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은퇴했다. 1936년생인 그는 <내추럴> <아웃 오브 아프리카> <흐르는 강물처럼> 등에서 관객이 직접 표정을 그릴 수 있도록 투명한 얼굴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은퇴작은 실존인물인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 <미스터 스마일>이다. 17번 체포되었으나 매번 탈옥했고, 한 해 60차례나 은행강도를 하며 70대까지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다는 전설, 심지어 장전도 하지 않았으며, 항상 반말이 아닌 신사적인 언어로 “전 지금 은행을 털러왔어요. 제 가방에 현금을 채워주세요”라고 웃으며 범죄를 저질렀다는 터커의 삶처럼, 그도 배우로서 80대까지 그렇게 연기해왔음을 굵은 주름살의 특유의 미소로 방증해 보였다. 


실제 그가 1979년 <The Eletric Horseman>에서 신혼부부로 연기했던 아내역의 제인 폰다와 다시 함께 2017년 넥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에서 보여준 모습 또한 노후세대의 아픔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전했다. 남편을 보내고 아들마저 다른 도시로 결혼시킨 노년의 제인 폰다가 인근에 사는 혼자 된 로버트 레드퍼드의 거실 문을 두드리며 어렵게 마음의 말로 부탁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말을 잃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인데 모두가 하기 어려워하는 현실을 영화는 솔직하게 보여준다. 


잭 니컬슨과 다이앤 키튼이 열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또한 노년의 멜로드라마가 가능한 이유와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세대가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영화가 이제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2년 <죽어도 좋아>,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국내에서도 노년의 사랑을 표현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아직 다양한 시선과 소재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 


20대에 일본 최고의 전자회사에 취업한 시마 고사쿠를 주인공으로 30년 이상 연재해온 <시마과장>은 <사원시마>부터 <사장시마>까지 만화의 제목마저 승진시키며 샐러리맨의 일생을 보여준 역작이다. 작가 히로카네 겐시는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와 집단 명분의 뒷모습을 블랙유머로 표현하며 일본 직장인의 환호를 평생 받았다. 만화주인공 시마는 여전히 일본맥주 광고모델이다. 출판사는 시마가 이사회로부터 대표이사에 임명되는 부분이 연재될 때는 실제로 가상의 취임식을 이벤트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가 연재한 또 하나의 성인만화가 <황혼유성군>이다. 중장년층으로부터 노년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고독과 이별 등을 담고 있는 옴니버스식 작품인데, 매회 독자들을 공감시키는 마력이 있다.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이사직을 수행하다 본인도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임원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은퇴일정을 사정하며 미뤄야 하는 부끄러운 절실함, 70대 노교수의 지적 아우라에 호기심 너머 연민을 느끼는 20대 도서관 사서, 40대 보건소 의사에게 가슴 떨림을 느끼는 70대 여성환자, 암투병 중인 노년의 남성이 호스피스로 봉사하는 여인에게 전하는 진심 등 만화적 상상력은 리얼리티와 과장된 멜로의 한계를 오고가며 독자의 현실과 미래를 재단한다. 아주 먼 미래 같지만, 실제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독자들은 작품으로 확인하고 공감한다. 


굵고 깊게 팬 주름살을 보이며 맑게 미소 짓는 80대의 로버트 레드퍼드 얼굴은 20대 시절의 레드퍼드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 표정에서 여전히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의 청춘을 볼 수 있는 세대는 80대 레드퍼드의 연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콘텐츠에 지불할 시간과 자본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니어콘텐츠는 그래서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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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본만화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의 웹툰은 2018년 이제 일본만화 수입액(595만달러)보다 수출액(915만달러)이 역전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은 일본만화를 모른다. 한국웹툰 찾아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현지에서조차 한국웹툰이 유로시장의 선두를 질주한다. 네이버의 일본 현지 웹툰서비스 ‘라인망가’, 카카오의 일본웹툰 플랫폼 ‘픽코마’, NHN엔터테인먼트의 ‘코미코’ 등이 현재 일본애플 앱스토어 도서 분야 순위 5위 내에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으로 중국 내 애니메이션학과가 신설되었다. 현재 200여개 대학에서 연간 10만명 이상의 전공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제작부문 80%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2D애니메이션과 3D애니메이션의 하청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VFX 등의 영상특수효과를 비롯하여 직접 기획·제작하는 대형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인적자원의 증원이 웹툰작가의 확대라는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며 국내 웹툰시장에도 중국웹툰이 몰려들어오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네이버웹툰 등 1000여편의 중국웹툰과 웹소설이 실제 수익을 내고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중국웹툰 유통업체인 다온크리에이티브의 지분 66%를 100억원에 매입하여 중국 내 웹툰의 다양한 수입선과 수출경로를 확보했다.

