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인가, 단 한해도 음악계가 좋았다는 말이 돌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음반 중심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시장의 축이 이동하는 격변 속에서 음악관계자들은 “음악계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고 있다. 매출 규모가 상당하다는 굴지의 기획사들조차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고 엄살을 피운다.

딱 9년 전인 2006년 신년을 맞아 한 일간지에 ‘가요계 희망을 노래하자’라는 글을 쓴 바 있다. 2005년의 극심한 불황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일어나자는 사기진작이 요지였다. 그때 가요계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노래 불러야 할 가수들이 잇달아 드라마에서 연기한 것이나, 수위를 잃은 채 리메이크 앨범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이나 모두 음악계의 불황과 관련을 맺는다. 지난해 불어 닥친 ‘섹시 콘셉트’ 범람도 상황이 어려우니 음반 판매량은 둘째 치고 일단 사람들의 시선부터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섹시 콘셉트를 동원한 가수들은 제법 빠르게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했지만 노력에 비해 앨범 판매량은 아주 미미했다는 점에서 조금도 침체상황의 반전을 꾀하지 못했다.”

2014년 음악계에 가장 많이 동원된 키워드의 하나인 섹시 콘셉트가 이미 9년 전인 2005년에도 범람했음을 알 수 있다. 가수들의 드라마와 예능 출연도 새로울 것이 없고, 다만 리메이크 앨범 유행이 협업을 의미하는 콜라보레이션 붐으로 바뀐 게 달라졌다고 할까. 리메이크든 ‘콜라보’든 음악적인 이유, 예술적인 실험보다는 상업적 전략의 요소가 강했다는 점에서 그것도 별 차이는 없다.

음원시장의 시스템이 정착한 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9년 사이 달라진 것은 ‘글로벌화된 K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류는 존재했어도 중국과 동남아, 일본을 넘어 유럽과 미국을 관통하는 글로벌 센세이션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2005년까지 국제무대에 빅뱅,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투애니원, 2PM, 샤이니 그리고 싸이는 없었다.

K팝의 우렁찬 포효가 그 사이 등장했다면 근래 음악계 전망은 밝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얼핏 대형기획사 SM과 YG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이른바 ‘종합선물세트’ 공연을 보면 여전히 드높은 K팝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가수 개개인의 단독 공연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K팝 가수의 단독 공연은 예전 같지 않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날아든다. 대형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은 가수의 경우, 솔직히 중국에서는 활발하게 공연할 수 있는 가수가 별로 없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작년에 발간한 한류심층보고서는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호주 퍼스에서 열린 ‘2K13 필 코리아’ 콘서트 (출처 : 경향DB)


대형기획사의 종합선물세트 공연은 흥행이 목표라는 점에서 어쩌면 K팝 한류를 지탱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이러한 공연마저 시들해진다면 대안이 없는 위기의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K팝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을 줄기차게 받아온 것이다. 그래도 불황의 2005년을 보내고 2006년 새해를 맞아 음악관계자들은 희망을 말하곤 했다. 누군가는 “힘든 것은 2005년이 끝이라고 본다”고 관망했다.

지금 이런 낙관을 피력할 사람이 있을까. 한 공연관계자는 “지금도 세월호 참사에 따른 침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희망은 좀 더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가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하는 자극으로 순간을 돌파할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과 이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음악콘텐츠의 다양화를 확보해야 한다. 그게 K팝을 살릴 것이고 대중음악에 재미와 감동을 못 느끼는 일반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걸린다. 새해 음악계는 ‘느리게’ ‘지나치지 않게’로 흐름을 잡았으면 한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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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활동을 한 지 20년을 맞은 지난 2008년에 신해철을 만났을 때 요즘의 평론가들을 향해 질러달라고 했더니 그의 발언은 가히 ‘독설가’답게 거침이 없었다. “요새는 평론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평단은 전멸했지. 이건 뭐 평론도 아니고. ‘이런 글을 뭐하러 쓸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신경 꺼버렸어요. 어째 요즘 평론가라고 명함을 들이미는 애들이, 예전에 PC통신 시절에 거기에 글 쓰는 애들보다 못 쓰는 거야.”

