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책사업 비중만 조정해도 등록금 내릴 수 있잖아요”


‘엄마, 아빠 대학 가서 죄송해요.’


반값 등록금 시위현장에서 한 대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고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초·중·고 시절 착실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부모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다니…. 자식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에 보내고, 휴학을 시킨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알바’와 ‘공부’에도 바쁜데 피켓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학생들. 가슴을 맞대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소현씨(20·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1학년·이하 소현)와 윤호산씨(25·서강대 법학부 3학년·이하 호산)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왜 반정부 시위라는 거죠?” 올해 대학 1학년이 된 스무살 소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러게…. 그게 왜 반정부 시위가 되는 걸까.”


 



왼쪽부터 윤호산, 이소현, 김제동씨. 김제동 “나도 학교 앞 호프집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했어. 우리 땐 그래도 뭐든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었지. 적어도 학생시절에 빚은 없었거든.” 윤호산 “학생들을 최소한 빚쟁이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소현 “뭐가 그리 힘들고 복잡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깎아주면 안되나요?” _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느닷없는 질문에 대책없이 얼버무린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스무살 청춘’의 질문에 ‘불혹’을 앞둔 어른이 시원한 답을 못해주다니…. MC가 말문이 막히면 다 된 거다. 그렇다고 ‘아프니까 청춘…’ 운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현 = 오빠도 기말고사 기간 아닌가요?


- 난 리포트로 대체하려고. 불량학생이잖아. 기말고사 기간인데 아르바이트는 계속 하는 거지? 무슨 아르바이트해? 


소현 =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해요. 밤 12시까지. 틈틈이 과외도 하고, 행인들 대상으로 설문이나 사인받는 길거리 홍보도 해요. 


- 그럼 수업은 언제 듣는 거야? 


소현 = 3일간 몰아서 수업을 들어요. 아르바이트 시간 맞춰놓고 수업시간표를 조절하는 거죠. 듣고 싶은 과목은 못 들어요. 


호산 =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들은 지는 꽤 됐죠. 시간표를 짤 때 듣고 싶은 수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하고 비는 날에 수업을 맞춰요. 


- 원래는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게 정상인 거잖아. 


호산 = 저도 대학에 오기 전에는 그게 정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네요. 이 상태가 오래되다 보니 그냥 받아들이고 있어요. 


- 무슨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


호산 = 요즘은 수녀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에요. 이전엔 별별 것 다 해봤죠.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할 때는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하고 아침에 수업갔어요. 


- 그러면 수업이 돼? 


호산 = 그러다가 휴학했었죠. 다 지탱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해군으로 입대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 한 학기 휴학했고 갔다와서 또 한 학기 했었죠. 그래서 모은 돈으로 이번 학기 다니고 있어요.


- 그럼 이번 학기 마치면? 


호산 = 또 휴학해야겠죠. 그렇게 휴학해도 학자금은 대출로 해결해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한 달 하숙비가 40만원이고 학자금 대출이자 10만원에 휴대폰 요금 내고 용돈 쓰면 한달에 100만원 가까이 들거든요. 등록금은 졸업하고 어떻게 되겠지 생각해요.


- 등록금 대출은 얼마나 받은 거야?


호산 = 지금까지 1700만원요. 이제 3학년 1학기인데….


- 그럼 졸업할 때 3000만원 정도는 빚을 안고 나가는 거네.


소현 = 그래도 오빠는 취업 후 상환할 수 있는 걸로 빌리셨네요. 저는 취업 후 상환이 아니라 일반상환이라, 3년 안에 갚아야 해요. 입학하면서 430만원을 빌렸는데 한달에 이자가 1만7000원 정도 나와요. 지난달엔 그걸 제때 못 냈더니 하루에도 몇번이나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집이 일산이고 학교가 태릉이라 자취를 했었는데, 방값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왕복 4시간 걸려 통학하고 있어요. 






▲ “반값 요구가 왜 ‘반정부’라는 거죠?”

▲ “그러게….” 대책없이 얼버무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 김제동






- 주변에 이런 형편에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지?


호산 = 비율로 따지기는 힘들죠. 그런데 제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거든요. 어른들은 그러잖아요. 누구나 아르바이트했다, 이런저런 장사도 다 해봤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도 해결할 수 있는 건 생활비뿐이거든요. 빚은 점점 쌓여가고. 그게 어느 순간 무섭게 덮칠 것 같아요.


소현 = 학교에 종종 선배들이나 유명한 분들이 특강을 오세요. 그분들 말씀이 열심히 공부하면서 열심히 놀라고 해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그런데 진짜 말도 안되죠. 전 동아리 생활도 못해요. 수업, 아르바이트, 과외, 집. 이게 끝이거든요. 다른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곧 방학인데, 방학 때도 잠자는 것 빼고는 빡빡하게 계획 다 세워놓고 살아야 해요. 


- 부모님은 뭐라고 하셔? 


호산 =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갖고 계시죠. 전에는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안하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잔소리도 안하시고. 부모님 권유로 법학과에 들어왔는데, 들어와보니 생각과 다른 점이 많아서 다른 공부를 하려고 해요. 부모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별 말씀 못하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사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20세가 넘으면 본인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은 개인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지. 그래도 너희들 마음속에 희망의 싹은 갖고 있는 거지?


호산 = 지금 상황에서는 앞이 안 보이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나중에 어느 정도의 위치나 모습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가져봐요. 그런데 제 삶에 최선을 다하다가도 의도치 않은 빚이 자꾸 쌓여가니까….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다가도, 그것마저 갖기 힘들게 만드는 세상이다 싶어요. 


소현 = 착잡해요. 이게 진짜 현실이니까.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대학에 합격했다고 아주 기뻐했어요. 전 수시로 작년 10월에 합격하고 나서, 독서실과 학원보조일을 하며 돈을 모아야 했어요.


호산 = 저도 올해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어요. 집안에 대학생이 둘이니까 누군가는 희생을 하게 되더라고요. 동생은 원하는 학교 대신 장학금이 전액 나오는 학교로 갔어요. 그래도 동생에게 군대 가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학자금 빚에 질식할까 두려워요”

▲ 우골탑 대학이 30년 지났는데 사정 안바뀐 게 저들 책임인가. - 김제동






- 지금 당장 소원이 있다면 뭐지?


호산 = 등록금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졸업과 함께 빚을 갚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엔 등록금 없이 운영되는 곳도 있다고 그러던데요. 그런 걸 제가 소원으로까지 빌어야 하나? 갑갑하죠.


- 돈으로 인한 과중한 부담이 없어진다면 뭘하고 싶어?


호산 = 공부를 더 하고 싶죠. 듣고 싶은 수업 듣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어요. 그래도 저는 제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에 있는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더 힘들어요. 그나마 제가 배부른 입장이죠. 


-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은 뭐야?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 뒤엔 어떤 사회인이 돼 있을까.


호산 = 제가 철없을 때는 주변을 보는 게 부족했는데 오히려 군대 갔다오고, 이런 삶이 계속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눈이 좀 더 생겼어요. 세상사에 대해 관심도 많아졌고. 꼭 집어 이걸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닌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 더 힘든 환경에 처해 있는 약자를 돕고 살겠다는 생각은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아. 연애는?


소현 = 해야죠. 그런데 남자친구를 만나고 할 여유가 안 생겨요. 현실이 너무 안 따라주니까 엄두도 못내죠. 


- 연애를 못하는 건 여러 가지 사유가 있어. 내가 등록금 낼 아르바이트하느라 연애를 못하겠니?


소현 = 연애를 해도 걱정이네요. 졸업하고 취직해서 등록금 빚 다 갚으면 서른은 훌쩍 넘을 테고, 그리고 결혼자금 모아서 결혼하려면 오빠 나이는 돼야 결혼할 수 있다는 건데….


- 에이, 내 나이가 어때서?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있어. 등록금 내리는 것은 대학에 못 간 아이들과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호산 = 글쎄요. 등록금이 낮아지거나 없어지면 대학에 안 가는 아이들은 있을 수 있어도 못 가는 아이들은 없을 것 같은데요. 돈 없어서 포기하는 아이들도 많을 텐데, 그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등록금 낮추면서 세금을 더 걷네 마네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국가사업 비중만 전환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도 세금이 들어가는데, 그걸 비장애인에 대한 형평성 문제라고 따질 건가요?


- 맞아. 내가 어이없는 질문을 한 이유는, 이걸 너희들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돼서야. 너희들은 이 사회 구성원 누구보다도 사회 전체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살고 있는데, 이기적이다, 편하게 놀고 먹겠다는 생각이다 이러면서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해 미치겠어. 아, 낮술이나 먹었으면 좋겠다. 


캠퍼스에 학생들과 자리를 폈다. 나름 연예인이라고 학생들이 알아보며 슬쩍슬쩍 아는 체를 해온다. “제동이 형, 트위터 많이 보고 있어요.” “기말고사 기간인데 책 봐요. 트위터 보지 말고.”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요.” “함께는 안돼. 나 감기 걸려서 며칠 동안 엄청 고생 중이야. 옮으면 기말고사 망치잖아.”


괜찮다며 살갑게 다가와 옆자리에 앉아서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보면서 슬쩍 목이 멘다. 다시 오지 않을 저 청춘의 한순간을 ‘밤샘알바’와 ‘쪽잠’으로 보내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저 1960~70년대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렸던 대학이 2000년대를 훌쩍 넘어서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은 게 저들의 책임인가. 


학생들과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시고 싶은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 불쑥 약봉지를 내민다.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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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진정 복지사회 위한다면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제동씨를 보면 아직 덜 여물었지만 선적인 예지력이 있어요. 공부는 안 했는데도 ‘번뜩번뜩’하는 것 말이에요.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스님이 되는 게 어때요? 고기 안 먹고, 산 좋아하고, 혼자 사니까. 내가 보기엔 공부를 조금만 하면 아주 유명한 스님은 못 되더라도 땡중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몇 달 전 법륜 스님(58)이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처음에 농담 삼아 들으며 웃고 넘겼는데, 삶이 파도처럼 요동칠 때마다 이 말씀이 자꾸 마음속으로 차고 들어온다. 스님과 인연을 맺은 지 고작 1년 남짓, 스님은 내 삶의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잡으셨다.


묻고 바로 답한다는 ‘즉문즉설’. 산처럼 큰 문제라도 스님 앞에선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인간의 욕심과 집착이 번뇌와 고통을 불러오고, 세상만사가 괴롭고 복잡한 건 우리네 마음속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스님은 북녘동포들이 겪고 있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밤잠을 설치시고, 세상의 그늘에서 굶고 있는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신다. 그래서 스님의 법당은 산 속이 아닌 우리네 삶 한가운데 있다. 


 



 


법륜 스님 “아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 야단칠 게 아니라, 네가 몰라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야죠. 모든 이치를 다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까 공부를 통해 남이 경험한 것을 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가 자기 삶과 직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제동 “그런데 지금 많은 부모들은 그 이치보다는 점수만 잘 나오는 공부에 목숨을 걸고, 요행을 바라는 거네요.” | 김기남 기자




-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오셨다면서요. 무슨 일로 가신 거예요? 


“북한의 식량난을 알리기 위해서요. 북한 식량난의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왜 이 상황이 생겼는지, 인도적 지원은 왜 필요한지 이런 문제에 대해 미 국무성과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대화했어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려면 가장 필요한 때인 지금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 교민들과 ‘즉문즉설’도 하셨을 텐데 교포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해외에 계신 분들이 심리적 불안 정도가 좀 더 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민간 분들은 언어도 잘 안 되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 그런 면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요.”


- 무슨 말씀 하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미국에 살면서 경제적 문제로 힘들다고 하는 것은 65억 인구에 대해 죄짓는 거다.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미국 사는 사람이 못살겠다면 다른 나라 사람은 무슨 희망을 갖고 사느냐. 그러니 적어도 미국에 사는 사람은 그런 말 하면 안된다고 얘기했어요.”


- 스님,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요.


“사람들이 북한정부에 대해 반대할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 주민은 북한 정부로부터 소외받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니 도와야지요. 물론 인도적으로 지원하면 제대로 분배가 이뤄지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엔 토론이 필요합니다. 취약한 쪽에 제대로 가도록 지원하는 방법은 계속 연구해야지요. 그런데 미우니까 주지 말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게 문제죠. 분배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굶주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도와야지요.”


- 분배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데 아예 안 준다면 논의 자체가 안되는 거네요. 어쨌든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반일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도 인도적 지원을 했잖아요. 우리가 일본을 도와주면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조건으로 내세운 건 아니잖아요. 피해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연민과 아픔을 느끼고 도운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에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면서 왜 북한에는 하지 않느냐는 거죠. 게다가 정부가 안주는 것은 그렇다 쳐도, 민간이나 외국에서 지원하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어요. 결국 우리나라가 반인도적 국가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거지요.”


- 우리나라의 국격을 위해서도 안 좋은 거네요. 


“그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도 식량지원이 필요해요. 북한주민들의 민심을 얻어야 통일을 이루지요. 또 국제사회의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북한이 어려울 때 한국이 지원해서 그 위기를 극복한다면 국제사회의 통일 외교에도 도움이 돼요. 만일 중국이 지원해서 위기를 극복한다면 앞으로도 북한은 중국이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잖아요.”


