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시 뮤직(Roxy Music)의 2001년 부틀랙 "This is Roxy Music" 의 아트워크.
글램 밴드로서 록시 뮤직은 퇴폐적이고 양성적 이미지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런 이들 외에 소위 본격적인 글램 뮤지션은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이 글램이라는 명칭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음악적 면모가 포함될 수 있고, 실제로 음악 커리어에서 글램이라고 불렸던 기간이 있었던 뮤지션들도 분명 존재했다. 말하자면, 글램이 하나의 스타일이었다면, 그 스타일이 그가 음악 활동 내내 견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글램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뮤지션들의 ‘외관’ 을 근거로 붙여진 명칭이었던 탓에, 이후의 음악 장르에 대해(특히 팝 메틀, 뉴 웨이브의 경우) 어느 정도 비하적인 의미로 붙여지기도 했다. 말하자면 팝 메틀 밴드들이 ‘푸들 밴드’ 식으로 불리는 것과, 이들을 글램 밴드라고 부르는 것은 그 의미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명칭의 경멸적 의미는 뮤지션에게는 사실 부당할 정도로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의 하나는 아마 퀸(Queen)일 것이다. 퀸이야 사실 앨범이 워낙 많다 보니 글램 밴드로서의 이미지도 많이 약해지고, 음악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의 데뷔작이었던 1973년작 “Queen” 은 화려한 스테이지와 멤버들의 외모 덕분에 글램 록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퀸의 경우 “Queen”부터 “Sheer Heart Attack” 앨범까지는 기타 위주의 하드 록을 들려주고, 아무래도 메탈리카(Metallica)가 커버했던 ‘Stone Cold Crazy’ 같은 곡이 이 시기 퀸이 현재 밴드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 - 화려하고 부드러운. 뭐 꼭 틀린 건 아니지만 - 와는 좀 틀린 모습이었음을 보여 줄 것이다.

다만 퀸의 경우는 일반적인 하드 록 밴드보다 다채로운 화성과 유려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고,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Freddy Mercury)의 넓은 음역의 보컬은 이들의 음악의 화려함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었으며, 아무래도 밴드가 80년대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들을 받아들이면서 차트에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면모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데이빗 보위와의 공작이었던 ‘Under Pressure’(“Hot Space” 앨범. 보통 뉴 웨이브와의 접목이라고 평가되는) 나, 아예 영화 사운드트랙이었던 “Flash Gordon” 앨범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브라이언 메이(Brian May)는 여러 밴드들 - 헤비 메틀도 포함하는 - 에 게스트로 자주 참여하기도 했는데, 밴드의 음악적 중추였던 브라이언임을 생각한다면 그런 다양한 면모는 이들의 경우에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Queen - Stone Cold Crazy(live). 이런 노래도 있으신 분들이다


이 곡의 메탈리카의 커버. "Garage Inc." 앨범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도 제일 유명한 건 이런 곡이다. Queen - Bohemian Rhapsody


퀸이 초기에 하드 록과 글램 록 사이에 있는 밴드였다면, 록시 뮤직(Roxy Music)은 (오늘날의 분류로)프로그레시브 록과 글램 록 사이에 있는 밴드일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과는 달리,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업성을 추구한 밴드였다. 밴드 이름의 ‘록시’ 는 밴드가 일관하던 퇴폐적이며 양성적인 분위기에 맞추어 의도된 것이었고(요새 듣는다면 그냥 느끼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는 명백히 글램 록 스타일과 일관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참 인기가 없었다. “For Your Pleasure” 는 영국에서는 차트 4위까지 올랐지만, 미국에서는 2백위에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들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도 분류되는가?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이 밴드를 거친 멤버들 중 걸출한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밴드의 프로그레시브적인 색채의 주축이었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필 만자네라(Phil Manzanera), 에디 잡슨(Eddie Jobson) 정도가 있을 것이다.