듣는 입장에서는 민망했고 뼈아팠다. 그 무렵 시사프로 <100분 토론>에 출연했을 때도 그랬다. 그날은 국내 음악의 실태와 음악산업의 현황이 주제였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신해철은 내 자리에 오더니 대뜸 “형! 오늘 왜 이렇게 얘기를 안 하는 거야? 나만 떠들고 있잖아!”하는 것이었다. “나 오늘 얘기 많이 하는 건데…”라는 답에 그는 “그런 거 말고 진짜 얘기를 털라고요!”라고 일갈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생각과 진심을 솔직하고 용기 있게 개진한 인물이었다. 어조를 높일 때는 특유의 화려한 수사학도 동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언하든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든 그가 상대에게 날리는 펀치력은 언제나 메가톤급이었다. 진실에 대한 기준과 척도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그의 발언을 ‘바른말’로, 그를 ‘야외 정론의 메신저’로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신해철의 죽음을 한 음악가의 사망을 넘는 ‘우리 시대 진실한 메시지의 상실’이라고 그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신해철은 확실히 음악가의 이미지보다는 아호로 통하는 ‘마왕’을 비롯해 ‘독설가’ 혹은 ‘소셜테이너의 기수’ 등 음악 외적인 스탠스로 더 유명해졌다.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사회적 위상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꺼지지 않는 신해철의 추모 열기에도 얼핏 이런 스탠스가 음악보다도 우위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그는 뮤지션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는 음악가로서 자신의 사고와 성찰을 ‘리얼한 실제담’을 통해 전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제3자의 얘기를 끌어오거나 상상의 영역에서 꾸며내는 가사가 거의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2부작으로 만든 ‘아버지와 나’,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 ‘날아라 병아리’, ‘난 쓰레기야’와 같은 노래가 가능했다.

고 신해철의 유골함, 마왕의 마지막 모습. (출처 : 경향DB)


사실 예술가의 기본 터전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타자의 공감을 부르는 데 있다. 2007년에 신해철은 약간은 터무니없게도 <더 송즈 포 더 원>이란 제목의 재즈 앨범을 냈다. 평단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늘 록을 하던 그가 재즈 영역을 건드린 이유는 딱 하나, “완전히 손을 안댔다 싶어 불모지로 남은 곳은 재즈밖에 없더라”는 이유였다. 앨범을 설명하면서 “개인용 노래방을 만들어 놓고 혼자 즐긴 거죠 뭐”라며 껄껄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음악 방침은 바로 이것,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왕이었음에도 그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교주 같았지만 교시를 내리지 않았다. 독설도 어쩌면 자신을 향한 직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다소 비상업적인 성격의 음악마저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마도 자기 고백이라는 리얼 스토리가 주는 대중적 감화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1980년대 말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통해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스타덤을 확보했지만 끝내는 록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밴드 넥스트를 결성했다. 변방에 머물러있던 록과 밴드의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업적도 기억되고 기록돼야 한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아티스트 본연에 충실했던 그의 빼어난 음악이 인구에 회자됐으면 한다. 이것이 그에 대한 미안함을 더는 우리의 최선일 것이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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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해철

1990년대에 ‘전람회’라는 듀엣으로, 이후 솔로로 입지를 구축한 가수 김동률의 신보 바람이 거세다. 신곡 ‘그게 나야’는 공개된 지 10일이 지나서도 여러 음원차트에서 정상을 호령하고 있다. 1위에 올라도 2~3일을 지키기 어려운 이 삭막한 디지털 시대에 이 정도면 대단한 분전이요, 열풍이라 할 만하다.

