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의 행위가 개별적으로 떳떳하다면, 개별행위들을 합쳐놓은 결과도 사회에 유익할 거라는 믿음은 우리 능력자 계층의 착각일 뿐이다.”


매튜 스튜어트가 <부당세습>에서 한 이 말을 오래 곱씹었다.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를 두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른바 86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항변을 듣게 된다. 불평등이 계급 문제라고 하면 주억거리지만, 세대 문제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 심리를 스튜어트는 정확히 파악했다. 이름하여 대항서사. 그 서사를 우리 식으로 풀면 이렇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건 오로지 실력 덕일 뿐이다. 알다시피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근근이 살아갈 만큼만 벌어왔다. 어머니의 현명함과 희생이 없었다면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다. 고액과외나 받아 보았겠는가, 부족한 과목만 학원에서 보충하면서 스스로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도 아르바이트와 성적 장학금으로 나왔다. 두루 내가 노력한 대가다. 


더욱이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사회 민주화에 이바지해왔다. 주변에 학생운동 안 한 녀석 없고, 여전히 운동성을 유지하는 녀석도 수두룩하다. 1억원 조금 넘는 연봉 가운데 후원금 명분으로 나가는 돈이 제법 되는 이유다. 그런데 왜 불평등의 원인이 우리 세대에 있다고 하나? 세대론을 들이대는 사람들 의도가 의심스럽다. 사회상층을 차지한, 특히 상위 1% 무리를 보라. 출발부터가 다르다. 실력과 노력으로 열매를 거둔 사람이 그 무리에 얼마나 되나. 금수저라는 딱지는 그쪽에 붙여야 마땅하다. 


자녀 문제에 이르면 핏대를 세우며 더 강한 대항서사를 써 내려간다. 재벌처럼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줄 게 없으니, 공부라도 제대로 시키려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유학도 보내고 입시 컨설팅도 받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널뛰는 입시제도 잘 활용했을 뿐이다. 융통성 있게, 네트워크 이용해 살아온 것일 뿐이다. 우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돈 있는 집안에서 하는 짓을 보아라.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말 그 사람들 너무 하더라.


지은이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집단을 능력자 계층이라 이름 짓는다. 대체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2016년 기준으로 적게는 120만달러(약 14억원), 많게는 1000만달러(약 12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진 계층이다. 능력자 계층의 소득수준을 보면 상위 9.9%에 해당한다. 흔히 사회 불평등 문제를 말하면 상위 1%를 지목해 그들을 악마화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를 집중적으로 늘려온 집단은 최상위 0.1%였다. 이 집단이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부의 22%를 차지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거머쥐고 잘 지켜낸 집단은 능력자 계층이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지만 최상위와 최하위 집단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했다. 더욱이 능력자 계층은 “이 모든 혜택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할 방법을 알아냈다.”


대물림 방법은 학벌세습이었다. 능력자 계층은 미국 대학 입시의 전형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꼭 공부만 잘할 필요는 없다. 동문 자녀 우대 정책이라는 에움길을 택하기도 했고, 체육특기자 선발을 이용하기도 했다. 스쿼시나 펜싱 같은 운동은 돈이 많이 드는지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쳐서 문제가 되기는 했다. 유명인들이 수십만달러에 이르는 뒷돈을 주고 자녀를 체육특기생으로 부정입학시킨 사건이 터져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학벌세습에 목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선 대졸자가 고졸 이하보다 70%나 돈을 더 번다.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오면 대졸자 평균보다 3배가량 연봉이 높다.


이 정도면 수치는 다르지만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과 재산은 우리 사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녀 대학입시 문제로 정치인이 공분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학벌세습으로 부를 대물림한다고 대중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도 능력자 계층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분노를 문제 삼는다. 최상위 0.1% 세력은 만연된 불평등에 좌절한 집단을 포획해 능력자 계층과 대립하게 한다. 허무맹랑한 분석이라고 볼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성공이 이를 입증한다. 보수세력이 대중을 사로잡아 개혁이나 진보세력을 궁지로 모는 전략으로 공정성을 들고나오는 우리 정치현실도 여기에 들어맞는다.


