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 시대를 역행해 다시 트렌드가 되는 것처럼, ‘복고’란 흔한 키워드가 숨을 새로 불어넣어 다시 유행이 되곤 한다. 새롭다는 뜻의 New와 복고를 의미하는 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New-tro) 열풍이 불 듯 말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내 얘기 같은 노래를 접한다는 것, 잊고 지냈던 기억의 한 조각이 추억의 부메랑처럼 돌아와 당시의 나를 생각하고 떠오르게 하는 일이다. 그만큼 기억 속 멜로디는 마치 지난날 여러 단면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나의 학창시절을 지배한 음악들은 온전히 추억의 대상이다. 음반을 구해 밤새도록 듣고 그게 전부인 하루였다. 그것이 곧 나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내 음악의 초석이 됐을 그때의 습관은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두루 음악을 접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 것도, 무대에서 노래하는 평생 직업을 찾게 된 것도 학창시절 두루 음악을 접한 것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마치 탐험가라도 된 듯 좋은 음악을 발견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늘 좋은 음악을 놓칠세라 라디오 앞을 지켰고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음반을 구입했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나를 자극하기 일쑤였고 라디오와 잡지는 나의 음악 선생님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좋아하는 노래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더욱 간절한 추억인지도 모르겠다. 소니 워크맨의 로망과 LP판을 뒤적거리는 그 촉감을 떠올리면 여전히 행복하다.


하루 종일 앨범 재킷을 만지작거리며 워크맨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음악을 듣던 시절의 희열은 분명 음원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쉽게 골라 듣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볍게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이다. 소박한 취미라도 나만의 추억이라는 점에서, 내 인생에 가장 찬란한 기억 속 음악이라는 점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다양하고 좋은 음악이 수없이 많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레코드 가게를 열심히 다니면서 좋은 음악과 훌륭한 뮤지션을 탐구했던 나의 학창시절은 이제 추억일 뿐이다. 그 많던 레코드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레코드 가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음악을 듣고 금방 다른 곡으로 바꿔 들을 수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에만 집중하던 그때의 나른함이 때론 그립다.


오랜만에 밥 말리 음반을 꺼내 들었다. 재킷 종이 모서리가 닳아버린 걸 보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음악을 들었던 시절들이 한꺼번에 소환된다. 순간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든다. 고작 차트 순위에 매달리고 진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닌가 싶다. 가끔은 어릴 적 꼬마로 돌아가 즐겁게 음악을 들어야겠다.


음반업계에서는 클래식이란 수식어를 함부로 붙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듣는 사람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명반으로 거듭난다. 내 추억 속 음악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나의 오늘 하루는 나중에 더욱 빛날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2019년이 훗날 어떻게 기억될지 괜히 흐뭇해진다.


나의 음악도 누군가에게 훗날 최고의 추억이 되길 바라며….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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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전문대 샌타모니카칼리지 입학 후 난 오직 랩을 잘 쓰기 위해 문예창작과와 관련된 모든 교실을 찾아 기웃거렸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우수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creative writing honors class(고급 문예창작반)’. 난 바닥에 주저앉아 교수님의 강의를 엿들었다. 그 교수님의 수업은 매우 간결했다. 매일 칠판에 점 혹은 Brown, Flower, donut 등의 단어 하나만 흘려쓰시곤 그 정의에 대한 15분 정도의 Q&A 시간을 갖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럼, 여러분이 이야기를 만들어봐요”라고 한마디만 던진 뒤 교실을 나가시곤 했다. 


그 동네 날고 긴다는 글쟁이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학생들은 저마다 창의적이고 멋진 이야기를 쓰려 몰입했다. 난 랩을 썼다. 그렇게 한달 정도 지난 어느날 교수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왜 매일 여기 와있지?” “선생님의 강의가 재밌어서요. 그냥 이번 학기에 여기 쭉 와 있어도 될까요?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나를 향한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민망했다. 


