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너는 그에 대해 잘 알 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와 성적 취향까지도 말이야.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남자. 숀 맥과이어는 윌 헌팅과 대화를 시도한다. 


윌 헌팅. 수학, 역사, 법학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청년의 이름이다. 성장기의 상처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윌을 치료하려는 숀 맥과이어 교수. 그는 윌 헌팅이 가진 방대한 지식의 한계를 꼬집는다. 이탈리아 미술가를 예로 들면서 경험과 감정과 지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숀 맥과이어. 순간 방어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윌 헌팅의 표정이 달라진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은 소통의 의미를 암시하는 영화다.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 윌 헌팅. 숀 맥과이어는 주기적으로 윌 헌팅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사람인지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너를 전부 설명할 수 있을까?” 숀 맥과이어의 발언에서 어떤 이론이 떠올랐다. 


이름하여 머레이비언의 법칙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 교수는 인간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 말의 의미보다 목소리, 음색, 얼굴표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금처럼 문자 위주의 소통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71년에 등장한 이론이었다. 머레이비언에 따르면 윌 헌팅이 드러내는 문자정보가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 반면 음색과 목소리에 해당하는 청각정보는 38%를 차지하며 눈빛, 몸짓, 표정에 속하는 시각정보의 비중은 무려 55%에 달한다. 문자정보의 8배에 달하는 소통이 시각정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흔히 말하는 첫인상이 과소평가할 부분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개인적으로 1년6개월간 카톡으로만 소통했던 인물이 있다. 2017년에 출간한 책의 교열교정을 담당했던 출판사 직원이었다.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 덕분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취향에 관한 신간을 준비하면서 그와 대면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예상대로 카톡으로만 주고받던 느낌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숀 맥과이어는 이미 머레이비언의 법칙을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윌 헌팅과의 첫 만남에서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피상적인 지식에 집착하는 타인의 자아를 발견한다. 만일 두 남자가 비대면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치료는커녕 오해의 골만 깊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숀은 마지막 상담에서 청년을 끌어안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위로를 건네는 비언어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백인이라는 인종자본과 천재라는 지적자본의 소유자다. 여기에 미국인이라는 국적자본까지 장착한 선택받은 인물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주인공은 소통의 비교 우위를 점한 자에 해당한다. 결국 윌은 자신이 포기했던 인연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엘리엇 스미스의 주제곡 ‘Between the bars’가 인상적인 영화 <굿 윌 헌팅>. 머레이비언의 연구결과가 나온 후 약 50년이 흘렀다.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활용한 실시간 소통이 일반화되었다. 대면보다 비대면 소통에 익숙한 Z세대가 등장했다. 깊이가 사라진 인간관계가 자리를 잡았다.  


비대면 소통에서 발생하는 오해나 착각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대면 소통만을 반복하기도 쉽지 않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는 편리한 단절보다 불편한 소통을 고려하는 현대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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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날 때 서른 한 살이던 아버지는 자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농사꾼답지 않게 늘 뉴스를 듣고 신문을 정독했으며 틈나는 대로 붓글씨를 썼다.” 우일문의 <시시한 역사, 아버지>를 읽고 인상 깊은 대목을 다시 읽다 이 구절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무능하건만 자존심만 센 이기적 폭군. 어쩌면 나의 일생은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나는 아버지 삶의 패러독스를 이해하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았다.

 

