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은퇴했다. 1936년생인 그는 <내추럴> <아웃 오브 아프리카> <흐르는 강물처럼> 등에서 관객이 직접 표정을 그릴 수 있도록 투명한 얼굴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은퇴작은 실존인물인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 <미스터 스마일>이다. 17번 체포되었으나 매번 탈옥했고, 한 해 60차례나 은행강도를 하며 70대까지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다는 전설, 심지어 장전도 하지 않았으며, 항상 반말이 아닌 신사적인 언어로 “전 지금 은행을 털러왔어요. 제 가방에 현금을 채워주세요”라고 웃으며 범죄를 저질렀다는 터커의 삶처럼, 그도 배우로서 80대까지 그렇게 연기해왔음을 굵은 주름살의 특유의 미소로 방증해 보였다. 


실제 그가 1979년 <The Eletric Horseman>에서 신혼부부로 연기했던 아내역의 제인 폰다와 다시 함께 2017년 넥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lt;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에서 보여준 모습 또한 노후세대의 아픔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전했다. 남편을 보내고 아들마저 다른 도시로 결혼시킨 노년의 제인 폰다가 인근에 사는 혼자 된 로버트 레드퍼드의 거실 문을 두드리며 어렵게 마음의 말로 부탁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말을 잃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인데 모두가 하기 어려워하는 현실을 영화는 솔직하게 보여준다. 


잭 니컬슨과 다이앤 키튼이 열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또한 노년의 멜로드라마가 가능한 이유와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세대가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영화가 이제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2년 <죽어도 좋아>,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국내에서도 노년의 사랑을 표현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아직 다양한 시선과 소재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 


20대에 일본 최고의 전자회사에 취업한 시마 고사쿠를 주인공으로 30년 이상 연재해온 <시마과장>은 <사원시마>부터 <사장시마>까지 만화의 제목마저 승진시키며 샐러리맨의 일생을 보여준 역작이다. 작가 히로카네 겐시는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와 집단 명분의 뒷모습을 블랙유머로 표현하며 일본 직장인의 환호를 평생 받았다. 만화주인공 시마는 여전히 일본맥주 광고모델이다. 출판사는 시마가 이사회로부터 대표이사에 임명되는 부분이 연재될 때는 실제로 가상의 취임식을 이벤트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가 연재한 또 하나의 성인만화가 <황혼유성군>이다. 중장년층으로부터 노년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고독과 이별 등을 담고 있는 옴니버스식 작품인데, 매회 독자들을 공감시키는 마력이 있다.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이사직을 수행하다 본인도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임원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은퇴일정을 사정하며 미뤄야 하는 부끄러운 절실함, 70대 노교수의 지적 아우라에 호기심 너머 연민을 느끼는 20대 도서관 사서, 40대 보건소 의사에게 가슴 떨림을 느끼는 70대 여성환자, 암투병 중인 노년의 남성이 호스피스로 봉사하는 여인에게 전하는 진심 등 만화적 상상력은 리얼리티와 과장된 멜로의 한계를 오고가며 독자의 현실과 미래를 재단한다. 아주 먼 미래 같지만, 실제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독자들은 작품으로 확인하고 공감한다. 


굵고 깊게 팬 주름살을 보이며 맑게 미소 짓는 80대의 로버트 레드퍼드 얼굴은 20대 시절의 레드퍼드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 표정에서 여전히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의 청춘을 볼 수 있는 세대는 80대 레드퍼드의 연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콘텐츠에 지불할 시간과 자본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니어콘텐츠는 그래서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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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