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첫방송된 관찰 게임 버라이어티 SBS <인생게임-상속자>수저계급론에 기반한 게임으로 한국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프로그램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9명의 일반인 참가자들이 현실 속 자신의 지위와 이름을 모두 지운 초기화 상태로, 새로운 룰이 지배하는 게임의 세계인 대저택으로 입장하며 시작된다.

 

 

룰은 간단하다. 9명의 참가자가 상속자-집사-정규직-비정규직의 새로운 계급을 부여받고, 34일 동안 코인을 획득하기 위한 게임을 벌인다. 이들은 계층별로 차등화된 조건에 처해지며 마지막에 가장 많은 코인을 획득한 단 1명의 참가자만이 실제 상금 1000만원을 획득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 실험형식을 통해 갑을관계, 불공정한 분배, 무너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 승자독식 사회 등 고장난 자본주의 게임이 지배하는 현실을 풍자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초기화가 무색하게도 게임은 점점 현실과 닮아간다. 막대한 권한을 가진 상속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폭주한다. 최하층인 비정규직은 연합해 기득권 카르텔을 깨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장난처럼 시작한 게임은 진행될수록 예측할 수 없는 욕망의 각축장으로 변해간다.

 

인간 사회에 대한 게임의 은유를 실물로 만들어낸 <인생게임>의 시도는 흥미롭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어온 제작진은, 조용히 지켜보며 시청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기보다 게임을 빌미로 의도하는 바를 설명하려는 조급증을 숨기지 못한다. “흘린 땀과 소득이 비례할 거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정규직들은 하우스푸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됐다등의 자막은 적소에 배치돼 현실을 환기하지만 게임이 살아 움직이기도 전에 미리 적어둔 대본의 느낌이 짙다. 그것은 이 게임이 애초 정해진 메시지에 복무하기 위해 동원됐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시청자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인생게임>의 기획 자체가 갖고 있는 힘 때문일 것이다. 현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틀을 일단 확보한 상태에서 그 결과를 상상해보는 일. 그것은 거칠게나마 실제 자본주의 게임 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점쳐보는 일과 비슷하다. ‘나라면 어떨까?’ ‘우리는 정말 저렇게밖에 살 수 없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질문이 생겨난다. 무엇보다 과연 참가자들이 게임의 끝에 이르러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하면 함께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로 바꾸는 내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섞인 궁금증을 갖게 된다.

 

예외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게임 밖 텃밭의 존재다. 텃밭은 코인이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 바깥에 있다. ‘혹은 시스템의 위치에 있는 진행자 김상중은 뜻밖에 밭에서 감자를 캐서 비정규직 숙소에 무상으로 가져다준다. 어떤 이들은 상속자가 식사비를 폭등시키자, 아예 밥 사먹기를 포기하고 텃밭으로 간다. 이것은 또 다른 가능성, 상속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발버둥 칠 게 아니라, 아예 그 시스템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제3의 가능성을 흘려준다. 텃밭에서 감자를 캐먹으며 34일 동안 모두 함께 잘 놀고 상금은 n분의 1로 나눠 갖는 평화로운 선택을 할 희박한 가능성. TV 앞의 시청자들은 각자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생게임>의 시도는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로사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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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