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전문대 샌타모니카칼리지 입학 후 난 오직 랩을 잘 쓰기 위해 문예창작과와 관련된 모든 교실을 찾아 기웃거렸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우수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creative writing honors class(고급 문예창작반)’. 난 바닥에 주저앉아 교수님의 강의를 엿들었다. 그 교수님의 수업은 매우 간결했다. 매일 칠판에 점 혹은 Brown, Flower, donut 등의 단어 하나만 흘려쓰시곤 그 정의에 대한 15분 정도의 Q&A 시간을 갖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럼, 여러분이 이야기를 만들어봐요”라고 한마디만 던진 뒤 교실을 나가시곤 했다. 


그 동네 날고 긴다는 글쟁이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학생들은 저마다 창의적이고 멋진 이야기를 쓰려 몰입했다. 난 랩을 썼다. 그렇게 한달 정도 지난 어느날 교수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왜 매일 여기 와있지?” “선생님의 강의가 재밌어서요. 그냥 이번 학기에 여기 쭉 와 있어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나를 향한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민망했다. 


“소설을 좋아하나? 학점을 받을 수 없을 텐데 왜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 교수님은 심오한 미소와 어색한 표정을 띠며 내게 되물었다. “전 래퍼가 꿈입니다. 랩을 좋아하는데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허락해 주시면 조용히 듣기만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타이거JK

“랩? 래퍼가 꿈이라고? 흥미롭군.” 칠판에 love란 단어를 쓴 뒤 교수님은 또 교실을 나가셨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건지 뭔지….’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날도 바닥에 주저앉아 글을 써내려갔다. 그때 쓴 글이 나의 첫 단편소설 ‘Evol’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매일 아침 같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친절한 여성의 눈웃음에 반해 한 남자는 그 길을 같은 시간에 걷는다. 그녀와 마주치는 그 시간, 그 길은 이 남자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하루를 계획하고, 자신을 꾸미며 사랑한다. 꽤 시간이 지나 그는 드디어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밸런타인데이에. 정성껏 초콜릿을 준비하고 멋진 상자를 만들어 포장한다. 사랑을 고백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 그리고 사랑을 알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물 초콜릿.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 상자를 들고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치려고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걷는다.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에 꼭 껴안은 가슴속 선물상자가 진동한다. 


하지만 마주친 그녀의 눈인사는 다른 날과 달리 차가웠다. 비록 3초가량의 만남이지만, 남자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 남자의 마음속에서 앓게 된 첫 번째 heart break(비통). 결국 상처받은 남자는 눈물을 흘리다 분노한다. 해 질 녘까지 걷고 걷다가 허기져 가로수에 기대 선물상자를 뜯어 초콜릿을 미친 듯이 먹어치운다. 눈물 콧물과 함께…. 그러다 결국 급체해 죽는다. 거리 위에 초콜릿에 멍든 얼굴로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 그녀. 많이 놀라지 않고 119를 부르고 빨리 와준 앰뷸런스에 친절한 눈웃음을 띠며 그녀는 어디론가 걷는다.  


대략 이런 줄거리의 이야기다. 다음날 같은 시간, 교실 바닥에 앉아있는 나를 부르시는 교수님. 빨간색 잉크로 적힌 현란한 메모들과 점수가 쓰여있는 페이퍼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랩으로 한번 써봐. 자네를 정식으로 수업에 등록하겠네.”


난 이렇게 고급 문예창작반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그날 받은 내 이야기의 점수는 D마이너스였다. 요즘 중학생들로부터 래퍼가 꿈이라며, 자기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와서 자신의 스웨그를 둘러보고 펑가해달라는 DM을 자주 받는다. 사랑보다 사랑을 위한 이벤트와 포장지, 그리고 초콜릿 같은 장치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모두 D마이너스의 스웨그일지 몰라도 어쩌면 확실한 목표와 꿈이 있다는 건 참 멋진 것 같다. Love!


<타이거JK | 뮤지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