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가창력이란 무엇인가. 노래를 어떻게 해야 가창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가. K팝의 결정적 핸디캡이 한류 가수들의 가창력 부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처럼 가창력은 예나 지금이나 가수능력을 재단하는 무소불위의 조건으로 군림하고 있다. 가창력이 있다는 말에 가수는 웃고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핀잔에 좌절한다.

가창력은 대중가수에 관한 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음정, 박자, 호흡조절, 성량, 가사 전달력 등 노래 부르기의 기본으로 통하는 사항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들이 무시될 경우 그 가수의 노래는 부자연스럽고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의 귀에는 거슬릴 수도 있다. 확실히 오랜 단련 과정을 통해 숙성된 보컬은 시냇물 흘러가듯 유려하게 들린다.

가수의 색깔과 개성을 결정하는 음색은 대중가수에게 필수적이다. 어쩌면 위의 기본사항보다 더 가수의 성패를 가르는 절대적 조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제대로 노래했어도 평범한 음색은 귀에 꽂히지 않는다. 단발 히트로 끝나거나 성공의 문턱을 못 밟은 가수는 특색 없는 보이스 컬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창력은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가 강해 사람마다 가창력이 있는 가수들을 대라고 하면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가창력의 핵심이 고음 구사 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높은음으로 무리 없이 잘 솟아오르면, 다시 말해 잘 지르면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수년을 뜨겁게 달군 오디션 프로그램이 사실상 가창력 대결로 전개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사실 출전자의 순위를 매기는 과정에서 고음을 시원스레 질러대 역창(力倡)하면 귀가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가창력은 노래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미덕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곡의 창의성과 가사, 사운드, 편곡과 프로듀싱 등 여러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잘 어우러져야, 요즘 말로 ‘케미’가 이뤄져야 대중과의 소통을 창출할 수 있다. 남보다 더 높은음을 빡빡 내질러 우월한 높이를 보였다고 해서 즉 가창력이 뛰어났다고 해서 그 노래가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노래를 잘하네!”와 “노래가 좋네!”는 전혀 다른 얘기다. 가창력은 엄연히 노래의 일부임의 증명이다.


이선희 ‘음원차트 올킬’ (출처 :경향DB)


누가 들어도 발군의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인데 실제로 대중과의 교감에 성공하지 못한, 다른 말로 히트한 곡이 적은 가수들을 본다. 하이 톤으로 폭발하며 지르면 듣는 순간 ‘쾌감’을 느끼지만 길게는 ‘호감’으로 가지 못하는 사례들이다. 김범수는 10년 전에 발표한 ‘가슴이 지는 태양’이 실패하면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당시 그는 ‘얼굴 없는 가수’였던 자신의 승부수는 우월한 가창력이라고 여겼다. 마치 반음이 올라간 듯 들릴 정도로 그 곡에서 통렬하게 고음을 내뿜었다.

그 는 나중에 비어있는 것을 비워두는 것이 진정한 가창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참고 감정을 절제해 불러야 듣기 좋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적당히 비워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전 비워두지를 않았어요.” 노래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승철은 “노래 부르기는 강하고 터뜨리는 것보다는 편하고 친근한 쪽이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승철 가창의 궁극적 지향은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지난해 ‘마이 러브’가 성공한 이유도 어깨 풀고 편안하게 노래해서였다.

