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효주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화면에서 만나온 그의 올망졸망한 얼굴과 가녀린 어깨만 보고 떠올렸던 상상은 그 앞에 서자마자 여지없이 깨졌다. 
170㎝쯤 돼 보이는 그는 킬 힐을 신은 발을 슬쩍 들어 보이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첫마디가 그래요. 그런데 오늘은 이것 때문에 좀 더 커보이긴 하죠”라며 슬쩍 웃는다. 

그의 얼굴은 화려한 서구형 미인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세상사 모르는 듯 티없이 맑은 표정,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선한 눈망울. 그 눈매엔 삶을 일찍 알아버린 듯한 성숙함과 배려가 배어 있다. 
올해 고작 스물셋이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고 무게 있는 역할로 대중앞에 나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사진 강윤중 기자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동이>에서도 그는 10대부터 40대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냈다. 
9개월간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드라마가 끝난 뒤 지독한 독감에 걸려 인터뷰 내내 코맹맹이 소리를 내야 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20대 초반이 갖는 발랄함이 넘쳐났다.

“정말 많이 부담됐죠. 잠도 잘 못자고, 관심과 기대도 버거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경력에, 이렇게 큰 작품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부담되는 건 당연하다고. 그리고 그 부담감을 극복하겠다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모든 것을 놓고 흐름에 맡겼어요.”

지난해 <찬란한 유산>으로 톱스타로 떠올랐지만 타이틀롤로 사극을 이끌고 가기엔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이 문제였다. 
초기엔 악플과 악평도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차오르다보니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런 욕심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준 건 300년을 앞서 산 동이였다. 연기자로서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그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좋은 면만 바라보려고 힘썼던 것. 

이 같은 의식적인 노력은 다소 우유부단했던 그의 성격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내면의 에너지도 쌓아올렸다. 동이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인 셈이다. 

“그래도 동이랑 저랑 비슷한 점은 별로 없어요. 동이는 정의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고 매번 박수받을 행동만 하잖아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착한 역할을 주로 맡아서 그런지 감사하게도 실제로도 착할 거라고 봐주시는데…, 이미지죠. 하하.”



경향신문 사진기자 블로그: 한효주, 그녀는 예뻤다


사람들을 만날 땐 웬만하면 밝게 웃는 낯으로 대하려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마다 입 모아 칭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끔씩 우울하기도 하고 넘쳐오르는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자신에게는 밝고 건강함만 있을 거라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는 주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사실은 재능에 비해 욕심이 너무 많아요.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죠. 학창시절에도 특별한 구석이라곤 없는 평범 그 자체였는데 속은 욕심이 많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저 지금은 좀 괜찮아진 거예요. 커가면서 완전히 ‘용’된 스타일이거든요.”





평범함이 싫어 주어진 일은 모두 열심히 했다. 달리기를 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했고 모든 승부는 이기지 않고는 못 배겼다. 피아노·기타 등 악기도 열심히 배웠고,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충동적으로 모델 선발대회에 덜컥 지원해 대상도 받았다. 
인기 청춘시트콤 <논스톱>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뒤 관객 600만명을 동원한 영화 <투사부일체>에 출연했고, 윤석호 PD의 계절 연작 <봄의 왈츠>에서 주인공까지 꿰차며 화려한 신인시절을 달려왔다. 

그리고 <찬란한 유산>과 <동이>까지. 최근엔 음악방송과 음악 페스티벌에까지 나가 기타 연주와 노래 실력을 자랑했다. 아주 평범했다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는 보면 볼수록 욕심이 정말 많다.

“아직도 신기해요.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화 같은 삶을 매일 경험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이 절 알아보고 좋아해주시는 것도 그래요. 일상으로 돌아오면 배우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거든요. 사실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건 순간적이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안개 같은 거잖아요.”





털털함이 지나쳐 사우나에 갈 때도 남의 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한 번은 탕 속에 들어가 있는데 누군가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해 난감한 적도 있다. 
평소엔 싹싹하고 애교 많은 딸이자 손녀.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의 정은 각별하다. <동이> 촬영 당시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들을 촬영장에 초대해 손녀 키워 준 보람을 듬뿍 안겨드렸다. <찬란한 유산>의 진혁 PD는 “이웃집 소녀 같고 조카딸 같은 친근한 마스크에 밝은 생각에서 우러나는 표정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효주의 자연스러운 매력”이라고 평가했다. 

“얼마 전 이창동 감독님의 <시>를 봤어요. 어쩜 1분 1초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밀도가 꽉 찬 영화가 있을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니까요. 욕심을 내 보자면, 앞으로 그런 작품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물셋의 여배우. 이 나이에 이만한 생각의 밀도와 내공으로 다져진 배우도 찾기 쉽지 않을 듯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위한 정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라디오 시사프로 앵커가 전문가의 정치뉴스 분석을 듣고 난 후 이런 멘트로 정리를 하면 갑자기 맥이 빠진다. 말이야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맥락이 문제이다. 전문가가 해당 사안에 대한 각 당의 이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열심히 정책분석을 통해 설명했건만, 이를 다 듣고 난 앵커의 마무리 멘트가 “정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 운운이라니. 
이 말이야말로 여태까지의 모든 정책 분석을 ‘도루묵’으로 만들어버리고, 그저 정치권의 싸움은 모두 당리당략을 위한 것이라고 싸잡아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앵커가 전문가의 분석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정치허무주의를 부추기려는 의도였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어느 쪽이든, 단순한 싸움처럼 보이는 상황을 분석하여 그 정책적 의미를 드러내주어야 하는 시사프로의 앵커로서는 낙제 수준이다.

