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2.17 (16) 은퇴한 야구선수 양준혁 (6)
  2. 2010.10.18 (4) 김용택 시인
  3. 2010.10.10 (3) 정연주 전 KBS 사장
  4. 2010.10.06 (2) 유인촌 문화부 장관 (1)
  5. 2010.10.04 (1) 소설가 이외수 (2)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기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8할이 야구다. 동네 야구를 하며 자라난 촌놈의 소원이자 꿈은 푸른 잔디구장을 직접 밟아보는 것. 1999년 삼성라이온즈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일을 시작하면서 떨리고 벅차오르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촌놈에게 ‘4번타자’ 양준혁(41)은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우상을, 전설을 넘어서는 신이다. 양신(梁神). 93년 프로데뷔 후 숱한 기록을 갈아치운 ‘한국 야구사의 기록제조기’. 그의 빗속 은퇴식을 보면서 ‘한 시대가 저문다’고 느낀 건 그의 당당한 체구만큼이나 묵직한 무게감 때문이었다.




양=야~, 니 와이래 늙었노
김=참~나, 형님은 늙은거 생각도 않나. 영감쟁이가. 그나저나 축하해야 되겠제
양=축하해도 되지. 안짤맀으니.
김=형님, 언제 한잔하입시더.
양=한잔 하자꼬? 내야 땡큐지.

김=우째 지내십니까.
양=마이 바빴지. 근데 내 니 안만날라캤다. 맨날 영감쟁이라고 머라 해갖고. 같이 늙어가면서
김=같이 늙어가는거 아입니더. 형님은 장가도 안가고 머합니까
양=니부터 가라.
김=에이. 형님부터 가야죠.
양=다들 그카면서 다 먼저가대. 내 핑계대고 형님 장가가라 해놓고는. 승엽이도 그래놓고 지 먼저 가더라.
김=그건 승엽이 잘못 아입니더. 형님 잘못이지. 근데 와 안가십니꺼?
양=니 어떻게 되나 보고 갈라꼬.
김=에이. 나야 갈라캤으면 벌써 갔지요
양=됐다 마. 근데 감기가 와갖고 정신이 몽롱하다. 긴장이 풀리면 그런갑다. 지난번에 은퇴경기 하면서 비도 오고 마음도 울컥하고... 그러다보니 감기가 오대.

김=큭큭. 삼진 세개 드시면 울컥할만합니다.
양=그러게. 어린애한테 먹으니까 욱하대.
김=그래도 그게 오히려 뭉클했어요.
양=머가 뭉클하노. 난 안타를 쳐야되는데 157키로를 꽂아뿌니까. 아, 참, 미치겠대
김=난 근데 안타보다는 마지막에 땅볼치고 뛰셨을 때 그 모습이 마음에 참 와닿습디다. 그동안 안타야 많이 치셨잖습니까. 
양=그래. 마지막이라도 내가 진짜 전력으로 뛰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날 광현이 볼은 도저히 못치겠더라고. 내가 광현이 신인때부터 쭉 쳐봤는데 그날이 공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진짜 그날 이 악물고 던지더라고. 그래도 내 은퇴경긴데 공 한번 안주겠나, 함 치볼라꼬 했는데 끝까지 안주대. 그래서 에이 치와뿌라 했다. 박경완 포수도 눈감아 뿌고.
김=으하하. 진짜예?
양=그게 오히려 나도 기분 좋더라. 순위하고 상관없이 그렇게 나오면 기분이 안좋겠지만 1등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기분 좋더라고. 

김=그나저나 세월 정말 많이 흘렀죠?
양=니 그때 한참 까불락거렸다 아이가.
김=형님은 야구 유니폼만 입었다 뿌이지 그게 어디 선숩니까? 깡패지.
양=내 스타일이 그래. 난 어쩔 수 없어. 알잖아? 껄렁껄렁거리는거. 그래서 내가 야구장에서 껌을 안씹잖아. 씹어뿌면 완전 가뿌는 거야. 나는 껌 안씹었는데 사람들은 씹었다 카는 기라. 껄렁껄렁하니까. 그래서 절대 안씹어.
김=그래도 어쩌겠어요. 씹는것처럼 보여요. 하하. 야구장에서 만세는 형님이 젤 많이 안 불렀겠습니까.
양=만세야 수도 없이 불렀지. 삼일절 되면 만세 삼창하고

김=은퇴경기 때 어땠어요? 김광현 선수나 송은범 선수가 마운드에서 모자벗고 인사드릴때...
양=고맙더라고. 예를 갖추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 역시 못 쳤지만 최선을 다한거고. 팬들도 좋아해주시고. 그래도 진짜 치고 싶었는데 타이밍 놓쳐서 못쳤어. 광현이 공 진짜 좋았어. 그런데 내만 못친게 아니잖아. 우리 그날 안타 한개 나왔어. 내가 삼진 세개 보태줘서 광현이가 탈삼진했잖아.
김=은퇴식할 때 어땠어요?
양=은퇴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고민 많이 해왔거든. 내가 팀에 한마디로 부담을 주면 유니폼 벗겠다고 마음 먹었어. 근데 올해 그 시기가 오는 것 같아서 한달 이상 고민했지. 그 과정에서 심적으로 삼십몇년동안 한 야구를 놔야되니 고민이 많았을 거 아냐. 막상 결정하고 나서 팬들이 텐트까지 쳐가면서 반대하니까 덜 외롭더라고. 축제같이 꾸며주니까 덜 외롭고 기분도 좋았고 너무 고맙고 그렇지.
김=그래도 무지 허전했을 것 같은데요
양=그럴 줄 알았는데 덜하더라고. 편안해.
김=앞으로도 계속 야구에 관련된 일을 하실거 아닙니까. 유소년도 그렇고. 


야구선수 강준혁. /경향신문 권호욱 기자


양=선수 관두면서 해야될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 서서히 해야지.
김=구체적으로 무슨일 해보고 싶어요.
양=축구는 인프라가 많이 돼 있는데 야구는 그런게 없어. 유소년 야구가 중요한데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나름 움직이고 있긴 한데 잘 되겠지 뭐. 우선 시작한다면 대구에서 먼저 해야지. 다른 데도 알아보고 있긴 하고. 선수출신이 그런 일을 해야되지 않을까 싶어.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야하는데.
김=그렇죠. 옆에서 계속 도와주셔야죠. 그런데 인생 끝까지 도와줄 분이 한분 계셔야할텐데.
양= 니 또 그 얘기하나

김=저도 어디가서 마음놓고 빨리 결혼하이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더. 저는 이제 서른 일곱입니더. 어쨌든 아이들이 야구하면서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런 인프라와 발판을 만들고 싶다는 거네요.

양=그렇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박찬호 이승엽 이런 야구 꿈나무들도 키우겠지만 내 관심은 야구를 통한 인성교육이다. 양준혁 야구교실을 나온 애들을 사회의 리더로 키우고 싶다는 거지.
우리 때는 야구하면 공부랑은 담쌓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는 공부하면서 야구하고, 중고등학생도 취미로 야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애들이 공부에 치이가 시간이 안나는데 주말에라도 좀 뛰게 해 주야지. 야구를 하면 그 안에 협동정신, 예절, 팀워크 이런게 다 있기 때문에 애들한테 가르칠게 정말 많다니까.
공부만 해라 이렇게 해가꼬는 교육이 안된다 이거라. 공부만 해가지고 약해빠진 애들을 어떻게 할거야. 스포츠를 통해 정신도 육체도 건강하고 맑은 애들로 키워줘야지. 내가 야구를 해서가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이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 


 김=형님은 진짜 애만 있으면 딱인데. 전적으로 동감해요. 동네에서 야구라도 할라카면 유리창 깨서 야단맞고. 우리 어릴때랑 달라진게 없어요. 아니, 지금은 동네 나와서 야구하는 애들이 없구나. 학교 운동장도 없고.

양=맞아. 없어. 예전엔 학교 운동장이 컸는데 지금은 다 뚝뚝 잘라놨어. 백미터 달리기 할데도 없어. 정말 잘못됐다니까. 애들은 인터넷만하지. 숨바꼭질, 구슬치기 하는 애들이 없다 아이가.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거긴 하지만서도.
김=형님이 애들을 이렇게 생각하시는줄 몰랐네. 어디 인터뷰하시는거 보니까 애들 많이 낳고 싶다고 하던데.
양=내 그런 말 한적 없다. 결혼이든 아든 자꾸 그런거 물어보면 난 딱 잘라뿐다. 노코멘트 이러면서.
김=우째 영어도 그렇게 사투리로 하노.. 그런데 준비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어요
양=내가 시랑 관공서 이런데 찾아갔는데 니 가오세울라카나 이러면서 뭐 말도 안되는 소리 하더라고. 인식이 안돼있어. 공무원들 이런 사람들이. 마이 부딪혔지.
김=요즘은 야구도 컴퓨터로 게임하는 애들이 많은데. 그런데 그건 애들 잘못 아니잖아요. 어른 잘못이지.
양=그렇지. 자꾸 방에서 공부하고 게임만 하면 생각이 음지화돼. 몸도 안건강해지고. 그러면 나중에 커서 뭐할라꼬. 스포츠 잘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하거든. 정신력이 맑기 때문에.




김=맞아요. 야구는 진짜 머리 많이 써야지. 게다가 형님처럼 장화신고 물도 빼내야 하잖아. 어떻게 보면 팬서비스차원에서 웃자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씁쓸하고 슬프더라고요. 그게 현실이잖아요. 아직도 덕아웃에 쥐 나오죠?
양=얼마전에는 락카 천장에서 고양이가 뛰어내려오더라카이. 천장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김=시간이 그렇게 지나도 변함이 없네요. 대궐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선수에 대한 예의이자 관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외국선수들이 와서 보믄 뭐라하겠노.
양=못 내놓지. 부끄러워서.
김=프로야구 구장의 열악한 상황이.. 진짜 말이 안된다 아입니꺼. 언제까지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이만큼 성공했다.. 이런거로 자꾸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양=우리가 맨날 돔구장 있어야 한다고 울부짖어봐야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것 같다.

김=양신기배 야구대회 이런거나 하나 만드시죠.
양=제동이 니가 힘이 좀 되어주면
김=그땐 제가 장내 아나운서로 내려가겠습니다. 아이다. 제가 투수로 들어갈테니 공 좋은거 하나 드리겠습니다.
양=내 보기에 니 투수는 쫌 아인거 같다. 근데 장비 하나는 죽이더라. 승엽이꺼 써서 그러나.
김=장비는 죽이지요. 형님 장비나 좀 주이소
양=니한테 맞는게 어디있노
김=쪼라서 쓰면 되지요
양=내 유니폼도 다 반납해서 없다. 요즘은 공 주서주고 배팅 봐주고 그란다.
김=완전 군대 말년이네
양=글타. 요새 그기 내 할일이다. 직인다.
김=후배들도 이제 기어오르고 하지예.
양=안글튼데. 우리 애들 착하다. 니같은 후배 있으면 형님 이카고 영감쟁이 캐쌌고 할텐데 우리 애들은 착해갖고 그카지는 않더라.
김=바로 밑에 후배가 누굽니까
양=진갑용이. 갑용이가 바로 내 밑에다. 내가 나가줌으로 해서 우리 팀 연령이 확 떨어져뿌따. 내가 일조한게 많다니까.

김=은퇴 전 경기땐가. 9회 2사 만루때 형님 삼진먹었잖아요. 형님 삼진당하고 들어가는데도 관중들이 기립박수 치던데요. 그거 진짜 짠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드는 느낌이 형님의 은퇴는 한 야구선수의 은퇴라기보다는 한시대가 간다는 느낌이대요.
양=그럴수 있겠지. 내가 그 자리를 십수년간 있어왔으니까. 항상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다보니까 팬들한테는 허전할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 드는 사람 많다대.


김=형님, 근데 공개적으로 한효주씨 팬이라했는데 한효주씨 만난적 있죠

양=안 만났다니까. 그냥 <동이>를 열심히 보고 있는거지. <동이>에 숙종이 깨방정으로 많이 나오니까 나도 어떻게 깨준혁이라고 이름 지어 트위터에 올렸지.
김=와따. 형님이 어떻게 <동이>랑 연결시켜 볼라고 지은 거네요.
양=내 한효주씨 사인도 받았다. 누가 받아주더라. 내 이름 써갖고. 그거 받아보니 팬들이 이런 기분으로 사인을 받는구나 하는걸 또 한번 느꼈지. 막 날라갈 것 같과 힘이솟고 그카더라. 그날 하루는 진짜 해피하더라.
김=으하하. 그래갖고 그거 들고 시합하셨습니까.
양=그거 집에 액자해서 만들어놨지. 한번씩 우울하면 그거 보고. 그러면 기분이 업이 되지.
드라마에서 <동이> 아들 있잖아. 왕자. 그 아들 보면서 나 어렸을 때 같다는 생각이 들드마. 그래서 내가 트위터에다 그 아들이 내 어렸을 때 모습이랑 닮았다 캤더니 바로 반응 싸늘하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라는 글이 열개나 올라오더라고. 그래서 급 사과했지. 바로 꼬랑지 내리고.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카고.. 
김=그럼 지진희씨 보면 어떤 느낌 듭니까.
양=내가 깨방정 된 것 같지. 저자리에 내가 있어햐 하는데. 내스스로 사람드한테 깨방정, 깨준혁 그칸다.
김=우하하. 아들한테까지 감정이입 되기 시작한거 보면 중증인데요. 형님, 근데 한효주씨 몇살인지는 압니까?
양=24살. 근데 뭔상관이고. 내 혼자 좋아하는데. 팬으로 좋아하는데 그게 뭐 어때서. 니도 내랑 비슷한 처질낀데 내 기분 모르나?


2010년 9월 19일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삼성-SK 경기 5회말이 끝나고 열린 양준혁 은퇴식에서 
SK 김성근 감독이 양준혁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맞아요. 혼자서 팬으로 좋아하는데. 압니다. 야구얘기 하입시더. 은퇴한다고 하고나서 그다음엔 한순간 한순간이 무지하게 아쉽고 힘들지 않아요?
양=나도 막 더 아쉽고 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희한하게 아무렇지도 않더라.
김=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이인데 더이상 만날 수 없으니까 일부러 정떼려고 모진척하는 것 같아요.
양= 맞다 그런것같다.
김=남녀관계에서도 정떼듯이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경험 있으시잖아요.
양=나름대로 인생을 반 이상 살았다고 봐야하는데 있다고 봐야지. 없다면 거짓말이지. 니는 없나
김=고마 야구얘기 하자니까요. 전에 무릎팍도사 나갔던것도 화제가 마이 됐지요.

