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방에 흩어져 있는 깨진 유리 조각들. 만사 귀찮은 듯, 계단에 오줌을 싸대는 사람들. 역겨운 냄새로 찌든 이곳, 너무 시끄럽기까지 해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아. 하지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형편이 못 돼. 돈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지. 방 안에 쥐, 거실에 바퀴벌레, 마약중독자들은 야구 배트를 들고 골목을 서성거려. 정말 도망치고 싶지만 멀리 가지 못했어. 래커차를 몰고 어떤 놈이 내 차를 회수해 가.”1982년에 발매된 ‘더 메시지(the message)’라는 랩곡의 1절 내용이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존 레넌, 듀란듀란 등 지금은 레전드라는 훈장을 단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이 차트를 장악하던 1980년대 초반. 화려한 팝스타들과 그들을 쫓는 파파라치들의 사진 불꽃놀이, 큼직큼직한 멋진 차들과 높은 빌딩 숲, 산 위에 걸쳐진 할리우드 사인 옆으로 날아가는 뉴스 헬리콥터,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등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미국의 꿈.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 뒤에는 빈부의 갈등, 인종차별, 고립되고 발전되지 않은 흑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때다.


타이거JK


1980년대 초반부터, 크랙 코테인(마약의 한 종류)은 전염병처럼 빈민가를 덮쳤다. 복지 수준이 상당히 낮은 이곳에서 가족들은 허물어져 가는 싸구려 아파트에 겨우 둥지를 틀고 살아가야 했다. 이곳 주민 거의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수준. 교육시설은 형편없고, 치안은 최악이며, 일거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렇게 버려지고 잊혀진 도시에서 젊은이들은 마약 거래에 뛰어들었다. 경찰과 시민의 관계는 개와 고양이와 같았다. 경찰은 주민을 보호하지 않았고 검거와 검열, 체포에만 몰두했다. 이런 악조건과 악순환의 사이클에서 태어난 예술 문화가 바로 힙합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표현을 소리, 리듬, 패션, 춤, 낙서, 은어, 시, 그리고 은유와 풍자에 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픔, 슬픔, 꿈, 즐거움, 시사, 고발, 파티 등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불공평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멋진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마약거래상들은 우상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 험한 도시에서 공휴일에 파티를 열어주고 때로는 돈과 음식을 나눠줬다. 그런 마약딜러들의 모습은 TV에서 멋진 말만 하고 나타나지는 않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경찰보다 그들의 편에 선 것으로 보였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가 부른 ‘더 메시지’는 이 시대 어느 뉴스 채널보다 더 확실히 사람들이 사는 환경을 보고 들은 결과물이고, 그만큼 솔직했다. 더 중요한 것은 랩을 풀어나가는 리듬이 재밌고, 즐거운 음악이라는 점이다. 7분이 넘는 긴 곡이지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래퍼의 스토리텔링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는 나라의 썩은 시스템을 서술하고, 빈민가의 잘못된 현상들을 꼬집는다. 우상화되는 마약딜러들의 폭력과 권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곡 마지막 후렴 부분 전쯤 이들은 나쁜 쪽으로 방향을 튼 아이들에게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며 경고하기도 한다. “결국 이용당하는 것뿐이야, 마약이 널 남용하듯 구치소에 목매달아 있는 널 발견하는 날처럼….” 이 곡은 2004년 12월9일 롤링 스톤 잡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500곡 중 51위에 오른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들이 수없이 많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음악을 듣고 금방 다른 곡으로 바꿔 들을 수 있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음악을 들었던 시절들이 한꺼번에 소환된다. 순간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스친다. 고작 세간의 평가와 차트의 성적 따위에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음악의 진짜 본질에 소홀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팸 메시지가 난무하는 요즘, 난 옛 친구의 메시지가 그립다.


미국 출판계는 20년이 지나도 평가가 바뀌지 않았을 때만 클래식이란 칭호를 붙인다고 한다. 내 추억 속 음악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순간 순간은 나중에야 비로소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최고의 추억이 될지 모를 일이다.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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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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