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전인권의 내 인생'에 해당되는 글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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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11.28 (19)해피(Happy)-1
  3. 2019.10.31 (18)아빠 마음을 알까
  4. 2019.10.04 (17)들리는지
  5. 2019.09.05 (16)달빛
  6. 2019.08.08 비가 내리네
  7. 2019.07.11 ⑭쉽게
  8. 2019.06.20 ⑬사랑의 승리

ㆍ마지막회


전인권씨가 손녀 황지안양과 눈을 맞추며 할아버지 미소를 짓고 있다. 전인권씨 제공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 20대, 30대, 40대 말까지는 왠지 피하고 싶었던 날이 많았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내 인생이 이런 진통으로 20년을 살게 될지 몰랐다.


지나간 고통이, 뒤로 걷는 것 같은 힘겨움이, 내 탓이고 내 것이 되길 바라며 굳게 믿는다.


나이란 이제 나도 모른다. 내가 다니며 이게 옳아요, 저게 틀려요, 모두 나이 속에 스며들었다.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내 몸을 둘러싼 이상한 거짓이 만든 ‘뺀뺀함’이 솜털같이 바뀔 수 있도록.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하느님은 분명히 도와주신다 하기도 하고 공부하면 된다고도 하셨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의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의 가슴 깊이 모두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의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나는 국민학교 2학년 때 만화 보는 걸 좋아했다. 그때는 만화에 대한 잡지도 많았다. ‘소년 한국일보’ ‘어깨동무’ ‘만화왕국’…. 


국민학교(나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2학년 때이다. 나는 그때부터 안경을 썼다. 어머니가 내 눈이 안 좋은 걸 알아차리시고 안경을 해주셨다. 어느 날 만화가게에 가던 날, 나는 머리가 이상하게 아팠다. 감기나 그런 게 아니라 이마 앞부분이 찌잉 하게 아팠다. 왜 그러지? 그날 나는 만화를 보는 내내 이마가 찌잉거렸다. 


만화를 모두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앞으로 쏠린 것 같은 이마를 거울에 비추어봤다. 어? 내 이마의 눈썹과 눈썹 사이가 찡그러져 있고 선이 보였다. 나는 그때부터 그것을 펴려고 눈을 위로 아래로(설명할 길이 없다) 이마가 안 아프게 하려고 애썼지만 계속 찌잉 아프다가 어느덧 잊어버리게 됐다. 그렇게 내 이마에 굵은 선이 잡힌 거다. 


눈이 온다는 새벽 문자에 밖에 나가봤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눈이 오는 기분이다. 새해에는 분명히 무언가 달라질 때인 것 같다. 


모든 게 내 탓일 때 동그란 세상 범위가 넓어진다. 안 보이던 나뭇잎이 행복해 보인다. 내가 지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모두 내 탓이오 속에 있었다.


‘해피’. 영어를 잘 못해서 만든 노래. (문학 교수께서 인정해 주셨다. 앞의 가사가 모두 Happy이기 때문에 시가 되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고 행복했던 Happy의 내용은 이렇다. 


‘행복한 방이네요. 행복한 의자. 행복한 꽃. 행복한 문. 지난 기억이 모두 행복해요? 해피가 yes, 그렇대요. 행복한 둘러보기, 모두 행복을 위해 행복에서 왔어요. 행복하다네요, 택시기사가 행복해 보여요. 택시 창문으로 보이는 여자, 행복한 걸음. 행복하게 걷고 걸을게요. 당신은? 행복해요? 예, 행복하네요. For happy From happy Happy you? Happy me. 행복한 여름 지나면 아아 가을. 행복한 겨울 지나면 오오 봄. 모두 행복이 보냈어요. 행복을 위해 행복이 보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으로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영원히 이 우주를 빠져나갈 수 없다. 무(無)의 시간은 1억년이 잠깐일 거다. 기억은 못한다. “어? 옛날에 너 봤던 거 같애.” 같은 부류끼리 다시 만난다. 당한 걸 또 당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며 풀 건 풀고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거라 믿으며 착하게 멋있게 살아야지. 죽음은 누구나의 숙제일 거다. 우리는 영원히 이 우주를 빠져나갈 수 없다.(내 생각일 뿐입니다)


1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이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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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악보.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이 말처럼 나를 키워준 말은 없다. 나의 모든 건 내 탓이 맞다. 내 삶의 참 많은 일들이 내 탓이었다.