의학드라마를 내세운 드라마에서도 가장 황당한 대사가, 착한 주인공이 흥분해서 내뱉는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이 뭔지 생각해 보라고!” 같은 말이다. 
아,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가 다 있나! 환자의 치료에 의학적인 의견이 갈려 논쟁이 벌어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의학적인 논쟁이다. 
냉철한 논쟁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마땅한 주인공 의사는, 맥 빠지게 지당한 말씀을 내뱉음으로써 동료 의사를 ‘환자를 위하지 않는 나쁜 의사’로 매도해 버리고, 의학적 논쟁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림으로써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런데도 창작자들은 이런 대사가 감동스러운 대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손쉬운 ‘감동적 명대사’에 의존하는 의학드라마는, 의학을 포기하고 그저 단순한 선악대결의 드라마로 전락한다.




드라마 <대물>도 이런 대목에서 위태위태하다. 
지난주, 국회의원이 된 주인공 서혜림(고현정 분)이 방송토론에 나가서 “(국민) 여러분이 정치인들 종아리에 회초리를 쳐서 국민들을 표 찍어주는 사람으로만 아는 오만불손함을 타이르고…”라고 말하여 감동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초선 국회의원이 된 서혜림이, 법안 처리에서 당론의 거수기가 되기를 거부한 이후에 행한 일이다. 국회의원이 조폭들처럼 몰려다니며 몸싸움에 나서고 거수기가 되는 정치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한 드라마 속 장면들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그 덕분인지 이 대사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 기분이 ‘살짝’ 나빴다. 
말이야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 드라마 어디에서도 그 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양당이 어떤 이유에서 그 법안을 찬성하고 반대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지 않다. 서혜림의 정책과 능력 역시 알 도리가 없다.

국민이 정치인의 버릇을 가르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단순한 불신을 넘어서서, 그들의 정책과 능력을 조곤조곤 뜯어 읽고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오랫동안 민주·반민주의 단순 대립 속에서 살아오느라, 우리 국민들은 좀 더 복잡한 정책 분석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정치권의 싸움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읽어내지 못하므로, 정치권의 싸움은 그저 개싸움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선거 때에는 비현실적 희망을 갖거나 경마 관람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값싼 감동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임을, 이 드라마는 과연 알려줄 수 있을 것인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2010 10/26위클리경향 897호



ㆍ드라마 속 정조시대 공부벌레들 모습 어디까지 사실일까


한국방송 월화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시청률은 10%대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린 엠넷 「슈퍼스타K 시즌2」가 케이블방송임에도 불구하고 1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황금시간대 공중파 드라마로서는 낮은 시청률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성스’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드라마 애호가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남장 여자를 둘러싼 로맨스와 정의를 추구하는 유생들의 성장담이 매끄러운 연출을 통해 절묘하게 결합된 덕분이다. 드라마는 정조시대 성균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실제 성균관과 정조시대 조선의 모습은 어땠을까. 몇 개의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성균관 = 성균관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다. 그 이전까지 국자감이라 불리던 국립 교육기관의 이름이 이때 성균감으로 바뀌었다. 성균관으로 개칭한 것은 공민왕 때다. 
조선 건국 후인 태조 6년, 성균관은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 명륜동 일대 숭교방으로 이전한다. 정종 2년(1400년)에는 화재로 한 차례 소실됐으나 1409년 원상복원됐다. 성균관의 교육이념은 단 하나, 유교적 소양을 갖춘 국가 엘리트 양성이었다. 
드라마에서 정약용(안내상)이 유생들에게 힘주어 말하듯 “그대들은 나라의 녹을 먹는 성균관 유생”이었던 것이다.

△동재와 서재 = 조선시대 성균관은 기숙학교로, 기숙사는 청재라 불렀다. 청재는 명륜당을 기준으로 왼쪽의 동재와 오른쪽의 서재로 갈렸다. 동재와 서재에는 각각 28개의 방이 있었다. 청재에는 온돌이 없어 겨울에는 화로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는데, 이 때문에 성균관 유생들 중에는 하숙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서재는 노론의 자제들이 사용했고, 동재에는 소론 및 기타 당파의 자제들이 머물렀다. 상재생들의 경우 한 방에 보통 2~4명이 기거했지만, 하재생들은 10여명이 같이 사용했다. 상재생과 하재생이 같은 방을 쓰는 것은 금지됐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동재와 서재의 유생들이 서로 편을 갈라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은 사실과 일치하지만, 남인 김윤식(박민영)과 노론 이선준(박유천)이 소론 문재신(유아인)과 한 방을 쓰는 것은 100% 허구다.

△수업 = 드라마에서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모습보다 술을 마시거나 음모를 꾸미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 더 자주 비친다. 
물론 재미를 위한 장치일 뿐, 실제 성균관 수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성균관의 시험은 크게 강경과 제술로 나뉘었다. 강경은 경전을 읽고 그 핵심을 파악하는 것, 제술은 강경에서 공부한 바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것이었다. 
유생들은 모두 9개 교과목을 배웠는데, 한 달 30일을 기준으로 20일은 경서를 공부하고 6일은 제술을 공부했다. 오전에는 교관의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이를 복습했다. 또한 수시로 시험이 치러졌는데, 개중에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무작위 추첨식 시험도 있었다. 
일고라는 형태의 시험은 날마다 상재와 하재에서 한 명을 무작위로 뽑아 그날 배운 글을 외우게 했다. 순고는 10일에 한 번 보는 시험이었는데, 이는 일종의 작문으로 유생들의 필력을 측정했다. 이외에도 달마다 치르는 월고, 해마다 치르는 연고 등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곧 시험의 나날이기도 했다.

△장의 = 드라마에서 하인수(전태수)는 성균관 장의의 권한을 이용해 남장 여자인 주인공 김윤식을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 장의는 일종의 학생회인 자치기구 재회의 우두머리다. 장의는 재회를 소집하거나 유생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으며, 전임 장의 3명의 추천을 통해 뽑은 뒤 대사성의 인준을 받았다. 
드라마에서 장의가 하인수 한 명뿐인 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성균관에는 동재와 서재에 장의가 각기 1명씩, 모두 2명이 있었다.