담낭암 판정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1년3개월을 건강하게 지냈다. 그러다 쓰러지셨다. 마약성 진통제로 견디면서 삶의 주변을 정리하셨다. 저자는 그때 문득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그러했듯, 그도 몰랐다. 아버지의 지난 삶을. 더욱이 중학생 시절, 그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호통을 치며 반대한 다음부터는 아예 아버지와 불화하는 삶이었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후예였던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실마리는 있었다. 궁벽한 집안 출신이 경기상고를 나왔다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당시 학교명은 경기공립상업중학교로, 6년제였다. 그의 아버지는 1947년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1956년에 했다. 3년이 비었다. 도대체 그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큰형님을 본받아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었을까?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6·25전쟁이 나자 서울로 나갔던 집안청년들이 고향인 파주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을 남겨두고 피란을 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의용군을 모집했고, 문중에서 한 사람을 내보내라는 압력을 받았다. 집안에서 권위가 있던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지목했다. 똑똑하니 잘 적응하고 살아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이후는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의용군에 끌려가 훈련받다 미군의 폭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6개월 동안 난민처럼 떠돌아다니다 포로가 되었다. 당연히 선처될 줄 알았다. 총 한번 잡아보지 못한 주제이지 않던가. 그러나 역사는 잔인했다. 민간인 억류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조사해보니, 휴전협상에 필요한 인질이었다고 한다.

 

살아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복학해 졸업했으나 은행에 취직할 수 없었다. 끝까지 민간인 억류자로 인정하지 않고 한낱 부역자로 취급했다. 낙향한 아버지에게 군청 직원이 국군에 자원입대해 보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아버지는 덜컥 믿어버렸다. 군대 다녀오면 그 지긋지긋한 부역자 꼬리표가 떨어지리라고, 결혼한 몸으로 36개월을 채우고 제대했지만, 사회는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제, 아들은 분노를 터트린다. “이 국가는 억울하게 끌려간 ‘민간인’이라고 분명히 말했으면서도 부역자 꼬리를 떼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복무했음에도 몰라라 했다. 원칙도 상식도 없는 국가의 개·돼지에 불과한 아버지는 다시 절망했고 좌절했다. 말수가 줄었고 조금 우울해졌으며 술이 늘었다.”

 

김호정의 <발부리 아래의 돌>은 1977년 3월 발표된 이른바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조작 사건’의 진실을 찾는 지난한 과정의 기록이자, 역사의 덫에 걸려 희생된 아버지를 위한 신원의 글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사가 된 김호정이 아홉 살 되던 해 2월, 아버지는 낯선 사람들이 몰고온 검은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그러다 3년 뒤인 1979년 5월 한 대학병원에 온가족이 모여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호정은 긴 세월 고통과 회한의 삶을 살다가 2006년 3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간첩단 조작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재일교포 실업인이 민단 소속 재일교포의 방한이 이뤄지고, 이들 자금으로 경제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에 따라 고국에 회사를 차렸다. 회장과 감사가 제주 출신인지라 구성원이 대부분 제주도 사람이었다. 이들의 반공의식은 투철했다. 공화당 의원 비서관 출신도, 정훈장교 출신도, 심지어 중앙정보부 출신도 있었다. 화근은 감사를 지낸 강우규씨의 입이었다. 그는 분명히 ‘막걸리 보안법’의 실상을 몰랐을 터이다. 일본에서처럼 자유롭게 남북한을 비교하고, 때로는 북한의 우월성을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경계했다. 험난한 시절, 잘못 엮이면 경을 친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진솔하고 소탈하고 정감 있는지라 문화차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배신이 있었다. 강우규씨하고 가깝던 동향인이 그의 말을 확대, 과장해 간첩으로 신고해 포상을 받으려고 했다. 마침 중앙정보부장이 바뀌었고 유신반대의 기운이 거셌다. 그들이 보기에 때가 좋았다. 그 다음부터는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 김호정의 아버지 김추백은 총무부장으로 일하다 두 번이나 고혈압으로 쓰러져 퇴사한 상태였지만, 어떤 이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라는 대로 진술서를 쓰지 않으면 고문했다. 몸과 영혼이 파괴되었다.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김추백처럼 그렇게 그 시대 우리의 아버지 11명은 간첩이 되었다.