나이 마흔이 된 중견가수임에도 그가 지금의 ‘핫’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무엇보다 그만의 둔중하고 담백한 발라드의 대중적 흡인력 때문일 것이다. 팬들은 그 음악에 ‘김동률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붙여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음악의 대중적 위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당대의 추세, 즉 트렌드 측면에서도 그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다.

지금의 음악 트렌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고 흐름이다. 복고 시점도 저 옛날보다는 기억의 재구성이 쉬워서인지 ‘가까운 과거’를 겨냥한다. 근거리 노스탤지어 바람이다. 언론은 잇달아 복고의 중심추가 ‘7080(년대 노래)’에서 ‘90(년대 노래)’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90바람’의 결정타는 <응답하라> 드라마 노래들과 더불어 2012년 영화 <건축학 개론>의 마지막 장면에 유려하게 흐른 곡 ‘기억의 습작’이었고 이 곡은 바로 전람회 시절 김동률이 쓰고 부른 노래였다.

재조명으로 기대감이 충만한 상황에서 ‘90 레전드’가 내놓은 신곡에 대중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게 나야’가 누리는 호응에 <건축학개론>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김동률을 비롯한,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로 규정되는 ‘90년대 음악’의 인기몰이가 식상한 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재 주류 음악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아이돌 음악이나 인디 음악에 신선함을 못 찾는 음악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순수했던 그 시절로 올라가 소리 옹달샘을 찾는다는 것이다.

인기요인 하나가 더 있다. 단적으로 김동률은 ‘보이지 않는 가수’라는 점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유희열, 이적, 윤상, 윤종신 등이 방송과 광고 등 보이는 매체 활동을 펼치는 반면 김동률은 영상으로 잘 포착되지 않는다. 그를 보려면 공연장으로 가야 한다. ‘동행’이란 제목을 단 그의 전국 투어콘서트 출발인 서울에서의 세차례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2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콘서트가 아니면 그를 볼 수 없다는 팬들의 심리가 개입하면서 강한 티켓파워를 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보이는 매체 활동을 자제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음악 만들기와 공연에 집중하는 가수의 진정성을 팬들이 인정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안 보이니까 공연장으로 몰려가게 되고 음악에 매진하는 태도에 감동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게 만족스러운 것이다. 김동률 음악을 듣는 자신이 돋보인다고 할까. 문화평론가 강태규는 “이런 가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아 신비로운 것이다.

가수 김동률 (출처 : 경향DB)