두드림(비트)을 16분음표로 잘게 나눈 16비트 펑크(Funk)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은 신나지만 듣거나 춤추기에는 쉽지 않다. 좀 더 춤추기 쉽게 8비트로 줄여주면서 1970년대에 엄청난 광풍을 일으킨 것이 펑크 뒤에 나타난 디스코다. 마찬가지로 몇 옥타브 위로 솟구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가수의 자존심이 될지는 몰라도 결코 대중의 시선은 아니다. 가창력은 가수의 절대 조건이라기보다 좋은 대중음악의 한 조건이다. 고음을 능란하게 다루는 가창력이 없다고 가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경연장에서 우승하는 가창력보다 대중에게 스며드는 가창력이 훌륭한 가창력이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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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주세요!” 과거에 일부 음반 제작자들은 작곡가에게 자신의 소속 가수에게 줄 신곡을 의뢰하면서 아예 당시 팝 음악계에 유행하고 있는 곡을 들이댔다. 이 곡을 참조해 곡을 써달라는 주문이다. 같아서는 안되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작곡가들은 곤혹스럽지만 요구를 무시하기가 어렵다. 신인 작곡가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어떤 기존의 작품을 상정해놓고 곡을 새롭게 혹은 다르게 구성하는 것을 창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대중가요의 진행에 일정한 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에 없던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고 항변한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논리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본뜨기는 베끼기와 다름없으므로 절대로 안된다고 못을 박는다.

대중음악은 늘 표절의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친숙한 것을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라면 기성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한 발짝이 아닌 반 발짝만 앞서가라!”는 말은 가요계의 오랜 속설이다. 또한 어떤 음악가, 작곡가도 어릴 적부터 무수히 들어 뇌리에 저절로 입력된 곡들이 부지기수다.

곡을 쓰다가 조금만 실수해도 표절의 덫에 걸릴 수 있다. 심지어 남의 저작권을 침해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유사하면 표절 판정을 받기도 한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이 만든 노래 ‘마이 스위트 로드’가 이 우연적 표절 혹은 잠재적 표절에 해당된 대표적 사례다. 그만큼 서구 음악계는 표절에 대해 가혹하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사실상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가수 지드래곤(왼쪽)과 씨엔블루 (출처: 경향DB)


하지만 음악의 창의성이 뿌리내린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저작권 침해와 표절 사건은 줄어들지 않는다. 존 레넌, 레드 제플린, 마이클 잭슨 등 상당수 슈퍼스타들이 여기에 걸려들었다. 근래 우리도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박진영의 ‘섬데이’, 비의 2012년 신곡 ‘부산여자’ 그리고 지난해에는 힙합 뮤지션 프라이머리가 표절 의혹과 논란으로 고초를 겪었다. 앞으로도 표절 논란이 감퇴할 것 같지는 않다.

유행하고 있는 음악의 스타일이 그게 그것인 장르 획일화는 창의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작곡가를 표절의 늪으로 유혹할 수 있다. 일례로 소위 후크송 패턴에 길들여진 아이돌 댄스음악만이 존재한다면 작곡가들은 시류에 맞춰 그런 곡들만 써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의도치 않게 서로서로 유사한 곡들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써달라는 물량이 많아 창작력의 고갈을 느끼는 인기 작곡가의 경우 이 과정에서 때로 ‘의도’를 갖고 남의 것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래서 하나 둘의 장르가 독점하는 판이 나쁘다는 것이다.

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지면 우리에게 좋을 리 없다. 가뜩이나 우리 대중가요가 K팝이라는 타이틀 아래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가는 시점에서 베끼기 사례들이 돌출하면 한국 대중음악의 브랜드 이미지는 타격을 받게 된다. 지금은 화려한 댄스에 박수를 치지만 행여 그 노래가 남의 것을 훔쳐 가공한 것이라면 어떤 외국 음악팬이 K팝을 듣겠는가. 가뜩이나 위기의 징후가 없지 않은 K팝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표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단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작곡가와 제작자는 양심으로 창작에 임해야 한다. 사실 이 방법밖에 없다. 표절은 상대방의 이의제기가 있어야 성립되는 친고죄로 제3자나 공적 기관이 끼어들 법적 근거가 없다. 베테랑 작곡가 이정선은 말한다. “한창 때, 힘들여 써놓은 곡들을 가끔 주변인에게 들려주면 어떤 곡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솔직히 내 생각은 어딜 봐도 비슷한 구석이 없는 나만의 창작이라고 확신했는데, 그래도 그런 말을 조금이라도 들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악보를 찢어버렸다.” 작곡의 길이 고통임을 알지만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나만의 것을 찾는 자세가 요구된다. 순수와 양심이 K팝을 살린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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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죽은 지 18년이 흐른 김광석의 음악은 거대한 ‘힐링’의 소리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생전보다 오히려 고인이 되고나서 위상의 덩치가 더 불어나는 느낌이다. 그의 삶과 음악을 조명하는 창작 뮤지컬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앙코르 요청 속에 시즌2에 돌입했고 <디셈버> 또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언론도 지속적으로 김광석 재조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히 사후 열풍이다.