 

네이버웹툰이 자회사로 ‘스튜디오 N’과 ‘LICO’를 설립하고 공격적인 생태계 내의 생태계(eco in eco)를 구축하며 제작라인업을 최근 공개했다. ‘스튜디오 N’은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제작할 네이버웹툰의 연재작 10편을 공식발표했다. 대개 네이버웹툰은 자사 플랫폼에 연재하는 웹툰원작의 영상화 판권을 관리하며 국내외에 판매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직접 기획, 투자, 제작에 참여하는 사내구조를 시도한다. 또한 ‘LICO’는 미국의 만화출판사 마블을 모델로 웹툰창작에 스튜디오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와 작화작가들을 연계시켜 장르와 스토리를 개발, 회사가 직접 관리하는 원작 저작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웹툰 내에 새로운 선순환 생태계가 전진 배치되고 있다.  

 

이제 콘텐츠 창작과 소비의 국가 간 경계는 없다. 또한 생태계 내의 요소별 공간과 연계구조의 잉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한 비즈니스 모델 경쟁과 정교한 저작권 관리 전략이 국내외 콘텐츠 생태계를 재배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9년부터는 스마트폰의 새로운 표준과 규격이 시도될 것이다. 폴더폰의 등장과 AI서비스의 진화가 뉴모럴을 규정할 것이다. 웹툰은 책에서 PC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디바이스 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수혜를 누린 콘텐츠산업이다. 이제 뉴모럴의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디바이스의 혁신은 웹툰의 소비유형과 경로를 어떻게 재부팅할 것인가? 우리는 진화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레이아웃을 선점하고 그 지도를 그려내야 한다. 자체전략으로 한국콘텐츠를 해외시장에 진출시킨다는 것은 결국 우리 또한 함께 세계콘텐츠를 호흡하고 소비하는 환경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콘텐츠산업을 혁신하고 견인하는 뉴모럴의 시스템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외환팀장으로 연기하는 김혜수는 대책회의를 하러 나서며 팀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정신차리자, 지금부터 우리가 시스템이야.”

 

콘텐츠를 기획, 생산, 제작, 소비, 투자하는 선순환의 생태계를 어떤 시스템에서 공유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시스템의 구조를 혁신하고, 누구나 신뢰하며 공평한 기회를 믿고 진입할 수 있는 시스템의 체계화, 한류는 이제 시스템이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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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는 ‘윌슨’이라는 곰인형이 매회 출연한다. 혼자 사는 출연자의 집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혼잣말을 들어주고,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리액션도 곧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윌슨의 눈에 있는 카메라는 윌슨의 시선으로 혼자 사는 출연자의 외로움과 무료함을 지켜봐준다. 윌슨은 그 시선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곰돌이 푸’를 주인공으로 하는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가 2018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집계되었다. 20~40대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55만부나 팔렸다.

 

올해 93세가 되는 ‘곰돌이 푸’는 본래 영국의 동화작가 A A 밀른의 <위니 더 푸(Winnie-the-Pooh)>의 주인공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흑곰 새끼 1마리를 20달러에 산 해리 콜번 중위가 자신의 고향 캐나다의 위니펙에서 따온 ‘위니’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대 마스코트로 키웠다고 한다. 이후 콜번은 부대가 이동하게 되자 안전상의 이유로 ‘위니’를 런던동물원에 맡겼다.