인류는 지위와 부를 혈연관계에서 대물림하는 세습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나눠주는 능력주의 사회로 전환해 왔다. 미국이 대표적인 성공사례였고, 우리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 능력주의는 덫이 되었다. 능력이 세습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능력자 계층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역시 능력자 계층으로서 불평등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은 점을 반성한다.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대재앙만이 불평등을 끝장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최상위층과 공모해 왔노라 고백한다. 나 또한 내가 포함된 86세대를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이철승이 말한 대로 “개인수준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수준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예는 비일비재”한 법이다. 공동체의 가치에 이바지했으나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강고해진 현실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할 따름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지은이가 한 다음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국혁명의 첫 세대는 대개 9.9%에 속했지만, 최상위층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혁명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중상위 계층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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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심형래씨가 1999년 영화처럼 만들어낸 영화 <용가리>(Yonggary)가 국내 배급은 물론 해외에 수출되었다. 해외에서는 국가에 따라 ‘용가리’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 위해 미리 이름특허까지 사전조율했다는 루머도 있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 현지 배우들을 제작에 참여시켰고,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특수효과에 투자했던 프로젝트다. 영화 엔딩크레디트에는 감독 심형래 스스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경험과 완성해 낸 자신의 성과를 자막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울컥함이 있었다. 물론 함께 영화를 본 당시 어렸던 딸은 아버지가 영화도 아닌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 내 반한감정과 반한류가 정치 문제와 연결되면서 재생산되고, 단교 수준까지 주장하는 우익집단의 협박에도 BTS의 지난 7월 일본공연은 일본 아미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틀 동안의 오사카공연 10만석이 매진됐다고 한다. 여성인권이 여전히 율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이슬람문화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10월 공연에서는 히잡을 쓴 6만8000명의 사우디 아미들이 열광했다. BTS 역시 노출을 자제한 무대의상을 입고 멤버들 간의 스킨십을 자제했으며 이슬람 율법을 고려해 사소한 동작과 발음에도 조심했다고 전해진다. <알라딘>의 지니처럼 콘텐츠에는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주문이 있나보다.  


1990년대생의 향수를 자극하며 20억원 후원을 이끌어낸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 프로젝트’


‘텀블벅’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일반 대중이 소액투자를 통해 좋아하는 콘텐츠의 완성을 만들어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라는 상품에 10월17일 기준, 23억원이 모였다. 시작할 때 목표액은 이미 초과됐는데 마감일이 6일이나 남아있다. 6만 명이 넘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 투자금액이 기록적인 규모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마감일에 지급되는 리워드, 즉 투자성과는 투자금액에 대비해 어떻게 구성될까. 막대한 투자금액에 공감해 확대된 9월30일자 리워드 수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슬리브형 3단 디지팩, USB카드형 음반 및 CD형 음반, 20페이지 북클릿, 키링 추가 증정, 사인엽서 3장 등 총 5종의 상품을 3만3000원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5만9000원 투자자에게는 이러한 상품세트를 2세트 지급한단다. 


<달빛천사>는 오래된 일본애니메이션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애니메이션에 더빙했던 일본인 성우가 중심인데, 강력한 팬덤을 구성하고 있는 그 성우의 목소리로 한국판 OST를 제작해 판매한다는 기획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아주 소박하고 오타쿠적인 팬덤의 목표여서 시작할 때의 목표금액도 3300만원이었을 것이다. 11월25일이 예상지급일인데, 소액투자한 팬들의 마음엔 모아진 금액도 기적일 터이지만, 지급될 상품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행복의 시간이란다. 크라우드펀딩을 기획·제안한 창작자는 국내 성우협회 소속 보이스 플랫폼이다. 일본상품의 불매운동 과정에서도 이 상품기획은 스스로도 놀라는 투자금액을 만들었다. 