(사진은 록시 뮤직의 앨범 "Siren" 의 커버. 커버의 여성은 제리 홀(Jerry Hall)로, 브라이언 페리의 연인이었다. 뒤에 믹 재거와 눈 맞아서 도망갔으나, 재거도 다시 버림받으니, 여러 남자 홀리고(?) 다녔다는 점에서는 사이렌과 비슷할지도)

어쨌든, 이런 인물들이 거쳐 갔던 밴드지만 사실상 밴드는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가 주도했다. 브라이언 이노 등이 새로운 사운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청년이라면, 페리는 좀 더 전통적인 취향의 로큰롤 애호가였다. 그래서 브라이언 이노가 밴드에 있었던 “For Your Pleasure” 까지의 음악도 사실 프로그레시브의 영향은 크지 않다.

다만 이 앨범의 b-side 부분에서의 브라이언 이노의 연주는 확실히 프로그레시브의 그것이고, 이후 “Country Life” “Siren” 앨범에서는 에디 잡슨과 필 만자네라의 프로그레시브 록과, 브라이언 페리의 로큰롤을 교차하는 사운드를 들려주게 된다.


(말하자면 이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루 리드와 대립하던, 존 케일 같은 인물이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루 리드도 글램 록을 시도한 바 있다)




Roxy Music - Prairie Rose. 왜 이들이 글램으로 불렸는지를 알려 주는 곡이다



Roxy Music - Love is the Drug

그렇다면 이러한 글램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평론가 톰 카슨(Tom Carson)은 이에 대해, “반항을 엔터테인먼트화하고, 엔터테인먼트도 전복적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고 평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미 얘기한 록의 진정성에 대한 얘기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냉소적인 비판이었다는 것이고, 또한 이들은 기존의 섹슈얼리티의 왜곡과 모호한 성별의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데이빗 보위는 물론이고, 록시 뮤직이 앨범 커버들에서 보여준 퇴폐적이고 양성적인 이미지를 생각해 보라.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주어진 성적 역할조차 사실은 일종의 ‘스타일’ 일 수 있다는 주장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들은 스스로 상업적인 ‘팝’ 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점을 부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의 문제제기는 그 뮤지션 본인의 자의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중론인 듯하고, 글램 록을 반문화로서의 록 음악에 반발하는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움직임은 반문화로서의 록 음악의 모습이 허물어져 갔던 것처럼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진 셈이다. 반항적 록 음악이나 글램 록이나 결국은 록 뮤직 비즈니스를 벗어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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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의 한 장면. 이 만큼 글램 록을 잘 표현하는 장면도 보기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여태까지의 얘기를 잠깐만 돌아보면, 70년대에는 오직 사이키델릭 록/프로그레시브 록, 헤비 메틀만 존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보이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60년대의 반문화, 그리고 그 송가 격으로 나타났던 록 음악은 이후 ‘진정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계속 끌고 다니기 시작한다. 록 음악 또한 뮤직 비즈니스에 포섭된 것임을 몇 번은 얘기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는 주류 쇼 비즈니스와는 다르다, 식의 시각은 계속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건 이런 저런, 록 음악의 역사를 다룬 저작들만 들춰보아도 어느 정도는 명확해 보인다. 그리 큰 반응을 얻지 못했던(너무 혁신적이었다든가 등의 이유로) 뮤지션들보다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뮤지션들에 대한 평가가 박하게 나오는 장면은 그런 책을 읽어 보았다면 꽤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70년대에 상술한 장르들 외에 ‘대중적으로 큰 반응을 얻었던’ 음악은 물론 존재했다. 물론 이런 음악들 모두가 록 음악을 얘기하면서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뒤에 얘기할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뮤지션들을 빼 놓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인데, 어쨌거나 이런 음악들이 기존, 그리고 동시대의 록 음악과는 다른 맥락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글램 록(Glam Rock), 또는 글리터 록(Glitter Rock)이라 불리는 장르가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글램/글리터라는 말은 이에 해당되는 뮤지션들의 화려한 의상이나 메이크업 등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지금 포털사이트 네XX에서 ‘글램 록’ 으로 검색하면, ‘글램 록의 영향을 받은 구두 디자인 연구’ 식의 논문들이 검색된다)그렇다면 글램 록은 사실 음악적으로는 꽤 다양한 모습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통상 글램 뮤지션으로 불리지 않는 이들이 그 커리어에서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예도 꽤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엘튼 존(Elton John)이나 로드 스튜어트 같은 이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은 비르투오소적인 연주력을 요구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헤비 메틀과는 달리 시각적인 면모를 대단히 중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1960년대의 반문화와는 ‘다른’ 미국의 주류 쇼 비즈니스에 대한 환상을 반영한 것이었고, 특히나 10대 청소년, 그 중에서도 헤비메틀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웅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어려웠던 소녀들을 위한 음악이라 해석하는 것이 중론으로 보여진다.

