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에로스의 짝패로 타나토스를 꼽았다. 우리 무의식에는 삶에 대한 충동뿐만 아니라 파괴 본능도 있다는 말이다.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의 대담을 기록한 <사쿠라 진다>를 보면 오늘의 일본이 타나토스적 충동에 빠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우치다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었다. 일본도 지방이 황폐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뜻있는 이들이 지역 활성화 사업을 펼치려 하면, 일종의 토호세력 가운데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대체로 3대째 내려오는 여관이나 요정의 주인이다.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상식 밖의 반응을 보인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이해 가는 면이 있다. 이들은 물려받은 업을 지켜야 한다는 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능력이 없지만 스스로 버릴 수는 없으니, 누군가 무너뜨려주길 바라는 숨은 열망이 있었던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늘의 일본 정치인은 3대조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체제를 물려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스템이 낡고 망가졌다. 문제는 다시 세우고 고치기엔 실력도 열정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이 체제가 해체되길 바란다. 마치 지역 활성화 사업을 반대한 여관 주인처럼 말이다. 일본을 혐오하는 외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을 터다. 하지만 일본의 지식인이 내뱉은 말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톺아보아야 한다. 특히 왜 일본의 지배층이 이런 극단의 길을 가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우치다는 말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참혹한 사태에 이르면 누구의 책임이니 누구의 잘못이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이 잿더미로 돌아간 다음에 망연자실하며 제행무상을 느끼는, 그러니까 파국원망이 일본의 전통 무상관(無常觀)에 뿌리내린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이쯤에 이르면 오늘 일본의 병증이 어느 정도 악화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소장 사회학자 시라이는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을 이른바 영속패전론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이 개념은 일본 지배층이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부인하고 미국에 비굴하게 종속한 점을 가리킨다. 일본 지배층은 패배라는 말보다 종전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전쟁을 일으켰던 집단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어서 그렇다. 역사의 단죄를 받았어야 할 집단이 지배층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냉전체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미국의 처지에서 소련의 입지를 강화해줄 게 뻔한 좌파에게 권력을 내줄 리 없었다. 비굴한 대미 굴종은 여기서 비롯했다.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은 미국의 허락 아래 권력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던 터라” 미국에 감히 맞설 수 없으니 “일본은 미국에 영원히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일본 지배층이 패전을 숨기는 또 다른 방식은 아시아에서 패배한 사실을 감추는 것이었다. 일본이 침략했던 중국과 식민지배했던 한반도에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 경제가 재기에 성공하면서 주변국이 타협책을 모색한 것도 이런 경향을 강화했다.


일본이 위기에 놓인 것은 바로 이 구도가 끝장나서다. 먼저 냉전이 종식되었고, 한국과 중국이 눈부실 정도로 성장했다. 이른바 영속패전 체제가 무너졌는데, 새로운 체제에 걸맞은 방책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아베의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퇴행적 정책이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이 정책을 일러 우치다는 일본의 싱가포르화, 북한화라고 지적한다. 싱가포르의 국시는 경제성장이다. 그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는 오로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성장에 도움이 안되면 민주주의도 필요없다는 식이다. 더불어 북한처럼 핵무장하고 징병제 해서 무서운 국가로 동아시아에서 군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 대목에서 다시 우치다는 말한다. “자력으로는 오늘날의 미·일 질서를 바꾸거나 수정 보완할 힘도 없고, 비전도 없기 때문에 전부 엉망진창이 돼버리는 파국이 도래하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이런 관점에서 <고질라> 시리즈는 재해석된다. 사토 겐지는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는 분열했고 파괴를 간절히 바라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그 무의식을 형상화한 게 고질라라고 보았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의 상황은 고질라가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일본 본토를 습격한 격이었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우치다는 일본인의 죄책감과 자기처벌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 고질라라고 해석했다. 고질라가 일본을 습격한다는 내용은 근대 일본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억압한 것들의 귀환이라고 평가했다. 


두 논객의 날카롭고 거침없는 대담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베의 재집권 이후 동북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이유를 알 수 있고, 최근의 무역보복이 뜻하는 바도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이익 때문에 역사청산이 이뤄지지 않았고, 영속패전 체제 이후를 준비 못해 위기에 빠졌다는 점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일제 잔재 청산을 못했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아직은 일본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일본 못지않게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 확실하다. 


또 있다. 우치다는 극우세력이 극성을 떠는 나라의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는 전쟁기간에 나치에 협력했기에 패전국가라고 주장한다. 레지스탕스와 드골의 활약을 방패 삼아 비시정권의 과오를 은폐했을 뿐이다. 그 결과 자유·평등·박애의 나라에 극우집단이 나타나 세를 얻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나 극우 이데올로기가 생겨난 이유는 말하기 어렵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억압한 데에 있다는 일반논리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역사 청산의 기한이 끝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되물어볼 일이다. 왜 우리 사회에 다시 극우집단이 준동하는가, 라고.