이미 대중적 위상이 구축된 중견 가수의 경우는 대중에게 보여야 할지 아니면 보이지 말아야 할지 한번은 고민에 휩싸인다. 어느 쪽이 적절한지 단언할 수는 없다. 보이지 않으면 신비를 축적하긴 하지만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고 사라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고, 보이려고 하면 ‘뜨는’ 대신 여러 거추장스러운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멀티’ 시대라는 미명 아래 이것저것 다하고, 본분을 뒤로 한 채 예능적 기량에 골몰하는 것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일 것이다. 공연장에서 말고는 보기 어려운 조용필과 서태지는 어떤 면에서 신비 측면의 역사적 수혜자다. 막 활동을 재개한 서태지의 경우는 오죽하면 비판조의 ‘신비주의 전략’이라는 말이 동원되었을까. 이들이 여기저기에 마구 얼굴을 내밀었다면 음악인구가 느끼는 신선함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이 가져오는 현실적 소득도 크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확실히 대중가수를 정의하는 조건은 대중적 친화력 그리고 그것의 정반대에 위치한 신비로움이다. 우리의 음악환경은 점점 이것을 몰아내고 있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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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김동률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인 1985년 가수 김완선을 보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머리끈을 풀고, 출렁이며 춤을 추고 종횡으로 무대를 누비는 와일드함에 ‘한국에도 이런 가수가 있었어?’ 하며 넋을 잃었다. 너무나 새로운 춤 자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김완선의 섹시 댄스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점잖음과 엄숙을 지고로 여기던 시절에 대한 조롱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사회적 맥락의 의미가 더해졌다. 관습 흔들기, 판 뒤엎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김완선은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김완선 이전에 ‘빙글빙글’의 나미, 더 거슬러 올라가 1969년의 김추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추자의 경우는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시절, 가당찮게 여가수 최초로 무대에서 엉덩이를 흔드는 파격을 보였다. 이런 원조들과 김완선을 거쳐 섹시 여가수의 계보는 엄정화, 이효리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의 존재가 역사에 기억되는 이유는 춤을 통한 아름다움의 구현도 있지만 기성과 다른 참신함 혹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댄스에다 섹슈얼리티가 더해진 이른바 섹시 콘셉트가 여기서 폭발력을 갖는다. 이 부문의 세계적인 인물은 마돈나다. 마돈나는 오랫동안 눌려왔던 여성들의 자기표현과 자기결정력을 과감한 노출과 관능이라는 섹슈얼리티 수법으로 이끌어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대표작인 ‘처녀처럼’(Like a virgin)과 ‘아빠 설교하지 마세요’(Papa don’t preach)는 결코 대중적 파괴력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구 벗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당대의 관습에 덤벼드는 문제의식과 오버랩시켰기에 이런 제목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마돈나의 노래는 답답한 현실에 눌린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해방선언 같은 것이었고 실제로 언론으로부터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걸그룹 씨스타의 효린과 보라가 대중들에게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요즘 걸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주류 음악계 여가수를 보자. 몇몇을 빼놓고는 마치 ‘누가 더 센가?’ 겨루듯 질펀하게 섹시 콩쿠르, 관능성 높이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너무 아찔하고 자극적이다. 아슬아슬한 자태와 야릇한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언어도 거침이 없다. 인기 최고의 걸그룹 ‘씨스타’는 ‘터치 마이 바디’란 노래에서 ‘내 입술이 좋아 아님 내 바디가 좋아/ 솔직히 말해 여기 여기 여기 아님 저기 저기 저기…’라고 유혹한다. 대놓고 100% 섹시를 표방하는 걸그룹 ‘포미닛’ 출신의 현아가 얼마 전 히트시킨 곡 ‘빨개요’는 정말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만든다. ‘다 그만해 따끔하게 혼내줄 테니까 엉덩이 대/ 감당 안돼 밤마다…’ 근래 댄스곡의 대세는 스스로에게 권좌를 부여하는 이러한 식의 자화자찬이다. 이런 내용의 가사가 야릇한 춤과 자태의 영상과 결합하니 더 요란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충격이어야 할 이러한 섹시 펀치가 순간 눈을 때릴지는 몰라도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과감한 춤과 언어에 설득되거나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제는 청소년들마저 ‘대체 이게 뭐야?’라며 실소한다. 1980년대에 서구의 10대들이 마돈나로부터 여성 존재감 상승을 수혈받은 사례는 남의 나라 얘기고 오래전 일일 뿐이다.

그룹마다 가수마다 개성을 강조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비슷비슷 그게 그거다. 음악도 유명 작곡가팀에 몰리다보니 타자와의 명백한 차별화를 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춤도, 섹시 콘셉트도 음악의 질과 맞물려야 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우리 여가수의 섹시 풍조에는 음악이 없다. 문제는 트렌드에 대한 압박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망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식의 사고로는 나른한 반응의 현 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패턴화를 거부하는 반작용과 역공의 묘가 필요하다. 실제로 순수를 내세워 성공한 걸그룹도 있다. 개체의 특성을 살린 음악 실험과 기성의 패턴을 박차는 도전의식을 묶어야 솟구쳐 오른다. 우리 여가수들의 섹시 풍조는 너무 빤하고 식상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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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빌보드 차트 정상 문턱에 다다른 곡 ‘스테이 위드 미’로 급부상한 영국의 신인 가수 샘 스미스는 이 노래를 수록한 데뷔 앨범의 머리곡으로 ‘머니 온 마이 마인드’를 배치했다. ‘내 머릿속에 돈’이란 제목을 내걸었는데 그가 외치는 바는 ‘내 머릿속에 든 것은 돈이 아니고 난 엄연히 사랑을 위해 노래한다’는 것이다.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 난 압박을 느꼈어/ 난 숫자를 보고 싶지 않고 천국을 보고 싶어/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곡을 써줄 수 있느냐고 묻지만/ 죄송하게도 행복하게 곡을 그렇게 만들 처지는 아니야….’

