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를 보러 간 건 완전한 돈낭비였을지도 모른다. 내겐 넷플릭스 아이디가 있고, 몇 시간 후면 넷플릭스에서 <로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아이디가 없다 하더라도, 신규 가입하면 첫 한 달은 무료다.)

 

유명 배우 하나 나오지 않는 1970년대 초반 멕시코 배경의 흑백영화였지만, 객석은 의외로 거의 찼다. 멕시코시티 한 상류층 가정의 가사도우미 클레오가 중심인물이다. 클레오는 의사인 가장 안토니오와 그의 아내 소피아, 아이 4명을 뒷바라지한다. 클레오의 무책임한 남자친구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잠적하고, 소피아의 남편 안토니오 역시 외도로 가정을 떠난다. 임신한 클레오와 당황한 소피아는 안간힘을 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낸다.

 

관객은 영화 시작과 함께 곧바로 클레오의 공간으로 깊숙이 초대된다. 3D 안경이나 VR 기어를 쓰지도 않았지만, 마치 클레오와 소피아와 아이 네 명이 곁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 경험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건 소리다. 클레오가 비질하는 소리, 빗물 떨어지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가족들이 여러 가지 언어로 잡담하는 소리들이 극장 공간 사방에서 들려온다. 배경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기에, 이 일상의 소리들은 더욱 주의를 끈다. 음향 시설이 좋은 극장이라면 그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사람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듯, 카메라의 좌우 패닝샷이 많다는 점도 공간에 대한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 ‘로마’의 종반부 한 장면. 롱테이크로 촬영된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넷플릭스 제공

 

스마트폰, 컴퓨터, 텔레비전에서 넷플릭스로 <로마>를 보았어도 클레오의 삶의 감각이 전해졌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볼 때 극장만큼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개인이 아무리 좋은 음향·영사 시설을 갖췄어도 전문가들이 설계한 극장 관람 환경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로마>는 상영시간 135분 동안 관객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요구하는 종류의 영화다. 자신을 모두 내어주지 않는 관객에게 <로마> 역시 그 감흥을 완전히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로마>를 영화관에서 보길 권하고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감독 에드거 라이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적었다. “한 가족과 시대에 대한 심오한 연구이자, 몰입할 만한 경험.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돌아가고 싶었다. 큰 스크린으로 보길 권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극장에서 <로마>를 보기는 쉽지 않다. 개봉 이틀 뒤 곧바로 온라인 공개하기로 한 제작사 넷플릭스의 방침을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들은 극장에서만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일정 기간 이상의 상영기간(홀드백)을 요구한다. <로마>는 애초 세계 최고 권위의 칸국제영화제 출품을 타진했으나 넷플릭스의 정책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로마>는 넷플릭스 방침에 유연하게 반응한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돼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로마>뿐 아니라 폴 그린그래스의 <7월22일>,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오슨 웰스의 전설적인 유작 <바람의 저편>처럼 평소라면 칸의 레드 카펫을 밟을 만한 넷플릭스 작품들이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대자본·뉴미디어의 편리함을 내세운 넷플릭스와 극장 수익·전통적인 극장 경험을 내세운 영화관·영화제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소피아와 네 아이들, 클레오는 휴양지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관에 간다는 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자신을 속박시키고, 낯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꽤 굳은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관객이 긴장 속에 침묵하며 어둠 속의 커다란 스크린을 주시하는 극장을 경험하면서 자라온 세대다. 다이아몬드가 귀하게 여겨지는 건 그 자체에 내장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단지 드물기 때문이다. 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몇 번의 클릭으로 <로마>의 한 장면을 재생할 수 있다. 이 편리함이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기술 발달의 도저한 물결은 한 인간의 취향 같은 것은 쉽게 휩쓸고 지나간다. 강력한 시네필인 정성일 감독·평론가조차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변화하는 플랫폼은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환대한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스스로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시네마테크, 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됐다. 플랫폼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을 것이고, 경계는 희미해질 것이다.”

 

난 <로마>를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극장 관람 경험을 특권화할 생각은 없다. 넷플릭스는 이용자에게 종래 방식으로는 만나기 어려웠던 빼어나지만 독특한 작품들을 소개했고, 창작자에게는 권한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마음속의 프로젝트를 꺼내들 수 있게 했다.