“소설을 좋아하나? 학점을 받을 수 없을 텐데 왜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 교수님은 심오한 미소와 어색한 표정을 띠며 내게 되물었다. “전 래퍼가 꿈입니다. 랩을 좋아하는데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허락해 주시면 조용히 듣기만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타이거JK

“랩? 래퍼가 꿈이라고? 흥미롭군.” 칠판에 love란 단어를 쓴 뒤 교수님은 또 교실을 나가셨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건지 뭔지….’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날도 바닥에 주저앉아 글을 써내려갔다. 그때 쓴 글이 나의 첫 단편소설 ‘Evol’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매일 아침 같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친절한 여성의 눈웃음에 반해 한 남자는 그 길을 같은 시간에 걷는다. 그녀와 마주치는 그 시간, 그 길은 이 남자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위해 하루를 계획하고, 자신을 꾸미며 사랑한다. 꽤 시간이 지나 그는 드디어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밸런타인데이에. 정성껏 초콜릿을 준비하고 멋진 상자를 만들어 포장한다. 사랑을 고백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 그리고 사랑을 알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물 초콜릿.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 상자를 들고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치려고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걷는다. 터질 것 같은 심장박동에 꼭 껴안은 가슴속 선물상자가 진동한다. 


하지만 마주친 그녀의 눈인사는 다른 날과 달리 차가웠다. 비록 3초가량의 만남이지만, 남자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그 남자의 마음속에서 앓게 된 첫 번째 heart break(비통). 결국 상처받은 남자는 눈물을 흘리다 분노한다. 해 질 녘까지 걷고 걷다가 허기져 가로수에 기대 선물상자를 뜯어 초콜릿을 미친 듯이 먹어치운다. 눈물 콧물과 함께…. 그러다 결국 급체해 죽는다. 거리 위에 초콜릿에 멍든 얼굴로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는 그녀. 많이 놀라지 않고 119를 부르고 빨리 와준 앰뷸런스에 친절한 눈웃음을 띠며 그녀는 어디론가 걷는다.  


대략 이런 줄거리의 이야기다. 다음날 같은 시간, 교실 바닥에 앉아있는 나를 부르시는 교수님. 빨간색 잉크로 적힌 현란한 메모들과 점수가 쓰여있는 페이퍼를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랩으로 한번 써봐. 자네를 정식으로 수업에 등록하겠네.”


난 이렇게 고급 문예창작반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그날 받은 내 이야기의 점수는 D마이너스였다. 요즘 중학생들로부터 래퍼가 꿈이라며, 자기 인스타그램 페이지에 와서 자신의 스웨그를 둘러보고 펑가해달라는 DM을 자주 받는다. 사랑보다 사랑을 위한 이벤트와 포장지, 그리고 초콜릿 같은 장치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모두 D마이너스의 스웨그일지 몰라도 어쩌면 확실한 목표와 꿈이 있다는 건 참 멋진 것 같다. Love!


<타이거JK |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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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JK씨의 음악을 뒤늦게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가슴속에 뭔가 느껴지는 것 같고 쿵쾅쿵쾅 뛰는 심장에 너무 신났어요. 특히 ‘고집쟁이’란 곡에 큰 희열을 느꼈는데, 이 음악은 어느 특정 세대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발 그 곡으로 활동 좀 해주세요. 이제야 이런 음악을 알게 됐다니, 참….”


얼마 전 팬미팅 자리에서 만난 60대 어머니 팬이 해주신 말이다. 내 두 손을 꼭 잡고, 극찬을 보내준 그분의 아우라는 젊음 그 자체였다. 여기서 내 음악은 나이 제한이 없는 멋진 음악이라며 자화자찬을 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다. 물론 어머니 팬의 따뜻한 말씀이 날 몸 둘 바 모르게 행복하게 했고, 내 심장이 춤추게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질투 날 정도로 부러웠던 건 음악을 대하는, 음악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그분의 젊음이었다. 


요즘 들어 바쁜 일정 속에 반겨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그중 연세가 많은 분들도 알아봐주시고 악수를 청하거나 셀카 사진을 부탁하시곤 한다. 조금은 머쓱해진 분위기에 그분들이 항상 빼놓지 않는 멘트가 있는데….


