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블라블라/전인권의 내 인생'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9.10.04 (17)들리는지
  2. 2019.09.05 (16)달빛
  3. 2019.08.08 비가 내리네
  4. 2019.07.11 ⑭쉽게
  5. 2019.06.20 ⑬사랑의 승리
  6. 2019.06.07 ⑫너는 그리고 하얀 목소리
  7. 2019.05.23 ⑪여기가
  8. 2019.05.09 ⑩ 걱정말아요 그대 - 두 번째 이야기

‘들리는지’ 악보.


젊은 고행자 같은 사람이 눈을 작게 뜨고 눈동자는 아래로 향해 있다. 필리핀 어느 산 근방, 나도 모르게 도착한 이상한 카페 같은 곳의 한쪽 벽 전체에 걸린 커다란 그림이다. 주인은 그런 나를 보고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웃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은 길었고, 필리핀 타가이타이에 사는 어린 친구는 “옷을 사러 가자, 머리를 파마하는 곳이 있다, 여기에 저기에 가자”고 했지만 내가 번번이 말을 듣지 않자 포기할 무렵이었다. 한동안은 그쪽 동네 운송수단 중 트라이카(오토바이에 한 사람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가마를 붙여놓은 듯한 일종의 자동차)를 타고 산을 끼고 돌다 바다에도 가보며 놀았다. 그때마다 돈을 주고 트라이카를 빌렸는데 하루에 1000페소(약 2만3000원)를 주면 12시간 정도 빌려 탈 수 있었다. 친구 둘 중 한 명이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운전석 바로 옆에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자꾸 속이기 시작했다. 모텔방을 비싸게 소개하고 파인애플값을 속여 먹었다. 또 자기네 동네 아이들이 잘 못 먹는다,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한다며 돈을 더 가져갔다. 점점 더 심해지길래 화를 내고 앞으로는 절대로 내곁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나마 친구도 없어졌다.


나는 아침에 깨기 싫었다. 어딘가로 또 걸어야 했다. 가만히 쉬어지지 않았다.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만 괴로워졌다. 그렇게 열매 몇 개를 사서 봉투에 담아 배가 고프면 먹으며 계속 걸었는데 어느날 산쪽으로 올라가다 우연히 만난 카페처럼 보이는 허름한 곳, 그래도 나름 베란다도 있고 주변이 산이라 잠시 쉬어가기에 딱 좋았다. 긴 언덕을 올라가서야 보인 산 아래 수상한 카페였다. 일단 사람이 다니질 않았다. 주변에는 상점이나 음료를 파는 가판대 하나 없었다.


내가 들어가자 주인은 웃으며 아주 친한 사람처럼 맞아주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자 몇 가지 음식이름이 적힌 허름한 메뉴판을 가져왔다. 급하면 다 된다. 기억이 안 나던 영어 단어도 생각 나고 그쪽 사람들이 잘 쓰는 말들도 꽤 많이 알 때였다. 거의 “디스원 따블렛” 같은 말은 뭔가를 시킬 때 쓰는 말이다. 나는 라이스와 수프 같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웃으며 기다리라고 했고 나를 고행자 그림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그림을 자세히 봤다. 의외로 정교하게 그려진 잘 그린 그림이었다. 고행자의 얼굴은 잘생겼고 눈동자가 아래를 향하여 편안한 표정이다. 나는 더 자세히 봤다. 얼마 되지 않아 그 그림이 내 머릿속에 채워져 갈 때 밥과 카레 냄새가 배어있는 음식이 나왔다. 주인은 그림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행동이 조용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랐지만 강하게 생긴 친구다.


나는 음식을 먹다가 멈추고 그림의 내용을 알아갔다. 그림 속 인물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잘생긴 얼굴 밑으로 손이 있고 양손은 벌어져 있는데 그 양손 사이로 낙엽색깔의 작은 나뭇잎 스무개 정도가 마치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손 아래에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니까 아…, 고행 중인 사람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카페 주인이 내 어깨를 아주 가볍게 쳤다. 나는 한번 웃어주고 다시 그림을 봤다. 그때부터 주인은 내 곁에서 조용히 그림을 같이 보는 것 같았다. 얼굴 표정은 알 수 없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서로 신경쓸 일이 없었다.