사람을 위해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을 위해 혹은 업계를 위해 곡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애처로운 호소로 들린다. 물론 그의 선택은 사랑이란 이름의 예술이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런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됐는지 그 연유는 알 길이 없지만 우리든 외국이든 최근 단단히 돈에 눌리고 있는 음악계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근래 음악계는 돈 때문에 피로감이 쌓이고 있고 돈 때문에 역설적으로 게토화되고 있다.

19세기의 클래식 음악과 이후 등장한 대중음악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원리는 음악의 순수성, 진실, 정직과 같은 것들이었다. 진정한 작품은 시간과 돈에서 벗어나 음악에 영원한 형식을 부여한다는 고상한 믿음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음악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혼을 불사르며 예술의 금자탑을 쌓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 하나로 충분하다. 하지만 음악도 상품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대중들의 최종 소비라는 산업경제의 틀 아래 있다. 이것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음반을 만들고 유통 계약을 하고 마케팅 계획을 짜는 모든 길목마다 자본이 으르렁거린다.

흔히 한 뮤지션이 주류가 됐다는 말은 대중과의 친화 단계를 가리키는 동시에 돈이 없어 궁상을 떠는 불우 시대를 마감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류 음악계는 온통 고(高)비용이기에 여간해서는 실패한 앨범과 활동의 가수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거대 기획사에서 배출한 아이돌 그룹이라도 대중적 반응이 저조하면, 다시 말해 들인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갈수록 이 자본은 막강하고 잔인해져 유일한 버팀목인 아티스트 정신을 분쇄해버린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본에 투항해 백기를 든 음악가, 즉 돈 때문에 음악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이러다보니 진짜 음악을 하겠다는 사람들마저도 주변인들로부터 ‘속으로는 돈 생각 하면서…’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거나 허세를 질타당한다. 샘 스미스가 여기에 분노했을 것이다. 자기만은 산업(돈)과 예술(사랑)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돈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인디밴드 '크라잉넛' (출처 : 경향DB)


자본의 가공할 침투력은 심지어 독립을 뜻하는 인디 음악계에도 파고들었다. ‘네 스스로 하라’는 인디의 슬로건 ‘DIY’는 자본으로 둘러싸인 기성 질서에 타협하지 않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독립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한다. 하지만 근래는 대다수 인디 음반사들이 음원과 음반 유통의 경우 대자본의 회사와 연계하고 있다. 자본과 상업적 주류 시스템을 배격한다는 캐치프레이즈의 인디가 자본과 손잡는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선 인디의 개념을 아티스트 정신으로 풀지, 마케팅 방식이나 주류로의 부상을 문제 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태도지, 방법론과 성공 여부는 아닌 것이다. 인디 출신으로 스타가 된 밴드 크라잉넛은 주류가 됐다는 외부 비판공세에 대해 “인디는 무조건 배고파야 한단 말인가”라고 반격했다. 돈과 음악의 키가 비슷해야지 지금처럼 돈으로 너무 기울면 음악은 사망이다. 손익그래프에 집착하면 유행의 대세에만 눈이 간다. 그러니까 지겨운 아이돌 그룹과 허접한 예능을 토해내는 것이다. 너무 심하고 빠르게 ‘기업 음악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를 쉬게 해주는 음악예술마저 기업국가, 기업사회에 종속되어야 하겠는가. 돈 없으면 음악도 못하는 세상이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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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몇 명의 음악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한 사람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대중가요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곡은 뭔가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 조용필의 ‘바운스’, 아이유의 ‘좋은 날’, 엑소의 ‘으르렁’, 이승철의 ‘마이 러브’, 소유와 정기고의 ‘썸’ 등 제법 많은 곡들이 거론됐다. 누군가가 “그럼 그중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하고 묻자 곡 숫자는 확 줄었고 다시 그가 “후대에 남을 곡은 뭐죠?”라고 했을 때는 모두들 ‘글쎄’하면서 “생각해보니 정말 곡이 없네!”하고 혀를 찼다. 


