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얼마 전 만난 한 록 밴드의 멤버는 “이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달달한 음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얘기하는 달달한 음악이란 선율과 사운드가 편안하게 귀에 감기는 음악을 가리킨다. 록 밴드 본연의 강력하고 우렁찬 음악보다는 무난하게 잘 들리는 음악이 어쩔 수 없는 이 시대의 추세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확실히 근래 대중음악은 상당부분 연성화, 경량화의 경향을 띠고 있다. 음악이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힘 혹은 서정성이란 수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조금은 야들야들하고 심지어 나약하게 들리는 음악들이 많다.근래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되다시피 한 재미에의 민감성도 이러한 대중음악의 경량화에 한몫한다.


 여기에는 대중의 호응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이 크게 작용한다. 예술분야 쪽 사람들의 말로 ‘떠야’ 존재감을 확보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또한 현재의 다수 대중이 힘차고 야수적인 것보다는 중력이 거세된, 귀엽고 상큼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시각에 바탕하고 있다. 내지르고 아우성치며 포효하는 20대 청춘도 그렇다는 것이다.


분명 일리가 있지만 우려되는 것은 음악가들이 솔직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현재의 대중가요가 진정한 자기의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 대중의 반응에 기대는 상업적 고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대의 뜨거운 심장으로 마구 아우성치고 싶어도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불가피하게 부드러운 쪽으로 가고 있다고나 할까.


앞서 예를 든 것처럼 강력해야 제 맛인 록 밴드마저 그러니 할 말이 없다. 음악이 아티스트 자신을 담지 못하거나 우선이어야 할 자기만족과 거리를 둔다면 당장의 인기는 가능하나 오랜 생명력은 얻지 못한다. 근래 음악이 장수하기 어렵고 전설이 나올 수 없는 시대라는 일각의 비관이 이에 기초한다.


인디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출처: 경향DB)


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이러한 흐름이 사회적, 경제적 현실과 너무도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입사에 목을 매고 있을 만큼 차디찬 경제현실은 특히 청춘들에게 가혹하다. 젊음의 분노가 솟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분노가 은폐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삭제 수준이다.


서구든 우리든 역사적으로 힘든 시절에는 청춘의 함성과 삿대질을 담은 음악이 등장하곤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거친 내용의 가사를 취한 힙합 음악이나 펑크 밴드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가 말해준다. 만약 젊음한테 지금이 힘든 때라면 다는 아니더라도 비타협적이며 강성 기조의 음악이 일정한 지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비주류 음악계에서 그런 음악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다수의 무관심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잔인하게 말해 ‘꼽사리’랄까. 그게 싫어서 애초 헤비한 음악을 하다가 연성의 음악으로 전향한 밴드는 얼마든지 있다.


연성화, 경량화와 함께 묶을 성질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성화’의 경향도 두드러진다. 20대 여성이 문화소비의 주체로 부상하다 보니 여성적인 음악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요사이 인디 음악계에 부드러운 음악이 넘쳐나는 게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밴드가 출연하는 라이브 클럽을 가보면 관객의 3분의 2가 젊은 여성들이다. 오죽하면 일부 인디 음악을 두고 ‘된장녀들을 위한 요들송’이라며 비아냥거렸겠는가.


추세는 거부하기 어렵고 생계는 무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중예술은 때로 그러한 압박을 거스르며 앞으로 돌진하는 데서 새로움이 주조된다.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주눅 든 연성화와 경량화는 결국 예술에 가장 중요한 시도와 실험의 분위기를 앗아가 버린다. 아티스트 본연의 실험을 하지 못하니 다채로운 음악이 나올 수 없다. 다시 또 결론은 다양성의 부재로 나온다. 우리 대중음악은 메뉴가 너무 빈약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jjinmoo@hanmail.net



1990년대 후반까지 길거리에서 버젓이 음악테이프를 팔았던 리어카상의 매출은 전체 대중음악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지분이 컸다. 정품 아닌 불법 음반을 파는 리어카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길보드’라고 했다. 비록 불법이기는 하나 미국의 빌보드 차트처럼 음악의 인기흐름을 공정히 포착해 테이프를 제작한다고 해서 ‘길가의 빌보드’로 일컬은 것이다. 


빌보드는 어떤 곡과 앨범의 판매량과 방송횟수를 정확하게 집계해서 순위를 매기는 잡지로 당대 음악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절대적 바로미터였다.