글램 록을 열었다고 할 만한 밴드는 아마 티-렉스(T-Rex)일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국내에서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 때문에 겨우 알려졌다고 생각한다)이미 데카(Decca)에서 솔로작을 발표했었으나 실패했던 마크 볼란(Marc Bolan)이 중심이 되었던 티-렉스는 “Electric Warrior” 등에서, 사실 기존의 로큰롤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많은 음악을 건드리고 있었고(훵크에, 프로토펑크에.... 물론 부기 사운드도 있다) 풍성한 볼륨감과 볼란 특유의 보컬은 이 앨범을 영국 록의 중요했던 한 순간으로 만드는 데 충분했다. 이후의 앨범들은 사실 “Electric Warrior” 에 비하면 매우 미흡한 평단이나 대중의 반응을 얻었고, 77년 볼란이 요절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20th Century Boy’ 나 ‘Bang a Gong(Get It on)’ 같은 노래는 현재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곡이다.


T-Rex - Bang a Gong(Get It On)

아마 가장 유명한 글램 록 뮤지션은 분명 데이빗 보위일 것이다. 그리고, 보위는, 소위 ‘글리터 록’ 밴드들이 화려하고 장식적이었던 사운드로 쇼 비즈니스를 재현하는 모습이었다면, 기묘하게도 ‘쇼 비즈니스를 통해 예술을 추구하고 있던’ 당대의 록 음악에 대한 도전적인 모습으로서도 의미를 보여준다.
보위는 사실 글램 록만을 추구했던 뮤지션은 아니었고, 데뷔 이래 소울, 포크, 아방가르드, 댄스, 인더스트리얼,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민첩하게 변화해 간 뮤지션이었으나,(물론 뭘 하더라도 세련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들려준 덕에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친구였던 볼란의 영향으로 1970년에 발표한 “Space Oddity” 부터는 분명한 글램 록 사운드를 들려 주었고, 가장 유명한 작품일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에서는 그야말로 ‘인공적이고 휘황찬란한’ 이미지로서, 가공의 인물인 지기 스타더스트를 또 다른 자아로 내세우면서, 기존의 록 음악이 보여주었던 반항성을 희화화시키면서 당대 록 음악의 안티히어로가 되었다. 거기다... 보위는 외모가 받쳐주는 사람이었다. 앞서 엘튼 존도 잘 빼 입고 글램을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제일 옷 못 입는 뮤지션으로 뽑혔던 엘튼 존과는 달리 보위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했다. (이런 더러운 세상)

(좌측 사진은 데이빗 보위. 저렇게 생긴 분을 엘튼 존이 어찌 이기겠나)


David Bowie - Space Oddity


Bowie의 미덕 중 하나는 이런 것도 잘 한다는 것이다. David Bowie - Changes

물론, 이렇게 튀면서 딴지 거는 사람은 정을 맞기 마련이지만(이 풍진 세상), 보위는 그렇지 않도록 탁월한 멜로디감각과 풍성한 사운드 등으로 자신의 예술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공격을 비껴나갔다. 보위 본인의 작품도 뛰어났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던 루 리드(Lou Reed)와의 공작은 그런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물론 좀 더 언더그라운드에 침잠했던 루 리드와 보위는 달랐지만, 적어도 둘 다 글램 록의 전략을 수용한 점만은 분명하고, 리드의 “Transformer” 앨범의 프로듀스를 다름아닌 데이빗 보위가 맡았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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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