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2.12 자식이 쓴 아버지 행장
  2. 2019.01.08 지식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태어날 때 서른 한 살이던 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농사꾼답지 않게 늘 뉴스를 듣고 신문을 정독했으며 틈나는 대로 붓글씨를 썼다.” 우일문의 <시시한 역사, 아버지>를 읽고 인상 깊은 대목을 다시 읽다 이 구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무능하건만 자존심만 센 이기적 폭군. 어쩌면 나의 일생은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나는 아버지 삶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았다.

 

담낭암 판정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1년3개월을 건강하게 지냈다. 그러다 쓰러지셨다. 마약성 진통제로 견디면서 삶의 주변을 정리하셨다. 저자는 그때 문득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그러했듯, 그도 몰랐다. 아버지의 지난 삶을. 더욱이 중학생 시절, 그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호통을 치며 반대한 다음부터는 아예 아버지와 불화하는 삶이었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후예였던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실마리는 있었다. 궁벽한 집안 출신이 경기상고를 나왔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당시 학교명은 경기공립상업중학교로, 6년제였다. 그의 아버지는 1947년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1956년에 했다. 3년이 비었다. 도대체 그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큰형님을 본받아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었을까?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6·25전쟁이 나자 서울로 나갔던 집안청년들이 고향인 파주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을 남겨두고 피란을 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의용군을 모집했고, 문중에서 한 사람을 내보내라는 압력을 받았다. 집안에서 권위가 있던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지목했다. 똑똑하니 잘 적응하고 살아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이후는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의용군에 끌려가 훈련받다 미군의 폭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6개월 동안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다 포로가 되었다. 당연히 선처될 줄 알았다. 총 한번 잡아보지 못한 주제이지 않던가. 그러나 역사는 잔인했다. 민간인 억류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조사해보니, 휴전협상에 필요한 인질이었다고 한다.

 

살아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복학해 졸업했으나 은행에 취직할 수 없었다. 끝까지 민간인 억류자로 인정하지 않고 한낱 부역자로 취급했다. 낙향한 아버지에게 군청 직원이 국군에 자원입대해 보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아버지는 덜컥 믿어버렸다. 군대 다녀오면 그 지긋지긋한 부역자 꼬리표가 떨어지리라고, 결혼한 몸으로 36개월을 채우고 제대했지만, 사회는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아들은 분노를 터트린다. “이 국가는 억울하게 끌려간 ‘민간인’이라고 분명히 말했으면서도 부역자 꼬리를 떼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했음에도 몰라라 했다. 원칙도 상식도 없는 국가의 개·돼지에 불과한 아버지는 다시 절망했고 좌절했다. 말수가 줄었고 조금 우울해졌으며 술이 늘었다.”

 

김호정의 <발부리 아래의 돌>은 1977년 3월 발표된 이른바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조작 사건’의 진실을 찾는 지난한 과정의 기록이자, 역사의 덫에 걸려 희생된 아버지를 위한 신원의 글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사가 된 김호정이 아홉 살 되던 해 2월, 아버지는 낯선 사람들이 몰고온 검은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그러다 3년 뒤인 1979년 5월 한 대학병원에 온가족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호정은 긴 세월 고통과 회한의 삶을 살다가 2006년 3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재일교포 실업인이 민단 소속 재일교포의 방한이 이뤄지고, 이들 자금으로 경제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에 따라 고국에 회사를 차렸다. 회장과 감사가 제주 출신인지라 구성원이 대부분 제주도 사람이었다. 이들의 반공의식은 투철했다. 공화당 의원 비서관 출신도, 정훈장교 출신도, 심지어 중앙정보부 출신도 있었다. 화근은 감사를 지낸 강우규씨의 입이었다. 그는 분명히 ‘막걸리 보안법’의 실상을 몰랐을 터이다. 일본에서처럼 자유롭게 남북한을 비교하고, 때로는 북한의 우월성을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경계했다. 험난한 시절, 잘못 엮이면 경을 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진솔하고 소탈하고 정감 있는지라 문화차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배신이 있었다. 강우규씨하고 가깝던 동향인이 그의 말을 확대, 과장해 간첩으로 신고해 포상을 받으려고 했다. 마침 중앙정보부장이 바뀌었고 유신반대의 기운이 거셌다. 그들이 보기에 때가 좋았다. 그 다음부터는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 김호정의 아버지 김추백은 총무부장으로 일하다 두 번이나 고혈압으로 쓰러져 퇴사한 상태였지만, 어떤 이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라는 대로 진술서를 쓰지 않으면 고문했다. 몸과 영혼이 파괴되었다.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김추백처럼 그렇게 그 시대 우리의 아버지 11명은 간첩이 되었다.