 가요보다는 팝을 열심히 들었던 시절인 1970~80년대에 우리 음악인구는 빌보드를 마치 신주단지처럼 섬겼다. 음악을 꽤 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빌보드 차트 1위부터 10위까지는 달달 외워야 했다. 마니아들의 음악상식 우열을 가리는 배틀은 대부분 빌보드가 기준이었다. 


하지만 빌보드는 우리에게는,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멀고도 먼 존재였다. 한국 음악 관계자들의 가장 오래된 푸념은“우리에게는 빌보드와 같은 공신력을 가진 차트 잡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새천년에 들어선 이후 빌보드의 위상은 그저 단순 참고자료로 급락했다. 올해만 해도 무려 8주간 1위를 차지한 여가수 칼리 레 젭슨의 노래 ‘콜 미 메이비(Call Me Maybe)’의 경우, 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테지만 국내에서는 반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전반적인 미국 팝의 위축, 팝에 대한 감정중독, 흑인음악에 대한 쏠림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우리 대중가요의 급성장이다. 우리 젊은층 대다수는 팝에 목맸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가요에 열광한다. 당연히 미국의 음악 현황에 별 관심이 없다.


또한 최근 한국의 대중가요는 ‘K팝’이라는 조금은 국제적인 어휘로 포장되어 세계 음악팬들과 친밀해지고 있는 승승장구의 상황이다. 멀게만 느껴진 빌보드가 가시권, 사정권에 들어온 것이다. 


미국 LA 시민들이 가수 싸이 앞에서 ‘강남스타일’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출처; 경향DB)


게다가 국제 문화생태계에서 과거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더 이상 서양은 동양을 타자(他者)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시아 음악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미국 음악계의 전통적 배타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간의 열패감은 우리 특유의 광(狂)스피드에 의해 뒤로 물러나고 있고 마침내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의 빌보드 차트 상륙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이미 보아와 ‘원더걸스’가 그토록 간망해오던 빌보드 차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는 단 한 주에 그치긴 했지만 2009년 싱글차트 76위에 올랐다. 3년이 지난 지금 빌보드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100위까지 순위를 게재하는 ‘핫 100’이라는 이름의 빌보드 싱글차트에 64위로 데뷔하더니 이번주에는 무려 53계단이나 상승해 11위로 점프했다. 지금의 상승세라면 꿈의 톱10은 물론, 나아가 1위 자리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빌보드의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일대 센세이션, 한국 대중음악사의 신기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저 옛날 1963년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가 빌보드 1위에 올랐지만 당시 고조된 일본의 반미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유화책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후 1979년 여성듀오 ‘핑크 레이디’의 ‘키스 인 더 다크(Kiss in the dark)’가 37위에 오른 것을 끝으로 막강 일본도 빌보드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싸이의 현재 상황만으로도 K팝이 아시아 음악의 선두로 치고나가고 있음은 명백해졌다. 세계시장 진출의 측면에서 일본과 중국에 앞서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을 두드린 끝에 따낸 결실이다. 요원하기만 했던 미국 음악시장이 손에 잡히는, 믿지 못할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비틀스의 영국, 아바의 스웨덴을 마냥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지적이고 고매하며 부유한 사람들, 그 상류계층과 그 정서가 사회생활의 영역을 관리통치할지 몰라도 결코 지배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대중음악이 그 중 하나로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중에는 학벌이든 경제력이든 고급 아닌 중하급이 널려 있다. 우아하고 잘난 계급의 정서는커녕 속물과도 같은 하류인생의 표현 정서가 흥행대박을 터뜨린 역사적 사례는 즐비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역설적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정장에다 선글라스를 끼고 잔뜩 멋을 내고 있지만 누가 봐도 품위와 격조가 없다. A급이 아니라 뭔가 낮고 부족하고 망가진 것 같은 B급이다. 광대요, 피에로다. 가슴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하다며 ‘한국의 베벌리 힐스’ 강남 소속임을 떠들어대지만 말춤을 추고 훤칠한 출연자들에 끼어 있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다. ‘루저’가 ‘귀빈’이라고 우기는 꼴이랄까.


 이 역설이 그런데 팬들에게 재미를 주고 심지어 쾌감까지 선사한다. 만약 슈퍼미남 장동건이나 강동원이 ‘강남스타일’ 하며 정통과 우아함을 드러냈다면 호감은커녕 반감을 불렀을지 모른다. 속물적 B급 코드는 때로 대중음악의 파괴력을 웅변하며 그것은 일류 아닌 이류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제공하는 친화력이 기반이다.