“나는 광범위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언제나 광범위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나는 서울 삼청국민학교를 다녔다. 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초등학교라고 하지 않고, 국민학교라고 했다)에 동그라미를 편하게 그리기 위한 콤파스를 알게 됐다. 조그만 점을 그린 다음에 그것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리면 동그라미가 만들어진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점과 동그라미 그리고 동그라미 안의 세계로 가야 할 때 그 동그라미가 정확한 동그라미일까? 이번 문제는 본격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나는 점을 찍은 후에 콤파스를 돌려서 만드는 동그라미 안에서 할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콤파스가 없이 동그라미를 그릴 수는 없을까? 동그라미 안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나는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나만의 무언가를 갖추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내가 한 행동들이 아주 커다란 범위 속에서 ‘내 탓이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면 육체적 노동과 지성, 지혜를 가져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


서방과 우리의 차이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의 생각이 그들보다 월등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고생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부르는 노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의 가사 내용은 전체적으로 돈은 많아 봤자, 자기 인생의 1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거다. 그러나 ‘내 탓이오’는 바꾸어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더스트 인 더 윈드’를 잘 불렀을 때 나는 공짜로 그 노래하는 동안의 시간을 가진 거다. 따지면 복잡해진다. 우리가 정답을 갖고 사는 게 아니다. 그냥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때 나는 내 탓으로 그 1분을 기분 좋게 갖게 된 거다.


우리의 내 탓과 서방세계의 내 탓은 해석이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혼란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찬스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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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성되기 전인 ‘아빠 마음을 알까’ 악보.


내 아이들아, 아빠가 필리핀으로 자유를 위해 갔을 때도 아빠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삶이 자유로워야 너희들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는 필리핀행 비행기 안에서 ‘너희를 사랑한다’고 자신했다. 사랑은 법이 정할 수 없다. 아빠는 이상하게도 너희에게 부끄럽지가 않다. 


나의 삶은 언제나 현실과 달랐다. 아빠는 그 누구에게도 아빠의 삶에 대해 당당하다. 아빠는 일반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만의 길이 있다. 아빠는 너희들을 기르면서 너희와 너희 엄마의 사생활도 존중해야 했다. 또 아빠의 삶이 너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도 서서히 커가면서 알아야 하기에 내 마음을 열고 얘기하는 거다. 내가 내 삶을 포기하는 건 너희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포기하는 거다. 가장은 가장다워야 하고, 너희는 나의 그 당당함을 ‘다른 사람들이 만든 현실 밖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 역시 내 인생이 떳떳했기에 말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가족이 가족답게 이루어질 수 없다.


너희는 아빠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너희를 기르면서 힘이 났었지. 아빠는 변명을 한 적 없다.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이러한 얘기를 할 때가 됐다. 나는 우리가 서로 공평해야, 또 서로 팽팽해야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너희가 나에게 “아빠 왜 그래요?” “아빠, 나는 아빠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왜?”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모든 행동에 있어 너희도, 나도 당당했다. 사연이 있고, 또 다른 사연들이 생기고, 그렇게 삶이 연속되기 때문에 나와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아빠를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판단한 걸 거다.


아빠는 아빠가 배가 고파도 너희들이 배가 부르고 즐거우면 그게 가족의 대장인 아빠의 행복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그렇다. 그것이 아빠의 마음이라는 거다.