<이권우 |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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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지성이 공유해야 할 ‘전환시대의 논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리영희가 쓴 그 책을 출판사에서 소개한 글을 찾아보았다. 그 소개글에 나온 특정한 단어를 괄호에 넣고 읽으면 두 책의 기본정신이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  “(  )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고, (  )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  ) 허위의식을 타파하는 현실인식, 편협하고 왜곡된 (  ) 거부하는 넓은 세계적 관점, 냉철한 과학적 정신을 계몽하고 민주적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이론적 역할을 수행했다.” 김종철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지구 온난화나 기후변화 같은 환경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그가 보기에 근대 자본주의 문명은 “자연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가공할 생태위기를 초래”한다. 이 지점에서 근대의 발전이 인류사에 불러온 놀라운 성장을 부정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서구자본주의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의해서만 문명생활도 가능하고, 더 높은 단계로의 인간해방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이런 관점을 ‘근대적 미신’이라 말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72년 로마클럽에서 출간한 <성장의 한계>는 제목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제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한 탓이다. 두 번째는 “근원적으로 타자-동시대의 사회적 약자와 자연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책임한 태도”에 바탕을 둔 비윤리성 탓이다. 타자를 변경으로 바꾸어 읽어도 된다. 근대 자본주의 문명은 늘 변경을 만들어왔다. 그 변경을 지배하고 수탈한 덕으로 발전하고 성장하고 팽창했다. 하나 변경은 이제 없다. 독립하여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고 있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은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모순”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40여년 전 리영희는 분단상황과 군사독재의 탄압으로 이성의 눈이 가려지고, 그 결과 사로잡혔던 이데올로기적 편협성을 부숴버리라고 했다. 베트남 전쟁의 실상,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통찰, 일본의 재군사화에 대한 경고,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그 전환의 길을 김종철이 걷는다. 근대, 자본주의, 산업화, 성장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치닫는 오늘, 우리는 어떤 전환적 사고를 해야 여섯 번째 대멸종을 피할 수 있는가, 라고.


그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으로 소농을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를 내세운다. 석유에 기초한 문명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닥쳐올 재앙은 식량난이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이 40%인데, 석유가 없으면 1%로 곤두박질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5% 수준이니 석유 수급에 이상이 생길 적에 겪을 고초를 짐작할 수 있다. 농사를 살려야 하는 이유다. 이런 사회는 궁극에는 “공동체의 호혜적 관계망을 토대로 다양한 상호부조의 경제”로 나아가게 된다. 그는 이 사회가 가난하리라 짐작하면서 공빈(共貧)의 철학을 내세운다. “가난을 견딜 만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가난을 삶의 축복이 되게 하는 사회적 토대, 즉 공생공락의 네트워크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본소득세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포도원 주인이 일꾼에게 품삯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 점심 먹고 나서 일한 사람, 해지기 직전에 와서 일한 사람에게 주인은 똑같이 1데나리온을 주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기본소득의 예고였다고 풀이한다.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이다.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정기적으로 주는 ‘기본소득’을 그는 ‘시민배당’이라고 고쳐 말한다. 없는 이를 도와주는 복지의 개념이 아니라, 기업이 주주에게 배당하듯 한 공동체의 이익을 시민에게 나누는 뜻을 돋을새김하기 위해서다. 시민배당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교육지옥에서 빠져나오고, 관료적 정부형태에서 벗어나게 할 터다.


세 번째는 민주주의다. 인류의 미래가치에 동의하는 정치는 자본의 횡포를 막고 생태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낸다. 라파엘 코레아가 에콰도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약속한 대로 외채를 청산하고, 은행세를 신설해 기본소득을 실시했고 야수니국립공원에서 발견한 새 유전의 개발을 잠정포기했다. 정치적 결단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지, 더 많은 경제성장은 아니다”.


성장과 진보의 세계관은 프로메테우스를 섬긴다. 그의 이름이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데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어서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상식을 깨고 에피메테우스를 더 기려야 한다고 말했단다. 그의 이름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던가. 인류가 걸어온 성장의 삶을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문명적 성찰의 상징으로 에피메테우스가 적격이라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에피메테우스의 아내인 판도라가 금기를 어기고 항아리 뚜껑을 열자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여기까지만 기억한다.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는 바람에 항아리 맨 밑바닥에 놓여 있던 그 무엇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희망이었다.