김=요것만큼은 꼭 하고 싶다 이런게 있나요
양=아까도 애기했지만 지도자로서 이런 선수 키우겠다, 세계적인 스타 만들겠다, 물론 키우다 그런 선수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내 꿈은 아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리더로, 인성이 갖춰진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 앞으로 내가 총대메면 선후배들도 많이 돕고 같이 뜻을 하는 사람도 생기겠지.

김=형님이 생각하는 야구는요
양=어렵긴한데 내한테는 애인같기도 하고 부모같기도 하고 정떼기도 힘들고. 삼성라이온즈 품에서 그만둬서 행복하고... 말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무한한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김=형님 은퇴할 때 형님 아버님도 많이 화제가 됐어요.
양=그래. 삼촌도 야구하고 이래서 우리 아버지가 50년 이상을 야구 뒷바라지만 했다 아이가. 그래서 공이 사회인 야구 투수해도 된다. 우리아버지는 자신의 은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더라. 내 은퇴가 아버지한테도 의미가 커서 많이 우셨지.
김=그렇죠. 은퇴도 은퇸데다 남들은 그 은퇴식에 아들 데꼬 들어갈텐데 자취생 비슷하이 혼자 들어가니
양=와. 그 모습도 괜찮잖아. 나이든 아버지랑 같이 하는 것도. 꼭 얼라만 데꼬 드가야되나
김=형님 생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래도 아버님 생각 하시라고요. 어쨌든 저는 아버지가 안계시니까 그런 모습 보면서 참 좋습니다.
양=그래. 맨날 마누라 나오는 것보다 아버지 나오는 것도 좋다 아이가.
김=어떻게든 빠져 나올라꼬. 형님 아버지 포스는 김성근 감독님 같아요. 반응이 거의 없으시잖아.
양=그렇지 도사지. 팬들도 마찬가지고. 선수보다 팬들이 더 많이 알아. 우리가 대충 행동하면. 그래서 정말 정성껏 해야돼. 나도 후배들한테 잔소리 마이 하는데 본인이 느껴야지. 10대0 20대0의 상황이라도 마지막까지 전력질주하며 최선을 다해야지 대충해서는 안돼.
김=그래요. 형님 마지막까지 1루로 전력질주 하시대요

양=그게 내가 선수생활 내내 지키려 했어. 마지막까지 공하나까지 최선 다한다고. 그게 프로지. 2루 땅볼 날아간다고 대충 뛰도 않고 돌아들어오면 안돼. 그건 인정안해., 프로 아니야.
난 어릴 때부터도 그것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습관이 몸에 뱄어. 만에 하나라고 모르는거야. 만분의 1이라고하지만 그 1이 일어나면 그게 만이야. 안타를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력으로 뛰면 수비수들은 당황하게 돼있어. 송구에러가 나거든.
안타 아니더라도 그렇게 안타를 만드는 것. 그게 진정한 프로지.
메이저리거들은 진짜 열심히 뛰어. 전에 한번 그 선수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야구는 신이기 때문이라 하대. 신들이 와서 보고 있는데 대충한다는 것은 그 신들을 모독하는거라고. 한구한구를 다 신성시하고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지.

김=감동적이네요. 저도 그래서 야구하면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포지션이 유격수거든요.
양=니가 유격수한다는 건 쫌...
김=뭔소립니까. 제가 야구왕 김격숩니다.
양=야구든 뭐든 전력으로 해야돼. 본인이 갈구해야 뭐든 일어나는거야. 안타 1개 만들려고 수천 수만번 스윙했거든.


양준혁이 은퇴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형님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힘든때도 있었지만 가장 잊지 못한 좋은 기억도 있었지요
양=2002년 삼성이 우승했을 때지. 내가 삼성 돌아와서 바로 그해 우승했잖아. 삼성이 그전에 결승에 여덟번 올라왔어도 우승은 그때가 처음이었지.
그전에 내가 어떤 소리 들었냐면 우승을 시키지 못한 4번타자라고. 잔인한 이야기였지. 우승하니 모든게 정리되대. 내가 초중고대 야구하면서도 한번도 우승 못했었거든. 그때가 처음 우승이었다. 살면서 최고로 기뻤던.
그런 날이 또 올까 싶더라. 희한하대 두번째, 세번째 우승할 땐 그 감정은 아니더라고.

김=제가 이벤트 팀에 있으면서 장내 아나운서였잖아요. 그때가. 잊을 수 없죠. 해영이 형 다음 타자가 형님 아입니까.
양=글치. 그때 승엽이가 홈런을 쳤어. 그리고 내가 한번 끝내 볼라고 긴장 입빠이 하고 있었다 아이가. 1사. 칠만하더라고. 승엽이한테 맞고 투수도 내려갔고. 그래서 내가 마무리를 멋지게 해주겠다꼬 재고 있는데 내앞에 해영이가 또 넘가뿌대.
김=진짜 기억납니다. 형님 모자 거꾸로 디비 쓰고 진짜 마이 울었습니다.
양=마이 울었지.
김=그때 승엽이가 3점홈런 친 방망이가 제 집에 있어요. 지금 한 6천만원 한다카대예.
양=니 땡잡았네
김=승엽이가 돌려달라하는데 안줄라꼬요.

양=그때 내 감이 괜찮았거든. 10타수 5안타치고. 승엽이가 21타수 1안타하다가 그거 한방으로 떴고.
김=그때 대구구장 난리였어요. 다 울었지. 삼성팬들은 한이 많았다니까. 소주 글라스로 부어가지고 마시고 울고.
양=꿈인가 생신가 싶더라. 내 진짜로 얼굴을 꼬집었다.
김=알라처럼 팔딱팔딱 뛰었지예. 형님 근데 야구하면서 혼자 울었을 때도 있을 거 아입니까.
양=슬럼프 오면 사람 미치는거지. 죽어도 안되거든. 차타고 가다가도 울컥울컥한다니까. 미치제. 힘들어가고.
김=우예 극복하십니까.
양=많이 겪다보니까 페이스를 더 떨어뜨려. 바닥을 쳐야 올라오거든. 슬럼프왔을 때 허우적거리는데 그럼 더 힘들어. 밑으로 내려가 바닥을 치면 올라오게 돼 있어. 2002년도가 그랬어. 그때 내가 3할을 못쳤어. 그래도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니까 뛰어다니고 공 주우러 다니고 그러면서 으쌰으쌰 했지. 내가 처음 삼성 다시 올 때 98프로가 다 반대했어. 선수협 이런거도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와서 솔선수범하고 하니까 구단 사람들이 다 바뀌더라고. 팬들은 다 찬성했는데 선수협 이런거 때문에 골치덩이였잖아.



김=형님 뛰는게 사실 민첩하게 보이진 않습니다. 알고 있죠. 머리부터 들어가잖아요. 머리나 좀 작습니까.
양=알고 있지. 내 폼이 목도리 도마뱀이라 하대. 그래도 20-20 네번 했어.
김=그렇게 뛰면서 도루도 쉽지 않은데. 홈런타자가 그렇게 빠르기도 쉽지 않잖아요.
양=200도루는 하고 싶었는데 결국 193개밖에 못했어.
김=왜 하고 싶다고 이야기안했어요
양=하믄 견제 들어오잖아.
김=하하하. 형님 뛸 때 이래 뛰잖아요. 막 휘저으면서
양=내가 봐도 폼은 안나더라.
김=허물도 벗으면서 뛰죠. 헬멧벗고. 선수들 진짜 웃기게 뛰는 사람 많지. 형님은 뚜드리고 돌아댕기지 승엽이 땅파고 손 들어제끼지 동주는 얼굴 떨지. 정태형같은 사람 공치기 전에 그 독특한 타이밍 잡는 동작 하지 말라하면 야구가 되겠냐고. 한수형도 기마자세에 팽이 돌리지. 형님은 만세 말고 방망이 한손으로 돌리고. 폼만 보면 조폭나오는 거 같잖아.
양=우리 때만 해도 홈런 치면 세레모니 못하게 했어. 그런데 보여줘야지. 팬이 좋아하고 야구선수도 엔터적인게 있어야해. 홍성흔이처럼 보여줘야지.
김=형님은 그거 안해도 자세 자체가 엔터적이에요.
양=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있긴한데 나는 후배들한테 막 하라고 해. 도루하고 나서도 세레모니 못하게 하잖아. 메이저리그는 하는데 여긴 대한민국이잖아. 다들 선후배고 그래서 분위기가 딱딱한것도 있지. 옛날에 그라고 나면 다음엔 저놈나오면 맞춰뿌라 했다고. 빈볼 던져서.
분위기 살벌했지.

양=니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웃기더라고. 장내아나운서 할때 제동이 나오면 그때 올 스톱이야. 그거 쳐다보느라 정신없이 재미있었지.
김=그때 완전히 꼬마땐데 형님같은 선수들 신이었죠. 롯데선수들도 사투리가 비슷하니까 좋아했어요. 감독님 중에 웃다 뒤로 넘어간 분도 계시고 기억나요. 주형광선수는 그 꼬맹이때 내 사인도 받아갔다니까요. 전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떠들고 웃다가 저녁에 술먹고. 아이고 선수들한테 다가갈 엄두도 못냈죠. 어디 감히. 형님은 그때 하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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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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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항산 2011.02.21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공서 이런데 찾아갔는데 니 가오세울라카나 이러면서 뭐 말도 안되는 소리 하더라고..'

    안타깝네요. 근데 이거 벌써 많이 지난 이야기 아닌가요? ㅋㅋ 작년이야 이제.

    • Favicon of http://www.khan.co.kr/ 관리자 2011.02.25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이 기사 자체가 지난해 양선수 은퇴 뒤에 나온 겁니다. 블로그에서는 신문에서 지면 사정 때문에 빠진 이야기들까지 원문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2. 김광현 ㅋㅋㅋㅋ 2011.02.2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기가 제일웃겼다.
    은퇴경기인데 봐주지도않고 150km공을 막 뿌린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에이스다..
    그래도 양신은퇴는 아쉬웡

  3. Favicon of http://sunmoon81770@daum.net 체라스 2011.02.2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준혁 선수님의 올바른 인성자가 세계의 리더가 된다는 말씀은

    무척 감명스럽습니다.

    양준혁님 핫팅!!!!!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에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에서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해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섬진강과 시인이 만나면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게다가 봄이라면? 

잠이라도 줄여서 그곳에 가야 했다. 아쉽지만 시간 때문에 방배동 뒷산을 ‘접선 장소’로 택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이면 족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을 만나는 자리였기에. 
가는 길에 평소 김 시인을 좋아하는 DJ 유라 누나(최유라)에게 자랑삼아 전화
했다. 
“너 그거 알아. 예전에 김 선생 시로 내 남편을 잡았잖니?” 
“연애하려고 시를 읽었군요.” 
시인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썼으니 마음이야 ‘섬진강 매화꽃’이 아닐까.


김제동과 김용택(오른쪽)은 ‘촌놈’이다. ‘경상도 촌놈과 전라도 촌놈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아이들은 뛰놀며 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 김영민 기자


김용택= 오늘아침 신문에서 제동씨가 대안학교 설립하겠다는 계획 밝힌 것 기사 봤어요. 나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런 대안학교 만들고 싶어서 노영심씨와 의논한 적 있어요. 정말 반갑더라고. 우리 집사람이 제동씨 만나러 간다니까 그 기사까지 다시 보여주면서 반가워 하더라구.

김제동= 저야 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여신다면 제가 적극 돕고 싶죠.

"학교 이름은 대충 정해봤어요. 가끔 열리는 학교. 가끔 열리면서 아이들이 재미있고 즐거워하고, 또 기다리는 그런 학교 말이죠." (김용택)
"저도 제가 꿈꾸는 대안학교는 15분 수업에 45분 휴식하는 그런 모습이에요. 놀러 학교에 오는 것." (김제동)


김용택= 예전엔 형제들이 많고 여럿이 어울려 자랄 땐 그 속에서 갈등도 생기고 다툼도 있지만 이를 조정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인간성이 길러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가정에 하나 아니면 둘이고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이들이 남을 몰라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
김제동= 저도 예전에 촌에서 자랐습니다. 아이들과 임진왜란 놀이하고 수사반장 놀이했죠. 그런 놀이만 하면 다들 이순신 장군하겠다, 최불암 아저씨 하겠다며 우겨댔던 통에 왜군과 범인 역할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웃고 뛰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놀이였어요.

김용택= 지금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없다는 거예요. 자연이 있다면 자연과, 사람이 있다면 사람과 어울리는데 지금 우리 교육은 그걸 다 차단시키고 있지요. 인간 세상이 생태계인데 순환고리들을 다 단절해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인격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접하게 하는 시간이 정말 필요해요.
김제동= 그렇죠. 학원에 모여있다고 해도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갈등을 통한 관계 회복과 치유는 기대할 수 없는 구조지요.
김용택= 우리나라 교육이 정답을 가르쳐주고 이를 외워서 쓰게 하는 거예요. 나라는 인간은 그 속에 없죠. 삶과 사회문제,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는 모습은 사라졌어요.

김제동= 선생님 글 중에서 생각나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1, 2학년 아이들이 저희끼리 싸운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와서 털어놓쟎아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생각하고 깨닫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아이들 모습 보면 너무 예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예은이라는 어린이가 벚꽂 보고 쓴 글인데요. 벚꽃을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이렇게 썼어요. 전 그 표현을 보면서 너무 와닿았고 좋았어요. 이 아이가 이런 표현을 쓸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김용택= 제가 가르쳤던 아이의 글을 보면 참 의미 있고 귀한 것은 아이가 벚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는 거에요. 요즘 보세요. 사람들이 어디 사람이든 사물이든 뭔가를 들여다보는게 없지요. 남편과 아내도 서로 자세히 바라보지 않아요. 

저도 이 나이면 아내를 바라봐야 할 땐데 자꾸 술잔만 바라보게 됩니다. (김제동)

김용택= 학교 그만두고 동네에 나갔더니 어느 할머니 한분이 이래요.
‘선생님이 우리 손주놈 가르칠 때는 손주가 집에와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생각도 하며 지냈는데 선생님이 안가르치니까 애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없어졌어요’.
아이들에게 주변을 보게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지요.

김제동=대안학교 아이들의 문집을 종종 받아봅니다. 어떤 아이는 송충이를 징그럽다고 쓰면서 ‘송충이 입장에선 나도 징그럽겠지’라고 쓴 것을 보면 대단합니다. 그림도 그렇고. 아이들의 상상력은 끝없이 무궁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고학년 갈수록 자꾸 상상력이 억압되는 것 같아요.

김용택=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보통 3학년부터 눈치를 보고 계산하는게 시작돼요. 2학년 정도 까지만 인간적이죠.