아빠가 필리핀으로 갔을 때 법은 나에게 문제될 수 없었다. 그때 아빠가 너희에게 전화를 했지? “이리로 와, 어떡하든 일단 필리핀에 있는 아빠에게 왔다가 가”라고. 당시 어려서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든 너희에게 한 명령 같은 말이었지만. 너희들이 “지금 우리가 어떻게 거길 왜 가요?”라고 했을 때 아빠는 아빠의 손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한국의 한 기자에게 전화하면서 울음이 터졌다. “내가 왜?”하면서. 그때 아빠의 머릿속에는 “왜 이렇게 갑갑할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뭐에 걸린 듯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다시 돌이켜봐도 아빠의 말이 옳다. 


이상한 법망에 걸려 뉴스의 주인공이 된 그때, 내가 필리핀에서 너희들에게 전화했을 때, 너희들이 아빠를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나에게 왔었다면 너희는 나의 자랑스러운 내가 낳고 기른 내 새끼가 되는 거다(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하기 어려운 때였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 세계의 승리자인 나를 위한, 또 너희를 위한 선택.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 모순일지라도 아빠를 사랑해라. 아빠는 지금까지 항상 리더였다. 리더는 할 일이 많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들을 해줘야 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고충을 말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당장 힘을 줘야 한다. 그러나 바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리더의 길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싸움을 생각했다. 너희들에게 내가 옳다는 얘기를 싸움이 될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당한 미래를 위해서. 1970년 아빠의 나이 17살 때 아빠는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라의 통치자는 독재자였다. 자유란 꿈일 뿐이었다. 그리고 사랑 없는 매를 때렸다. 그것은 희망과 재미가 없는 끝이 안 보이는 혼란한 삶의 연속…. 아빠는 덤볐다


세대가 다른 너희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요즘의 너희들이 어떻게 살고 아빠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 자세히 볼 수 있으면 된다. 아빠는 요즘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얘기한다. 그것은 너희들의 진실한 사랑을 느끼고 싶은 거다.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구속되어 조사를 받을 때, 아빠가 형사에게 전화 한 통화를 부탁했다. 그리고 아주 큰소리로 “내 아이들아, 아빠는 누가 뭐라 해도 이 세계의 최고의 가수이다. 아무 걱정마!”라고 할 때 네가 얘기했지? “아빠 사랑해.”


내가 필리핀으로 도주해서 만든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빠 마음을 알까. 아빠 마음을 알까. 언젠가 네가 아빠의 마음을 느낀다면 언제든지 아빠에게 달려와야 해. 아빠의 가장 큰 행복일 테니까.”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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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지’ 악보.


젊은 고행자 같은 사람이 눈을 작게 뜨고 눈동자는 아래로 향해 있다. 필리핀 어느 산 근방, 나도 모르게 도착한 이상한 카페 같은 곳의 한쪽 벽 전체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다. 주인은 그런 나를 보고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웃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은 길었고, 필리핀 타가이타이에 사는 어린 친구는 “옷을 사러 가자, 머리를 파마하는 곳이 있다, 여기에 저기에 가자”고 했지만 내가 번번이 말을 듣지 않자 포기할 무렵이었다. 한동안은 그쪽 동네 운송수단 중 트라이카(오토바이에 한 사람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가마를 붙여놓은 듯한 일종의 자동차)를 타고 산을 끼고 돌다 바다에도 가보며 놀았다. 그때마다 돈을 주고 트라이카를 빌렸는데 하루에 1000페소(약 2만3000원)를 주면 12시간 정도 빌려 탈 수 있었다. 친구 둘 중 한 명이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운전석 바로 옆에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자꾸 속이기 시작했다. 모텔방을 비싸게 소개하고 파인애플값을 속여 먹었다. 또 자기네 동네 아이들이 잘 못 먹는다,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한다며 돈을 더 가져갔다. 점점 더 심해지길래 화를 내고 앞으로는 절대로 내곁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나마 친구도 없어졌다.


