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9.12 섹시 풍조, 이제는 식상하다
  2. 2010.10.20 [김철웅 칼럼] 걸그룹-슈스케2 유감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85년 가수 김완선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머리끈을 풀고, 출렁이며 춤을 추고 종횡으로 무대를 누비는 와일드함에 ‘한국에도 이런 가수가 있었어?’ 하며 넋을 잃었다. 너무나 새로운 춤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김완선의 섹시 댄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점잖음과 엄숙을 지고로 여기던 시절에 대한 조롱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사회적 맥락의 의미가 더해졌다. 관습 흔들기, 판 뒤엎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김완선은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김완선 이전에 ‘빙글빙글’의 나미, 더 거슬러 올라가 1969년의 김추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추자의 경우는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시절, 가당찮게 여가수 최초로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을 보였다. 이런 원조들과 김완선을 거쳐 섹시 여가수의 계보는 엄정화, 이효리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의 존재가 역사에 기억되는 이유는 춤을 통한 아름다움의 구현도 있지만 기성과 다른 참신함 혹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댄스에다 섹슈얼리티가 더해진 이른바 섹시 콘셉트가 여기서 폭발력을 갖는다. 이 부문의 세계적인 인물은 마돈나다. 마돈나는 오랫동안 눌려왔던 여성들의 자기표현과 자기결정력을 과감한 노출과 관능이라는 섹슈얼리티 수법으로 이끌어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대표작인 ‘처녀처럼’(Like a virgin)과 ‘아빠 설교하지 마세요’(Papa don’t preach)는 결코 대중적 파괴력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구 벗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당대의 관습에 덤벼드는 문제의식과 오버랩시켰기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마돈나의 노래는 답답한 현실에 눌린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선언 같은 것이었고 실제로 언론으로부터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걸그룹 씨스타의 효린과 보라가 대중들에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요즘 걸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주류 음악계 여가수를 보자. 몇몇을 빼놓고는 마치 ‘누가 더 센가?’ 겨루듯 질펀하게 섹시 콩쿠르, 관능성 높이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아찔하고 자극적이다. 아슬아슬한 자태와 야릇한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언어도 거침이 없다. 인기 최고의 걸그룹 ‘씨스타’는 ‘터치 마이 바디’란 노래에서 ‘내 입술이 좋아 아님 내 바디가 좋아/ 솔직히 말해 여기 여기 여기 아님 저기 저기 저기…’라고 유혹한다. 대놓고 100% 섹시를 표방하는 걸그룹 ‘포미닛’ 출신의 현아가 얼마 전 히트시킨 곡 ‘빨개요’는 정말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만든다. ‘다 그만해 따끔하게 혼내줄 테니까 엉덩이 대/ 감당 안돼 밤마다…’ 근래 댄스곡의 대세는 스스로에게 권좌를 부여하는 이러한 식의 자화자찬이다. 이런 내용의 가사가 야릇한 춤과 자태의 영상과 결합하니 더 요란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충격이어야 할 이러한 섹시 펀치가 순간 눈을 때릴지는 몰라도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과감한 춤과 언어에 설득되거나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제는 청소년들마저 ‘대체 이게 뭐야?’라며 실소한다. 1980년대에 서구의 10대들이 마돈나로부터 여성 존재감 상승을 수혈받은 사례는 남의 나라 얘기고 오래전 일일 뿐이다.

그룹마다 가수마다 개성을 강조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비슷비슷 그게 그거다. 음악도 유명 작곡가팀에 몰리다보니 타자와의 명백한 차별화를 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춤도, 섹시 콘셉트도 음악의 질과 맞물려야 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 여가수의 섹시 풍조에는 음악이 없다. 문제는 트렌드에 대한 압박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망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식의 사고로는 나른한 반응의 현 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패턴화를 거부하는 반작용과 역공의 묘가 필요하다. 실제로 순수를 내세워 성공한 걸그룹도 있다. 개체의 특성을 살린 음악 실험과 기성의 패턴을 박차는 도전의식을 묶어야 솟구쳐 오른다. 우리 여가수들의 섹시 풍조는 너무 빤하고 식상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철웅 경향신문 논설실장


요즘 두 개의 두드러진 대중문화 ‘현상’이 시선을 잡아끈다. 
하나는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걸그룹 열풍이다. 당초 필자는 ‘열풍’이란 표현이 필시 우리의 희망이 담긴, 과장된 것이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닌가 보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8월 말 9시뉴스인 <뉴스워치9>에서 한국 걸그룹 소녀시대가 이날 도쿄에서 새 앨범 발표회(쇼케이스)를 열었다는 소식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카라와 포미닛 등 한국 걸그룹들의 일본 진출 소식도 전했다. NHK가 연예뉴스를 이렇게 비중있게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럴 만한 뉴스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걸그룹의 일본 내 열풍에 대한 고무적인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궁금한 것은 한국 걸그룹의 경쟁력은 무엇인가다. 아시아 아이돌 문화의 종주국은 일본인데 어떻게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아이돌에게 열광하게 된 걸까. 

