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Z는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가 만든 슈퍼로봇 캐릭터다. ‘마징가’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전투병기 ‘마신(魔神)’을 의미한다. 1972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마징가Z>는 후지TV에서 1974년까지 92회가 방영됐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새 영역을 개척한 <마징가Z>는 평균 시청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선 1950년대부터 ‘만화의 신(神)’으로 불린 데쓰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을 비롯해 <철인 28호> <용자왕 가오가이가> 등과 같이 슈퍼로봇을 등장시킨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하지만 이런 슈퍼로봇들과 달리 마징가Z는 세계 최초의 탑승형 로봇이다. 주인공 가부토 고지(한국명 쇠돌이)가 머릿속에 앉아 마징가Z를 조종한다는 설정 자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가슴의 V자 장치에서 나오는 강력한 빛과 로켓 주먹으로 악의 과학자인 헬 박사와 기계수(機械獸) 무리에 맞서 싸우는 마징가Z의 활약상은 어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마징가Z>는 1975년 한국에 수입돼 MBC에서 25회까지 방영됐다. TV보급률이 낮았던 당시 <마징가Z>가 방영될 때면 친구집이나 만화 가게를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징가Z>는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김청기 감독이 1976년 선보인 <로버트 태권V>는 <마징가Z>를 본떠 만든 작품이다. 마징가Z가 악당들을 물리칠 때 흘러나왔던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Z’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동요 아닌 동요로 오랫동안 불려졌다. 가사에 나오는 ‘인조인간’은 홍콩의 핸슨 로봇틱스가 개발한 인공지능(AI)로봇 ‘소비아’의 탄생을 예견한 듯하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획득한 소비아는 62가지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고, 인간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나가이 고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제작된 <마징가Z 인피니티>가 지난 주말 일본 전역의 극장에서 개봉됐다. 주인공 가부토를 비롯해 헬 박사와 아수라 백작, 기계수 등이 부활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AI시대에 개봉된 <마징가Z 인피니티>가 문화산업계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자못 궁금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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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사에 기록될 만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4일 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화유기> 2회는 두 차례 방송이 중단된 끝에 단축방송됐다. 9시에 시작한 드라마는 9시40분쯤 중간광고를 내보낸 뒤 다른 프로그램 예고편을 10여분 송출했다. 이후 방송이 재개됐으나 10시20분쯤 중단되고 15분간 예고편만 나왔다. 다시 6분가량 드라마가 방송되는가 싶더니 10시41분 돌연 종료됐다. 정상적으로 방송된 부분조차 ‘정상’은 아니었다.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날아다니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요괴로 변환시켰어야 하는데 원본을 내보낸 것이다. 충분한 기간·인력을 투입하는 대신 사실상 실시간으로 제작하는 ‘생방송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가 부른 참사로 봐야 한다.

 

 

tvN 측은 “CG 작업 지연으로 인해 미완성 장면 노출 및 장시간 예고로 시청에 불편을 드리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방송 2회 만에 초대형 사고를 내고 CG 작업 지연을 이유로 대는 건 구차하다. 일반 드라마보다 후반 작업이 더 오래 걸리는 작품이라면 사전제작 또는 반사전제작을 했어야 옳다. 준비가 덜 되었다면 편성 시점을 늦췄어야 한다. tvN은 이런 사고가 처음도 아니다. 2013년 <응답하라 1994> 때도 방송 도중 다른 프로그램이 갑자기 흘러나오고 과거 예고편이 재방되는 사고가 있었다. 제작진은 “편집 지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던 이한빛 PD가 외주제작사 직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tvN은 거듭되는 사고와 비극에도 자성은 없는 듯하다. 지상파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의식은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화유기 사태’는 물론 특정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대다수 드라마도 마치 생방송처럼 제작되고 있다. 신(scene)마다 쪼개서 촬영 현장에 전달되는 ‘쪽대본’이 일상이고,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곧바로 결방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방송 전파는 공공재다. 시청자에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볼 권리가 있고, 제작 현장의 노동자들에겐 보호받아야 할 권익이 있다. 더 이상 시청률이나 간접광고(PPL)를 핑계 삼지 말고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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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이어티 게임>은 tvN의 정종연 PD가 <더 지니어스>에 이어 기획·제작한 서바이벌 예능이다. 나는 <더 지니어스>에 그랬듯 또다시 <소사이어티 게임>에 과몰입 중이다. 정종연 PD, 당신의 재능은 대체….