- 그럼 어떻게 분배가 잘 되도록 해야 할까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분배과정에서는 항상 많은 문제가 일어나요. 100%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지만 유실을 최대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죠. 예를 들어 식량을 북한의 여러 항구로 분산해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또 항구에서 넘겨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확인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협의하는 등, 분배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지요.”


스님은 잘나가는 ‘연예인 스케줄’보다 더 바쁘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정이 이어지고 서울과 지방, 외국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신다. 얼마 전엔 단식수행 중이시던 스님 곁에 며칠을 머무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좀 걷자’고 하셔서 따라나섰더니, 그 길로 24㎞를 쉬지 않고 가셨다.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 “부모가 다 해줘 놓고 아이에게 되레 야단… 이치를 설명해야죠”

▲ “부모가 어쩌지 못한 문제를 학교 교육에서 해결하기 어렵군요.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잖아요.” - 김제동


- 저더러 그 다음날엔 경주 남산도 가자고 하셨잖아요. 전 정말 단식하는 분 맞나 싶었어요. 그런데 즉문즉설 하시다보면 어떤가요? 요즘 세상에 자녀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많을 듯한데요.


“아이들 자체는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부모지요.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줘요.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도 야단치면 안돼요. 대화해야죠. 지금 공부를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데 결국은 대학은 갈 수 없다. 그러니 대학을 가려면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 하고, 공부하기 싫다면 대학 가는 것을 포기해라. 아무리 아이라도 본인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줘야 해요. 이치를 설명해 주라는 겁니다. 뜨거운 구슬을 쥐기 위해 손을 데지 않고 잡을 방법은 없어요. 대부분의 고민이 구슬도 갖고, 손도 안 데이는 방법이 없겠느냐. 전부 그걸 물어봐요.”


- 왜 그럴까요. 


“욕심 때문이지요. 공부는 안 하고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복은 안 짓고 복받고 싶고, 죄는 지어놓고 벌은 받기 싫고. 여기서 종교가 부정적 역할을 해요. 믿으면 두 가지가 다 된다고 말하거든요. 가을에 추수하고 싶으면 봄에 씨를 뿌려야 해요. 원래 종교의 역할이 그 이치를 가르쳐주고 깨우쳐줘야 하는데 지금 종교는 그렇지 못해요.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엄마가 절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고 가르쳐요. 공부도 안 하고 부처님께 기도해서 좋은 대학 간다면 부처님이 부정입학시켜주는 브로커인가요? 이런 부처님, 이런 하느님 믿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어쨌든 본인이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 책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에요.”


- 그런데 지금 현재 교육시스템에서는 힘든 거죠. 


“시스템도 문제지만 첫째는 부모가 문제라고 봐요. 어릴 때 삶의 방향이 바로잡혀야 학교 가서 교육이 가능한데 부모들로부터 인간 삶의 기본 훈련을 못받으면 학교에서도 바로잡기 힘들어요. 부모도 어찌 못하는 아이를 학교 선생님이 바로잡기 힘들죠. 선생님이 수행자도 아닌데. 모두들 하나 낳아서 키우기 때문에 모두 왕자이고 공주잖아요. 그런 아이를 야단친다거나 때린다면 선생님 자리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지요.”


- 부모가 어쩌지 못한 문제를 현재 학교 교육에서 해결하기가 힘든 거네요. 그런데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힘들잖아요. 


“우린 자꾸 누군가를 고쳐서 행복해지려고 해요. 그런데 나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어떻게 남을 고치겠어요. 그러니까 남을 억지로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고치지 말라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고쳐야 할 세상의 부정과 불의 등 엄청난 것을 놔두고 아이 버릇 한두 가지 고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과제인가요? 그것 때문에 세상이 안되는 건 아니잖아요.”


▲ “경쟁 뒤진 사람 배려, 그게 복지사회 목적… 북 동포도 돌봐줘야”

▲ “요즘 젊은이들의 괴롭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희망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 김제동


- 즉문즉설을 해보시면 또 어떤 질문들이 많나요? 


“그날 분위기나 모인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달라요. 평균적으로 보자면 나이드신 여성분들은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죠. 대체로 인간관계, 다음으로는 건강문제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돈을 빌려가서 안 준다,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안 팔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보고 단명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아이가 맺힌 게 많아 굿을 해줘야 한다는데 등등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 그럼 뭐라고 대답하세요? 


“결국은 어떻게 마음을 갖느냐는 문제죠. 다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죠. 집을 급하게 팔고 싶은데 안 팔린다면 싸게 내놓으면 될 거고, 굿을 해야 좋다고 하는 말이 신경 쓰인다면 하면 되죠. 권한 사람이 좋다고 하니 자기 마음이 혹한 건데, 그 마음을 따르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요.” 


- 뭐라도 스님 앞에 가져오기만 하면 고민이 별 게 아닌 게 돼요. 하하. 그런데 혹시 스님은 고민 없으신가요? 


“있죠. 굶어죽는 북한 동포들을 보면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잘 안되니까. 늘 앉으나 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가장 큰 고민이죠. 제3세계의 굶어죽는 사람들도 도와서 살리자고 하는데, 바로 우리 동포이고 이웃인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요. 그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이죠. 나 역시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는데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잘 안될 때,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원인을 남에게 전가하고 상대를 미워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럴수록 마음을 돌이켜 원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또 안타까운 것은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패권경쟁이 격렬해지고 고착화할 텐데 그 틈바구니에서 남과 북의 통합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통일의 기회를 지금 잡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크지요.”


- 요즘 젊은이들, 괴롭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오잖아요. 그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아, 내게 또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구나’ 하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지요. 두 번째로는 대한민국이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그래도 세계를 다녀보면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라는 점에 감사하면 좋겠어요. 이 두 가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점이라면,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해요. 제도적으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해요. 또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도 공정해야 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을 위한 배려도 있어야 됩니다. 즉 복지사회 건설이지요.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이룰 것이냐? 투표죠. 이제 혁명은 선거를 통한 혁명밖에 없어요. 군인들이 총들고 나와서 개발을 밀어붙이고, 학생들이 피흘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투표를 잘 해야 해요. 지연, 학연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하고, 정치인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을 보고 누구를 투표할지 고민이 있어야지요.”


- 결국 개인적 수행과 동시에 사회 전체가 할 수 있는 공동체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거네요.


“이게 불교적으로 말하면 개인의 완성인 성불과 사회건설인 정토지요. 스스로는 언제나 진리를 깨우쳐 부처의 길로 가는 한편,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이 덜 고통받고 살 수 있도록 정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나부터 잘하자는 것과 사회 전체가 개선되도록 하자는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지금 보면 종교는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흘러 세상을 외면하고 있잖아요.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 시스템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노력도 함께 해줘야 한다는 거죠.”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는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리라. 굳이 이 설명을 붙인 이유를 물으신다면?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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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배우 황정민(40)의 첫인상은 솔직히 좀 안돼 보이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스타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버스 속에서 늘 만나는 평범한 사내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년 전 예능프로그램 <야심만만>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를 형이라 부르면서 늘 안부를 묻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된 건 술 때문이었다. 언젠가 속상한 일 때문에 술에 취해 하소연할 상대를 찾다가 KBS 아나운서 황정민 누나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 목소리는 남자였다. 아나운서 황정민이 아닌 배우 황정민. 그날, 황정민은 한 시간 넘게 내 술주정을 받아줬다. 그리고 형이 됐다. 

그의 주연영화 <부당거래>를 보고난 직후 그를 만났다.

 
 


- 영화가 잘되면 진짜 뿌듯하지 않아요? 트위터에서도 반응이 대단하고.

“그러게. VIP 시사회 끝나고 중훈이형(박중훈)이 올려줘서 홍보가 더 많이 됐어. 극장에도 30·40대 남자들, 넥타이 부대가 와 있더라고. 기분 좋더라. 연인들이 와서 팝콘 먹으며 보는 영화가 아닌 것 같아서, 그게 참 좋아. 그런데 ‘트위트’ 그거 굉장히 효과가 있던데?”

- 에이 참, ‘트위트’가 아니고 ‘트위터’예요. 형은 그거 안해요?

“전화기도 바꿔야 하고 귀찮아서….”

- 이번 영화는 어떤 느낌이었어요? 영화마다 느낌이 다르지 않아요?

“글쎄. 영화가 망했으면 민망했겠지. 그런데 난 좀 그래. 영화를 다 찍고 나서 내가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는 왠지 내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영화가 다 그랬어. 그냥 하얘지는 느낌이랄까? 지금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렇게 했나? 내가 어떻게 했지?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돼. 하여튼 나와는 먼 느낌이야.”

- <부당거래>는 평범한 내용의 영화는 아니더군요?

“그렇지. 난 영화판에 그런 영화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 영화판이란 게 눈치를 너무 많이 보니까. 아마 <추격자> 이후로 모든 영화가 스릴러였을 거야. 난 그게 너무 짜증이 났지. 보는 사람도 ‘또 스릴러야?’ 하고 지겨울 텐데 하는 사람은 어떻겠느냐고. 난 예술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늘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너무 싫어. 그래서 <부당거래>를 하게 된 거지. 류승완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승범이까지 한다고 하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했지.”

- 영화 찍으러 다닌 게 아니라 술 마시러 가는 기분으로 찍었겠네요.

“그렇지. 해진씨도 그렇고 뭘 해도 워낙 잘하는 사람들이라. 촬영하면서 어쩌구저쩌구 별 말도 없었어. 그저 서로 연기를 탁탁 주고받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얻는, 그런 즐거움을 느꼈던 작품이지. 그런 게 있어. 좋은 배우와 연기할 때 주고받는 희열이랄까? 그런데 가끔 연기하다 보면 상대를 두고서도 마치 큰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정말 외롭지. 그런 날 우리끼리는 ‘오늘 외로웠어’라는 말을 많이 하지.”

- 배우의 자질이란 뭔가요?

“늘 주장하는 건데 배우는 착해야 해. 날 보면 알잖아.”

- 형이 그 말 해놓고도 웃기지 않아요?

“난 순한 양이야.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니?”


하긴 그가 ‘순한 양’인 건 나도 동감한다. 딱 한 번 그가 분기탱천해서 고함을 친 적은 있다. 언젠가 형과 뮤지컬배우 박건형, 그리고 나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 “배우는 착해야 되는데
못된 사람들은 연기를 하면 티가 나”

▲ “진행자도 비슷한 것 같아요. 못된 사람이 말을 하면 표가 나거든요. 어떻게 보면 여우같이 더 잘할 것 같은데…” - 김제동

그날 건너편 테이블의 취객이 우리쪽을 보면서 “쟤는 참 못생겼다”고 했다. 그때 형이 벌떡 일어나서 “왜 우리 제동이가 못생겼냐구요?” 하고 따졌다. 그날 엉겁결에 셋 중에서 내가 ‘가장 못생긴 남자’로 지목됐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다. 그 취객이 “못생겼다”고 지목한 사람이 꼭 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그 취객을 만나면 확인해 보고 싶다.

여하튼 배우 황정민은 참 착한 사람이다. 영화마다 다른 얼굴로, 다른 표정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착한 연기자’라는 무기를 숨기고 있다.

“기본적으로 못된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착한 역을 하면 티가 나. 그런데 착한 사람이 못된 역할을 하지? 그러면 못된 것만 보인다. 진짜 못된 사람은 착한 역할을 못해. 그만큼 배우는 심성이 고와야 해.”

- 진행자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못된 사람이 착한 멘트를 하면 표가 나거든요. 그런데 왜 그럴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못된 사람이 여우같이 다 잘할 것 같은데.

“무대라는 것이 주는 신성함 때문이겠지. 무대는 속일 수가 없어. 암만 치장을 해도 누구나 올라가면 본연의 모습이 다 드러나게 돼 있어. 자기도 잘 알잖아.”

- 무대와 영화는 또 다르지 않은가요?

“그렇지. 내가 작업해본 경험으로는 영화가 더 어려운 것 같아. 어렵다는 건 까딱 잘못하면 100% 들키기 쉽다는 거지.”

- 제 생각엔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무대가 더 들키기 쉬운 것 같은데, 바로 눈앞에서 보이잖아요. 영화는 실수를 해도 정제돼 나올 것 같고.

“영화는 거대한 화면에 얼굴이 클로즈업되잖아. 관객이 배우의 눈을 보면 거짓인지 아닌지가 금세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근육 하나, 눈썹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고 어렵지. 배우의 진심이 없으면 어떻게 관객을 웃기고 울릴 수 있겠어. 그런데 뮤지컬이나 연극은 막이 올라간 뒤 2시간은 내 시간이지. 누가 뭐라든 두 시간은 내 세상이거든. 그 안에서 노는 거지. 똑같은 공연작품이라도 하루하루 색깔이 달라져.”

- 저도 토크콘서트 하면서 그런 것 많이 느꼈어요.

“어떤 날은 희한하게 관객과 죽이 잘 맞아서 가는 날이 있는 반면, 또 어떤 날은 관객들이 다 기자나 평론가 같은 날이 있어. 내가 요즘 찍고 있는 영화가 <모비딕>인데 여기서 기자 역을 맡았거든. 한 신문사에 가서 수습생활을 했는데 기자들 되게 딱딱하더라고. 사회부에도 1주일 정도 있어 봤는데 사회부 기자들은 자기가 형사인 줄 알아. 그래도 일 끝나고 저녁에 함께 갖는 술자리는 참 맑고 재미있더라고.”

- 1년에 영화를 얼마나 찍는 거죠? 굉장히 다작을 하는 것 같은데.

