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악보.


서울에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약 한 달 전, 제주도에 전유성 쇼 게스트로 갔다가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 그리고 들국화 팬클럽의 내가 좋아하는 대략 20년 된 친구 안정승과 술자리를 같이했다(안정승은 들국화 팬클럽이다. 들국화 팬클럽과 전인권 팬클럽은 안타깝지만 서로 따로 활동한다. 물론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


안정승에게 “내가 요즘 가끔 와인을 마셔. 색깔도 이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정승이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빨간색 와인을 가져왔다. 그런데 보통의 와인병 마개와 달랐다. 병도 크고 길었다. 조금 센 건지 왠지 소주 맛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또 뭔가 달랐다. 


멤버 모두와 안정승, 8명이 술을 마셨다. 바닷가 근방의 술집 주인은 영업시간이 원래 저녁 11시까지이고 밤을 새울 수는 없지만 새벽 1시까지는 영업을 하겠다고 하고 식사를 겸하는 안주를 내놓았다. 


나는 술의 3분의 1만 마셨는데 조금 빨리 취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와 참 즐거웠던 팬클럽 이야기를 나누다 12시30분경에 일어났다. 공연 후는 항상 피곤하다. 공연이 짧고 긴 것은 상관없다. 긴장 때문인지 피곤하고 멍하다. 대략 3일에서 4일 동안은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공연 다음날 갑자기 태풍경보가 있었고 낮의 하늘이 밤처럼 깜깜했다. 우리 밴드가 타야 할 비행기가 결항되고 밴드 멤버들은 비행기 대기순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혼자 호텔방에서 마시다 만 와인을 마저 마시면서 옛날 생각에 취했다.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착하고 잘 뭉쳤었다. 팬클럽과 나, 그리고 친구들은 서로 가까워질수록 달빛을 느꼈다. 우리는 15년 전부터 나의 집에서 자주 만났다. 밤새 술을 마시며 얘기하고 놀았다. 칠흑 같은 밤, 소나무 뒤로 달이 보이고 착한 시간이 만들어지는 달빛 속 친구들…. 어느 때는 거의 매일 만났다. 새벽 1시경에 무르익는 달빛 안에서(북악산 자락에 붙어 있는 제일 꼭대기의 나의 집은 시내와 거리감이 있어 서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가끔씩 오해를 해도 금세 웃음으로 바뀐다. 산의 매력이다).


나는 그때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다른 친구들도 가끔씩 힘겨워 보였었다. 요즈음 가끔 생각하면 우리는 참 한마음 같았다. 광주에 사는 친구가 우리가 모이는 걸 알면 자정에도 택시를 타고 오기도 했다. 


개그맨 고명환도 단골친구였다. 명환이, 참 좋은 친구. 밤업소가 끝나면 새벽 2시경이다. 그 시간에도 명환이에게 전화하면 신나게 달려왔었다. 삼청동 내 집에 오면 누구든 우리는 모두 달빛이 됐다.


달빛은 그즈음 친구들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한 곡이다. 


“너무나 속상해서/ 달에게 물으니/ 달빛 따뜻하게/ 대답해 주네/ 세상 만물에 생각 있어/ 모두 때라는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추자/ 너무나 생각나서/ 별에게 물으니/ 별빛 반짝이며/ 대답해 주네/ 세상 운명에 마음 있어/ 모두 때란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일절 후렴 반복) 


처음에 가사가 술술 나오던 노래이다. 나의 이혼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충격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행여 이런 가사? 아픔으로 이런 세상을 얘기? 어쨌든 이혼은 안된다. 가족이 헤매게 된다. 특히 결혼 전 연애기간까지 20년을 넘겼다면 이 큰 우주 속의 작은 지구가 아무리 큰 폭풍이라 해도 살아남는 건 이미 주어진 힘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이다. 요즈음의 혼란은 하느님만이 해결한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 속의 하느님을 믿으며 진지해지고 싶다. 달빛 아래 친구들 얼굴의 명암이 정말 그립다.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전인권 |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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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