 

누구는 아버지의 행장을 쓰고, 누구는 아버지의 해원굿을 했다. 나는 어떤 상황인가? <마크 트웨인 자서전>을 보면 열세살 적에 딸이 쓴 자신에 대한 전기를 인용한 대목이 있다. 이 전기에 대해 그는 “합당한 판단력과 전기작가의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칭찬과 비판을 공정하고 균등하게 분배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나는 지금 딸이 그런 정신으로 나의 삶을 기록할까보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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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나 달이 뜨나 음악이 흐르는 집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희귀 음반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한 번 들러보십시오. 코밑에 털 난 아저씨와 마음씨 좋은 젊은 오빠가 음악의 문을 활짝 열어드릴 것입니다.” 1992년 가을에 처음으로 출간한 아트록 잡지를 읽다 발견한 광고문구. 그곳은 서울 중심가에 위치했던 음악이 흐르는 집이었다. 


광고면에는 당시 정동길 초입에 위치한 음반점의 소개글이 보였다. “음악에 목이 마를 땐 메카의 문을 여십시오. 메카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1969년에 발표한 밥 딜런(Bob Dylan)의 음반 사진을 우측에 배치한 광고. 레코드점 이름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출생지인 메카였다. 주소는 서울시 중구 정동 23-10번지. 신문로에서 운영하던 작은 레코드점에서 확장이전한 곳이었다. 


“60~70년대 록, 팝. 재즈, 블루스, 국악, 가요, 사운드트랙. 영미권 블루스 록. 절판 라이선스 대량 확보. LP, CD 위탁판매 환영. 음악업소 개업 문의 친절상담” 문구만 얼핏 보아서는 클래식이나 힙합 정도를 제외한 모든 장르의 음반을 구비한 듯이 보였다. 나는 가게문을 여는 11시30분경에 메카레코드에 들렀다. 이왕이면 반나절이라도 먼저 원하는 음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날은 이곳에서 방송인 전영혁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메카레코드 건너편이 MBC 라디오 방송국 자리였다. 그는 1986년 4월29일부터 &lt;전영혁의 음악세계&gt;를 진행했다. 시그널 음악은 아트 오브 노이즈의 ‘모먼츠 인 러브’로, 방송의 첫 곡은 버클리 제임스 하베스트의 ‘플레이 투 더 월드’로 기억한다. 


메카레코드의 사장은 재즈와 솔 음악 마니아였다. 자연스럽게 인근에 위치한 다른 음반점에 비해 관련 장르의 음반이 많았다. 어떤 음반을 사들였을까. 그곳에서 재즈음반 레이블 OJC(Original Jazz Classic), 프레스티지(Prestige), 블루노트(Blue Note), 콩코드(Concord) 계열의 LP를 수집했다. 그 외에 블루스, 솔, 포크 장르의 LP를 메카레코드에서 사들였다.


시간이 흘렀다. 외근길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메카레코드 사장이 서 있었다. 때는 1990년대 중반. 우리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서 조우했다. 그는 음반점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음반통신판매 사업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인지 자신감과 생기가 넘쳤다. 마음이 허전했지만 그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주인이 바뀌고 마지막으로 메카레코드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라이브 CD를 구입했다. 아쉽게도 메카레코드의 공기는 적막하고 쓸쓸했다. 두 명의 아저씨가 운영하던 예전의 메카레코드는 20대를 함께한 일종의 대안공간이었다. 굳이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틀어주는 음악만으로도 좋았던 시간. 이후 홍대 지역으로 음반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김상중, 박진희 주연 영화 <산책>은 레코드점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악애호가인 주인 김상중.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직원 박진희. 다른 취향, 다른 성격의 남녀는 음악을 매개로 공감대를 형성해간다. 영화는 인간, 음악, 공간이라는 3가지 변수를 음반점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레코드점이라는 음악공간이 없었다면 그들은 영원한 타인으로 사라질 관계였다. <산책>은 인연과 망각에 관한 영화다.