“아냐. 한 1.5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지난해 찍은 걸 올해 개봉한 거고, <부당거래>는 올해 찍었고, <모비딕>은 내년까지 촬영할 거야.”

- 그런데도 자주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건 형이 중량감 있는 배우라서 그런 건가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 뭐. 하하. 한동네에 살면서 자주 만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몰라.”

연극판의 배고픈 배우 황정민이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게 된 작품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일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너는…>은 배우 황정민에게 분기점이 된 작품이었다. 주류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늘 비주류인 느낌, 연예인이나 스타라는 칭호보다는 인간이나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런 황정민을 만든 영화였다.

▲ “주류만 찾는 세상에서 비주류 다리 역할… 새 문화형태 만들 것”
▲ “주류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늘 비주류인 느낌. 황정민은 스타라는 칭찬보다 인간이나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 김제동


- 형은 영화를 하면서 정체성의 괴리랄까, 야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느낌이 있어요? 아니면 연극하면서 고생하는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진다든가?

“특별히 없어. 내가 잘나서 잘된 건 아니고 운때가 맞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 돈 생기면 연극하는 후배들한테 가서 술 사줘. 물론 조심스러운 건 분명히 있지.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내가 필사적으로 지켜온 건 촬영장에 늦지 않게 간다는 거야. 늘 한 시간 전에 가지. 조연출이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묻곤 하는데 이유는 단 하나야. 연기 잘하고 싶어서.”

- 무당 같아요. 접신하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맞아. 나 항상 사우나 가서 목욕하고 가.”

- 하하. 목욕하고 갔는데도 영화에선 늘 꾀죄죄하게 나오던데…. 농담이고요. 앞으로 계획이 뭐예요? 기자 같은 질문이지만.

“배우로서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관객과 만나는 다양한 형태, 특이한 형태의 공연을 해보고 싶어. 영화계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다리 역할을 계속하고 싶고.”

- 남을 위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그런 일은 중요한 것 같아요.

“최고로 중요하지. 대중들은, 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주류만 찾잖아. 난 그것 보기가 참 불편해. 예술은 주류 때문에 모든 게 움직이는 게 아니야. 밑바닥에 있는 비주류의 사람들도 각자의 역할을 하거든. 내가 영화를 시작하면서 마음먹었던 일을 비로소 내년에 본격적으로 하지. ‘키친 프로젝트’라고. 부엌에서 어머니가 뭐든 만들잖아. 재료도 없는데 맛있는 반찬이 뚝딱 나오고. 그래서 키친이야.”

맹인검객, 농촌 총각, 우체국 말단직원, 순수한 슈퍼맨…. 그가 영화에서 만들어온 이미지와 그가 꿈꾸는 일이 잘 맞아떨어질 듯했다. 우직한 비주류의 누군가가 주류 세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야말로 사내로서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 그런데 왜 그걸 해보고 싶은 거예요?

“나도 열심히 해서 지금까지 왔으니까 후배들도 그 길로 이끌고 싶어. 비주류의 실력있는 친구들을 주류로 데려와야지. 미국에 선댄스영화제라고 유명한 영화제가 있어. 로버트 레드퍼드가 만들었지. 칸이나 베니스가 포장된 주류 영화제라면 이건 진짜 선수들, 비주류들이 열정을 갖고 뛰어놀 수 있는 무대야.

로드리게스, 타란티노 등이 여기서 발탁됐지. 하비 케이틀이란 배우가 타란티노라는 신인 감독이 만든 대본을 보고 한눈에 그 재능을 알아봤대. 그래서 나온 게 <저수지의 개들>이지. 멋있잖아. 후배들하고 출연료나 촬영조건, 배급사 같은 거 안 따지고 서로 호주머니 털어서 그런 것들을 만들고 싶어. 우리가 처음 학교에서 영화를 찍을 때처럼.”

- 형은 유난히 그런 쪽에 애착이 많은 것 같아요. 촬영 때 호텔 잡아줘도 스태프들 있는 모텔만 고집한다면서요.

“호텔에서는 야한 영화를 안틀어줘서. 하하. 늘 좋은 것,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만 찾다보면 몸이 썩어. 진짜 귀한 게 없어지는 거지. 시상식에도 그래서 안가고 싶어. 어떤 작품보다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지는 게 아주 싫어. 어떤 땐 레드카펫을 팍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 가서 당당하게 한 번 찢어주지 그래요.

“또 말만 그렇게 하잖아. 나 인생 가늘고 길게 사는 연약한 보통사람이야. 우하하.”

형이 임수정과 연기한 <행복>이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그때 형은 사랑하던 여자를 배반하는 죽이고 싶도록 얄미운 역할을 맡았다. 오죽했으면 내가 서울 올라와서 처음 산 코트가 영화 속 형의 코트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입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그 코트는 나중에 형 차지가 됐다. 다시 추운 겨울이다. “정민형, 영화도 잘됐는데 코트나 한 벌 사줘요. 참한 여자 소개시켜줄 주변머리는 못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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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슬픔의 노무현 보내고, 희망의 노무현 맞는 추모가 됐어요”


5월이다. 이 땅의 사람들 중 5월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나 역시 그렇다. 별 볼일도 없던 촌놈, 가진 거라곤 마이크 잡는 재주밖에 없던 내 이름 앞에 지금은 많은 것이 놓여 있다. 깜냥도 되지 않는 내게 많은 분들이 무겁고, 과분하고, 부담스러울 정도의 사랑과 의미를 입혀주셨다. 굳이 따져보자면 2년 전 5월,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분이 떠난 그날. 나는 이젠 ‘슬픈 노무현’은 보내드리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21일, 노란 바람개비가 마을어귀부터 사람들을 맞는 봉하마을을 찾았다. 6000명의 사람들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심지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아파트’까지 부르며 ‘오버’했다.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아저씨의 오랜 동지인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59)께서도 객석에 앉아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과장하자면 내 인생 최고의 무대였다.


 



-사실은 좀 고민했어요. 덥석 토크콘서트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묘역 앞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20일 창원 추모제에 갔는데, 웃으면서 즐겁게 하자고 했는데도 자꾸 숙연해지는 거예요. 추모시도 낭송하고 이러니까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그런데 오늘은 할 이야기 다 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안고 갈 수 있잖아요. 이런 추모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폭파 전문 특전사로 군 복무를 했어요.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대대장이 장세동이었습니다.”(문 이사장) “이런 분들에게 자꾸 국가안보를 말하면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김제동) 지난 21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오른쪽)이 활짝 웃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날씨도 정말 좋았어요. 비온다고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엄청나게 왔어요. 게다가 초반에 제동씨가 다 쓰러뜨렸잖아요. 원래 2주기 추모는 지난해처럼 슬퍼하고 분노하는 식이 아니라, 밝게 웃으며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을 갖고자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 못하는 새로운 발상을 제동씨가 보여줬어요. 전 오늘 문화적 충격, 큰 쇼크를 받았어요.”


-이제 봉하마을은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아까도 들어오는데 보니까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 아이까지 3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리더군요. 비장함도 아니고, 누구를 지지하니 마니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이 함께 대화 나누고, 그렇게 모일 수 있는 것. 그런 매개가 되는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건 퍽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동씨가 그분들을, 각기 다른 세대를 한데 묶고 움직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시작하게 됐어요?”


-시작한 지 2년 됐는데, 저에게 ‘많은 시간을 갖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이 콘서트가 성사됐어요. 흐흐흐. 여야를 막론하고 늘 코미디거리를 제공하는 여러 분들 덕에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진지한 건 잘 못하는데 웃으면서 하는 건 좋더라고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게 효과도 훨씬 크죠. 정색하는 것보다 상대를 더 무력화시키거든요.”


-아저씨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공연하고, 다들 모여 노는 것 싫어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묘역을 꾸민 개념도 그런 거예요. 묘역에 너럭바위를 얹어 놨는데, 그건 아이들도 올라가 장난치고 놀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계했어요. 임옥상 선생이 만든 흉상의 기본 개념도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다가가 사진 찍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은 거예요.”


-대통령님과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뵈신 거죠? 어떠셨어요? 주변에 계셨던 분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신 건데….


“제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노무현법률사무소를 하고 계셨어요. 당시 부산에서 가장 젊은 변호사였는데 대화를 나눠 보니 소탈해 권위의식이라곤 전혀 없었죠. 우리하고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첫날 뜻이 맞아서 바로 사무실을 같이하게 됐지요.”


▲ “집필 중인 ‘문재인의 운명’, 野통합 보탬되길”

▲ “사저에서 권 여사 위해 ‘특별한 토크 콘서트’…

“세월이, 그 사람이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며 많이 웃어주셨지요”

- 김제동


-책 쓰신다고 하시던데 언제 나오나요?


“한 4분의 3 정도 썼는데 진도를 못 내고 있어요. 바쁜 때랑 맞물려서. 원래는 2주기에 맞춰 내려고 했거든요.”


-어떤 내용인가요?


“대통령과의 인연, 추억, 참여정부 때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우리가 1주기 때 <운명이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자서전을 펴냈죠. 남은 이들도 참여정부 때를 되돌아보면서 기록하고 증언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내가 가장 대통령님을 오래 겪었으니 나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있었어요. 조만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나올 겁니다.”


-운명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노 대통령께서도 유서에서 운명이란 말씀을 하셨고 자서전도 그 제목으로 펴냈죠. 생각해보면 제 삶의 길목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고 그분을 만난 것이 제 삶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어서 이후 제 삶을 이끌어왔어요. 변호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청와대도 가게 됐고, 결국 지금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많이 이야기하셨는데 현실은 참 먼 것 같아요. 특히 젊은이들에겐 너무 힘든 세상인데, 살아계신다면 젊은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을까요? 


“그분이 정치인생 내내 강조했던 비전과 핵심이 그거였죠.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도, 소외된 사람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누구나 당당하게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하거든요.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 배려하고, 연대하고,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는 일들에 참여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거죠. 늘 그런 당부를 해 오셨고 그걸 말씀하고 싶으셨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변호사님께서 지금 준비하시고, 계획 중이신 게 있으실 텐데요. 


“장기적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정신의 가치를 계승, 확산, 발전시키는 것이죠. 그게 재단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정치적인 국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잖아요.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절박하고, 그러기 위해선 국민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죠. 그 희망을 주려면 야권이 통합하거나 연립정부 같은 방안을 통해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해요. 시민사회가 논의에 참여해서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도 마련해줘야죠. 저는 도움이 된다면 그런 역할, 야권통합과 시민사회운동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생전에 노 대통령을 뵌 적이 있긴 하다. 재임시절 청와대에 행사가 있어서 들어갔던 때다. 그때 대통령께선 나에게 그러셨다. “<느낌표>하고 <아시아아시아>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아시아>는 내가 진행한 게 아니었다. 워낙 얼어 있던 바람에 그 자리에선 말도 못했고, 나중에 뵙게 되면 따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결국 여쭤보지 못했다. 


-특전사 출신이시라면서요? 양복 입으시는 스타일이 특전사 군복 입는 식이에요. 군대 계실 땐 주특기가 뭐였죠?


“기본적으로 산악점프 전문 부대였고, 대외적인 주특기는 폭파였어요. 고교시절에 정학도 받고 대학 와서는 구속, 제적되면서 문제가 많았는데 군대에서는 상복이 터졌어요. 군대 가니까 이런저런 상을 주면서, 사람들이 공수부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더군요.”


-들을수록 타고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신 분이네요. 그런 분을,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좌파라고 하는 세상이네요. 이게 완전 코미디죠. 


사실 토크콘서트 전에 사저를 방문해 30분 정도 권양숙 여사를 뵈었다. 나는 집앞에서 펼쳐지는 콘서트에 못 나오시는 권 여사를 위해 3분의 1 정도를 그분 앞에서 풀어놨다.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시답잖은 내 이야기에 권 여사께선 많이 웃어주셨다. 난 덮어놓고 고자질과 푸념부터 시작했다. “윤도현씨 정말 비겁하고 나빠요.” 그랬더니 권 여사께선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으세요?”라며 놀란 듯 물으셨다. “저랑 같이 방송하잖아요. 그런데 의리 없이 자기 혼자 CF를 세 개나 찍었어요.” 턱없고 황당한 내 푸념에 권 여사께선 한참을 웃으셨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라며 연방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셨다. 다행히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지신 듯했다. 권 여사는 “세월이,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하시다가도, 바깥을 바라보며 “이렇게 많이들 오셨는데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해서 어떡하나” 하고 걱정스러워하셨다. 또 “저녁을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쑥떡을 권하셨다. 나는 “걱정 마세요. 공연 전에 저 원래 아무것도 안 먹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쑥떡을 무려 7개나 집어먹었다. 나오는 길에 비서관들은 “이렇게 웃으시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뵌다”고 귀띔해줬다. 괜히 뭉클했다.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웃을 수 있고, 잠시 행복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나 하나 망가뜨려서 여러분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래, 이건 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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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안철수 “실패하더라도 가슴 뛰는 일을 하다보니 오늘의 내가 됐어요”

ㆍ박경철 “젊은 세대, 도전하고 싶어도 당장 토익 몇점이 불안한 거죠”






지난 27일 대구 영남대에서 ‘미래에 대한 도전과 바람직한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 방송인 김제동,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박경철 원장, 안철수 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 이날 대담 진행은 ‘홈그라운드’라는 이유로 박 원장(영남대 83학번)이 맡았다. | 김세구 선임기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건 ‘인복’이다. 나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들을 형님이나 누님, 친구나 동생으로 두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정말 ‘복받은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큰형님, 작은형님 격인 안철수 교수(50)와 박경철 원장(48)도 그런 분들이다. 한마디로 이름만으로도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형님들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두 형님이 쓰신 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도 없고, 그분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세상을 향한 깊은 애정,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고민을 안고 끊임없이 실천하며 살아가는 형님들이란 거다. 두 형님은 늘 내 고민에 대해 화답하고, 동행해 주시는 분들이다.