“아 참 타이거씨를 좋아하는데, 난 이제 그 음악을 즐길 수 없는 나이라서 멀리서 응원할게요! 파이팅!” 이렇게 내게 힘을 주는 한마디 뒤에 꼭 나이 얘길 언급하는 ‘어른이’ 팬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는 ‘나잇값’이라는 명사가 있다.(나잇값: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철없고 개념 없는 행동으로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쓰이는 말이겠지만 나잇값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곳이 이외에 얼마나 더 있을까? 어른들은 나이라는 선에 자신들을 가둔다. 굳이 늙지 않아도 되는 정신을 늙게 만드는 사회적 풍토일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보약과 비타민들이 광고되고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보면 ‘만수무강’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말도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사용되는 유행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란 음식, 좋은 공기,  물처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도구라고 믿는다. 특히 젊음을 유지하는 데 음악만큼 효과 있는 약은 없다. 힙합이란 젊음을 느끼는 데 가장 효과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힙합에는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한’이 있고, 어르신들이 흥에 취할 수 있는 트로트의 ‘정’이 있다. 흔히 트로트 음악에서 표현되는 인생사에 관한 희로애락을 직설적이고 때론 시적으로 풀어내는 맛이 있고, 간단하면서도 힘찬 붐뱁이라는 리듬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요소다. ‘한’과 ‘정’이라는 감정과 붐뱁이라는 공격적인 리듬, 그리고 화를 풀 수 있는 스웩이기도 하다. (붐뱁: 드럼소리가 붐 뱁 붐 붐 뱁 하며 다른 악기 소리보다 크게 튀어 나온다고 해서 얻게 된 힙합음악의 장르)


걸음걸이, 패션, 몸짓, 질러대는 소리와 추임새, 원하는 대로 표현해도 되는 멋. 이런 것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의 정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화를 풀어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음악이 힙합이라는 거다. 이 음악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다면 잊고 지냈던 젊음의 짜릿함을 다시 느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힙합 1세대들이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그들은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들의 말투, 옷차림 등은 여전히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60~70대의 젊은이들도 여전히 행복해 보인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한다.


자, 오늘부터 힙합을 듣고 젊어지자!!!


<타이거JK |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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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초창기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태권도 사범인 작은아버지와 지내면서 도장의 관리를 도왔던 나는 새벽부터 청소와 선수들의 대회 준비 등으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태권도 대회를 마친 어느 날, 공포의 숙취 사건을 떠올려 본다. 


당시 나는 선수들의 대회 수상을 축하하며 작은아버지 몰래 축주를 들이켰고, 즐거움은 어느새 고통으로 둔갑했다. 시야는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알 수 없는 것들이 나의 머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물을 마셔도 두통약을 먹어도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생에서 처음으로 겪은 공포의 숙취였다.


결국 방구석을 뒹굴대면서 나 자신을 자책하고 이제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야말로 베개 밑에 숨어 사경을 헤맸다. 그때 영웅처럼 나타나 나의 고통을 한번에 해결해주신 분이 할머니였다.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와 함께 짠 하고 내 앞에 나타난 북엇국! 그것이 나를 지옥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서 먹으라며 다그치던 할머니께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술을 마신 뒤 속이 뒤틀리는 것을 감쪽같이 풀어주는 국이라면서 남기지 말고 호호 불어 마시라는 할머니 말씀이 믿기지 않았지만, 천장 위에 붙어 있는 듯한 내 머리를 움켜쥐고 한 숟가락씩 뜨거운 국을 마셨다.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비틀거리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속이 시원해지고 나는 금세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사랑해요. 고마워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주정 반 투정 반 애교까지 부리면서 무한 반복해 중얼댔다. “그래, 웬 술을 그리 마셨어” 하면서 얼굴을 아기 다루듯 어루만져주신 할머니의 미소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할머니는 어떻게 이런 마법의 레시피를 알고 계셨을까. 어떻게 나의 고통을 단박에 눈치채고 단번에 고쳐주는 보약을 만들어 내시는지 그저 감탄스러웠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네 아빠도 다 이렇게 하면 풀렸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해주신 할머니의 쿨한 ‘스웩’.


매주 일요일 오후에 방송되는 KBS 예능 프로그램 &lt;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gt;에서 한국 정통요리를 선보이는 심영순 할머니께서는 사는 방법에 대해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바로 나물을 통해서다. 밑반찬으로만 여겨지는 나물에는 생로병사의 비밀이 담겨 있다.


방송 중 알게 된 한 가지, ‘산나물의 왕’이라 불리는 취나물은 맛과 향기가 뛰어날 뿐 아니라 탄수화물, 비타민 A 등 다양한 영양분이 있고, 그리고 감기, 두통, 진통, 해독, 항암 등에도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도 이용된다. 심영순 할머니는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고 하시면서 평생 터득한 비법을 늘 공유한다. 자본주의와 비즈니스 경쟁이 심한 요즘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마법의 북엇국과 취나물. 몸에 좋은 보약이 너무나 흔해진 나머지, 그 가치가 퇴색되고 과장광고들에 묻혀 잊혀지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혹시 일상 속의 중요한 정보, 흔하지만 귀중한 메시지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서 교훈을 얻고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새롭게 터득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타이거 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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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발표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서 “갑자기 나타나 반짝하고 빛나다 사라져버리는 그런 놈들과 비교하지 마!”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뭐냐고 묻는 기자님들에게는 “실력”이라는 한 단어의 답을 던졌다.   