사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떤 곡이 후대에 기억될지, 역사에 남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나의 노래가 전설의 위상에 오르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대중들의 인지도가 있어야 하고 예술성, 화제성,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 전문가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동료 혹은 이후 세대 음악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중요하다. 당대에 크게 히트했다고 명곡으로 남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예술적으로 뛰어나도 극소수만 아는 곡은 배제를 당하고 시대정신을 담은 곡이라도 음악성이 떨어지면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 출처 : 경향신문 DB 



발표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후배 가수들이 자꾸 불러 현재시제를 확보한 곡은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는 이수영의 리메이크 히트로 다음 세대에게도 친숙해졌고 최근 아이유가 김창완과 함께 부른 산울림 왕년의 곡 ‘너의 의미’는 지금 음악인구와의 접점을 마련하면서 더욱 생명력을 높였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 있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하나 이상의 결정적인 곡을 보유하고 있다. 


신중현 하면 ‘미인’, ‘아름다운 강산’이고, 가왕 조용필은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등 지금도 팬들 기억에 확실히 자리한 대표곡들이 수두룩하다. 존 레넌은 ‘이매진’과 직결되고 이글스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노래한 ‘호텔 캘리포니아’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굿 바이브레이션스’를 만들고 나서 “신이시여, 정말 제가 이 곡을 만들었나이까?”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중음악가에게 명곡은 명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곡 하나가 새로운 기원과 흐름을 만든 사례도 많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핫브레이크 호텔’과 함께 어른 주도에 종지부를 찍은 청춘의 로큰롤 시대가 활짝 열렸고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는 대중음악가들로 하여금 고전음악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으로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1970년대 후반, 영국의 섹스 피스톨스는 무정부 상태를 갈망한 ‘아나키 인 더 UK’라는 곡으로 음악적 포스트모던의 탄생을 알렸다. 이 때문에 음악관계자들은 판세의 전환을 위해서는 확실한 곡 하나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예로 들면 누구나 이 말을 수긍하게 될 것이다. 한 국악 밴드의 리더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한 음반사 간부를 만났다. 그와 대화 도중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느냐고 의견을 구했더니 그는 1초의 주저함이 없이 “원 그레이트 송!” 즉 좋은 곡 하나면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앨범이 아니라 디지털 싱글이 대세다. 단 한 곡이 중요해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엄청난 수의 싱글들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곡, 다시 듣고 싶은 곡, 후대에 남을 곡은 별로 없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한철도 아닌 며칠 장사의 풍조에 함몰되어버린 탓이다. 이러니 대중음악을 누가 예술이라고 치장해주겠는가. 서둘러 판세를 바꾸기 위해 작곡자와 제작자는 하나의 좋은 곡 생산을 위해 더 땀을 흘리고 소비자들도 피로감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양질의 곡에는 기꺼이 응답하는 수고가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릴 찰나의 곡들만이 판치는 이 허한 현실을 바꿀 길이 없다. 국면을 전환시킬 ‘원 그레이트 송’을 기대한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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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의 김창완은 “대중음악의 기능은 위안에 있다”고 말한다. 전달하는 내용이 흥이든 우울함이든 대중가요의 모든 것은 결국 듣는 대중들에게 위안, 위로 혹은 근래 급부상한 언어로 말하자면 힐링을 주는 데에 맞춰져 있다. 사람들만 위로를 얻는 게 아니라 음악가들도 음악을 만들면서, 그 음악으로 대중의 박수를 받으면서 위로를 경험한다. 자기 위로다. 그래서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팬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느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위로라는 답을 내놓는다.