나는 아침에 깨기 싫었다. 어딘가로 또 걸어야 했다. 가만히 쉬어지지 않았다.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만 괴로워졌다. 그렇게 열매 몇 개를 사서 봉투에 담아 배가 고프면 먹으며 계속 걸었는데 어느날 산쪽으로 올라가다 우연히 만난 카페처럼 보이는 허름한 곳, 그래도 나름 베란다도 있고 주변이 산이라 잠시 쉬어가기에 딱 좋았다. 긴 언덕을 올라가서야 보인 산 아래 수상한 카페였다. 일단 사람이 다니질 않았다. 주변에는 상점이나 음료를 파는 가판대 하나 없었다.


내가 들어가자 주인은 웃으며 아주 친한 사람처럼 맞아주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자 몇 가지 음식이름이 적힌 허름한 메뉴판을 가져왔다. 급하면 다 된다. 기억이 안 나던 영어 단어도 생각 나고 그쪽 사람들이 잘 쓰는 말들도 꽤 많이 알 때였다. 거의 “디스원 따블렛” 같은 말은 뭔가를 시킬 때 쓰는 말이다. 나는 라이스와 수프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기다리라고 했고 나를 고행자 그림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그림을 자세히 봤다. 의외로 정교하게 그려진 잘 그린 그림이었다. 고행자의 얼굴은 잘생겼고 눈동자가 아래를 향하여 편안한 표정이다. 나는 더 자세히 봤다. 얼마 되지 않아 그 그림이 내 머릿속에 채워져 갈 때 밥과 카레 냄새가 배어있는 음식이 나왔다. 주인은 그림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행동이 조용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랐지만 강하게 생긴 친구다.


나는 음식을 먹다가 멈추고 그림의 내용을 알아갔다. 그림 속 인물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 밑으로 손이 있고 양손은 벌어져 있는데 그 양손 사이로 낙엽색깔의 작은 나뭇잎 스무개 정도가 마치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손 아래에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니까 아…, 고행 중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카페 주인이 내 어깨를 아주 가볍게 쳤다. 나는 한번 웃어주고 다시 그림을 봤다. 그때부터 주인은 내 곁에서 조용히 그림을 같이 보는 것 같았다. 얼굴 표정은 알 수 없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서로 신경쓸 일이 없었다.


그림 속 고행자의 눈을 다시 봤다. 고행자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가는 나뭇잎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아…, 집중을 하는구나 할 때 주인이 또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 그림은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손에서 저 손, 또 저 손에서 이 손으로 나뭇잎이 물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아마 깊은 도(道)의 그림이었다.


나도 흉내를 내봤다. 또 주인이 기분 좋게 웃어주었다. 눈을 아래로 뜨고 손에 나뭇잎이 있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나뭇잎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집중했다. 그러니까 이 손의 나뭇잎을 아주 천천히 저 손으로 옮기고 또 반대로…. 아….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나뭇잎을 열개로 상상하고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게 집중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의 모양도 바뀐다. 나뭇잎이 계속 공중에 떠있게 집중을 하는 거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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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악보.


서울에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약 한 달 전, 제주도에 전유성 쇼 게스트로 갔다가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 그리고 들국화 팬클럽의 내가 좋아하는 대략 20년 된 친구 안정승과 술자리를 같이했다(안정승은 들국화 팬클럽이다. 들국화 팬클럽과 전인권 팬클럽은 안타깝지만 서로 따로 활동한다. 물론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


안정승에게 “내가 요즘 가끔 와인을 마셔. 색깔도 이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정승이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빨간색 와인을 가져왔다. 그런데 보통의 와인병 마개와 달랐다. 병도 크고 길었다. 조금 센 건지 왠지 소주 맛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또 뭔가 달랐다. 


멤버 모두와 안정승, 8명이 술을 마셨다. 바닷가 근방의 술집 주인은 영업시간이 원래 저녁 11시까지이고 밤을 새울 수는 없지만 새벽 1시까지는 영업을 하겠다고 하고 식사를 겸하는 안주를 내놓았다. 