다시 판도라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야 한다. 진보와 성장에 눈이 멀어 오랫동안 잊었던 그 희망을 인간세계에 퍼트려야 한다. 김종철의 사유를 20세기의 리영희를 읽는 심정으로 ‘열독’해야 할 이유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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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건축가 반 시게루는 불러야 비로소 가지 않았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못 본 척할 수 없어 먼저 달려갔다. 1994년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이 일으킨 민족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했다. 한여름, 텔레비전 뉴스에 비참한 난민의 모습이 나왔다. 그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다 담요를 두른 난민이 떠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았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우기가 닥쳐 온도가 떨어져 벌어진 일이었다. 여름에는 콜레라로 시달리더니 이제는 폐렴이 돌았단다. 난민용 쉼터가 플라스틱 시트라 비바람을 막지 못한다는 것 을 알고 그는 단열 효과가 있는 종이 파이프 쉼터를 제안했다. 도쿄 소재 유엔난민기구 사무소에 직접 찾아가 한 일인데, 제네바에 있는 본부에 연락해 보라 했다. 편지에다 자료를 덧붙여 보냈는데 답신이 없자 아예 담당자를 찾아 제네바로 갔다.


가서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유엔난민기구가 플라스틱 시트만 나눠준 탓에 나무를 함부로 베어 시트를 보강하는 틀을 마련했다. 당시 난민이 200만명이었으니, 아주 적게 잡아도 200만그루가 한꺼번에 잘려나간 셈이다. 과거에 알루미늄 파이프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돈이 된다고 내다 팔고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PVC파이프는 나중에 공해를 일으키는지라 참고 대상이 아니었다. 반은 이미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건축 공부를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다음, 전시기획 일을 맡았다. 마침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의 가구전을 기획하면서 이모저모 궁리했다. 반은 그의 작품세계를 살리려면 나무를 많이 써야 하는데, 예산 문제도 있고 전시회가 끝나고 나무를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을. 나라 전체에 돈이 넘쳐나 소비와 발전, 그리고 건설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혔을 적에 그는 ‘재생지’ ‘재활용’ ‘친환경’이라는 열쇳말을 두고 고민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전대미문의 커다란 문제, 즉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궁즉통이라, 마침내 새로운 소재를 발견했다. 재생지로 만든 종이 튜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두루마리 휴지의 심을 떠올리면 된다. 그걸로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첨단기술로 나무보다 더 강한 종이 튜브를 만들 수 있고, 강도가 약한 재료로 외려 튼튼한 구조물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종이 튜브를 다닥다닥 붙여 벽면을 만들거나 고대 그리스풍의 건물처럼 줄기둥을 잔뜩 세우면 된다. 큰 지진이 나면 콘크리트건물은 무너지지만 목조건물은 멀쩡한 일이 잦았다. 건물이 가벼우면 지진에 잘 견디는 면이 있다. 종이집이 여러모로 맞춤하다는 말이다. 1995년 고베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다른 무엇보다 건축물에 깔려 목숨을 잃은 일이 아주 많았다. 직업과 관계없이 숱한 사람이 자원봉사하러 갔는데, 정작 건축가는 없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반은 모른 척할 수 없어 베트남 출신 난민이 모인 다카토리성당으로 갔다. 성당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지역 재건을 위한 자원봉사자의 활동기지 역할을 도맡았다. 신부님에게 예의 종이로 가설건물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신부님은 성당보다 지역민이 더 중요하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재건사업을 더 잘하려면 성당이 구심점이 돼야 했다. 좋은 일 하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커뮤니티 홀인 종이성당을 지었다. 신도나 지역민이나 이 건물을 아낀지라 성당을 재건축하더라도 헐지 말자 했는데, 1999년 대만 푸리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같은 용도로 쓰고 싶다며 보내달라 했다. ‘과부 설움은 동무 과부가 안다’고 기꺼이 보내주었다. 본디 조립용인지라 해체해 배편으로 대만에 보냈고 현지에서 재조립해 커뮤니티센터 겸 콘서트홀로 쓰였다.


반은 종이성당을 지으며 베트남 출신 난민도 도왔다. 공원에 천막을 설치해 버티고 있는데,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퇴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싸고 쉽게 조립하고 단열도 되고 외관도 좋은 가설주택인 종이 로그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맥주상자를 바닥으로 삼고 종이 튜브로 벽면을 세우고 지붕에 천막을 덧씌웠다. 선진국에는 가설주택으로, 개발도상국에는 주택으로 적합한 본보기가 완성된 셈이다. 그의 건축철학이 꽃피운 것은 독일 하노버 엑스포 일본관이었다. 박람회가 끝난 후 파빌리온 해체 과정에서 산업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을 설계이념으로 삼았다. 기초는 강철 프레임과 비계용 판자로 구성한 상자에 모래를 채워 넣는 것으로 했다. 해체한 다음에 재사용하기 위해서다. 종이 튜브로 돔의 골격을 세웠으니, 종이건축의 새 장을 열었다. 


남들은 그야말로 기념비적 건축물 짓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이 건축가는 도대체 왜 인도주의적이며 환경친화적 건축에 매달릴까 나는 궁금했다. 그는 스스로 물었단다. 우리 건축가는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그러고는 “세계 곳곳에서 민족분쟁, 지역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노숙인 문제, 빈발하는 재난 피해자 등 소수 계층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 바, “앞으로 건축가는 어떻게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서 일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름하여 불인인지심의 건축학이라 할 만하다.