그림 속 고행자의 눈을 다시 봤다. 고행자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가는 나뭇잎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아…, 집중을 하는구나 할 때 주인이 또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 그림은 머릿속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손에서 저 손, 또 저 손에서 이 손으로 나뭇잎이 물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아마 깊은 도(道)의 그림이었다.


나도 흉내를 내봤다. 또 주인이 기분 좋게 웃어주었다. 눈을 아래로 뜨고 손에 나뭇잎이 있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나뭇잎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집중했다. 그러니까 이 손의 나뭇잎을 아주 천천히 저 손으로 옮기고 또 반대로…. 아….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나뭇잎을 열개로 상상하고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게 집중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의 모양도 바뀐다. 나뭇잎이 계속 공중에 떠있게 집중을 하는 거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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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악보.


서울에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약 한 달 전, 제주도에 전유성 쇼 게스트로 갔다가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 그리고 들국화 팬클럽의 내가 좋아하는 대략 20년 된 친구 안정승과 술자리를 같이했다(안정승은 들국화 팬클럽이다. 들국화 팬클럽과 전인권 팬클럽은 안타깝지만 서로 따로 활동한다. 물론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


안정승에게 “내가 요즘 가끔 와인을 마셔. 색깔도 이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정승이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빨간색 와인을 가져왔다. 그런데 보통의 와인병 마개와 달랐다. 병도 크고 길었다. 조금 센 건지 왠지 소주 맛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또 뭔가 달랐다. 


멤버 모두와 안정승, 8명이 술을 마셨다. 바닷가 근방의 술집 주인은 영업시간이 원래 저녁 11시까지이고 밤을 새울 수는 없지만 새벽 1시까지는 영업을 하겠다고 하고 식사를 겸하는 안주를 내놓았다. 


나는 술의 3분의 1만 마셨는데 조금 빨리 취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와 참 즐거웠던 팬클럽 이야기를 나누다 12시30분경에 일어났다. 공연 후는 항상 피곤하다. 공연이 짧고 긴 것은 상관없다. 긴장 때문인지 피곤하고 멍하다. 대략 3일에서 4일 동안은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공연 다음날 갑자기 태풍경보가 있었고 낮의 하늘이 밤처럼 깜깜했다. 우리 밴드가 타야 할 비행기가 결항되고 밴드 멤버들은 비행기 대기순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혼자 호텔방에서 마시다 만 와인을 마저 마시면서 옛날 생각에 취했다.


지난날 들국화 팬클럽은 참 착하고 잘 뭉쳤었다. 팬클럽과 나, 그리고 친구들은 서로 가까워질수록 달빛을 느꼈다. 우리는 15년 전부터 나의 집에서 자주 만났다. 밤새 술을 마시며 얘기하고 놀았다. 칠흑 같은 밤, 소나무 뒤로 달이 보이고 착한 시간이 만들어지는 달빛 속 친구들…. 어느 때는 거의 매일 만났다. 새벽 1시경에 무르익는 달빛 안에서(북악산 자락에 붙어 있는 제일 꼭대기의 나의 집은 시내와 거리감이 있어 서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가끔씩 오해를 해도 금세 웃음으로 바뀐다. 산의 매력이다).


나는 그때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다른 친구들도 가끔씩 힘겨워 보였었다. 요즈음 가끔 생각하면 우리는 참 한마음 같았다. 광주에 사는 친구가 우리가 모이는 걸 알면 자정에도 택시를 타고 오기도 했다. 


개그맨 고명환도 단골친구였다. 명환이, 참 좋은 친구. 밤업소가 끝나면 새벽 2시경이다. 그 시간에도 명환이에게 전화하면 신나게 달려왔었다. 삼청동 내 집에 오면 누구든 우리는 모두 달빛이 됐다.


달빛은 그즈음 친구들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 중 한 곡이다. 


