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벼루를 얻었네 _ 690×350㎜ _ 화선지에 먹 _ 2019


廣硯滿充磨墨水(광연만충마묵수) 

小舟解繩出何海(소주해승출하해)

幼年野端其淺海(유년야단기천해) 

乘舟仰天托風乎(승주앙천탁풍호)


넓은 벼루에 먹물 갈아 가득 채우고

작은 배 줄 풀어 어느 바다로 나갈거나

어린 시절 들판 끝 그 얕은 바다

배에 올라 하늘 바라보며 바람에 의탁할거나


산업문명은 인간을 집단화하고 조직화한다. 공장, 공단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그리고 사무실들, 문화시설들…. 그게 도시다. 거기서 벗어난 인간은 산업 인력이 아니거나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다. 문명은 개인이 혼자 있을 때에도 모바일이든 컴퓨터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라고 한다. 무선 통신의 첨단 미디어와 플랫폼들을 통해 대량 소비를 위한 집단 취향을 만들어내고 끝없이 소비하고 생산하게 한다. 


산업문명에서 독립적인 개인과 자유인은 없다. 집단화된 문명에 성찰과 지성은 없고 트렌드와 팬덤만 있다. 


거기에 수시로, 문명이 백신도 치료제도 준비하지 못한 신종 전염병의 재앙이 덮친다.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크게 타격당한다. 생계를 위협당한다. 코로나19로 작금, 그 문명의 일부가 멈춰섰다. 잠시.


이제 그만 재앙이 잦아들기를…. 속히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정태춘 |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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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꽃소식이 상경할 때면 화개장터부터 떠오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에 있는 이 장터는 지금쯤 꽃이 지천일 게다. 이곳부터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에서 열리는 봄축제가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1980년대 후반쯤이다. 조영남은 윤여정과 이혼하고 서울 흑석동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때 김한길이 미국에서 왔다. 장래가 촉망되는 소설가였던 그는 이어령 선생의 사위였지만 이혼과 함께 귀국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던 그는 잠시 조영남의 아파트에 얹혀살았다. 두 중년의 백수는 어느 날 신문기사를 놓고 마주 앉았다. 경향신문 1987년 10월27일자에 실린 화개장터가 지역갈등의 해방구임을 보여주는 르포기사였다. 기사 속에서 한 구례 주민은 “먹고살아가는디 전라도와 경상도가 무신 상관 있당가요? 괜시리 우리랑 관계없는 사람들이 지방색을 들먹거려 화가 치민당께요”라고 반문한다. 


소설가인 김한길은 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노랫말을 썼고, 조영남은 흥겨운 리듬과 멜로디를 붙여 완성했다. 아직도 여전히 지역갈등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 노래로 인해 화개장터는 유명해졌다. 조영남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조영남 작사·작곡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바로잡아 김한길도 저작권료를 받는다. 재미있는 건 조영남은 노래를 발표할 때까지 화개장터에 가본 일이 없었다. 지금은 화개장터에 조영남갤러리도 있지만 말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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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의 지침서’쯤 되는 노랫말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노래가 있다. 스티비 원더의 ‘파트타임 러버’가 그것이다. 


‘전화할 때 한 번 울리면 끊어/ 당신이 집에 잘 도착한 걸 알 수 있게/ 내 파트타임 애인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아/ 그녀가 없으면 라이트를 깜박일게/ 오늘 밤이 파트타임 애인인 너와 나의 밤이란 걸 알릴 수 있게.’


획기적인 사운드에 실린 경쾌한 리듬과 달리 노래는 불온하다. 


바람둥이가 자신의 정부에게 두 사람만의 비밀연애를 위한 지침을 가르쳐준다. 친구들과 마주칠 때면 절대 아는 체하지 말고, 다급한 전화라면 남자친구에게 부탁하라고 말한다. 물론 휴대폰이 없던 1985년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대로 끝나면 재미없는 노래다. 바람둥이는 파트너를 속이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믿지만 그녀도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빌보드 역사상 처음으로 팝과 R&B 싱글, 댄스,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4개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다. 백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시리타 라이트는 1970년 원더와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하고도 음악동료로서 교류해온 사이였다. 그러나 라이트는 유방암 후유증으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미숙아로 태어난 스티비 원더는 인큐베이터에서 간호사의 잘못된 처치로 실명을 한다. 그러나 탁월한 음악적 재능으로 피아노, 하모니카, 드럼 등의 연주에 능했고 천재적인 음악 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통 우울한 봄이지만 이런 노래 한 곡쯤 듣다 보면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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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 _ 650×350 _ 화선지에 먹 _ 2018


勿出夕江邊(물출석강변) 

傷心月與風(상심월여풍)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세요

달빛 바람에 마음 다쳐요


코로나19 사태가 한참인데 너무 한가한 얘기일까, 언젠가 광나루 건너편 물가에서 달 떠오는 강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녁 강변은 더없이 한적하고 스산한 바람이 키 큰 갈대 숲을 흔들고 있었다. 