 

현재의 어떤 인기가수보다 막강한 티켓 파워를 발휘하고 1990년대생들도 마니아로 만들어버리는 망자 김광석의 힘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아련한 추억을 부르면서 동시에 실제 삶에 밀착시키는 노래, 그 레알 음악 때문이다. 듣는 자가 누구든 3인칭인 음악을 1인칭 독백으로, ‘마치 내가 읊조리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김광석 노래가 누리는 특권이다. 생전의 김광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10대들에게 물었더니 노랫말이 명료하게 들리는 것부터 요즘 음악하고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 끌린다고 한다. 다르다고 하는 것은 시스템 훈육의 결과인 아이돌 댄스음악이나 때로 과장된 인디 음악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습기, 그 인간적 생동감을 가리킨다.

 

1987년 우리 곁을 떠난 비운의 음악천재 유재하도 마찬가지다. 약간 느슨했던 CD 사운드가 아닌 LP 시절의 찰지고 선명한 사운드를 되찾은 고음질 LP가 막 출시됐다. 제작사는 한정판으로 1000장을 찍었지만 예약 주문 물량은 그보다 훨씬 많다. 단 한 장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어도 ‘지난날’ ‘사랑하기 때문에’ 등 유작에 수록된 모든 곡이 후대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며 지금도 막대한 흡수력을 자랑한다.

 

너무 많은 음악 아이디어를 숨겨놔 한 작곡가는 “들을 때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고, 작사·작곡을 넘어 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음악적 자주(自主)의 실현에 많은 음악가들이 숭배 마인드를 공유한다. 발라드의 최강자 신승훈은 “유재하의 앨범이 없었다면 당연히 나도 없다. 그를 운명으로 느끼고 음악을 해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타블로가 이끈 그룹 ‘에픽하이’도 유재하의 기일 11월1일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유재하의 이름을 모르는 에픽하이의 팬들은 거의 없다.

 

고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출처 :경향DB)

 

3년 뒤 11월1일 같은 날, 김현식도 세상을 떠났다. 망자가 된 지 23년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 발라드 보석들은 꾸준히 전파를 타고 후배가수들에 의해 다투어 불린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혼을 불사른 그의 자세에서 가수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김장훈은 김현식에게서 천하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이크 앞에서 경건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땅 위에 가왕 조용필이 있었다면 땅 밑(언더그라운드)에는 가객 김현식이 있었다!”는 말처럼 대중음악의 역사는 그를 1980년대에 언더그라운드 음악문화를 개척한 인물로 길이길이 보전한다. 그 시절 김현식이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어도 음악 수요자들 사이에 강자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음악이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온 주류의 음악과는 감정선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운드가 범람하는 지금은 더더욱 김현식의 아날로그 노래들이 각별하게 들린다. 지난해에는 미공개 음반이 나와 다시금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근래처럼 사자(死者)들의 음악이 환영을 받은 때도 없다. 고인의 음악을 기리고 되돌아보는 것은 먼저 우리 대중음악이 충분한 역사를 쌓았다는 방증이겠지만 거기에는 다양함으로 향하는 시대적 요청도 작용한다고 본다. 그들의 잇단 부활에는 음악이 뛰어나다는 것과 함께 근래의 음악과 다르다는 것이 한몫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음악은 다른 것이 많아야 한다. 그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죽은 가수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다.

