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봄날,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절 뒷마당 어디쯤 뚝뚝 꺾여 떨어진 선홍빛 동백꽃,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 풍경의 중심에 선운사가 있고, 서정주와 송창식이 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1986년 발표된 이 노래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가 고향인 미당 서정주가 쓴 ‘선운사 동구’에 대한 헌사이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송창식은 ‘참새의 하루’ ‘담배가게 아가씨’ 등과 함께 이 노래를 발표하며 선운사 동백의 낙화를 보며 느꼈던 처연함을 노래에 담았다고 술회했다. 송창식은 인천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문학의 밤 강연자로 온 서정주를 처음 봤다.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의 조각들이 모여 한 편의 시가 된다’는 말을 듣고 감명받았다. 두 사람이 만난 건 1975년이었다. 송창식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난 서정주의 제자 문정희 시인을 졸라 사당동 미당의 자택을 방문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미당은 넌지시 ‘푸르른 날’을 노래로 만들어 보라며 내줬다. 좀체 자신의 시를 노랫말로 준 적 없는 미당이었기에 송창식은 정성을 다해 곡을 썼다. 그 노래를 맨 처음 들려주자 미당은 대만족했고, 그 뒤부터는 가는 자리마다 ‘내 친구 송창식’을 추켜세웠다. 어쨌거나 사람이 남긴 흔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봄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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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꽃소식이 상경할 때면 화개장터부터 떠오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에 있는 이 장터는 지금쯤 꽃이 지천일 게다. 이곳부터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에서 열리는 봄축제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1980년대 후반쯤이다. 조영남은 윤여정과 이혼하고 서울 흑석동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때 김한길이 미국에서 왔다. 장래가 촉망되는 소설가였던 그는 이어령 선생의 사위였지만 이혼과 함께 귀국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던 그는 잠시 조영남의 아파트에 얹혀살았다. 두 중년의 백수는 어느 날 신문기사를 놓고 마주 앉았다. 경향신문 1987년 10월27일자에 실린 화개장터가 지역갈등의 해방구임을 보여주는 르포기사였다. 기사 속에서 한 구례 주민은 “먹고살아가는디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신 상관 있당가요? 괜시리 우리랑 관계없는 사람들이 지방색을 들먹거려 화가 치민당께요”라고 반문한다. 


소설가인 김한길은 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노랫말을 썼고, 조영남은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를 붙여 완성했다. 아직도 여전히 지역갈등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 노래로 인해 화개장터는 유명해졌다. 조영남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조영남 작사·작곡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바로잡아 김한길도 저작권료를 받는다. 재미있는 건 조영남은 노래를 발표할 때까지 화개장터에 가본 일이 없었다. 지금은 화개장터에 조영남갤러리도 있지만 말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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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의 지침서’쯤 되는 노랫말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가 있다. 스티비 원더의 ‘파트타임 러버’가 그것이다. 


‘전화할 때 한 번 울리면 끊어/ 당신이 집에 잘 도착한 걸 알 수 있게/ 내 파트타임 애인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아/ 그녀가 없으면 라이트를 깜박일게/ 오늘 밤이 파트타임 애인인 너와 나의 밤이란 걸 알릴 수 있게.’


획기적인 사운드에 실린 경쾌한 리듬과 달리 노래는 불온하다. 


바람둥이가 자신의 정부에게 두 사람만의 비밀연애를 위한 지침을 가르쳐준다. 친구들과 마주칠 때면 절대 아는 체하지 말고, 다급한 전화라면 남자친구에게 부탁하라고 말한다. 물론 휴대폰이 없던 1985년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대로 끝나면 재미없는 노래다. 바람둥이는 파트너를 속이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믿지만 그녀도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빌보드 역사상 처음으로 팝과 R&B 싱글, 댄스,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4개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다. 백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시리타 라이트는 1970년 원더와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하고도 음악동료로서 교류해온 사이였다. 그러나 라이트는 유방암 후유증으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미숙아로 태어난 스티비 원더는 인큐베이터에서 간호사의 잘못된 처치로 실명을 한다. 그러나 탁월한 음악적 재능으로 피아노, 하모니카, 드럼 등의 연주에 능했고 천재적인 음악 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통 우울한 봄이지만 이런 노래 한 곡쯤 듣다 보면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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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봄날과 연관 지을 노래도 아닌데 이맘때면 한 번씩 흥얼거리게 된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왜 불러/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친정집 오라비 장가들 밑천에 주었지.”