20대 때 나의 음악은 꽤 직설적이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실했다. 얼굴, 옷차림, 목소리부터 걸음걸이까지 지적당하던 그때 나에겐 모두가 ‘하나같이 꼭두각시, 모두 같은 줄에 매달려서 춤을 추는 슬픈 피에로’처럼 보였다. 


항상 남의 시선에 진심을 숨기고, 예의라는 탈을 쓴 가식적인 모습에 갇혀 모두 똑같은 표정, 똑같은 추임새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미디어 속의 인형들이 슬퍼 보였다.  


사실 항상 “넌 안될 거야”란 말을 들었다. 내가 하는 음악은 절대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그것과 싸우고 날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어린 타이거JK는 열등감 때문에 더 공격적이고, 때론 오만함에 가득 찬 찌푸린 인상으로 랩을 했다. 물론 지금은 내 관점이 옳고 내가 선택한 방향만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다. 


내가 시작한 작은 기획사 필굿뮤직에서 신인가수 비비가 어제 신보를 발매했다. SBS <더팬>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3등을 하면서 주목받은 가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미니앨범을 만들어냈다. 앨범커버 콘셉트, 뮤직비디오 콘셉트, 그리고 곡 선곡부터 작사·작곡까지 혼자 해냈다.  


스물두살의 가수 비비는 보컬의 성량이 뛰어나지 않고, 춤실력은 어설프기까지 하다. 보컬 트레이닝이나 전문적인 안무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카메라 테스트도 하지 않은 채, 비비는 윤미래, 비지, 드렁큰타이거와 함께 크고 작은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그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소신껏 자기가 쓴 가사들을 무대에서 뱉어냈다. 


비비는 앞서 몇몇 기획사의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외모에 대해 여러 가지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비비가 직접 쓴 가사들은 사용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비비는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비비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초 실력을 키워주는 연습생의 길을 포기했다. 고등학생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이해해줄 기획사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직접 방구석에서 녹음한 곡들을 올렸다. 음악은 비비가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윤미래가 사운드 클라우드에 떠돌아다니는 비비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이렇게 우리는 비비를 알게 됐고, 만나게 됐다. 기묘하게도 다듬어지지 않은 그의 목소리와 가사, 손짓 그리고 리듬을 타고 있는 움직임에 묘한 끌림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설픈 비비의 동작과 저음을 트레이닝을 통해 교정해야 하는가를 두고 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12일 비비의 미니앨범을 위한 첫번째 음감회가 열렸다. 이날 자신의 타이틀곡 ‘나비’를 부른 비비는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결점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의 중요함을 말해주고 싶어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고 싶어요.”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는 1998년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첫 방송 무대에서 이 곡의 전주가 흐를 때 느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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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가창, 드럼, 컴퓨터 미디악기, 기타 레슨까지…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고, 그를 위해서는 시간, 공간 그리고 악기 구입 비용이 든다.

위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시간과 지식을 파는 선생님에게 레슨비를 제공한다.

 

우리가 즐기는 음악을 틀어주고 소리를 더 멋지고 크게 만드는 시스템과, 그 소리에 어울리는 화려한 조명을 비춰주는 클럽, 특정인들만 입장할 수 있는 클럽을 찾아 돈이라는 진입 장벽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

 

뭔가 표현해야 하는 종족들, 이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불행한 아티스트들. 음치라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능력이 안돼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 하지만 타고난 리듬감과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언어유희, 이들이 바로 래퍼들이었다.

 

하얀 피부색이라는 타고난 사회적 특권, 그리고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벽은 흑인들과 소수자(minority)들에게는 너무 높았다. 이때 입과 손만 있으면 가능한 비트박스(손과 입을 사용하여 강한 악센트의 리듬을 만드는 일), 들려줄 이야기와 철학만 있으면 가능한 랩으로 거리의 아티스트들은 랩을 했다. 비싼 동네의 비싼 클럽에 출입할 수 없는 이들은, 시간과 공간이 돈 없이 허용되는 학교 운동장, 동네 놀이터, 옥상, 버려진 건물의 복도, 버려진 공장 안의 분위기가 멋스러운 빌딩 한복판 등을 찾아다니며 지금 세계 빌보드 시장을 장악하는 힙합이라는 문화를 만들었다.