김제동= 지금 교육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지요?
김용택= 뭘 어떻게 건드려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방대하고 사회전체적 이야기랑 맞물려 있으니까 그건 놔두고...
우선적으로 우리 교육에서 실시해야 하는 것은 교장과 교감이 되는 승진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승진제도를 유지해놓고 교육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어요. 교사가 관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묶여 있기 때문에 교육자체가 뒤로갈 수 밖에 없는거에요. 부조리 부정문제도 모두 여기서 일어나요.

김제동= 뒷돈 받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글을 통해 꾸짖으신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김용택=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개인적인 양심도 중요한데 우선 교장, 교감 개방해야 해요. 교사집단에서만 되게하는 것이 아니라 교장이라는 관리자는 사회에서 데려오는게 좋아요. 그런 제도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교 교육도 변할 수 있어요.
승진하려고 마음 먹으면 승진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의 어떤 조직과도 같아져요. 물불 안 가리는거지. 그것 안 하면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어요. 그것만 바꿔도 교직사회 변할 수 있어요. 또 교사를 교육시키는 교대, 사대의 교육내용과 구조도 바뀌어야 해요.


지금은 선생이 되려면 고시공부처럼 준비해야 하쟎아요. 선생님 되는 공부가 인격과는 상관없는 시험공부에요. 선생까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정답을 끊임없이 외는 공부하고 있어요.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인성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데 교사부터 그렇게 양성할 수 없어요. 교사도 교육에 대한 철학과 애정을 갖출 여력이 없지요. (김용택)


김제동=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몇사람만의 힘으로는 안되는 일이죠.
김용택= 사회변혁이 필요해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는데 10년 계획 세워놓고 계획대로 따른 적 있나요? 정권은 5년이니까 교육제도는 5년마다 바뀌어요.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육계획 연구기관이 필요해요. 교육정책은 국가권력과 상관없어야 해요. 




김제동=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교육을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네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하는게 영어예요. 그런데 이거 어려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점점 격차가 심해지잖아요. 워낙에 어른들이 만든 격차 때문에요. 빈부격차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의 책임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없는 사람'은 무능력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 됐어요. 이게 아이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어요. 그걸 극복할 방법은 교육인데 지금은 불가능하죠. 고착화됐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요. 


김용택= 제일 심각한 문제에요. 있는 집 없는 집을 떠나 교육정책과 배려예요. 강연을 다녀보면 잘 사는 지역에서 할 때 그 지역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도 이뤄지고 아이들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도 조성되고 교육도 받지요. 부모의 헌신도 많고. 그런데 그렇지 못한 지역 아이들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요.
일단 학습에 집중할 수 있기엔 거리가 먼 환경들이고 먹고살기 바쁜 부모가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를 하기도 부족하잖아요. 교육적 혜택도 받지 못하고 정서적 혜택도 부족해요.
난 그게 두렵고 무서워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가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부모가 가난하니 자녀도 가난하고 교육도 혜택도 부족한 것이 대물림 되는 세상이에요. 정말 무섭고 끔찍한 일이죠.
그런데 없는 집, 있는 집 아이들 사이의 간격이 내 아이의 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 아이들과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아이들인데. 
나중에 이들이 자라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그 때 그 현상들을 극복하고 감당하려면 얼마나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치러야할까요. 결국 모두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지요. 이를 좁혀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제동=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투자가 중요한 거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불행을 지금 미리 해결하는 것 역시 지금 투자하고 교육하는 것 밖엔 없는 것 같습니다. 

김용택= 제가 가르쳤던 아이 중 대대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있어요. 시골서 자라다 도시로 갔는데 가진 것도 없고 기반도 없다보니 몇년 만에 도시 빈민으로 밀려났어요. 결국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되자 이혼한 뒤 그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 아들을 내가 가르치게 됐지요.
대대로 가난한 농부. 그리고 그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 꿈을 갖고 서울로 갔지만 도시에 적응하고 발붙일 수 없어 밀려나는 모습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김제동= 피아노가 너무 너무 치고 싶었던 아이인데 가정은 피아노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됐어요. 도시빈민이었으니까. 그 아이가 양철판에 자기 마음대로 건반을 만들어놓고 이리저리 손을 대며 소리를 내가면서 쳐보더라고요.
정말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는데(눈 주변이 좀 빨개짐) 그런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본 게 대안학교에요. 미래 사회 비용에 비해 지금 투자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시급한 일이에요. 아이의 현재를 위해서도 최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하는 것이 교육이에요. 급식문제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자꾸 아이들에 대한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들까요?


김용택= 그게 정치적인 우선순위죠. 표로 연결되지 않으니까.

김제동= 애들이 투표권이 없어서 그래요. 5, 6세에게도 투표권 줘야해요. 인조 잔디? 좋아요. 그런데 있으면 뭐합니까. 놀 시간이 없는데.
김용택= 시설 좋은 학교를 지나다녀도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어요.
김제동= 심한 말이지만 전 학교 보면 수용소 시설 보는 것 같아요.
김용택= 도시 빈민가정 아이들 중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아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학부모에게 전화하면 먹고 살기 바빠 그런지 몰라도 아들 없는셈 친다고 대답해요. 애한테 빼앗길 정신이 없다는거지. 정말 문제예요.
김제동= 결코 아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닐텐데. 삶과 생활의 무게가 너무 짓눌러오기 때문이겠죠. 어쨌든 부모의 손길과 관심이 덜해지니 자연히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그게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겠네요.
김용택= 어쨌든 아까 김제동씨가 대안학교 이야기했는데 제동씨처럼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분들이 중심이 되어 힘을 모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제동= 아이고 선생님. 제가 무슨 영향력이 있다구요. 어차피 저도 그런 학교에 대한 관심은 많았는데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어차피 교장은 개방형 공모제로 뽑을 거니까 선생님 지원하실거죠? 저랑 교장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셔야 합니다. 우하하.
김용택= 뭔가의 계기가 있기만 하다면 관심있는 분들은 정말 많아요. 노영심씨랑도 이미 얘기해왔던 거고. 이젠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김제동= 음.. 저는 15분간은 수업하고 45분 놀고., 45분 노는 동안 책들고 있거나 공부에 관한 것 하면 야단치고. 그런데 애들은 금지된 것을 갈구하잖아요. 나무 뒤에서 책읽다 걸려 야단맞는 애들도 나오고... 이런 분위기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어도 원어민 강사가 와서 애들하고 노는거에요. 그럼 놀면서 애들이 그 원어민에게 한글을 가르치도록 하는거죠.
김용택= 계획 세워지면 교사가 절실히 필요하죠. 좋은 선생님들 많으니까 그 선생님 모집하고 같이할 분도 모으고. 대안학교에 대해 뜻을 갖는 부모님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교육환경에 염증 느끼는 분들..
김제동= 그런데 한번 충격받았던 적이 있어요. 대안학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자신들의 학교를 대안학교로 부르는게 싫다고. 우리는 우수하게 뽑힌 학생들인데 대안학교라는 이름에는 꼭 자퇴하고 정학당한 부적응 아이들을 모아 놓은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요즘 생기는 대안학교 중에서는 있는 집 아이들만 가는 곳들도 생겨나요.

김용택=일단 한번 캠프형식으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교육을 해야하니까. 조금씩 힘이 쌓이면 사회를 추동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교육이념은 사실 서울대잖아요. 모든 부모가 서울대를 원해요. 그런데 난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그걸 찾아주면 열심히 해요. 그러면 잘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평생 늙어죽을 때까지 할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행복한 거에요. 우리 사회는 행복과 상관없이 출세만 가르치지요.

김제동= 다른 사람이 재단하고 규정한 틀이 아니라 자기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네요. 흔히 말하는 엘리트코스에 맞춰 프로그램화 시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40대 직장인 중 자기 직장을 자신의 삶과 인생으로 가꾸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겠죠.
김용택= 직장에 있는 시간이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이 되는 그런 직장이 필요하죠.
김제동= 그런데 대안학교가 너무 낭만적이라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김용택=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 교육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 이루면서 사는 거에요. 어릴 때 아이들에겐 자연을 줘야 해요. 자연은 위대한 선생님이거든. 그런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삶의 안목을 만들어줘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신과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속에서 얻는 감성은 오랜 세월 동안 가지요. 어릴 때 가졌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커가면서 힘을 얻고 재창조되거든요.

김제동= 전 어릴 때 촌에서 자랐잖습니까. 그 기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랑 만나면 저는 10년 이상 세대차이가 나요. 쉰 넘으신 아버님과 만나면 대화가 되죠.
칡뿌리 캐러 다니고 봄에 얼음 녹을 때 대나무 작대기로 얼음배 타고... 이런 대화는 쉰 이상 된 분들과 되거든요. 제가 지금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나를 추스립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지난 5월 영화 <시>에 카메오로 출연한 김 시인. 오른쪽은 황병승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용택= 시골 아이들은 돌밭을 엄청 잘 뛰어놀아요. 돌에 걸리지 않죠. 도시 아이들 시골에 갖다놓으면 끊임없이 넘어져요. 몸과 자연이 교감하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아요.
체험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독서와 체험을 통해 경험을 길러주면 어떤 위기에 부딪혀도 극복할 힘을 가지는거에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 보세요. 앞에 뭐가 걸리면 좌절하고 엄한 짓 해요. 외우면 끝나는 공부니까 내가 없죠. 내 주장도 인생에 대한 고민도. 오직 고민이 있다면 내 점수가 왜 낮을까. 이거 뿐이에요.
내 인생, 내이웃의 가난한 사람, 내 친구, 부모...그들에 대해서는 고민안해봐요. 너무 단순하죠.


김제동= 살아있는 생명들과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닐까요?

김용택= 부모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인데 부모와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잖아요.그것을 공교육이 글어안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대안교육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거죠.
김제동= 사람에게 맞는 교육제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만들면 정권마다 교육제도 바뀌는 일은 없을 건데요. 어쨋든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게 좀 서글픕니다.
김용택= 시도 중요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중요해요. 나는 시를 쓰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시보다는 선생으로 삶을 만족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초등학교 교사 하면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아들딸까지 가르쳤으니까. 그곳에서 살았던 내 삶은 만족해요. 어느 날 교육에 대해 열정을 갖게 되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선생 하다가 환갑되면 그만 둬야지 했는데 마침내 그렇게 되고. 얼마나 복이에요.

김제동= 1년 반이죠? 떠나신지. 어떠십니까.

김용택= 어쨌든 오래 몸담은 곳에서 그만두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퇴임 3~4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왔었어요. 그만두는 때까지 괜찮았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 같으면 내일 학교 가야하는데 오늘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내일 학교를 가지 않는다.그게 너무 두렵다... 이런 생각했어요.
그 생각하느라 밤새 뒤척거리고 서운하기도 하고. 아마 그날이 8월31일이었을거에요. 그런 생각으로 잠자는 둥 마는둥 하다가 9월1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가 늦잠을 잔 거에요. 시계가 8시30분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죠. 지각했다고.
그런데 바로 아, 나 학교 그만뒀지. 안가도 되는구나...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죠.


"퇴임 후에 학교에서 아이들 만난 적 있으세요?" (김제동)
"한 번도 없어요. 학교도 가본 적 없고. 다시 가려니 마음이 묘하더라고. 그리고 아이들이 하루만 안 봐도 금방 잊어버리더라구요. 지난 토요일날 전주에서 내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갔는데 거기서 내가 제일 예뻐했던 녀석이 걸어오더라구요. 난 안사람이랑 너무 반가와서 달려가면서 이름을 크게 부르는데 이 녀석 그냥 덤덤하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가버려요. 
아이구 참 섭섭하데... 2학년 아이들 잊어버리는 수준이 붕어야. 그게 좋은 거지. 잘 잊어야 하는데 못 잊어서 괴롭거든. 괜히 나혼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밥 먹으면서 녀석, 저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휭 가버리나 싶고. 괜히 예뻐했어. 괜히 아이스크림 사줬어 이러면서...  하하. 많이 늙었나봐요." (김용택)


김제동= 선생님 글도 좋지만 아이들 글이 정말 좋았어요
김용택= 아이들 글을 넣을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 애들 글을 읽다보면 내 글이 정말 죽거든.
김제동= 아하하. 경쟁하셨구나.

"아이 글 보다가 내 글 보면 참 창피해요. 애들은 계산을 안하는데 나는 참 억지가 많이 들어가 있어. 내 생각을 그대로 쓰면 되는데 우리가 요구하고 따지는게 너무 많아. 아이들 글은 그런 것 모두 배제하고 삶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리하쟎아요. 애들이 뭔가를 오래 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하는거지. 우린 꽃구경 가도 사람구경하지 꽃의 생김새 본적 없잖아요. 애들은 깨끗한 풀잎, 꽃 같아요." (김용택)

김제동= 그래서 번뇌를 못버리고 삽니다.
김용택= 김선생 아침에 <환상의 짝궁> 하잖아. 서울의 어떤 어른이 보라고 전화 왔어. 몇 주 봤다. 안사람이랑. 그 앞에 앉아서 해결책 이야기해주는 아이.  아니 어쩜 그렇게 김제동 선생보다 훨씬 나아.
김제동= 저도 그아이 견제 많이 했습니다. 훨씬 재미있으니까. 면접 보러 많은 아이들이 옵니다. 사실은 아이들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카가 9명이기 때문에.
사실 이 프로그램 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 생각 많이 했습니다. 버릇없는 것도 아이의 잘못이 아니더군요. 어른들을 그대로 보고 배운 것일 뿐인데.

김용택= 대단한 깨달음이에요.
김제동= 오로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죠. 어른과 현상의 잘못.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게 이것까지이기 때문에 누구하나 미워할 수 없더라구요. 울어도 이유가 있고,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해요. 녹화중 삐져도, 선물 못 탄다고 옆의 어른 짝꿍을 발로 차도 분명 정당한 이유들이 있어요. 나쁜 여덟 살, 착한 여덟 살은 없고 그냥 여덟 살 아이만 있는 거죠.
김용택=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으로 넘어왔어요. 학교는 인격성숙 교육 도우는 곳 아니다. 그런데 가정으로 넘어왔는데 양극화 문제  때문에 더 어려워져요. 인격 성적 인성 모두 가정이 책임져야 하는데, 가정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인거죠. 어디서도 아이감당할 곳이 없어요. 그래서 대안학교도 필요하고.

김용택= 교육제도를 전체적으로 수술한 적 없어요. 어떤 정치세력도. 기득권 갖고 있는 세력이 너무 방대하고 크기 때문에 교육개혁이 안 이뤄졌지.
김제동= 학벌중심 사회. 이런 게 타파되기 힘들겠죠?
김용택= 우리는 조폭사회야. 학벌사회라기보다. 조폭사회보다 더 음흉하고 노골적이죠. 학벌타파 이런 거 다 헛소리.
김제동= 자기들끼리 앉아서 무슨 위원회 어쩌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뭘 바꾸겠습니까.