1971년 고봉산과 하춘화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고봉산은 1965년 송춘희와, 1968년 아리랑씨스터즈와도 함께 불렀다. 원곡은 1936년 리갈레코드에서 발매한 이상춘 구성, 한욱심과 이면우가 부른 구전민요 ‘영감타령’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고봉산이 편곡하고, 반야월이 개사하여 ‘잘했군 잘했어’가 된 것이다. 


봄에 피는 꽃, 하춘화(河春花)는 겨우 여섯 살 때인 1961년 12월, 최연소로 독집앨범을 냈다. 가수 활동 60주년을 앞두고 있으니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송가인의 할머니쯤 된다. 하춘화는 전국을 누비면서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불렸다. 1991년에는 개인 최다공연기록인 1260회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여고생인 하춘화가 아버지뻘 되는 송해, 남보원, 서영춘 등의 코미디언과 영감 운운하면서 만담 수준의 노래를 불렀으니 보는 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춘화와 연결되는 사건이 있다. 1977년 11월11일 발생한 이리역(현 전북 익산) 폭발사고다. 이날 화약을 가득 실은 열차가 폭발하던 당시 하춘화는 인근 삼남극장에서 공연 중이었다. 사회를 보던 무명의 이주일이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것도 모르고 하춘화를 구해냈다는 일화가 있다. 일설에는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던 이주일만 한 희극인도 드물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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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는 봄날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박인수와 이은하가 부른 ‘봄비’가 그것이다. 같은 제목, 다른 곡이지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좋은 노래들이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내부자들>에서 불러 이은하의 곡이 최근 들어 더 유명해졌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이 노래는 원래 동명의 MBC 주말극 주제가였다. 1979년 방영된 드라마 <봄비>는 이정길, 김자옥, 이효춘 등이 출연한 애정극이었다. 남편을 여의고 수예점을 하고 있던 여인에게 배신하고 떠났던 옛 애인이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이희우(2019년 작고)가 노랫말을 쓰고, 김희갑이 작곡했다. 


당시 이은하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등을 히트시키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어린 나이부터 밤무대에 섰던 이은하는 타고난 가창력으로 허스키하면서도 솔풍의 창법을 구사했다. 1970년대 가요계의 한편에 귀엽고 발랄한 혜은이가 있었다면, 한편에는 탁월한 가창력에 무대 장악력까지 갖춘 이은하가 있었다. 이은하는 이 노래를 부른 이후에도 본인이 작사한 ‘아리송해’와 장덕과 함께 작업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놨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이후 아버지의 사업실패, 본인의 투병으로 인해 굴곡 많은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사실은 ‘봄비’를 이은하보다 잘 부르는 가수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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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로 알려진 ‘마이 웨이’는 샹송이 원곡이었다. 1967년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가 질 티보와 함께 작사하고, 자크 루보와 함께 작곡한 ‘콤 다비튀드(Comme d’Habitude)’는 의역하자면 ‘늘 그랬듯이’다. 원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랫말과는 사뭇 다르다.


“눈을 떠서 너를 흔들어 보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않네. 늘 그랬듯이/ 나는 네가 추울까 봐 이불을 덮어주지. 늘 그랬듯이/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네 머리칼을 쓰다듬지. 늘 그랬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마치 옆에 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의 얘기를 시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랑 얘기가 부드러운 프랑스어와 어우러진 노래다.