 

이 곰을 보러 동물원에 자주 왔던 소년이 작가 밀른의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었고, 휴일에 봤던 백조의 이름 ‘푸’를 따서 작품의 제목이 완성되었다는 탄생 비화가 전해진다. 린제이 매틱의 동화 <위니를 찾아서>에서 그 사실을 설명한다. 작가 밀른에 의하면 본래 ‘위니’였던 곰이 ‘곰돌이 푸’가 된 이유는 푸의 팔이 너무 뻣뻣해서 파리가 코에 앉았을 때 ‘푸’하며 불어 날려보냈기 때문이다. 동화작가의 동화같은 이유다.

 

위로받고 싶은 힘든 일상들이 캐릭터를 소환한다. 캐릭터가 혼자 살거나 혹은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듯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그런 캐릭터가 우리 주위에 많이 함께 산다. 인터넷으로 메일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며, 사진으로 일상을 공유해 우리는 모두 가깝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그렇게 가깝지 않은 일상의 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라도 그런 억울함과 어이없는 기분을 토로하며 위로받기를 원한다. 그때 말 없는 캐릭터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준다. 그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먹먹해진다.  

 

<왜 스누피는 마냥 즐거울까?>라는 에세이는 부제가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나를 위한 심리학’이다. ‘스누피’가 주인공인 만화 <피너츠>의 원작자 찰스 M 슐츠의 캐릭터들은 찰리브라운, 패티, 라이너스, 스누피와 함께 조금씩이라도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우리 모두 다 그래”라며 일상을 공유한다.

 

요즘 이러한 책들이 봇물처럼 서점가에 등장하고 있다. 일본 만화 캐릭터 ‘보노보노’가 들려주는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도 잔잔한 ASMR처럼 대사를 읊고, 올해 90세가 되는 ‘미키마우스’도 <미키마우스, 나 자신을 사랑해줘>라며 등을 토닥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 너만의 길을 그려봐>라며 ‘아직 세상에 참 서툰 우리에게’라는 부제로 공감을 보여준다.

 

캐릭터는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성인이 되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뒤돌아보며 늘 후회하는 중년의 삶을 캐릭터는 똑같은 표정으로 늘 다르게 위로한다. 이제 국가에서도 ‘위로부’ 장관을 임명해서 친근한 캐릭터 홍보대사들과 함께 근무시켜야 된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누군가가 제안하는 그런 날도 올 듯하다. 이제 국가에 힘든 국민에게 위로까지 해달라면 지나칠까? 실제 그 정도로 모두가 국가만 쳐다보고 사는 힘든 연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캐릭터들은 묵묵한 무표정으로 말을 건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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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번역된 일본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이름은 ‘강백호’였다. 1990년대 길거리농구를 유행시키며, 농구붐을 일으킨 전설적인 만화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 규칙과 함께 동료애와 스포츠정신을 자신은 익숙해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는 친절하게 이해시키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강백호라는 이름은 그렇게 당시 청소년들에게 10대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친구였고, 페어플레이와 사랑, 쉽게 만들어지지 않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우정을 가르쳐준 캐릭터였다.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소연이의 한마디에 농구를 시작하고, “난 천재니까”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도 제대로 골을 넣지도 못했던 초보선수 강백호, 그가 자신도 놀라는 점프력과 스피드로 버저비터의 슬램덩크를 해내며 역전승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독자들 모두 북산고 농구경기장에서 응원하는 관객이 되어버린다.

 

1960년대 <라이파이>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던 세대가 이제 그 시대를 훨씬 넘어 살고 있고, 1970년대 <우주소년 아톰>을 친구처럼 이해하던 세대가 로봇을 만들고 있는 지금, 만화 속 캐릭터는 늘 새로운 시간을 만드는 무한한 상상의 시작을 선물해 주었다. 1980년대 <달려라 하니>는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로 고도성장하던 한국에 스포츠로 이겨내는 휴머니즘을 보여주었고,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오혜성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뛰어넘는 상남자의 한없는 사랑을 한국판으로 재현했다. 만화 속 캐릭터는 당시의 삶에 기반한 현실을 놓지 않으면서도 살아가야 할 방향의 당위성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무한궤도로 선사했다.

 

온라인게임을 만들어낸 한국 게임산업의 창의력은 실제 게이머와 만나는 출발점에서 만화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는 넥슨에서, 신일숙 작가의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에서 MMORPG로 재탄생했고,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소비붐을 만들어낸다. 만화의 캐릭터가 게임의 서사를 선도하고, 익숙지 않던 게이머들의 호기심을 캐릭터 스토리의 친근함으로 다가서게 한 것이다.