김제동= 라디오시대 진행하는 최유라누님이 남편에게 연애편지할 때 선생님 시를 요긴하게 썼대요
김용택= 내가 맺어준 사람도 많아요. 근데 내 시 때문에 헤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최유라씨한테는 내가 책도 보내준 적 있어요. 퇴근길 때마다 그 프로를 들어서 그런지 최유라씨가 남 같지 않고 식구 같더라구요.
김제동= 전화 통화 한번 해보시죠.



2008년, 40여년간 몸 담아온 교단을 떠나던 때의 김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용택= 우리사회 기성세대들이 아주 낡은 틀을 갖고 있어요. 시대적인 사명을 다해버린 아주 낡은 틀과 이념을 갖고 있다. 좌니 우니 이런거. 넌더리가 나.
김제동= 너무 싫죠
김용택= 너무 싫어.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데. 사람이 우리 백성을 뭘로 아는거야.  아직도 우리가 해방전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거지.
김제동= 백성을 계몽과 선도에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좌, 우 부추기고 이용해먹고 그런게 넌더리 난다. 70, 80년대 거기에 얽매이는 것도 보수인데 거기서 벗어나야 해요.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거잖아.
10년 후만 되면 지구촌이란 말이 더욱 실감날텐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한국 땅에, 지역 개념에 얽매여 살지 않을 텐데. 이런 아이들이 사는 땅을 구태의연한 이념 속에 묶고 가두고 살고 있어요. 국민을 빵꾸똥꾸로 보는 것이지. (김용택)


김제동= 개개인의 상상과 판단. 상상할 수 있는 자유. 어떤 언어로 표현하는 자유. 이런 것들이 크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잖아요.
김용택= 그거 상식선에서 자기가 하는 건데 왜 국가가 간섭하는지 모르겠어요. 인류의 영원한 가치인 자유문제를 국가가 관리하려고 하잖아.
김제동= 아무 생각 없는거죠. 잉여인력이 많은 모양이에요. 생각까지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해.
김용택= 너무 국민을 생각해준 나머지. 배려가 참 깊어. 다 관리를 하려고 들잖아. 저 밑에 이장 노릇까지 하려고 들어.
난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이 변해.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국가가 변해. 교육감의 생각에 따라 그 도의 교육이 변해. 부모의 생각에 따라 가정이 변해. 내 생각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은 것도 우리의 생각이고,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생각에 대한 가치판단을 안 하고 살았어요. 가치판단을 못하게 하는 좌우대립과 남북갈등, 분단, 정치적으로 동서의 분열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기 때문에 내 생각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쏠리는 거야. 뭐가 뜨면 휙 바람 불고. 몰가치한 사회에서 오래 살고 있잖아요. 요즘 젊은 애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은가 안 좋은가를 따지고 있어요. 그런 세상으로 가는 거지. 이 아이들이 사회를 주도하게 되면 낡은 구시대의 이념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나 참, 스님 보고 좌파니 뭐니 말이 되나요? (김용택)


김제동= 스님이 머리를 왼쪽만 미신 것도 아니고 다 미셨는데... 불도에 정진하는 분들에게 좌파 스님이 어디있으며 좌파 교육이 어디있습니까. 학교 일선에서 선생님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가르쳐오셨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대의 아이를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좌파 교육 했다고 할 수 없잖습니까.
김용택= 정말 정권은 계속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국민이 바꿔야 하죠. 자꾸 권력을 바꿔야 사회가 균형을 맞춰 올라가는데 우린 너무 장기적으로 해방 이후에 보수적인 권력 밑에 있어왔기 때문에 그 훈련이 안 돼있는 겁니다. 너무 독재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정권 바꾸는 훈련이 안 돼있고 교육이 안 된 것이죠. 그것도 가르치고 이것도 가르쳐야 하는데 왜 한 가지만 가르치는지. 좌, 우, 없어져야 하고 보수와 진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제동= 사회가 너무 지그재그로 가려고 하는 거죠. 시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듯이. 서로가 갈등이 있으면 화해하고 상승해서 성숙해야 하는데 하여튼 어느 쪽을 말살하려고 하는 그게 문제죠.
김용택= 다 흩어 놓고 다시 시작해야 해요.
김제동= 아이들이 개구리 집 짓듯이 말이죠?

김용택=좀 있으면 섬진강변에 어마어마하게 벚꽃이 피어요. 한번 오세요. 주말엔 말고. 움직이려다 죽어요. 사람에 치여서. 내가 4월에는 주로 지리산에 있거든. 연곡사라고 화개장터 위에. 피아골 녹차밭에서 나도 녹차 만들어요. 잘 아는 분인데 집에 잘 방도 있고 좋아요.
김제동= 저도 녹차 만드는 하구라는 다원 원장님 잘압니다. 근처 흙집 펜션도 좋고 활 공장 올라가는 길 중간에 널찍한 집도 있어요. 청소해 주면 하룻밤 묵어갈 수 있고.
김용택= 안사람이 제동 선생 만난다니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둘이 이야기 잘 통하는 것 있겠다고.
김제동= 저야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정말 좋죠. 좀 끼워주세요. 가끔 열리는 학교 좀 가끔 열어보게요. 

노영심씨가 음악 가르치고 선생님이 글쓰기 가르치시고. 저야 가끔가서 아이들하고 이야기하고. 비도 데리고 갈가요? 영어랑 춤 가르치라고 하고. (김제동)
아이고 비가 오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 고을에 소낙비가 내리는거지. 그런데 세계적으로 바쁜 그 친구가 시간이 될까? 그런 뜻을 보태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김용택)


김제동= 제가 좀 집에 불러다가 조인트도 까고 매도 좀 때리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려가겠지요. 안 그래도 등산하자고 했는데 지리산에 한번 가려구요. 갈 사람 많습니다. 뜻 모아 줄 사람도 많고.
김용택= 꼭 와요. 지리산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암자 하나 있는데 길가는 사람들도 몰라서 안 들어가요. 기막혀. 정말 좋은 덴데.
오늘 정말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 깨닫고 배우고 가네. 유익한 동무를 만나서 너무 좋고.
김제동=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얼굴이 아이같으셔요. 웃음소리도 그렇고.
김용택= 내가 평생 애들이랑 놀아서 철이 없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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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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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다가 허리를 좀 다쳤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화요일에 뵙기로 일찌감치 약속해 놨는데 통증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킬까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주말공연을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번엔 공연 게스트로 와줬던 현정이 누나가 술 한 잔을 청했다. 약속 때문에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샴페인에 소주까지 섞어 마셨다. 천하를 호령한 ‘미실’이 권하는데 어쩌겠나. 정 사장을 마지막으로 뵌 건 지난해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발족기념 음악회 때다. 그날 밤이 내가 <스타 골든벨>에서 잘린 날이기도 하다. 






정연주-허리 다쳤다며?
김제동-어떻게 아세요?
정- 나 기자출신이쟎아.
김-역시 취재력 대단해.
정-나도 허리수술 3번이나 했어. 못이 6개 박혀 있거든. 그저께는 잠을 잘 못자서 영 결리네.

김-요즘은 잠을 잘 주무셔도 담이 걸리는 시대쟎아요. (아이폰을 꺼내는 정사장에게 ) 어, 아이폰 쓰세요? 트위터는 안하시구요?
정-트위터 싫어. 인터넷도 힘들어 죽겠는데.
김-트위터도 매력 많아요.
정-그건 젊은 사람들에게 그럴테고, 난 그걸로 글 한번 쓰는 것도 힘들어서...

김-오기 전에 사장님 만난다고 띄웠어요. 궁금한거 질문 올려달라고 했더니 엄청 올라오네요. 
그런데요 질문 중 아직도 사장님이 현재 KBS에 사장으로 계신다고 착각하고 질문 올린 분이 많네요. 좋은 현상으로 봐야 하나? 

정-지난번에 재판에서 이겼쟎아. 김정헌 위원장은 복귀했고. 그래서 그런지 사장 자리 돌아갔는 줄 알고 요새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김-출근 안하십니까? 우하하.



정-해임취소 판결 받던 날이 내 임기 11일 전이야. 그래서 그 이후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내가 그만둔 것이 잘못됐다고 판결났기 때문에 내가 그만둔 이후 KBS의 체제는 법적으로 볼 때 불법체제지. 언젠가 KBS 정상화시키고 합법적인 체제로 돌아가려면 내가 다시 가서 15개월 남은 임기를 마저해야지. 그래야 KBS 라는 조직과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것이지.
언젠가는 다시 꼭 가서 15개월 임기를 채워야지. 그러면 김제동씨 스타골든벨에 다시 MC로 서길 바래(웃음). 그런데 난 임기중에 제작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어. 정말 피디들에게 많은 자율성을 줬지.

김-사장님 계시는 동안 오래했죠. 큰상도 주셔서 받았고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중간에 일어나서 꾸벅 인사)
정-얼마전에 큰 상 받았쟎아. 사실 피디라는 전문가 집단이 주는 그게 가장 큰 상이야.나눠먹는 것도 없고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지.
김-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정-내가 하도 험하게 살아와서... 특히 그만둘 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6개월은 만사 제치고 논다고 생각했지. 무진장 게을러지자고, 아무 강박관념 없이. 6개월은 완전 신나게 놀아보기로 작정했어.. 근데...
김- 잘 안되셨습니까?

정-쉬고 있는데 얼마 있다가 수사자료가 왔는데 이게 6000페이지짜리야. 그리고 재판시작을 하는데 놀 시간이 없더라구. 재판해야지, 수사기록 읽어야지. 워낙 내가 무시무시한 죄를 지었다고 엮어놔서.
김-수갑도 차셨죠?
정-아니. 수갑은 안찼어.
김-다행입니다.

79년도에 잡혀갈 땐 수갑을 수도 없이 찼지. 어쨌든 그래서 그만둔 뒤에 잘 못놀았어. 요새는 1주일에 한번씩 글쓰고 한겨레에 1달에 한번 글쓰고 대학모임이나 강연회에서 이야기해달래서 왔다갔다하고... 사장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정연주)


김-6000페이지나 되는 책. 독서 제대로 하셨네요.
정-집사람이 들여다보면서 고시공부하냐더군. 그 사건이 워낙 터무니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데 워낙 무시무시한 죄목을 걸어서. 그러니 법적으로 싸워 이겨야지 어떻게 해. 억울함, 분노 이런거... 말을 못하지. ( 이 대목에서 약간 말을 멈추며 감정 북받치는 듯....)
 

그런데 어디 내사건 뿐이야. 피디수첩, 미네르바. 무죄판결 나오는 거 갖고 판사들이 빨갱이다 어쩌구 하는데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가 무리였지.
무죄판결이 중요한게 아니야. 공소자체가 엉터리인데.
미네르바, 쇠고기 수입 비판한것. 언론이 비판기능 빼면 뭐가 남나. 내 사건도 KBS와 국세청이 세금문제로 송사한 것인데 당시 법원이 조정해서 끝난문제야.KBS는 자체적으로 변호사 자문받았고 국세청도 대검에서 지휘받았지. 결론적으로 법원 조정받아서 매듭지었고.


김-그렇죠. 배임을 드러내놓고 법원하고 같이 했다는 이야긴데... 법원하고 같이 하는 배임은 없죠? (웃음). 법원도 같이 기소당했어야 하는거네요.
정-법원이 조정안을 내놓을 때 국세청도 오케이했어. 결국 검찰도 당시 그 조정을 오케이 했다는 거쟎아. 자신들의 주장대로라면 배임에 동의한 꼴이지. 비상식의 껍질을 벗기니 별 희한한게 다 보이더군.
김-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미있네요. 그거갖고 소설 한번 써보시죠.
정-복잡하고 재미없어.

김-건 그렇고 불편한 질문 먼저 털고 가죠. 사장님도 당시엔 낙하산이란 비판 있었쟎아요.

정-그렇게 볼 수 있지. 그런 질문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

김-감사합니다. 요즘 이런 질문 안통하는데가 너무 많아요.
정-실제 많이 받았어요. 나도 그런질문.

노대통령하고 가치와 철학이 비슷한 사람이니까 코드인사일수 있지. 그런데 당시 내가 코드인사라 해서 조중동이 엄청 비판했어. 언론 이야기 하자면 조중동 언론으로서 일관성이 없쟎아. 지금 이뤄지는 인사는 코드인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직계친족 족벌인사쟎아.
암만 그래도 자기 캠프에 직접 들어와 일하던 사람을 앉히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를 비판했던 당시보다 훨씬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하쟎아. 언론이 아닌거지. 이념적으로 같은 진영이니까 봐준다는 것을 웅변하는 거지. (정연주)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KBS가서 자율권 엄청 확대해줬어. 창의력 발현할 수 있게. 워낙 우수한 후배들이다보니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 평가를 받는 방송을 만들었는데 정말 보람이었지. 

탐사보도팀 만들어서 맨처음 했던 작업이 고위공직자 검증이었어. 당시 고위공직자가 누구야. 정부여당이 80%지. 한나라당은 구색 맞추느라 들어갔고. 권력자들이 탐사보도팀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지. 우리 탐사보다팀 잘했어. 상도 많이 받고. 지금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김-그런 생각이 드네요. 가치를 공유하면서 비판하고 긴장하는 관계.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이 언론본연의기능이라는 말씀이시쟎아요. 그리고 사장님은 그 언론본연의 기능을 사수하려고 했고. 명령을 하달해 수행하는 집단이 되면 안된다는 이야기시고.. 그런 점에서 지금의 KBS와 차이점을 찾아야 된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노대통령한테 고마운게 있어. 노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안돼서 청와대 행사에 참석했는데 나한테 “제가 앞으로 대통령하는 동안 2명한테는 전화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더라고. KBS사장이랑 검찰총장이라면서. 가장 정치적 독립이 필요한 기관이라면서. 실제 그 약속 지켜줬어. 대통령이 전화한다면 압박감 안 느낄 수 없지 않겠어? 그부분 고맙게 생각하지.
돌아가실 때 보니 참 아이러니더군. 임기 내내 독립을 위해 애썼던 두 기관인 언론, 검찰. 결국 그 두 기관에 의해 죽음의 길을 가신거쟎아. 검언복합체. 검찰은 피의사실 전부 흘리고 언론은 받아서 튀기고 중계방송하고. 검언복합체... 우리 사회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지...한총리 사건도 마찬가지고...    (정연주)



김-사실 저같은 경우만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돌아가는 일에 대해 잘 모릅니다. 또 은연중에 검찰, 언론 이러면 자연인으로서 느끼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요즘은 좀 더 심해진 것 같구요. 왜 이렇게 더 밀어붙이고,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정-흔히들 검찰은 권력의 개다 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주종관계라는 의미인데 정확히는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동체죠. 정치권력과 동체. 검찰의 구성원 다수는 이 정권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집단입니다.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이익과 가치가 같은거죠. 조중동 검찰 공무원 다 마찬가지죠. 군부독재, 영남패권 40년동안 이 기득권이 권력을 누려왔죠. 오래 권좌에 있을 줄 알았는데 10년을 빼앗긴 겁니다. 그 기간을 견디기 힘드는 거죠.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권력향유를 못해 불편했던 10년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이들 기득권과 이해관계가 배치됐지요. 그러니 자신의 출세와 영달,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방어본능으로 죽이겠다고 달려든것이지요. 그들은 너무나도 달콤했던 권력을 위해 그렇게 처절하고 치열하게 달라들어서 다시 빼앗았죠. 그리고 장기집권을 위해 다시 치열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크게 웃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데요.. 제가 격하게 동의했다가는 일이 커질 것 같습니다. 전 제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세게 말해주셔도 괜찮구요. 어차피 사장님이 세게 하시는거지 저야 뭐. 우하하하.