나는 술의 3분의 1만 마셨는데 조금 빨리 취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와 참 즐거웠던 팬클럽 이야기를 나누다 12시30분경에 일어났다. 공연 후는 항상 피곤하다. 공연이 짧고 긴 것은 상관없다. 긴장 때문인지 피곤하고 멍하다. 대략 3일에서 4일 동안은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공연 다음날 갑자기 태풍경보가 있었고 낮의 하늘이 밤처럼 깜깜했다. 우리 밴드가 타야 할 비행기가 결항되고 밴드 멤버들은 비행기 대기순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혼자 호텔방에서 마시다 만 와인을 마저 마시면서 옛날 생각에 취했다.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착하고 잘 뭉쳤었다. 팬클럽과 나, 그리고 친구들은 서로 가까워질수록 달빛을 느꼈다. 우리는 15년 전부터 나의 집에서 자주 만났다. 밤새 술을 마시며 얘기하고 놀았다. 칠흑 같은 밤, 소나무 뒤로 달이 보이고 착한 시간이 만들어지는 달빛 속 친구들…. 어느 때는 거의 매일 만났다. 새벽 1시경에 무르익는 달빛 안에서(북악산 자락에 붙어 있는 제일 꼭대기의 나의 집은 시내와 거리감이 있어 서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가끔씩 오해를 해도 금세 웃음으로 바뀐다. 산의 매력이다).


나는 그때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다른 친구들도 가끔씩 힘겨워 보였었다. 요즈음 가끔 생각하면 우리는 참 한마음 같았다. 광주에 사는 친구가 우리가 모이는 걸 알면 자정에도 택시를 타고 오기도 했다. 


개그맨 고명환도 단골친구였다. 명환이, 참 좋은 친구. 밤업소가 끝나면 새벽 2시경이다. 그 시간에도 명환이에게 전화하면 신나게 달려왔었다. 삼청동 내 집에 오면 누구든 우리는 모두 달빛이 됐다.


달빛은 그즈음 친구들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한 곡이다. 


“너무나 속상해서/ 달에게 물으니/ 달빛 따뜻하게/ 대답해 주네/ 세상 만물에 생각 있어/ 모두 때라는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추자/ 너무나 생각나서/ 별에게 물으니/ 별빛 반짝이며/ 대답해 주네/ 세상 운명에 마음 있어/ 모두 때란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일절 후렴 반복) 


처음에 가사가 술술 나오던 노래이다. 나의 이혼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충격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행여 이런 가사? 아픔으로 이런 세상을 얘기? 어쨌든 이혼은 안된다. 가족이 헤매게 된다. 특히 결혼 전 연애기간까지 20년을 넘겼다면 이 큰 우주 속의 작은 지구가 아무리 큰 폭풍이라 해도 살아남는 건 이미 주어진 힘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이다. 요즈음의 혼란은 하느님만이 해결한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 속의 하느님을 믿으며 진지해지고 싶다. 달빛 아래 친구들 얼굴의 명암이 정말 그립다.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전인권 |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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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네’ 악보.


얼마 전 장애인의 행사에 갔다. 일종의 ‘서로 친해지기’ 축제(서로 친해지기는 내가 답을 내려보고 싶었다)였다. 미술을 하는 나는 관찰력이 있다.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 