 

 

임진모 | 대중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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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결산이 한창인 가운데 대중음악계도 올해를 장식한 좋은 앨범과 곡을 뽑느라 바쁜 시점이다. 앨범이든 단일 곡이든 빛났던 작품들 중에서 대체로 열 개를 골라 한 해를 정리하는데, 음악 관계자들과 평자들은 “올해는 열 개나 선정할 작품이 없다”며 상대적으로 수작이 부재한 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12년 세계를 주무른 싸이의 ‘강남스타일’ 센세이션이 K팝의 정점을 찍은 걸까. 확실히 올해는 아이돌 댄스음악의 파괴력이 조금은 떨어진 느낌이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돌 댄스음악에 대한 피로감이 확연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중음악이 받들어 모시는 현상과 선풍은 역사적으로 젊음이 주체가 되어온 게 보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이상했다.

 

선풍의 주인이 ‘바운스’란 노래로 4월과 5월을 강타한 나이 63세의 베테랑 조용필이었던 것이다. 이 곡이 전파를 석권하던 무렵 음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올해의 가수’는 정해졌다”고 서둘러 예단(豫斷)하기도 했다. ‘바운스’ 선풍은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후 터진 크레용팝의 ‘빠빠빠’나 엑소의 ‘으르렁’ 그리고 음원 차트를 싹쓸이한 버스커버스커의 2집 앨범의 폭발적 호응을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드가수 싸이의 신곡 ‘젠틀맨’과의 경쟁에서도 이겼다.

 

조용필의 컴백과 함께 올해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회자된 최백호를 비롯해 좋은 앨범을 낸 이승철, 장필순, 들국화 등 전설의 반열에 선 중견들이 오히려 힘을 썼다. 세대 균형과 더불어 장르 다양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분명 2013년의 소득이다.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이은 <응답하라 1994>의 바람은 중견의 부활과 함께 흘러간 콘텐츠가 묻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주 쓰이게 될 것임을 말해주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복고’는 역사에 대한 재조명 열기에 힘입어 앞으로도 간헐적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인디 음악 쪽도 주류를 넘보는 결정타를 내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터전이란 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올해 인디는 음악 매출의 중심이 음반, 음원에서 공연으로 이동하는 추세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못박았다. 올여름 수도권에서 무리하게 다섯 개의 대형 록페스티벌이 난립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페스티벌에 강한 인디 밴드들 입장에서는 희망적인 흐름이라고 본다.

 

 

(경향DB)

 

문제는 상기했듯 아이돌 음악 쪽이다. 청소년들한테는 아직도 엑소 등의 아이돌 세상일지 몰라도 결코 올해 판세를 리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수년을 떵떵거리던 걸 그룹들의 활동은 고만고만했다. 아마도 SM 사단의 엑소, 샤이니, 슈퍼주니어, 에프엑스가 없었다면 아이돌 음악은 눈부신 해외활동과 달리 내수시장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을 수도 있다. 아이돌 빅 그룹 출신 멤버가 낸 신곡들도 대부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K팝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 5년에 다다르면서 피로감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데 세계 진출을 주도해온 아이돌 그룹들이 어느새 아이돌이란 말이 무색하게 나이가 만만치 않은 것은 걱정스럽다. 이 대목에서 ‘샤이니’가 올해 펼친 앨범 활동이 돋보인다. 이들은 봄 시즌에 9곡이 수록된 풀 앨범을 연속으로 2장을 냈고 심지어 신곡을 덧붙인 세 번째 앨범으로 3부작을 완성했다. 음악도 기존 아이돌 음악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실험적인 곡들로 높은 짜임새를 구현했다. 기획사 SM이 그간 내놓은 스타일과는 달랐다.