 

미국 대공황 시절 높은 실업률과 무법천지의 갱스터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슈퍼 히어로를 찾았고, 히틀러와 소련을 무찌르는 무적의 아메리칸드림을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로 화답한 것이 미국 만화계의 캐릭터다. 캐릭터는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반전시키는 긍정의 철학까지 제안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는 무언의 공감대로 통하는 몇 가지 공식이 있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의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면 주식시세가 좋아진단다. 킬러 콘텐츠의 또 다른 시작이 연관 산업의 부흥을 촉발시키는 전례의 기록들을 들썩이며 투자 의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가능성을 만든다. 가상의 이야기들이 실제처럼 재현되고, 그 상황 속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 극복과 성공은 과정으로 이해되지 않고,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로 청소년기 마음속 문신으로 기억된다. 캐릭터의 생명력은 기억의 경제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키덜트’라는 새로운 소비집단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프로야구 KT 구단의 강백호 선수는 2018년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괴물 고졸 신인’에서 진짜 한국 프로야구의 신인왕이 되었다. 올 시즌 KBO리그를 취재한 기자단 투표에서 555점 만점에 514점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서울고 시절 투수 겸 포수로 뛰었던 강백호는 이제 홈런 잘 치는 괴물같은 타자로 한국야구를 다시 살리고 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야구만화가 대세였던 일본 스포츠만화계를 농구로 살려냈듯이, 프로야구 선수 강백호는 아시안게임 이후 침체기에 빠진 한국야구계를 부활시키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가 될 것으로 믿는다. 강백호는 그렇게 가능성을 전설로 만든 천재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2019년에도 그를 응원하는 마음은 30년 전 만화책에서 거친 호흡과 땀 냄새를 느끼던 신기한 기억의 소환이다. 그런 캐릭터들의 부활과 투지를 기다린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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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는 테마파크 형식의 ‘유니버설스튜디오’는 기존 실외에 공개된 디즈니랜드와 달리 시설 대부분이 마치 할리우드 촬영장처럼, 거대한 상자처럼 생긴 건물 내부에 숨겨져 있다. 영화 촬영 세트를 그대로 활용하여 영화의 한 장면에 관객이 배우처럼 주요 스토리텔링을 체험하게 테마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심슨가족>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슨관’에는 놀이기구와 유사한 기구에 아이맥스 화면을 느끼며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되어 있다. 실제 롤러코스터를 촬영한 가상현실 화면은 대개 스릴과 속도감을 통해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연출하는 데 비해, 심슨가족이 타는 롤러코스터는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동작을 재현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극심한 원심력에 허공으로 몸이 튕겨 나가고, 주위 건물 사이를 관통해서 날아 다른 편에 있는 롤러코스터에 안착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물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솟는 등 관객의 몸이 구현될 수 있는 한계상황을 초월과 왜곡으로 느끼게 한다. 가상현실에서는 실제 영상보다 애니메이션이 구현해 낼 수 있는 환상적 느낌이 더 과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험이다. 결국 가상현실은 실제 경험을 재현하는 것보다 더 극한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전달되어야 공감도가 높아진다. 그런 까닭에 인간의 본능적 한계가 빨리 전달되어 장시간 보게 되면 개인에 따라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제작되고 있는 가상현실 콘텐츠는 ‘HMD(Head Mounted Display)’라는 영상구현장치를 머리에 쓰고 감상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무게감과 화장과 땀이 묻어나는 등의 불편함이 실재한다. 영상기술과 HMD의 혁신이 계속되면 가상현실을 지금보다 더 편하게, 선명한 화질로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가상현실이 주는 신기함은 첫 경험의 놀람으로 그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재사용률과 재방문율, 콘텐츠에 중독되는 형태가 여전히 성인용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에는 하숙집 주인 아저씨가 어느 사업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한동안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시티폰(city-phone)’이라는 통신기기 프로젝트였다. 1990년대 일명 ‘삐삐’로 불리던 ‘페이저(pager)’라는 전화번호 무선호출기는 유럽과 미국에서의 주사용층인 의사와 비즈니스맨 중심의 소비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에서는 10대 청소년들과 젊은층의 통신문화로 특화된다. 그러한 문화는 다양하게 페이저를 소비하는 새로운 행태와 연계되어 공중전화 부스마다 호출 전화번호로 연락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등장한 비즈니스 모델이 발신 전용 휴대전화인 ‘시티폰’이었다. 