그 너머 멀리로 인간의 거처 시멘트 건축물들이 공제선을 형성하고 있고. 내가 여기에 왜 나와 있을까, 나는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사유체일까, 그 존재감은 왜 이리 쓸쓸할까…. 그 뒤, 다시는 저녁 강변에 나가지 않았다.


요즘 거리에 사람이 줄고 특히 노인들 만나기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도 가능하면 집 안에 머물고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도 미룬다. 하여, 처음 등장한 용어 ‘사회적 거리 두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야 실감이 덜하겠지만, 모두 고립감 같은 것들을 느낀다고 한다. 답답함과 함께.


그러나 행여 저녁 강변에 나가지 마시라. 거기 더 사람 없고, 문명의 우울까지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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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봄날과 연관 지을 노래도 아닌데 이맘때면 한 번씩 흥얼거리게 된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왜 불러/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친정집 오라비 장가들 밑천에 주었지.”


1971년 고봉산과 하춘화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고봉산은 1965년 송춘희와, 1968년 아리랑씨스터즈와도 함께 불렀다. 원곡은 1936년 리갈레코드에서 발매한 이상춘 구성, 한욱심과 이면우가 부른 구전민요 ‘영감타령’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를 고봉산이 편곡하고, 반야월이 개사하여 ‘잘했군 잘했어’가 된 것이다. 


봄에 피는 꽃, 하춘화(河春花)는 겨우 여섯 살 때인 1961년 12월, 최연소로 독집앨범을 냈다. 가수 활동 60주년을 앞두고 있으니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송가인의 할머니쯤 된다. 하춘화는 전국을 누비면서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불렸다. 1991년에는 개인 최다공연기록인 1260회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여고생인 하춘화가 아버지뻘 되는 송해, 남보원, 서영춘 등의 코미디언과 영감 운운하면서 만담 수준의 노래를 불렀으니 보는 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춘화와 연결되는 사건이 있다. 1977년 11월11일 발생한 이리역(현 전북 익산) 폭발사고다. 이날 화약을 가득 실은 열차가 폭발하던 당시 하춘화는 인근 삼남극장에서 공연 중이었다. 사회를 보던 무명의 이주일이 자신의 머리가 깨지는 것도 모르고 하춘화를 구해냈다는 일화가 있다. 일설에는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던 이주일만 한 희극인도 드물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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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와의 대면이 가장 두려운 일이 되어가는 요즘, 예술계 창작자들이 제안하는 대안들이 눈에 띈다. 한 작곡가는 관객 없이 음악회를 진행해 추후 기록을 공개하기로 했고, 한 작가는 미술관이 문을 닫은 탓에 전시 중이던 영상 작업을 스트리밍으로 한 차례 선보였다. 조르조 아르마니는 빈 극장을 빌려 관객 없이 패션쇼를 진행해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낯선 방식은 아니다. 실제 공연과 미디어 기록은 공존하며 서로를 보완해왔고, 나 또한 현장에 가지 못하면 영상이나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무 관객도 없는 현장을 미디어로 보여주기만 한다고 하니, 어쩐지 새삼스럽다. 