그런데 저같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선 자꾸 불쾌합니다.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 어쩌구 하는데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10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뭐 그기간동안 아바타로 누워있었던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살았던 대다수 국민들에게 자꾸 잃어버린 10년 이러니까 기분 나빠요.(김제동)

 
그런데 사장님. 기억나세요? 러브레터 400회 특집.
그땐 제가 안 유명해서 잘 모르실텐데, 그때 사장님 구경 끝까지 다하고 가셨죠? 혼자 살짝 오셔서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앞에서 대놓고 이런말하기는 좀 그런데 전 그 때 사장님 보고 참 희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웬만하면 사장님이라고 여러명 데리고 뻑적지근하게 와서 구경하고 폼나게 격려하고 갔을텐데..
그때 사장님께서 저희들 대기실에 오셔서는 문을 조용히 열어 얼굴만 살짝 내밀어 보시더라구요. 처음엔 누군데 혼자와서 저렇게 슬쩍 쳐다보고 가지? 나가라고 할까? 했는데 나중에 사장님이래서 좀 놀랐어요.

정-난 정말 권위주의 싫어. 처음 갔더니 사장 차가 에쿠스더라구. 그게 3500CC지. 유가도 오르는데 그래서 그렌저로 바꿨는데 반대하더라구. 자동차라는게 아무것도 아닌데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잖어. 그게 다 권위주의 상징이야. 요란 떠는 거 싫어.
김-그렇게 보이세요. 그런데 한가지만 더 싫은소리 할께요.
정-괜찮아. 어디 한두번 들어본 것도 아닌데. 하하
김-아니, 너무 편하게 여러번 만났더니 제가 자꾸 실수하게 돼요. 계신 듯 안계신 듯 해서.작꾸 다리도 꼬고, 기대고, 너무 편해서 실수할까 걱정이네요. 그런데 제가 2006년 연예대상 받았는데 사장님때 받았어요.
정-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한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김-당연하죠. 저 그때 사장님 했던 말 다 기억나요.


시상자 발표하러 무대에 올라가는데 20분 전쯤에 봉투를 받았어요. 뜯어보고 싶었는데 참았지...시상식을 즐기고 싶어서. 그런데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 계단 오르면서 뜯어봤어요. 이름이 김제동 이라고 써있더라구. 어떻게 재미있게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이름 부르기 직전에 드럼을 막 치쟎아. 그래서 갑자기 생각나서 말했지. 나처럼 눈이 작은 김제동씨. (정연주)


김-당연히 기억나죠. 그런데 사장님 아세요? 금방 두팔로 드럼치는 흉내내면서 ...완전히 애같으세요. 하하. 뵐때마다 느끼는건데 인상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아서. 힘든 일 많이 겪으셨을 텐데 언제나 편안하고 밝은 어린이같은 표정이에요.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정-성격은 좀 낙천적인 편이에요. 자고 나면 감정정리가 빠르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것. 난 우리나라 희망을 젊은 사람들에게서 봐요. 일부에서 20, 30대를 규정지으려고 하는데 그런 규정 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어요. 젊음의 특징은 무정형이고 그건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지요.
어제 대학에서 강연이 있어서 갔어요. 하면서 김제동씨 이야기 한참 하고 내일 만날거라 얘기했더니 학생중 하나가 그러더라고. 자기는 성공회대학 사회학과 10학번인데 김제동씨 왜 학교 안오냐고.


김-앗, 사장님 전 신문방송학과예요. 그리고 아직 수강신청도 다 안끝났는데...
그리고 그 부분 해명좀 해야겠습니다. 학교가는 것도 안가는 것도 희한하게 구설수에 오르는데.. 안가면 연예인이니 저럴 줄 알았다고, 또 학교 자주 가면 “요새 일 없느냐”고 물어봐요. 실제로 별로 일이 없긴 하지만. 적당히 잘 조절하는게 힘들어요. 하하.

정-2008년 촛불을 생각하면 저항도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의 잔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지. 여러가지 이유로, 특히 경직된 깃발이 나오면서 촛불이 사그러들었지만 어쨌든 요즘시대에 투쟁의식와 정교한 이론을 갖고 투쟁할 때는 아니쟎아요. 그저 신명나게, 젊은이들의 버전과 방식대로 해줬으면 해요.


요즘 강의 가면 그런 이야기 많이해요. 젊은이들의 방식대로 운동법을 만들어라. 예를 들어 나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으로 애인 손 붙잡고 투표장 가기, 투표하고 오는 애인 뽀뽀 해주기 이런 식으로 말예요. (정연주)


김- 좋죠. 투표하는 행위가 중요한거죠. 누구를 뽑으라는게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적인 행위를 하라는 것. 정치보다 자아실현의 행위를 하라는 거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으세요? 해직기자 출신이신데 그 때 했던 구호들을 보니까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이런 말이 있던데 요즘 들으면 조금 멀리 들리기도 해요. 그런 결기어림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하죠. 내가 그런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무릎 꿇는 척하고 한쪽 다리 살짝 들고 편하게 살면 어떨까... 이런 유혹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정-요즘 세대가 취직, 등록금문제 등 어려운 점도 많지만 축복받은 세대이긴 하죠. 유신 때와는 다르고. 지금 거꾸로 간다고 해도 유신 때처럼 가는 것은 아니쟎아요.
김-그때로 가면 큰일이죠. 그렇게 갔으면 아마 사장님이랑 저랑 지하실에서 둘이 만나고 있겠죠. 우하하하하.
정-우리 때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받을 때가 많았어요. 중간이 없었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고.. 참 비극적이었어. 지금은 그 정도 처절한 것은 아니지. 개인단위에서 할 수 있는게 참 많쟎아. 트위터도 인터넷도.
김-지금 트위터에 글 올리면 몇십만명이 한꺼번에 봐요. 특히 저 안경벗고 찍은 사진 올리면 조회수 급격히 올라갑니다. 그럼 있다가 같이 안경벗고 사진찍어 올려볼까요? 그나저나 사장님에게 쏟아지는 질문이 정말 많네요.

정-지금은 건강한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고 참여하면 바꿀 수 있는 세상이죠.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기술도 뒷받침 됐고. 그런데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영악하게 가는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까워요. 
얼마든지 자기 꿈을좇아서 가면 좋겠는데 단번에 평생 편해질 생각들을 많이 하죠. 고시에 지나치게 몰리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되면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집단이 되기 쉬워요. 


저도 요즘 젊은이들과 대하다보면 내가 기득권이 되어버렸다고 느낍니다. 내가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면서 기득권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의 편에서 이야기할 자격이 되는가.. 하고 자괴심이 들때도 있어요.
해외갈 땐 비즈니스 타고, 아침엔 매니저가 승용차 갖고와서 대기하고 사고 싶은거 사고 넓은 집에 살면서 누리고 있는데 그저 허공에 대고 입바른 소리만 해대면서 내 양심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고민이 끊임없이 듭니다. 조언좀 해주십시오. (김제동)


 
정-그게 심하게 말하면 강남좌파지.. 하하

김-지금 저보고 좌파라고 하셨습니까? 

정-얼마나 큰 집에 살고 뭘 누리고 사느냐가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진실되게 사느냐의 문제지. 난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잘못돼 있는 대표적인 것의 핵심이 물질적 축복주의라고 봐요.
강남 목사님들은 하나님 잘 믿어서 물질축복 받았다고 이야기해. 그런데 다른 목사님들은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거든. 그만큼 어려운 사람 입장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쉽지 않쟎아.
얼마를 가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부, 명예, 영향력... 이런 것들을 얼마만큼 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느냐, 실제 베풀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거지.

김-사실 기부할때마다.. 좀 아깝기는 합니다. 아니, 좀 행복하기도 하고. 우하하 그냥 웃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요즘 사회 환경을 보면 젊은 이들에게 채무감은 느껴요. 무상급식이든 등록금이든 결국 인간답게 살아가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어른들 책임인데 지금 나라가 나가는 방향이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느냐고 묻고 싶어요. 그런 쪽으로 간다면 젊은이에게 희망이 보이겠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안해 해야 합니다. 4대강 사업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전에 복지에 대해 판을 많이 깔아놨는데 후퇴하고 있쟎아. 예산이 없으니까. 복지라는게 망가지면 사회안전망도 무너지고 평등의 문제도 뒷걸음질치지.
이런 세월을 겪고 난 뒤 국민들이 교육과 경험을 많이 쌓아서 다음 선거 때는 내 삶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지금의 시간이 역사의 축복이 되겠지. 역설적으로..  자연은 그대로 둬야하는데... (정연주)



김-제가 예전에 전파견문록이라는 프로그램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아이가 나와서 단어 맞추기 퀴즈를 하는데 힌트를 주더라고요 “자연스러울 수 없는것” 그게 뭘까요? 정답이 자연이었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 없는 거죠. 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나서요.

정-아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담은 정말 놀라워요
김-제가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에 책도 보내주고 아이들 일기 등을 담은 문집을 받아보기도 하는데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여름에 일기를 썼어요. 너무 덥다. 말라 죽을 뻔 했다. (폭소, 박장대소). 덥다는 표현을 이렇게 간결하고 솔직 담백하게 표현할 길이 또 있겠습니가.

정-사석에서 보는 게... 전에 노무현재단 출범하고 성공회대학에서 음악회 하던 날이었죠. 그때 제동씨 스타골든벨 하차통고 받은 날. 내가 그날 만나서 이야기했쟎아. 노대통령 노제하고 여기까지 오면 불이익 있을텐데 그랬더니 괜찮습니다.. 그랬쟎아. 그런데 바로 몇 시간 후 스타골든벨 잘렸어.

김-괜찮습니다. 전 오히려 진행자로서의 제 자질에 대해 반성해보는 계기로 삼자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인간의 도리로서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이 꽃을 바치면 전 대신 제가 바칠 수 있는 마이크를 바친거죠. 우리 학교에 손님들이 오셨으면 학생으로 가서 의자를 깔 수도 있는 거고.
노 전대통령과 제 어머니의 인연은 여러차례 말했는데 우리 엄마한테 잘해준 최초의 국가공무원이죠. 유일하게. 만약 선거기간이었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당선인 시절에 그 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던 분이니까. 거기엔 어떤 정치적 이유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되니 너무 피곤하고 힘든거죠. (김제동)


김-꼭 여쭤보고 싶은 거는 만약에. 임기가 보장돼 있는 사장제 인데. 다음에 이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이 성향 다른 정권에서 이 일을 한다면 성향에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하나요?

정=-그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지. 독립성 요구되는 기구면 기구일수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또 어떤 정권에서든 대통령 아웃 하는 거는 찬성하지 않아. 국민이 뽑았으니까 임기는 보장하고 심판은 다음번 선거에 하면 되는 거거든.
직선제 이전 체육관 행사하고는 다르지. 직접 선거해서 뽑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되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임기는 보장해야 해.

김제동 씨. 우여곡절 겪고 있는 편인데. 올해 내가 65세야. 평생을 살아온 내 궤적을보면 내가 동아일보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감옥가고 미국가고 한겨레 특파원, KBS 일련의 과정 지내놓고 봤더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경험은 다 소중하고 하나 버릴게 없더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이 좋아. 허투루 버릴게 하나도 없다는거지. 그 선택이 고난을 주고 빵살이도 하게했지만 그런 선택에 대해 후회도 않고 그 뒤에 되어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적당히 타협해서 남아 있으면 평범한 기자로 끝났을 거야. 김제동씨도 지금이 하늘의 축복, 역사의 축복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토크쇼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만드는 거지.

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실제로도 다 매진이잖아. 축복이라니까. 
김-어떤 분은 탄압마케팅이 성공했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저 때문에 재보선졌다고 하는 분도 있고. 전 그날 등산갔는데 완전히 나비효과도 아니고 참, 나...
정-아냐, 나비효과야. 심야 토크쇼 하는 미국 사람들. 데이빗 레터맨. 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실력닦은 사람이지. 빌코스비도 마찬가지고. 거기서 청중들과 마주하면서 닦아놓은 실력이 나타나서 계속 가는 건데 지금 토크 콘서트 하면서 앞으로 엄청난 자양분 될거야. 
김-정말 많이 배워요. 관객들에게. 이야기로만 두시간 반 하는건데 다행히 많이 웃어주시고. 요즘 들어서 진짜 사람들에게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요.
정-축복이지, 역사의 복.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영역을 만든 것이고. 이젠 트위터로 개인혁명이 가능해졌잖아요. 나라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적이고. 기존매체 90%가 정권친화적인 언론환경인데 과거와 같은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도 아니잖아요.

김-트위터에 올라온 질문들이 있는데 소개해 볼게요. 시청자가 주주되어 방송국 만든다면 초대 사장직 수락할 생각있나요?
정-글쎄. 나에게는 안맞는것 같아요. 나는 완전히 자유인이 되기로 작정했어. 글쓰고 발언하는 것이 내 역할이야. 열린매체에서 방송을 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국민주를 하면 충분히 호응도 있고. 
김-좀 까칠한 질문인데요. 자녀의 군대문제와 관련한 의혹에 대한 질문이 있네요.
정-글을 통해 언젠가는 밝힐 때가 있을 건데... 80년 5·18때  1년간 수배돼 도망다녔지. 우리 큰형이 67년에 미국에 갔는데 장남이면서 한국에 한번도 안왔었어. 막내인 나는 감옥 들락거리고. 
그런 상황에서 형이 부모님을 초청해서 이듬해 부모님이 미국으로 갔어요. 난 부모님 떠나는 것 못 뵈었지. 그런데 부모님이 나보고 미국으로 오래요. 여기서 할 것도 없고. 그런데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학밖에 없더라고. 그거 아니면 여권도 안나오고.
우여곡절 끝에 82년에 미국을 갔는데 미국 가기 몇 달 전에 2주 간격으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 부모님 묘소에 절이라도 하러 간다는 심정으로 갔지. 내가 그때 유학갈 때 추천서 써주고 도움준 사람이 정운찬 총리예요. 여튼 그때 여기서 살던 뿌리를 뽑아서 미국으로 갔지. 18년 살았으니까.
애들도 학교다니기 전에 미국 간건데 거기서 대학원까지 다 졸업할 나이가 된거지. 내가 후에 한국 간다니까 아이들은 그냥 미국에 남겠다고 해서 안 따라왔지. 그게 전부예요. 결국 미국에 살면서 미국 시민권 받아 군대가 면제된 거지. 그런데 결과적으로 군대를 안 간 거고 우리나라 일반정서로는 거부감 느끼고 싫어할 거예요. 이해하지. 내 말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고.