시티폰은 시티폰2까지 진화하며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여론화했는데, 직후 등장한 PCS폰에 의해 순식간에 잊힌 기술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혁신기술이라며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 밀려 사장되는 기술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첨예한 기술 진화의 경쟁 결과이다. 한동안 유명 배우들이 TV 광고에서 안경 쓰고 보던 입체TV가 ‘4K’ ‘8K UHD’ 등 초고화질 TV에 묻혀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진 현실도 그러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는 실제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융합현실(MR) 콘텐츠가 체험형 게임으로 제작되고, 웹툰·영화 등 차별화된 콘텐츠로 특화되어 특정 플랫폼으로 유통된다. 그러나 여전히 얼리어댑터와 마니아 중심의 콘텐츠라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화질 영상 구현과 더 가볍고 간편한 HMD, 맞춤형 스토리텔링 개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형 실내 테마파크 등이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되고 있다. 최근에는 집객용 콘텐츠 플랫폼 형태인 ‘LBVR(Local Based VR)’의 사업 모형이 플랫폼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는데 쇼핑몰과 백화점 등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기술혁신의 방향이 가상현실을 관통해 진화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영상기술의 패러다임이 혁신의 차원을 흔들어 차세대 지능형 콘텐츠와 결합할 것인지 주목된다. 아무리 놀랍고 흥미로운 영상기술이라도 ‘이야기’를 놓치면 소비자가 다시 찾지 않는다는 콘텐츠의 진리를 기억해야 할 때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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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가까운 거리의 셔틀버스를 모델로 시범운영이 시작되고, 해외에서도 자동차기업들마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원천기술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혼자서도 도로와 공간, 시간의 여러 정보를 스스로 분석해서 운행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자동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면 자동차보험의 형태도 달라질 것이고, 자율주행차를 대상으로 한 O2O서비스 또한 여러 가지 요금체계를 갖게 되어, 결국 비용에 따른 이동서비스의 차별화를 우리 모두 이해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런데 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했던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문화예술과 기술의 협업 프로젝트인 콘텐츠 임팩트의 과제 중 <자율주행차 × 엔터테인먼트 ‘스스로 가는 자동차와 당신의 시간’>인데, 이 과제는 ‘자율주행차에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크리에이터와 엔지니어가 협업하는 융합스타트업 지원 프로젝트이다. 이미 독일자동차그룹들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투자하고 있는데, 그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도심교통환경은 통신연결(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d & Service), 전기(Electric) 등 4개 요소로 요약하며 앞 글자를 따서 케이스(CASE)라고 명명한단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현재 AI스피커나 AI비서 등의 상품으로 만나는 소비자들은 그러한 서비스에 얼마나 다양한 원천기술들이 상존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수많은 특허기술들은 이미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의 연구에 의해 축적되어 왔고, 한국이 이러한 과정에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가 여러 분야에서 인지되고 있다. 국내 IT기업들이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등의 기술을 연구하고, 원천기술을 소유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스스로 특허를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다가올 차세대 플랫폼의 선도기업이 되려는 몸부림이다.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자동차기업들은 안전운전과 효율적인 운행을 위해 주행기술 중심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실제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된 이후, 그 공간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주체들이 어떠한 서비스를 추가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자율주행차는 움직이는 플랫폼이다.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인재양성팀에 의해 선정된 4개 스타트업 기업의 연구기술은 다채롭다. 빛의 편광현상을 이용해 사물의 3차원적 위치와 방향을 정확히 측정해내는 편광센싱기술, 비언어적 소리정보를 분석하여 특정음악의 장르·분위기·화자의 성별·감정 등의 데이터를 맞춤형으로 재생하는 기술, 영상 및 음성 정보를 종합해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파악하는 안면분석 인공지능 감정인식기술, 원격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가상터치’기술 등이 선정된 기업들의 원천기술이다.

