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그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악기든 노래든 춤이든 무엇이라도 연습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괴로움을 겪는 것인지 한 번쯤 자문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눈앞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동시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직시하고, 연습을 하지 않았던 과거를 후회하며, 나아가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일이다.


다른 공연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음악가들은 무대에 오르는 한순간을 위해 더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연습에 투입한다. ‘카네기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누군가 ‘연습’이라고 답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는 단 한마디로 연습의 미덕을 보여준다. 시간이라는 최고의 자산을 연습에 쏟아붓는 음악가의 삶은 성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가끔 이는 무모하고 맹목적인 투자처럼 보인다. 물론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연습밖에 없다. 그러나 연습이 미래를 무조건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저금통의 탈을 쓰고 있지만 어찌 보면 원금 보장도 안되는 고위험군 투자상품과 다를 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리스크가 커질수록 중요한 것은 이것이 옳은 투자인지, 이 투자가 여전히 유효한지 꾸준히 되묻는 것이다. 무의미한 곳에 뛰어들기에 시간은 너무 귀한 자산이고, 연습은 꽤 고된 활동이다. 연습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왜 연습하는지 꼼꼼히 자문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 스스로 실천하는 데 있다. 연습이라 뭉뚱그려졌던 활동 안에는 기술 훈련뿐 아니라 관찰과 반성, 자문과 실천 등 수많은 단계가 숨어 있다. 연습실에서 음악가들은 바로 이 일들을 홀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어떤 이들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던 이 연습에 대한 생각을 공적 영역에서 제각각의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2017년, 스튜디오2021은 열두 쌍의 피아니스트-작곡가의 만남을 주선해 오늘날 연주자가 연마해야 할 현대적인 기술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새로운 연습곡’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8년, 음악과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는 미술가 오민은 기술의 범위가 신체 훈련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적 표현이나 태도, 인식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인식의 기술’을 연습할 것을 제안했다. 2019년, 작곡가 최우정은 한 좌담에서 “작가가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기술”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해금 연주자 주정현은 신작 공연 ‘연습-Exercise’에 앞서 이런 말을 건넸다. “단편적인 연주 기술보다도 연습의 순수한 과정과 목적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연습은 어떤 것을 향한 연습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시대의 변화가 새 기술을 필요로 하듯 음악의 변화도 새 기술을 요구한다. 기술을 통해 세계관의 가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면, 음악가에게 요구된 기술을 보며 음악의 가치 변화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구현해왔던 비르투오소적이고도 화려한 기술의 가치가 흐려지고 있는 오늘날 음악가들은 현대적 기술을, 인식을, 소재에 대한 관점을, 반성적 태도를 훈련하는 데 보다 더 주목한다.


연습만큼 미래지향적인 활동은 없다. 연습이란 고된 시간을 감내하는 이들이 맹목적인 몸의 훈련에서 벗어나 넓은 의미의 ‘사유’를 훈련하고 있다면 그것은 음악의 변화와 어떻게 맞물리고 있을까. 아직 완결되지 않은 그 연습 과정에서 아직 보고 듣지 못한 음악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상상해보려고 한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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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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