김-전 뒷목 잡고 혈압 상승하는 느낌 받을 때가 많은데 수도 없이 그런일 겪으셨잖아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나요.

정-날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나 정말 열 잘 안받아. 하루 자면 다 잊어버리고.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한 맺힌게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방송이 정권에 봉사하는 거은 극복되어야 해요.
다시 기자로 돌아가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은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 끊임없이 기억하고 반면교사 삼고, 개인적인 한 차원은 아니고 울분으로 그런 것도 아녜요.

요즘은 굉장히 자유롭고 편안해. 내가 차몰고 여행다니는 것 너무 좋아하는데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런데 퇴직 후 가장 안 좋은 금단현상은 후배 못만나는 거지. 맨날 지 수준의 할배들만 만나니까.


김-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현정이 누나네 모여서 마셨는데 아이고 참...  샴페인이랑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완전 섞어서 먹었습니다. 
정-나도 요즘은 자제해요.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안마시지.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안나. 

김-저도 그래요. 큰일 났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미실이 마시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혹시 <여배우들>이란 영화 보셨습니까? 제가 그거 못봤다고 했더니 누나가 다시는 놀러오지 말라고, 아주 혼났어요. 



<여배우들> 난 봤는데 정말 눈물나더라고. 이미숙, 윤여정, 그 배우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이야기하잖아. 진짜 눈물 나던데. 그리고 하이킥도 진짜 눈물나. 시트콤이 어떻게 그렇게 슬플수 있을까. 빵꾸똥꾸 말썽난 뒤에 1회부터 100회까지 다 봤는데 어쩜 우리사회의 계급문제, 학벌문제를 그렇게 슬프고 절절하게 그릴수 있을까 싶었지. 해리보고 정신분열증이라고 한 현실은 정말 처절한 시트콤이고. (정연주)


김-전 어떤 이름이 그렇게 특정 대상을 향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정의를 내리는것을 보면 너무 좋아요. 
정-나 어릴때 연지곤지라고 놀림받았는데 빵꾸똥꾸 듣고 연지곤지로 아이디를 바꿔볼까 생각했어요. 내 아이디가 완전한 자유인인데.
김-필명을 완자로 바꾸는게 어떨까요. 이미지도 어울리시는데. 귀엽잖아요. 완자. 동글동글하고. 전 꼬요예요. 재석이 형이 옷 못입는다고 놀려서 지은 말요. 서래마을 꼬마요정.
정-나도 방배동 사는데. 
김-그럼 완자랑 꼬요랑 한번 만나실까요?
정-그래요. 거기 재미있는 사람들 많이 살아. 제동씨도 그 자리에 와야겠네.

김-사장님 한테 재미있는 질문이 계속 올라오는데요. 아굴연피모임? 이게 뭐죠. 

정-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피해자 모임. MB정권에서 기소돼 무죄판결 받은 사람. 여기 한총리도 넣어줘야지.


정리: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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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아, <전원일기> 둘째 아들이 왜 양복을 입고 뉴스에 튀어 나오노?”
 
팔순을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벌써 2년 전이다. 정치가 뭔지, 장관이 어떤 자리인지 모르시는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초기 취임 때부터 대중의 눈길을 모았다. 최초의 연기자 출신 장관, 이 대통령과의 두터운 친분 등. 특히 산하기관장들을 향한 발언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얼마전 역대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유 장관. 연기자와 장관 그 사이의 간극은 어떠한 지, 장관직을 그만두면 다시 연기자가 될 지, 문화예술위원회나 한국작가회의 등 최근의 논란 해결 방안 등 묻고 싶은게 많았다. 물론 장관이라는 공적 자리로 인해 발언에 한계가 있겠지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2010년 3월 3일 김제동씨가 서울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옆 공원에서
유인촌 장관을 만나 담소하고 있다. /경향신문 김창길 기자



-인기있는 연기자로 오래 활동하셨는데 연기자와 장관, 차이는 뭐고, 그 둘 사이가 어떠십니까.

“어떤 일 한 뒤 그 일에 계속 빠져있으면 다음의 새로운 일 하기 어렵죠. 드라마 할때 왕을 했다고 이후에도 왕으로 착각하면 일이 안될 수밖에 없잖아요. 연기자때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않을 수도 있는 선택 폭이 넒었지요.
그런데 이 일은 꽉 짜여져 있고 조직이 정리가 돼있고, 주어진 시간 안에 해야 합니다. 내 개인의 판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죠. 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했을 때 많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말 무거운 일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점도 있지만 아니에요. 그래서 그때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높여야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나는 괴롭지. 마음속에서.”
 
-진부한 질문이지만 솔직히 가장 궁금한 것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요.
 
“행복, 개인적 행복감으로는 옛날에 드라마하고, 연극할 때가 행복했어요. 지금 일은 행복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오히려 먼 미래의 행복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성취감이 꽤 클 것 아닙니까.

 
“성취감은 있죠. 평소 생각했던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성취감이죠.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의 삶의 질과 관계가 깊은 것이기 때문이니까.”
 
-문화부 장관 2년으로 역대 최장수 기록을 가지셨습니다. 취임후 지금까지 ‘내가 이 정책은 정말 잘했다’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판단하면서 잘했다 하는 게 어딨어. 하하하”
 
-그래도, 성취감을 느낀 정책이라도.
 
“지금 나보고 ‘너 어떠냐’하면 늘 모자란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다 차 있다면 열심히 할 수 없잖아요. 제동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모자란 게 있을 수밖에 없으니 계속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죠. 아직 진행형인 것들이 많아, 정책의 효과가 나오자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딱 집어 얘기하기가 쉽지않아요.”

“다만 저작권 보호 문제는 잘 한 것같습니다. 제동씨는 노래를 안 하니 잘 모를 건데, 가요계나 영화계는 잘 알 겁니다. 2년동안 저작권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노력했죠. 창작물 보호를 위해 법도 바꾸고, 단속도 많이했어요. 우리가 영화를 찍고 나면 티켓만 팔고 부가 수입은 별로 없지요. 그게 다 저작권 보호를 못해서에요. 복제물로 똥값이 되니까요.”





“작년에는 우리나라가 저작권 감시대상국에서 해제됐죠. 미 스티븐스 대사도 축하한다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물론 해제됐다는 것 자체가 남의 나라에서 해제했다니 그리 좋아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남의 창작물을 도둑질하는 나라라는 딱지가 떨어진 거예요. 우리나라 국격도 올라가는 것이죠. 저작권을 잘 알지 못해 느닷없이 범죄자가 되는 청소년들이 안타까웠는데, 이도 개선됐어요.
제가 계속 괴로웠던 게 청소년들 문제였거든요. 저작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고 또 올리고, 블로그에 올리고 하면서 그것만 찾는 로펌 있었잖아요 왜. 단속들을 심하게 하니까 무더기로 백만원씩 벌금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랬죠. 그러니까 방법이 있나요. 학교 과목에 아예 넣어 교육도 시키기로 했고, 또 3번 걸려야 법적처리를 하도록 정리됐죠.
한글박물관 추진, 대사전 발간 등 한글 활성화에도 꽤 애썼어요. 효과는 좀 있으면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학교체육 관련 등은 진행중이에요.”
 

저작권 보호 등의 일부는 ‘인터넷 재갈 물리기’ 등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터넷상의 글들이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많은데 역기능만을 강조해 여론을 통제한다는 비판이었다.
인터넷 실명제 등과 맞물리면서 실제 네티즌들은 반발, 외국 서버로 옮겨가기도 했다. 유 장관은 ‘인터넷 재갈’에 대해 “정치적 해석”이라고 강조한다.


 
“따지고 보면 상대적인 이야기라고 봐요. 인터넷에 재갈 물린다, 아고라에 재갈 물린다 별 소리가 다 나왔죠. 본질과 달리 정치적 공격을 한 것입니다. 순수하게 창작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네티즌을 어떻게 하거나 인터넷 장악하고, 그런 거는 할수도 없는 일이에요. 또 그게 어떻게 되기나 하겠습니까. 촛불시위 때 집에도 못가고, 사무실에 있다보니 인터넷으로 모조리 중계가 되더라고요. 그때 지상파 방송, 무슨 의미 있나 싶더라구요.
미디어법을 바꿀 때도 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세 지상파 방송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디지털화되면서 다양하게 바뀌어가는 과정인데 여론 장악 등을 이야기 하잖아요. 사실 그런 의도와는 관계가 없는 거거든요.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일 뿐이거든요.”

사실 우리 인터넷 문화 자체가 우리는 좀 독특하죠. 지금은 뭐 누구도 못 말려요. 조금만 규제하거나 뭘 하면 벌써 반발도 센데 나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벌써 여러 사람 죽었잖아요.
한때 정보 통신이 국가의 경쟁력이다 해서 여기에 집중 투자한 적이 있죠. 그런데 왜 인터넷 사용 문화에 대해서는 같이 못갈까요. 우리나라의 발전과 경제 발전, 사회 발전과 문화가 그만큼 못 쫓아오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모든 게 기술 중심으로 가니까 사람은 빠지게 된 겁니다. 불특정 다수에 정보를 주거나 소식을 올릴 때는 남을 좀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하지않나요.”

-악플 문제도 있지만, 민간에선 선플을 달아서 칭찬해주자하는 캠페인도 있습니다. 민간의 자율정화 기능 있으니 좀 풀어놓아야 한다는 얘기도 많은데요. 좋은 여론을 형성해서 사회의 순기능을 하는 거죠. 너무 한 부분만 부각하면 아무래도 반발이 있을 수 있죠.
인터넷의 순기능, 역기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대적이죠. 당연히 순기능, 역기능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같이 고쳐나갈 생각을 않는다는 거에요.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순기능을 강조하는 측은 순기능만을, 역기능쪽은 역기능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다보니 싸움이 되는 겁니다. 싸움이 아니라 토론이 잘 되도록 해야합니다.”
 
-순기능, 역기능 다 놓고 토론할 준비 돼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장관으로 지난 2년간 활동 중에 이건 좀 후회가 된다. 솔직히 이거는 실수가 있었다 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실수야 늘 생기죠. 계속 실수의 연속이죠 지금도. 나도 좀 성질이 좀 급한 편이기도 하고.
2년 있으면서 아직 예술가들이 뭔가 즐거움 갖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은 내게 아직도 짐이에요. 운동선수들이 열악하게 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좋은 정책은 결과 나올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먼 미래를 위해 세우는 좋은 정책,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하려고 하면 당장 당사자들, 그것도 소수 사람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있죠.

대중을 위한 좋은 정책인데 박수를 못 받기도 하더라고요. 몇 사람들의 반발 때문에요. 그런 정책들을 끝까지 만들어가자면 정말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수했다는 개념보다 내 의도와 다르게 너무 많이 이야기가 되어진 부분들이 많아요.
미디어법 바꿀 때 부처 입장에서 미래 시대의 콘텐츠를 얹을 새로운 플랫폼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복잡했죠. 아바타 3D를 이야기하는 건데, 미디어 규제하고 통제하고 이런 부분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건데….”
 
“요새 또 시끄럽잖아요. 문화예술위 문제…. 하지만 그런 건 실수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실수라면 이상한 표현이죠. 그런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 못한 것은 잘못이죠. 아직도 그런 갈등이 잠재된 것이니까.”
 
-기본적으로 갈등은 안 일어날 수는 없는 거죠. 장관께서 말씀하신 미디어법도 반발하는 사람들을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설득하든지, 완벽하게 이해되도록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완벽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해의 소지도 있다고?
 
“완벽한 오해도, 오해 소지가 있는 것도 있고, 딱잘라서 말하기 어려워요. 왜냐. 어떤 문제 생겼을 때 언론에 정반대의 기사들이 납니다.
나는 이 부분도 아직 과도기라서 그렇다고 봐요. 지금 선진국 문턱에 있잖아요.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변화하다보니 우리사회는 갈등이 많습니다. 이념에 따라, 진보다 보수다 하면서 말이죠. 짧은 시간에 나라가 많이 변화하니 못 쫓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봐요. 2만불 시대에 아직 못 가고 있는데, 이 문턱의 홍역같은 거라고 봐요. 지금 2010년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정부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잘 정리하고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봅니다.”
 

유 장관은 “내가 맡은 분야는 정말 내가 있는 동안 최대한 노력해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관광만 해도 경제 쪽으로 들여다봐도 되지만 예술, 체육은 경제논리로 안 되고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당장 예술위원회 문제, 영화진흥위원회 문제, 그런 거 하나 제대로 처리못한 게 내 잘못이죠. 우리 산하기관이고, 한번 잘 되짚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잘해야지, 잘못하면 또 사방에서 깨져요. 나는 마음 비우고 언제든 양보할 자세 돼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거고, 누구나 만날 겁니다.”

 
-문화의 본질은 이데올로기와 멀어야 한다고 하셨던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는 좌우 구분없이 오로지 웃기는 게 목적입니다. 예술도 어떤 작품이든 공감을 받게 해야 하고, 예술이 이념을 통합시키는 기능도 있잖습니까. 역대 문화부 장관들은 정치색이 덜한 편이었죠.
그런데 장관께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유난히 ‘정치적 인물’로 세간에 오르내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정부가 바뀌면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봅니다. 사실 문화부 장관에는 그동안 대부분 정치인들이 왔습니다. 이어령 장관, 참여정부 시절 김명곤·이창동 장관 정도가 정치인 아니었지요.
제 행동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겠죠. 하지만 정치적 일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보여진 거죠. 굉장히 포장이 또 된 거고요.”
 
