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통기타를 치며 싱어롱을 주도해야 ‘멋진 오빠’로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포크의 전성시대였던 1970년대 얘기다. 그 시절 단골 레퍼토리의 0순위에 꼽힌 노래가 비로 ‘연가’였다. 그런데 이 노래가 태평양의 섬나라 뉴질랜드의 전통 민요라는 건 알려지지 않았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노래 ‘포카레카레아나(Pokarekareana)’가 탄생한 곳은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의 호수 한복판에 있는 섬 모코이아였다.


로토루아 호수 근처에 살던 족장의 딸은 모코이아에서 건너온 청년을 사랑했다. 그러나 족장의 딸은 귀족이었고, 청년은 미천한 신분이었다. 족장은 딸이 모코이아에 가지 못하도록 카누 탑승을 금했다. 청년은 매일 저녁 구슬프게 피리를 불었다. 족장의 딸은 목숨을 걸고 섬까지 헤엄쳐 가서 청년을 만났고, 두 사람은 드디어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오클랜드에서 3시간 거리의 로토루아는 간헐천이 솟구치는 온천 관광지로 우리 여행객들에게도 친숙하다.


이 노래는 1914년 투모안(Tomoan)에 의해 편곡됐고, 마오리족 출신의 뉴질랜드 국민가수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가 불러 유명해졌다. 한국전쟁 때 참전한 뉴질랜드군에 의해 번안되어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랫말은 “거센 북풍이 몰아쳐도 당신이 건넌다면 잠잠해질 거예요”로 해석되는 원작과 다소 차이가 있다.


2009년 김용화 감독의 영화 <국가대표>에 뉴질랜드 팝페라 가수 헤일리 웨스튼라가 불러 삽입됐다. 국내에선 포크 가수 김세환과 은희 등이 불러 음반 등에 담았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은희 등이 불러 음반 등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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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꽃밭/ 높고 긴 벽돌 담의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방 한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


한대수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노래는 그의 가족사와 연관이 있다. 한대수는 중학생 때 조부모와 대학 사택에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신학대 초대학장인 한영교씨였다. 아버지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실종됐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떠났기에 늘 혼자였다. 수위 두 명이 지키는 사택은 꽤 호화로웠지만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었다. 말하자면 옥이는 그 공간에 갇힌 소년기의 한대수였던 셈이다. 이 노래는 슬픈 한반도를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금지곡이었다.


한대수 음악의 뿌리는 외로움이다. 고1 때 실종된 지 10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를 찾아 미국 롱아일랜드로 가서 2년여를 살았다. 아버지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백인 여성과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여전히 혼자였다. 기타를 치면서 한 곡, 두 곡 만든 노래들이 한대수의 대표곡이 됐다. 미국에서 뉴햄프셔대학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안 맞아 자퇴하고 뉴욕 사진 학교에 다녔다. 그가 장발을 휘날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공연했을 때 한 연예매체에서 “한국 땅에 히피가 상륙했다”라고 대서특필했다.


핵물리학을 공부한 아버지 한창석씨가 10년간 실종됐던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FBI가 찾은 아버지는 가족도 못 알아보는 기억상실 상태였다. 북한이 납치해 핵 개발에 투입했다가 돌려보냈다는 설도 있었다. 아버지는 이 부분에 대해 끝내 함구했다.


한대수는 러시아 태생 부인 옥사나와의 사이에서 뒤늦게 얻은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 머물다 귀국한 한대수가 새 앨범을 만들어서 발표한다고 한다. 반갑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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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복타복 타복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주랴 명태 싫다. 가지 주랴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양병집이 발굴해 부른 ‘타복네’는 함경도에서 구전돼 온 민요였다. 원래 표기는 ‘타박네’로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그의 책에서 ‘타박타박 걷는 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제목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춘 노래 ‘양단 몇 마름’의 2절 가사를 쓰기도 했던 양씨의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준 노래였다. 함경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구전돼 오면서 제목과 가사 또한 지역마다 다르게 전해져 왔다.

 

김민기·한대수와 더불어 1970년대 3대 저항가수였던 양병집은 굵고 짧게 한국 포크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서라별예대 작곡과를 다니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증권사에 입사한 양병집은 밥 딜런의 노래를 개사한 ‘역(逆)’-훗날 김광석이 부르면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이 바뀜-으로 포크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결국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신촌 라이브카페로 간다. 그곳에서 조동익과 최성원, 정태춘, 전인권 등과 어울린다.