△순두정강 = 드라마에서 김윤식은 하인수의 음모로 성균관 유생들의 물건을 훔친 범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정조는 순두정강 과제로 진범을 찾아내라는 과제를 주고, 이를 기회로 윤식은 모함에서 벗어난다. 
성균관 유생들은 과거 급제가 최종 목적이었지만 성균관 내에서 여러 종류의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은 도기과, 절제, 친시, 응제, 알성시 등등 종류도 다양했는데, 그 중 순두정강은 임금이 주관했다. 
매년 2, 4, 6, 8, 10, 12월의 11일마다 출석부를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이 이 중 몇몇을 골라 시험을 보게 했다.

△벽서 = 소론 영수인 대사헌의 아들이자 성균관 유생인 문재신은 밤마다 조선의 실정을 비판하는 붉은 색 벽서(일종의 대자보)를 화살에 묶어 조정 중신들의 집 벽에 쏘고는 달아난다. 이 때문에 그는 홍벽서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이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선조 때 ‘벽서지변’이라 하여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1606년 6월에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 조정을 비방하는 벽서가 나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성균관 관리 몇 사람을 잡아들여 처벌했는데, 실제로는 성균관 유생들의 짓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이보다 앞서 성종 13년에도 성균관 내에 “썩고 용렬한 무리들이 그 벼슬을 차지하였도다”라며 성균관 스승을 비방하는 내용의 벽서가 나붙어 성종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수사에 나서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반인과 반촌 = 반인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노비들로, 반노라고도 불렀다. 반인들은 평생 성균관에 붙어 살았다. 재직 또는 직동이라 불린 반인 남자아이들은 세숫물을 나르거나 술을 타오는 등 유생들의 시중을 들었다.
반인 여자아이들은 성균관 관비가 됐다. 이들은 주로 밥과 반찬을 만들거나 빨래를 담당했다. 수복과 관비가 서로 결혼해 자식을 낳았으므로 이들의 자식 또한 반인이나 관기가 됐다. 
원칙적으로 이들은 죽을 때까지 성균관을 떠날 수 없었다. 반촌은 반인들이 사는 마을이다. 유생들을 상대로 한 하숙집, 시장, 음식점, 푸줏간 등이 있었고,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드라마에서는 홍벽서를 뒤쫓아 온 관군들이 반촌으로 진입하지 못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조선시대에는 반촌에 함부로 들어간 포졸이 처벌받기도 했다.

△정조와 정약용 = 20대부터 40대까지 여성들이 <성균관 스캔들>에 열광하는 것은 꽃미남 배우들의 대거 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른 정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조(조성하)와 정약용 때문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1783년 과거를 통해 생원이 된 후 처음 정조를 만났다. 정약용은 성균관 학생 시절 정조가 내준 시험 과제에서 독특한 답변으로 정조의 관심을 모았다. 정약용이 정조의 야심적인 화성 건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는 성균관 박사 정약용이 화성 축성을 위한 각종 도구의 설계도를 정조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약용이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정조가 정약용에게 화성을 설계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정약용은 부친상으로 3년간의 여막(천막)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참고자료: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이한, 수막새, 2010)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유생문화>(장재천, 아세아문화사, 2000)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김영사, 20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8월말 드라마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이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화려하고 관심을 끄는 캐스팅이었지만 잘나가고 있던 자이언트와 동이에 치여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 애들이나 보는 드라마겠거니 무심코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열두살짜리 딸보다 더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지 뭡니까. 처음에 송중기에게 꽂히더니 박유천, 유아인에 이어 정조를 연기하는 조성하씨에게까지 열심히 팬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친구들, 다른 아짐들, 선후배 동료들 할 것 없이 삼사십대 여자들 몇명 모이기만하면 누가 멋있다며 이야기꽃을 피워대는 것이 남사스러워 마이클럽닷컴 등 인터넷을 슬쩍 봤더니 뒤늦게 동방신기 사진까지 모은다는 중증 아짐들 이야기를 듣고는 배꼽을 잡았습니다. 



KBS2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출연하는 박민영이 캔커피로 언 손을 녹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장여자. 이 오묘한 존재가 주는 매력이 있지요. 몇년전에도 <커피프린스1호점>이 비슷한 컨셉으로 수많은 여심을 공략했습니다. 
요근래 만화는 잘 모르겠지만 80년대에 초중고의 학창시절을 보낸 여성들이라면 남장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원한 사랑의 로망 오스칼과 유리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 올훼스의 창에 등장하는 유리우스. 

만화책을 부여잡고 잠못 이루며 베개를 적시던 그날 밤들, 내가 주인공이 된 양 등장인물들을 생각하며 달뜨던 그 감정에 공부고 뭐고 손에 안잡히던 그날들. 
성균관스캔들을 보면서 무차별적으로 공습을 해 오던 그때 그날의 기억과 감정들은 현실을 잠시 접게 만들더군요. 미니홈피 스킨 바꿔달라는 딸래미에게 도토리 10개도 안사주던 제가 과감히 도토리 200개를 결제하고는 사흘밤을 꼬박 새며 올훼스의 창과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만화를 읽어가면서 <올훼스의 창>의 크라우스를 걸오(유아인)에 비교해봤다가 유스포프를 이선준에 대입해봤다가 ... 
연습장을 펼쳐놓고 관계도를 그려가며 가당치도 않은 인물분석을 하더니 급기야 두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죽 늘어놓고 가상 캐스팅놀이를 하고 있는 저를 모닝콜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고서야 발견했답니다. 
꼬박 새웠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그닥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청춘의 그날들, 꽃같은 나이였던 시절을 지내왔지만 내일모레면 마흔인 현재의 나를 생각하니 미묘한 허전함과 아릿함이 온몸을 맴돌더군요. 그렇게 푸석하게 아침을 맞으며 출근해서
쓴 기사입니다. 
 