 

tvN <소사이어티 게임>의 참가자들은 대립되는 두 가지 사회 중 한 곳을 선택한 뒤 소속원이 된다. 두 사회는 각각 매일 리더와 탈락자를 참가자의 투표로 선출하는 ‘높동’, 리더에게 대부분의 권한이 집중되며 반란을 통해서만 리더를 교체할 수 있는 ‘마동’이다.

 

서바이벌 버라이어티 <소사이어티 게임>이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다. 22명의 참가자들이 통제된 원형 마을에서 2주간 합숙하며 각종 미션을 통해 최후의 생존자를 가려낸다.

 

출연자들은 2주간 일상에서 완전히 격리돼, 세트장에서의 챌린지를 매일 수행한다. 패배한 팀에서는 탈락자가 배출되고, 마지막까지 생존한 이들 중 3명이 ‘파이널 챌린지’에 참가한다. 최종 승리 팀의 소속원들은 각자에게 누적된 만큼의 상금을 가져갈 수 있다.

 

촬영 당시의 하루는 한 회의 방송 분량으로 압축돼 한 주에 한 번씩 시청자들에게 보여진다. <소사이어티 게임>의 출연자들은 일상에서 고립되어, 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매일의 챌린지를 수행한다. 이 때문에 소속감과 몰입감, 분노 등의 감정이 매우 고조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덕분에 권력의 향방과 갈등 구도의 변화는 드라마틱해진다. 총괄 PD가 제작발표회에서 “우리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긴장과 갈등, 불편함을 제시한다. 우리 프로그램은 스릴러 영화”라고 밝힌 대로다.

 

가학적인 촬영 환경으로 인해 출연자들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선택을 하고, 카메라나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는 듯 투명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분란을 일으키며, 저열한 모습마저 드러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군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요즘 내 삶의 낙이다. 친구들과 이에 대해 수다 떨면 기쁨 두 배일 텐데 왜 내 현실 친구들은 <소사이어티 게임>을 안 볼까? 아쉬운 대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의 소사이어티 게임 관련 인기글을 탐독하며 주말을 보낸다. 그렇게 주말의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 주말이 끝날 때쯤 ‘현자타임’을 맞이하는 것이다.

 

<소사이어티 게임> 관련 인기 글들은 대개 출연자들로부터 ‘캐릭터’를 추출해 내어 희화화하고, 그주의 영웅에 대해 칭송하거나 악당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고, 글쓴이가 현실 사회에서 접한 사람들을 투사해 인물 분석 및 논평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 역시 내가 겪었던 불쾌한 경험을 상기시키는 출연자에게 창의적으로 악의적인 별명을 지어 붙여 찰지게 욕하는 게시물을 보며 쾌감과 대리만족을 느낀 적 있음을 고백한다. 또한 반성한다. 문제적 인물을 접한 뒤 자신을 돌아보거나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해당 인물을 ‘극혐’함은 평소 내가 경계하고 비판하는 태도였다는 점에서.

 

어떤 환경에 속한 개인이 모두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정 환경이 특정 행동을 도출시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사회학적 상식이다. 행위의 맥락을 보지 않고 개인을 쉽게 타자화하고 욕하는 것이 소모적이고 공허한 이유다. 문제적 인물의 등장에 대해,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고 제도를 정비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여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사회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문제를 일으킨 이에게 엄벌이 가해지기를 갈망하고, 가능하다면 그가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예컨대 강력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공분하며(교육 제도 및 억압적 환경에 대한 점검 및 피해자의 회복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채) 성인과 동등한 형사 집행을 주장하거나, 피의자의 인권은 고려할 필요 없다며 과감하게 얼굴을 공개하는 언론사에 환호하는 것(한 번 후퇴된 인권의 선이 다시금 전진하기 위해서 얼마나 지난한 분투가 있어야 할까?)과 같은 납작한 분노들….