가수 보아가 일본 가요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2000년 초만 해도 우리는 일본의 선진적 가수 양성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신세였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 기미를 보이는 거다. 
답은 차별성이라고 한다. 일본 걸그룹은 귀엽고 예쁜 소녀의 느낌인 데 비해 우리 걸그룹은 귀엽고도 섹시하며 성숙하고 프로 같은 느낌을 준다. 노래와 춤이 한 수 위고 팔색조처럼 변신에 능하다. 



Mnet ‘슈퍼스타K2’ 결선 진출자인 존박(맨 왼쪽)과 허각이 지난 15일 방송을 끝으로 탈락한 
장재인을 끌어안고 아쉬움을 나누고 있다. 사진 엠넷


‘소녀시대’ 노래와 춤 일본내 열풍

또 다른 현상은 국내 가수 발굴 TV프로그램 <슈퍼스타K 2>의 폭발적 인기다. 
몇주 전부턴가 필자도 대학생 딸들이 보는 이 프로에 빠져 금요일 밤을 보내곤 한다. 케이블 TV 엠넷이 미국 폭스 TV의 최고 인기 가수 발굴 쇼 <아메리칸 아이돌>을 본떠 만든 이 프로그램은 경이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시청률은 총 16.15%로 동시간대 지상파 방송들까지 압도했다. 
더 놀라운 건 134만830명이 이 프로그램 1차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전 국민 40명 가운데 한 명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나 ARS 전화를 통해 오디션을 받은 셈이다. 

이미 <아메리칸 아이돌>의 대성공이 미국에서 하나의 ‘피노미논(현상)’으로 평가됐지만 <슈퍼스타K 2>는 이를 능가하는 한국적 사회·문화 현상으로 받아들일 만도 하다. 

그러나 이 두 개의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짚어봐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것을 뭉뚱그려서 편중과 불균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지나친 걸그룹 편중이다. 전문가들은 춤, 노래, 예쁜 외모를 갖춘 걸그룹만으로는 일본 시장에서 긴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중의 취향은 변덕이 심하다. 일본 음악은 그 다양성에서 미국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섹시 코드 중심의 획일 단순성은 독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일본의 한국 걸그룹 열풍에는 그들의 대리·우회 만족적 측면이 없는지 살필 일이다. 
국회에선 요즘 걸그룹의 연소화와 선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은 오락 프로그램들이 어린 여자 가수들에게 섹시 댄스, 섹시 표정을 주문한다며 “이런 모습이 자꾸 방송에 나오니 학생들이 흉내를 낸다. 우리나라 초등생 42%가 가수, 8%가 탤런트를 꿈꾸는데 이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청소년 연예인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취업과 근로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오후 10시 이후에는 방송 출연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 가수를 지망하는 여고생의 매춘 강요 사건이 기사화됐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투자 명목으로 돈을 받은 대가로 이른바 스폰서에게 성접대를 하도록 강요한 혐의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헛된 연예인 동경이 지속되는 한 이런 사건은 근절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들이 TV에 나와 걸그룹 흉내를 내는 것 자체는 큰 문제라 할 수 없다. 예로부터 가무 음곡을 즐긴 조상의 후예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자 하는 걸 나쁘게 볼 이유도 없다. 도리어 노래는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편중과 불균형 문화 독이 될 수도

그럼에도 요즘 세태는 우리의 문화적 편중과 불균형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또 다시 좌절됐다고 실망하지만 우리는 시와 문학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있는가. 베네수엘라가 국제 미인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나라면서 동시에 빈곤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관련 글: 
http://tweeterpoet.khan.kr/7]를 통해 구스타보 두다멜 같은 걸출한 지휘자를 탄생시킨 음악애호국이란 것도 생각난다. 

걸그룹과 <슈퍼스타K 2>의 열기로부터 피어오른 유감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