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구 대중음악팬들에게 가장 뜨거운 논쟁 대상이 된 사람은 마이클 잭슨이다. ‘팝의 황제’라는 별칭만으로 잭슨에 대한 수식은 충분하다. 잭슨 같은 스타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세상을 뜬 지 10년 된 잭슨이 다시 소환된 것은 4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네버랜드를 떠나며(Leaving Neverland)> 때문이다.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최근 미국과 영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며 시청자를 혼란과 충격에 빠트렸다. 


영화는 웨이드 롭슨과 지미 세이프척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에 담는다. 10세 전후의 어린이였을 때 롭슨과 세이프척은 잭슨의 팬이었는데, 운좋게도 잭슨과 사적으로 친해질 기회를 가졌다. 두 어린이에게 잭슨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다. 아낌없이 귀한 선물을 주고, 자신의 네버랜드 저택에 초대하고, 어린이의 가족들에게도 큰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롭슨과 세이프척은 잭슨이 어렸던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증언한다. 


사실 잭슨의 성추행 의혹은 새롭게 제기된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잭슨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관련 송사들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법정 바깥에서 합의가 이뤄지거나 수사당국이 증거를 찾지 못했다. <네버랜드를 떠나며>도 이 같은 의혹의 연장선에 있다. 


팬들과 잭슨의 가족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무혐의로 판명된 사안에 대해 돈을 노리고 재차 여론몰이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선 잭슨에 대한 태도를 바꾼 이도 있다.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대표적이다. 그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이기도 한 윈프리는 미국 HBO에서 <네버랜드를 떠나며>가 방영된 직후 편성된 토크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은 마이클 잭슨을 넘어섭니다. 이 순간은 그 어떤 사람보다 거대합니다. 이 순간 우리는 이 사회의 타락을 목격합니다. 그건 인간성에 대한 재앙이며,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입니다.”


잭슨의 성추행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잭슨 스캔들은 ‘작품과 창작자를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작품이 빼어나고 예술가의 인격 역시 고매하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지만, 때로는 최악의 인간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  


참조할 만한 몇 가지 태도들이 있다.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제작진은 잭슨이 목소리 연기한 한 에피소드를 작품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프로듀서 제임스 L 브룩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건 소중한 에피소드입니다. 그 안에는 우리 모두 함께 만든 커다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에피소드가 남아 있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분서(焚書·book-burning)에 반대하지만, 이건 우리의 책입니다. 우리는 한 챕터를 들어낼 수 있습니다.”


애국가는 작곡가, 작사가가 모두 문제적이다. 작곡가 안익태는 친일 행적에 이어 나치와 협력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태다. 작사가에 대해서는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모두 나오는데, 윤치호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으로부터 받아들인 철저한 친일파였다. 안익태의 행적을 연구해온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지금의 애국가가 ‘불쾌한 감각’을 준다면, 이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애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문제가 있더라도 하루아침에 폐기하거나 교체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한 입장으로 보인다.


한국 문학에도 논란이 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은 하루아침에 성추행 의혹을 받는 상황에 놓였다.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은 정작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고 시인의 시를 초·중·고 교과서에서 빼는 데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그(고은)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든 빼지 않든 살아남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의 시가 생명력이 없다면 교과서에 싣든 싣지 않든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 존재하지만, 창작자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작품을 바라보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몇 개의 소박한 선으로 은박지 위에 그린 그림이 왜 그리 아름다운지는 이중섭의 궁박했던 처지를 알고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가수의 목소리라도, 그의 추문을 알고 듣는다면 감상은 달라질 수 있다.


세상에 완전히 순정한 인간은 없으며, 모든 작품은 결점 많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작품은 때로 인간을 넘어서지만, 어디까지나 인간과 사회의 산물이기도 하다. 아울러 예술가의 범죄를 ‘기행’이나 ‘낭만’이라 부르며 허용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도 분명하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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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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