재작년부터 두 분은 지방대를 순회하며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동행강연을 계속해왔다. 영광스럽게도 지난 27일 대구 영남대에서 진행된 강연회에 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3명이 한꺼번에 얼굴을 마주한 건 올 초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찍은 뒤 처음이다. 이날 우리의 대화는 강연회를 거쳐 서울로 오는 KTX에서 쉼없이 계속됐다. 간이역마다 서면서 1박2일 걸리던 비둘기호가 왜 사라졌는지 안타까울 정도였다.


박경철(이하 박) = 그러고보면 우리 셋에게 공통점이 있어요. 강호동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동창생이고, 청년 학생들의 고민에 대해 함께 풀어가자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죠. 안 교수님 생각에 젊은이들의 고민은 뭐고, 그 고민의 구조적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안철수(이하 안) = 지금 학생들은 제 학창 시절보다 호기심이나 모험심, 실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요. 그런데 사회구조가 학생들이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몰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된 핵심은 학교 자체보다는 사회구조에서 찾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2000만개 정도 필요한데 대기업이 뽑을 수 있는 건 200만개에 불과해요. 그마저도 줄이고 있죠. 대기업엔 각종 특혜를 주고 우대하다보니 중소기업, 창업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더 심각한 건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로만 할 뿐, 사실 대기업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건 우리나라 경제발전과도 연관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워’였거든요. 가진 게 없으니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여유가 없어요. 실패하면 다 날아가니까 다른 사람, 선진국이 해놓은 것 중 성공한 것을 보면서 전속력으로 쫓아갔고 성공했어요. 그러다보니 추호의 실패도 용납 않고, 실패해서 넘어지면 밟고 지나가고, 앞사람의 머리채를 잡아 쓰러뜨리고 온갖 편법을 동원했어요. 결국 대기업들은 창의적 인재 대신 시키는 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할 수 있는 스펙과 학벌 좋은 사람을 선호해왔어요. 모든 불행이 거기서 시작된 거죠. 


-제가 학교 다닐 때도 학벌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어요. 내 일에 대한 확신이 항상 있었고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젊은 친구들은 참 힘든 구조 속에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만든 세상도 아니잖아요. 


박 = 그래서 리더십의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리더십을 고민해야 할 때인 거죠.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리더십이 무언가를 따라잡는 형태였다면, 앞으로 새로운 방향성은 뭐가 되어야 할까요? 


안 = 20세기는 카리스마를 갖고 외향적 성격에, 목소리 큰 사람이 특정한 위치에 올랐어요. 그 위치에는 인사권과 돈이 부여됐고, 그것을 휘둘러서 리더십을 발휘했어요. 21세기는 일반대중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아요. 탈권위주의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대중이 리더에게 리더십을 부여하지요. 게다가 대중이 리더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자질이 더 중요해요. 현재 대중이 원하는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해요. 


-MC들이 제 안경을 벗게 만드는 데도 독특한 리더십이 있어요. 강호동씨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스스로 망가지면서 분위기를 형성하죠. 그래서 안 벗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고요, 이경규씨는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서 ‘벗어!’ 합니다. 유재석씨는 본인이 먼저 벗기 때문에 벗어야 하고, 신동엽씨는 ‘사전 작업’이 많은 스타일이죠. 각기의 유형은 시청자들이 선택하고 판단하겠죠. 어쨌든 리더십은 정의와 연결돼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고 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리더가 가져야 할 정의로움이죠. 누군가의 고통과 비례해 내 행복이 올라간다면 정의롭지 못한 것 아닌가요. 내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행복해져야죠.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정의라는 것도 관념적으로 말하면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무겁고 어려운데, 이걸 풀고 실천으로 나갈 때만이 살아 숨쉬는 힘이 된다.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내가 열쇠를 쥐는 것, 그것이 정의로움의 시발점 아닐까.







▲ “사회가 ‘두번째 기회’ 보장해야

잡스·저커버그 나올 수 있어”

▲“교수님처럼 무척 살벌한 말씀도 아주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하는 분은 좀체 찾기 힘들다.” - 김제동






박 = 안 선생님이 예전에 다음 세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건 언행일치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안 =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 사람이더라고요. 정치인들 보면 그렇죠. 줄곧 서민정책을 주장하던 정치인이 나중에 표결할 때 보면 부자감세에 손을 들어요. 그래서 저는 뉴스 중에서 한 글자도 안보는 것이 정치인 인터뷰죠. 그 사람 행동만 보고 판단하면 돼요. 


박 = 수많은 구호와 수다, 슬로건은 결국 자신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죠.


-때리지 마라, 배고픈 사람 있으면 나눠 먹어라, 이런 말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이 말을 하는 것이 혁신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이러니 같아요. 


박 = 그 평범한 이야기를 아무도 안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데 안 선생님은 그렇게 순진하게, 당연한 가치를 지키면서 지금까지 왔기에 한국 사회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킬 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이 된 거죠.


안 = 사업을 해보니 그래요. 성공이라는 결과를 봤을 때, 내가 공헌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회가 내게 허락해준 것이더라고요. 그런 성공의 결과는 100% 내 것이 아니에요. 그것을 독식하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약탈하고, 그런 식으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게 제 생각의 출발이었어요.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데, 선생님 같은 분을 보니 고맙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싶어요.


안 = 사업하면서 느낀 거예요. 책에서 관념으로 배웠다면 몰랐을 거예요. 제가 10년 전에 낸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떳떳한 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교수에게 바뀐 게 없다고 자랑했더니 그 분이 저더러 ‘발전성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박 = 그동안 사회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사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요. 


안 = 100년 이상 된 외국의 존경받는 기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그 기업이 가진 핵심적인 가치와 가치판단 기준은 전혀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응방식은 바뀔 수 있지만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영혼을 파는 것과 같다고 봐요.


-선생님의 가치는 뭐죠?


안 =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내가 죽은 뒤에도 나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좋은 쪽으로 바뀌어 있거나, 내 책이 그때까지 남아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내가 만든 회사가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나로 인해 어떤 제도가 생겨서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면 그것 역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죠. 


박 =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경계를 넘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창의적인 인재인 것이고 그 정신이 창의성인 것 같아요. 안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창의적인 인재의 전형인 건데, 창의성이란 뭔가요?


안 = 한마디로 하기는 힘들겠지만 우선 우리가 받는 교육에서 보면 문제풀이 위주에 익숙해 있잖아요. 외국대학 교수님들도 그래요. 한국 학생들이 문제는 기가 막히게 푸는데 주제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완전히 막힌대요. 좋은 질문은 하지 못하는 거죠. 시대의 아이콘인 애플의 핵심은 창의성, 융합성이에요. 내가 모르지만 다른 분야도 나만큼 값어치 있다는 그 인식이 융합의 출발이죠. 


박 = 수많은 사람이 가진 수많은 재능을 몽땅 무시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만 뽑아내는 사회이다보니 문제를 일으키는 거죠. 


-박지성을 아이스링크에 데려다놓고 넌 왜 김연아처럼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안 = 스티브 잡스도 탁월한 사람이지만, 전 스티브 잡스를 있게 한 실리콘밸리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구조가 그들이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거죠. 한 번 실패를 해도 다시 기회를 주거든요.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삼는 것이 미국의 구조죠. 만약 잡스가 우리나라에서 실패했다면 그걸로 끝났을 거예요.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모두 대학 중퇴자인데 이들이 설 수 있었던 것은 학벌이 아니라 재능을 봤기 때문이에요.


박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청춘은 도전이다’라는 이야기는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워요. 그 말이 옳은 건 알겠는데 두렵거든요. 당장 토익 몇 점 더 올리는 게 나에겐 더 중요한 거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고. 실제 저도 강연 다닐 때 나중에 어떤 학생이 찾아와서 그래요. 제가 지금 매달리는 것을 버리고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중에 선생님이 저 거둬주실 수 있냐고요. 우리 젊은이들에게 고민이 많고 이 고민이 고통과 절망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안 = 예전에 도쿄대 강상중 교수님이 고민은 축복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처음엔 이해가 안됐어요. 그런데 제가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벤처기업을 창업할 때 하루종일, 6개월 내내 고민했어요. 고민이 괴롭다가 나중엔 고맙더라고요. 고민을 하면 처음엔 아무 답도 없는데, 차츰 답이 보이고 마음이 정리돼요. 자기 인생에서 어떤 게 중요하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게 되거든요. 그걸 알아야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요. 








▲ “학벌주의와 권력 위의 자본…

새로운 리더십 방향 고민해야”

▲ “내 안경을 벗기는 리더십도 강호동 다르고 유재석 다르다. 어쨌건 리더십은 정의로움 아닐까” - 김제동






-뭔가를 선택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 아닐까요. 그 선택이 누군가의 강요나 시스템에 의해 강압된 것이라면 억울하겠지만 결과를 인정하겠다는 자세가 있다면 쿨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해보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안 = 내가 매번 학기 때마다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 있어요. 공통적인 것을 묶어보면 우선은 첫인상보다 마지막 인상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실수는 당연하다는 점이에요. 강물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는 방법은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요. 계획이 아니라 가슴이 따라가는 대로 하면 그게 다 이어지고, 실패 경험조차도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만들어준다고 봐요.


-두 분이 그간 지속적으로 주장해오신 이야기를 이제야 정부가 하고 있잖아요. 공정사회니 상생이니…. 권력도 권력이지만 금력, 자본의 힘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박 = 자본이 이미 권력 위에 섰어요. 그동안 재벌이 갖고 있던 약점이 많았지만 권력이 이 잘못을 처단한 것이 아니라 덮었잖아요. 자충수를 둔 거죠. 친일 청산 이야기가 지금까지 나오는 것도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단죄하지 않고 넘어오기 때문에 반복돼서 그런 거거든요. 잘못하면 처절하게 단죄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요. 이제 금력이 통제되지 않는 시대예요.


안 =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지금도 계속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행은 해결해야 해요. 현행법 안에서라도 정확하고 공정한 잣대로 견제를 할 수 있다면 사실 문제는 많이 희석될 수 있거든요. 이걸 집행할 의지가 없고 실행할 능력이 없어서죠. 많은 관료가 퇴임 후 삼성 같은 기업이나 김앤장으로 가는 게 일반화돼 있어요. 관료라면 국가·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나중에 평생을 보장해주는 기업 편에 서지 않겠어요? 룰과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니 문제죠. 정부는 약탈행위를 방조하고 있었잖아요.


-교수님처럼 그렇게 살벌한 말씀을 그렇게 편안하고 웃는 얼굴로 하는 분은 좀체 찾기 힘들 것 같아요.


박 = 맞아요. 난 어조만 격하고 말은 부드러운데 안 선생님은 되게 험한 말 많이 쓰세요. 그리고 너무 진지하잖아. 골린 적도 많아요. 예전에 진지하게 ‘이효리가 누구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제동씨 처음 본 날도 시사잡지 표지에서 봤다며 굴욕을 안겨줬고. 하긴 노 대통령 노제 때문에 제동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던 거잖아요.


안 = 최근에도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방송에 갔는데 대담자가 갑자기 원고에도 없는 걸 물어보시더라고요. 아이유를 아느냐고. 그래서 외국 가수냐고 되물었어요. 


박 = 저나 선생님이나 TV를 안 본 지가 10년이 넘기 때문에 대중문화를 잘 몰라요. 그래서 라디오 하면서도 PD나 작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요. 나는 그나마 포털사이트에 뜨는 이슈들을 보는데 안 선생님은 그것도 안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안 = 전 포털사이트로 뉴스를 안 봐요. 직접 신문사 사이트로 접속해서 보죠. 그래야 신문사에서 생각한 중요도대로 편집이 돼 있어서 뉴스의 가치를 알 수 있거든요.


-교수님은 사모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하시는 걸로도 유명하잖아요. 주변 친한 분들에게 말을 놓을 때도 됐는데, 그러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안 = 없어요. 그냥 이게 편해서요. 


-편해서라고요? 오늘 양복에 등산용 배낭 메고 나타나신 것도요? 본인은 편하시지만 다른 사람이 그런 복장에 불편해할 거라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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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ㆍ“난 ‘국민가수’가 싫다… 추억·공감을 전할 뿐”






김제동 “상상하긴 싫지만 선생님이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뭘 하셨을 것 같아요?” 조용필 “글쎄, 그런 질문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받았는데 아직도 답을 못 찾았어요. 가수란 게 내 운명이라는 거죠.” | 김세구 선임기자




수식어가 필요없는 이름이 있다. 조용필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가슴이 촉촉해진다. 저마다의 추억이 들쑤셔지고, 부드러운 허밍코러스가 이어진다. 이 땅에 조용필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봄꽃이 천지에 가득하여 넘치던 날,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서울 예술의전당 그의 작업실 겸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여하튼 내가 드디어 방배동 ‘이웃사촌’ 조용필을 만났다. 왠지 소주 한잔하면서 인터뷰를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망할 놈의 스케줄’ 때문에 맹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 같은 동네 살면서 처음 뵙네요. 어제 동엽이 형(방송인 신동엽)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선생님 얘기 했어요. 허정무 감독도 같은 빌라시던데요. 


