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냉혹하고 삭막하다. 아니, 사실은 무심할 뿐인데, 대체로 정에 주린 우리들은 그런 태도조차 차갑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설명에 따르면, 138억년 전에 생긴 우주는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고 거기서 살아남을 생명은 아무것도 없다. 무심한 세계 위에서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믿어 왔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더 인간을 중심으로 설명했었다. 인간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는 신이 인간과 어울려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도 했고 군림하기도 했다. 때론, 계속되는 생에서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아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다. 거대한 세계관 위에 작은 이야기들을 지어서 살아가는 목표를 찾기도 하고 집단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대상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무심한 세계 위에 쌓아 올린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가 무엇이 되었든 바탕의 무심함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기성과 권위는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고 오래된 질서는, 이 시대에 더 허약하다. 문제는, 허물어진 이야기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쌓는 것도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삶의 의미를 쥐여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뿐이다. 설득력 있는,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는 세상과 개인을 잇는 유일한 끈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다. 그런데 세상은 재미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대부분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끈이 약해진 상황에서 자신과 강한 유대를 맺을 강렬한 이야기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에겐 ‘재미’가 유일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모든 자연의 과정은 균열, 파열, 붕괴, 그리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기 마련이라 질서가 지워지면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은 오랜 시간을 견딜 만큼 견고한, 큰 질서가 자리 잡긴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나름의 의미, 혹은 재미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람들이 게임, 영화, 노래, 유튜브, 만화, 스포츠,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의 영광, 국가의 명예, 모교의 전통, 가문의 뿌리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들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조각조각 남아서 곳곳에 진을 치고 있지만 그런 ‘개뻥’들을 넘어서면 ‘재미’를 이길 것이 별로 없다. 아직도 많은 계몽적인 이야기들은 사랑과 연대 같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목표로 내어놓지만, 그 속의 ‘재미’를 빼면 그런 결론도 뼈대는 허술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수요 때문에 생긴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콘텐츠 유통 채널이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동영상 플랫폼들의 팽창은 가히 빅뱅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고 쏠림 현상이 있지만 드라마, 만화, 영화 등의 공급 편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의 급격한 성장도 이런 대응과 무관하지 않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수익이 늘어난 까닭에 재능 있는 작가들의 유입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웹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을 제공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났다. 대중적인 성공에 힘입어 재능 있는 작가들의 진입은 훨씬 더 많아질 것이고 독자도 늘어날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너머의 세계관이 너무 무심하기에 ‘재미’ 너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왔던 역사를 보면, 그 너머에 대한 궁리를 하지 않은 적이 없고 그 덕분에 살아남았다. ‘재미’에 대한 열광과 ‘재미’를 공급하고자 하는 열망이 넘쳐나지만 그것이 풀리지 않는 문제를 놓고 궁리하고 분투한 ‘재미없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양에 비해서 종류는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찾는 그저 그런 위로들만 주고 있다.


넘쳐나는 콘텐츠들이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주는 것을 소재나 방식의 기이함에서만 찾는다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 든다. 부쩍 늘어난 독립서점들이 거의 같은 종류의 책들만 유통하고 엇비슷한 위로만 고객들에게 준다면 그 한계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 다양하고 재미난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금방 바닥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 지금은 이야기에 폭 싸여서 재미난 오후를 보내고 있지만 부드러운 봄비에도 춘몽은 깨지기 마련이다. 꼰대 짓인지 알면서도 ‘재미’ 너머를 힐끗거린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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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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