내가 사는 동네 근방에 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이 투기하는 크고 넓은 아파트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임대주택이나 청년을 위한 주거시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하리라 여겼다. 착각이었다. 벌써 집값 내려갔다며 집단시위를 했다. 보금자리를 오직 환금가치로만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지 되새김질해 보려면 반 시게루의 <행동하는 종이 건축>을 읽어볼 일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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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을까? 화학을 사랑했던 한 청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거기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주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제, 운이 다한지도 모른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남았고, 수용소 생활에 버금가는 고난의 행군을 겪고나서야 귀향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증언해야 한다는 열망이 죽음의 망토를 거둬냈다. 마침내 썼다, 그 짐승의 시대를. 시적 영감으로 가득한 자서전(<주기율표>)도 쓰고, 가혹한 고통을 담담하게 기록한 증언집(<이것이 인간인가> <휴전>)도 펴냈고, 시집(<살아남은 자의 아픔>)도 소설(<지금이 아니면 언제?>)도 썼다. 그런데 그에게 남은 말이 있을까?


프리모 레비와 조반니 테시오가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집어들며 떠오른 단상이다. 어쩌면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괴롭지 않았을까 싶었다. 더는 나올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심상찮은 점이 있었다. 마지막 인터뷰라는 부제가 달려서다. 1987년 1월12일 첫 대담을 하고 1월26일과 2월8일에 대담을 이어갔다. 레비가 수술을 받으면서 대담은 중단되었다. 4월 들어 부활절을 앞두고 레비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다음주에 만날 약속을 잡기로 했으나, 그 약속은 끝내 잡을 수 없었다. 레비가 자살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떤 관점에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읽어야 할지 뚜렷해졌다. 그의 말을 읽으며 그가 끝내 말하지 않은 말을 읽어내기. 물론, 이 독법은 실패할 터다. 아직 누구도 레비가 자살한 이유를 속 시원히 말해준 사람은 없으니까. 만약 이 책에 그 답이 있다면 눈 밝은 이가 벌써 떠벌렸을 터다. 무모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레비는 이런 독법을 예측했을까? 대담집의 첫 구절이 “전투 계획은 벌써 다 세웠겠지요?”였다. 이런, 실패하겠군. 어찌 그를 능가할 전투력이 있겠는가.


레비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호기심이 강해,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기술학교를 나온지라 배경지식이 부족했지만 무차별적으로 책을 읽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쓴 책을 읽었는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독일어판 쇼펜하우어 책을 읽는 호기를 부렸다. 앎에만 탐닉한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길 줄도 알았다. 봉 비방(bon vivant)이라, 친구, 음식, 술을 좋아하는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레비에게서 엿볼 수 있는 진지한 독서인의 모습과 삶을 눙치는 유머가 다 아버지에게서 비롯한 듯싶다. 


레비는 반파시즘 유격활동을 하려다 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무척 저항심이 강하고 정의로울 듯싶지만,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레비는 자신의 집안을 일러 부르주아라 했다. 아버지는 젊을 적에 외국에 나가 있었는데, 특히 헝가리혁명을 목격하고는 혁명이나 개혁을 마뜩잖게 여겼다. 아버지는 체질적으로 자유주의자인지라 파시즘 또한 못마땅히 여겼지만, 결국에는 파시스트당에 입당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서였을 터다. 레비는 파시즘 교리에 어떤 매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생명력, 생의 약동 같은 원리가 열다섯 살 소년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책 곳곳에서 레비가 내성적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을 만난다. 그는 늦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제일 연약하고 제일 작았다. 유머감각을 발휘해 그 시절 성적은 만년 2등이지만 키 작은 거로는 1등 했노라 회고했다. 기를 못 펴던 소년 시절이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성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또래들의 성적 농담이 그를 괴롭혔다. 주로 “무모할 정도로 과격”한 등산으로 버텼다.


대담자는 레비의 이 부분을 짓궂게 물고 늘어진다. 레비는 사랑을 거부할 여성과 사귀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어렴풋하게 했을 뿐이며 극도로 순수했노라 토를 달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인종법이 발동하면서 더욱 위축되었던 셈이다. 그런 레비에게 큰 상처를 준 사건이 있었다. 한 여인을 사랑했다. 여성은 당황스러워했다. 그의 소극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다. 둘이 같이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되었고, 그녀는 끝내 죽었다. 죄책감이 그를 억눌렀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야, 여동생의 친구인 반다 마에스토로와 결혼하면서 비로소 행복과 성취감을 느꼈다. 영혼이 파괴되는 단련을 겪고나서야 성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의 결혼을 일러 “잔인하게 부정되었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확인하는 행위”라 했다.