“너무나 속상해서/ 달에게 물으니/ 달빛 따뜻하게/ 대답해 주네/ 세상 만물에 생각 있어/ 모두 때라는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추자/ 너무나 생각나서/ 별에게 물으니/ 별빛 반짝이며/ 대답해 주네/ 세상 운명에 마음 있어/ 모두 때란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때라는 건 있는 걸 테니/ 내 마음 가다듬고/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일절 후렴 반복) 


처음에 가사가 술술 나오던 노래이다. 나의 이혼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충격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행여 이런 가사? 아픔으로 이런 세상을 얘기? 어쨌든 이혼은 안된다. 가족이 헤매게 된다. 특히 결혼 전 연애기간까지 20년을 넘겼다면 이 큰 우주 속의 작은 지구가 아무리 큰 폭풍이라 해도 살아남는 건 이미 주어진 힘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이다. 요즈음의 혼란은 하느님만이 해결한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 속의 하느님을 믿으며 진지해지고 싶다. 달빛 아래 친구들 얼굴의 명암이 정말 그립다.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


<전인권 |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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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네’ 악보.


얼마 전 장애인의 행사에 갔다. 일종의 ‘서로 친해지기’ 축제(서로 친해지기는 내가 답을 내려보고 싶었다)였다. 미술을 하는 나는 관찰력이 있다.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 


장애인 돕기, 불우이웃 돕기 같은 행사의 제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왠지 어색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제목에 ‘돕기’ ‘위한’ 같은 표현은 안 썼으면 좋겠다. ‘돕는 거라고? 나는 그런 게 아닌데 왠지 어색해’하는 거북함을 행사 내내 느끼게 된다. 그저 어떤 친구는 귀가 안 들리고, 어떤 친구는 눈이 안 보이고, 또 어떤 친구는 지적장애일 뿐…. ‘서로 친해지기 장애인과 함께.’ 이 정도의 제목이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명칭을 써야 한다며 인권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 연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리허설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을 때 우리 밴드의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지적장애 친구들이 직접 만들어 왔다면서 기분 좋은 얼굴로 원두커피를 돌렸다.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도 잘생긴 청년이 재미있어서 나는 말을 걸었다. 일부러 약간 화가 난 말투로 “어이 학생, 내가 몇살인데 이런 쓴 커피를 주는 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청년은 아주 빠르게 대처했다.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우리 밴드와 청년의 담당 선생 모두 웃었다. 짧지만 정확한 답이었다


그러나 청년은 웃지 않고 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나는 또 장난치고 싶어서 “어이 친구, 나, 이거 써서 못 마셔!” 하자, 또 한번 “어쩔 수 없어요” 하며 울 것만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 참, 나는 이거 못 마시는데” 하며 뜨거운 커피를 훌쩍 마시다가 “앗, 뜨거. 뜨겁잖아!” 하고 엄살을 부렸다. 순간 청년이 씩 웃었다. 그러더니 “그거 안 마셔도 돼요. 어쩔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대기실에서 나갔다. 나는 “잘 가”라고 했고, 청년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야 해요” 하고 갔다.


그날의 행사는 대단했다. 비장애인인 우리가 부끄러웠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피아노 비트는 열정으로 변했다. 들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제주도에서 밴드 ‘들국화’ 연습을 할 때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핵의학 교수로 일하던 친구에게 “동정표도 표야”라고 얘기하며 같이 공감의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대다수가 나를 우려하는 듯한 시선이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대에 어떻게 올라가지?’ 싶었다.


산과 바다, 나무와 꽃 외엔 사람이 싫었다. 참 부끄러웠던 날들….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싫었다.


나는 교수 친구와 통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 ‘와, 전인권씨죠? 좋아했어요’ 하고 꼭 뒷말이 ‘힘내세요, 힘내세요’더라. 그 말이 들리면 마치 날 위하는 게 아니라 표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좌우간 기분이 안 좋아지고 내가 아주 작아지는 기분이지. 마치 믿는 사람에게 동정을 받는 듯한….” 그러자 친구는 “야 그게 뭐…” 하면서도 공감이 간다는 듯한 말을 했고, 순간 문득 지난날 힘겨웠던 날들이 생각나서 “야 동정표도 표야”라고 말하며 둘이 웃었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저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죽는다는 건?’ 하고.


그런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을까? 서로 똑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떳떳하자. 이왕이면 내가 고개 숙일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 앞날은 희망밖에 없지’ 하며 스스로 이겨냈다. ‘내가 답이지, 내가 왜 사람들의 답이 돼야 하나’라고도 생각했다. 