열풍은 상당 부분 1996년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를 닮았고 세계적으로는 클론과 같은 해에 나이 든 두 스페인 아저씨가 춤추며 전한 ‘마카레나’의 열기를 연상시킨다. 두 곡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인연이 없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은 음악적 현상을 넘어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며 지구촌 곳곳을 달구기 시작한 글로벌 현상으로 점프했다. 모처럼 세대와 지역을 망라한 진정한 가요대박이다.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한 장면. (출처: 경향DB)


폭발적 인기를 얻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중독성을 일으키는 전자음의 리듬 반복이 무아지경을 연출하는 음악적 매력이 먼저일 것이다. 흔히 트랜스(Trance)라고 일컫는 이러한 몽환적 분위기에다 노랫말은 23년 전 변진섭의 ‘희망사항’ 이래 가장 재미난 남녀 짝짓기 가사라는 말이 나온다. 당연히 입에 딱딱 달라붙는다. 거부할 수 없는 재미,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흥은 대규모 음악현상의 기반이다. 따라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제목과 가사 일부를 바꿔 ‘태릉스타일’ ‘영등포스타일’ ‘뉴욕스타일’ ‘변태스타일’ 등 자기 식으로 만드는 변용(變用) 또한 무궁하기에 인기 확산은 필연적이다.


아이돌 댄스음악 하면 떠오르는 인위적인 홍보와 마케팅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작위적인 인기몰이 없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입에서 입으로 퍼져 마침내 국제적으로 번진 자연적 현상이다. 여기서 진짜 한류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류 지평 확대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은 ‘강남스타일’도 결국 댄스음악이라는 점에서 쉬 동의가 되지 않는다.


한류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메시지 측면이다. 사람들은 이 곡을 통해 잘난 사람들과 1등, 1%가 지배하는 불평등 세상, ‘쿨’과 품격을 압도적 우위에 놓는 서열사회에 대한 은근하고도 유쾌한 린치를 읽는다. 서민대중의 무망이 꼭짓점에 오른 2012년이라서 더욱 노래의 위안 기능은 상승한다. ‘강남스타일’은 확실히 ‘핫’하며 싸이는 낮은 위치에 주목하는 소셜테이너의 요소가 보인다. 그가 시사주간지 ‘타임’에 “뮤지션이 되지 않았더라면 난 십중팔구 루저가 돼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은 예사롭지 않다.


찰리 채플린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오로지 단 하나,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바로 광대다. 광대라는 존재는 나를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광대의 몸짓과 언어에 즐거움을 만끽하고 동시에 삶의 페이소스를 맛보듯이 우리는 ‘강남스타일’에 마구 춤추고 이어서 그 속에 도사린 조롱의 의미에 살짝 공감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한 사람도 제대로 버티기 힘든데 가뜩이나 여럿이 모이게 되면 더더욱 끌고나가기가 어렵다. 대중음악에서 솔로 가수보다 그룹이나 밴드는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성원 사이의 결속력 유지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증명한다. 무명일 때는 이 문제가 잠복해 있다가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골칫거리로 불거지곤 한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도 한때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팀’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밴드의 초기 리더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브라이언 존스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그룹을 결성했고 멤버를 골랐고 그룹명도 지었으며 무슨 음악을 해야 할지도 선택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뒤 약물중독, 괴팍한 자신의 성격 등에 의해 팀 내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작곡능력이 부재했던 그보다 곡을 쓸 수 있었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를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주변인들의 의도는 결정타였다. 매니지먼트 측은 경쟁관계에 있던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콤비에 맞설 수 있는 둘의 조합 즉,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라는 짝이 절실했다. 브라이언 존스는 소외됐고 결국은 버림을 받았다. 당시 동료였던 빌 와이먼에 따르면 “그가 에너지 낭비를 자초했고 스스로 꺼져버렸다”고 하지만 멤버들 간의 멀어진 심정적 거리를 봐선 요즘 말로 ‘왕따’의 요소가 틈입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룹 티아라 (출처 : 경향DB)