추억의 한 구석을 차지했던 메카레코드는 이제 없다. 음악의 메카로 불리던 광화문의 어감도 바뀌었다. 지금, 메카레코드에서 구입한 음반을 다시 들어본다. 제목은 비비킹(B. B. King)의 ‘더 스릴 이즈 곤(The Thrill Is Gone)’.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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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은퇴했다. 1936년생인 그는 <내추럴> <아웃 오브 아프리카> <흐르는 강물처럼> 등에서 관객이 직접 표정을 그릴 수 있도록 투명한 얼굴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은퇴작은 실존인물인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 <미스터 스마일>이다. 17번 체포되었으나 매번 탈옥했고, 한 해 60차례나 은행강도를 하며 70대까지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다는 전설, 심지어 장전도 하지 않았으며, 항상 반말이 아닌 신사적인 언어로 “전 지금 은행을 털러왔어요. 제 가방에 현금을 채워주세요”라고 웃으며 범죄를 저질렀다는 터커의 삶처럼, 그도 배우로서 80대까지 그렇게 연기해왔음을 굵은 주름살의 특유의 미소로 방증해 보였다. 


실제 그가 1979년 <The Eletric Horseman>에서 신혼부부로 연기했던 아내역의 제인 폰다와 다시 함께 2017년 넥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에서 보여준 모습 또한 노후세대의 아픔과 외로움을 절절하게 전했다. 남편을 보내고 아들마저 다른 도시로 결혼시킨 노년의 제인 폰다가 인근에 사는 혼자 된 로버트 레드퍼드의 거실 문을 두드리며 어렵게 마음의 말로 부탁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말을 잃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인데 모두가 하기 어려워하는 현실을 영화는 솔직하게 보여준다. 


잭 니컬슨과 다이앤 키튼이 열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또한 노년의 멜로드라마가 가능한 이유와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세대가 많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영화가 이제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2년 <죽어도 좋아>,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국내에서도 노년의 사랑을 표현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아직 다양한 시선과 소재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 


20대에 일본 최고의 전자회사에 취업한 시마 고사쿠를 주인공으로 30년 이상 연재해온 <시마과장>은 <사원시마>부터 <사장시마>까지 만화의 제목마저 승진시키며 샐러리맨의 일생을 보여준 역작이다. 작가 히로카네 겐시는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와 집단 명분의 뒷모습을 블랙유머로 표현하며 일본 직장인의 환호를 평생 받았다. 만화주인공 시마는 여전히 일본맥주 광고모델이다. 출판사는 시마가 이사회로부터 대표이사에 임명되는 부분이 연재될 때는 실제로 가상의 취임식을 이벤트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가 연재한 또 하나의 성인만화가 <황혼유성군>이다. 중장년층으로부터 노년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고독과 이별 등을 담고 있는 옴니버스식 작품인데, 매회 독자들을 공감시키는 마력이 있다.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이사직을 수행하다 본인도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임원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은퇴일정을 사정하며 미뤄야 하는 부끄러운 절실함, 70대 노교수의 지적 아우라에 호기심 너머 연민을 느끼는 20대 도서관 사서, 40대 보건소 의사에게 가슴 떨림을 느끼는 70대 여성환자, 암투병 중인 노년의 남성이 호스피스로 봉사하는 여인에게 전하는 진심 등 만화적 상상력은 리얼리티와 과장된 멜로의 한계를 오고가며 독자의 현실과 미래를 재단한다. 아주 먼 미래 같지만, 실제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독자들은 작품으로 확인하고 공감한다. 