 

거의 반(反)아이돌 행보였다고 할까. 마치 우리를 마냥 아이돌로 치부하지 말라는 뜻인지 세 장의 앨범 제목을 각각 ‘너의 오해’ ‘나의 오해’ ‘우리의 오해’로 각각 붙였다. 그래봤자 기획의 산물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아이돌 그룹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놀라운 춤과 비주얼, 훌륭한 프로듀싱으로 급성장한 우리 아이돌 음악은 이제 키드를 넘어 다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기존 음악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개성이 표현된 음악을 내놓지 않으면 K팝은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 있다. 이 문화적 쾌거를 춤이 아닌 음악의 승리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돌 음악은 달라져야 한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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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역사적 위상을 강조하려는 표현법이겠지만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유재하를 이렇게 특대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형 발라드를 구축한 선두라는 것인데, 이 문장 그대로 쓰되 인명은 유재하 대신 음악문법 전체의 변동이란 점에서 서태지를 넣는 게 옳다는 주장도 많다. 또 다른 해당 인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시작임을 전제해서 신중현, 대중음악의 예술과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 조용필이 빠질 리 없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주도한 해외 팝음악의 경우는 누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으로 얘기할까. 로큰롤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대중가요 가사의 일대 혁명이라는 밥 딜런을 거명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팝은 비틀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규정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본다면 ‘영국에서 온 이 네 명의 더벅머리’가 청년의 의식과 문화를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를 먼저 들 수 있다.

 

 

(경향DB)

 

그들이 주도한 로큰롤 밴드 문화는 스스로 연주와 편곡, 노래를 모두 해결하는 청년의 자주(自主)를 상징한다. 사실 그들의 우상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곡을 쓰지 못했지만 비틀스는 거의 모든 곡을 주도적 멤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작사·작곡했다. 음악에 관한 한 모든 부문을 자가 충당하면서 비틀스는 밴드 로큰롤을 ‘약동하는 청춘의 1960년대’라는 시대성과 맞물리게 했다. 기성의 질서와 가치에 저항하며 학원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당대 베이비붐 세대들은 비틀스의 로큰롤과 함께 분노의 에너지와 자주 정신을 키웠다. 폴 매카트니가 “우리는 한 세대의 대변자였다”고 한 것은 비틀스 음악이 곧 시대정신이었다는 말과도 같다.

 

1960년대와 비틀스를 같은 범주로 묶는 표현의 결정타는 아마도 과거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이었던 고 레너드 번스타인일 것이다. 그는 “1960년대를 알려거든 비틀스 음악을 들어라”고 단언했다.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서로 엮인 ‘청춘과 1960년대’라는 의미망이 있기에 비틀스가 지금 같은 역사적 크기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틀스가 신화요 문화유산인 또 하나의 이유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인물 그 자체로 설명이 가능하다. 비틀스광이었던 그는 줄기차게 “그들의 ‘엘리너 리그비’나 ‘페니 레인’ 등등의 곡들은 바흐, 브람스, 모차르트의 작품에 못지않다”며 비틀스 편애론을 폈다.

 

이것은 비틀스가 그때까지 팝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고전음악으로부터의 멸시에서 대중음악이 벗어나는 전기가 됐음을 가리킨다. 사실 클래식 진영은 팝을 저급한 유행가로 무시해왔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지평을 수단계 끌어올린 비틀스의 예술이 등장하자 조금씩 시선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틀스의 1967년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전체를 슈만의 작품에 견주었고 작곡가 노엘 로뎀은 앨범의 수록곡 ‘쉬즈 리빙 홈’을 두고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칭송했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비틀스 실연(實演)에 나섰다. 유진 올만디가 ‘예스터데이’를 비롯한 비틀스 레퍼토리를 연주했고 베를린 필하모닉 등 무수한 오케스트라들이 비틀스를 곡 리스트로 채택하는 일은 1980년대 이후 다반사가 됐다. ‘예스터데이’가 20세기의 명곡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클래식 음악가가 주도한 무수한 리메이크 때문이기도 하다. 갈수록 대중음악은 클래식 쪽으로 가고, 클래식은 팝을 가볍게 포옹하는 흐름을 보인다. 어떤 클래식 음악가는 “내게 베토벤은 신곡, 비틀스는 고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막 비틀스의 새 앨범이 나왔다. 그들의 전성기인 1963년에서 1965년까지 자국 영국의 국영방송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실황 연주와 노래들을 묶은 것이다. 당시의 열악한 라디오 녹음장비 때문에 비록 음향은 낡은 수준이지만 그 속에서 비틀스가 펼치는 열정은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링고 스타는 “그때 우리는 20대였고 코끼리와 사자 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고 폴 매카트니도 “우리는 그냥 앞만 보고 달렸고 조금도 뒤로 머뭇거리지 않았다”며 앨범의 키워드를 스피릿과 에너지로 압축했다. 이 위대한 청년정신만으로도 비틀스는 세기의 문화유산이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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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200년 전의 사람들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었듯이 200년 후의 사람들은 비틀스 음악을 들을 것이다!”