1969년 사실상 그룹에서 쫓겨난 그는 한 달도 채 안되어 자신의 집 풀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사인은 헤로인 과용이었다. 그룹을 뿌리째 흔들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롤링 스톤스는 이를 거뜬히 극복하고 더 위력적인 스탠딩으로 1970년대를 호령하는 데 성공한다. 브라이언 존스의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기는 해도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멤버들끼리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더 이상 브라이언 존스와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시점에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진 탈퇴 권유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브라이언 존스 스스로가 그룹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돈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매니저나 음반사 관계자들의 압박이 이 과정에서 작용했다면 롤링 스톤스는 아마도 이미지에 상당한 훼손과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전설의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도 애초 그룹의 실세는 시드 배릿이라는 인물이었지만 치유불능의 약물복용에 시달리던 그는 1970년 어느 날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퇴각했고 팬들은 그가 실종사한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고 나이 환갑을 넘긴 2006년에 사망하면서 뉴스지면을 장식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활동 당시에 시드 배릿에게 헌정하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 내부의 역학이 작동했던 간에 그룹 성원들이 트러블 관리의 주체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밴드는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멤버들끼리의 충돌 때문에 역사적으로 해체가 잦다. 그래도 문제가 생겨난다면 그룹 성원들이 자주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게 안된다면 그것은 그룹이 자발적으로 모인 팀이 아니라 상업적 결과를 겨냥해 음악자본이 꾸린 조립식 팀이라서 그럴 것이다. 조립식 그룹은 성원들의 자기결정력이 없고 따라서 결속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누리꾼들을 흥분시킨 이번 걸 그룹 ‘티아라’ 문제는 K팝 세계진출을 일궈낸 아이돌 그룹의 태생적 한계를 일정부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기획사는 결속력을 위해서 음악, 스케줄, 멤버들 간의 균형 등 제반 사항 관리를 차츰 그룹에 넘기고 자신들은 조력자로 물러나는 것이 좋다. 물론 이게 우리 음악환경에서 쉽지 않기에 더 걱정스럽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서강대 운동장 둘레의 나뭇가지에는 아마도 졸업반 학생이 쓴 듯한 ‘7년째 고교생’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나가며 쳐다보는 학생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 여섯자 짧은 글에 고교 3년 지옥에 이어 대학 4년마저 과제, 학점 그리고 스펙 쌓기에 매몰된 현재 대학생들의 씁쓸한 현실이 축약돼 있다. 10대에는 ‘입시’에, 20대에는 ‘입사’에 옥죄인 우리 청춘들의 우울한 초상이 눈에 밟힌다.

 

이 대학은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초대가수 무대를 놓고 학생회와 학생들 간에 갈등을 빚었다. 이름이 생소한 인디밴드를 초청하려는 학생회와 유명 가수 초청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기를 요구하는 일부 학생들 사이의 의견대립이었다. 이러한 대치상황이 근래 갑자기 터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거대담론이 퇴조하고 음악계에선 아이돌 스타가 출현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불거져왔다.

 

1998년 한 대학 총학생회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대학 축제에서 가장 보고 싶은 가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주인공은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걸그룹 ‘S.E.S’였다. 이전 축제무대에선 방송과 주류 음악계에서 펄펄 나는 인기가수가 오히려 더 소외됐다. 대중적 위상보다는 그 가수의 노래가 대학생들이 갖는 개혁과 변화의 가치에 부합하느냐의 여부가 섭외의 절대조건이었다. 단골은 정태춘, 박은옥, 김광석, 노찾사, 꽃다지, 윤도현, 강산에 등이었다. 인기가수라도 최소한 청춘의 폭발적 이미지를 가져야 대학 축제무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봄축제를 벌이고 있는 성균관대 학생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1990년대 중후반 아이돌 음악산업의 개화에 따른 트렌드의 이동은 ‘대항문화’의 공간인 대학가에도 여지없이 찾아들었다. ‘대중문화’의 급습이었다. 고등학생 때 아이돌에 열광하던 학생들이 막상 대학 캠퍼스에 들어와서는 과거 취향을 들키는 게 두려워 경험도 없는 민중음악, 포크송 가수를 열심히 읊어대는 것은 그래도 과도기였다. 2000년에 만난 한 대학교수는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이 처음에는 정태춘, 안치환을 들먹이지만 속내를 드러내는 막판이 되면 결국 HOT와 핑클 얘기로 끝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대학가 축제무대는 방송을 점령한 유명 아이돌 가수들로 판이 바뀌었다. 주류 가수가 축제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한 대학 축제에 출연한 ‘원더걸스’를 보려다가 관객이 밀쳐 다치는 불상사도 있었다. 어떤 가수가 오느냐가 그 대학의 위세를 재는 척도로까지 부상했다.

 

당장의 유명 가수를 눈앞에서 보고 싶고 대중가요의 힘이 소수 아닌 다수의 공감에 바탕한다는 점에서 친숙한 주류 인기가수 출연을 바라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생 대다수의 의견 배제와 묵살은 곤란하다. 그러나 대학 재학시절은 잘 알려진 것, 당연한 것도 의문시하고 현실을 다르게 때로는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는 기간이다. 그래서 대학생만의 음악, 대학만의 음악공간이 존재한다.