굵고 깊게 팬 주름살을 보이며 맑게 미소 짓는 80대의 로버트 레드퍼드 얼굴은 20대 시절의 레드퍼드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그 표정에서 여전히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의 청춘을 볼 수 있는 세대는 80대 레드퍼드의 연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콘텐츠에 지불할 시간과 자본이 여전히 남아있다. 시니어콘텐츠는 그래서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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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가?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자리는 한자로 위(位)라 한다. 이 한자를 파자하면 상당히 흥미롭다. 사람과 서 있다는 글자가 합해졌으니, 먼저 사람 옆에 서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그 사람은 돈과 권력 있는 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사람 옆에 설 때 비로소 얻는 지위가 있기 마련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 전문가주의를 꼽았다. “생계를 위한 어떤 일을 하는 지식인의 활동”을 뜻하는데 “후원세력들이 가진 권력과 권위를 향한,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낳는 여러 자격들과 특혜, 그런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고용되는 것을 향한 불가피한 움직임”이라 했으니, 딱 맞춤한 사례다.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선 자리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을 제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를 벗하려 하고 세상에 쓰려고 한다. 유가에서 말한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결코 쉬운 삶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이립했으면서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답다 한 이유다. 제갈공명을 떠올리면 되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승섭은 특정 사회집단의 건강상태를 연구하는 사회역학자다. 그런데 그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집단은 그야말로 특정되어 있다. 전작인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잘 알 수 있듯 소방공무원,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성소수자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들어가는 집단이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상처를 입었지만, 사회가 그들의 삶과 건강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들이 얼마나, 어떻게, 왜 아픈지 조사하고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이른바 트라우마를 겪는 이가 주변에 있다면 보듬고 안아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바로 이 현실에 맞서 그들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책은 우리 몸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이 과연 올바른가를 문제 삼는다. 사무실 적정온도는 21도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기준이 1960년대에 몸무게 70㎏인 40세의 성인남성을 표준신체로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미국 식약청은 불면증 치료제인 졸피뎀의 처방용량을 반으로 줄이라고 권고했다. 기존의 10㎎을 먹으면 15% 정도의 여성에게는 운전에 지장을 줄 정도의 약이 혈액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3% 정도였다. 여성을 배제한 의학연구의 한 상징이다.


유전인가, 환경인가로 논쟁할 적에 참고할 만한 자료도 나온다. 사회배경이 다양한 영·유아 77명의 대뇌 회백질 면적을 조사했다. 이 기관은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지라 학습능력을 짐작하기에 적절하다. 조사결과 태어났을 때는 면적에 차이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큰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소득수준이 높은 부모를 둔 영·유아의 것이 컸다. 역시 학습능력과 관련해 중요한 기관인 해마도 사회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경제적인 궁핍과 일상적인 폭력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켜 해마의 세포를 변형한다. 게으르고 불성실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가난해서 못한다는 말이다. 


얼핏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조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여성과 부유한 여성 가운데 누가 더 유방암에 많이 걸릴까?라고 묻는다면, 가난한 여성이라 답하기 쉽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다르다.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다르게 질문해보자. 어느 쪽이 유방암 때문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을까?라고. 교육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궁금할 터. 유방암 1기의 사망 가능성이 1%라면, 4기는 78%다. 그만큼 조기진단이 중요한데, 소득 상위 20%인 여성 100명이 검진받을 때, 하위 20% 여성은 79명만이 검진을 받았다. 부유한 여성이 출산시기가 늦거나 호르몬 보충제 때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도 있지만, 조기 검진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된 면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여성은 조기 검진 기회를 놓쳐 결국 더 많이 사망했다. 


그는 왜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발병원인에서 사회환경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짐작하듯 유전적 영향이나 개인의 생활습관도 발병의 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일 때,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원인은 방치되기 때문”이란다. 가만히 책을 살펴보니, 그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바꾸지 않고 ~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듯싶다. 


그의 책을 덮으며 위의 뜻을 다시 새겼다. 본디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서 있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겼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그가 일깨워주었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자리에 있는, 지식인이 찾아가야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차별받고 상처받고 소외된 무리의 곁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목청껏 외치지 못한 서러움과 아픔을 대신 말해주어야 한다. 아마 그 자리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또 다른 지식인, 즉 아마추어주의와 맥을 같이할 성싶다. “이익이나 이기심, 편협한 전문화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하는 행위”로 “실천적으로 토론을 제기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논쟁을 유발”하는 지식인이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번 책을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의 다짐을 응원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되살펴본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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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특별하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니고, 외부활동도 많이 하지 않는데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다. 지난해 9월 펴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넉 달도 지나지 않아 4만여부가 팔렸다. 이전에 낸 평론집과 산문집, 영화에세이도 각각 2만부가량 나갔다. 깊이 있고 따뜻한 성찰, 단정하고 섬세한 문장은 신형철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떠받치는 요소들이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은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질투 대상이다. 