“아, 그래. 신동엽이 우리 앞집에 산다던데…. 허 감독님은 우리집 8층에 살아요.”


- 콘서트 준비 때문에 바쁘시죠. 전국을 다 도셔야 될 텐데요. 저도 요즘 ‘말로 하는 콘서트’ 하거든요.


“12월까지 10개 도시가 넘죠. 공연이라는 게 매년 사람을 새롭게 만난다는 의미가 있어요. 새로운 사람들에게 좀 더 새롭게 보이고 싶죠. 그래서 연출이나 무대의 감각적인 레퍼토리 배열이라든가 영상이라든가 조명, 세팅 등을 업그레이드해야 하거든요. 사실 이게 어려운 부분이에요. 오래간만이라면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는데 그동안 수백, 수천번 보여줬던 거라….”


- 사실 보는 입장에서는 수백번 수천번 봐도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자주 보는 팬들은 달라요. 전국을 따라다니는 팬도 있고, 예전에 예술의전당에서 14일간 하는데 매일 본 팬들도 있어요.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그런 분들께 미안하죠.”


- 소록도 공연은 어떠셨어요. 혼자 슬쩍 다녀오시려다가 언론에 들통나셨던데요.


“난 처음부터 공연이 아니고 동네사람들 잔치에 그냥 재미있게 노래하고 즐긴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작년엔 오케스트라랑 딱 두 곡만 불렀더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딱딱하고 아쉬웠죠. 이번엔 이분들을 조금 편안하게 해주면서 분위기를 좀 띄웠죠.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요. 무슨 노래방 수준이라고(웃음). 사실 그분들은 격리된 채 매일 똑같이 살거든요. 새벽 5시30분에 식사하고, 오전 10시30분에 점심 먹고, 오후 3시30분에 저녁을 한 뒤 4시면 숙소로 들어가요. 얼마나 단조롭고 우울하시겠어요. 그래서 객석에도 나가고, 즉석에서 신청곡도 받았죠.”


그래서 조용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노래만 하러 간 게 아니라 그분들의 일상까지 파악해서 철저히 준비하는 프로정신이 오늘의 조용필을 만든 게 아닐까.







▲ “폭포수에서 피 토해 득음? 판소리 들으며 연습했을 뿐”

▲ “과장되거나 가식적인 건 싫어하는 원형 그대로의 차돌 같은 힘이 느껴졌다.” - 김제동









- 음악한다고 가출도 많이 하셨던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비행청소년 아닌가요.


“그래요. 그땐 음악하는 것 자체가 불량스러운 취급을 받았어요. 심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출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악기를 사는 것도 금전적으로 힘들었지요. 돈 벌어서 전부 그쪽에다 쏟아부었으니까. 머리도 길고, 복장도 이상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요.”


하긴 ‘딴따라’라는 말이 그렇다. 조선시대 광대가 천민계급이었듯, ‘딴따라’는 한동안 광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런 ‘딴따라’가 되기 위해 가출도 하고, 미칠 듯이 기타를 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조용필은 없었으리라.


- 원래 기타리스트로 출발하셨다가 우연한 기회에 노래하신 거죠.


“미8군 무대에 설 때 팀에서 노래하던 친구가 갑자기 군대를 갔어요. 할 수 없이 내가 했죠. 밤새도록 외우고, 연습하고. 대역으로 시작했다고 봐야죠.”


- 1968년도에 가출하셨던데요. <홍길동전> 같은 평전을 쓴다면 출가편이네요.


“그땐 집에서 워낙 반대하니까. 그때만 해도 인생을 걸고 음악을 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젊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한 거지요. 자꾸 반대하니까 반항심 같은 게 생기면서 불쑥 집을 나왔죠. 그러다보니 굶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 거예요.”


- 그럼, 언제 공식적 허락을 받으신 건가요. 


“20대 중반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면서 집에 들어갔어요. 그때가 집으로 들어가는 적기일 것 같아서요. 그러고 나서 부모님과 살았어요. 


- 전 국민이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를 때 집으로 돌아가신 거네요. 부모님은 뭐라시던가요. 뿌듯해 하셨을 텐데요.


“아버지가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표현을 잘 안 하셨어요. 그냥 눈치로 알죠. 제가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스타일도 못되고 소극적이에요. 그저 내 일만 하고 살며 주위의 평가는 의식 안 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그것이 내 주어진 운명이지 않을까 하고 위안삼아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우리 주변 과잉된 수식어 넘쳐… 그냥 ‘조용필’, 그대로가 좋아” “음악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듣는 이들 각자의 기억속으로”


- 우리 가락에 감동받아 ‘득음’할 때 폭포수 밑에서 피를 토하셨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 후문은 많은데 그건 아니고요. 좌우간 외국음악만 듣다보니 민요는 들을 기회나 관심도 없었는데 ‘한오백년’을 듣고 정말 좋은 노래다 싶었어요. 그래서 레코드점에 가서 ‘한오백년’의 음반을 전부 구입했는데 9가지 종류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뭔가 좀 찾아보자고 해서 다 들어봤죠. 국악이니까 국악기의 선율에 맞게끔 멜로디가 돼 있잖아요. 노래곡조에 양악을 얹으니 안돼요. 완전히 다른 곡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조화롭게 해볼까 고민고민한 끝에 제가 부른 ‘한오백년’이 나온 거예요. 그전에 제 목소리 자체가 너무 맑은 미성이라 외국 록을 하기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목소리를 한번 갈아보자는 생각을 했죠. 판소리를 들으면 완전히 허스키하니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까 싶어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다보니 조금 변했어요. 그렇게 변한 목소리로 나왔는데, 이번엔 목소리가 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 자신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나간 거죠.”


- 노래를 하시면서 나 노래하기 정말 잘했다, 가수가 되길 정말 잘했다 이런 생각은 해보셨나요.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해봤고, 이건 내 운명이라는 생각은 해봤어요. 잘했다기보다 내 운명이라는, 내 길이라는 생각인 거죠.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음악 안 해도, 다른 걸 했어도 열심히 했겠다 싶어요. 성격인 것 같아요.”


- 이번 콘서트에서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나요. 


“음악이란 건 추억이거든요. 예를 들어 80년도에 부른 노래를 지금 부르면 듣는 이들은 이 노래를 언제 들었느냐에 따라 각자 자신이 가진 추억을 떠올리죠. 85년일 수도, 87년일 수도, 아니면 90년이 넘어서일 수도 있죠. 음악은 역사죠. 그래서 음악을 통해 그 시대를 생각하는 거죠. 내가 ‘단발머리’를 부르면 관객들은 이 노래를 들었던 그 나이로 여행을 떠나죠. 그래서 ‘메시지’보다는 ‘공감’이 어울려요. 콘서트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다. 빡빡머리와 단발머리 소년과 소녀는 이제 대머리와 파마머리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조용필의 노래’ 속에서 추억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조용필은 이제 하나의 역사이자 보물이 아닐까.


- 직접 작사·작곡하신 노래는 많지 않나요. 노래를 만들 때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을 텐데요.


“작곡은 많은데 작사까지 한 것은 많지 않아요. ‘꿈’이라는 노래는 그 가사가 메시지를 그대로 드러내죠. 꿈이 너무 허황될 필요도 없지만, 꿈이 없다면 죽은 인생이기도 하죠. 당시 지방에서 도회지로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면서 농촌엔 남자들이 없던 시기였어요. 도시로 나오는 것은 꿈을 위해서잖아요.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작사해서 만든 노래예요.” 


- 실패한 이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네요. 


“그렇죠. 꿈 이야기가 나와서인데 꿈은 어떤 목표잖아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목표와 같은 성공을 이룬 사람을 연구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연구하면 도움이 되고 내가 가야 할 길도 보이지 않을까요.”









▲ “소록도 주민들 격리된… 삶 공연보다 잔치로 기획해”

▲ “주민들 일상까지 파악해 준비하는 프로정신이 오늘의 조용필을 만든 게 아닐까.” -김제동







- 꿈을 이룬 누군가를 정해놓고 보라고 하셨는데, 후배가수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우선 가수의 꿈을 갖고 있다면 최소한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해요. 일정 수준까지는 해야죠. 리듬 악기와 멜로디 악기 두 가지만 한다면 곡도 만들 수 있고 노래하는 데도 굉장히 도움이 되거든요. 최소한의 것은 갖춰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갖추고 노래하는 것과 안 하고 노래하는 것은 많이 달라요.”


-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다른 쪽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과학이든 비즈니스든 각 분야에서 꿈이 있을 거 아녜요. 그럼 거기서 성공한 사람의 일생과 노력을 살펴보면 깨우침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간 사람들의 길을 훑어보라는 거죠.”


- 요즘 젊은이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노래라고 꼽으신다면. 


“없어요. 노래란 듣는 이의 느낌에 따라 다 달라요. 젊다고 해서 이런 스타일 좋아하고, 저런 스타일 안 좋아하고 이건 아니에요. 당사자가 들었을 때 ‘이건 옛날 스타일이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 선생님에게는 으레 ‘가왕’이라는 호칭이 붙잖아요. 어떠세요.


“그거 좋아하지 않아요. 전 조용필, 그대로가 좋아요. 기자들한테도 그래요. 왜 자꾸 붙이냐고. 그럼 기자들은 ‘붙여야지요’라고 말해요. 전 ‘국민가수’라는 말도 무척 싫어해요.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게 너무 많아요. 과잉된 수식어와 설명들요. 국민가수, 국민여동생, 국민오빠…. 너무 유치하다고 봐요. 외국엔 그런 말 없잖아요. 그냥 붙이면 슈퍼스타,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조용필. 그와 마주앉은 짧은 시간 동안 뭔가가 얹히거나 과장되거나 가식적인 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난 그냥 노래하겠다, 뭐 그리 말들이 많으냐.’ 이렇게 꾸짖는 것 같았다. 꾸밈없는, 담백한, 원형 그대로에서 오는 차돌 같은 힘이 느껴졌다. 마치 그가 즐겨 마신다는 투명한 소주처럼…. 그래서, 조용필은 그냥 조용필이었다. 그걸로 충분하고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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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좋은 대학 못가면 죽는다는 건 사회가 심은 망상… 외로운 젊은이들, 두려워 마세요”






김제동 “제가 선생님 만난다니까 다들 일생의 영광으로 알아야 한대요. 전 선생님께서 제 이름 알고 계신 것도 신기하다니까요.” 백낙청 “젊은 사람들은 백아무개가 누군지 몰라도 (김제동도 만나고)운 좋다고 할 거 아니에요.”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70년대와 80년대, ‘백낙청’은 진보적 지식인, 독재타도, 민주주의, 창작과비평 등과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였다. 현재 우리 사회의 골격을 이루는 40·50대는 청춘의 한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분으로 백낙청 선생(73·서울대 명예교수)과 고 리영희 선생을 주저없이 꼽는다. 그들의 대학시절 선생들의 책은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하게 하던 ‘삶의 지침서’이자 ‘정신적 영양제’였다. 내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내 주변의 수 많은 인생선배들로부터 귀동냥한 것이다. 스펙쌓기라는 무한경쟁, 패자부활전 없는 낙오의 위기에 몰린 요즘 젊은이들이 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정신적 안식처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지식인과 텍스트가 쏟아져나오고 스타는 넘쳐나지만 그걸 꿰뚫을 ‘뭔가’가 없는 시대다. 우리네 삶이 황사(黃沙)처럼 신산(辛酸)한 요즘, 백 선생을 뵙고 삶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게 된 건 감사할 일이다. 오랫동안 동경하던 스타를 만나는 팬처럼 나는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이룰 정도로 들떠 있었다.


-전 그동안 인터뷰하면서 주로 등산복만 입었어요. 오늘은 선생님을 뵙는다고 양복 비슷하게 입은 건데, 선생님은 무지 멋지게 차려입으셨는데요?


“집사람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이렇게 입으라고 해서 한 거예요.”


-제가 선생님을 만난다니까 다들 ‘일생의 영광’으로 알아야 한대요. 또 어찌나 겁을 주던지…. 


“내가 제동씨 팬이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백아무개가 누군지 몰라도 (김제동도 만나고) 운 좋다고 할 거 아니에요.”


선생께서 내 이름을 알고 계신 것도 신기했지만 내 <토크콘서트>를 직접 보셨다고 해서 더 감격했다. “최근 보신 예능 프로그램이 없으셨냐?”는 질문에 선생은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게다가 조용필, 장사익, 이경규씨 등 당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말석에 황송하게도 김제동을 앉혀주셨다. 게다가 ‘김제동이 찍혀서 주류에서 외면 당한다’는 것도 아셨다. 






▲ “‘빨갱이’라는 단어는 상대방 입막는 방법

요즘 창궐… 마지막 고비”

▲ “독재정권하에서 목소리를 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나라면 무릎 꿇는 척 했을 텐데.” - 김제동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오셨던데요.


“초등학교 때는 반마다 그런 이야기 듣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위로 갈수록 천재가 수재가 되고 결국은 범재가 되는 수가 많지만요. 제 주변에도 번뜩이는 재능을 보이는, 저 정도면 천재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제 경우는 노력파입니다. 천재니 뭐니 하는 건 괜한 소리죠.”