 

비틀스의 명곡들이 세기의 신화를 넘어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까지 숭앙을 받고 있는 것을 전제하면, 그 시기는 200년이 아니라 50년 후로 앞당겨도 과언이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온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렛 잇 비’ ‘오블라디 오블라다’ ‘헤이 주드’와 같은 곡들은 지금도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가요도 전설의 반열에 올라있는 곡들이 상당수 있다. 한국의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미인’이 발표된 지 올해로 정확히 40년이다. 조용필의 서사적인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어느새 28년의 나이를 먹었다. 이 곡들은 10대와 20대들도 누구의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을 만큼 아직도 살아있다. 당대에 인기를 누린 뒤에 소비, 소멸되지 않고 지금도 정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곡들에 ‘유행가’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대중가요는 언제나 유행가로 등식되어 왔다. 노래가 나와서 그때에는 열광적으로 포용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세인들의 기억으로부터 배제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해당하는 노래들도 부지기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들도 그 못지않게 많다.

 

대중음악이 황금기를 누렸던 1960~70년대에 쉴 새 없이 출중한 작품들을 쏟아내면서 오랜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그러면서 유행가라는 폄하도 떼어낸 것이다. 진정성을 가진 대중음악가라면 그 어느 누구도 유행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지 않는다.

 

 

(경향DB)

 

그러나 요즘의 음악을 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간혹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 “근래의 노래들 중에서 과연 향후 10년이 지난 뒤에도 살아남을 곡이 얼마나 될까? 한해를 버티기가 어려운데 흐르는 세월에도 통하는 애청, 애창곡이 나올 수 있겠는가?” 최신 인기가요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순간의 감각에 의존하다가 곧바로 버림을 받는 소비재, 향락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물론 작곡가가 곡을 쓸 때, 그리고 가수가 녹음을 할 때 잠깐 동안 통용될 작품이라고 가벼이 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을 들였건 공을 들이지 않았건 결과는 곡의 생명이 1주일 또는 2주일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정서를 위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유통기한에 충실한 곡들도 눈에 많이 띄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음악을 한다기보다는 장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대량소비사회에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음악마저 예술이 아닌 소비산업의 어두운 굴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열광하며 듣는 노래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팬들에게 물었다. 아이돌 가수의 열렬한 팬인 한 10대 여중생의 답변은 이랬다. “글쎄요. 추억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바 노래처럼 남아있지는 않을걸요!” 인디 밴드만을 찾는 한 20대 남자대학생의 답변은 또 어떤가. “아주 좋기는 한데 10년이 지나서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제 밑의 아이들도 자기 시대의 젊은 밴드의 음악을 듣지, 우리가 들었던 밴드 음악은 챙기지 않을 겁니다.”

 

많은 음악관계자가 이제는 레전드와 명곡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이 찾는 음악은 최신음악이 아니라 더더욱 흘러간 시대의 음악일 것이라는 주장이 서글픈 이유는 어쩌면 음악이 시대 견인의 기능을 멈춘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수익과 가수의 행사 출연료, 즉 돈 아니면 허세만이 남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본 회전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정한 음악은 그 자본에 눌리지 않는 억지력이다.