 

진정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여기서 어쩌면 배고픈 이들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문화의 유산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에서 힙합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건 ‘한’이라는 정서와 IMF 외환위기 이후 비참한 현실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시대의 흉터와, 인종차별이나 사회 제도적 탄압과 싸워야 했던 빈민가 흑인들의 ‘솔(soul)’이 일맥상통한 건 아닌가 감히 짐작해본다.

 

힙합은 놀이문화 이상이었고 배우지 못한 이들에겐 문학이었다.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토라고 불리던 ‘이너시티’에 갇혀 사는 젊은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열심히 하면 그들의 표현력과 재능만으로 스타가 될 수 있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치열했고, 소크라테스의 깊은 철학이 담겨있지 않더라도, 확실한 메시지가 있었다.

 

팝 시장에서 이들의 음악은 인정받지 못했고, 수많은 록스타들에게 얼마 못 가 사라질 소음이라는 비난을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힙합문화는 계속 진화했고 이젠 흑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금은 대학교 축제 기간으로 대학생들과의 만남이 많은 시기다. 축제기간은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하고 특별하다. 진부하지만, 대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이 힙합정신이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책가방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대학생들이 경험하고 있는 제도적 탄압과 배고픈 고민들을 표현하고,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면서 더 멋진 문화가 태어나고, 여기서 시작된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면 그보다 더 멋진 ‘스웩’이 있을까 상상해본다. one love!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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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술, 담배를 금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세요. 규칙적인 생활, 휴식, 특히 충분한 잠이 중요합니다.”


척수염을 수년째 앓고 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약 처방과 함께 해주신 말씀이다. 봄 페스티벌과 각 도시 축제 등 공연이 잦은 요즘, 주로 밤시간대 일정이 많은 나에겐 지키기 쉽지 않은 규칙이다. 공연을 마치고 밴드 멤버들과 작업실로 돌아오는 새벽 시간,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퍼포먼스 등을 재점검한 뒤 음악작업을 시작하고 주로 아침에 귀가한다. 그리고 늦잠을 자려는 아이를 깨워 학교를 보낸 뒤 다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어쩌면 불규칙한 삶은 내게 불가피한 선택이다. 


요즘 내 생활패턴은 이렇다. 드렁큰타이거의 이름을 걸고 발매한 열 번째 정규 앨범의 후속곡 ‘l love you too’ 홍보 기획, 윤미래의 새로운 음반 작업, 필굿뮤직의 막내 신인가수 비비의 데뷔 앨범 기획과 뮤직비디오 작업, 훈남 래퍼 비지, 윤미래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유닛그룹 MFBTY 활동계획 등 쉴 틈 없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중이다. 


작은 사무실에서 이 모든 게 멈춤 없이 굴러가게 하려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예산을 쪼개고 쪼개서 매달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철저한 계산과 많은 미팅이 필요하다. 요즘같이 전문화, 대기업화, 그리고 치열해진 음원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크고 작은 공연들을 매주 해야만 한다. 때론 큰돈이 들어오고 그 성과의 즐거움을 맛보기 전에 다음 프로젝트에 투자를 바로 해야 하는 경우 빚에 허덕이는 날도 지혜롭게 대처해야만 한다. 내 자신, 신인가수, 멤버들과 직원, 그들의 가족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저 음악이 좋았고 배고픈지도 몰랐던 예전과는 분명 상황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타이거JK


수많은 직업 중에서 아티스트 겸 기획사 대표인 나의 하루 일과를 간략히 설명해봤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기 때문에 술, 담배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내 뇌에 즐거움을 주는 도파민을 자극했다. 바쁜 하루하루에 치여 심히 시니컬해진 요즘,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건강에 대한 나의 의식을 다시 깨우는 듯했다. 