 

곧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엔 차량 내부에서 탑승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컨디션과 감정, 날씨 등과 연동된 개인맞춤형 콘텐츠들이 상영되고, 직접 차량에 설치된 조이스틱과 슈팅건을 이용한 게임을 하거나, 차량 동선을 이용한 GPS에 기반한 증강현실 네트워크게임도 가능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기술을 ‘인하우스 플러그인(기업자체 소유기술)’으로 내장한 자동차기업은 판매마케팅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특정 브랜드의 자율주행차를 구입해야만 운행 중 즐길 수 있는 킬링타임용 게임이나 영화, 웹툰 등이 다수 축적되어 있다면 구매자들은 그러한 차량을 먼저 찾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플랫폼으로서의 자율주행차는 이동체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 소비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며, 그 공간과 이동시간에 맞는 콘텐츠의 스토리텔링과 연출방식 또한 맞춤형으로 개발될 것이다. 국내 자동차기업들의 차별화된 연구투자와 콘텐츠에 대한 관심 및 분발을 기대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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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가 ‘마블코믹스’라는 만화출판사를 인수·합병하려 할 때 과도한 인수금액이 주주들 사이에서 문제였다. 월트디즈니가 주주들을 설득한 가장 중요한 논리는 캐릭터의 가치였다. 500개가 넘는 슈퍼히어로의 가치를 현재의 매출 가능성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인지도와 팬덤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총금액을 투자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인수금액은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월트디즈니 네트워크로 진입한 마블코믹스는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의 독립된 캐릭터를 소개하고, ‘어벤져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의 연합군까지 꾸준히 학습시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그들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결국 월트디즈니는 시리즈가 개봉될 때마다 찾아보게 하는 충성스러운 관객 군단을 만들어냈으며, 인수·합병의 투자금액을 상회하는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도 슈퍼히어로가 있는가? 국내 콘텐츠로 가장 많이 제작된 ‘홍길동’을 들 수 있다. 실사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그리고 여성 홍길동과 주변 캐릭터의 스핀오프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임꺽정’ ‘일지매’ ‘전우치’ 등 히어로물도 흥행하긴 했으나 그동안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시대의 아픔과 계급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도둑들’이라는 한계에서 머물렀다. 확장되는 세계관과 지속적인 캐릭터들을 전략화시킬 범용성이 부족했다. 최근 하일권 작가의 웹툰 <스퍼맨>은 비약과 블랙유머를 곁들인 성인담론으로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제안하기도 했다. 강풀 작가의 웹툰 <브릿지>는 강동구 주변에 살고 있다는 여러 초능력자들(강풀 작품에 등장했던 주요 캐릭터들)을 하나의 이야기틀에 모아내 한국형 히어로의 세계관을 실험하기도 했다.

 

과거 많은 출판사가 기획 출판했던 위인전들은 세계사에서 권력, 전쟁, 정치를 이끌었던 정치인, 군인, 과학자 등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도 나폴레옹, 헬렌 켈러, 링컨, 처칠 등의 위인전을 접하며, 위인전의 영웅처럼 되려면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하는 막연한 긴장을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갖고 산다. 그러나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웅은 아이돌 그룹, 프로축구 선수, 웹툰작가다. 영웅의 의미가 팬덤과 혼재된다. 영웅의 세계관을 삶의 가치와 방향으로 갖고 살아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영웅 찾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달 초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는 제주의 화가 변시지(1926~2013) 특별전이 열렸다. 그는 일제강점기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오사카로 갔고, 오사카 미술학교를 거쳐 일본인 스승에게 그림을 배워 21살에 이미 일본 최고 화가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고, 50대 이후 고향 제주에서 그가 보고 느낀 삶과 자연을 그려냈다.