신형철이 최근 자신만의 글쓰기 비결을 살짝 공개했다. “글의 장점은 써놓고 고칠 수 있다는 건데 제1 독자가 중요하다. 배우자도 문학평론을 하는데, 아내가 먼저 읽고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있다고 하면 내가 잘못 쓴 것이라 생각하고 고친다.”(중앙선데이 인터뷰)


해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다르지 않다.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가장 먼저 아내에게 원고를 읽어달라고 한다. “그녀의 의견은 말하자면 음악의 ‘기준음’ 같은 것입니다.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는 원고가 아내의 심사를 무사히 통과해야만 담당 편집자에게 보여준다. 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의 정유정도 “남편은 제 소설의 첫 번째 독자이자 감수자”(조선비즈 인터뷰)라고 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이나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카카오스토리든 어디엔가 글을 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깊이 생각하라는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은 불변의 황금률이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보탠다면 ‘제1 독자를 곁에 두어라’가 아닐까. 


다만 신형철과 하루키의 규칙은 엄수한다는 게 전제다. 지적을 받으면 고친다는 것. 무조건 박수받기를 기대해선 안된다는 것. 제1 독자를 자청하는 이가 쓴소리 대신 칭찬만 한다면, 그건 유사품에 불과할 테니.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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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편집국 문화부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신춘문예가 ‘거의’ 끝났다. 혹시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드리면 신춘문예는 신문사가 주최하는 문학 작가 등단제도다. 경향신문은 올해 시와 단편소설, 평론 부문을 공모해 1월1일자 신문 지면에 당선자를 발표하고 1~2일 이틀에 걸쳐 당선작을 실었다. 자격증 같은 것을 발급해주지는 않아도 당선된 사람들은 관례적으로 ‘등단작가’가 된다.

 

아직 공식 시상식이 남아 있으나 작품 심사와 당선 통보, 당선작 게재까지의 절차를 모두 마쳤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큰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마치 내가 신춘문예 업무에서 큰일을 한 것 같다. 아니다. 담당기자는 따로 있다. 문학을 취재하는 동료가 이번 신춘문예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진행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 역시 아니다. 나름 중요한 업무를 맡았다. 문의전화 응대였다.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1년 동안 기다려온 수많은 분들과 통화하고, 그들의 온갖 질문에 답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그 일을 떠맡지는 않았다. 신춘문예 공지에 문화부 전화번호가 함께 나가는데, 내 자리 번호가 가장 앞에 쓰여 있어 가장 많은 전화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 공지를 누가 작성했는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겠다.

 

비슷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이런 것들도 궁금하실까’ 싶은 문의에도 성실하게 답하려 노력했다. 내가 듣기에는 수많은 신춘문예 응모자 중 한 명의 사소한 질문일지 몰라도, 수화기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절박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10여년 전 취업준비생 시절을 되짚어보면 입장 바꿔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응모 마감일이 지나면서 문의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지난달 심사를 거쳐 당선작이 결정된 뒤 당선자들에게 개별통보를 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신춘문예 기간 중 가장 많은 일을 한 문학담당 동료가 맡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공식적으로 신춘문예 심사 종료를 알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다시 내 자리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경향신문 문화부죠?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혹시 신춘문예 당선자 개별통보 했나요?”

“네. 당선작이 선정돼서 이미 당선자들께는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휴~”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당선되지 않은 응모자의 한숨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올 때 어떤 말로 응대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수긍하고 끊어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다시 힘을 내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구나 쉽게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문학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많은 이들이 작가의 꿈을 품고 경향신문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려주었다. 시 786건(1건당 평균 5편), 소설 642편, 문학평론 18편이 마감일에 맞춰 도착했다. 미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가나 등 해외 곳곳에서도 원고를 보내왔다. 응모작의 수준은 제각각이었겠지만, 자신의 글로써 타인들과 고민을 함께하고 사회와 호흡하겠다는 열망의 크기는 같았을 것이다.