 

누구는 아버지의 행장을 쓰고, 누구는 아버지의 해원굿을 했다. 나는 어떤 상황인가?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보면 열세살 적에 딸이 쓴 자신에 대한 전기를 인용한 대목이 있다. 이 전기에 대해 그는 “합당한 판단력과 전기작가의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칭찬과 비판을 공정하고 균등하게 분배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나는 지금 딸이 그런 정신으로 나의 삶을 기록할까보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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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가?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자리는 한자로 위(位)라 한다. 이 한자를 파자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사람과 서 있다는 글자가 합해졌으니, 먼저 사람 옆에 서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 사람은 돈과 권력 있는 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람 옆에 설 때 비로소 얻는 지위가 있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 전문가주의를 꼽았다. “생계를 위한 어떤 일을 하는 지식인의 활동”을 뜻하는데 “후원세력들이 가진 권력과 권위를 향한,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낳는 여러 자격들과 특혜, 그런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고용되는 것을 향한 불가피한 움직임”이라 했으니, 딱 맞춤한 사례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선 자리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을 제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를 벗하려 하고 세상에 쓰려고 한다. 유가에서 말한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결코 쉬운 삶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이립했으면서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답다 한 이유다. 제갈공명을 떠올리면 되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승섭은 특정 사회집단의 건강상태를 연구하는 사회역학자다. 그런데 그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집단은 그야말로 특정되어 있다.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잘 알 수 있듯 소방공무원,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성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들어가는 집단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상처를 입었지만, 사회가 그들의 삶과 건강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왜 아픈지 조사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이른바 트라우마를 겪는 이가 주변에 있다면 보듬고 안아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바로 이 현실에 맞서 그들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책은 우리 몸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가를 문제 삼는다. 사무실 적정온도는 21도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기준이 1960년대에 몸무게 70㎏인 40세의 성인남성을 표준신체로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미국 식약청은 불면증 치료제인 졸피뎀의 처방용량을 반으로 줄이라고 권고했다. 기존의 10㎎을 먹으면 15% 정도의 여성에게는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의 약이 혈액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3% 정도였다. 여성을 배제한 의학연구의 한 상징이다.


유전인가, 환경인가로 논쟁할 적에 참고할 만한 자료도 나온다. 사회배경이 다양한 영·유아 77명의 대뇌 회백질 면적을 조사했다. 이 기관은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지라 학습능력을 짐작하기에 적절하다. 조사결과 태어났을 때는 면적에 차이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큰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소득수준이 높은 부모를 둔 영·유아의 것이 컸다. 역시 학습능력과 관련해 중요한 기관인 해마도 사회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경제적인 궁핍과 일상적인 폭력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켜 해마의 세포를 변형한다. 게으르고 불성실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가난해서 못한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여성과 부유한 여성 가운데 누가 더 유방암에 많이 걸릴까?라고 묻는다면, 가난한 여성이라 답하기 쉽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다르다.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다르게 질문해보자. 어느 쪽이 유방암 때문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을까?라고.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궁금할 터. 유방암 1기의 사망 가능성이 1%라면, 4기는 78%다. 그만큼 조기진단이 중요한데, 소득 상위 20%인 여성 100명이 검진받을 때, 하위 20% 여성은 79명만이 검진을 받았다. 부유한 여성이 출산시기가 늦거나 호르몬 보충제 때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도 있지만, 조기 검진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된 면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여성은 조기 검진 기회를 놓쳐 결국 더 많이 사망했다. 


그는 왜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발병원인에서 사회환경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짐작하듯 유전적 영향이나 개인의 생활습관도 발병의 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일 때,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원인은 방치되기 때문”이란다. 가만히 책을 살펴보니, 그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듯싶다. 


그의 책을 덮으며 위의 뜻을 다시 새겼다. 본디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겼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그가 일깨워주었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있는, 지식인이 찾아가야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차별받고 상처받고 소외된 무리의 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목청껏 외치지 못한 서러움과 아픔을 대신 말해주어야 한다. 아마 그 자리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또 다른 지식인, 즉 아마추어주의와 맥을 같이할 성싶다. “이익이나 이기심, 편협한 전문화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하는 행위”로 “실천적으로 토론을 제기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논쟁을 유발”하는 지식인이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번 책을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의 다짐을 응원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되살펴본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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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