-선생님은 유학 중에 귀국하셔서 자진입대까지 하셨어요. 당시에 일간지 사회면에 톱뉴스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 같은 분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신 거죠?


“제동씨도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란 단어는 공산주의자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너 까부는데 기분 나쁘다’ ‘너 힘없지? 난 힘있다’는 식의 의사표현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상대의 입을 막는 동시에 본인의 사고를 정지시키는 방법이지요. 누가 나에게 문제제기하고 비판할 때 ‘빨갱이’라고 비난해 버리면 그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거든요. 사실은 자기 손해인 건데. 요즘도 그 말을 즐겨 쓰는 사람이 많고, 그런 어법이 창궐하고 있지만 마지막 고비 같아요. 이 고비를 넘기면 우리 사회에도 ‘생각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 ‘맘에 안든다고 아무나에게 빨갱이라고 하면 나도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서슬 퍼렇던 독재정권 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셨던 걸까. 내가 선생이었다면 총칼 앞에서 무릎 꿇라면 꿇는 척하면서, 한 쪽 무릎은 살짝 드는 정도의 비굴함을 보이지 않았을까.


“60년대 중반 ‘창비(당시 창작과비평)’ 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죠. 70년대엔 저들이 나를 학교에서 쫓아냈으니까 떠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요즘보다 좋은 점도 있었어요.”


-좋은 점이라뇨?


“적극적으로 동조하진 않아도, 정부에 맞서는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한다는 공감이 있었어요. ‘창비’가 탄압을 받으면 책이 더 팔리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좋았죠. 지금은 제 목소리를 내기가 더 어려운 시대잖아요. 당장 잡아가서 고문하는 건 아니지만 직장에서 쫓겨나면 세상에서 바보 취급당하고, 가정 파괴 수준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잖아요. 의롭다고 치켜주는 분위기도 한결 덜하고….”


-요즘은 심리적인 위축을 받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두렵다는 느낌도 많이 갖고요.


“바로 그 점에서 그 때가 나았다는 거예요. 심정적 지지도 훨씬 강했고. 80년대에 광주항쟁을 겪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나서, 이런 세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부쩍 늘었지요. 전국적으로 보면 소수였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했어요. 그런데 그게 민주화가 되고 나서 깨졌지요. 어느 정도 됐다고 해서 풀어지기도 하고, 돈도 더 돌다보니…. 어떻게 보면 이 정권 들어와서 조금 더 긴장감을 회복시켜 주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감사해야 할 것 같네요.”


-전 민주화항쟁 사진 중에서 기억나는 게 넥타이를 맨 퇴근길의 시민이 탱크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장면이에요. 심리적 공감대가 만들어낸 용기랄까요. 


“국민을 억압하고 우롱하는 것이 통하는 이유는 알아서 기어주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묘한 동물이라서 어느 단계까지는 겁을 먹지만 그게 지나치면 (겁이) 없어져요. 그러면 권력을 쥔 사람들은 맥을 못추죠. 이번에 이집트에서 벌어진 것을 봐도 그렇고 광주, 6월항쟁, 4·19 다 그래요. 유혈사태까지 가지 않았지만 촛불도 그랬고….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설혹 그 열기가 가라앉아도 세상은 바뀐다고 봐요. 절대로 없었던 일이 되진 않죠. 지금 우리사회도 바닥에서 많이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인 것 같아요.”







▲ “거대언론 촛불 왜곡 경험…

열기는 가라앉았지만 세상 바닥부터 바뀔 것”

▲ “나는 20대 초반까지 ‘광주항쟁’을 빨갱이들이 벌인 줄 알았다. 주류언론이 보도했으니까.” - 김제동







-그런데 선생님,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촛불항쟁이 정권초기의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고….


“더 잘했을 거라고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예요. 게다가 우리는 촛불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거대 언론이 어떤 것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자신들이 촛불시위에서 한 일들이 이튿날 신문에 어떻게 나오는지 봤잖아요. 무책임하고 악의적이고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하는 거죠? 


“그렇죠. 다만 일제 강점기보다 더 긴 세월을 갈라져 살아왔기 때문에 통일국가를 단기간에 세울 순 없어요.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지혜롭게 해야죠. 무턱대고 통일만 해야 한다, 아니면 반통일세력이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공감할 수 없죠. 그것보다는 우리가 분단해 살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손해이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성찰해서 극복할 방법을 고민해야죠.”


-3대세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주주의에도 안 맞고 원래 사회주의 명분에도 안 맞아요. 좋게 볼 수가 없죠. 그러나 북측 사회가 분단체제의 일부로서 갖고 있는 문제점들이 극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드러난 현상이 3대세습이라고 봐야죠. 그런데도 마치 정상적으로 진행되어온 사회주의 국가에서 갑자기 불거져 나온 문제라거나, 규탄하고 반대하면 시정할 수 있는 그런 사태로 볼 일은 아니지요.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전체 흐름을 보면서 이런 북한 사회와 어떻게 대화하고 절충해서 궁극적으로 통일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지, 이제 북측 사회의 왕조적 면모를 처음 발견했다는 듯이, 떠들어대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20대 초반까지도 ‘광주항쟁’을 빨갱이들이 벌인 줄 알고 살았다. 주류언론이 다 그렇게 보도했으니까. 부끄럽지만 난 20대 후반, 소설 <태백산맥>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 당장의 성과와 달라진 점이 없다고 탓할 게 아니다. 촛불항쟁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은 거대 보수언론이 왜곡하는 것을 다 이겨내고 진실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던가. 


-요즘 학생들은 스스로 학교를 나오기도 하고 대학을 버리겠다고도 하는데,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그들과 만나는 기회를 좀 더 늘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로운 젊은이들…. 글쎄요. 좋은 대학 안 들어가고 좋은 직장 못 가면 죽는다는 건 착각이에요. 사회가 심어준 망상이죠.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참 안 바뀐 것 같아요. 최근에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죠. 신자유주의적 논리로 말예요. 민주화 이후 다른 분야는 물갈이가 꽤 됐는데 대학은 안됐어요. 당장 정면으로 맞서서 바꿔놓겠다는 것보다 그때그때 생기는 기회를 게릴라식으로 활용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지 싶어요. 과욕을 안 부리고 최대한 변화의 여지를 넓혔다가 나중에 정규전을 펼칠 기회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죠. 당당히 세상과 맞서라는 겁니다.”


-참, 결혼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선생께서는 늘 ‘남북관계’만 이야기해 오셨겠지만, 전 ‘남녀관계’가 항상 궁금해요.


“오다가다 만나서 같이 살자고 했지요. 집사람이 언론사 도서실에 근무했는데 우연히 친구 만나러 갔다가 만났어요. 알고 보니 제 친구가 저에게 소개해주려고 점찍어 놨다더군요. 차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처음엔 꽤 도도하게 굴더라고. 그렇게 몇 번 만나다가 결혼하자고 했지.”


그렇다.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터뷰 말미에 선생은 나에게 얼짱, 몸짱에 마음 뺏기지 말고, 마음씨 고운 처자를 만나라고 충언까지 하셨다. 어렵던 선생님이 갑자기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이웃집 어르신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남북문제, 세대갈등, 이념갈등도 이렇게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서로가 마음을 활짝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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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서야 등정을 시작한 대하장편 <태백산맥>.
그 산은 지금까지 올랐던 어떤 산보다 감동적인 곳이었다. 진정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한 산이었다. 산 너머 저편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하늘이 있음을 알게 해 준…. 아무 생각없이 술마시며 낄낄대던 나의 삼십대는 ‘거대한 산맥’을 만나면서 소위 ‘삐딱한’ 김제동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68)을 만나기 전날밤, 떨리던 그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사람 만나는데 이골이 난 내게 이런 기분은 퍽 낯설었다.
<태백산맥>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 그 산은 지금까지 올랐던 어떤 산보다 더 감동적인 산이었다. 정신적으로 땀을 쭉 빼게 만들었던 산. 아무 의식도 없던 나를 지금의 ‘불온한’ 내가 되게 만든 책. 서른이 넘어서 그 책을 읽었다. 경상도놈이 빨간 글씨로 된 전라도 사투리로 된 글을 읽을때의 묘한 긴장감. 선생님을 만나기 전날밤부터 어찌나 떨리던지. 선생을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김-<태백산맥>을 서른 넘어서 읽었어요. 그 때 받았던 그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조-<태백산맥>이랑 <아리랑>, <한강>을 쓰고 나서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게 공통적인 독후감이었어요. 작가의 큰 보람이지. 시각을 넓혀주고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건데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으니 보람이 있어요. 그래서 연애소설을 안쓰는 것이기도 하고. 
김-연애소설을 썼으면 하는 분도 있어요. 
조-사실 많이 썼어요. 소화랑 정하섭이 연애하는 이야기를 놓고 소설가 김훈씨가 그 부분만 따로 놓고 보면 춘향전을 능가한다고 했어요. 아리랑에서 손수익과 필녀, 한강의 유일민과 임채옥도 있고. 
<태백산맥> 맨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았는지 알아요? 하대치와 외서댁. 남녀가 한명씩 살아남아 먼길 가는 것인데 이것은 남녀가 함께 통일을 향해 가는 것이죠. 독자는 오독의 자유도 있어요. 잘 못 읽을 수도 있는거지. 그렇지만 작가가 그걸 설명하면 큰일나요.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이니까. 
 
김-저는 남자 형제가 없고 누나만 다섯이에요. 백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성에 대해 동경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끼는 거죠. 우리 엄마와 누나를 노리는 무리들이라고. 반면 형제나 부자, 이런 이야기 들으면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열망같은 게 느껴져요. 
조-귀한 아들이구나. 
 
김-그런데 선생님. 요즘 학생들은 오독의 자유가 없잖아요. 
 

조-요즘 학생들 많이 말하는데 난 요즘 학생들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어요. 그들에게 사회의식이 없다고 하는데 80년대에 태어났으면 그들 역시 80년대식의 생각을 할거예요. 역사체험은 끝없이 흘러가는 물줄기 같은 것이라 없어지지 않아요.
80년대의 격렬한 물줄기는 4.19에서 온거지요. 의식의 DNA로 남아서 흘러오는겁니다. 그렇다면 4.19는 3.1운동, 3.1운동은 동학에서 각각 온 거예요. 그게 면면히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80년대 선배에 의한 민주화 투쟁으로 닦아진 토양 위에서 젊은이들이 즐기고 노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걸 탓하면 안되지.
월드컵에서 보여준 힘은 80년대 투쟁에서 온 응집력이고 촛불시위는 또 월드컵에서 온거니까. 의식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 젊은이를 탓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봐요. 불의한 시대가 오면 저항의식을 속에 내재하고 있으니까. 그걸 깊이 안 들여다보는 거죠. 


김-오독이라고 말씀드린건 시험 때문이에요. 정답이 정해진 시와 소설. 이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조-그렇죠. 잘못된 시험문제. 왜 국어를 사지선다로 해? 내가 국어선생을 했지만 네 개 중에 답이 없어요. 어떻게 느꼈는지 써라. 그래야 점수지. 네 개 정해놓고 골라라 이러면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정답을 못 맞춰요. EQ가 높은 사람은 못 푼다는 이야기지.
사지선다를 다 맞추는 것은 바보라니까. 이어령 선생이 훌륭한 말씀 했잖아. 서울대 나온 사람은 평론은 써도 시나 소설은 못 쓴다. IQ와 EQ의 차이죠. 
김-그렇게 말씀하시면 평론가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조-괜찮아요. 시 쓰다 안 되면 소설 쓰고 그거 안 되면 평론 쓰는 거지. 그래서 평론가들이 항상 시인과 소설가에게 열등감을 느껴요. 국문과 갈 때 평론가 되려고 가는 사람 한 명도 없어. 다 시인하고 싶어하지. 십대 때 시인 아닌 사람 없잖아요. 
 
김-저도 예전에 좋아하는 아가씨에게 시 많이 썼어요. 지금 보면 무지하게 손발 오그라들어요. 
조-그게 순정이죠. 그게 있어야지. 그게 인생의 진국이야. 설렘과 부끄러움. 시인과 소설가는 80이 되어도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슬픔, 낭만, 사랑,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거지요. 

김-그런데 선생님. 어쩜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아세요? 감정선을 보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 궁금해요.  
 
조-문학은, 특히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잖아요. 인간끼리 얽혀야 사건이 생기고 그게 쌓여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마음, 남자 마음 다 알아야 하고. 하나의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전 인류의 지문도 다 다르고.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해 내는 것, 그게 소설가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창조인 거지.
내가 3개 대하소설에서 1200여명의 인물을 만들었는데 다 달라요. 사람의 차이를 잘 발견하려면 유심히 지켜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난 거의 반 관상쟁이야. 집사람이 나에게 당신 정말 귀신이야 이렇게 말해요. 
 

김-여자들의 마음을 그렇게 읽고 싶어요.
조-나이 50 넘으니 여자가 여자로 안보여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이지. 아름다움은 피부의 두께에 지나지 않는다고 셰익스피어가 말했잖아요. 결국 마음이거든. 내가 결혼 44년이 됐어요. 그런데 집사람 김초혜는 나에게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예요. 
김-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조-바보들이 사람을 안보기 때문이지. 부부는 동무이어야 해요. 소유물이 아니고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벗이죠.
김-전 범인이라서 그런제 껍데기만 보게 돼요. 
조-젊을 땐 그래요. 점점 나이들면서 인간을 발견해가는 거지. 그런데 인간을 보지 않고 껍데기만을 보는것이 문제예요. 이혼율이 높은 것도 전부 물신주의예요.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야만의 삶이자 짐승의 삶이지. 비극이에요. 
 