어떤 공연 현장은 관객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머시브’ 공연이라 불리는 사례 중에는 관객이 배우와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되거나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관객이 공연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누구를 따라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경험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지는 연극 <슬립 노 모어> 같은 경우도 있다. 이런 공연에서 관객은 고정된 자리에서 멀찍이 공연을 바라보는 관망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편 어떤 공연에서 관객은 적극적인, 혹은 소극적인 반응을 건넨다. 무대 위의 공연자가 “소리 질러” 같은 이런저런 요구를 할 때마다 최대한의 음량으로 반응하게 되는 페스티벌 같은 현장도 있다. 쥐 죽은 듯이 있다가 마지막 악장의 마지막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마침내 박수를 보내는 서양음악의 관객은 인내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관객들이 거의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공연자와 조용히 교감만 하다가 박수도 찬사도 없이 자리를 뜨며 끝나는 공연도 있다. 현장의 관습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특유의 관객 문화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이나 공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묘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대면을 피해야 하는 요즘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관객이 현장에서 사라지는 사례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 상황에 굴하지 않고 공연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겠다. 익명의 관객들과 일회적으로 대면할 기회는 포기했지만, 창작자들은 재생 가능한 공연의 기록물을 성실히 남기고 있다. 어쩌면 공연보다 많은 사람이 볼 가능성이 큰 데다 쓸모도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소식들을 역시나 미디어로 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공연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괜스레 되돌아보게 된다.


음악학 공부를 시작할 무렵, 한 토론 수업에서 난처한 논제들을 다뤘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한국음악’의 장르적 범주는 무엇이냐, 거친 질문들이 튀어나오는 와중에 학생들의 대단한 관심을 받은 문제가 있었다. 누군가 숲속에서 듣는 이 한 명도 없이 혼자 악기를 연주한다면 그것을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최대한 자극하기 위한 노골적 질문이었던 만큼 강의자가 겨냥한 논제가 예상대로 튀어나왔다. 공연의 성립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공연에서 공동체라는 존재와 사람들의 상호작용은 얼마나 중요한지라는 문제였다.


순식간에 공연들이 사라지는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동시에 공연의 현장성과 그곳에서 사람들이 맺어왔던 관계가 어디까지 바뀔지를 떠올려본다. 예술의 향유방식은 삶의 양식에 발맞추어 변화한다. 사람들이 음악의 현장에 모이지 않고, 현장에서 느슨하게나마 형성되어왔던 ‘공동체’라는 환영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는 이런 의외의 미래마저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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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는 봄날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박인수와 이은하가 부른 ‘봄비’가 그것이다. 같은 제목, 다른 곡이지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좋은 노래들이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내부자들>에서 불러 이은하의 곡이 최근 들어 더 유명해졌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이 노래는 원래 동명의 MBC 주말극 주제가였다. 1979년 방영된 드라마 <봄비>는 이정길, 김자옥, 이효춘 등이 출연한 애정극이었다. 남편을 여의고 수예점을 하고 있던 여인에게 배신하고 떠났던 옛 애인이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이희우(2019년 작고)가 노랫말을 쓰고, 김희갑이 작곡했다. 


당시 이은하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밤차’ 등을 히트시키면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어린 나이부터 밤무대에 섰던 이은하는 타고난 가창력으로 허스키하면서도 솔풍의 창법을 구사했다. 1970년대 가요계의 한편에 귀엽고 발랄한 혜은이가 있었다면, 한편에는 탁월한 가창력에 무대 장악력까지 갖춘 이은하가 있었다. 이은하는 이 노래를 부른 이후에도 본인이 작사한 ‘아리송해’와 장덕과 함께 작업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놨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이후 아버지의 사업실패, 본인의 투병으로 인해 굴곡 많은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사실은 ‘봄비’를 이은하보다 잘 부르는 가수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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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흐르는 강변 갈대밭_ 330×450㎜ _ 화선지에 먹 _ 2014


북으로 흐르는 강변 갈대밭


하얗게 하얗게 눈이 쌓인다



종일 인적이 없다. 외진 펜션 현관 앞까지 고라니들이 더러 다녀가고 멀리 강변 갈대밭에 눈이 쌓인다.


펜션 거실에서는 일 없는 사내가 오후 내내 창가에 서성이다가, 붓글씨 몇 자 쓰다가, 그 적요를 깨는 요란한 색소폰을 한참을 불다가, 어두워지기 전 현관을 나와 차에 올라 북쪽 도시 서울로 돌아간다. 그 좁은 도로 위의 차 바퀴 자국을 천천히 하얀 눈이 지우고 펜션도 다시 차갑고 고요해진다. 또, 몇 년 전 이야기다.


올겨울, 서울에 눈이 얼마나 왔던가. 오래오래 소란한 겨울 도시에 눈 대신 바이러스의 불안이 쌓이고 있다. 이번 것은 얼마나 오래갈 것이며 그다음 것은 언제 또 올 것인가. 이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에….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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