다시 또 뭉친 ‘들국화’ 기자회견 때도 취재진이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얘기했다. “여러분을 황당하게 했죠? 미안해요.”


그날 장애인의 사운드가 바로 우리들이 원하는 비트(몰입, 강한 박자)였다. 우리는 목표가 같은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애인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또한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이미 자신을 이겨낸 뭔가 또 다른 것이지 않을까.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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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악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화난 작은 형이 그날 따라 무서워서 집에 안 들어갔다. 그날은 내가 많이 슬픈 날이기도 했다. 7월 말경이었다. 


나는 삼청공원 1호 매점의 아들인, 같은 학교 장세준이라는 친구와 매점의 먹을 것들을 함께 먹어가며 한참 놀았다. 점점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1호 매점 주인인 친구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나는 그분이 웃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자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때는 북악산 범바위까지 오르는 요즘 같은 길이 나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북악산(넘어가면 자하문 밖)의 열매나무들을 다 기억한다. 어느 길로 가면 벚꽃열매 버찌나무가 맛있고, 어떤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뽀루수 열매는 보리수나무의 작은 쌀톨보다는 조금 큰데, 보리수 열매보다 훨씬 맛있다. 뽀루수는 북악산에 많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북악산은 참 다르다. 문득문득 조금씩 겁이 났던 나는 통행금지를 피해 범바위(말바위라고도 한다)까지 올라갔다. 움푹한 데 쉴 만한 곳을 알고 있어서 초저녁 아직 해가 떠 있을 때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별이 보였다. 바위 바로 아래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었다. 거기까지 올라간 것은 집에는 가기 싫고 공원 길가에서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고 곤란한 일뿐이어서다.  


무서웠다. 그래도 버티고 싶었다. 7월 말, 낮에 더웠던 것만 생각하고 새벽추위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 깜깜한 밤을 맴도는 벌레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작은 소리들이 재미있어서 가만히 들었다. 왼쪽, 오른쪽 사방에서 소리가 났다. 한 30분쯤 지났을 거다. 벌레소리들이 엄청 커졌다. 점점 더 아주 먼 곳 소리도…. 동서남북 다른 세상, 별과 나무그림자, 바람소리…. 와, 이건 도대체…. 내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노래 중에 “저기엔 저기엔 어떻게 저렇게 왜”라는 가사가 있다. 초능력 세상의 입구? 환상! 언제나 답은 있었다.


가끔 나무그림자가 바람에 쏴아, 하고 움직이면 소름이 쫙 끼친다. 그 후 그 소리를 친구들에게도 들려줬다. 그냥 우리집 근방에서도 대략 10분이 지나면 영락없다. 소리는 점점 엄청 커진다.


어느새 날이 환해지고 있었다. 나는 오전 5시반쯤 내려왔다. 춥고 슬펐다. 그건 누구를 향한 슬픔이 아니다. 범바위에서 내려왔을 때 매점은 아직 닫혀 있었다. 


나는 버스종점의 작은 포장마차 비슷한 매대에서 할아버지가 끓여주시는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외상으로 달라고 하기엔 할아버지가 무섭고 어색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기를 냈다. 나를 힐끔 보시던 할아버지가 “앉거라. 집에 안 들어갔구나” 하시고는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셨다. 나는 잠시 후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일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 세준이네 매점에서 점심밥을 얻어먹고 다시 공터로 가서 어느새 모인 친구들과 놀 때였다. 그때 아아, 나는 그렇게 이쁘고 빛나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나를 위해 시장에 가셨다가 오신 거다. 엄마는 빙긋이 웃으셨다. 그리고 말없이 돈을 주셨다. “밥 먹어라. 그리고 일찍 들어가거라. 에이그, 말을 해야지. 엄마는 또 가서 장사를 해야지. 오늘은 토마토 말고 과자 사갈게.”