김-세태가 그렇게 몰아부치고 있잖아요. 
조-세태가 아무리 그래도 인문학적 소양이 없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인문학적 소양이란 건 우리가 어디서 왔을가, 어떻게 사는게 의미있을까. 이런 걸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이죠. 이걸 밑에 깔고 살면 절대 그렇게 안된다니까.
그런데 인문학 없이 갑자기 경제가 발전하면서 벼락부자가 나오고 모든게 돈으로 해결된다는 생각이 나오면서 인간을 발견하지 못하는거예요. 놀랍게도 어느 재단이 대학을 인수하자마자 독문과를 없앴어. 영어만 하면 된다는 거지. 이거 큰일나는 일이에요.

지금 영어가 강세다 해서 다른모든 것 없애고 영어 제일주의로 가는데 이 얼마나 즉물주의예요.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힘을 발휘하는기간은 거의 100년 정도예요. 미국은 거의 다 됐거든. 앞으로 미국이 쇠락하고 중국이 뜬다면 중국어 배운다고 환장할걸? 이미 시작됐지만. 이런 뇌없는  국가시책이 나라를 망치는 거지.


김-영어몰입교육도 시키잖아요. 
조-이 시대가 가장 불행한 시대예요. 일본 식민지때 타인에 의해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말을 천시해요. 바깥을 봐요. 아파트고 빌딩이고 온갖 건물이 다 영어로, 아니면 불어나 이태리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써놨어요. 이게 무슨 짓이예요. 광화문 세종대왕상 뒤에 있는 꽃밭 이름을 뭐라 붙였는지 알아요? 플라워 카펫이야. 이렇게 얼빠진 놈들이 있나.
김-그런 영어는 외국인들도 못 알아볼텐데요.

조-완전히 얼빠진 시대에 살고 있어요. 스스로 식민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식민지를 자초하고 있다니까.
물론 영어 필요해요. 그럼 대한민국에서 영어로 벌어먹고 살 사람을 집중적으로 양성해 교육하고 투자하면 되는데 왜 전 국민이 영어를 해야 하냐고. 지금 학생들 보면 60~70%는 영어라면 지긋지긋하다는데 왜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하지요?
방송국, 대기업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해야할 필요가 있냐고. 그 돈이 얼마예요. 너댓살 아이들 혀수술까지 시키니. 우린 짐승이야. 의식이. 불행한 사태죠.  

김-영어권 국가에서도 미국식 발음이 전부가 아닌데 우린 그 발음을 똑같이 따라하려 하잖아요. 오렌지 어린쥐도 그런거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하면 한결같아요. 자식을 안낳아봐서 그렇다, 옆집 애는 어떻게 하는 줄 아느냐...
조-그게 파렴치한 이기주의, 기회주의요. 속물근성에 경쟁의식이지. 내 새끼만 잘 되면 된다는 이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이런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문학을 하는 입장에서 절망스러워요. 영어를 해서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출세한다는 게 행복의 척도라면 속물이죠. 
캄보디아는 1달러 갖고 사는 최빈국인데 이 사람들 삶의 만족도가 3위예요 우린 수출이 11위에서 9위로 올라가는데도 자살률, 이혼률 1등이고 출산률 꼴찌요.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데가 아니라 지옥이야. 자가용 몰고다니면서도 자기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끝없이 갖고 싶어하는 욕심이에요. 
김-속상하신가봐요. 
조-그런 사회에서 문학하는게 힘들어요. 삭막한 사람들 보면 쓸쓸하고 연민도 들고. 
김-그래도 선생님 글이 잇어서 사는 겁니다. 문학을 통해 느끼는 동질감과 감동은 저희들에게 축복같은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물론 평론가들과 대담하시던 분이 저랑 하시려면 시시한 인터뷰하고 생각하시겠지만.
조-아녜요. 평론가와 이야기할 땐 재미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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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벌교의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김-예전에 역도도 하셨고 지금도 몸이 날렵하고 탄탄한 체격을 그대로 갖고 계신데. 선생님 웬지 바람둥이 기질도 다분하셨을 것 같습니다.
 

조-셰익스피어가 진정한 사랑은 여러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이 사람이 내 인생의 동무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그 결점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예요.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집사람 김초혜는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거죠.


인간에겐 누구나 고치지 못하는 결함이 있어요. 그것까지 이해해야 깊은 사랑으로 가는거지. 10년 살더니 할말이 없더라는 부부가 있어요. 그런건 서로가 서로를 버린 거예요. 서로의 마음에 있는 인간을 발견하지 못한 거지.  난 지금도 집사람이 손을 잡지 않으면 잠이 안들어. 그래서 내 별명이 닭살부부라니까. 
 
김-선생님, 그럼 결혼 전에 다른 분과도 그런 닭살스런 데이트를 하셨나요?
조-김초혜가 내 첫사랑이지. 대학 2학년때 만났으니까 틈이 없었어. 딴 여자가 보이지 않게 내 시야의 장막을 쳐버렸다고나 할까. 대학시절부터 문학의 동지로 나를 도와주면서 소설가로 만들었으니. 내 인생 양쪽은 김초혜와 대하소설이라는 장막이 쳐 있었던 셈이죠. 
요즘도 예쁜사람들 보면 예쁘다는 그 느낌뿐이지. 다 여자로 보이면 무슨 일을 하겠어. 나 며칠전에 제동씨 방송나온 것 봤는데 이효리씨가 집에 와서 샤워하고 수건 달래서 줬다면서. 그게 다 여자로 보이면 뭐가 되겠어. 친한 동생으로, 사람으로 보는 거니까 그런 거지. 사람들이 의식이 너무 얕아서 자꾸 입방아를 찧는 거지. 
 
김-아니,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도 다 보셨어요? 
조-요새 소설 쓰다 끝내고 시간 있잖아. 제동씨도 나름대로의 상처와 수난을 받았잖아. 그런데 다 영광이고 지나면 영혼의 살이 돼요. 내가 겪었잖아. <태백산맥> 쓸 때. 그땐 사람들이 내가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만나기 싫어하더라고. 
김-아유, 저야 뭐 선생님에 비하면 고초라뇨. 당치도 않아요.
조-밀도는 똑같아요. 종류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동씨 엄청난 역할을 한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정권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몸으로 보여준거야. 
김-아유,,, 정말 부담스러워요. 제 행동에 비해 지나치게 의미가 커지고 해석되는게 부담스럽고 죄송스럽고. 
조-그렇지 않아요. 제동씨는 화면에서 많은 사람에게 휴식과 웃음을 줬는데 그들의 일을 빼앗아버린 행위잖아요. 제동씨를 통해 웃음과 휴식을 얻었던 많은 사람들이 울타리가 될거예요. 외로워하지 말고. 

김-아유, 정말 너무 과분해요. 
조-그건 제동씨의 겸손이지. 인간미이고. 
 
김-전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5백몇십가지 죄목이라뇨. 
조-사법상 가장 긴 고발장이래요. 검찰에서 100여가지로 줄이면서 이중에서 한가지라도 객관적 자료를 못대면 처벌받느다고 했어요.
결국 난 100% 다 객관적 자료를 댔고 2005년에야 무혐의가 됐어요. 국가보안법, 명예훼손 이런거였지.
그 전까지 빨갱이나 사회주의자, 빨치산은 흡혈귀다,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이렇게 가르쳤잖아요. 내가 문학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걸 인정해야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회복을 한 것 뿐입니다.

소화와 정하섭이 연애를 하는 것이 <태백산맥>의 첫 시작입니다.결국 남로당 중앙간부 정하섭은 이런 애끓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태백산맥>이 나온 뒤 그동안 악마로 생각했던 대상이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거죠.
나는 내 할일을 떳떳하게 했기 때문에 죄될 것이 없어요.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리랑>을 쓸때 경찰수사를 받았고 <한강>을 쓰면서 검찰수사를 받았죠. 소설 쓰는 것을 중단하고 법적대응을 해야했는데 소설을 못 쓰게 하는 고통, 그게 제일 견딜 수 없었어요. 
 
김-검찰, 경찰에서는 선생님 글 안읽었습니까?
조-경찰 취조실에 갔더니 <태백산맥> 3질이 있더라구. 수사관까지 책을 사게 만든거지.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수사관들이 판촉 역할도 해준 거요. 고맙지. 
김-선생님은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생각하세요?

조-난 민족주의자예요. 우리민족은 남한의 백배가 넘는 때륙에 붙어서 5000년 동안 1000번 이상의 침공을 받았는데도 살아남았지. 그런데 최근 100년은 세계 어떤 민족보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살았어요. 앞으로도 그런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데 작가로서 처절한 역사의 진실을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의 처절하고 비참한 역사가 나로 하여금 쓰게 만든 거예요. 그런 소설을.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갈텐데 그 세월 속에서 분단 기간은 짧아요. 보수 세력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려고 하는 비극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이것을 전국민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해야하는데 이 정권와서 단절상태잖아. 비극이에요. 역사의 후퇴죠. 


김-그럼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으신 건가요?
조-왜 안합니까. 북한 3대세습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고 민족사의 불행이에요. 우리 통일의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어요. 전 세계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민주주의가 되는데 3대 세습은 역사의 엄청난 퇴보이고 북의 우리 동포가 짊어질 수 밖에 없는 불행스런 짐이죠. 
민족주의는 강대국들이 약한 나라의 정신무장을 해체시키기 위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예요. 민족주의를 매도하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19세기에는 약소국에 가서 국토를 강탈했다면 20세기 후반 들어와서는 자본을 강탈하는 거지.
세계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화는 강대국의 자본이 중·후진국에 들어가서 맘대로 돈을 빼가는 돈놀이예요. 우리가 흥청망청 바보짓하면서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그 댓가 정말 톡톡히 치렀잖아요.
유학한 사람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논리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데 정신차려야해요. 외환위기 겪고 IMF가 거둬간 이자가 25%라니까요. 나중에 자신들이 과도했다고 하지만 그러면 뭘해요. 토해내야지.
 
김-그돈만 받아도 어르신들 지하철 무임승차는 충분히 가능할텐데요.
조-당연하죠. 지금 60, 70대는 조국 근대화를 할 때 온 몸으로 피흘리면서 경제를 일으킨 가장 밑바닥에 있는 세대예요. 그들에게 제대로 대우는 못해줄 망정, 어떻게 지하철 타는 것도 못해준다고 모독을 해요. 그 하찮은 돈을.
내가 <허수아비춤>을 왜 썼는줄 아세요? 기업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 만들고 탈세하고 위법했어요. 그걸 철저하게 다 내고 국가가 다 잘 관리한다면 그분들 노후 한달에 100만원식 주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인구 줄어든다고 말만하는데 기업들 제대로 세금 내게 만들면 한 마을에 열 개 이상씩 국립 탁아소 만들 수 있어요.
대책을 세워야지. 왜 불필요한 전시행정만 하는지. <아리랑>이 프랑스에 번역됐어요. 그 출판사가 1년에 1000권식 내는 출판사인데 한 사람 겨우 책상 사이로 다닐 정도로 사무실이 좁아요. 우린 책 십분의1 내면서 그것보다 열 배 큰 사무실 써요. 프랑스의 검소함, 왜 그들이 선진국인지 알겠더라고.
 
김-천민자본주의는 극복될까요? 
조-시민단체가 해줘야 한다고 봐요. 선진국가는 시민단체가 이중삼중으로 경제, 정치, 사법, 공무원 권력을 철저히 감시, 고발했기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에요.
오늘날 기업이 탐욕 부리면서 반사회적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기업이 잘 되어야 우리가 잘 살수 있다는 막연한 맹신을 해왔기 때문이에요. 그게 바보같은 허수아비 춤을 췄다는 거지. 그리고 그들의 반사회적 행위가 허수아비 춤이 되도록 우리가 결속하자는 의미이기도 해요.

대기업 비리가 이만큼 폭로되고 잡힌 것은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고발해왔기 때문이예요. 활성화됐다가 시민단체들이 침체된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책임이죠. 민주주의는 솟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산에 자라는 나무도 아니고. 화분에 심은 화초예요. 우리가 관심갖고 가꾸고 키워야 하는 거죠. 


대한민국은 역사가 60년밖에 안된 신생조국입니다. 민주주의 선진국은 20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날을 이뤄냈어요.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40-50년만에 압축성장했어요. 늦지 않았어요. 지금 깨달을 때부터 고쳐나가면 선진 자본주의보다 훨씬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어요. 그 생각으로 허수아비 춤을 쓴거예요. 

김-전 인터뷰 하면서 돈을 버는 데 대한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가난을 팔아 장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해보는 거죠. 부자가 되면 가난한 사람을 옹호할 자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조-부자가 될수록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것이 부자들의 약점이고 결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부자들에게 겸손하고 베풀라고 하는거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부자가 천국가는게 더 어렵다고 하고.
그런데도 부자들은 내세가 없다면서 계속 나쁜짓을 하는거죠. 연예인들 중에서도 자기들이 온 몸을 던져서 순수하게 노동으로 번 돈을 타인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재벌은 자기 노동력이 아니라 수십만 노동자의 힘을 모아 그런 부를 축적한건데 무서운 탐욕을 부리잖아요.
이 사회 지배계층도 잘못된 것을 생활속에서 왜 안고치는지 답답해요. 누구는 어머니 돌아가셨다고 수억원을 걷고, 누구는 자녀 결혼한다면서 헬기 띄우고.