1969년 27세의 싱어송라이터 폴 앵카는 프랭크 시내트라를 염두에 두고 영어로 개사해 헌사했고,원곡보다 유명해졌다. 그러나 고독한 사랑노래는 확신에 찬 인생노래로 변질됐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왔고, 이뤄야 할 것들을 다 이뤘노라고 노래한다. 또 모든 것에 정면으로 맞서왔고, 부끄러운 짓은 안 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노랫말 때문에 이 노래는 한때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중장년 신사들의 18번이었다. ‘자존감의 끝판왕’쯤 되는 노래지만 젊은층들에게는 ‘꼰대들의 애창곡’으로 비치기도 했다.


‘클로클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클로드 프랑수아는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이 노래는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샹송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1978년 3월 파리의 자택에서 전구를 바꿔 끼우려다 감전당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정작 클로클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만났지만 ‘마이 웨이’를 쓴 원곡자라고 밝히지 못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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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듣다가 가슴 한쪽이 무너져내린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들을 때마다 번번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1991>이라는 제목의 앨범 수록곡으로 불혹을 눈앞에 둔 양희은이 쓰고, 26살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만들었다. 양희은이 단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노랫말과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병우의 기타 선율이 어우러져 뜨겁고도 처연한 사랑과 절망의 노래를 조율해냈다.


1987년 결혼한 후 뉴욕으로 갔던 양희은이 ‘아침이슬’ 2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앨범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인 이병우를 뉴욕으로 불러서 노래를 만들어 연습하고 딱 하루 만에 앨범 전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정작 처음에는 장사 안되는 음악이라면서 제작자들이 외면했다. 이 노래가 유명해진 건 몇 년이 지난 뒤 드라마에 삽입되면서부터였다. 


불혹의 양희은은 이 앨범에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목소리를 선보인다. ‘아침이슬’과 ‘한계령’을 거쳐 이 노래로 보컬리스트로서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듯한 창법으로 그 안에 뜨겁고도 처연한 사랑을 펼쳐 보인다. 양희은과 이병우는 사랑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그네들의 슬픔을 거둬가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같이 쓸쓸한 겨울 저녁이면 이 노래의 울림이 다른 계절보다 더 크다. 조수미, 이은미, 나윤선 등 굵직한 보컬리스트들이 리메이크했지만 그 백미는 최백호가 아닐까.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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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트로트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젊은층도 그 열기에 합류했다. ‘아모르 파티’의 김연자,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송가인, 트로트 가수로 거듭난 유산슬(유재석)에 이르기까지 그 인기가 그칠 줄 모른다. 대중음악계에서 트로트는 어떤 장르보다도 뿌리가 깊다. ‘뽕짝’으로 불리며 천대받으면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트로트 가수들 사이에서 “노래 한 곡 히트시키려면 적어도 3년은 홍보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댄스나 발라드 장르에 비해 트로트가 그만큼 히트곡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93년 봄, 한 음반사 사무실에서 작곡가 유영건과 대중음악 담당기자가 마주앉았다. 유씨는 출반된 지 3년이 지난 CD 한 장을 꺼내서 기자에게 내밀었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유씨의 애틋한 사랑얘기를 담은 이 노래를 들어본 기자는 그 사연을 기사로 썼다. 실연의 아픔을 솔직하게 쓴 가사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멜로디, 김수희의 흐느끼는 듯한 창법이 어우러진 노래였다. 기사를 접한 팬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엽서를 보내면서 이 노래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가 독주하던 1993년 가요계에서 ‘애모’는 방송 횟수 1위를 기록했으며, 김수희는 당시 갤럽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올랐다. 또 KBS 가요대상,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거의 모든 대중음악상을 휩쓸었다. 본인도 거의 잊고 있던 노래가 히트하면서 김수희는 ‘멍에’ 이후 10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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