 

소비품으로 전락했다는 말은 예술에 대한 자본의 완승을 의미한다. 모든 게 돈의 논리로 함몰됐다. 여기마저도 그렇다면 음악은 끝난 것이 아닐까. 대중가요가 유행가라는 괄시를 그토록 혐오했건만 지금은 솔직히 반박할 자신이 없다. 요즘 대중가요는 영락없는 유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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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게 본업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노래만 해서 되는 현실은 아닌 게 분명하다. 과거에 가수는 텔레비전에 출연해도 대부분 노래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가수는 이런저런 활동을 보여주느라 참으로 분주하다. 아이돌 스타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본연의 일 외에 방송의 예능프로그램 패널로 나와 신상을 털고 재치 있거나 매력적인 언변을 구사해야 하고 더러 연기나 개그도 해야 한다. 음악보다도 예능적 재능을 발휘하는 게 인기 획득에 더 효과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KBS2 '우리동네 예체능' 기자간담회에서 가수 최강창민과 배우 이종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과외 활동이 본업을 넘어서는 이러한 역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별로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한 우물 파기의 신조를 폐기하고 멀티 플레이어와 다각화 풍조를 선호하고 있다.


그런 변화와 맞물려 가수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느덧 추세가 아닌 대세가 되었다. 이것은 아이돌 가수만이 아닌 중견 가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성기가 지나 활동이 뜸했던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인상적인 몇몇 언행으로 단숨에 인기인으로 부상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때는 안쓰러워 보인다. 중견 가수의 경우, 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들의 전성기와 함께한 세대에게는 반가울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팬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낳은 몸부림으로 보인다.


하기야 요즘은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금방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대중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래를 부르는 일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내건 명제는 설득력이 있다. “현대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보여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시대이다!”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 음악 만들기와 가창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가는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난 25일 2집 앨범을 낸 ‘버스커 버스커’는 2011년 케이블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 <슈퍼 스타 K3>에 출연해 선풍을 일으킨 후 일체의 방송활동과 매체 인터뷰를 끊고 신보를 위한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모든 섭외를 거절한 채 오로지 음악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아니더라도 에너지의 집결과 분배가 절대적으로 우선시되는 음악과 가창 작업의 성격상 충분히 이해가 가는 ‘외부와의 단절’이다.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출처 :경향DB)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수로서의 진정성 측면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주목받을 경우 확실히 단기부양 효과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후퇴할 소지가 높다. 아티스트 건전성은 악화되는 것이다. 잠깐은 살아나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잊혀버릴 수 있다.


심지어 노래에 초점을 둔 MBC <나는 가수다>도 신드롬이 그토록 거셌다. 하지만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활동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벌써 무게감이 떨어진 가수가 꽤 된다. 방송이란 게 그런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아닌 본연의 노래 활동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마침 음반·음원 시대에서 콘서트로, 라이브로, 페스티벌로 음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어떻게든 자신이 설 공연 무대를 마련하고 늘리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콘서트는 반향이 느리지만 가수의 생명력 보전에는 그 이상의 왕도가 없다. 


조용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수 활동 20년을 넘긴 이승철, 이승환, 신승훈이 히트곡 생산 여부와 무관하게 음악계에서 여전히 존재감이 큰 이유는 콘서트의 강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가수들은 모두 ‘라이브의 왕자’니 ‘라이브의 황제’니 하는 수식이 붙어 다닌다. 


신승훈은 수년 전 인터뷰에서 “이제 저는 음반으로는 비주류지만, 공연에 관한 한 주류”라면서 “한창 때 눈을 여의도(방송국)에서 잠실(공연장)로 돌리자는 철칙을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수들마다 ‘가수 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렇다고 예능 프로그램 나가겠다고 결단하는 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수라면 노래하는 방향으로, 정공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 안 잊힐려고 하다가 영원히 잊히는 수가 있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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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록밴드로 꼽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유투(U2)는 누구보다 명작 앨범을 많이 내놓은 아티스트다. 히트한 곡들도 많지만 수작 앨범을 다수 발표했기 때문에 현실의 인기가수를 넘어 역사적 존재로까지 기억된다. 록 전문지 ‘롤링스톤’은 1987년 앨범 <조수아 트리>가 그들의 위상을 영웅에서 슈퍼스타로 끌어올렸다고 칭송했다. 이 음반은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그룹 U2의 1987년도 앨범 '조슈아트리'마이클 잭슨이 1982년 발매 한 6집 ‘스릴러(Thriller)’




