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밭둑 뽕나무 _ 450×470㎜ _ 초배지에 먹 _ 2015


강촌의 늙은 내외


가랑비 좀 뿌린다고 고추밭 고랑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대비 좀 쏟아져라 푹푹 찌는 마른장마



원주 남한강변의 펜션은 그 마을의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는데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그래서 내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장기 임대. 난 저렴한 작업 공간(사실은 스스로의 유배 공간?)을 얻었고 마을은 건물 관리자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봄여름 건물 주위의 무성한 풀들을 감당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예초기를 마련해서 직접 풀을 베고 치우기도 하지만 자주 가 있지 못할 때에는 감당키 어려울 만큼 자라 있어서 돈을 내고 마을에 부탁해야 했다. 그러면 이장이 직접 오거나 마을 노인회장님과 총무님이 오기도 했다. 이장은 좀 젊은 분이지만 회장님과 총무님은 나보다 훨씬 더 연세가 많은 분들이다. 돈 때문이 아니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참 마음 편치 않은 것은 푹푹 찌는 더위에 그분들이 힘들여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남의 노동을 산다는 일이었다. 이것이 윤리적인가…. 


노인회장님 내외분은 펜션 옆 그분들의 고추밭에서 자주 마주쳤었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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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산업전쟁 _ 600×610㎜ _ 화선지에 먹 _ 2019


세기말의 세계화, 관세 철폐, 자유무역…, 그리고 지금 저 사나운 얼굴들.


탐욕과 오만의 무례한 언사들. 소위 21세기 신문명을 이끌고 가는 이들의 대화….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추구한다. 이웃과의 호혜와 선린은 구 문명의 낙후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자국 국민의 삶이 기아선상에 놓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비장하다. 이익이 침해당하면 언제든, 얼마든 보복하겠다고 공언을 한다. 군함과 전투기로 시위를 한다.


차별과 좌절이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가 자기 내부의 성찰로 가지 않고 이웃과 경쟁자들을 향한다.


트럼프, 아베, 푸틴, 시진핑의 얘기가 아니다. 거기 공동체 시민들 얘기다. 그런 야만에까지 왔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더 성장을 해야 하는 걸까. 왜 선한 분배와 공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 언제 우발적으로 꽝! 터지지 않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지금 전쟁 중이다. 새로운 세기의 절대적인 화두는 돈이며 산업문명은 불안 그 자체다.


지성과 이성은 어디로 갔을까.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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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엔 복권을 사지요 _ 450×470 _ 초배지에 먹과 복권 _ 2018


복권이 당첨되면 뭘 할 거죠? 그건 비밀이에요오. 왜냐면, 쫌…부끄럽거든요. 그런데 왜 사세요? 으음…희망이 필요하지요오. 무슨 희망요? 으음…부자가 되는… 저런 복권 한 장으로 부자가 되나요, 3만달러 시대에? 아니죠, 부족하지요, 계속 사야겠지요오. 당첨될 거라고 믿으시나요? 아니죠오, 사서 버리기 전까지가 겨우 그 유효기간이지요오 뭐… 아아 행운을 기다리는 거군요? 에에이, 행운은 아무한테나 오나요, 그냥 희망을 사는 거지요오 뭐….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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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만 보면 흔들고 싶어진다 _ 700×460㎜ _ 화선지에 먹과 동양화 물감 _ 2018


“깃발만 보면 흔들고 싶어진다, 


여기 패잔의 유배지에서라도 말이다.” 


<반산>


언젠가, 한강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거기 강변 공사장에서 노을 속에 홀로 초라하게 나부끼는, 


흙이 묻어 낡고 찢어진 붉은 깃발을 보았다.


전시장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왜 ‘패잔’이죠?” “예, 그야, 난 한때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한 적이 있고, 졌지요. 그래서 패잔이지요. 끝까지 동의할 수 없는 패배….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자의…. 내가 바란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그런 눈치도 헤아릴 줄 모르고….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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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_ 450×470 _ 초배지에 먹 _ 2017


강촌농무


“벽촌 통신선이 파르르 


 먼 데서 와서 고작


 한두 마디 울고 가는


 새”


궁벽하고 한적한 곳에서 지내 보면 안다. 사람의 거리를. 너무 멀구나, 멀구나… 할 수도 있고, 참 호젓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으로 번잡한 도회지에서 그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외진 산골 외롭고도 호젓한 사람의 거처를 이따금씩 들여다봐주는 작은 산짐승들과 조우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일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여기 도회지에서들 살고 있다.


물론, 저 호젓한 시골마을들에도 유무선 통신은 촘촘히 깔려 있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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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울하지 않고 어찌 _ 900×470 _ 초배지에 먹 _ 2018


우울함이야말로 자기 성찰의 어머니다


우울해야


눈알을 내리깔게 되고


눈알을 내리깔지 않고서야 어찌 자기 성찰이 있단 말인가


당신네 세상 요즘 너무 명랑하다


내 시의 일부분.


우울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건 고통이니까.


나도 언제나 명랑하고 싶다.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 모두.


그 어떤 까칠한 성찰도 필요 없는 그런 순수 인간, 그런 순수한 나의 사회.


때로 우울한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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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여, 풀들이여 _ 670×500 _ 디지털프린트에 먹 _ 2010


나무여, 풀들이여 이제


떠나라


옛 오아시스 목마르다


메마른 바람에 작은 꽃씨 되어


새로운 오아시스 또는, 신선한 대초원의 별을 찾아


이제


여길


떠나라


<反産(반산)>


도시의 아스팔트 포장 도로 갈라진 틈 사이로도


풀들은 억세게 초록의 잎사귀들을 밀고 올라온다.


그 도저한 생명력을 찬미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 문명에 관한 자책을 해야 할까.


애처롭다. 존재하기의 고군분투. 


저 풀들이나, 인간들이나.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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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_ 900×470 _ 초배지에 먹 _ 20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가수 정태춘이 3월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열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 ‘5·18’(정태춘 작사·곡) 1절. 1995년에 ‘광주 안티 비엔날레’에서.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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