“산하기관장들의 퇴임 문제도 그렇습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언론인들 모임에 첫 공개강연 가서 향후 문화부 운용 등을 이야기했었죠. 한달도 채 못됐을 때에요. 광화문 포럼이 언론인 모임이고 원로 언론인도 많잖아요. 그동안 과정과 앞으로 어떻게 하고프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강연도 재밌게 됐죠. 다 같이 박수 치고 즐겁게 했는데….
그런데 문화예술 이야기는 언론에 한 줄도 안나오고, 마지막에 질문 받자 해서 한 질의 내용에 짤막하게 대답한 것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더라고요. 정부가 바뀌었으니 같이 일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본인들이 자진해서 나갈 거다라는 식으로.
문화예술계는 자존심 있어서 있으라 해도 안있을 거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게 물러나라, 이렇게 나왔더라고요. 그렇게 기사가 나니까 반대 기사 나오고, 서로 더 센 기사가 나오고…. 인터넷에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한번 수렁에 빠지면 계속 싸움이 되더군요. 통제가 안 되더라고요.”





“실제로 일하면서 정치적으로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현장에서 편파지원했다 이런 이야기는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난 정권에서 예술계에서는 편파 지원 문제가 문제였거든요. 말하자면 보수 단체들은 아무도 지원 않고 진보단체만 줬다는 거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오면서 그런 이야기들은 없앴어요. 그럼 정치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지 않나요.”
 

유 장관은 취임 당시 산하기관장들을 만나 “새 정부가 새 정책 갖고 새롭게 나가니까 맞춰달라. 나를 도와달라. 잘 해 나가자”고 했으나 “그렇게는 못하지”하는 기관장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있으나 “자꾸 쪼잔해지는 것같아”서 “이야기를 줄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과거 자신이 약자로서 피해를 봤던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저도 과거에 극단 갖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잘려봤어요. [역사스페셜]하면서 하루아침에도 잘려 봤고요. 그때도 네티즌들이 난리 났었죠. 1년을 데모했었나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새로 못 만드니 다시 만들어주마 약속하고 시청자위에 제소해서 다시 만들었는데 고두심씨를 썼죠.
연극할 때도 문화예술위에서 한푼도 지원받은 적 없어요. 그래도 한번도 불평 안했던 사람이에요, 나. 편파, 편가르기 이런 이야기는 안 했어요. 그 정도로 받아들였어요. 나는 수입이 그래도 있으니 더 어려운 사람을 줘라 하면서요.”


 

방송연예계 선배로서 유 장관은 나에게 조언도 했다. “지난 번에 너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데 속상하더라”라며. “딱지가 붙으면 곤란하다. 요기까지가 딱 좋다”고.
유 장관은 “예전 연예인 같은 기분으로 장관하면, 누구나 날 좋아할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이런 자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은 이미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50%있다고 보면 된다. 연예인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다. 정치는 그런 것이더라. 정치라는 게 여가 있고, 야가 있고, 분명히 편이 갈라진 부분이 있어 이쪽 저쪽 다 인기끌기는 안되더라”고도 말했다.


 
-장관은 의도와 달리 정치적 문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무위원이시니까. 장관이 가장 강자로 보이니까 반드시 반동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 공격도 일정부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문화예술가들에게 나도 현장에 있어본 사람이니까 문제가 있으면 직접 와라, 국회의원에게 로비하거나 윗사람 로비해서 하지 말고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많은 의원들에게 예술가들이 청탁하고 다닙니다. 의원들도 힘들어요. 유권자에게 약할 수밖에 없고, 유권자가 부탁하는데 안 도와줄 수도 없고. 지방 영화제, 축제, 국제 공연제 뭐 이런 것들 많이 있죠.
현장 예술가로서 와 있는 사람이기에 전 다 들어요. 나는 늘 현장에 있으려고 애쓰고, 항상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어요. 문제가 있으면 어느 정도라도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치적으로)돌고 돌면 현장의 룰이 다 흐트러지죠.”
 

유 장관은 “높은 자리에 계시지 않느냐”는 물음에 “높은 자리가 아니라 3D업종이다. 하고픈 이야기도 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화예술계 그 누구와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다만 비판도 성공을 위한 비판이 중요하지 ‘너 죽어라’하며 무작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 장관은 작가회의 문제에 대해서는 “방법이 잘못됐다”고 단언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노발대발했어요. 나는 그거는 좌다 우다 할 게 아니라는 거죠. 예술을 도구로 쓰면 예술이 안 됩니다.
사회주의에서 예술은 도구로 쓰이기 때문에, 체제,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목적을 갖고 쓰이기 위해 예술로서 값어치가 없어요. 예술가가 그린 그림으로 선동, 찬양하면 누가 감동받겠습니까. 의미가 없다고요. 그런 잣대로 재단하면 안 되죠. 나라고 해도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작가회의 쪽을 만날 계획은 있으신지.

 
“사실 내가 정말 많이 만나고 다닙니다. 장관이라고 뭐 체면 따지고 명예 따지고 하는 것 없습니다. 만나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할 수도 있어요. 언제라도 또 만날 사람들이잖아요.”
 
-현장에 있다가 장관직으로 일하시면, 말하자면 큰 집으로 이사 오신 셈이니까 큰 물줄기를 합치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위에서 이쪽도 인정하고 저쪽도 인정하고 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지금은 내가 정부를 움직여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폭넓게 할 수 있죠. 정말 상대적으로 넓게 열면 거기 같이 들어와서 같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정부 출범 후 같이 가자고 이야기 많이 했죠.
그럼 반대를 말아야지. 비판도 성공을 위한 비판을 해야지, 너 죽으라 이야기하면 잘 모르겠어요. 한마디 워딩부터 글 하나 쓰는 것부터 사람을 송곳으로 쑤시면서 후벼파는 사람들 많아요. 대단한 분들이 많아서….”
 
-앞으로 꼭 해야겠다는 일이 있으신지.
 
“예술가 문제는 끊임없는 숙제예요. 현장에 나도 있었고. 어차피 수익구조 가진 데가 아니어서 예술가들이 최소한 창작을 위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든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국민들께는 문화 향수 기회를 더 넓혀야지요. 서울까지 안와도 충분히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말이죠. 문화예술로는 균등하게 실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게 해야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단위사업쪽으로는 지자체에 맡기고, 문화부는 국제적으로 나갈 생각입니다. 해외에 예술가들이 가서 알리고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관광은 참 할 게 많아요. 인프라도 해야 하고 교통, 쇼핑, 호텔, 음식… 하여간 관광이 총 집합체죠.
문화에서 안 들어가는 게 없으니까요. 체육의 경우 학교체육은 그런대로 진행중입니다. 생활체육이 개선이 요구됩니다. 엘리트 체육은 국가가 지원해서 궤도에 올랐죠. 그러니까 금메달을 따죠”
 
-장관직을 그만두면, 연기자 복귀 계획있으신지. 사실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10여년 전에 극단과 극장을 만들때는 방송, 영화 쪽은 이미 생각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연극은 아마 가끔 할 수 있을 것같아요.
만약 방송이나 영화를 하게 되면 완전히 늙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연기할 필요 없는 나이가 됐을 때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 생각을 해보기는 했죠. 분장이 전혀 필요없고 이빨 다 빠지고 했을 때, 오래 산다면 75세 이후에 가만히만 앉아있어도 연기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됐을 때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봤는데. 허허. 그 전에는 연극 쪽 후배들 뒷바라지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사실 정말 정치 바람 잘못 타지 말아요. 나는 뭐 이미 버린 몸이죠. 그렇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소리를 안 하는 거예요.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면 일을 올바르게 못하니까요. 내가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놓고 하려하면 비위 맞춰서 하게 되죠. 난 그저 올바르게 해야겠다는 거고, 좌우 이런 거 없어요. 나쁜 건 나쁜 거고 그런 거지 뭐.”
 
-정부·정권·정치를 비판하는 코미디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힘 있는 곳이 코미디의 소재되는 것은 정상이라고 봅니다만.
 
“어느 사회든 풍자가 되지요. 조선시대 남사당이 뭘 풍자했습니까. 정치, 종교를 풍자하고 했잖아요. 결국 해학, 해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음~. 공격이 아니라 해학요.
 
“예술의 역할이 그런거죠. 예술가가 길거리 뛰지 말고 작품으로 말하는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나는 늘 누구나 재밌게 웃을 수 있는, 정치코미디를 하고 싶다.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구분없이 오로지 웃기는 게 목적이다라는 생각이다. 좌우 가리지 않고 웃음 소재만 되면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 콘서트 하면서 사람들 만날 생각이다. 권력, 권력자, 힘 있는 것을 웃음 소재로 삼을 수 있고, 또 이야기되어 진다면 그것이 진정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정리/이고은 기자 freetr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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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원참 2012.01.31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언제적 기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읽었습니다.
    유인촌...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닌다는 말 밖에 할수가 없네요.
    일국의 문화를 관장하고 계신분께서(지금도 청와데에 계신다지요?) 그 발언의 진실성과 진정성,그리고 실천의 실체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케무샤/ 완장/ 아바타/ 꺼삐딴 류/ ....
    자기의 삶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생각나네.
    "아.씨발. 열뻗쳐서..."

격주로 만나는 <김제동의 똑똑똑>. 

지면이 짧아 아쉬우셨죠? 지면에 마저 다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마음껏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먼저 올해 2월 26일자에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 이외수씨와의 정다운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두 분의 만남은 2010년 2월 23일 화천에 자리한 소설가 이외수씨의 감성마을에서 이뤄졌습니다.


경향신문 2010.2.26 



‘별’을 보러 갔다. 밤길을 달려 강원도 화천땅으로 갔다.
가는 길에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하늘엔 별, 화천땅에는 이외수가 있다’라고.
‘함께 가자’, 순식간에 팔로어-댓글 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랬다. 젊은시절 젓가락을 던져 벽에 꽂고, 몇날 며칠 잠도 안자고 술을 마셨다는, 잘 씻지도 않았다는 기인. 방송 때문에 스치듯 뵌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마주앉아 보고 싶었다. 김태원, 김C, 윤도현 형이 ‘싸부’로 모신다고 자랑할 때 ‘나도 끼워줘’라고 칭얼댔다. 나에게 소설가 이외수는 마치 ‘담을 없앤 한옥’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그랬다.

 


사진 정지윤기자


- 트위터에 선생님께 질문할 것을 올려놓으면, ‘꽃씨 옮기듯 옮기겠다’고 했더니 질문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꽃씨 옮기듯 옮긴다고?! 완전 시인이네.
내가 처음 트위터에 한 줄 올리자 1만명이 들어왔어요. 1트윗 1만 팔로어. 트위터계의 신화지.
엊그제 미장원 갔다온 사진 찍어서 올리면서 농담으로 ‘드디어 김태원 CF를 뺏어오게 됐다’고 썼지.
김태원씨가 TV에 나가기 전에는 여기 와서 술도 많이 마셨어요.  부활, 그 친구들 아주 순수하더라고.”

-태원이 형도 술 끊으셨다. 왜 끊었냐고 했더니 “하, 술을 먹으면 술을 못 쉬겠어”라고 하더라구요. 숨을 못 쉬겠어가 아니었다. 한 경지에 이르렀다. 근데 어떻게 술을 끊으셨나요.
계속 마시면 죽겠더라구. 거의 원없이는 마셨어. 생각이 안 나는 것을 보면. 알코올 중독으로 13년 고생을 했었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게 7년 전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사전 MC로 장내 정리를 할 때였어요.
선생님, 어렸을 때 체구가 외소해 사람들이 괴롭히면 젓가락을 표창처럼 던져서 달력에 꽂히도록 하셨다면서요.
달력 17일자에 꽂겠다하면 17일 자리에 팍 꽂고! 건달들이 형님이라고 불렀다면서요. 이야기좀 해 주세요.

“요즘은 겨우 꽂히는 정도일 거야. 옛날 공판장이라는 싼 술집에 갔었어.
짠 콩조림이 유일한 안주고, 20원이면 배부르게 막걸리를 두 사발을 마시는 집이었지. 술을 먹고 있는데 담배가 무지 피우고 싶은 거야.
마침 젊은 친구 4명이 앉아있더라구. ‘담배 한 대만 얻을 수 있겠습니까’했지. 그랬더니 어깨 너머로 주더라고.
네 개피째 빌리는데 이 친구들이 못 참고는 ‘저 새끼를 아작을 내’하더라고.
그냥 놔두면 일어나서 올 태세니까 젓가락 통을 끌어당겼지. 베니어판 벽에 달력이 걸렸는데, 젓가락 하나 뽑아서 ‘오늘 7일이지?’ 하면서 딱 던졌는데 정확하게 꼽힌거야. 3개 던지고는 ‘난 눈 하면 눈이야, 사내놈들이 담배 갖고 쪼잔하게…’하고 나왔지.
나는 나중에 알았어. 그 중 머리를 빡빡 깎고 어려 보이는 친구가 오야붕으로, 춘천에서 청량리까지 장악한 건달이라는 걸. 그 자리에 연극하는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구두수선소에서 수선일을 하던 한 친구가 이 일을 봤나봐. 자기 사장한테 ‘이외수라나 뭐라나,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묻길래 ‘소설가’라고 했다나. 그랬더니 이 친구가 ‘그런 깡패가 소설을 써?!’ 했다더라구.
나중에 그들과 친구가 됐지. ‘존경합니다, 형님!’하며 건달이 나한테 인사하고 다녔어. 벽이 없이 지냈어. 건달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데가 있어. 예술하는 사람을 안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뿌듯해하고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존경심이 나름대로 있지. 아주 생양아치가 아닌 다음에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아주 생양아치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공중전화에서 전화 오래 걸었다고 사람 죽이는, 시시비비 따지지도 않는 것들이 생양아치지.
요즘 중고등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생을 게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리셋이 안되는데 벌여놓고 보는 거지. 자기 인생도 그렇게 가는 거고.”



-안그래도 트위터로,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질문이 많더라구요.

책 좀 읽어야하지 않겠나. 게임도 경험이고 자기 수양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정서적인가 하는 것이 문제지. 책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정서적 아름다움은 그 안에 없다는 것이야.

책을 안 읽으면 가슴이 삭막해지고, 마음이 삭막해지면 척박한 토양에서 아무것도 잘 자라지 못하듯이 많은 것들이 안 자란다는 이야기야. 우리는 열대우림에 비가 많이 오니까 수많은 동식물들이 번성하고, 사막에는 비가 오지않아 척박하다고 생각하는데 비도 자존심이 있어 내려서 기뻐할 게 없으면 내리질 않아요. 내려서 받아먹고 기뻐할 놈이 있어야 내리지.

지금 청소년들의 가슴이 그래요. 안에 키우는 게 없고, 삭막하고 메말라 있어. 우리 사회가 인식해야 할 문제예요.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다 공포예요. 시험은 시험대로, 취업은 취업대로 공포.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할 지를 생각하면 초조, 공포, 불안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걸 잊어버리려고 게임에 몰두하는 수밖에….
나 이외의 모든 것이 다 적이 돼버리니까. 수능점수가 절대평가로 인식되고 점수, 돈이 인간 평가기준이 되니까 다 자신 없는 거지.