 

이제 무엇이 영화이고, 영화가 아닌지 결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백가쟁명하는 미디어가 저마다의 장점을 내세워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자본의 이해가 아니라, 이용자의 경험에 민감한 미디어가 부흥하길 바랄 뿐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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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지난해 연수 생활을 했던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는, 서울에서 평생 살아온 내 기준에서 보자면 ‘시골 동네’와 다를 바 없는 도시였다. 고층 건물도 없고, 4D나 아이맥스 영화를 보려면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달려서 다른 도시로 가야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시내를 구경하다 “여기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딘가요?”라고 물었더니, 안내해주던 분이 “바로 여긴데요”라며 멋쩍어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런 ‘시골 도시’에서 놀랍게도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각종 시사회가 정말 많이 열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True/False 필름 페스티벌’. 매해 3월에 열리는데, 그때는 한적한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친다. 몇 안되는 시내의 극장과 대학 강당까지 총동원돼 수십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상영된다. 일부러 휴가를 내고 다른 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4월에는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 주최하는 ‘Third Goal’ 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컬럼비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극장인 ‘미주리 극장’에서는 수시로 각종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볼 수 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그때 처음 실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국제 이슈의 현장에는 반드시 ‘그 순간’ ‘그 현장’의 최전선을 지키며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예를 들어 나는 2014년 국제부에서 근무할 때 16명의 셰르파가 눈사태로 떼죽음을 당한, ‘에베레스트 최악의 날’을 기사로 쓴 적이 있다. 죽은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시즌을 접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셰르파들, 등정에 투자한 돈이 아까워 셰르파의 하산 선언에 반발하는 서구 산악인들. ‘True/False 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셰르파>는 내가 외신 기사들을 활자로 접하면서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그 날의 베이스캠프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줬다.

 

2014년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된 첫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이야기를 다룬 <Jim>이란 영화도 있었다. 그와 함께 IS 감옥에 수감됐던 동료 종군기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재구성된 제임스 폴리의 마지막 순간이 상영되는 내내 극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런가 하면 불과 5개월 전 벌어진 미주리대의 학내 인종차별 사건도 스파이크 리 감독에 의해 발 빠르게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고, 시사회가 열린 날 미주리 극장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만원사례를 빚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나면 언제나 뿌듯하다. 내가 머리로만 알던 이슈들, 한 두 컷의 정지된 이미지로만 머릿속에 박혀있던 사연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TV나 신문 뉴스를 통해 다뤄지는 이슈를 보다 생생하게, 서사적으로 이해시켜주는, 매우 효과적이고도 보완적인 뉴스 전달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이야말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웬만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사회다. 실제 <택시운전사>처럼 최근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중 상당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에서 정작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일은 ‘고도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하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정보를 접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알게 됐다 하더라도 이미 ‘찰나’의 상영기간이 끝난 후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박종필 다큐멘터리 감독의 별세 소식을 접한 후 나는 당혹감을 넘어 적잖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평생 동안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 빈민의 옆을 묵묵히 지키며 여러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낸 그의 죽음 앞에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 준 친구를 잃었다”며 애끊는 슬픔을 호소하는데, 나는 그의 작품을 한편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나의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치열하게 현장의 최전선을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우리의 접점이 그만큼 작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컬럼비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상영될 수 있는 것은 미주리대학이 ‘미주리 극장’을 아예 사들여서 다큐 영화 시사회 등에 종종 장소를 제공해 주는 덕분이기도 했다. 극장만이 아니다. 미드 <하우스오브카드>나 <옥자>로 잘 알려진 넷플릭스는 상업영화뿐 아니라 양질의 다큐멘터리 영화 콘텐츠로도 유명하다. 내가 컬럼비아의 극장에서 봤던 영화 <Jim>도 후에 이 영화의 판권을 사들인 넷플릭스에서 언제든 시청이 가능하다.

 

다행히 최근 <노무현입니다>가 관객수 180만명을 돌파했고, <공범자들>도 호조를 보이며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더 많은, 더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 영화 상영 공간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 미드 보려고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다큐멘터리에 빠졌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접점을 늘려나가야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정유진 토요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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