엄마 친구의 아들에게 묻어서 과외공부를 반값에 했고 잠시 쉬는 시간에 돌아가며 한명씩 사오는 과자타임이 있었다. 작은형은 그때 다리가 부러져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쉽게 가고 쉽게 오고/ 쉽게 가고 쉽게 오고/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저꽃이 어떻게 왔는지/ 나는 알 수 없어 몰라도 돼!/ 그냥 느낄 뿐”


들국화를 할 때 만든 노래다. 그때도 마누라가 내가 ‘행진’(들국화 1집 수록곡)을 만들 때처럼 열린 나의 방문 앞에 있었다. “어머, 자기야. 그 노래 지금 만든 거야?” “응.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가 공연 첫곡인데 그 전 시작곡으로 코드 비슷하게 해서 만들어본 거야. 이 노래를 빠르게 하고 다음곡을 ‘아침이~’로….” “아, 그 노래 좋다. 자기는 음악성 없는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걸 만들어? 가사도 정말 좋아.” 


마누라는 문학성과 음악선생님이었던 장인을 닮아 음악성이 좋다. 작가로 등단하거나 대중스타가 될 끼는 없지만 느낌이 빠르다. 나는 그때 들국화를 하면서 콤플렉스가 심했었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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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이 꽃이 되고/ 꽃들이 만발하고/ 새싹은 날 보고/ 꽃이라고 하네/ 높고 넓은 산과/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히말라야산 아래에/ 별이 있었다/ 아주 먼 캬라클 호수에 던진/ 나의 비밀/ 별이 뜨면 내가 알고 있기에…”


요즘 쓰고 있는 가사다. 나는 추운 겨울날,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골라냈다.


나는 10여년 전 어느 날, 원주휴게소에서 개그를 하는 엄용수를 만났다. 참 즐거운, 안경을 쓴 사람. 그리고 휴게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내 눈앞에 글귀가 보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인간적인 삶은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사랑의 승리’ 악보.


갑자기 파란 바다가 보였다. 나에게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가수, 마약….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가수다. “마약사범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마약법을 어겼을지언정 죄인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 자신이 되었고 나의 몸과 마음에서 순환이 되어야 하는 곳을 모두 거쳐서 나갔다. 아주 호되게 힘들었다.



인권이라는 거…. 나를 가장 사람답게 하는 자연과의 조화와 힘. 사람이라는 존재가 만드는 이 큰 세상의 조화일 거다.



평창 올림픽 때 나에게 응원가 의뢰가 들어왔었다. 자신감 있는, 사랑이 있는 노래면 좋겠네, 생각하고 가사를 쓰며 멜로디도 흥얼거렸다.


“바람 따라 날리는/ 오래된 또 새로운 노래들/ 아름다운 세상 꽃잎 날고/ 저 멀리에 지친 그대여 친구여/ 지난날 또 지금/ 어울려 그대 위한/ 세상 꽃잎 날고//(중략) //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을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새로움이여 우리의 새로움이여”


슬로비디오 영상을 보는 것처럼 땀이 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일등을 향해 뛰는 마라톤 선수가 생각났다.



앞날은 모르는 거다. 요즘 난 왠지 혼란스럽다. 자꾸 인생이 너무 빠르다.


민주주의는 왔다. 우리 선조의 지혜로. 그리고 거리마다 하늘마다 수많은 귀한 분들의 흔적들. 우리 모두를 위한 참 많은 아픔의 자욱들. 이제는 그만.



“그러니까.”


인권, 어느 지점부터가 아니다. 귀중한 내 삶의 권리가 그 아팠던 거리마다 춤을 출 때 언제나 선배께서 주신 인권을 위한 민주주의. 자연과 인간의 조화.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의 꽃이 필 거다.


“그렇지.”


내가 아는 만큼 내가 하는 만큼 이렇게 긴 길, 인생은 엄청난 장편이다.


자유가 없을 때 만들어졌던, 이해는 가지만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인생이 연극이라느니, 인생은 잠깐이라느니, 잘못된 지난날이 생각해낸 말들이 놀랄 만큼 끝없이 무수한 작은 개미 떼처럼 많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뛰고 있는 슬로비디오 속 사람이 보고 싶다.


개미는 자기들의 갈 길을 향해 묵묵히 간다. 


적폐청산의 횃불은 잠깐은 뜨겁지만 어느새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내가 하겠다? 네가? 


솔직히 너무 더디다. 같은 편과 계속 놀아나서는 서로 때가 되면 “쟤가 있으니까.” 계속 망했다.