우연히 찾은 강남 커피숍에서 한 연예인의 생일잔치를 조촐하게 준비하며 열심히 기념품을 진열하고 풍선을 꾸미고 있던 청년을 본 적이 있다. 휴가 중인 군인이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스타 생일을 위해 모든 일정을 생일잔치에 맞추고 있다고 했다. 느끼며 좋아하는 감성이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성을 만들고, 정주행으로만 직진한다. 이처럼 뜨거우면서도 절대로 눈치보거나 타협하지 않는 소소한 이성을 콘텐츠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설리가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소소한 이성이 건실한 응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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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스웨덴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스웨덴 예테보리도서전에서는 그랬다. 지난달 26일 예테보리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한국 측 연사는 모두 남성이었다.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 현기영 소설가 등이 무대에 올랐다.


스웨덴은? 아만드 린드 문화부 장관, 프리다 에드만 도서전 디렉터, 아넬리 레딘 예테보리 시장 등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39세 여성인 아만다 린드 장관은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출산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린드 장관이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에게 수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개막식날 저녁에 열린 리셉션에선 아넬리 레딘 시장이 축사를 했다. 축사 후 한국 작가와 기자들이 있는 테이블에서 그는 “스웨덴은 성평등을 많이 이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불평등이 남아 있다. 여성은 아직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자와 난민을 언급하며 “스웨덴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삶을 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레딘 시장에게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았던 게 있다면 어깨에 두른 ‘금사슬’이었다. 예테보리의 문장이 새겨진 금 휘장을 거대한 목걸이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남성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크고 무겁다”고 말했다.


2019 예테보리국제도서전이 시작된 26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전시·회의 센터에서 주빈국 한국관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이영경 기자


성평등 지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나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도서전의 주제는 ‘성평등(Gender Equality)’과 ‘미디어 정보 해독력’이었다. 주빈국인 한국관 주제는 ‘인간과 인간성(Human and Humanity)’이었는데, 나는 조금 의아했다. 성평등에 대한 요구는 근 몇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목소리였고 한국 문학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페미니즘과 퀴어 등 여성과 소수자를 다룬 문학이 많이 창작되고 있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에 이어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한국 문학과 문단엔 적잖은 변화가 일었다. 한국 문학은 ‘성평등’에 대해 누구보다 뜨겁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도서전에서 열린 ‘한국 문학의 페미니즘과 그 미래’라는 세미나엔 김금희 소설가와 김동식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김동식 평론가는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성 평론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더 적합한 여성 평론가를 갖고 있지 않은가. 한편 세미나 참여자들은 ‘#비혼’ 운동과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가수 아이린에 대해 질문할 만큼 한국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인간과 인간성’이란 주제에 대해 주최 측은 “‘성평등’을 인간 조건의 문제로 끌어안고자 했다” “도서전 주제인 성평등보다 ‘인간과 인간성’이란 주제로 더 근본적인 걸 건드렸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성’이란 주제가 포괄적일 순 있지만 지금 어떤 ‘인간’이 차별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못한다. ‘인간’이란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지워진 존재를 가시화하는 과정이 인권 확장의 역사였고, 지금 ‘젠더’는 ‘인간’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주최 측은 주빈국으로서 한국 문학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에 관해 분출하고 있는 한국 문학의 열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전에 참여한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휴먼(Human)은 그냥 맨(man)이야.” 한국 문학의 ‘주류’라 불리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이 말에 있지 않을까. 적어도 예테보리도서전에서 우리는 과감히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춤하는 제스처를 보여주고 말았다.


<이영경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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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경기가 열리는 기간에는 방송채널들이 경쟁적으로 중계방송을 편성한다. 다양한 채널에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중계하며 광고 경쟁을 벌이는데, 시청자들은 자신이 가장 선호하며 신뢰하는 채널을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그동안 자신이 자주 찾았던 채널을 무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의 시청 경험과 반복적인 선택의 결과가 선호 채널로 잠재된다. 이러한 선택행동 때문에 방송 플랫폼은 어린이 채널에 투자한다. 어린이 채널의 반복적인 시청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채널 선택의 우선적 변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BS가 첫 전파를 내보낼 때에도 ‘빛돌이’라는 캐릭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어린이 콘텐츠에 상대적으로 많은 투자를 했고, KBS와 MBC도 창사 초기부터 미국과 일본의 수입 애니메이션을 집중 편성하며 어린이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 포털사이트도 어린이용 앱을 경쟁적으로 출시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도 어린이 채널과 어린이 콘텐츠에 의미있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결국 어린이 채널의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은 언제나 미래 시장의 선점을 위한 의도적 투자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하루 광고 수주액보다 여섯 살 어린이의 유튜브 방송이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고수익을 올리는 상위 30대 유튜버 중에서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 장난감 등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영상의 채널이 2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 유튜버들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어린이 출연자에 대한 보호와 인권문제가 제기된다. 해외에서는 부모가 입양한 어린이들을 착취하며 의도적인 방송 영상을 연출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콘텐츠를 제작하다 적발됐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국내에서도 유튜브 출연 어린이에게 지나칠 정도의 연출 영상을 강요한 것이 입증되어 아동학대 수준의 법적 처벌이 내려졌다고 한다.


