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 댄스음악과 발라드음악을 양분한 히트곡 제조기들이 있었다. 김창환과 김형석. 김건모와 박미경, 클론 등 댄스음악계의 밀리언셀러 제조기가 김창환이었다면 솔리드와 신승훈, 임창정, 박정현, 성시경 등 발라드계에는 김형석이 있었다.


지금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외모로 TV에 나와 ‘허당끼’를 내뿜는 김형석의 당시 별명은 ‘발라드의 시인’. 광주 태생.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와 음악교사였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친해졌다. 한양대 음대에 진학해서 만난 이가 고 유재하. 그가 그룹 퀸의 ‘Love of my life’를 연주하는 걸 보고 대중음악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래 어쩌면 난 오래전부터/ 우리의 사랑이 늦출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울지마 이 밤의 끝을/ 잡고 있을테니.’ 헤어진 연인을 위한 애절한 송가인 ‘이 밤의 끝을 잡고’는 졸업 후 피아노 세션으로 활동하던 김형석이 처음 프로듀서로 나선 앨범의 타이틀곡. 미국에서 온 3인조(김조한, 정재윤, 이준) R&B그룹 솔리드는 이 노래가 담긴 2집 앨범(1995년 3월)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솔리드는 “김형석이 멜로디와 가사에 한국적인 취향을 가미해서 명품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이 앨범의 수록곡 ‘슬럼프’의 후렴구 코러스에 “밤새 밤새 밤새”라는 대목을 넣을 정도로 ‘밤샘 녹음’을 하면서 공을 들였다. ‘이 밤의 끝을 잡고’는 김형석과 정재윤의 공동 작곡으로 별들의 전쟁이 펼쳐지던 음악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오르면서 120만장이 판매됐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R&B 장르로 정상에 오른 건 이들이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업타운, 이현우, 박정현, 브라운아이드소울, 바비킴, 박효신 등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앨범의 히트로 김형석은 1990년대 톱가수들의 단골 프로듀서로 등극했다. 박진영, 김원준, 엄정화, 김정민, 임창정, 유승준, 박정현, 베이비복스, 보아, 성시경 등을 밀리언셀러 가수 반열에 올렸으니 가히 ‘천만 작곡가’라 할 만하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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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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