사족-출근길에 올해 예순 둘이신 엄마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엄마, 남장여자 하면 생각나는게 뭐가 있죠? 
휴대폰 건너에서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글쎄... 아, 김옥선이?






ㆍ‘로맨스 + 정치’ 중년층이 홀딱 빠졌다


조선시대 대학인 성균관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청춘유생들의 이상과 열정, 로맨스를 버무려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뒷심이 무섭다. 
아이돌 스타인 믹키유천(박유천)을 비롯해 송중기, 유아인, 박민영 등 신인급 연기자들을 파격적으로 캐스팅하면서 화제를 모을 당시만 해도 이 드라마는 10대들을 겨냥한 로맨스 사극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묵직한 정치적 주제와 생동감 넘치는 당시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면서 시청자층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30·4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성균관 스캔들>에 열광하는 폐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미시족이나 골드미스를 주요 대상으로 한 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 등에는 드라마 감상문을 비롯해 출연진 사진, 뉴스 정보를 모은 글이 빼곡하다.
주요 게시판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에 동방신기 사진을 뒤지고 있는 내 모습을 동료들이 볼까봐 두렵다” “이 나이에 내가 미쳤나보다” “애들 보는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식의 코믹한 감상평도 줄을 잇고 있다. 



남장여인 김윤희(오른쪽)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명문가의 자제 이선준.
이들을 중심으로 ‘잘금 4인방’ 사이를 감도는 애틋한 감정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KBS 제공


◇ 여성 시청자층 열광 = 지난 8월30일 전파를 탄 <성균관 스캔들>의 초기 시청률은 6%대였다. 경쟁 드라마인 <동이>와 <자이언트>가 각각 20%를 넘는 높은 시청률로 단단한 아성을 쌓아놓은 터라 시청률 면에서 고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횟수를 더해가면서 시청률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달 말 10%를 넘어섰고 지난 5일에는 11.1%(AGB닐슨·수도권 기준)를 기록했다. 초기에 비하면 시청률이 배나 증가한 셈이다. 이 같은 시청률 상승은 30·40대 여성층의 유입이 바탕이 됐다.
방송 초기만 해도 전체 시청자 가운데 10대 여성의 비중이 18.7%로 가장 높았지만 12회까지 진행되면서 10대 여성은 12%대로 줄어든 반면 30·40대 여성시청자 비율은 각각 18.2%, 18.6%로 높아졌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원작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도 재조명받고 있다. 2007년 출간 당시에 인기를 모았던 이 소설은 최근 베스트셀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온·오프라인 서점 통합 베스트셀러 6위에 올랐으며 이달 들어서는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출판업계에서는 독자층의 30~40% 정도가 30대 여성층인 것으로 보고 있다.

◇ 로맨스와 현실감 버무려져
KBS 드라마국 이강현 EP는 “이선준(박유천), 문재신(유아인), 김윤희(박민영), 구용하(송중기) 등 ‘잘금 4인방’(여자들이 맥을 못 출 정도로 매력적인 이들을 일컫는 원작소설 속 은어)의 매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데다 이들을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중년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드라마에는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대중문화 작품의 흔적이 어른거린다. 꽃미남, 남장여자라는 모티브는 <커피프린스 1호점> <꽃보다 남자>가 주었던 흥미로움과 닮아 있으며 잘금 4인방 개별 캐릭터에는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올훼스의 창> <베르사이유의 장미> <캔디캔디>의 등장인물을 떠올릴 만한 연결고리도 있다.
여기에다 드라마는 정통사극의 문법을 차용해 무게감을 더했다. 개혁군주 정조와 정약용의 고뇌, 노론과 소론의 대립, 당대조정의 갈등 구조를 성균관 판으로 압축한 잘금 4인방과 성균관 장의 하인수 간 대결구도 등이다. 이 같은 장치는 판타지적인 로맨스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이 같은 현실감은 30·40대 여성의 몰입을 이끌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한 주부의 글은 이를 뒷받침한다. “치열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추억을 쌓아왔던 청춘의 시기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상실감 때문에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기 드라마 <대물>(SBS)에 무슨 일이 생겼나. 

긴장감 높고 짜임새 있는 구성, 기존 정치권에 직격탄을 날리는 속시원한 대사, 배우들의 호연까지 더해지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대물>이 20일 방송된 5회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설득력 없이 변질된 데다 억지스러운 갈등구조, 유치하고 설득력 없는 에피소드로 마치 다른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이 드라마는 작가와 PD가 전격 교체되며 ‘외압 의혹’이 이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교체된 작가는 5회분부터 투입됐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요인들이 극의 흐름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산으로 가는 드라마

20일 방송에서는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캐릭터 변화, 연결성 없는 사건 전개로 시청자들을 당혹하게 했다. 
주인공 서혜림(고현정)은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한 데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나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우유부단하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급선회했다. 선거운동에서 고전하다 뜬금없는 걸그룹의 지원사격으로 지지율이 오른다거나, 친환경적 간척지 개발을 위해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한 그가 뒤늦게 이를 공약으로 내놓겠다고 깨닫기도 한다. 
냉정한 정치엘리트 강태산(차인표)이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하며 감정적인 인물로 돌변하는 점 등도 시청자를 어이없게 했다.




뿐만 아니다. 제작진은 방송 전부터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으니 드라마로서, 작품으로서만 봐 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20일 방송분에서는 현실정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장치들이 사용됐다. 
기호 1번으로 출마한 주인공이 파란색 상징물을 사용하고,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찌질한’ 무소속 후보자는 연두색 점퍼를 입는다. 실제 이 드라마는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트위터에 감상평을 올리고 있어 사소한 설정들까지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방송이 나간 뒤 인터넷 시청자게시판에는 드라마 전개에 대한 실망스러움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넘쳐나고 있다. 