정서적인 것을 함양시켜줄수 있는 정치 기획들이 필요한 것 같아. 지금 녹색성장이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의) 청소년과 젊은이가 녹색이오. (한데) 이들이 녹색이 아니라 누렇게 뜨지 않으면 전부 갈색으로 말라버렸으니…. 경제성장보다 인간 성장이 우선 돼야지. 젊은이들이 갈색이 돼있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예요."


-그 안에는 분명 어른들의 책임이 클 것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개혁을 부르짖고 임기 안에 개혁 실행할 듯 이야기하지만 개혁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작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어. 교육개혁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 봐야지.”


나는 <환상의 짝꿍>을 진행하면서 만난 아이들 얘기를 했다. ‘사촌이 논 사면?’이라고 물으면 ‘보러 간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 싱싱함에 덧씌워 ‘배가 아프다’고 가르치는 사회다. 함께 산에 갔던 윤도현 형의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던 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푸름을 어른들이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의 그런 발상은 어른들을 새 것으로, 신선하게 만들어 줍니다. 인생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죠.
피동적 삶이 아니라 능동적 삶을 산다는 것,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죠. 한데 이 나라에 맹모(孟母)가 너무 많아요. 다 강남으로 가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어른들이 창의력, 잠재력을 하나 하나 제거시켜요. 그래서 결국 사회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거지.
밤 10시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40대 샐러리맨이예요.”


-프로그램 촬영하는데 어느 아이의 꿈이 미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해 편집되는 바람에 방송에 안 나갔어요. 그 아이가 말한 이유는 미국 사람과 결혼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다고 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50~60년대 그런 꿈을 꾼 아이들이 있었죠. 구호물자 올 때 좋은 옷과 물건이 미제니까, 미제는 다 좋다는 식. 그때와 지금이 같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겁니까. 더는 그런 꿈을 안 가지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낮아서 일단 뭐가 행복인지를 안 알려주는 게 문제지요. (그러다보니 아이들마저) 미국은 행복할 것 같고, 영어 잘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예전에 쓰신 글을 보니까 아이들한테서 모국어 사용할 권리를 빼앗지 말라고 쓰셨던데.

“제 나라 말도 못하는 애한테 외국말 가르친다고 좋을 것도 없고, 필요치 않은 애들한테까지 필수 항목으로 가르쳐야 하겠느냐는 지적이었지.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아 영어 잘 하는 문하생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에게 ‘얇은사 하얀 꼬깔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를 통역해보라고 하면, 못해.
우리 언어가 우수하다는 것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공유하는 것인데도, 유독 우리나라 지도층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누구에게나 다 영어를 강요하고 영어를 중시합니다. 납득하기 어렵죠. 표현을 할 때 우리가 죽었다는 것만 하더라도 죽었습니다, 뻗었습니다, 골로 갔습니다, 밥 숟갈 놨습니다, 영면, 서거 등 30여개가 쭉 나온다. 영어로는 DEAD예요. 얼마나 삭막합니까.
먼저 우수한 우리 것을 발전시키고, 소중한 것을 인식시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데 수순이 잘못됐어. 지나치게 사대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 식민지 근성을 못 버린 듯하다. 이런 생각까지 들게 만들어서야 되겠어요?”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탤런트 정보석씨가 전화를 했다. 트위터를 보니 ‘제동이가 거기 간 거 같다’면서.
산골과 도시의 시공간을 초월한 ‘리얼타임’이 무섭고도 신기했다. ‘트위터의 선구자’로 불리는 선생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감성마을에는 아직도 은하수가 보인다.
맑은 날,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떨어진다.
몇 개 주워서 문하생들 목걸이 만들어 주고, 몇 개는 술 담가 놓고….’


아날로그의 맨 앞쪽에 있던 이외수가 아니었던가.

 

-저도 4개월 전에 ‘쌍용차를 잊지 맙시다’라고 글을 올렸다가 초토화됐죠. 제 팔자려니 하고 요즘은 좀 뜸합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오셨으면서, 또 끊임없이 사람들을 찾아 나서시는 것 같아요.

“트위터, 재미 있어요. 산길 걸어 가다가 개미를 밟았는데 개미 거동이 불편해 보여. 그럴 때 개미한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제 네가 나를 밟을 차례야’라고 쓰지. 그런데 세상엔 의외로 행간을 못읽는 사람이 많아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자기와 상반된 의견은 무시하고….
좌빨이니, 노빠라느니. 연예인이건 작가건 정부의 정책이나 시대에 대해서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정치적인 것일 때는 더 극단적이고 민감한 것 같아요. 인터넷 들어가서 말 조금 잘못해도 공공연하게 좌빨로 몰아갑니다. 노빠라서 그런다나 어쩐다나. 이런 것들은 없어져야 할 풍조인데…. 이상하게 집권세력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촛불, 집회, 인터넷 등의 단어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연예인이건 작가건 정부의 어떤 정책에 대해, 시대에 대해서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 같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보면 아직도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상하게 집회 공포, 촛불 공포, 인터넷 공포를 갖고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의 특색이다. 촛불, 집회, 인터넷이라는 말을 꺼내면 깜짝 놀라요. 자기네들도 하면 될텐데. 저는 세계 소설가 팔로어 랭킹이 1위다.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지만. 글로벌 랭킹이 4위, 아트 분야가 1위, 남한 트위트 랭킹 1위다. 김연아는 한국어로 분류가 안되고, 이찬진 대표가 2위, 가수 보아가 3위이고.”

체질적으로 세속을 싫어해요. 그러나 권력, 금력 같은 것 보다 끊임없이 사람이 그리워요. 가까운 소설가 김성동씨는 ‘절에 있으면 속이 그립고, 속에 있으면 절이 그립고’라고 했어요.
나는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나 뿐아니라 마누라, 아이들, 온 식구가 사람을 다 좋아합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찾아오는 분들 중에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안돼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가장 기본적 예의는 지키고 배려해 주는게 좋은데….”


-산에서 개미 말씀하셔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제가 산에 한 번씩 '업히러' 갑니다. 업힌다는 말이 참 정감있는 말인 것 같아요.

“나는 천식 때문에 산을 못 탑니다. 산 못타는 것을 이렇게 변명하지.
야, 올라갈 여지가 남아있는 산은 덜된 산이다. 제일 좋은 산은 많은 생명을 키우고 자기를 내주고 한없이 낮아진 산, 육신은 다 내줘 버리고 기운만 남아있는 산, 그게 바로 평지예요. 어떤 생명체이든 다 살잖아. 정말 높은 산은 센 놈만 살아남는데. 많은 생명체를 키워서 수평선과 같은 산이 제일 좋은 산이다. 나는 그래서 산에 안 올라갑니다.”






-선생님은 글을 잘 쓰시니까 산도 만들어 내시고 바다도 만들어내시고. 의미를 부여해 사람들한테 산이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저도 어릴땐 산에서 칡을 많이 캤어요.
그때는 돈 주면 살 수 있는 다이아보다 칡있는 곳을 잘 알아서 잘 캐오는 게 인기였는데. 그게 진짜 ‘짐승남’이었죠.
저는 옆 집 어머님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농촌의 그런 공동체가 주는 느낌이 참 좋은데.

(이 선생만큼이나 유명하신 사모님도 전적으로 동의하셨다. “옛날 시골, 자연 속에서 살면 내 아픔도 남의 아픔, 내 기쁨도 남의 기쁨이었죠. 도시에서는 남이 슬픈지 기쁜지도 모르잖아요. 한마디로 인간다움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라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하는데. 자연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만도 한데요.

가장 이상적인 삶은 나흘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고, 3일 도시에서 일하는 것으로 봐요. 깡통이라도 하나 주워 화분 삼아 잡초라도 하나 심어서 놓고 보는 것도 자연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인데,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이라도 쳐다보고, 무엇인가를 심어 키워도 보고.”


-젊은이들은 선생님께 길을 많이 묻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헛헛하다고 토로하면서.

“인생에 대해 묻는 말이 많아요. 그럼 제일 중요한 것은 실력과 인성을 같이 갖춰야 한다고 얘기하지.
가령 불의와 결탁했을떄 내 삶이 편해지고, 정의를 선택했을떄 내 삶이 불편해진다면 어느 편을 선택하겠느냐. 젊은이들은 불의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반문합니다. 어느 쪽이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가라고. 제일 큰 희망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사실은 순리대로 사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 학교나 가정, 선배들로부터도 잘 못 배운다.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많이 알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느끼려고 애쓰는게 중요하다는 것이예요.
더 많이 깨달으려고 애쓰는게 중요하다고. 태산같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티끌같은 깨달음 한 번에 다 무너져 버리는 것이니까. 가슴이 삭막해지면 감각도 무디어져서 느끼지를 못 하는 게 현실이잖아.
우리의 정서 중에서 멋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깨달음을 얻어야 간직될 수 있는 멋있는 인품을 가졌을 때 하는 말이죠. 서양의 문예사조니 철학사조, 예술사조는 전 사조의 반동에 의해 탄생을 한다.
서양에선 철학의 대상이 신이 되기도 하고, 자연, 경제가 철학의 대상이 된 적도 있죠. 이건 아직 철학의 대상을 못 찾았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깨달음이 철학의 대상으로, 몇만년간 변하질 않았죠. 동양에서의 사조는 전 사조의 반동이 아니라 온고이지신이었죠. 이게 더 순리에 맞는 겁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순리를 자세히 말씀 좀 해주세요.

인간이 짐승을 닮지않는 게 순리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책 읽는 것,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이 있는 것, 철학과 소양을 가진 것은 인간밖에 없다. 그걸 못 갖추면 벌레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지요.
인간의 출발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인데, 그걸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시급히 개선대야 합니다. 이미 이성이 시대를 주도하는 세상은 갔고, 이제는 감성이 시대를 주도한다고 봐야죠.”

-아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내면적인 것인데, 눈에 안보인다고 그저 외형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가치의 왜곡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책읽기의 중요성을 알지만 먹고 살기 바빠 죽겠다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책을 읽어도 먹고 살기 힘들고 안 읽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요. 자기를 반성하기보다 두둔하고 핑계되는 사람은 자기 발전이 느려질 수밖에. 책 많이 읽는 사람도 먹고 살기는 바빠요. 다 핑계고 가치관의 차이지.”

마침 사모님이 내가 상탄 것을 기념한다며 잔치국수를 끓여내 오셨다. 미모로 소문난 그분이시다. 이 선생님은 당신이 여복이 많다면서 은근히 사모님을 치켜세우신다.

“두 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라는 말만으로도 눈물이 난다는 걸 잘 이해를 못해요.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 여자들이 다 예뻐보일지도 몰라. 나에게 우리 집사람은 늘 엄마 같아요. 내 머리를 빗겨줄 때도 모성을 느껴.”




-저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잘 모릅니다.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외로우면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지금 아빠라고 부를까, 아님 아버지라고 부를까 하고 말이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제가 포경수술을 못했거든요. 하하.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실 선생님도 외향을 보시는 것 같은데요? 저도 글도 예쁘고, 얼굴도 예쁜 팔로어를 만나고 싶은데…. (웃음) 내면을 진짜로 보면 외향이 안 보이는 시점이 오는 것 아닙니까?

“(박수를 치며) 내면을 중시하는 이유가 매력 때문이죠. 매력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겁니다. 예쁘다는 것은 외형이고.
소크라테스가 이런 애기를 했어요.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아가는데 어떤 때 가장 행복해지냐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많은 사람들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진다고….
그럼 어떤 것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 하면, 아름다운 것이 사랑받게 마련이거든요. 외형적 아름다움은 시간에 자유롭지 않지만, 내면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른다고 퇴락하거나 변질되지 않아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배어나올 때 매력이라는 겁니다.”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죠. 사람들을 웃긴다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이 없으면 형성될 수 없는 것으로, 선생님에게 펜이 있다면, 저한테는 마이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부대껴서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조금 멀어져 있으면 또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결국 사람들이 모두가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그리운 것이죠.”







-나중에 트위터 토크쇼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트위터는 무한히 변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전 이미 트위터 문학교실을 개설했습니다. 6만7000명 중에서 4명 뽑았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위주로 뽑은게 아니라 글을 써보려는 의욕이 넘치고, 암에 걸린 엄마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사람 등이지.
나는 나쁜 놈은 좋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다. 4명과 한 달 지내보고, 성과가 좋으면 더 늘릴 생각이다. 이찬진 대표한테 문학 교실, 미술교실 이런 것을 할 수 있도록 부가기능을 개발해달라고 건의하고 싶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 있을텐데….
김제동씨가 하차 할때도 트위터에 비판적인 트윗이 많았어.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어요. 언론탄압의 시작이라고.”


-제가 4년 했으니까 많이 한 거죠. 잘했다고 피디연합회에서 상까지 주셨으니 기쁘죠.

문제는 KBS사태든 MBC사태든, 이번에 SBS 스포츠중계 독점 문제이든, 보면은 언론에 대해서 긍정적 시각을 갖기 힘들다는 거죠. 세인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나는 어쨌든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얘기를 안 할 작정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얼마든지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것과 사람들이 사람들과 예술가로서 일침을 가하는 것은 틀림없이 구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정 정당, 정파 이익이나 입장 대변하는 것과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분명 선이 그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비극과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의 되풀이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되풀이니까, 백성이 참으면 안된요. 그것은 정치적 성향이 아니에요.
역사야 시간 자체의 속성이니까 불안해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비극이 되풀이 되거나 절망이 되풀이되는 것은 권력에 의한 것이지 역사에 의한 것은 아니거든.
그런 것은 작가로서 일깨워줘야하는 문제이지. 그것을 일깨워준다고 기분 나빠한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요. 작가들에게 집회 참여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라고 정부가 통보나 하고.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되지!”


 -제가 4월에 미국 하바드대학에 강연하러 가는데 해줄 말씀을 좀 주세요.

“미국은 미, 마이 등 나 중심인데 한국은 우리라는 표현을 씁니다. 모든 일을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우리도 잃어가고 있는데, 잊어서는 안되는 안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편하게 왔던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밤이 깊어갔다. 선생이 산중생활에서 깨우친 진리를 훔치고 싶었다.

그 새벽, 감성마을을 나서면서 산골과 도시의 아득한 거리를 생각했다. 또 텅 빈 내 자취방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난 그저 한 마리 짐승처럼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으므로. 에이, 짐승을 닮지 말라 했거늘.


화천/정리 이영경 기자


지면에 실린 <김제동의 똑똑똑>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251834135&code=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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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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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쉬 2010.10.04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인터뷰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2. 마약한건 2010.11.17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야기하지 않죠? 문화생들과 여관방에 들어가 마약한거 그런건 이야기하지않고 ..역시 뭐든 언론이든 ..다 꾸며진 것들뿐이군요 진실은 없다 ㅋㅋ 김제동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