 

사회에서 개인을 방출시키는 것으로 ‘해결됐다’고 믿고 쉽게 통쾌해지는 것은 사회 자체를 바꾸려는 고민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매회 탈락자를 결정지으며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을 <소사이어티 게임>으로 작명한 것이 기만에 가까운 이유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재밌기에 나는 이번주도 <소사이어티 게임>을 볼 것이고,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관련 글을 탐독할 것이며, 최후의 승자가 누군지 궁금해 하겠지. 분하다. 다만 잊지는 않기로 한다. 구조를 설계하고 연출한 이들이 있고, 많은 것이 그들 뜻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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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지난주에 종영한 tvN의 <비밀의 숲>은 쉽게 만나기 어려운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구성과 대사, 연출과 연기 모두 빼어났다. 지난 10년간 방영된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틀어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모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웰메이드’ 영화나 드라마가 찬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예민한 동시대의 정서 한구석을 찌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사 한마디일 수도, 아름다운 영상일 수도 있겠으나, 때로는 현란한 액션이나 장엄한 스펙터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나 드라마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시대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비밀의 숲>은 2017년 한국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정의의 승리’나 ‘법(집행)의 가치’ 같은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비밀의 숲>의 의미는 텍스트의 안보다 바깥에서 찾기 시작해야 옳다. 먼저 이 드라마는 지상파 방송사의 몰락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2012년 JTBC의 <아내의 자격>이나 2013년 tvN의 <나인>이 제작·방영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뉴케드(새로운 케이블 드라마)’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좋은 드라마’는 케이블이 만든다는 믿음까지 생겼다. KBS, MBC, SBS가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는 드라마를 다시 만들 수 있는 날이 올까? 드라마만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 경영진은 과연 위기의식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밀의 숲>은 능력만 있다면 배경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시대적 변화상도 보여준다. 극본을 쓴 이수연 작가는 이전에 단막극 한 번 쓰지 않았던 신인이다.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드라마 습작을 해왔다고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구성작가 출신이다. 둘 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엘리트 작가코스’를 밟지 않은 셈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가능하다. 소설가의 문학적 베이스에 웹툰 작가의 재기, 기자의 취재력, 무엇보다도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시청자와의) 소통 능력을 갖추었다면 말이다. 간판과 스펙이 성공을 결정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를 기대한다.

 

<비밀의 숲>은 완전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졌다. 시청자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미세조정을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특성상 완전 사전제작은 위험하다는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정설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하나, <비밀의 숲>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독점 공급권을 주는 조건으로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로부터 36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당 20만달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본방 한 시간 후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비밀의 숲>을 시청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5000만달러를 투자하고 극장·넷플릭스 동시개봉을 결정한 사실은 크게 화제가 되었으나 <비밀의 숲> 사례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넷플릭스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 드라마 판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방송 콘텐츠 산업의 지형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중문화산업계는 과연 적절한 대비를 하고 있는 걸까?

 

텍스트 내적인 의미도 결코 작지 않다. 주인공 황시목이 어릴 적 머리 수술로 인해 감정을 잃었기 때문에 비로소 ‘훌륭한’ 검사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사뭇 역설적이다. 감정이 없어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니! 이 히어로 로봇 검사를 살짝 미소짓게 만든 한여진 경위도 (황시목과는 달리) 아무런 사적 정보도 제공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서적 투사를 하기 매우 어려운 캐릭터이다. 출연진 중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이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셈이다. 비밀의 숲의 열쇠를 쥐고 있던 유재명 수석의 투신자살은 “누군가 죽어야 해결되는”, 혹은 “누군가 죽어도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편린을 보여준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던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현실도.