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본디 글쓰기에 중압감이 없었다 한다. 초기에 펴낸 책은 쓰고 싶어서 “쉽게,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썼단다. “내 살과 피”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전업작가가 아니었던지라 공장에서 여덟 시간을 보내고 밤에 집에 와서 글을 썼다. 레비는 이런 자세에 자부심이 있었다. 두 가지 일을 오랫동안 적절히 해왔고, 그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은 아주 강한 존재였다고 말했다. 왜 아니겠는가. 분명 레비는 샤먼이 되어 공수하듯 글을 썼을 것이다. 그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억울한 영혼을 위한 조사를 쓰지 않고선 배겨낼 수 없었을 테니.


레비의 말을 보면서 어떤 말하지 않은 말을 읽고 싶었을까?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왜 그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그 징후를 눈치채고 싶었다. 마지막 인터뷰에도 실마리는 없었다. 단지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인지, 이때까지도 미처 말하지 못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때문에 죽었을까, 미래 때문에 저버렸을까? 자꾸 후자에 무게를 두게 된다. 탄압받고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오히려 악행을 저지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성싶다. 레비가 처음인 독자라면 이 책과 함께 <이것이 인간인가>의 부록으로 실린 ‘독자들에게 답한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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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은 사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무릇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남자는 오만하기 십상이다. 이 오만은 지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의 여성에게 편견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터 오르기보다 견원지간이 될 공산이 크다. 사랑의 방정식이 오묘한 것은, 어떤 계기로 우호적인 감정이 갈마들다보면 오만의 정도는 옅어지고 그만큼 편견도 줄어들어, 해(解)가 보인다는 점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제인 오스틴은 말하고 싶었다. 오만과 편견이 해소되는 과정이라고.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소란은 결국 오만과 편견이 충돌한 결과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양 설레발쳤다. 복잡미묘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 치고 사이비 아닌 바가 없는 법이다. 맹공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진화심리학은 인간세계에 퍼져 있는 불평등 구조를 옹호하는, 지극히 수구적인 학문으로 알려졌다. 무릇 오만과 편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데는 오만한 쪽에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더 많은 근거로 설득하고 더 열린 태도로 반론에 대답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중환은 국내에서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도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의 ‘모든’ 심리현상을 진화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를 곱게 바라볼 리 없다. 진화의 결과로서 몸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마음마저 “인류가 진화한 먼 과거의 환경에서 조상들이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기제들의 묶음”이라 여기기 난감할 터다. 전도사로서 전중환은 곤란을 겪었겠지만, 그동안의 논쟁을 바탕으로 진화심리학에 관한 백과사전 격인 &lt;진화한 마음&gt;이 나온 것은, 책 읽는 사람 처지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앞부분은 진화심리학을 위한 변론으로 가득하다. 진화심리학의 기원과 그 핵심 내용을 설명했다. 진화심리학의 ‘공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의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을 이은 ‘흔한 오해들’ 편이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어떤 행동이든 수렵-채집 시기에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 다 설명한 양 한다는 것. 이에 가설, 예측, 연구를 통한 검증을 거쳐 결과가 예측과 부합할 때만 진화적 가설로 받아들인다고 해명한다. 두 번째는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비난에 대한 변호. 심리기제는 특정한 환경에 걸맞은 적응적 행동의 설계라며 유전자 결정론이 아니라 선택론을 옹호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세 번째는 잘못된 행동을 자연적이라며 정당화했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 설명은 정당화가 아니라며 진화심리학의 인과적 설명이 오히려 이런 행동을 없애거나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마지막은 번식만이 인간의 유일한 목표인 듯 내세운다는 비판. 이에 대해서는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수준에는 ‘어떻게’에 해당하는 근접설명과 ‘왜’에 해당하는 궁극설명이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후자라고 말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확인해보자. 먼저, 혐오감은 왜 발생할까? 한 공중보건학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목록과 병원체를 옮기는 요인이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콧물은 결핵, 인플루엔자, 홍역, 폐렴을 옮긴다. 쥐는 유행성 출혈열이나 라사열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옮긴다. 고름이나 딱지에는 우리 몸을 해칠 병원체가 숨어 있다. “혐오가 병원체 감염을 예방하는 심리적 적응”이라 할 만한 이유다. 이 관점에 서면 자기집단 중심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된다. &lt;총, 균, 쇠&gt;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 잉카제국의 전사는 스페인의 총보다 병균 때문에 패배했다. 총알보다 전염병이 더 빠른 법이다, 외부인의 병원체는 내가 속한 집단에게는 치명타를 입힌다. 그러니, 혐오 정서가 발동해 외부인을 기피하게끔 진화했을 터다. 여기서 논쟁이 비롯된다. 진화심리학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혐오를 옹호하는 것이냐고. 전중환은 아니라고 말한다. “현상을 설명할 뿐,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잊지 말자. 사려 깊은 이성적 추론 능력도 진화된 인간 본성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이 말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밝혀낸다. 인간 아기는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으로 나온다. 여성의 산도는 좁아지고 인간의 두뇌는 커진 적응적 결과다. 뭇 인간은 다 조산아인 셈이다. 가족의 사랑과 배려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양육되어야 훗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육아에 품이 많이 드는지라 대행어미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엄마의 아기, 아빠의 아마도(mother’s baby, father’s maybe)”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른 누구보다 외할머니가 손주 보는 데 시간과 품을 기꺼이 투자했다. 이 사실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10대 미혼모의 아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자주 만났을 적에 엄마와 더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른 연구에서는 숙련된 간호사가 첫 아기를 낳은 엄마의 집을 한두 달에 한 번 방문해서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밝혔다. 금전적 혜택보다 정서적 지원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성싶다.