 

학생 개개인의 취향 조정을 떠나 이러한 캠퍼스 장르의 고유화는 전체 대중음악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토양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다. 1980년대 우리 대중음악이 황금기로 기록되는 데는 민중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대학 공간에서 능동적으로 소화되면서 장르 다양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학가의 라디오방송이 반(反)상업적인 얼터너티브 록의 산파역할을 하면서 나중 대중음악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 1990년대를 강타한 록의 영웅 R.E.M과 너바나는 대학생들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음악 울타리에 갇혀 대학생활 수년이 지나도록 유사한 음악만을 알고 찾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체 대중음악의 건강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음악에서도 ‘7년째 고교생’이라면 서글프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jjinmoo@hanmail.net


 

34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성공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영화 <건축학 개론>(감독 이용주, 주연 한가인·엄태웅)은 남성 듀엣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써서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 곡은 거의 20년 전인 1994년에 나온 노래다. 언론은 이제 ‘돌아온 과거’의 시대적 중심이 ‘7080’에서 ‘8090’으로 이동했다면서 ‘복고’ 열풍의 분석에 열을 올렸다. 


대중음악계에서 복고가 뚜렷하게 포착된 것은 재작년 가을부터 불어닥친 ‘세시봉 콘서트’와 이듬해 벽두를 강타한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방송 오디션 프로가 득세하면서부터였다. 세시봉 열풍은 1970년대 초중반 유행한 포크의 재림이었고, 오디션 프로들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와 신중현의 ‘미인’ 등 저 옛날의 명곡을 무더기로 다시 소비자의 귀에 붙여주었다. 



(경향신문DB)



 모였다 하면 ‘소녀시대’와 ‘빅뱅’에 대해 떠들던 사람들이 족히 시차가 30~40년은 나는 옛 노래와 가수로 대화의 메뉴를 갑자기 바꿨으니 복고의 사회적 이슈화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새천년 들어 오로지 10대 중심의 아이돌 음악이 주류 미디어와 디지털 환경을 점령한 것에 넋을 놓고 있다가 정반대 성향의 복고풍 음악이 대항마로 등장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양상이다. 한 2년 반은 대중문화의 대세가 레트로(retro), 즉 과거로 되돌아가기였다고 할까.


지금 이 순간도 복고의 행진은 도도하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슈퍼스타K3’ 출신의 3인조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히트 레퍼토리 ‘벚꽃 엔딩’과 ‘꽃송이가’는 통기타와 하모니카, 멜로디언과 같은 악기를 써서 한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어쿠스틱 질감을 강조하고 있다. 어쿠스틱은 디지털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버스커버스커 선풍도 당연히 복고와 등식화가 이뤄졌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도 복고를 채용했다. 지난해 걸그룹 ‘티아라’는 ‘롤리폴리’를 소개하면서 멤버들이 땡땡이 무늬 블라우스, 맥시 스커트, 스카프 등 1980년대풍 의상을 차려입는 복고풍 패션으로 언론과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4.11총선에서 지원유세에 나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만약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티아라의 ‘롤리폴리’ 춤을 추겠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이 곡은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인지도를 과시했다. 


음악부문의 복고가 성질상 아이돌 그룹의 후크송이나 섹시 군무와 대별되는 것임에도 선두적 아이돌 그룹마저 복고에 기댔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 할 것 없이 복고를 마케팅의 필수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가 숨어있다. 복고는 대체 뭘 지향하는가. 어지럽고 현란한 아이돌의 떼춤과 전자리듬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서정적이고 편안한 왕년의 멜로디 음악으로 돌아가는 건가. 


반가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없지 않겠지만 그것보다 복고가 빠르게 연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상보다 변화를 겁내며 익숙한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선호하는 대중의 심리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복고가 판을 치게 되면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 진취적인 것으로 향하려는 대중예술의 경향을 약화시킬 소지가 생겨난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앞으로 뻗어 가려는 분위기가 가득할 때에 다양성을 꾸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복고가 구세주인 양 떠들어대고 그것만을 찬양하는 모습은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는 음험한 분리주의도 스멀거린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창의적인 동기를, 실험하고 도발하는 흐름을 격려하고 북돋워 주는 것이다. 이게 아니면 성취와 발전은 없다. 대중적 지평이 여전히 약함에도 인디음악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옛것에 매달리지 않고, 현상을 타파하고 미지의 토양으로 진격하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진화의 역사를 써왔다. 신중현이 그랬고, 조용필과 서태지가 그랬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