 

마지막으로, <비밀의 숲>은 학자와 비평가들에게도 질문을 하나 던진다. 소설과 시,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는 진지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인데, 텔레비전 드라마는 언제나 미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게임 콘텐츠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소비하는 문화 텍스트이다. 비평의 장이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도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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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에 가장 각광받는 드라마 장르는 단연 정치사극이다. 권력 투쟁의 긴장감과 리더의 자격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이야기는 선거전이 한껏 고양시킨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탄핵 정국이라는 변수와 무관하게 대선이 예정되어 있던 올해에도 일찌감치 각 방송사가 공들여 준비한 대작 사극들이 막강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연초부터 세 편의 사극이 방영된 가운데 제일 눈에 띄는 작품은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이다. 홍길동 이야기를 극화한 이 드라마는 박근혜 정부 시대에 유행한 주요 사극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한층 진화한 화두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지난 4년간 등장한 사극에서 제일 두드러진 특징은 망국의 정서였다.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는 선조 연간과 임진왜란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 유독 많았고 뱀파이어, 귀신, 흑주술사 등이 나라를 지배하는 기이한 판타지 사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그려낸, 무능하거나 사악한 리더 치세하의 절망과 분노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와 맞물리며 지금 이 시대의 어두운 현실과 정확하게 조우했다. <역적>에 이르러 이 같은 정서는 더욱 뚜렷해진다. 시기적 배경부터가 조선 최악의 폭군인 연산군 시대이며, 주인공은 그 폭정의 짐을 온몸으로 떠받치며 살아야 했던 노비들이다.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갈등과 긴장의 축을 이루는 홍길동(왼쪽)과 연산군.

 

익히 알려진 고위관리 가문의 서자 출신이 아니라 천민 출신으로 그려지는 홍길동(윤균상)은 그보다 먼저 “씨종의 아들로 태어나 씨종으로 자란 사내, 천하디 천한 이름 아모개를 받아 아모개로 죽은 사내”인 아비(김상중)의 비극적 운명을 대물림받는다. 아무리 특별한 재주를 지녔어도 ‘개돼지’처럼 엎드려야 살 수 있다는 체제의 모순이 내화된 노비들의 일상은 전쟁과 역병의 창궐로 점철된 기존 사극의 선명한 지옥도보다도 더 뿌리 깊은 절망을 표현한다. ‘헬조선’의 정서가 전복의 분노라기보다 냉소와 체념에 가까운 것임을 생각할 때 <역적>만큼 이를 정확히 반영한 작품도 드물다.

 

하지만 민중사극으로서 <역적>의 진정한 의의는 이 절망적 현실인식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결코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동안 민중사극을 표방하는 많은 작품들이 주인공의 비범함을 강조하면서 민중은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하는 한계를 반복해왔으나 <역적>은 이를 뛰어넘는다. 예컨대 길동이 아기장수이자 백년 만에 탄생한 역사라는 점은 단순한 영웅주의적 설정과는 다르다. 길동 모친 금옥(신은정)과 아모개의 대화 신에서 날개 뼈를 지니고 태어났다가 갑작스럽게 죽은 이웃집 노비 아들의 일화나 아기장수 못지않은 힘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힘을 잃은 아모개의 어린 시절 회상은 이것이 특별한 영웅의 서사라기보다 민중의 억눌린 꿈과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역적>이 써나가는 민중서사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평범한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화형 사건에서 당시 주류 가치관을 거스르는 독창적 역사관을 발견하고 그 기원에 자리한 민중문화를 추적한 이 책은 잘 알려진 대로 거대담론에 밀려난 주변부 문화의 역동성을 재평가한 미시문화사의 고전이다. <역적> 또한 기존 영웅적 주인공 위주의 사극이 놓쳤던 민중들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힘에 주목한다. 얼핏 극 초반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모개의 뛰어난 활약처럼 보이지만 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그 이면에는 엄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생존전략을 찾고야 마는 민중들의 은근한 저항담론과 낙천적인 유머가 아모개 힘의 원천이었음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참봉 부인에게 혼나는 아비를 바라보며 “울 아버지가 그러는디 개가 짖을 땐 이밥 먹는 생각 하면 된대”라며 위로하는 어린 노비들의 소소한 대화로 드러나기도 하고, 아모개가 억울한 재판을 당했을 때 함께 목숨을 걸고 증인으로 나서주는 감동적인 연대의 에피소드로 극화되기도 한다.