 

“제주의 매력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깊은 원시에의 향수이다. 바다의 약동하는 생명력은 나의 창작 활동의 근원이며 자연의 생이야말로 무한하고 영원한 우리의 꿈이다.” 화가 변시지의 그림은 서귀포 기당미술관을 비롯하여 제주 곳곳에 숨쉬고 있다. 제주의 들판, 파도와 바람, 폭풍, 그리고 그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말, 새를 그렸다. 미술관과 관공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제주의 삶과 자연에 그의 그림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제주를 그려낸 화가 변시지, 그의 그림 속에는 제주의 정신과 과거, 현재, 미래가 여전하다. 이렇듯 우리의 문화영웅이 남긴 역사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낸다. 그런 시간들을 다음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

 

BTS의 성숙한 발랄, 손흥민의 밝은 열정, 하일권과 강풀의 멈추지 않는 실험과 도전도 결국 살아 숨쉬는 문화영웅의 역사가 만든 우리의 문화 DNA에서 시작된 것이다. 곧 변시지의 일대기가 만화로 나와 다음 세대와 만날 것이다. 이러한 문화영웅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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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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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설립 초기에 만화를 학문으로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발상에 모든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질 때, 이를 맞춤형 도제식으로 바꾼 이두호, 이현세 교수의 실전강의가 지금의 웹툰작가를 양성해냈다. 그렇게 젊은 작가들과 호흡을 함께해온 이현세 교수가 지난주부터 유화공부를 시작했다.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와서 지난 학기 우리 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새내기 강사에게 먼저 다가가 유화그리기 개인지도를 부탁하면서 유럽의 유화를 모사하는 첫 단계 스터디를 시작했다. 은퇴를 앞둔 원로만화가는 올해 초까지도 포털사이트 웹툰 앱에 여전히 매주 2차례 연재를 하고, 학습만화 시리즈를 기획 제작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는데, 이제는 연재를 마감하자마자 유화를 시작한다. 새로운 표현과 재료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또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다.

 

몇 주 전 서울대학교 공대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연구하는 은퇴를 앞둔 저명한 교수님이 진지하게 부탁을 해왔다.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거다. 자신이 공부하고 대중들에게 강의하며 전달하고 싶었던 다양한 BT의 지식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도록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적 표현을 직접 해보겠다며, 평생 그림 한번 시도하지 못했던 본인의 삶에 새로운 도전이라고 했다. 

 

작금의 시니어들은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한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의 일들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창의적 발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을 돌아본다.

 

갑자기 면담을 요청한 우리 학과 1학년 새내기 여학생이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는다. 자신이 정말 배우고 싶었던 학과에 입학해서 제대로 만화를 공부하려고 하는데 1학년 과목들이 기대하던 수준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학년과 3학년 수업을 청강하기도 하고, 외부 전문기관들의 특강도 챙겨 듣는다고 한다. 동기들과 이러한 고민을 나누는데 답답하단다. 열심히 뭔가를 해보려는 열정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제 대학공부를 시작한 새내기가 자신의 실습과목 강사와 교수들의 강의방식까지 조목조목 비판하며 강의의 실효성과 평가까지도 재단하는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를 두고 순간 멈칫한 나는 30년 전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때를 회상했다. 당시 나도 그랬다. 교양과목 위주의 1학년 수업이 맘에 들지 않았고, 당장 영화촬영을 하고 드라마를 제작해야 하는 실무수업에 뛰어들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답답해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고, 프랑스문화원에서 하는 영화특강을 듣고, 컴퓨터학원에서 코딩언어를 혼자 공부하고, 독일문화원의 독일어코스를 등록하며, 연극동아리에서 연기에 뛰어들던 그런 열정이 있었다. 지나 보니 배움은 때가 있었고, 열정은 그 과정의 갈증이었다.

 

넷플릭스에는 드라마와 영화 외에도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있다.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는 의제로 떠오르는 문화적 개념과 진화하는 인류사의 새로운 모습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그중 반갑게 찾아본 주제가 <케이팝의 모든 것>이었다. 비틀스를 능가하는 BTS의 세계적 팬덤현상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혁신으로부터 찾아내며, 체계화된 한국 대형 기획사의 모험적인 시행착오가 오늘의 케이팝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해석한다. 케이팝은 한국이 지니고 있는 역동성과 목표를 향한 강한 추진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의 문화적 융합이란다.

 

우리에게는 주니어와 시니어 모두 타고난 열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문화는 늘 호기심과 도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지난한 여름을 함께 이기며 동지애가 생겨버린 사람들과 다시 새로운 일을 열정으로 만들어야 할 가을이다. 내 안에 열정이 있는데도 모른 체하면 안 되는 그런 계절이 시작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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