대중음악이 위로 그 자체라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중 전파매체는 국민적 상처를 위무하는 대중가요를 더욱 전면에 배치하는 게 이치상 맞다. 실의, 좌절, 분노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데 음악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세월호 참사의 애도기간에 TV 음악프로는 예능프로와 함께 줄줄이 결방되었다. 어떤 음악이든 가수의 노래에 박수 치고 즐거워하는 장면을 내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게 되면서 음악은 사라졌다. 공연 장면은 아예 불가능했다.

같은 기간에 라디오는 어땠을까. 라디오 오락프로들은 기존의 구성을 버리고 톤이 낮고 느린 템포의 노래들, 특히 흘러간 노래들로 대체해 긴급 편성했다. 잇단 위로의 노래들 덕분에 갑자기 ‘뜨악’한 제목이 돼버린 <싱글벙글쇼>, <재미있는 라디오>, <즐거운 오후 2시>, <상쾌한 아침입니다> 등의 프로가 텔레비전과는 다르게 결방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키득키득거리는 잡담 위주의 라디오 예능프로들도 방송이 중단되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긴 지난 5월 초 한 라디오 PD는 “처음에는 어떻게 방송 2시간을 채울지 감감했는데 노래로 대체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막상 뒤져보니 위로 메시지의 노래가 부지기수였다”며 선곡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에선 노래가 죽은 반면 라디오는 음악이 넘쳐난 것이다. 이 대조적인 양상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초유의 국민적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TV의 ‘보는 음악’은 어떻게 표현해도 위로는커녕 반감을 부를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수 김창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점령한 우리의 현 대중음악 즉 ‘K팝’도 문제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아이돌 음악으로 등식화된 K팝은 거의가 격렬하게 흔들어대며 춤추고, 감각을 극대화한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차분하고 애처로운 기조의 노래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돌 음악만 보면 우리는 신 나는 세상, 즐거운 인생이다.

요란한 감각과 쾌락적 아우성에 쏠려 위축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숨결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니 TV 프로에서 대중가요의 현장을 담아낼 수 없는 노릇이다. 대중음악의 본령이 위로인데 위로의 메시지가 절대 부재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홀대를 당하게 된 것이다. “이 판국에 아이돌 댄스의 무대를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미친 짓 아닌가”라는 한 방송관계자의 말은 처량하다.

대중가요의 정서가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간 우리 K팝이 즐거움과 비통함의 정서를 고루 표현해왔더라면, 세월호 참사 기간에 위로를 줄 수 있는 분위기와 메시지 쪽의 노래를 골라 충분히 방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메라로 얼마든지 국민들의 쓰라린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노래 장면을 포착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랫동안 일방적인 감각의 댄스음악만으로 덮어놓다 보니 정작 애도의 순간을 맞아 어울림을 갖는 노래와 위로 제공의 가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주류의 대중음악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 결코 편치 않은 삶인데도 고단함을 다독여줄 힐링 송이 적어도 TV 가요프로에서는 ‘행불’이다. 대중가요 본연의 위로 기능이 아쉽다. 이런 노래들에도 카메라를 비춰준다면 상투적 후크 만들기에 묶여 신음하는 작곡가들이 먼저 환영하지 않을까. 위로의 톤과 메시지의 노래가 K팝에 태부족인 현실이 뼈아프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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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지난 한 세기 그리고 지금도 세계 대중문화를 쥐고 흔든 최강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대중흡인력이 높은 음악콘텐츠와 유통 파워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미국음악 판으로 만들어놓았다. 유럽 남미 아시아는 물론이고 우리의 아이돌 그룹의 음악도 한국 전통음악이 아닌 미국적인 음악이다. 여기서 미국은 승리한 셈이다. 거의 모든 나라의 대중음악이 미국의 것이거나 미국화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위용을 떨치고 있는 로큰롤이란 음악이다. 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꽃핀 로큰롤을 보는 애초의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몸을 마구 흔들면서 소음을 뿌려대는 못된 애들의 음악이라는 게 기성사회의 인식이었다. ‘10대 비행의 원흉’, ‘백치의 깡패음악’이라는 거친 비난도 등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10대와 20대는 답답한 시절을 후련하게 뚫어주는 듯한 로큰롤 사운드에 너도나도 쏠려 들어갔다.