 

낙선한 사람들에게 당분간은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음을 잘 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경향신문과 심사위원들의 밝지 못한 눈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신춘문예 작업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좀처럼 시도, 소설도 읽지 않는 시대에도 당신 같은 분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언젠가 당신의 글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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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본만화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의 웹툰은 2018년 이제 일본만화 수입액(595만달러)보다 수출액(915만달러)이 역전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은 일본만화를 모른다. 한국웹툰 찾아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현지에서조차 한국웹툰이 유로시장의 선두를 질주한다. 네이버의 일본 현지 웹툰서비스 ‘라인망가’, 카카오의 일본웹툰 플랫폼 ‘픽코마’, NHN엔터테인먼트의 ‘코미코’ 등이 현재 일본애플 앱스토어 도서 분야 순위 5위 내에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폭발적으로 중국 내 애니메이션학과가 신설되었다. 현재 200여개 대학에서 연간 10만명 이상의 전공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제작부문 80%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2D애니메이션과 3D애니메이션의 하청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VFX 등의 영상특수효과를 비롯하여 직접 기획·제작하는 대형프로젝트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인적자원의 증원이 웹툰작가의 확대라는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며 국내 웹툰시장에도 중국웹툰이 몰려들어오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네이버웹툰 등 1000여편의 중국웹툰과 웹소설이 실제 수익을 내고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중국웹툰 유통업체인 다온크리에이티브의 지분 66%를 100억원에 매입하여 중국 내 웹툰의 다양한 수입선과 수출경로를 확보했다.

 

네이버웹툰이 자회사로 ‘스튜디오 N’과 ‘LICO’를 설립하고 공격적인 생태계 내의 생태계(eco in eco)를 구축하며 제작라인업을 최근 공개했다. ‘스튜디오 N’은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제작할 네이버웹툰의 연재작 10편을 공식발표했다. 대개 네이버웹툰은 자사 플랫폼에 연재하는 웹툰원작의 영상화 판권을 관리하며 국내외에 판매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직접 기획, 투자, 제작에 참여하는 사내구조를 시도한다. 또한 ‘LICO’는 미국의 만화출판사 마블을 모델로 웹툰창작에 스튜디오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와 작화작가들을 연계시켜 장르와 스토리를 개발, 회사가 직접 관리하는 원작 저작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웹툰 내에 새로운 선순환 생태계가 전진 배치되고 있다.  

 

이제 콘텐츠 창작과 소비의 국가 간 경계는 없다. 또한 생태계 내의 요소별 공간과 연계구조의 잉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한 비즈니스 모델 경쟁과 정교한 저작권 관리 전략이 국내외 콘텐츠 생태계를 재배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9년부터는 스마트폰의 새로운 표준과 규격이 시도될 것이다. 폴더폰의 등장과 AI서비스의 진화가 뉴모럴을 규정할 것이다. 웹툰은 책에서 PC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디바이스 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수혜를 누린 콘텐츠산업이다. 이제 뉴모럴의 환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디바이스의 혁신은 웹툰의 소비유형과 경로를 어떻게 재부팅할 것인가? 우리는 진화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레이아웃을 선점하고 그 지도를 그려내야 한다. 자체전략으로 한국콘텐츠를 해외시장에 진출시킨다는 것은 결국 우리 또한 함께 세계콘텐츠를 호흡하고 소비하는 환경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콘텐츠산업을 혁신하고 견인하는 뉴모럴의 시스템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외환팀장으로 연기하는 김혜수는 대책회의를 하러 나서며 팀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정신차리자, 지금부터 우리가 시스템이야.”

 

콘텐츠를 기획, 생산, 제작, 소비, 투자하는 선순환의 생태계를 어떤 시스템에서 공유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시스템의 구조를 혁신하고, 누구나 신뢰하며 공평한 기회를 믿고 진입할 수 있는 시스템의 체계화, 한류는 이제 시스템이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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