전중환은 책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진화된 본성을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어떤 본성은 강화하고 어떤 본성은 억제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것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주목했더라면 소모적인 논쟁은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이 해소돼 사랑에 이르면 오만은 자긍심이 된다고 했다. 이번 책을 기점으로 진화심리학이 과학적 사유의 자긍심이 되길 바란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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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상상되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민족이라는 말에 양가감정이 들었다.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은 해방의 개념이었다. 이 한마디에 한반도의 청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투쟁의 대열에 나섰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에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무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민족의 적을 내세우면 하나로 뭉치기에는 좋지만, 그 한 뭉치 안에 그어진 균열과 갈등은 보지 못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한참 고민할 적에 읽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는 그야말로 눈을 가린 비늘을 벗겨주는 지적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책을 읽으며 혀를 내두르는 것은, 책과 신문으로 대표되는 인쇄자본주의와 민족주의 탄생의 관련성을 탐색해낸 주제의식과 더불어,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섭렵한 학문적 성실성이었다. 도대체 한 개인이 어떻게 이 숱한 언어로 된 1차 자료를 다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을 내세울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그럴 때 흔하게 내뱉는 말이 있다. 이 사람, 천재로군! 나도 그 한마디로 지은이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다했다고 여겼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미친 듯이 읽어젖힌 책이 <경계 너머의 삶>이다. 척박한 독서풍토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자서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 출판계는 평전은 자주 기획하지만, 자서전에는 인색하다. 그런데 내 손에 그의 자서전이 쥐어졌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이 책이 나온 배경을 읽으면서는 일본의 독서문화가 부러웠다. 내용인즉슨, 이 자서전을 기획한 것은 일본의 한 출판사였다. 그에게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받은 교육, 미국의 학자로 체험한 것들, 인도네시아, 시암, 필리핀에서 했던 현장연구, 그리고 서구의 대학과 즐겨 읽는 책들을” 주제로 자서전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일본어를 몰랐던 그는 일단 영어로 쓰고 코넬대 제자인 가토 쓰요시 교수가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이런 공을 들여 책은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되었고, 영어판은 2015년에 저자 수정을 마쳤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사뭇 극적인데, 그는 이 작업을 마치고 사망했다. 국내에 나온 책은 바로 이 영어본을 원본으로 삼았다.

 

그는 1939년 중국의 쿤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에 맞서 독립투쟁을 한 가계의 자손이었고, 어머니는 영국 출신이었다. 다섯 살 무렵 미국으로 갔고, 아일랜드로 넘어갔다가 이튼을 나왔고, 케임브리지를 졸업했다. 이후에 다시 미국으로 가고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러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을 돌아다녔으니, 그야말로 세계인이다(꼭 맞지는 않지만 이시구로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뱅크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삶의 전환점은 코넬대학 정치학과 조교로 자리 잡은 1958년이었다. 이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현대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조지 카힌이 있었다. 아직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던 그는, 신념과 정열이 넘쳐났던 카힌 교수처럼 뛰어난 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책에서 가장 관심 있게 찾아본 대목은 그의 어학능력이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동남아시아는 인종, 종교, 언어가 각양각색이다. 이를 연구하려면 각 지역의 언어에 통달해야 하는데, 나 같으면 초저녁에 포기했을 듯싶다.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작용해 언어의 달인이 되었지만, 가족사에 국한해도 무척 흥미롭다. 일단 그의 아버지가 언어 천재였다. 머리가 좋았으나 역마살이 끼었던 아버지는 21살에 중국 해관에 입사했다. 이 기관에서 연 엄격한 중국어 교육 과정에서 늘 수석을 차지했다. 어머니는 독서광인 데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잘했다. 부모님 서재에는 중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 독일 작가의 작품이 꽂혀 있었다. 중국에서 함께 산 가정부는 프랑스어를 쓰는 베트남 여성이었다. 집안에서 이미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익힐 수 있었던 셈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머니가 라틴어를 배우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라틴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현장연구는 언어뿐만 아니라 이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마침내 인도네시아말로 꿈도 꾸게 된 그는 기층 민중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사실을 마주한다. 점령군 출신인 마에다 다데시 전 해군소장을 찾아낸 것은 특기할 만하다. 네덜란드 지배보다 일본 지배가 차라리 나았다는 여론을 접하면서 추적한 끝에 만난 인물이다(딱 맞아떨어지지 않지만, 최인훈의 <태풍>에 나온 오토메나크 중위가 떠오른다). 일본의 패망과 미국의 진주 사이에 일군의 일본 해군이 보인 놀라운 행동이 인도네시아 독립에 결정타가 되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기념비적 저서 <상상된 공동체>에 대한 회고도 담겨 있다. 먼저 이 책은 영국 지식인들을 상대로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민족주의에 대한 주요 논쟁은 거의 영국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책 앞부분에 보면 찰스 스튜어트라는 왕이 나온다. 본디 찰스 1세라 써야 하는데 일반인처럼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다 영국 지식인을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해서였다니, 역시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편견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점, 16세기 유럽에서 쏟아져 나온 책을 마르크시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 민족주의가 한낱 개념체계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비판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에릭 홉스봄은 자서전 <미완의 시대> 마지막 구절을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버리지 말자”며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앤더슨은 자서전 끝 구절에 그 무기가 무엇인지 말했다. “연대하라!” 실천하는 역사학자들의 유언에서 살아갈 길을 엿본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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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날 때 서른 한 살이던 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농사꾼답지 않게 늘 뉴스를 듣고 신문을 정독했으며 틈나는 대로 붓글씨를 썼다.” 우일문의 <시시한 역사, 아버지>를 읽고 인상 깊은 대목을 다시 읽다 이 구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무능하건만 자존심만 센 이기적 폭군. 어쩌면 나의 일생은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나는 아버지 삶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았다.