◇ 제작진 내홍

기획·준비단계에서부터 제작을 둘러싼 구설수에 시달렸던 이 드라마는 방송이 시작된 뒤 작가와 PD가 연달아 교체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휩싸였다. 
1~4부를 집필한 황은경 작가는 연출을 맡았던 오종록 PD와의 시각차가 커 중도에 하차하게 됐다. 5회부터 작가가 교체되면서 오 PD는 대본작업에 집중하고 대신 새로운 PD가 투입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오 PD는 6회까지 연출을 마무리한 뒤 드라마에서 하차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어떤 외압도 없었으며 자의적인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SBS 고위 관계자는 “오 PD에게 작업 참여를 요청했지만 하차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면서 “정치적인 외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PD와 작가, 제작사가 모두 의욕이 지나치다 보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그 때문에 갈등이 깊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갓쉰동- 꿈꾸는 건 산다는 의미(http://dreamlive.tistory.com/)



SBS 정치 드라마 대물이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황은경 작가와  오종록 PD가 교체 되었다. 

작가는 PD와의 불화 때문이고, PD는 정치적이 영향력 때문이라고 하는 듯하다.


처음 작가가 교체되었을 때 여론은 정치적인 압력에 PD가 굴복했다는 것이 골자였고,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를 시원하게 했다는 “들판에 쥐때가 많으면 풍년이 들지 않는다”는 류의 대사에서 시청자들은 이명박 정부를 떠올렸고, 외압에 의해서 PD가 작가를 지켜주지 않고 팽할 수 있는가가 여론이었다. 그리고 피디를 비판하는 기사들이 인터넷을 도배하였다.





하지만, 해당하는 대사는 작가의 창작물이 아닌 PD의 작품이고, 작가는 해당하는 대사를 쓰지 말 것을 이야기 했고, 자신이 국정원에 끌려갈 것이 우려된다는 발언이 노출되면서 여론은 급속히 PD를 옹호하는 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반전이지 않는가?


작가의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피디가 현장에서나 드라마 리딩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대사를 바꾸는 행위는 창작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서 PD를 낙마 시켰다는 것도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 둘은 대사에 상관없이 PD가 비판 받아야 하고, 작가가 비판 받을 이유는 털끝만치도 없다. 물론, 창작의 자유를 자신의 신념이 아닌 외부의 압력이 우려되어서 작가 스스로 검열을 심히 했다는 것도 비판받을려면 비판 받을 일이긴 하다.


하지만, 요즘 같이 언론과 창작의 자유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침해되고 있는 시대에 작가가 자유롭게 창작을 할 자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문제는 작가는 PD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는 맞서 싸울 배짱은 있으나 정치권력과는 맞서 싸울 만한 배짱은 없다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처음부터 대물 집필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정치 드라마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인 대물에서 정치 권력을 비판하지 않고 드라마를 집필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걸고 넘어지려면 안 걸릴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작가의 시나리오에 문제가 없다면 PD는 작가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침범하더라도 사전에 작가와 협의 과정을 걸쳐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다. 작가의 영역이 있고, 연출자의 영역이 있고, 배우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다.


쪽대본이 만든 작가와 PD의 하차는 당연한 귀결


사실 원작이 있는 대다수의 드라마 작품은 시나리오 작가의 영역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고, 상대적으로 PD의 영향력이 크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는 이들의 영역이 모호하다. 모호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이유는 쪽 대본 때문이다.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듯이 찍어 나오는 당일치기에 가깝게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얼마나 작품이 충실할 수 있으며, 작가와 연출자가 협의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나 하겠는가?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지 않은 날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 좋아 연출자의 조언이나 협력이지 내용을 수정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그만큼 연출자나 관계자가 시나리오에 손댈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 창작의 자유는 남의 나라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작가는 있으되 작가와 연출자와 관계자의 공동집필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되어 버리고 작가는 그저 큰 골격만 잡는 시놉시스에 지나지 않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직업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지휘하고 드라마를 찍는 연출자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물의 작가와 PD의 교체는 우리나라의 드라마 작품의 총제적인 문제를 노출했다고 보면 딱이다. 그러니 정치권력이던 방송사의 압력에 너무나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그들이 입맛대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단 뜻이다. 또한, 시청자 반응을 극도로 신경을 쓰고, 시청자들의 의견이나 압력에 따라 시나리오가 그때그때 마다 바뀌어 처음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산으로 가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환경에서는 말이다.


어쨌든 대물의 작가와 PD가 교체되었다. 처음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해 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대물은 원작이 있는 드라마이니 작가던 연출자던 상관없이 극의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작가란 단순히 원작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작업만 하니 작가가 바뀌던 연출자가 바뀌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작을 알게 된다면 원작이 있으니 상관없다는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박인권 대물 원작과 드라마 대물은 얼마나 다른가






대물은 <쩐의 전쟁>으로 알려진 박인권의 대물 시리즈 중 2부를 극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원작 어디에도 극에 나오는 대사는 찾아보기 힘들고 간간히 정치적인 대사와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만을 차용하고 있다. 드라마 대물이 가져온 것은 '여자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한줄 정도이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서혜림(고현정)과 하도야(권상우)라는 검사의 이름과 하도야의 아버지가 소곰탕집을 한다는 설정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물 드라마 작가의 완벽한 창작이다. MBC 드라마 동이에서 동이가 영조의 어머니라는 것과 이름만 장희빈, 숙종, 인원왕후, 인현왕후, 장희재만 끌고와서 사극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속에서 서혜림은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의 미망인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 서혜림은 젊은 날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선 여장부이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분신 때문에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화상을 당한 캐릭으로 화상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서혜림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외교 전문가가 되어 중국과 담판짓고, 북한에 들어가 담판을 짓고, 박인권 특유의 북벌론으로 무장한 열혈 여성으로 나오나, 한국으로 돌아와 무소속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의 정부로 있다. 하도야의 아버지에게 들키자 그를 죽여 호수에 수장시키도록 명령하는 존재로 나온다.


