족함을 알기에 필사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고맙게도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이 있어 차츰 자신감도 생겼다. “얼른 매니저 일 그만두고 연기해요”라던 동료 배우의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뿌듯하게 남아 있다.


 

“제가 정말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직도 첫 무대가 잊히지 않아요. 등장하고 ‘탁’ 조명이 들어오는데 앞이 까마득해지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무대를 내려올 때 그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고요. 결국 그 작품을 지방 공연까지 10개월 동안 소화했어요. 그러는 바람에 매니저 일을 제대로 못해서 준하 형이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도 생기고 여러모로 힘들어지셨죠.”


서운하거나 불편한 점이 많았을 텐데, 정준하는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그의 꿈을 지지해줬다고 한다. 매니저 일을 할 때도 방송 관계자들을 만나면 항상 ‘매니저 일을 하고 있지만 꿈이 연기자인 제 후배예요’라고 그를 소개했고, 두루두루 신경 쓰며 챙겨줬던 사람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폐를 끼치는 것 같았고, 또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별을 선택하게 됐다. 오랜 방황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형은 제 꿈을 존중하고 저를 정말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분인데, 저는 좋은 영향은커녕 불편하게만 해드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시기, 제 정체성에도 혼란이 왔어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혼란에 빠져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묻더군요. ‘당신 인생 목표가 원래 뭐였어?’라고요.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아무 목표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매니저 일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준하 형은 ‘처자식까지 있는 애가 아무 대책도 없이 그만두면 어쩌느냐’고 만류하셨지만 저는 결심이 확고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어느 작품에서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생활 연기자


큰 소리를 치며 뛰쳐나왔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방법도 막막했다. 얼굴이 잘생긴 것도, 경험이 많은 것도, 제대로 기본기를 배운 것도,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닌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는 듯 보였다. 처음 6개월가량은 갈팡질팡하며 그야말로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제대로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닌 꿈을 계속해서 좇을 수 있을지 고민에 휩싸여 매일 무의미한 하루를 살았다.


“가족을 보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천진하게 뛰어노는 두 아이를 보면서 ‘내가 가장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고, 또 저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런 저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아내예요.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겠냐’라는 제 말에 ‘걱정부터 앞세우지 마. 내가 일하고 또 당신이 열심히 하는데 뭐가 걱정이야. 나는 오히려 당신이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편해’라고 하는 거예요. 순간 울컥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그때부터 마음을 추스르고 대학로에 나가서 예전에 알던 배우들을 만나 배우기도 하고 차근차근 다시 걸음을 옮기게 됐죠.”


그리고 몇 달 뒤, 힘든 시간에 마침표를 찍듯 ‘롤러코스터’가 찾아왔다. 지인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제작진이 출연을 제안해왔고, 꿈과 목표에 ‘올인’하겠다는 결심 이후 힘차게 첫 걸음을 떼게 됐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하루하루 쓰여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특히 인복이요. 시기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기회를 누릴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저를 잊지 않고 좋아해주시는 시청자분들께도 그런 마음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그런 복을 누릴 만큼 인생을 잘 살았나 돌이켜보게 돼요. 그만큼 앞으로 더 성실하고 착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던 연기를 하면서 지내는 일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행복한 요즘이다. ‘푸른거탑’ 촬영이 잡히면 전날 밤부터 가슴이 뛸 정도로 즐겁다. 덕분에 혹한기 훈련을 재현하기 위해 영하 30℃에서 웃통을 벗고 눈밭을 구르는 일정마저도 웃으면서 소화하고 있다.


“저뿐만 아니라 출연진 전부가 같은 마음이에요. 다들 의욕도 넘치고 똘똘 잘 뭉치는 편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파이팅’하면서 해내고 있어요. 아마도 그런 모습이 화면에 녹아 있어서 시청자들께서 더 좋아해주시는 건 아닐까 싶어요. 유격 훈련이며 체조며 전부 다 실제로 하거든요. 그리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저보다 더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해요. 아내는 제가 즐겁게 집을 나서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은 요즘 길에서 군복 입은 아저씨만 지나가면 ‘아빠’ 하면서 쫓아가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어서 참 좋네요.”