당대 미국 행정부는 이를 주시했다. 이 로큰롤이야말로 ‘자유’를 표방한 미국만의 진정한 청춘문화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통과 역사가 부재한 신흥국가라고 유럽으로부터 괄시받던 때,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미국은 로큰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용의주도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큰롤 선풍을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수출한다. 귀족문화가 만연한 영국부터가 흑인노예의 블루스에서 발전해온 보잘것없는 로큰롤 붐에 극력 반발한다. 오죽하면 <미국의 음모>라는 책까지 나왔겠는가. 요지는 ‘미국이 싸구려 로큰롤을 가지고 고매한 영국의 청소년들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려였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만세를 부르고 싶을 만큼 미국의 로큰롤은 세계를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영국은 비틀스가 증명해주듯 로큰롤 대열에 동참했고 소련과 쿠바와 같은 공산진영에서도 젊은 세대는 로큰롤에 속속 흡수되었다. 미국의 힘은 전함과 달러를 넘어 로큰롤과 할리우드 시네마 즉 대중문화 파워였던 것이다. 이유는 하나, 바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글로벌 청춘이 떼로 열광하면서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초네는 어느덧 기성세대의 ‘올드’ 음악문법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특히 비틀스의 밴드문화가 가해지면서 1960년대부터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장파괴력은 확고해졌다.

대중문화의 성패는 젊은 세대의 감성에 닿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음악의 주체가 노년이든 중년이든 청춘들의 감수성과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결코 트렌드로 발전하지 못한다. 7080이나 8090도 영 제네레이션의 관심 혹은 약간의 동의가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순간 복고 아니면 어른만의 잔치로 끝났을 것이다. 뚜렷한 흐름으로 상승하려면 젊은이들의 지지와 호감이 있어야 한다.

가수 조용필이 7일 오후 일본 도쿄 국제포럼 공연장에서 열린 자신의 19집 투어콘서트 ‘헬로’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제공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지난해 조용필의 ‘바운스’ 열풍도 10대와 젊은 층의 성원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음원 부문에서 두 곡이나 1위를 차지한 것이 말해준다. 조용필 스스로도 “새로운 나, 또 다른 나를 찾고자 했다!”며 대놓고 젊은 음악 쪽으로 갔다. 최근 중견 가수들 사이에서 모처럼 형성된 ‘한번 해보자’는 활기는 단순히 그때의 음악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 지금의 음악문법을 놓치지 않으려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막 컴백한 이선희는 새 앨범을 만들면서 한창 잘나가는 젊은 작곡 팀 ‘이단옆차기’로부터 ‘동네 한바퀴’라는 곡을 받았다.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숙련가가 보여주는 세대균형을 위한 노력이다. 노련한 가수의 ‘영’한 음악에 누리꾼은 우호적 반응을 보인다. 나이든 가수가 음악을 젊고 신선하게 꾸미려는 것을 두고 애들한테 비위나 맞추며 알랑거리는 제스처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대중음악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젊은 층에 있고 그들의 반응에 따라 대중성 여부가 결정된다. 주인이 키드라면 모시듯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



임진모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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