하도야는 드라마와는 다른 게 제비출신 검사가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열혈 공부벌레이고 원칙을 고수하는 검사이지만, 폭력적인 검사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하도야는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다 대통령을 엄호하는 집단의 사주를 받은 강패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원작의 주인공은 서혜림이 아니다. 가족의 원수인줄 모르고 서혜림을 사랑하게 되는 하류가 주인공이고 하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처럼 거시기가 커서 슬픈(?) 제비로 나온다. 대물은 거시기가 커서 슬픈 제비를 말하는 것이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서혜림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만 뒤늦게 서혜림이 가족의 원수임을 알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서혜림을 향해 복수에 나선다.


원작인 <대물>을 이미 본 입장에서 봤을 때, 서혜림이 박근혜를 모티브로 했다는 기사는 사실과 반대다. 서혜림이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했다는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는 기사들을 볼 때 마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고 웃는 이유이기도 하다.



들판의 쥐새끼가 카타르시스로 웃어 넘길 일일까?


들판의 쥐새끼들을 싹쓸어 버려야 한다는 설정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난감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특히 들판의 쥐새끼와 이명박을 동일시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현상은 웃어 넘기기 힘들다.



 




오히려 빨갱이로부터 민주주의를 사수한다는 명분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한 자들을 옹호하는 일방주의식 지좃대로 민주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작가를 자른 PD의 일방주의적인 사고체계와 권상우를 면죄부를 넘어서 영웅만들기를 드라마에 고스란히 투영시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웃어 넘길 일이 아니고 들판의 쥐새끼들이 이명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좃대로 민주주의를 해치는 쥐새끼들이 누구를 설정한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하는 일단에게 진보와 좌파를 빨갱이로 몰고 없어져야 할 쥐새끼같은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있다는 현실에서는 말이다. 한마디로 해석하기 나름이고 동상이몽이란 뜻이다. 그러니 피디를 비난하다 작가를 비난하고, 정치권을 비난하는 논리적 모순이 생기고 우왕좌왕 주관이 흔들리는 것이다.


어쨌든, 최초의 여성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드라마는 박근혜에게는 앉아서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철호의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야망의 세월> 드라마의 허구와 환상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건 삼척동자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일련의 드라마들인 선덕여왕이나 동이나 대물처럼 은연 중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근혜를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여성 작가들의 염원이 뭍어나는 것처럼 보여서 썩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갓쉰동- 꿈꾸는 건 산다는 의미(http://dreamlive.tistory.com/)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서 새로이 등장한 인원왕후 역을 맡은 오연서가 동이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이슈를 제공하고 있다.


인원왕후 역의 오연서는 1987년 생으로 주인공 동이역의 한효주와 동갑이다. 오히려 생일은 한효주가 더 빠르다. 그런데 1702년 10월 인원왕후가 왕비가 되었을 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오연서는 16살의 인원왕후 역을 맡았고, 한효주는 1670년 생으로 33살의 배역을 맡고 있다.


여기서 너무 나이가 많은 오연서를 인원왕후 배역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기에 충분하다. 오연서는 분명히 주인공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1681년 인현왕후가 왕비가 되어 들어 올 때 나이가 15살이었다는 것이다. 숙빈최씨가 인현왕후의 말동무로 함께 궁에 들어올 때 나이는 12살이었다.


드라마 동이에서 한효주는 궁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성인역으로 바뀌었다. 또한, 인현왕후 역의 박하선은 1987년으로 한효주, 오연서와 동갑이었다. 그러니 오연서는 안되고 박하선과 한효주는 된다는 발상은 조금 아이러니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이도 같지만,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물론, 박하선은 오연서와 다르게 동안이었고, 동이를 띄우기 위한 병풍 왕비에 지나지 않았었다. 말없는 박하선은 역대 최고의 인현왕후로 칭송되기도 했었다. 반면에 오연서는 주인공과 초기에 대립하는 역을 맡음으로 해서 까칠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오연서는 맡겨진 배역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동이에서 인현왕후는 1701년 8월 14일 새벽에 죽는다. 숙빈최씨 역을 맡은 동이는 1701년 9월 하순경 숙종에게 인현왕후를 죽게 만든 세력이 장희빈이라고 잠자리 송사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희빈이 인현왕후의 죽음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때에 이르러 무고(巫蠱)의 사건이 과연 발각되니, 외간(外間)에서는 혹 전하기를,

“숙빈(淑嬪) 최씨(崔氏)가 평상시에 왕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追慕)하여, 통곡(痛哭)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고(告)하였다.”


이후 숙종은 바로 장희빈을 인현왕후의 사사에 관련이 있다 생각하고 장희빈을 사사하도록 하고 직접 관련자를 국문한다. 하지만, 많은 중신들이 장희빈 구명운동을 버린다. 이유는 세자의 모후로 장희재와 장희빈이 죽게 된다면, 세자가 흔들리고 조선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숙종의 어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희빈이 처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열한 공방 끝이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장희재는 한양에 끌려와 죽고, 장희빈은 1701년 10월 10일 자진하게 된다.