장애인 돕기, 불우이웃 돕기 같은 행사의 제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왠지 어색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제목에 ‘돕기’ ‘위한’ 같은 표현은 안 썼으면 좋겠다. ‘돕는 거라고? 나는 그런 게 아닌데 왠지 어색해’하는 거북함을 행사 내내 느끼게 된다. 그저 어떤 친구는 귀가 안 들리고, 어떤 친구는 눈이 안 보이고, 또 어떤 친구는 지적장애일 뿐…. ‘서로 친해지기 장애인과 함께.’ 이 정도의 제목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명칭을 써야 한다며 인권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 연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리허설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을 때 우리 밴드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지적장애 친구들이 직접 만들어 왔다면서 기분 좋은 얼굴로 원두커피를 돌렸다.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도 잘생긴 청년이 재미있어서 나는 말을 걸었다. 일부러 약간 화가 난 말투로 “어이 학생, 내가 몇살인데 이런 쓴 커피를 주는 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청년은 아주 빠르게 대처했다.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우리 밴드와 청년의 담당 선생 모두 웃었다. 짧지만 정확한 답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웃지 않고 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나는 또 장난치고 싶어서 “어이 친구, 나, 이거 써서 못 마셔!” 하자, 또 한번 “어쩔 수 없어요” 하며 울 것만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 참, 나는 이거 못 마시는데” 하며 뜨거운 커피를 훌쩍 마시다가 “앗, 뜨거. 뜨겁잖아!” 하고 엄살을 부렸다. 순간 청년이 씩 웃었다. 그러더니 “그거 안 마셔도 돼요. 어쩔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대기실에서 나갔다. 나는 “잘 가”라고 했고, 청년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야 해요” 하고 갔다.


그날의 행사는 대단했다. 비장애인인 우리가 부끄러웠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피아노 비트는 열정으로 변했다. 들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제주도에서 밴드 ‘들국화’ 연습을 할 때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핵의학 교수로 일하던 친구에게 “동정표도 표야”라고 얘기하며 같이 공감의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대다수가 나를 우려하는 듯한 시선이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대에 어떻게 올라가지?’ 싶었다.


산과 바다, 나무와 꽃 외엔 사람이 싫었다. 참 부끄러웠던 날들….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싫었다.


나는 교수 친구와 통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 ‘와, 전인권씨죠? 좋아했어요’ 하고 꼭 뒷말이 ‘힘내세요, 힘내세요’더라. 그 말이 들리면 마치 날 위하는 게 아니라 표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좌우간 기분이 안 좋아지고 내가 아주 작아지는 기분이지. 마치 믿는 사람에게 동정을 받는 듯한….” 그러자 친구는 “야 그게 뭐…” 하면서도 공감이 간다는 듯한 말을 했고, 순간 문득 지난날 힘겨웠던 날들이 생각나서 “야 동정표도 표야”라고 말하며 둘이 웃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저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죽는다는 건?’ 하고.


그런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을까? 서로 똑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떳떳하자. 이왕이면 내가 고개 숙일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 앞날은 희망밖에 없지’ 하며 스스로 이겨냈다. ‘내가 답이지, 내가 왜 사람들의 답이 돼야 하나’라고도 생각했다. 


다시 또 뭉친 ‘들국화’ 기자회견 때도 취재진이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얘기했다. “여러분을 황당하게 했죠? 미안해요.”


그날 장애인의 사운드가 바로 우리들이 원하는 비트(몰입, 강한 박자)였다. 우리는 목표가 같은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애인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또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이미 자신을 이겨낸 뭔가 또 다른 것이지 않을까.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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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악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화난 작은 형이 그날 따라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갔다. 그날은 내가 많이 슬픈 날이기도 했다. 7월 말경이었다. 


나는 삼청공원 1호 매점의 아들인, 같은 학교 장세준이라는 친구와 매점의 먹을 것들을 함께 먹어가며 한참 놀았다. 점점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1호 매점 주인인 친구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나는 그분이 웃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자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때는 북악산 범바위까지 오르는 요즘 같은 길이 나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북악산(넘어가면 자하문 밖)의 열매나무들을 다 기억한다. 어느 길로 가면 벚꽃열매 버찌나무가 맛있고, 어떤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뽀루수 열매는 보리수나무의 작은 쌀톨보다는 조금 큰데, 보리수 열매보다 훨씬 맛있다. 뽀루수는 북악산에 많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북악산은 참 다르다. 문득문득 조금씩 겁이 났던 나는 통행금지를 피해 범바위(말바위라고도 한다)까지 올라갔다. 움푹한 데 쉴 만한 곳을 알고 있어서 초저녁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별이 보였다. 바위 바로 아래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었다. 거기까지 올라간 것은 집에는 가기 싫고 공원 길가에서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고 곤란한 일뿐이어서다.  