최근 구글 유튜브가 어린이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연관된 광고정보의 제공과 광고 노출 또한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구글이 광고 수익을 위해 13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한 혐의로 약 2000억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1000억원 상당의 어린이 콘텐츠 제작펀드를 조성하여 좋은 콘텐츠 제작에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구글은 유튜브에 2020년 1월1일부터 13세 이하 어린이 콘텐츠에는 광고 규제를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인공지능 엔진에 의한 실시간 검색으로 13세 이하 콘텐츠의 규제를 명확히 해서, 관련 제작사들에 맞춤광고 제공 및 무분별한 광고 편성을 금지하고, 어린이에게 도움이 되는 광고만을 선별적으로 허용할 것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기존 어린이 콘텐츠의 매출 및 수익이 30%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덧붙였다. 어린이 콘텐츠 제작사들에 대해 시장의 변화와 규제의 수준을 미리 대비하라는 공지였다.


정책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정책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 정책 수행과정에 나타나는 또 다른 부작용과 폐해를 관리해낼 수 있는 대책이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 유튜브라는 사기업의 반성과 자체 규제를 이끌어낸 미국 법원의 판결은 유효하나, 유튜브 광고특수로 수익의 대부분을 충당하던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또 다른 유탄을 맞게 되었다. 13세 이하 콘텐츠의 표현 기준과 규제의 수준을 사전학습하여 대비해야 할 시간이다. 14세 이상 콘텐츠만 기획하면 된다는 망상이 아닌 한국 특유의 유아 콘텐츠 시장을 지켜내는 대책이 필요하며 정부기관과 학계의 공조가 절실하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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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오직 인의일 따름인데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느냐는 맹자의 결기가 말이다. 젊은 날 <맹자>를 읽었을 때는 당당함이 돋보였다. 권력자 앞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양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모든 것의 가치가 오로지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맹자는 돈에 미친 시대를 건너게 해주는 지혜의 등대라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읽으면서 맹자 철학의 두터운 지층 가운데 한 켜가 철학 논쟁의 결과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맹자는 공자의 직계 제자가 아니다. 그는 제후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널려 있건만 들판에는 주려 죽은 백성의 시신이 널브러진 전란의 시대를 끝장내려면 어떤 철학이 필요한지 고심했다. 당대를 지배한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의 것을 섭렵하며 마침내 공자 철학에 동의했다. 그 철학을 이어나가되 비판하여 더 옹골찬 사유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맹자는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당장 전국시대를 사로잡았던 묵가와 싸워야 했다. 양주파 역시 그와 논쟁을 벌인 짝패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명가, 법가, 병가와도 논전을 벌였다. 맹자 이해하기가 뜻밖에 어려운 것은 철학사의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인데, 달리 말해 맹자를 읽다보면 백가쟁명의 동양 고대철학을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배병삼의 책은 바로 이 논쟁점을 돋을새김하여 맹자 철학의 고갱이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다 맹자와 맞붙은 쪽의 관점을 잘 해설해 놓아 두루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특히 묵가와 그 영향권에 놓인 고자와 벌인 치열한 철학적 전투는 흥미진진한 데다 다른 <맹자> 해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맹자 철학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하필왈리를 해설한 대목부터 묵가와 벌인 진검승부를 박진감 있게 풀이했다. 묵자 철학은 겸애로 수렴한다. 그런데 이 겸애하는 목적이 서로 이익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점은 주목하지 않는다. 겸상애(兼相愛)는 곧 교상리(交相利)다. 맹자가 보기에 이 철학이야말로 교정리(交征利), 그러니까 이익을 다투는 위기를 몰고 온 주범이다. 묵자는 “남의 나라 위하기를 자기 나라 위하듯 한다면 그 누가 자기 나라를 들어 남의 나라를 치겠는가”라고 말했다. 배병삼은 이 구절에서 위민(爲民)주의를 읽어낸다. “요컨대 겸애를 바탕으로 군주가 백성을 ‘위하면’ 백성의 수가 늘어나고 군사력이 강해지므로 결과적으로 군주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일 뿐이다. 배병삼은 맹자 철학을 위민주의나 민본주의라 여겨온 통념을 비판하면서 맹자는 한마디로 여민(與民)의 철학이라는 점을 설득력 높게 풀이해냈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부동심을 여쭙자 맹자가 직접 인용한 고자의 말은 교양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고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했다. 배병삼은 고자가 한때 묵가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 말을 묵가의 군사조직 원리에 기대어 풀이했다. 고자의 말은 상명하복의 피라미드식 조직이었던 묵가의 조직운영 원리인 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은 이해되지 않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가리킨다. 묵가에서 마음은 “생존을 위한 계산 능력”에 불과했으니,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는 계산하지 말라는 뜻이다. 묵가는 마음을 다양하고 변화가 심해 고정불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의는 외부에 있다는 의외론(義外論)을 펼쳤다. 반면, 맹자는 인의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제사에 쓸려고 끌고 가는 소가 부들부들 떨자 그 꼴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한 제선왕이나, 모르는 아이가 우물로 기어들어 갈 적에 선뜻 구해주는 것은 오로지 누군가 겪는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마음에 깃든 선한 것을 지키고 키우고 확장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세우자는 게 맹자 철학이다.