 

1974년 발표한 &lt;넋두리&gt;는 포크의 본령이 살아 있는 앨범이었다, ‘역’과 ‘서울하늘’ ‘타복네’ 등은 유신 독재정권을 향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했다. 결국 이듬해 ‘가사와 창법, 방송 부적격’을 이유로 판매가 금지된다. 가요계에 불어닥친 대마초 파동 이후 양병집은 증권회사에 재입사했다. ‘타박네’는 서유석이 불러 더 유명해졌고, 이연실도 양병집이 개사한 ‘소낙비’와 함께 불렀다.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생활하던 양병집은 1999년 영구 귀국해 후배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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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탄생]이제하 ‘모란동백’

추석연휴 안방극장을 뜨겁게 한 나훈아가 발표한 새 앨범에 눈길을 끄는 노래가 있다. 조영남이 먼저 부른 것으로 알려진 ‘모란동백’이 그것이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당대를 대표하는 두 가수가 리메이크한 이 노래의 원작자는 소설가 이제하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하여 부른 노래로 1998년 시집 <빈 들판>(나무생각)을 내면서 부록으로 발매됐다. 처음 제목은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으로 시인 김영랑과 작곡가 조두남을 향한 오마주를 담았다.

이제하는 시인이자 화가이며, 소설가다. 문단에서는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으면서 기타를 들고 공식, 비공식 무대에 자주 서 왔다. 이 노래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그가 만들어 불러왔던 노래다. 한국의 밥 딜런을 연상케 하는 그의 노래가 아까워 지인들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돌려가면서 들었다. 그의 노래에서는 깊이와 철학이 느껴졌고, 목소리 역시 묘한 매력이 있었다. 마치 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닮았다.

조영남이 노래를 듣고 반해서 이제하 선생에게 간청하여 리메이크했다. 틈날 때마다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얘기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나훈아 역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걸 보면 범상치 않은 곡임에 틀림없다.

장르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적 풍토만 아니었다면 이제하는 지금쯤 음유시인 반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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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탄생]펄시스터즈 ‘커피 한 잔’

1960년대 말 활동을 접고 전쟁이 한창이던 월남(베트남)에 가려고 기다리던 신중현의 아침잠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박 났어. 주문이 밀려들어 감당할 수 없다고. 지금 월남 갈 때가 아냐.” 레코드사 사장이 신중현을 주저앉혔다. 정확하게 말하면 펄시스터즈의 노래 ‘커피 한 잔’이 신중현을 다시 잡았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팔분이 지나고 구분이 오네/ 일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내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배인순과 배인숙 자매로 결성된 펄시스터즈가 신중현에게 데뷔앨범을 부탁했다. 1967년 미8군에서 활동하다 다음해 TBC <쇼쇼쇼> 무대에 출연하면서 펄시스터즈라고 작명한 이들 자매가 음악적 스승을 찾아온 것이다. 신중현은 베트남에 가기 전 기념앨범이나 만들자는 심정으로 그들의 앨범을 만들어줬다. ‘커피 한 잔’은 신중현이 록밴드 시절 발표했으나 외면받은 노래였다. 첫 발표 당시 제목은 ‘내 속을 태우는구려’였다. 녹음 당시 레코드사 사장은 ‘절대 인기를 얻기 힘든 괴상한 노래’라고 타박했다.

그러나 훤칠한 몸매와 서구적인 외모로 무장한 펄시스터즈가 이 노래를 부르자 세상은 크게 출렁거렸다. 자매가 부른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이 동반히트하면서 MBC 가수왕을 차지했고, 앨범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걸그룹이 핫팬츠에 롱부츠를 신고 무대를 누비자 언론에서도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이들은 ‘준과 숙’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진출했고, 미국까지 날아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펄시스터즈의 성공이 없었다면 지금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는 가수들도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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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탄생]R.E.M. ‘에브리바디 허츠’

“당신의 하루가 길고/ 밤에 홀로 외롭다고 느껴질 때/ 더 이상 삶이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 조금만 견뎌봐요/ 포기하지 말아요/ 누구나 눈물을 흘리고/ 누구나 가끔씩 아파하지요/ 때로는 모든 게 엉망이지요/ 그럴 땐 노래를 불러요.”