무서웠다. 그래도 버티고 싶었다. 7월 말, 낮에 더웠던 것만 생각하고 새벽추위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깜깜한 밤을 맴도는 벌레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작은 소리들이 재미있어서 가만히 들었다. 왼쪽, 오른쪽 사방에서 소리가 났다. 한 30분쯤 지났을 거다. 벌레소리들이 엄청 커졌다. 점점 더 아주 먼 곳 소리도…. 동서남북 다른 세상, 별과 나무그림자, 바람소리…. 와, 이건 도대체…. 내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노래 중에 “저기엔 저기엔 어떻게 저렇게 왜”라는 가사가 있다. 초능력 세상의 입구? 환상! 언제나 답은 있었다.


가끔 나무그림자가 바람에 쏴아, 하고 움직이면 소름이 쫙 끼친다. 그 후 그 소리를 친구들에게도 들려줬다. 그냥 우리집 근방에서도 대략 10분이 지나면 영락없다. 소리는 점점 엄청 커진다.


어느새 날이 환해지고 있었다. 나는 오전 5시반쯤 내려왔다. 춥고 슬펐다. 그건 누구를 향한 슬픔이 아니다. 범바위에서 내려왔을 때 매점은 아직 닫혀 있었다. 


나는 버스종점의 작은 포장마차 비슷한 매대에서 할아버지가 끓여주시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외상으로 달라고 하기엔 할아버지가 무섭고 어색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기를 냈다. 나를 힐끔 보시던 할아버지가 “앉거라. 집에 안 들어갔구나” 하시고는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셨다. 나는 잠시 후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일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 세준이네 매점에서 점심밥을 얻어먹고 다시 공터로 가서 어느새 모인 친구들과 놀 때였다. 그때 아아, 나는 그렇게 이쁘고 빛나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나를 위해 시장에 가셨다가 오신 거다. 엄마는 빙긋이 웃으셨다. 그리고 말없이 돈을 주셨다. “밥 먹어라. 그리고 일찍 들어가거라. 에이그, 말을 해야지. 엄마는 또 가서 장사를 해야지. 오늘은 토마토 말고 과자 사갈게.”


엄마 친구의 아들에게 묻어서 과외공부를 반값에 했고 잠시 쉬는 시간에 돌아가며 한명씩 사오는 과자타임이 있었다. 작은형은 그때 다리가 부러져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쉽게 가고 쉽게 오고/ 쉽게 가고 쉽게 오고/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저꽃이 어떻게 왔는지/ 나는 알 수 없어 몰라도 돼!/ 그냥 느낄 뿐”


들국화를 할 때 만든 노래다. 그때도 마누라가 내가 ‘행진’(들국화 1집 수록곡)을 만들 때처럼 열린 나의 방문 앞에 있었다. “어머, 자기야. 그 노래 지금 만든 거야?” “응.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가 공연 첫곡인데 그 전 시작곡으로 코드 비슷하게 해서 만들어본 거야. 이 노래를 빠르게 하고 다음곡을 ‘아침이~’로….” “아, 그 노래 좋다. 자기는 음악성 없는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걸 만들어? 가사도 정말 좋아.” 


마누라는 문학성과 음악선생님이었던 장인을 닮아 음악성이 좋다. 작가로 등단하거나 대중스타가 될 끼는 없지만 느낌이 빠르다. 나는 그때 들국화를 하면서 콤플렉스가 심했었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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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이 꽃이 되고/ 꽃들이 만발하고/ 새싹은 날 보고/ 꽃이라고 하네/ 높고 넓은 산과/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히말라야산 아래에/ 별이 있었다/ 아주 먼 캬라클 호수에 던진/ 나의 비밀/ 별이 뜨면 내가 알고 있기에…”


요즘 쓰고 있는 가사다. 나는 추운 겨울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골라냈다.