우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화장실 벽에서 흔히들 마주치는 명언 글귀를 보면서도 가볍게 지나치고 만다. 척수염 악화라는 무서운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정작 내게 중요한 삶의 자세를 잃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긍정의 힘은 위대하다. 여기서 말하는 긍정이란 감정을 억눌러온 비현실적인 문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힘든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면 어제보다 좋은 오늘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긍정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 지 2주째. 우선 평소 내게 스트레스를 주던 일들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휴식시간이 많지 않지만 하루에 10분은 투자해서 명상을 하고 바른 숨쉬기를 한다. 예전에 유행했던 웰빙 바람에 이어 동양 의학과 긍정의 힘을 돕는 명상 애플리케이션이 외국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명상, 수면, 스트레스 감소를 돕는 앱이 쏟아지는 걸 보면 결국 건강한 몸은 건강한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걸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운동도, 수면도 사치라고 고개를 젓는 분들도 긍정의 기적을 믿어보자. 왼쪽 허벅지 마비와 말초신경의 결함으로 여기저기 합병이 온 상태에서, 나의 선택지는 2가지다. 더 악화될지 모를 내일에 대해 걱정하고, 날 걱정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형식적인 인사 정도라 생각하며 부정하거나, 웃음과 긍정의 에너지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결국 나는 긍정이라는 단순한 방향을 택했고, 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비 증상에 벗어나 감각이 돌아오는 중이다. 그동안 난 고독과 역경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때론 예민해지고 다투고 자책하고 고민에 밤을 지새우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난 뒤늦게 깨닫게 된 이 긍정의 기적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우선 결혼생활이 더 사랑스러워졌고, 어머님의 얼굴에 미소가 잦아졌으며, 직원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숨소리가 달고 물맛도 꿀맛이다. 스트레스 공장이던 사무실도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의 장으로 변했다. 


긍정의 힘은 대단하다. 스트레스를 분해하는 소화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공짜 처방을 믿고 시작해보자. 그리고 2주 후에 달라진 당신의 삶을 목격하라! Peace and love.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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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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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고 감시당하는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정말 중요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힘과 비리에 의해 음소거된 약자들에겐. 창작의 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은 이 표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선을 밟고 줄타기한다. 간혹 그 표현들은 사회적 풍토에 어긋나거나 모두의 비난을 받고 논란 속에 사라지기도 하지만, 유행과 다른 관점에서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힙합 황금기라 불린 1990년대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 많은 정치인들이 힙합 불매운동을 벌였다. 래퍼들이 쓰는 단어와 표현들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미국이란 사회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때 NWA라는 힙합 그룹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대상이었고, 그들은 공개적인 경고장을 수차례 받기도 했다. 


NWA의 곡들은 주로 여성들의 성적 혐오, 총격전과 폭력 그리고 흑인들만 학대하는 경찰들을 향한 욕설을 다뤘다. “Police think they have the authority to kill a minority : 경찰은 백인이 아니면 다 죽일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생각해.” “Searchin my car, lookin for the product Thinkin every nigga is sellin narcotics. : 항상 내 차를 뒤지고 흑인들은 모두 다 마약을 판다고 생각하지.”(NWA의 ‘Fuck the police’ 중)


특히 이 곡에 거북함을 느끼고 경찰들을 위협하고 위험하게 만드는 곡이라고 생각한 FBI는 공개적인 경고장을 NWA가 소속된 기획사로 보냈고, 이로 인해 엔터테인먼트업계는 물론 사회적 이슈로 미국은 들썩였다. NWA를 옹호하는 의견과 그 반대의견은 물론이고, 힙합에 대해 무지했던 이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타이거JK


‘폭력적인 갱스터들의 저질 문화 VS 뉴스에서 다루지 않은 거리의 언론.’ 힙합을 두고 이렇게 상반된 두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지만 FBI의 경고장은 결국 NWA와 힙합을 미국에서 가장 핫한 인기 장르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NWA의 노래나 가사를 즐겨 듣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도 국가가 예술 그리고 예술가의 표현을 검열하는 행위는 저질스럽고 폭력적인 NWA의 가사보다 더 위험하다는 의견들이 더 큰 이슈몰이를 했다. 


솔직히 지금 돌아보면 어느 쪽 의견이 더 옳은지 모르겠다. 지금 시대는 컴퓨터 마우스 원 클릭만으로도 전 세계의 유행을 한눈에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힙합에는 주로 자기 과시, 돈 자랑, 디스 등 과격한 표현이 많다. 어쩌면 표현의 억압,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도덕, 진정한 리더십이 아닌 인기가 목적인 겉치레, 잘못된 정책들, 자본주의의 이익만 챙기려는 미디어와 기업들,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온갖 비리들…. 이 모든 것에서 비롯된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힙합은 표현하는 방법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Love.


<타이거JK |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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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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