요즘처럼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기가 또 있을까. ‘에브리바디 허츠’는 1993년 발표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상처받거나 힘든 사람들을 꾸준하게 위로해온 노래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에릭 클랩턴의 ‘티어스 인 해븐’과 레너드 코언의 ‘할렐루야’를 밀어내고 ‘성인 남자를 울게 만드는 노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록밴드 R.E.M.은 미국 조지아주에서 1980년 마이클 스타이프(리드 보컬), 피터 벅(기타), 마이크 밀스(베이스), 빌 베리(드럼)에 의해 결성됐다. 이 노래의 크레디트에는 네 멤버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지만 빌 베리가 주도했다. 그는 “아무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학입시나 어려운 집안 형편 등으로 좌절에 빠진 10대들을 위해 그들의 의도대로 이 노래는 많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래로 거듭났다. 자선단체인 ‘사마리아인들’의 자살방지 캠페인에 노래의 가사가 쓰였고, ‘9·11 사건’ 이후 다양한 추모 이벤트에서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로 불렸다. 2010년 아이티 지진 직후에는 리오나 루이스, 머라이어 케리 등이 함께 불러 그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밴드 이름인 R.E.M.에 대해 해석이 엇갈렸으나 정작 본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붙였다고 해명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크든 작든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다. 스타이프의 영혼이 담긴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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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네/ 화장을 하고 긴 금발을 빗어 넘기네/ 그녀가 내게 물었지. 나 괜찮아?/ 나는 대답하네. 그래 당신은 오늘 밤 멋져 보여/ 파티에 가고 있을 때 모두가 고개를 돌려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네/ 그녀가 내게 묻네. 기분 괜찮아?/ 나는 대답하네. 그래 오늘 밤 너무 멋지군.’

 

누구나 한번쯤 흥얼거렸을 ‘원더풀 투나잇’은 에릭 클랩튼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만든 노래다. 그 주인공은 모델이자 사진작가인 페티 보이드다. 조지 해리슨(비틀스)과 에릭 클랩튼의 첫 부인이자 삼각관계의 주인공, 게다가 두 사람이 그녀를 위해 만든 노래는 여전히 사랑받는 명곡들이다.

 

영화 촬영장에서 보이드를 만난 해리슨은 첫눈에 반해 청혼하고, 1965년 결혼한다. 1969년 비틀스의 앨범 &lt;애비 로드&gt;에 수록된 ‘섬싱’에서 해리슨은 보이드에 대해 ‘그녀에겐 다른 여자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어 나를 끌어당긴다’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보이드에 반한 사람이 또 있었다.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에릭 클랩튼이었다. 해리슨은 클랩튼의 속마음을 모른 채 인도 신비주의와 마약에 빠져 대신 아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보이드는 해리슨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데 클랩튼을 이용한다. 클랩튼이 해리슨에게 돌아간 보이드에게 상처받고 만든 노래가 ‘레일라’였다. 클랩튼은 마침내 해리슨과 이혼한 보이드와 결혼한다. 이 노래는 결혼생활 중 외출을 앞두고 옷을 고르는 보이드를 보면서 만든 노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알코올중독과 폭력으로 얼룩진 그들의 결혼생활은 1989년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네 삶의 모든 밤들이 놀라울 수 없듯이 그들의 사랑 또한 영원하지 않았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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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가을의 문턱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래다. 이젠 시즌송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을바람처럼 부드러운 이문세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귀뚜라미가 베갯머리 근처에서 운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워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이문세의 노래는 이영훈이 만들었거나 그렇지 않은 곡으로 나뉜다. 이 곡은 이영훈이 써서 1987년 3월 발매된 4집 음반에 수록됐다. 전곡이 이영훈 작사·작곡, 김명곤 편곡으로 모두 200여만장이 팔렸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별 이야기’ 등이 동반 히트해 포크곡인 ‘가을이 오면’은 오히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영훈-이문세 콤비가 ‘대박’을 낸 건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수록된 3집이지만 4집에 와서 정점을 찍었다. 클래식을 전공한 이영훈이 새로운 음악을 찾던 이문세와 만나 한국 대중음악계에 팝발라드를 정착시킨 것이다.

 

이영훈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이문세에게 간청해 두 사람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을 하는 내내 그는 모든 공을 이문세에게 돌렸다. 또 같이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도 렌즈 앞에서 무척 쑥스러워했다.

 

이영훈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진 지도 벌써 12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의 맑은 영혼이 실린 노래들은 광화문이나 세종로, 코스모스가 피는 산책길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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