 

그러다 초반을 지나면서 점차 민중의 힘으로 부각되는 것은 바로 “듣는 귀”의 힘이다. 아모개가 주막에서 폐비 윤씨와 그 권력의 흐름에 대한 양반들의 대화를 듣고 가족의 목숨을 구한 것처럼 이 ‘듣는 귀’는 훗날 길동이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할 나라님을 이용해 원수를 치는 어엿한 ‘정보전’의 형태로 발전한다. 연산(김지석)이 왕으로서의 권력을 폭력적으로 행사한 첫 사례가 사초와 언로를 통제하는 무오사화였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민중의 정보력은 훗날 거대권력에 맞서는 저항담론으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역적>이 기존의 민중사극보다 진화한 지점은 하나 더 있다. 홍길동의 역사는 단지 아버지의 세계를 계승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아모개의 혁명이 ‘노비도 같은 인간’임을 선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길동의 혁명은 ‘여성 또한 인간’임을 선언하는 지평까지 확대된다. 가령 아모개가 세 자녀 중 장남 길현(심희섭)은 진사나 참봉, 차남 길동은 장수가 되길 원하는 소망을 이야기할 때 막내딸 어리니(정수인)의 꿈은 침묵 속에 남아 있었다. 이는 길동의 세대가 직접 해결해야 할 역사다. 8회에서 길동이 여동생을 닮은 가령(채수빈)에게 부엌일을 만류하며 “여자 혼자면 밥하고 빨래하고 음식상 나르고 그러는 거야? 앞으로 그러지 마. 우리가 먹을 술은 우리가 걸러먹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진화한 역사가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명확히 일러준다. 민중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가는 <역적>의 행보에 계속해서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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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형사들의 협력 수사를 다룬 <공조>가 6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새해 첫 흥행 대박영화로 떠올랐다. 영화계에선 벌써부터 올해 극장가 최대 흥행 키워드로 ‘북한’을 지목한다. 톱스타와 유명 감독을 내세운 기대작들 가운데 유독 북한 소재가 많아서다. <변호인> 양우석 감독과 정우성, 곽도원이 뭉친 <강철비>, <신세계> 박훈정 감독에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이 합류한 <V.I.P>, <군도> 윤종빈 감독과 황정민, 조진웅, 주지훈 등이 협력한 <공작> 등 참여명단만 봐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핵심요인으로 분단의 긴장이 액션 블록버스터의 매력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등 이른바 ‘꽃미남 북한 용병 3부작’의 흥행을 지나 2015년 <연평해전>, 지난해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올해의 분단 블록버스터 러시 현상까지, 북한 소재가 점점 본격 오락물로 소비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분단 현실이 장르물의 인기 소재로 떠오른 것은 최근 몇 년간 TV 드라마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질 제2차 한국전쟁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2009년 KBS 드라마 <아이리스>가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의 한 장면.

 

2010년에는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MBC <로드 넘버원>, KBS <전우> 등 두 편의 전쟁드라마가 액션블록버스터로 제작되었고, 2011년에는 남북한 첩보원들과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대결을 그린 SBS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 2013년에는 <아이리스2>가 방영되었다. 그런가 하면 2014년 방영작 SBS 정치액션스릴러 <쓰리 데이즈>에서는 부패한 자본가와 대통령이 연루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을 핵심 미스터리로 풀어낸 바 있고, 같은 해 SBS <닥터 이방인>은 남북 고위층의 음모에 휘말린 탈북인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의학드라마에 첩보스릴러를 결합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화제를 모았다.

 

주목할 지점은 이러한 트렌드가 구축된 시기다. 가령 냉전이 종식되고 군사정권이 몰락한 1990년대 들어와 대중문화 속 북한 관련 콘텐츠에 일어난 가장 뚜렷한 변화는 반공 색채가 희미해지고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의 묘사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영화 쪽에서 <간첩 리철진>,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간첩과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변화를 주도했다면, 드라마에서는 MBC 6·25 특집극 <이방인>, KBS 일일극 <우리가 남인가요>처럼 한민족으로 공존을 모색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분위기 전환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향이 2000년대 후반 보수정권 등장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다시 한번 전환을 맞았다. 보수정권 이후 방영된 북한 소재 드라마들에서는 남북 긴장관계가 직접적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아이리스>와 <아이리스2>에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를 주된 서스펜스 도구로 사용하며, <쓰리 데이즈>에 묘사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은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가운데 지난해 방영을 시작한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는 등장 당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분단의 비극을 장르물로 소화하는 최근 트렌드를 거슬러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장편 가족극 최초로 탈북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남북 갈등이 고착화되면서 희미해져버린 통일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북한 고위 엘리트층과 남한의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만남이라는 설정을 통해 기존 남북한 묘사의 위계적 구도를 뒤집은 도입부도 신선했다.