그는 시작이 늦었다고 조바심 내거나 당장 뭔가를 얻기 위해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매달리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냥 변함없이 지금의 마음 그대로 하나하나 밟아나갈 거라고. 오랜 기간 품어왔던 꿈이기에 오히려 대하는 자세는 간결하고 담백할 수 있는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작든 크든 어디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라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저는 톱스타가 되거나 인기를 얻는 건 바라지 않아요. 다만, 작품 안에서 꼭 필요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너 진짜 말년 병장 같아’거든요. 그렇게 앞으로도 쭉 주어진 역할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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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 junehee.jung@gmail.com


바야흐로 '슈스케' 열풍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특징이자 저력은 처음엔 서서히 달아오르다가 막판에 폭발한 다음 끝난 뒤에도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데 있다. 
허각과 존박 사이에 벌어진 1-2위 표차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다소 생뚱맞은 어투로 진지하게 비판하는 이도 있다. '슈스케'라는 명칭을 듣고 사뭇 진지하게 '왜색'을 운운하던 내 지인은 그게 '슈퍼스타 K 2'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머쓱해 하더니만, 대뜸 요즘 세대의 그릇된 줄임말 세태로 화살을 돌리는 처량한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소위 '슈스케'가 두 번째 시즌에 이르러 한국 대중문화 속에 안착하게 된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슈퍼스타 K 2>는 좋게 말하면 포맷 번안 프로그램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골적인 모방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 K 2>를 보면서, 미국에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아메리칸 아이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아메리칸 아이돌> 역시 영국에서 방영된 <팝 아이돌>을 그대로 미국에 이식시킨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슈퍼스타 K 2>는 포맷을 수입하지 않았고 <아메리칸 아이돌>은 포맷은 물론 사이먼 코웰이라는 신랄한 영국인 독설가도 수입했다는 점이다.






물론 <슈퍼스타 K 2>를 제작한 엠넷이 그와 같은 해외 프로그램의 존재를 몰랐을 리는 전혀 없다. 미국 프로그램이나 일본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껴서 한국 텔레비전에 올려놓는 행태를 지금 같은 '글로벌 동기화' 체제에도 반복하고 있을 멍청한 제작자가 한국 방송계에 버젓이 남아 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륙의 짝퉁 문화'를 비웃던 한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던 새우깡과 빼빼로가 일본 상품을 마치 복사기로 본을 뜨듯 거의 똑같이 모방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참담함 덕분일지는 몰라도, 여하튼 한국이라는 나라가 적어도 낯 두꺼운 베끼기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거의 지났다고 믿고 싶다.


성공한
해외 프로그램 포맷을 수입하는 건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특정한 아이디어가 과연 시쳇말로 '대박'을 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쪽박'을 찰 수도 있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언필칭 문화산업이다.
성공한 프로그램 포맷은 그와 같은 위험도를 절반 이하로 감소시켜주며,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지난한 과정에 투자되어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포맷을 수출해주는 쪽은 마치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의 본사처럼 노하우를 전수하고 매장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편리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는 글로벌 저작권 시장에서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는 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무시무시한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의 성향이라든가 규제기구의 심의 수준 등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이 전혀 다른 지역에서는 원본의 포맷을 빌려오되 그것을 유연하게 현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좋다.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성공한 프로그램 포맷을 들여오는 데에는 또한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 예컨대 위험도를 크게 줄여준다고는 해도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닳고 닳은 저작권 소유자가 제시하는 조건이 수입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더욱이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는 이들의 관심은, 이 또한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그렇듯, 포맷 수입자에 대해 최대한 큰 통제력을 발휘하는 데 있다.

수입해간 측에서 원 프로그램의 틀을 멋대로 변형해서 상품의 통일성을 망쳐놓지나 않도록 감시하고 수시로 개입한다.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 포맷을 적절히 현지화시키는 과정이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Mnet ‘슈퍼스타K2’ 결선 무대에서 우승한 허각이 축하 꽃다발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Mnet /스포츠칸




글로벌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포맷은 스타 탄생 프로그램인 <팝 아이돌>, <브리튼스 갓 탤런트>, <프로젝트 런웨이>나 엿보기 프로그램인 <빅브라더> 등과 같은 리얼리티 쇼 장르에 집중되어 있다.
대개 일반인의 참여를 통해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논란과 이슈를 유발하며, 이것을 다른 대중매체가 받아주면서 사회적 시선과 대화를 증폭시키는 것이 핵심
이다.
시청자들이 특정한 등장인물과 맺는 ‘일체감’은 안정적인 시청자 기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뿐더러, 이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짭짤한 부대수입까지 발생시킨다. 그리하여
시리즈가 거듭되는 동안 이와 같은 리얼리티 쇼는 일종의 국민적 행사처럼 발전한다. 영국에서 여름 휴가철 동안 떨어지게 마련인 텔레비전 시청률을 <빅브라더>가 붙잡아주는 메커니즘도 그런 특성을 활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로벌 히트 포맷은 유독 한국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의 리얼리티 쇼는 대개 일반인의 참여에 의해서보다는 연예인끼리 ‘패밀리’를 띠워 ‘1박2일’ 동안 ‘무한도전’하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형태로 굳어졌고, 오디션 방식의 스타탄생 프로그램은 이미 로컬 시장에서 검증된 준연예인급 일반인들의 ‘스타킹’ 장기자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름의 이유인즉슨, 심판관들이 던지는 멘트가 유럽처럼 신랄하기도 어렵고, 일반인 워너비 스타들의 탤런트풀이 미국만큼 넓고 다양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드디어 슈스케가 떴다. 게다가 케이블 채널로서는 대박을 넘어 초대박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해외 포맷인 <아메리칸 아이돌>보다는 한국적 스타탄생 포맷인 <전국노래자랑>을 좇은 선택이 주효했고, 스타 지망생들의 실력은 물론 눈물샘을 자극하는 개인사를 적절히 배치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누군가는 설명한다.

