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가창, 드럼, 컴퓨터 미디악기, 기타 레슨까지…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고, 그를 위해서는 시간, 공간 그리고 악기 구입 비용이 든다.

위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시간과 지식을 파는 선생님에게 레슨비를 제공한다.

 

우리가 즐기는 음악을 틀어주고 소리를 더 멋지고 크게 만드는 시스템과, 그 소리에 어울리는 화려한 조명을 비춰주는 클럽, 특정인들만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을 찾아 돈이라는 진입 장벽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뭔가 표현해야 하는 종족들, 이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불행한 아티스트들. 음치라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능력이 안돼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 하지만 타고난 리듬감과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언어유희, 이들이 바로 래퍼들이었다.

 

하얀 피부색이라는 타고난 사회적 특권, 그리고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벽은 흑인들과 소수자(minority)들에게는 너무 높았다. 이때 입과 손만 있으면 가능한 비트박스(손과 입을 사용하여 강한 악센트의 리듬을 만드는 일), 들려줄 이야기와 철학만 있으면 가능한 랩으로 거리의 아티스트들은 랩을 했다. 비싼 동네의 비싼 클럽에 출입할 수 없는 이들은, 시간과 공간이 돈 없이 허용되는 학교 운동장, 동네 놀이터, 옥상, 버려진 건물의 복도, 버려진 공장 안의 분위기가 멋스러운 빌딩 한복판 등을 찾아다니며 지금 세계 빌보드 시장을 장악하는 힙합이라는 문화를 만들었다.

 

진정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여기서 어쩌면 배고픈 이들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문화의 유산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에서 힙합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건 ‘한’이라는 정서와 IMF 외환위기 이후 비참한 현실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시대의 흉터와, 인종차별이나 사회 제도적 탄압과 싸워야 했던 빈민가 흑인들의 ‘솔(soul)’이 일맥상통한 건 아닌가 감히 짐작해본다.

 

힙합은 놀이문화 이상이었고 배우지 못한 이들에겐 문학이었다.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토라고 불리던 ‘이너시티’에 갇혀 사는 젊은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열심히 하면 그들의 표현력과 재능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치열했고, 소크라테스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지 않더라도, 확실한 메시지가 있었다.

 

팝 시장에서 이들의 음악은 인정받지 못했고, 수많은 록스타들에게 얼마 못 가 사라질 소음이라는 비난을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힙합문화는 계속 진화했고 이젠 흑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금은 대학교 축제 기간으로 대학생들과의 만남이 많은 시기다. 축제기간은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하다. 진부하지만, 대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이 힙합정신이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책가방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대학생들이 경험하고 있는 제도적 탄압과 배고픈 고민들을 표현하고,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면서 더 멋진 문화가 태어나고, 여기서 시작된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면 그보다 더 멋진 ‘스웩’이 있을까 상상해본다. one love!

 

<타이거JK 뮤지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