 

드라마는 평양대를 졸업한 엘리트 김미풍(임지연)이 고위 관료 아버지의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가족과 탈북을 감행하고 남한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고한 상류층에서 남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난한 소수자가 된 미풍 가족의 시련과 북한 ‘꽃제비’ 출신 박신애(임수향)가 남한의 속물적 자본주의에 눈 떠가는 모습 등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탈북자의 현실이 다채롭게 펼쳐진 점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이자 미풍의 친조부인 덕천(변희봉)의 1000억원대 재산을 둘러싼 대립, 미풍과 남주인공 이장고(손호준)와의 로맨스가 본격화되면서부터 드라마는 초반의 의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미풍과 장고의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이나 미풍의 신분을 가로채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신애의 악행이 ‘막장드라마’의 뻔하고 자극적인 전개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결과 조작, 납치, 누명, 폭행과 같은 막장 범죄 행각에 기억상실, 실신, 엇갈림 등 갈등을 무한연장하기 위한 진부한 장치들이 모조리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애초 기획의도였던 탈북인의 아픔과 분단의 비극적 맥락은 뒤로 저만치 밀려난다.

 

예컨대 장고의 모친이 미풍을 반대하는 이유에는 가난 혐오와 탈북인에 대한 소수자 혐오가 동시에 작용하지만, 막장드라마의 전형적 갈등 구도를 반복하면서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이 휘발되어 버린다. 신애의 악녀 묘사도 마찬가지다. 신애가 미풍을 미워하고 덕천의 재산을 탐내는 이유에는 계급적 콤플렉스와 생존 본능이 밑바닥에 깔려 있으나, 그러한 심리는 막장드라마 특유의 ‘악행 에스컬레이팅’에 가려진 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애의 ‘막장 행각’이 점차 극단적으로 가면서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을 매회 경신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이야말로 최근 북한 콘텐츠의 상업화, 오락화 경향과 그 위험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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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JTBC 드라마 <밀회>를 보던 때가 떠오른다. 2014년 3월에 시작해 5월에 끝났으니, 세월호 참사의 한복판이었다. 그때만 해도 세월호 뉴스와 <밀회>의 간극은 아주 커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 유아인의 팬 계정을 둘러보다가 <밀회>의 짧은 영상을 보았고,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얼떨결에 ‘정주행’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성지 드라마’ 논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문제의 장면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다음은 예상하는 대로다. 예술대학 부정입학자로 정유라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어떤 장면에선 정유라에 이어 최태민이 호명되었으며, 정유라의 어머니는 드라마의 주무대인 서한예술재단 이사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무속인이고, 정유라는 출석도 하지 않고 큰소리치는 안하무인, 교수들은 그걸 봐주는 빌미로 한몫 챙겨보려는 속물들이고….

 

그뿐만 아니다. 서한그룹 회장의 딸 서영우는 호스트바 출신의 젊은 남자에게 수입 의류매장을 차려주는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이서 회사 이름까지 지어놨다? 서한의 서, 서영우와 신우성의 우, ‘서우’.”(여기서 고영태의 고, 최서원(최순실의 개명한 이름)의 원, ‘고원기획’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차움(Chaum)’ 간판도 나온다. 오혜원은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서한그룹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그들의 더러운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대신 제 실속을 차리는 “작은 여우”, 말하자면 서한그룹의 ‘비선 실세’다. 어두운 밤, 필기체의 차움 간판은 그런 오혜원의 뒤에서 지극히 명백한 태도로 형형히 빛나고 있다.

 

배우 김희애와 유아인이 출연한 JTBC 드라마 '밀회' 포스터

 

작가는 다 알고 있었나? 많은 이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린다. <밀회>의 정성주 작가는 이에 대해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을 내놨다. 추측건대 이것은 꼼꼼한 취재가 만들어낸 우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내게 오히려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쪽이다. 이것이 어떤 ‘전형’이고, 저 세계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도 지금과 같은 우연이 가능하다면, ‘최순실 게이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무게는 지금보다 수십 배로 더 무거워진다. 최순실과 박근혜를 부순다고 해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세계.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괴하지만 보편적인 게임의 법칙. 우리와 먼 데 있다고 생각했던 그 게임의 법칙은 결국 300여명을 바닷속에 수장하는, 피부에 와 닿는 공동의 파국을 만들어냈다.