 

담낭암 판정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1년3개월을 건강하게 지냈다. 그러다 쓰러지셨다. 마약성 진통제로 견디면서 삶의 주변을 정리하셨다. 저자는 그때 문득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그러했듯, 그도 몰랐다. 아버지의 지난 삶을. 더욱이 중학생 시절, 그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호통을 치며 반대한 다음부터는 아예 아버지와 불화하는 삶이었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후예였던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실마리는 있었다. 궁벽한 집안 출신이 경기상고를 나왔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당시 학교명은 경기공립상업중학교로, 6년제였다. 그의 아버지는 1947년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1956년에 했다. 3년이 비었다. 도대체 그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큰형님을 본받아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었을까?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6·25전쟁이 나자 서울로 나갔던 집안청년들이 고향인 파주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을 남겨두고 피란을 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의용군을 모집했고, 문중에서 한 사람을 내보내라는 압력을 받았다. 집안에서 권위가 있던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지목했다. 똑똑하니 잘 적응하고 살아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이후는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의용군에 끌려가 훈련받다 미군의 폭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6개월 동안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다 포로가 되었다. 당연히 선처될 줄 알았다. 총 한번 잡아보지 못한 주제이지 않던가. 그러나 역사는 잔인했다. 민간인 억류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조사해보니, 휴전협상에 필요한 인질이었다고 한다.

 

살아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복학해 졸업했으나 은행에 취직할 수 없었다. 끝까지 민간인 억류자로 인정하지 않고 한낱 부역자로 취급했다. 낙향한 아버지에게 군청 직원이 국군에 자원입대해 보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아버지는 덜컥 믿어버렸다. 군대 다녀오면 그 지긋지긋한 부역자 꼬리표가 떨어지리라고, 결혼한 몸으로 36개월을 채우고 제대했지만, 사회는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아들은 분노를 터트린다. “이 국가는 억울하게 끌려간 ‘민간인’이라고 분명히 말했으면서도 부역자 꼬리를 떼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했음에도 몰라라 했다. 원칙도 상식도 없는 국가의 개·돼지에 불과한 아버지는 다시 절망했고 좌절했다. 말수가 줄었고 조금 우울해졌으며 술이 늘었다.”

 

김호정의 <발부리 아래의 돌>은 1977년 3월 발표된 이른바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조작 사건’의 진실을 찾는 지난한 과정의 기록이자, 역사의 덫에 걸려 희생된 아버지를 위한 신원의 글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사가 된 김호정이 아홉 살 되던 해 2월, 아버지는 낯선 사람들이 몰고온 검은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그러다 3년 뒤인 1979년 5월 한 대학병원에 온가족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호정은 긴 세월 고통과 회한의 삶을 살다가 2006년 3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재일교포 실업인이 민단 소속 재일교포의 방한이 이뤄지고, 이들 자금으로 경제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에 따라 고국에 회사를 차렸다. 회장과 감사가 제주 출신인지라 구성원이 대부분 제주도 사람이었다. 이들의 반공의식은 투철했다. 공화당 의원 비서관 출신도, 정훈장교 출신도, 심지어 중앙정보부 출신도 있었다. 화근은 감사를 지낸 강우규씨의 입이었다. 그는 분명히 ‘막걸리 보안법’의 실상을 몰랐을 터이다. 일본에서처럼 자유롭게 남북한을 비교하고, 때로는 북한의 우월성을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경계했다. 험난한 시절, 잘못 엮이면 경을 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진솔하고 소탈하고 정감 있는지라 문화차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배신이 있었다. 강우규씨하고 가깝던 동향인이 그의 말을 확대, 과장해 간첩으로 신고해 포상을 받으려고 했다. 마침 중앙정보부장이 바뀌었고 유신반대의 기운이 거셌다. 그들이 보기에 때가 좋았다. 그 다음부터는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 김호정의 아버지 김추백은 총무부장으로 일하다 두 번이나 고혈압으로 쓰러져 퇴사한 상태였지만, 어떤 이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라는 대로 진술서를 쓰지 않으면 고문했다. 몸과 영혼이 파괴되었다.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김추백처럼 그렇게 그 시대 우리의 아버지 11명은 간첩이 되었다.