나는 10여년 전 어느 날, 원주휴게소에서 개그를 하는 엄용수를 만났다. 참 즐거운, 안경을 쓴 사람. 그리고 휴게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내 눈앞에 글귀가 보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인간적인 삶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사랑의 승리’ 악보.


갑자기 파란 바다가 보였다. 나에게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가수, 마약….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가수다. “마약사범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마약법을 어겼을지언정 죄인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 자신이 되었고 나의 몸과 마음에서 순환이 되어야 하는 곳을 모두 거쳐서 나갔다. 아주 호되게 힘들었다.



인권이라는 거…. 나를 가장 사람답게 하는 자연과의 조화와 힘. 사람이라는 존재가 만드는 이 큰 세상의 조화일 거다.



평창 올림픽 때 나에게 응원가 의뢰가 들어왔었다. 자신감 있는, 사랑이 있는 노래면 좋겠네, 생각하고 가사를 쓰며 멜로디도 흥얼거렸다.


“바람 따라 날리는/ 오래된 또 새로운 노래들/ 아름다운 세상 꽃잎 날고/ 저 멀리에 지친 그대여 친구여/ 지난날 또 지금/ 어울려 그대 위한/ 세상 꽃잎 날고//(중략) //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을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새로움이여 우리의 새로움이여”


슬로비디오 영상을 보는 것처럼 땀이 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일등을 향해 뛰는 마라톤 선수가 생각났다.



앞날은 모르는 거다. 요즘 난 왠지 혼란스럽다. 자꾸 인생이 너무 빠르다.


민주주의는 왔다. 우리 선조의 지혜로. 그리고 거리마다 하늘마다 수많은 귀한 분들의 흔적들. 우리 모두를 위한 참 많은 아픔의 자욱들. 이제는 그만.



“그러니까.”


인권, 어느 지점부터가 아니다. 귀중한 내 삶의 권리가 그 아팠던 거리마다 춤을 출 때 언제나 선배께서 주신 인권을 위한 민주주의. 자연과 인간의 조화.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의 꽃이 필 거다.


“그렇지.”


내가 아는 만큼 내가 하는 만큼 이렇게 긴 길, 인생은 엄청난 장편이다.


자유가 없을 때 만들어졌던, 이해는 가지만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인생이 연극이라느니, 인생은 잠깐이라느니, 잘못된 지난날이 생각해낸 말들이 놀랄 만큼 끝없이 무수한 작은 개미 떼처럼 많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뛰고 있는 슬로비디오 속 사람이 보고 싶다.


개미는 자기들의 갈 길을 향해 묵묵히 간다. 


적폐청산의 횃불은 잠깐은 뜨겁지만 어느새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내가 하겠다? 네가? 


솔직히 너무 더디다. 같은 편과 계속 놀아나서는 서로 때가 되면 “쟤가 있으니까.” 계속 망했다.


모두 버리니까 행복하다. 자유로운, 지혜로운 꿈을 꾸고 싶다. 언제인가 우리집에서 옛 친구들과 술을 마신 일이 있다. 그때 흥분하던 한 친구가 일어나 앉으려다 부실한 의자 다리가 부러지면서 뒤로 꽈당 넘어지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서 아주 빠르게 그 친구 뒤로 뛰어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내 품에 그 친구가 안겼다. 친구는 놀라기만 했고 다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본, 지금은 헤어진 마누라가 “자기는 참 어떻게 그래?”라고 했다. 칭찬, 찬사였다. 받는 게 인권이 아니다. 서로 돕는, 인권의 작지만 힘이 있는 애틋함. 지금 우리는 매사 조심할 때이긴 하다. “그러니까 그렇지.”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안된다. 통치권자 한 사람만을 따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거 봐요. 걔는 아니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더하다니까요” 하는 말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을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새로움이여~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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