 

<밀회>의 안판석 감독은 말했다. “테두리를 벗어나는 게 불안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인간은 영원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밀회>는 한마디로, 거기서 벗어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오혜원이 나이 사십에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내가 문제인지 사회가 문제인지, 사회가 문제라면 나는 얼마나 공범 노릇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걸 박차고 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채로 체념하고 산다는 건 얼마나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일인가.”(<아이즈>, 2014)

 

오혜원은 이선재(유아인)라는, 트랙에서 비켜난 자유로운 존재를 만나는 희귀한 기회를 얻는다. <밀회>는 그렇게 테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끝이 난다. 아마도 우리가 <밀회>에서 다시 보아야 할 것은, ‘숨은그림찾기’가 아니라 이런 것이 아닐까.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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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결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의 키워드’를 꼽는 일이 이번 연도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진 해도 드물다. 그 어떤 말을 떠올려도 2016년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묻혀서는 안 될 ‘올해의 키워드’를 발굴하고 강조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올해 드라마계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연초 방송가를 집어삼킨 <태양의 후예> 신드롬부터 현재 방영 중인 <도깨비> 열풍까지, 2016년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로 시작해서 김은숙 작가로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그 못지않게 중요한 ‘낮은 목소리’들이 분명 존재했다.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박연선 작가의 <청춘시대>를 관통하는 ‘여성 연대의 서사’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성과다.

 

상반기 tvN에서 방영된 <디어 마이 프렌즈>는 평균 연령 60대 여성들의 생기 넘치는 인생 찬가를 그렸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70대 버전이라 불렸던 72세 동갑내기 희자(김혜자)와 정아(나문희)의 뜨거운 우정, 남편에게 배신당한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왔던 난희(고두심)와 ‘첩의 딸’이자 ‘불륜녀’라는 주홍글씨에 시달려왔던 영원(박원숙)의 애증관계, 딸 난희에게 상처를 준 영원을 보듬어주는 쌍분(김영옥)과 영원의 유사모녀관계 등 그동안 ‘할머니, 엄마, 아줌마’로 뭉뚱그려졌던 중노년 여성들의 개성적 표정과 다양한 유대의 드라마가 그 안에 있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프렌즈>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억압당한 중노년 여성들의 오랜 아픔을 들여다본다면, <청춘시대>는 흔히 ‘청년 담론’에서조차 배제당한 20대 청년 여성들의 내밀한 상처를 어루만진다.       

 

예컨대 이 드라마를 주인공 중 한명인 예은(한승연)의 남자친구 고두영(지일주)의 시점으로 다시 쓴다면 학벌 중심 사회에서 소외당한 청년 세대의 전형적 비극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춘시대>는 그의 학력 콤플렉스 때문에 학대당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으며 데이트 폭력, 여성혐오 문화처럼 여성의 시점에서 시급한 청년 문제가 무엇인가를 환기시킨다.

 

또 다른 주인공 진명(한예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학자금 상환과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진명은 소위 ‘빈곤한 청년세대의 초상’이지만, 드라마는 여기에 남성이라면 겪지 않았을 직장 내 성폭력을 더하며 청년 문제를 여성의 시점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청년 여성들의 유일한 위로는 공적 서사가 주목하지 않는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연대의 목소리다. 극 중에서 예은이 극단적 절망에 빠진 진명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은 그 절박한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려준다.

 

노희경 작가와 박연선 작가가 올해의 신작에서 공통적으로 여성 유대의 드라마에 주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상처 입은 비주류 인물들의 목소리에 늘 예민하게 반응해왔던 두 작가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게 치유해야 할 상처로 여성 이야기를 선택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비리마저 ‘두 아줌마의 국정농단’으로 요약되는 여성혐오 시대에 더욱 소중하게 되새겨야 할 목소리들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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