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타이거JK의 힙합읽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2.08 방귀의 행복! 건강이 최고예요
  2. 2019.01.18 스팸 홍수 속 그리운 옛 친구의 메시지

척수염(脊髓炎·myelitis)은 척수의 염증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뇌와 사지를 잇는 중추신경계 기능이 망가진다.

 

발가락을 꿈틀거리고, 새벽녘 잠결에 이불을 슬쩍 걷어차고, 엉덩이를 옆으로 빼고 방귀를 뀌고, 다시 두 다리를 쭉 펴서 기지개를 켜는 정도의 동작들은 많은 생각과 계산 없이 이루어지는 당연한 몸의 움직임들이다. 오줌이 마려우면 누고, 배에 가스가 차면 방귀로 배출하면 된다. 특히 방귀를 뀌는 경우,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자유의 희열을 느끼면서 큰 소리와 메아리를 즐기며 그 공간을 지배할 때엔 정말 시원하다.

 

때로는 격식과 예의, 혹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을 피해 항문근육을 조절하는 온몸의 세포와 조직들을 조정해 익명의 악플러들처럼 몰래 ‘쉬쉬’ 하면서 가스를 내보내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연기 그리고 혹시 억울하게 방귀 누명을 쓰는 제3자가 생겼을 때 모르는 척하는 뻔뻔함이다.

 

타이거JK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 앞에서 방귀는 웃음가스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큰 방귀는 소리, 길이, 템포에 따라 각각 다른 웃음을 자아내며, 때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냄새 지독한 방귀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짓는 미소’라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을 선물하기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런 동물적인 인간들의 당연한 행위들이 불가능해지는 병이 척수염이다. 정확한 이유 없이 뇌에서 보내는 신호들이 멈춰버리는 척추 안에서, 이 신호들의 고속도로인 척수가 염증을 동반해, 꽉 막힌 도로에 신호를 운반하는 차들이 멈춰 서 있거나, 잘못된 신호와 엉킨 방향판들로 충돌하기 시작한다. 의도적인 것인지, 얼굴이 험하게 생겨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타이거JK가 강하고 거침의 상징으로 거듭나기 시작할 무렵, 나의 몸에는 잔근육과 빨래판을 연상시키는 복근이 있었다. 나는 얼굴에 꽃이 피는 미남 미녀들이 장악하는 시장 밖에서, 힙합이라는 비주류 음악 대표로, 가수 비 다음으로 청바지 브랜드의 대표모델로, 패션계에서도 모델로 불려 다니면서 복근 노출을 부탁받던 섹스심벌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복근이 멋진 상남자로 이미지화되어 있던 나에게 척수염은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안겨준 가장 원수 같은 희귀병이었다. 가장 큰 고통은 뇌에서 보내는 당연한 신호들의 장애였다. 방귀를 뀌고자 하는 욕구가 온몸을 떨게 해도, 한두 시간을 집중적으로 배를 누르고 때리고 방구석을 뒹굴뒹굴 굴러봐도, 배출되지 않는 가스. 이렇게 2년을 고생했다. 척수염 투병일기는 아마도 두꺼운 책 10권 정도 나올 분량의 더럽고 추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섭고 고통스러운 경험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나는 방귀가 주는 행복감을 깨달았다. 희귀병에 걸려 투병을 시작할 때 의사 선생님들이 처방한, 치료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 “음식을 꼭꼭 씹어 천천히 드세요. 물을 마시세요, 물이 좋습니다. 술과 담배를 줄이시고, 조금이라도 걸으세요. 좌욕을 하세요. 그 어떤 약보다도 지금 제가 말씀드린 주의사항들을 우선 지키셔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똥, 오줌입니다. 절대로 참지 마세요. 먹으면 제때제때 싸야 합니다. 프로바이오틱스 섭취와 장운동, 이런 간단한 것들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찡그린 미소를 유발하는 방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방귀가 주는 행복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싶다. 만약 방귀를 자유롭게 뀔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명심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까지도 척수염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게 척수염은 ‘방귀의 행복’이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줬다. 이뿐만 아니라 척수염과 턱수염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 리듬감이 비슷하다. 타이거JK만 쓸 수 있는 단어의 발견이다.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며 모두가 뿡뿡대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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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온 사방에 흩어져 있는 깨진 유리 조각들. 만사 귀찮은 듯, 계단에 오줌을 싸대는 사람들. 역겨운 냄새로 찌든 이곳, 너무 시끄럽기까지 해 더 이상 못 견딜 것 같아. 하지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형편이 못 돼. 돈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지. 방 안에 쥐, 거실에 바퀴벌레, 마약중독자들은 야구 배트를 들고 골목을 서성거려. 정말 도망치고 싶지만 멀리 가지 못했어. 래커차를 몰고 어떤 놈이 내 차를 회수해 가.”1982년에 발매된 ‘더 메시지(the message)’라는 랩곡의 1절 내용이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존 레넌, 듀란듀란 등 지금은 레전드라는 훈장을 단 아티스트들의 음악들이 차트를 장악하던 1980년대 초반. 화려한 팝스타들과 그들을 쫓는 파파라치들의 사진 불꽃놀이, 큼직큼직한 멋진 차들과 높은 빌딩 숲, 산 위에 걸쳐진 할리우드 사인 옆으로 날아가는 뉴스 헬리콥터,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등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미국의 꿈.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 뒤에는 빈부의 갈등, 인종차별, 고립되고 발전되지 않은 흑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을 때다.