모두 버리니까 행복하다. 자유로운, 지혜로운 꿈을 꾸고 싶다. 언제인가 우리집에서 옛 친구들과 술을 마신 일이 있다. 그때 흥분하던 한 친구가 일어나 앉으려다 부실한 의자 다리가 부러지면서 뒤로 꽈당 넘어지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서 아주 빠르게 그 친구 뒤로 뛰어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내 품에 그 친구가 안겼다. 친구는 놀라기만 했고 다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본, 지금은 헤어진 마누라가 “자기는 참 어떻게 그래?”라고 했다. 칭찬, 찬사였다. 받는 게 인권이 아니다. 서로 돕는, 인권의 작지만 힘이 있는 애틋함. 지금 우리는 매사 조심할 때이긴 하다. “그러니까 그렇지.”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안된다. 통치권자 한 사람만을 따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거 봐요. 걔는 아니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더하다니까요” 하는 말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날개, 사랑의 승리. 힘겹던 지난날을 덮어주는 펄펄 흰 눈 새로움이여~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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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에 대한 기대는 엄청났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우리가 어느 선술집 같은 곳에서 어떤 상상 속에 사람을 그리며 기다리며 ‘그 사람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안 나타나는 걸까?’(1970년대 20대의 간절한 꿈이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바라던 것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누를수록 그 마음은 커져만 갔고 유신의 몰락에 우리는 거대한 꿈을 잘못된 군인의 정신에 넘겨야 했다.)


‘너는’ 악보.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도 갖고 싶었지만 매일 친구가 사는 아파트 방에는 못 들어가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꼭대기층에 작은 소리로 기타 치며 놀기 좋은 공간이 있어 그곳에 자주 갔다.


대중음악의 힘은 엄청나다. 비틀스는 이 세상의 꿈이었다. 그들은 대중의 마음을 노래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 그 몇분 안에 모든 얘기를 담았다. 그들이 만든 음악의 천재적 균형감이란!


천재들이 맞다. 비틀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얻게 되는 아픔을 멜로디와 목소리로 결론의 시작과 끝을 자신 있게 우리에게 방향감까지 느끼게 했다. 


어떤 음악인이든 주제가 생기면 그냥 시작되는 거다. 그전에 했던 공부에 의해서, 그것들이 기억날수록 어려워지는 창작의 세계. 대중음악 세계는 그 시대 대중의 흐름에 따라 여러 세계를, 자연과 사람을, 진실하게 함축하는 일. 인간적이지 못한 것들은 축제 같은 히트를 맛볼 수 없다. 특히 오랫동안 사랑받는 히트곡은.


요즘 내가 좋다고 만드는 두 곡이 있다. 한 곡은 우리 모두가 존경해야 할 분의 시로 만드는 곡. 존경한다는 건 닮고 싶고 내가 그분을 생각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거다. 꼿꼿하시고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힘겨운 시대에 진실을 모두 변호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감사원장도 역임했던 한승헌 변호사님. 그분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다. 


“여기 이 시집에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만들어 보는 게 어때?”


나는 깜짝 놀랐지만 왠지 인간적인 배려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나를 선택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으로 “예 변호사님. 제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광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변호사님께서 쓰신 시를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는 변호사님의 많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막상 작업을 하게 되면 변호사님의 마음을 느끼게 해야 하는 것이어서 단어에서 조금은 안타까우실 때가 있으실 겁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진보적인 형태(프로그레시브)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고 시작했고 지금 거의 만들어져서 녹음 날짜를 잡고 있다.


시는 ‘하얀 목소리’라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젊음을 바친 분들에 대한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피해갈 수 없는 노랫말 같은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읽자마자 바다가 연상됐다.


산 정상의 차디찬 물처럼 당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인의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분께서 살아오신 모든 것을 돌아보고 느끼고 싶어서 나는 일곱 권짜리 책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과 한 권짜리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도 구입해서 틈틈이 읽으면서 작업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글들이 만발한 꽃처럼, 그러나 안타까운, 아직 내 머릿속에만 그려지는 꽃 같아서 노래를 만들며 변호사님께 이해를 구하며 들려드리면서(이건 지금 말씀드리는 거다. 통기타 하나만 가지고 노래도 형편없이 불렀어도 나는 휴대폰으로 녹음한, 흥얼거리는 것을 보내드려야만 했다.) 효과가 있어서 변호사님의 뜻에 따라 바꾸게 된 것이 마지막 장을 노래할 때 아까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균형이 또렷하게 잡혔다. 노래는 5분30초로 조금 길지도 모른다.


