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의 행위가 개별적으로 떳떳하다면, 개별행위들을 합쳐놓은 결과도 사회에 유익할 거라는 믿음은 우리 능력자 계층의 착각일 뿐이다.”


매튜 스튜어트가 <부당세습>에서 한 이 말을 오래 곱씹었다.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를 두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른바 86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항변을 듣게 된다. 불평등이 계급 문제라고 하면 주억거리지만, 세대 문제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 심리를 스튜어트는 정확히 파악했다. 이름하여 대항서사. 그 서사를 우리 식으로 풀면 이렇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건 오로지 실력 덕일 뿐이다. 알다시피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근근이 살아갈 만큼만 벌어왔다. 어머니의 현명함과 희생이 없었다면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다. 고액과외나 받아 보았겠는가, 부족한 과목만 학원에서 보충하면서 스스로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도 아르바이트와 성적 장학금으로 나왔다. 두루 내가 노력한 대가다. 


더욱이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사회 민주화에 이바지해왔다. 주변에 학생운동 안 한 녀석 없고, 여전히 운동성을 유지하는 녀석도 수두룩하다. 1억원 조금 넘는 연봉 가운데 후원금 명분으로 나가는 돈이 제법 되는 이유다. 그런데 왜 불평등의 원인이 우리 세대에 있다고 하나? 세대론을 들이대는 사람들 의도가 의심스럽다. 사회상층을 차지한, 특히 상위 1% 무리를 보라. 출발부터가 다르다. 실력과 노력으로 열매를 거둔 사람이 그 무리에 얼마나 되나. 금수저라는 딱지는 그쪽에 붙여야 마땅하다. 


자녀 문제에 이르면 핏대를 세우며 더 강한 대항서사를 써 내려간다. 재벌처럼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줄 게 없으니, 공부라도 제대로 시키려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유학도 보내고 입시 컨설팅도 받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널뛰는 입시제도 잘 활용했을 뿐이다. 융통성 있게, 네트워크 이용해 살아온 것일 뿐이다. 우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돈 있는 집안에서 하는 짓을 보아라.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말 그 사람들 너무 하더라.


지은이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집단을 능력자 계층이라 이름 짓는다. 대체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2016년 기준으로 적게는 120만달러(약 14억원), 많게는 1000만달러(약 12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진 계층이다. 능력자 계층의 소득수준을 보면 상위 9.9%에 해당한다. 흔히 사회 불평등 문제를 말하면 상위 1%를 지목해 그들을 악마화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를 집중적으로 늘려온 집단은 최상위 0.1%였다. 이 집단이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부의 22%를 차지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거머쥐고 잘 지켜낸 집단은 능력자 계층이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지만 최상위와 최하위 집단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했다. 더욱이 능력자 계층은 “이 모든 혜택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할 방법을 알아냈다.”


대물림 방법은 학벌세습이었다. 능력자 계층은 미국 대학 입시의 전형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꼭 공부만 잘할 필요는 없다. 동문 자녀 우대 정책이라는 에움길을 택하기도 했고, 체육특기자 선발을 이용하기도 했다. 스쿼시나 펜싱 같은 운동은 돈이 많이 드는지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쳐서 문제가 되기는 했다. 유명인들이 수십만달러에 이르는 뒷돈을 주고 자녀를 체육특기생으로 부정입학시킨 사건이 터져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학벌세습에 목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선 대졸자가 고졸 이하보다 70%나 돈을 더 번다.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오면 대졸자 평균보다 3배가량 연봉이 높다.


이 정도면 수치는 다르지만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과 재산은 우리 사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녀 대학입시 문제로 정치인이 공분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학벌세습으로 부를 대물림한다고 대중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도 능력자 계층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분노를 문제 삼는다. 최상위 0.1% 세력은 만연된 불평등에 좌절한 집단을 포획해 능력자 계층과 대립하게 한다. 허무맹랑한 분석이라고 볼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성공이 이를 입증한다. 보수세력이 대중을 사로잡아 개혁이나 진보세력을 궁지로 모는 전략으로 공정성을 들고나오는 우리 정치현실도 여기에 들어맞는다.


인류는 지위와 부를 혈연관계에서 대물림하는 세습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나눠주는 능력주의 사회로 전환해 왔다. 미국이 대표적인 성공사례였고, 우리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 능력주의는 덫이 되었다. 능력이 세습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능력자 계층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역시 능력자 계층으로서 불평등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은 점을 반성한다.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대재앙만이 불평등을 끝장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최상위층과 공모해 왔노라 고백한다. 나 또한 내가 포함된 86세대를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이철승이 말한 대로 “개인수준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수준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예는 비일비재”한 법이다. 공동체의 가치에 이바지했으나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강고해진 현실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할 따름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지은이가 한 다음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국혁명의 첫 세대는 대개 9.9%에 속했지만, 최상위층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혁명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중상위 계층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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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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