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전쟁은 문명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쟁을 겪으며 세기말적인 혼돈과 퇴폐는 종말론적 위기로 이어졌다. 세계를 이끌어왔던 그리스문명, 유럽문화가 통째로 흔들렸다. 사람들은 절망과 허무 속에서 길을 헤맸다. 철학자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을 통해 그 시대를 문명사적으로 조망할 때, 작가 헤세는 절망에 빠진 개인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소설 <데미안>은 전쟁이 한창인 1916년 쓰여 3년 뒤 세상에 선보였다.


<데미안>이 처음부터 널리 읽힌 것은 아니다. 출간 수십년이 되도록 독자들은 눈길을 주지 않았다. 1946년 헤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시큰둥했다. 헤세 열풍은 ‘68혁명’이 유럽과 미국을 휩쓸면서 폭발했다. 히피로 상징되는 반전·반체제의 청년·학생들은 헤세 문학의 정수에 매료됐다. 1960년대 이후 <데미안>을 비롯해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아래서> 등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70~8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은 문고판 헤세의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들에게 <데미안>은 일종의 바이블이었다. 소설을 읽은 이들은 작품 속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구절을 암송할 정도였다. <데미안>의 영향력은 국내 한 매체의 독자 조사에서 <삼국지> <토지> 등을 제치고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로 뽑힌 데서도 확인된다. 왜 헤세이고 <데미안>일까. “사회라는 체제가 개인을 억압한 우리 상황을 가장 절실하게 보여준 작가”(박홍규 교수)이고, “운명을 사랑하게 하는 책”(명법 스님)이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날 <데미안>을 읽은 이들은 아직도 고민하고 방황했던 싱클레어를 기억한다. 마치 자신이 한때 <데미안>의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40여년 전 헤세에 입문했던 영화평론가 전찬일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젊은 날 <데미안>에 빠져 ‘헤세앓이’를 했던 각계 인사 58명의 글을 모아 <내 삶에 스며든 헤세>를 냈다. ‘2019 <데미안> 프로젝트’의 일환이란다. 중장년들에게 ‘영혼의 전기’로 기억되고 있는 <데미안>이 ‘헬조선’의 청년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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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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