“하얀 목소리/ 저 바다로 가는 길 어디/ 저 바다로 가는 길 어디/ 하아아얀 마지막 마주보던/ 눈동자/ 또 오셨군요/ 할 수 없지요/ 또 떠나시는군요/ 할 수 없지요/ 눈부신 앞뜰에서 인사를 하던/ 쓰러진 젊음/ 서울의 정오뉴스/ 아아 지워질 수 없어/ 이어지는 또 이어지는/ 아픔으로 묻는다/ 미운 자여! 미운 자여!/ 너는 또 누구냐/ 저만치 보이다가 침몰/ 또 침몰해버린/ 파도 속의 얼굴들/ 아아 지워질 수 없어서/ 아픔으로 다시 또/ 묻는다 미운자여!/ 또 오셨군요/ 할 수 없지요(바아다 바다로 아아아아 바다 자유여 나의 어머니)/ 또 떠나시는군요/ 할 수 없지요”


생략(노래가 나오면 들어보시길…).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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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들국화는 용감한 밴드였다. 들국화는 운도 따랐다. 당대 세계 팝 음악의 생각들을 꿰뚫는 지혜가 있었다. 우리는 군부의 연장정부인 5공의 탄생에 반기를 들었다. 이유는 자유와 사랑과 평화.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길들여진 모든 방송 쇼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저항했다. 그리고 우리를 좋아하는 모든 친구들도 같은 생각으로 참여한 듯한,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을 했다. 


그것에 대해 방송국 역시 창법 미숙, 가사 치졸 등을 이유로 내세워 우리들을 왕따시켜 버렸다. “예의가 없다. 복장이 짜여진 방송에 맞지 않는다” 등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으로…. 특히 5공 정부는 일반시민들에게는 장발을 어느 정도 허용했지만 우리 밴드는 장발 상태로는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여기가’ 악보.


그때 우리는 동아기획의 앨범 팔기 작전으로 앨범에 ‘이 앨범을 사면 들국화 공연을 반값으로 볼 수 있다’는 반값 티켓을 넣었다.


우리의 반항을 누군가는 ‘들국화정신’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들국화의 인기는 사건 같았다. 정권의 입맛대로 놀아나지 않는 밴드,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불만을 대신 표출할 줄 아는 밴드. 이름도 들국화여서, 민초를 연상케 했다.


그 당시 들국화는 장기공연을 제시했고 기획사 I.n.g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I.n.g의 문석봉 대표는 우리 밴드를 자랑스러워하는 관객과 우리 모두에게 최고로 배짱이 잘 맞는 연극기획자였다.


그때 나는 큰 공연(3000석 규모)을 마치면 기다리는 관객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우리 밴드는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다. 공연이 끝나면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고 기다리는 관객이 엄청 많았다. 지금도 정식 공연이 끝나면 관객의 절반이나 3분의 1 정도는 남아서 기다리면서 옛 시절에 받지 못했던 사인을 받거나 새로운 음반을 사와서 사인을 요청한다. 그리고 관객도 나도 서로 고맙다고 인사한다.  


어쨌든 1980년대 당시 나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기사 겸 동생이 기다리는 내 차에 들어간 후 무조건 잠 오는 약을 먹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내가 새벽 녘에 깨어나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숲속에 데려다놓아 달라고 말하고, 잠을 자버렸다. 그것은 계속되어온 공연의 피로감을 그나마 풀 수 있는, 내가 고안해낸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 날 깨어보니 차는 그네가 있는 산정호수 입구의 숲속에 멈춰 있었다. 때마다 운전하는 동생은 바뀌었는데 그날은 아마 인도에서 오랫동안 인생공부를 하고 돌아온 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동생은 잠시 나갔는지 차 안에는 나와 기타밖에 없었다. 자주 함께 다니던 성욱(들국화의 키보드 허성욱)도 없었다. 