드라마 동이를 보자면 인현왕후가 죽은 바로 후에 왕비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고 동이(한효주)를 왕비로 세우려 하였으나 동이의 거절로 실패한 것으로 나오고 장희빈이 죽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인원왕후를 왕비로 내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화면상으로는 1702년에 왕비로 내세운 것으로 나오지만, 극중에서는 장희빈이 죽은 바로 몇일 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은 살과 같이 흘러서 인현왕후가 1701년 8월 14일에 죽고, 바로 숙의였던 동이가 숙빈이 되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이유는 숙빈최씨를 왕비로 세우기 위한 명분축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숙의였던 동이가 숙빈이 된 때는 인현왕후의 죽음과 하등 상관이 없다. 숙의 최씨가 숙빈이 된 때는 인현왕후가 죽기 한참전이 1699년 10월 23일 단종의 복위를 기념해서 귀인이었던 최씨를 숙빈으로 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동이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 숙원 박씨와 숙원 유씨를 숙의로 승급시키고 있다.


드라마 동이를 보고만 있다면 숙종은 동이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지만, 실제 숙종은 희빈장씨 뿐만 아니고 숙빈최씨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빈과 후궁을 두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동이를 위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 이병훈과 김이영은 과감히 다른 비.빈과 후궁을 없애는 패악을 저질러 버린다.


어쨌든 인원왕후는 왕비가 된 후 바로 연잉군을 궁 밖으로 보내기 위해서 혼사를 준비한다. 그런데 동이는 연잉군을 궁 밖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 계략을 꾸미고, 차천수가 협박을 하여 성사 시켰다고 나온다.


문제는 동이에서는 인원왕후가 1702년 10월 왕비가 되고 바로 연잉군을 쫓아내는 것으로 그렸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연잉군은 1704년 2월 21일에 진사 서종제의 딸과 결혼을 한다.


이때 연잉군의 나이는 1694년 생으로 11살이 된다. 드라마 동이처럼 연잉군이 나이가 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잉군(延礽君) 이금(李昑)이 진사(進士) 서종제(徐宗悌)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임금이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에게 주혼(主婚)하게 하고, 서종제에게는 직을 제수하라고 명하고, 가례청(嘉禮廳)의 당상(堂上) 이하에게 차등있게 상을 내리고, 도청(都廳) 김문룡(金文龍)은 통정 대부(通政大夫)로 승진시켰다. 이 혼인은 사치가 법도를 넘어 비용이 만금(萬金)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또한, 드라마 동이를 보고 있노라면 숙종은 연잉군이 궁에서 지내기를 바랬고, 숙빈최씨는 연잉군을 궁에서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나오지만,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오히려 숙종은 연잉군의 혼사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여 중신들의 원성을 사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백성을 생각하고, 깨어 있는 동이가 자신의 아들의 결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장희빈이 되어 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장희빈의 죽으니 인원왕후를 장희빈으로 만들어  동이와 대립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표하지만, 오히려 동이의 하는 짓은 드라마 상의 장희빈과 별반 차이도 없다.
 

전교(傳敎)하기를,

“왕자(王子)가 저택이 있어야 출합(出閤) 할 수 있는데, 연잉군(延礽君)은 길례(吉禮)가 이미 지났어도 아직 제택(第宅)이 없고, 방금 큰 역사(役事)가 한참이어서 영조(營造)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이것도 또한 부득이한 일이니, 먼저 해조(該曹)로 하여금 값을 주도록 하라.”

하였다. 


연잉군(延礽君)의 어머니 숙빈(淑嬪) 최씨(崔氏)는 이현(梨峴)에 갑제(甲第) 가 있는데, 임금은 또 왕자(王子)를 위하여 별도로 저택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조신(朝臣)들 사이에 말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우선 부득이하다는 전교(傳敎)를 내렸으니, 중외(中外)가 남몰래 탄식하였다.

동이에서 숙종은 동이의 계략에 탐복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숙종은 연잉군이 궁밖에 나가서 사는 일에 적극동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위의 기록만으로도 숙빈최씨는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백성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묵묵히 숙종의 뜻에 따름을 알 수 있고, 오히려 연잉군을 위해서 결혼과  연잉군이 살집을 위해서 숙종에게 물밑교섭을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


왕의 성(姓)은 이(李)이고, 휘(諱)는 금(昑)이고, 자(字)는 광숙(光叔) 이니, 숙종 대왕(肅宗大王)의 둘째 아드님이고, 어머니는 화경 숙빈(和敬淑嬪) 최씨(崔氏)로 갑술년(1694년) 9월 13 순일에 창덕궁(昌德宮)의 보경당(寶慶堂)에서 탄생하셨다. 왕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오른 팔에 용의 비늘 같은 무늬가 있었는데, 숙종께서 늘 재기(才器)를 중하게 여겨 양성(養性) 이라는 헌호(軒號)를 내려서 그 덕을 권면(勸勉)하고 6세 때에 연잉군(延礽君)을 봉(封)하셨다.

 

드라마 동이에서 연잉군은 동이가 궁 밖에서 나은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지만, 연잉군은 창덕궁 보경당에서 태어나 궁을 떠난 때는 서종제의 여식과 결혼 한 후이다.


드라마 동이는 세월이 떠난 화살과같이 번개불에 콩구어 먹듯이 일사천리로 전개되고 있다. 숨이 가쁠만큼 따라가기가 힘들정도이다. 하지만, 최소한 지킬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동이에서 역사와 부합되는 장면을 찾기가 더 힘들다. 역사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한다. 하지만, 있는 역사도 드라마로 망치고 있으니 사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동이를 보고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괜한 헛소리가 아닐것이다.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연잉군이 궁 밖에서 죽을지도 모르니 "죽어도 못보내" 궁궐에서 키워야 겠다고 하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자의 시대는 가고 이미지의 시대, 멀티미디어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읽기'의 과제는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넘쳐나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대중'들은 '대중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읽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TV도 음악도 광고도, 모두 우리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때로는 말초적인 감성으로 우리를 자극하고 속이지요. 그러면서도 때로는 '대중문화'라 평가절하할 수 없는 깊이와 철학으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곤 합니다.