 

누구는 아버지의 행장을 쓰고, 누구는 아버지의 해원굿을 했다. 나는 어떤 상황인가?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보면 열세살 적에 딸이 쓴 자신에 대한 전기를 인용한 대목이 있다. 이 전기에 대해 그는 “합당한 판단력과 전기작가의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칭찬과 비판을 공정하고 균등하게 분배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나는 지금 딸이 그런 정신으로 나의 삶을 기록할까보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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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가?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자리는 한자로 위(位)라 한다. 이 한자를 파자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사람과 서 있다는 글자가 합해졌으니, 먼저 사람 옆에 서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 사람은 돈과 권력 있는 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람 옆에 설 때 비로소 얻는 지위가 있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 전문가주의를 꼽았다. “생계를 위한 어떤 일을 하는 지식인의 활동”을 뜻하는데 “후원세력들이 가진 권력과 권위를 향한,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낳는 여러 자격들과 특혜, 그런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고용되는 것을 향한 불가피한 움직임”이라 했으니, 딱 맞춤한 사례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선 자리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을 제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를 벗하려 하고 세상에 쓰려고 한다. 유가에서 말한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결코 쉬운 삶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이립했으면서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답다 한 이유다. 제갈공명을 떠올리면 되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승섭은 특정 사회집단의 건강상태를 연구하는 사회역학자다. 그런데 그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집단은 그야말로 특정되어 있다.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잘 알 수 있듯 소방공무원,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성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들어가는 집단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상처를 입었지만, 사회가 그들의 삶과 건강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왜 아픈지 조사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이른바 트라우마를 겪는 이가 주변에 있다면 보듬고 안아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바로 이 현실에 맞서 그들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책은 우리 몸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가를 문제 삼는다. 사무실 적정온도는 21도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기준이 1960년대에 몸무게 70㎏인 40세의 성인남성을 표준신체로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미국 식약청은 불면증 치료제인 졸피뎀의 처방용량을 반으로 줄이라고 권고했다. 기존의 10㎎을 먹으면 15% 정도의 여성에게는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의 약이 혈액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3% 정도였다. 여성을 배제한 의학연구의 한 상징이다.


유전인가, 환경인가로 논쟁할 적에 참고할 만한 자료도 나온다. 사회배경이 다양한 영·유아 77명의 대뇌 회백질 면적을 조사했다. 이 기관은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지라 학습능력을 짐작하기에 적절하다. 조사결과 태어났을 때는 면적에 차이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큰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소득수준이 높은 부모를 둔 영·유아의 것이 컸다. 역시 학습능력과 관련해 중요한 기관인 해마도 사회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경제적인 궁핍과 일상적인 폭력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켜 해마의 세포를 변형한다. 게으르고 불성실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가난해서 못한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여성과 부유한 여성 가운데 누가 더 유방암에 많이 걸릴까?라고 묻는다면, 가난한 여성이라 답하기 쉽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다르다.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다르게 질문해보자. 어느 쪽이 유방암 때문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을까?라고.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궁금할 터. 유방암 1기의 사망 가능성이 1%라면, 4기는 78%다. 그만큼 조기진단이 중요한데, 소득 상위 20%인 여성 100명이 검진받을 때, 하위 20% 여성은 79명만이 검진을 받았다. 부유한 여성이 출산시기가 늦거나 호르몬 보충제 때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도 있지만, 조기 검진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된 면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여성은 조기 검진 기회를 놓쳐 결국 더 많이 사망했다. 


그는 왜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발병원인에서 사회환경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짐작하듯 유전적 영향이나 개인의 생활습관도 발병의 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일 때,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원인은 방치되기 때문”이란다. 가만히 책을 살펴보니, 그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듯싶다. 


그의 책을 덮으며 위의 뜻을 다시 새겼다. 본디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겼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그가 일깨워주었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있는, 지식인이 찾아가야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차별받고 상처받고 소외된 무리의 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목청껏 외치지 못한 서러움과 아픔을 대신 말해주어야 한다. 아마 그 자리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또 다른 지식인, 즉 아마추어주의와 맥을 같이할 성싶다. “이익이나 이기심, 편협한 전문화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하는 행위”로 “실천적으로 토론을 제기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논쟁을 유발”하는 지식인이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번 책을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의 다짐을 응원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되살펴본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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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