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으로 음성 녹음파일 몇 개가 도착했다. 파일을 재생시키고 눈을 감았다. 시를 낭독하는 음성이 들렸다. 시라는 길을 나아가는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여유로워 마치 산책하는 듯한 목소리다. 다섯 편의 시를 다 듣고 함께 동봉된 PDF파일을 통해 시를 다시 읽었다. 그냥 시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상이 느껴졌다. 이것은 차도하 시인이 제공하는 자작시 낭독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이다.


성다영 시인은 2019년 등단한 직후에 성폭력 가해자가 이사였던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싣지 않겠다면서 문학세계사가 주관한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작품을 게재하는 것을 거부했다. 올해 한국일보에서 등단을 한 차도하 시인과 서울신문에서 등단한 이원석 시인이 그 뒤를 이었다. 차도하 시인이 구독형 메일링 서비스 ‘목소리’를 기획한 것은 일련의 사태로부터 비롯되었다.


차 시인은 “청탁을 거절하며 저의 시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단순한 대체 지면을 떠나 기획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차도하’라는 신인 시인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스스로 물었고,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되짚어보았다”고 밝혔다.


문학이 메일링 서비스나 웹진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먼저 선보이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일간 이슬아’와 같은 시도를 비롯해 정세랑, 김언수, 박상영, 김인숙, 김금희, 정지돈, 심채경, 김원영의 글을 함께 볼 수 있는 ‘웹진 문학동네’(weeklymunhak.com) 같은 서비스가 있는가 하면, 문예지 바깥에서 창작자와 독자가 연결되는 큐레이션 공간 SRS(s-r-s.kr)나 자유투고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글을 볼 수 있는 공간인 던전(d5nz5n.com) 등도 생겼다. 시나 소설만 구독 모델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서양 철학 관련 문헌을 번역 출판하는 SNS 전기가오리(@philoelectroray)의 구독 서비스나 비평가 조영일의 ‘메일링 비평구독’(sozo.tistory.com)같이 학술 영역에서 깊이 있는 글 또한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제공된다.


이러한 시도는 다양한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기존의 문예지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거부하거나 해체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고, ‘문학’이나 ‘학계’라는 이름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독자적으로 선보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등단이라는 제도의 바깥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독자와 만나기 위함이기도 하고 인쇄 매체보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시대 변화를 따라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렇듯 조금이라도 출구를 넓혀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행위는 분명 긍정할 만하나, 거기서 ‘문학’이라는 대상이 대중친화적인가 하는 원론적인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문학’에서 멀어지는 까닭이 접촉면이 적기 때문일까. 오히려 ‘문학’은 인쇄 매체의 공간, ‘문예지’라는 필드 안에서 안전하게 격리·보호받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시도를 살펴보면 구독 서비스라는 최신식 모델 속에서 낡고 고립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예를 들면 초기 ‘던전’은 서브컬처의 밈을 잔뜩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청탁 텍스트의 정체성을 ‘순문학 유료 웹진’으로 한정했다. 이러한 형상은 기존의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권력지형도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이식한 것에 불과할 뿐 변화가 아니다. 이렇게 알맹이나 형식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필드를 만들어 기존의 문단 권력을 해체하겠다는 시도는 이미 독립문예지에 의해 진행되었다가 별다른 수득을 얻지 못한 행위이기도 하다.


추이를 보면 이러한 구독 형태의 서비스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필요한 것은 형태의 고민보다 알맹이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고민 아닐까.


<이융희 |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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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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