타이거JK


1980년대 초반부터, 크랙 코테인(마약의 한 종류)은 전염병처럼 빈민가를 덮쳤다. 복지 수준이 상당히 낮은 이곳에서 가족들은 허물어져 가는 싸구려 아파트에 겨우 둥지를 틀고 살아가야 했다. 이곳 주민 거의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수준. 교육시설은 형편없고, 치안은 최악이며, 일거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렇게 버려지고 잊혀진 도시에서 젊은이들은 마약 거래에 뛰어들었다. 경찰과 시민의 관계는 개와 고양이와 같았다. 경찰은 주민을 보호하지 않았고 검거와 검열, 체포에만 몰두했다. 이런 악조건과 악순환의 사이클에서 태어난 예술 문화가 바로 힙합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표현을 소리, 리듬, 패션, 춤, 낙서, 은어, 시, 그리고 은유와 풍자에 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픔, 슬픔, 꿈, 즐거움, 시사, 고발, 파티 등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불공평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멋진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마약거래상들은 우상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 험한 도시에서 공휴일에 파티를 열어주고 때로는 돈과 음식을 나눠줬다. 그런 마약딜러들의 모습은 TV에서 멋진 말만 하고 나타나지는 않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경찰보다 그들의 편에 선 것으로 보였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가 부른 ‘더 메시지’는 이 시대 어느 뉴스 채널보다 더 확실히 사람들이 사는 환경을 보고 들은 결과물이고, 그만큼 솔직했다. 더 중요한 것은 랩을 풀어나가는 리듬이 재밌고, 즐거운 음악이라는 점이다. 7분이 넘는 긴 곡이지만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래퍼의 스토리텔링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드 더 퓨리어스 파이브는 나라의 썩은 시스템을 서술하고, 빈민가의 잘못된 현상들을 꼬집는다. 우상화되는 마약딜러들의 폭력과 권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곡 마지막 후렴 부분 전쯤 이들은 나쁜 쪽으로 방향을 튼 아이들에게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며 경고하기도 한다. “결국 이용당하는 것뿐이야, 마약이 널 남용하듯 구치소에 목매달아 있는 널 발견하는 날처럼….” 이 곡은 2004년 12월9일 롤링 스톤 잡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500곡 중 51위에 오른다.


세상에는 좋은 음악들이 수없이 많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음악을 듣고 금방 다른 곡으로 바꿔 들을 수 있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음악을 들었던 시절들이 한꺼번에 소환된다. 순간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스친다. 고작 세간의 평가와 차트의 성적 따위에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음악의 진짜 본질에 소홀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팸 메시지가 난무하는 요즘, 난 옛 친구의 메시지가 그립다.


미국 출판계는 20년이 지나도 평가가 바뀌지 않았을 때만 클래식이란 칭호를 붙인다고 한다. 내 추억 속 음악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순간 순간은 나중에야 비로소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최고의 추억이 될지 모를 일이다.


<타이거JK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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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