하지만 휴대폰 세일즈맨 폴 포츠의 ‘넬라 판타지아’가, 그리고 볼품없는 외모를 지닌 수전 보일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이 반드시 압도적인 가창력만으로 입상하여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아니다. 코니 탤벗이 부른 ‘오버 더 레인보우’ 또한 예쁘고 앙증맞은 꼬마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이른바 천상의 목소리가 되어 한국의 스타킹에까지 울려 퍼지게 된 셈이 아닌가. 




제목 MBC ‘무한도전’팀이 ‘도전 WM7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MBC /스포츠칸




결국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스타 탄생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그 포맷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게서 왔는지 <전국노래자랑>에게서 왔는지가 아니라, 개인적 역량과 사연 그리고 판관들의 날카로운 선구안이 어울려 특정한 종류의 성공 스토리 라인을 빚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사람들은 단순히 ‘준비된’ 스타를 추인하기보다 ‘만들어져 가는’ 스타를 보고 싶어 하며, 그들의 ‘발전하는’ 캐릭터, 아니 심지어 ‘내손으로 만들어준’ 진행형 캐릭터와 함께 웃고 울고 떠들길 원하는 것이다.

물론, (영예의 1위 당선자 허각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행여나 지금 형성되어 있는 유대가 앞으로도 영원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다.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의 사연에 공감하며, 슈스케를 안 보는 지인들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날려 내 손으로 키워주고 싶은 워너비 스타는 또 다음 시즌에 어김없이 찾아와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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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이택광 경희대교수·문화평론가



관심을 끌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이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 방송을 본 뒤에 많은 시청자들은 감동적인 대단원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합지졸에 가까웠던 불협화음의 합창단을 훌륭하게 지도해서 완벽한 조화를 연출한 박칼린에 대한 칭송도 뜨거웠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발 빠른 입담들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요즘 감동은 '예능'에서 온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시간 남는 선남선녀나 ‘아저씨들’이 모여서 농담 따먹기나 하던 방식에서 열정과 노력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는 감동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방향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특정하다기보다, 거의 모든 예능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남자의 자격>에 앞서서 <무한도전> 역시 봅슬레이와 프로레슬링에 도전함으로써 일찌감치 이런 경향을 주도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들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감동을 느끼는 까닭은 ‘사연의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심장>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십대 아이돌이 나와서 고생했던 ‘옛말’을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심장>의 경우가 과거사에 대한 것이라면,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현재 참가자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연’이다.
 
도대체 이런 사연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사연의 창조는 곧 세계의 형상화를 의미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연의 세계는 민주주의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연은 기성의 질서를 통해 만들어진 위계를 재구성하고 세계에 대한 앎을 다르게 배치한다. 예를 들어서, <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연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사연의 주체들에게 확보해준다.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묘사는 이런 서사를 만들어낼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예능프로그램은 묘사에 치중했지 서사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워진 경제 현실과 계급상승에 대한 희망의 상실은 현실을 묘사하기에 급급한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공감을 쇠퇴하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같은 형식이 예능프로그램의 주종을 이루게 된 까닭은 열악한 한국의 방송제작 환경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값싼 제작비로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엔터테인먼트의 효자종목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청년실업과 4000원 인생으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삶’의 사회는 예능프로그램조차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는 현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하루벌이에 쫓기는 ‘서민들’에게 예능프로그램은 ‘놀면서 돈 버는’ 계급에 대한 재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레슬링 경기를 마친 뒤 포옹하고 있다. /사진 MBC

 
대중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이런 변화를 눈치 채지 않을 수는 없다. 예능프로그램은 더 이상 농담 따먹기로 소일하는 ‘잉여인간’을 마음 편하게 보여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만큼 현실은 심각해졌고, 그래서 이들 프로그램은 ‘예능감’에 충만했던 과거의 과장법을 버리고, 리얼리티 TV의 형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겠다.

과연 이런 변화는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가 이제 중요한 분기점에 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처럼 ‘쥐들의 경쟁’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공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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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