<정준희의 공중 조망>은 이제는 현대인들 모두를 둘러싼 '환경'이 되다시피 한 TV를 비롯해 대중문화의 단면들을 포착해 그 행간까지 읽게 해주는 길잡이입니다.
정준희님(junehee.jung@gmail.com)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문화산업과 미디어제도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미디어제도론과 방송정책을 연구하고 있고 국민대, 광운대, 충남대, 서울대 등에 출강하여 대중문화론, 미디어이론, 방송이론 분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국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소개하는 청소년 교양서 <전통을 지켜 새것을 만드는 나라 영국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매력은 복잡하고도 모호한 선악구도에 있었다.

물론 캐릭터간 대립의 양상 자체는 선명하고 단순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비열했고, 권력을 갖고 싶은 자는 탐욕스러웠다. 의료사고를 당한 힘없는 환자의 진실은 아주 쉽게 파묻혔으며, 내부고발자는 침묵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인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던 인물은 선한 의사 최도영이 아니라 악한 의사 장준혁이었다. 사람들은 장준혁이 패배하길 바라면서도 장준혁에게 애착을 느꼈다. 단지 그가 불쌍하게 죽어서 안쓰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실력과 욕망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를 사랑했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애착이 불편했다. 장준혁이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절묘하게 다루어낸 솜씨와, 고전적 선악구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내러티브적 성취에 동감했던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인간적 이해가 그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흐리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가 출세를 위해 택한 일련의 행동들은 의사라는 직업이 하나의 전문직으로서 존립하는 데 필수적인 규범을 어겼고, 자신의 몰락을 막기 위해 타인의 삶을 목적의식적으로 짓밟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의사들의 직업윤리란 다 허울일 뿐이고, 따지고 보면 사회란 게 어차피 그렇게 굴러가는 법이라고?


무슨 소리. 근대사회는 비록 도덕적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윤리적일 수는 있다. 아니, 윤리적일 때에만 존립할 수 있다.


돈 없어 배곯는 이에게 공짜로 빵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빵집 주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지언정) 윤리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농약 친 밀가루 빵을 유기농 빵으로 속여 팔았다면 문제가 다르다. 우리가 빵을 살 때마다 성분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은 빵집 주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우리는 신뢰라고 부르며, 신뢰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윤리이다. 모 통신사의 광고 카피처럼 “다 그래”를 뒤집어야 근대사회를 움직이는 최소한의 게임 규칙이 성립되는 법이다.


이쯤 되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반응 중의 하나가 “그렇게 따지지 좀 마라!”다.

“영화는 영화다” 그러니 드라마를 그냥 드라마로 보자는 식의 대응 역시 빠지지 않는 양념이다, 허나 그런 사람들 대다수가 오히려 장준혁에게서 자신을 보고, 대형 병원을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과 그를 좇는 욕망에 자신의 경험을 투사한다.

사람들이 <하얀거탑>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건 오히려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현실의 반영이거나 왜곡이라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특정 시기를 관통하는 ‘표본적인’ 메시지나 이야기구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트렌드라고 부르건 현실의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부르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이야기꺼리가 되는 대중매체 생산물에는 당대의 정서구조와 조응하는 바가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당시는 “반칙하지 않는 사회”를 주장하던 노무현 정부의 막바지였고, “도덕성보다는 능력”이라는 보수매체들의 기묘한 담론이 암묵적인 공감을 얻어가던 때였다.


그리고 그해 말,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능력은 있어 보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일각에서 물고 늘어진 반칙 혐의는 끝까지 입증되지 않았다.

솔직히, 당시의 국민들 상당수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묵인했거나 혹여 반칙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걸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그로부터 3년 후, 사람들은 <제빵왕 김탁구>에 열광하고 있다. 장준혁의 악마적이지만 인간적인 욕망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이, 오로지 실력과 의리를 앞세우는 김탁구의 진실성에 매력을 느낀다.


물론 둘 사이에는 분명히 공통점도 있다. 그들은 모두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고, 치열한 토력을 통해 실력을 입증하며, 불우한 배경을 딛고 자기 분야에서의 성취를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간다.





선악구도 역시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비열한 악행에도 이해할만한 요소는 있다. 하지만 김탁구는 단 한 번도 정당하지 않은 길을 걷지 않는다. 우직하면서도 유연하고, 진정성을 갖고 있기에 성공하며, 붙잡을 수도 있었던 권력과 금력을 던진 채 직업규범에 충실한 “빵쟁이”로 돌아간다.


<제빵왕 김탁구>만일까.


<동이> 역시 그렇다. 천민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실력과 진성성만으로 역사의 행로를 바꾸는 정직한 인물에게 시청자들은 공감과 애정을 보낸다.

선악구도는 조금 더 단순하고 고전적이어서, 장희빈 측은 분명히 나쁘고 동이 측은 때로 고지식하게 올바르다. 그럼에도, 어떻든 장희빈은 악의 화신이라기보다는 이해할만한 욕망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동이 역시 막연히 정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 노회한 지략과 정치력 역시 지니고 있다.


이 또한 우연인지는 몰라도, 난데없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학술서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기 구상인 “공정사회”는 그것을 내건 당사자가 당혹스러워 할 만큼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확산 중이다.


마냥 정직할 수는 없게 만드는 현실의 압박에 체념하고, 무기력한 정의보다는 마키아벨리적 생존 의지와 능력에 공감하던 사람들이 이제 정말 ‘정직한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를 열망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좌절된 기대’로 인한 피로감이 또 다른 형태의 반항적 기대를 낳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9월 5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김탁구가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지 못했다면, 김탁구의 진정성이 한승재와 서인숙의 거짓에 패배하고 구마준을 돌아 세우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역사가 미리 말해주는 것과는 달리, 정직한 동이가 간교한 장희빈에게 지고, 총명하고 우애 깊은 연잉군이 결국 영조가 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또 어땠을까?


비록 결과적으로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동기와 행위가 정당하고 진실했기에 그 패배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