숲과 가을꽃들 속에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기타 코드를 잡고 그냥 노래했다.


“이렇게 맑은 아침에/ 이렇게 밝은 햇살이/ 여기가 거기야/ 여기가 거기야/ 이렇게 넓은 마음에/ 똑같이 저기저꽃이/ 여기가 거기야/ 여기가~/ 나를 내버려둬두 돼/ 나를 어디든지 데리고 가도 돼/ 거기야 여기가 거기야.”


여기까지 그냥 단숨에 만들어졌다. 코드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절묘한 게 신기했다. 


2절은 여럿이 함께 차를 타고 밤길을 달릴 때 기타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녹음에 들어갔다. 


그때 기타 치던 최구희가 갑자기 얘기했다. “형! 이 노래는 최고예요. 정말 좋아요. 기타 치고 싶게 해요.”


구희는 녹음이 끝난 후 제주도로 가서도 전화를 했다. “형 이곳 사람들이 전부 이 노래 정말 좋대요!”


경향신문에 연재해온 나의 칼럼 ‘전인권의 내 인생’. 나는 이런 글을 신문에 쓴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항상 쓸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신문에 글을? 그리고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밴드다. 남자끼리의 터치 없는 연애라고도 말한 적 많다. 밴드가 어려워질 때는 다른 방법을 찾거나 쉬어가야 한다. 쉴 때는 가차없이 쉬어가야 한다. ‘걷고 걷고 Im glad i found you. 약속의 땅이 아니어도 내가 아는 만큼 한다는 건 내가 어디에서든 진실한 당신을 만나기 위해~’ (닐 영/전인권)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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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그대’ 악보.


달마봉 정상 바로 밑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사방이 온통 하얗고 드넓다. 


산의 높고 낮음이 


평지처럼 위험하지 않은 것 같다.


드디어 천지가 환해질 무렵, 


배운 단가를 큰소리로 노래하며 길을 찾으면서 내려갈 때였다. 


나는 조금 움푹해 보이는 눈길을 밟았는데 이게 웬일인지 


내가 갑자기 벼랑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벌려서 ‘뭔가 잡힐 만한 게 있을까?’ 했지만 


나는 이미 떨어져 있었다.


꽤 높은 곳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하얀 눈과 같이 낙엽 속에 있었다. 


산속의 벼랑은 몹시 가팔랐지만 비스듬했고, 


그 비스듬한 사이에 낙엽들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눈이 덮여 있었던 거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리고 갑자기 등이 많이 아팠다. 떨어질 때 뭔가에 부딪친 거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얼마나 오래된 건지, 그 가파른 벼랑에 비스듬하게 낙엽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또 계속 눈이 쌓인 건데,  


얼마나 오래 낙엽이 쌓여 있었길래 평지처럼 보인 걸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몸 전체를 덮은 낙엽과 눈을 제쳐 치우고 그곳에서 나왔다. 


온 산의 눈이 다시 보였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눈이 많이 쌓인 산속에는 가끔씩 왔었는데


산속의 양 갈래 길 중 나도 잘 다니지 않았던 약수터로 통하는 이 길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웅덩이 같은 곳에 약수터가 하나 있고 거기까지 가면 


더 이상은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완전한 깊은 산속이다.


여기가 어딘지 방향도 없다. 아래로 내려가야 할 텐데 높낮이가 아직 가늠이 안된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그러나 절대 빨리 생각하면 안된다. 내려가는 방향조차 전혀 구분이 안되는 깊은 산속이다.


아, 그때! 


어디선가 졸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제 물소리 따라 내려가면….


나는 평소 같으면 노래를 불러가며 한 시간이면 됐을 산길을 네 시간 만에야 내려왔다.


저 멀리 고동색인 널찍한 바위 사이로 


물이 여러 갈래로 흐르는 곳이 보였다. 


매일 지나치며 보던 곳. 


전인권


이 세상은 재미있다.


종종 삶은 단편으로 생각나지만 장편이다.


백기완 선생님의 따님인 백원담씨에게 들은 중국 속담? 


‘희망엔 따로 길이 있는 게 아니다.’ 


참 좋은 말이다.


<전인권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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