김-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능력이 되시면서도 웬만한건 다 공짜로 타고 다니시던데

조-난 아무리 노력해도 장관후보는 못 돼요. 
김-왜요?
조-군대 갔다 왔거든.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군대갔다왔고. 위장전입도 못 해봤고 위장취업도 못했고. 자격이 안되지. 


김-하하. 군대만 보내셨나요? 힘든 필사까지 다 시키셔놓고,. 
조-우리 손자가 11살인데 태백산맥 문학관 보더니 자신도 <태백산맥>을 베낄 거래요. 8살 짜리도 뒤따라 나오면서 자기도 그러겠대. 기분이 좋죠. 김초혜가 초반기 내 인생의 완성이라면 손자는 후반기의 완성이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건 김초혜랑 결혼한거야. 44년 전에 결혼해서 연희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 연탄재를 빼서 공동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어요. 연탄 갈려면 가스 마셔야 하잖아. 집사람이 그걸 마시게 하면 안되니까 내가 도맡았어요. 한겨울에 김치독에 김치 내러가는 것도 내가 했지.
동네 주부들은 저 선생좀 본받아라 했고 남편들은 저 새끼 남자망신 다 시킨다 이러면서 욕했어요. 내가 5, 6년전에 여성권익 신장시킨 100명의 남성에 뽑히기도 했다니까요. 역사는 남녀가 동시에 짊어지고 가는거예요. 
김-선생님은 장가 못간 노총각 가슴에 불을 지르시는군요. 
 
조-짝은 다 있다니까요. 유신때 나는 선생 3년 하다가 소설쓰고 잘렸지. 집사람은 7년을 했어요. 그러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걸 고생으로 생각안하고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 고생스러운 세월마저도 행복의 추억으로 바꾸는 그 삶이 고맙더라고. 
 
김-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놓으려던 세력이 있잖아요. 여순, 부마항쟁. 다들 동지였는데 처참하게 갈라놨어요. 
조-정치의 양면성이죠. 내가 전두환 정권의 광주만행 후에 대구의 한 대학에 강의를 갔는데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투쟁하면서 광주에 대한 강한 부채감을 갖고 있는지. 정말 감동이었어요. 고마웠지.
노무현 대통령이 실책도 있었지만 잘한 것은 야만적 정치만행으로 만들어진 지방 갈등을 해소시키려 노력한 거잖아요. 성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 노력이 계속되면 고쳐지게 돼 있어요. 아이들에게 필사를 하라고 한 것은 하루하루의 노력이 얼마나 큰 꽃을 피우는지, 작은 노력이 가져오는 삶에 대한 성취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하려고 한거예요. 
베껴봐라. 10매를 베끼는데. 1시간. 하루에 한 시간 4년만 하면 다 베낄 수 있다 했지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시켰어요. 불만도 털어놨지만 계속 시켰어요. 며느리도 다 베꼈잖아. 우리 며느리가 손주 머리 좋은 것은 <태백산맥>을 베끼며 태교했기 때문이라고 애교 떨더라구요. 
 
김-선생님 손주 이야기하실 때랑 아드님 이야기하실 때랑 표정 완전히 다른 것 아세요?  결국 <태백산맥>에서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건 이 사람도 아버지고, 자식을 낳고 이땅에 발붙이고 사는 민족이란 거잖아요. 
조-더불어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이 땅이 천국이 된다는 거죠.
김-민중은 꿈꾸는데 지배세력이 자기 편의를 위해 이간해왔잖아요. 
조-어느 시대든 그랬어요. 봉건노예시대에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던 그 시대에는 지금같은 시절이 올 거라고 아무도 꿈꾸지 못했어요. 
김-그래서 이정도 민주주의 하며 살고 있으니 밤에 시위하지 말라는 건가요?
 
조-아뇨. 그건 국민의 기본권이요. 민주주의는 국민의 것이지.

어느 정권이든 오류를 범하게 돼있고 그걸 바로잡는 건 국민이에요. 모든 정권은 비판을 받아야지. 그 비판을 싫어하고 봉쇄하려면 그 정권은 종말을 고해야 해요. 백성은 바다요, 권세는 그 위에 떠 있는 일엽편주라. 당나라때부터 내려온 말이에요. 국민을 분노케 하지 말아야지. 그들을 받들어야지. 심지어 봉건왕조에서도 그랬는데 현대 민주사회에서 더 말해 무엇하겠어요.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불변해요. 대한민국 대통령이 실패하는 첫번째 이유가 업적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 대상이 박정희죠. 그 양반이 업적을 세운 것은 18년간 집권했고 전후 초토화 된 땅에 뭔가 할 게 많았지.
지금은 있을 거 다 있는데 뭘 하겠어. GNP 80불 시대랑 2만불 시대랑 어떻게 같겠어요. 업적주의 깨어나지 않으면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어요. 있는 거 관리하기도 바쁜데. 하나의 정권은 전정권을 심판할 권한이 없어요. 국민과 역사가 하는거지. 그렇지 않으면 월권이에요.
그 진리를잊어버리면 어느 정권이든 심판받아요. 대통령이 되는 순간 역사의 단두대에 목을 걸어야 하는 무서운 자리에 오르는 거죠. 난 그래서 그 무서운 대통령은 안 할려구. 난 군대 갔다왔기 때문에 자격도 없잖아. 부동산 투기도 안 했거든. 결격사유가 너무 많아요. 나이도 예순여덟인데 언제 해?
 
김-요즘은 점점 더 없는 집 아이들이 정서적으로까지 불안해진다잖아요.
조-그게 천민자본주의의 리얼한 사회현상이지요. 80년대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안돼요. 
김-심지어 수명까지 차이 납니다. 
조-당연하죠. 밥이 보약인데. 백성의 하늘은 밥이요, 임금의 하늘은 백성인데.
어느 역사든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 그 왕조는 무너지는 거예요. 국민이 못 견디는거야. 지금 20대 80의 사회가 점점 강화되는데 고치는 법 간단해요. 세금 제대로 매기고 투명경영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그들도 존경 받고 신뢰 받고 사랑 받는 거죠.
허수아비춤을 추는 모든 기업인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겠지만 다시 이성을 갖고 읽으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했으면 좋겠어요. 2주에 10만권이 나갔는데 나는 이렇게 호응이 오리라 생각 못했어요. 많은 사람이 나같은 생각을 갖고 호응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라 다행입니다. 
 
김-어떤 분들은 결말이 너무 밋밋하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더 없냐구.
조-소설은 취재한 것 다 못 써요. 상징과 생략의 미학이죠. 독자가 상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다 쓰다 보면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되는 거거든요
김-저는 선생님 소설 읽으면서 분노하고 절망하는 한편 우리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기도 해요. 그 표현에 대해 감탄하는 글들도 많이 봤구요. 
조-우리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말에 대한 새삼스러운 발견을 했다는 것은 보람이지요. 우리 속담 봐요. 속담은 그 민족의 문화척도를 말하는 건데 사회 문화 역사 철학이 응축돼 있어요.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표현하는지.
김-선생님의 자연묘사를 보면서 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소소한 즐거움인데 결코 소소하지 않은 묘사들이거든요. 
조-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게.

 
 

2009년 3월 대하소설 <태백산맥> 200쇄 돌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조정래(사진 오른쪽)와 김훈(왼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인터넷 댓글은 가끔 보세요?
조-생동감 있어요. 내가 인터넷은 못하니까 출판사가 보내주면 보는데. 악플은 출판사가 빼고 보냈는지 악플은 못 봤는데 그거 날것 그대로 보다가 신경 거슬리는 악플 보면 작업에 방해가 되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김-선생님 작품의 자연 묘사는 오랫동안 깊이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에요. 그렇게 집중해서 자연을 바라보면 볼수록 자연은 놀라움의 대상이죠?
조-그렇죠. 자연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상이죠. 인류가 달에 로케트를 쐈을 때 우주를 정복한다고 했는데 우주는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밝혀지잖아요.
호킹이 그런 말을 했죠. 인지가 발달한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자만에 빠졌는데 자연의 일부인 인간과 벌레가 뭐가 다르겠어요. 사는 방법과 수명의 차이만 있을 뿐. 그걸 자각못한 인간들이 끝없이 시행착오를 범하며 자기 발등을 찍어요.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그 허리케인 하나 어쩌지 못하는 것을 봐요. 쓰나미 올 때도 코끼리부터 생쥐까지 다 48시간 전에 이동했다는데 사람만 그렇게 있다가 비극을 맞은 거야. 그래서 환경오염을 시키지 말아야 해요. 난 며느리가 처음 시집왔을 때 그랬어요. 첫째 두 번 이상 만나는 사람에게 사소한 거짓말도 하면 안된다. 둘째 모든 것은 재활용하라. 난 지금도 원고의 빈틈은 잘라서 모아놓은 뒤에 메모지로 써요. 


김-일전에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니 모국어로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첫 세대라고 하셨어요. 그 축복을 누린 뒤에는 모국어로 집중교육을 못 받는 세대가 나오고 있어요. 참 희한한 일이죠. 
조-이 시대를 바라보며 통탄해 마지 않는 일이죠. 역사시간을 줄여 영어시간으로 바꿉니다. 역사를 모르고서야 우리 미래 없어요. 이런 모독적인 말이 있더라구요. 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 영어 못해서 안오겠다고. 대한민국에 여행사가 얼마나 많아요. 여행사 통해 오면 되지. 왜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저희들의 여행 안내원이 되어야 하냐고요. 이건 모욕적인 거예요. 
 
김-왜 안될까요?  다들 힘들어하는데. 
조-정치적 단견이죠. 자존심이 없어서 그래요. 자기 존엄성이 없어서. 
김-그건 배타주의와 다른거죠?
조-다르죠. 자기가 소중한 존재인 줄 알아야 남도 존중하죠. 어느 나라도 역사시간을 줄이면서 영어 몰입교육 시키는 곳은 없어요. 아이들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해줘야지 남들 한다고 다 하라고 하고 자기가 못한것 우격다짐 밀어넣는 식은 안돼요.
황병기 선생이 서울 법대 출신인거 아세요? 4년간 법 공부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게 되잖아. 가수 최희준씨도 그렇고. 부모 강요에 자기 인생이 황폐했고 돌아가게 된거니까. 개성을 존중해줘야죠. 
 
김-헤헤. 그런 면에서 제 어머니는 행복하셨을 것 같아요. 공부도 못했으니 저에게 큰 욕심은 없으셨고 제가 좋아하는 광대가 됐으니까요.
조-학벌주의가 문제예요. 서울대 출신 누구 이런식으로 붙이는 것 많잖아요. 연예인들도 서울대 출신 누구라고 붙여놓고. 
김-그렇죠. 남사당패는 줄만 잘 타면 되는데 왜 과거시험까지 합격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내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생활의 달인>이예요. 인간의 존재가치와 능력의 가치를 보여주잖아요. 너무 감동적이야. 한 가지를 정말 잘 하도록 해서 그 길로 가게 북돋워줘야지.
 
김-그렇게 노동을 하는 분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조-미국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의사보다 더 돈을 많이 받아요. 의사는 사회적 대우를 받잖아요. 그러니 광부들에게 보수를 많이 줌으로써 사회가 균등하게 가야지. 우린 반대로 돼있어요. 국회의원 되면 120가지 특혜가 주어진대요. 이것저것 다 공짜고. 그렇게 드는 돈을 국민 복지로 돌려야지. 그들이 입법기관으로 받는 대우가 얼마나 커요. 그런데 물질적 특혜까지 주면 국민입장에선 절망적이죠.
 
김-스스로 포기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조-안돼요. 정치인은 비양심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양심적인 존재다. 마키아벨리의 말이죠. 평생 동안 120만원인가 받겠다고 법 만들겠다잖아. 그런 파렴치한 사람들이 무슨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겠어.
그들이 포기하게 하려면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서 창피하게 만들어야죠. 고치지 않을 수 없게. 우리나라는 다이나믹한 나라예요. 월드컵 때 보세요. 난 감동했어요. 그런 수준높은 국민을 상대로 정치는 너무 유치해요. 국민은 1류, 정치는 5류지. 그래도 난 이 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해요.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고 지식이 점점 축적되고 있어요.
놀랍게도 <허수아비춤> 같은 책을 독자들이 사주고 팔리는 나라잖아요. 내가 하는 말에 동감해주고 있구나, 그 무서운 시대에 기꺼이 <태백산맥>을 읽어줬던 독자들이잖아요. 많은 독자들이 내 울타리 역할을 해줘서 결국 검찰도 처벌을 못한거예요. 
마흔에 <태백산맥>을 시작해서 <한강>을 끝내고 나니 육십이에요. 장년이 증발해 버린 느낌이지만 그래도 보람 있어요. 

김-전 긴 소설이 넘어가는게 아까워 얼마나 불안해하며 읽었는지 몰라요. 5권부터 아 이제 반 밖에 안남았네 싶으면서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엔 이런 느낌이었어요. 돈 하나도 없는데 담배 한 개피 밖에 안남은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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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