음악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단일곡 즉 ‘싱글’보다는 10곡 이상을 수록한 ‘앨범’이 자신의 음악적 자아와 예술성을 표현하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로 싱글을 제작할 때는 대중적 접근으로, 앨범은 예술적 지향으로 임했다. 지난 20세기를 대중음악의 시대로 만든 것은 분명 앨범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앨범 하나가 1억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 말해준다. 비틀스가 누리는 찬란한 영광은 <러버 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애비 로드> 등 탁월한 명반을 만들어낸 덕이다.




그런 앨범의 위상이 근래에는 너무도 초라해졌다. 우리 음악계의 경우, 노래는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통상적 기준의 앨범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겨우 네다섯 곡이 든 미니앨범이 판을 치고 있다. 한 곡밖에 없는 싱글 앨범도 부지기수다. 설령 제대로 곡을 채운 앨범을 내더라도 과거처럼 1~2년 만에 신보를 내는 가수는 거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디지털 싱글 시대로 바뀌면서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10곡 이상의 앨범제작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앨범을 공들여 만드는 수개월 수년 동안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기도 어렵고 제작비 충당도 버거우니 한두 곡 뚝딱 꾸려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앨범이 팔리지 않아서다. 청소년 팬층이 두꺼운, 사정이 좋은 인기 아이돌 그룹이 오히려 규모를 갖춘 앨범을 출시한다.



앨범의 위기는 단지 음악매체의 변동이라는 규정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특정한 기간에 아티스트가 현실과 부딪쳐 숙성해낸 사고와 시도의 결과물이 앨범이라면, 그것의 위축은 곧 음악가의 후퇴와 예술적 마인드의 퇴보를 가리킨다. 강도를 높여 말하자면 앨범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가 없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앨범이 환영은커녕 냉대를 받는 현실에 아티스트는 맥이 빠지고 시름이 깊어간다. “이런 판국에 과연 앨범을 내야 하나. 어렵사리 앨범을 내봤자 별 반응도 없는데….”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무드에 넘치는 재즈풍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 여가수 샤데이는 앨범 가치의 폭락에 심각한 갈등과 회의를 느낀 나머지 10년 동안 새 앨범을 내지 않았다. 마침내 2010년에 발표한 앨범의 한 수록곡에선 ‘난 지금 내 믿음의 경계에 처해 있고/ 헌신도 벽지에 갇혀 있고/ 이러한 내 자신 투쟁의 전선에서/ 난 그러나 아직 살아 있어…’라는 가사로 당시의 심적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예술성 추구라는 기본이 살아 있는 10년 만의 샤데이 앨범은 그해 평단의 수작으로 꼽혔다.



수록곡을 가득 채운 앨범을 보면 반갑다. 이효리는 올해 새 앨범 <모노크롬>에 무려 16곡을 실었다. 우여곡절의 과거를 넘어 앞으로는 아티스트로 뻗어가겠다는 의지가 작용하면서 앨범은 경력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오디션 스타 존 박은 지난해 다섯 곡의 미니 앨범으로 데뷔하더니 올해 막 발표한 신작에는 11곡을 수록했다. 인기가 아닌 음악성이 자신의 의욕임을 선언한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인디 밴드에 진지한 음악수요자들이 몰리는 것은 주류 가수들이 미니앨범과 싱글을 내는 반면 그들은 온전한 ‘풀 앨범’을 선보이는 이유도 있다.


Mnet 방송 캡처



음악가가 물러난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자비한 상업성과 자본이다. 그렇게 되면 음악은 소비되는 게 아니라 삭제 당하고 만다. 어려운 줄 알지만 10곡 앨범을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로 형식은 실질을 좌우한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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