이 대목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고자와 본성론을 두고 벌인 격론을 이해한다. 고자가 “인성으로 인의를 만드는 것이 꼭 버드나무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외부에서 사람을 교정하는 제작적인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고자가 성은 용출수와 같다고 하거나, 생이란 성이라 한 것이나, 성은 식색의 욕망이라 한 것은 인간을 한낱 본능적 동물로만 보았기에 한 말이다. 맹자가 공자에 이어 주목한 것은 기희(幾希)다. 사람이 금수와 구별되는 극히 드문 그 무엇을 찾았으니, 차마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맹자 철학은 위태롭다. 고작 마음에, 그것도 드문, 그런데 고작 ‘차마’라는 부사어로만 표현될 것으로 여민의 세상을 이루고자 했으니.


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읽다보면 맹자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짐승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이루어내려면 어떤 방도가 있을까? 너도나도 지적 고투 끝에 방책을 내놓지만 결국에는 군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이르고 만다. 다른 길을 뚫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때 인의 가치를 신화적인 인물인 요순에 기대어 설파하는 공자를 발견한다. 맹자도 마음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발명하고 이를 널리 알렸으나, 권력자는 그의 철학을 외면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2300년 된 &lt;맹자&gt;라는 현을 다시 켜 살아있는 음을 내려는 배병삼의 고독 또한 느껴진다. 여전히 이익만을 내세우는 시대에 맹자의 목소리는 한낱 소음으로 들리겠지만, 십여 년을 바쳐 &lt;맹자&gt;를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해서 하는 말이다. 스스로 길을 낼 만한 인물이 아니라 자조한다면, 주저앉을 일이 아니라 길을 내며 남긴 발자취라도 따라가야 하는 법. 배병삼이 다시 연 맹자가 꿈꾼 그 길을 기꺼운 마음으로 걸어보자.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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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KPA)는 국제출판협회(IPA),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와 함께 개발도상국의 출판인들을 지원하는 퍼블리셔스 서클(Publishers Circle)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돈을 모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출판인들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출판 시스템과 운영방식, 저작권의 구매와 거래 방법 등을 교육한다. 퍼블리셔스 서클은 전 세계적으로 운영된다. 유럽의 출판사들은 아프리카의 출판사들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비상교육이 첫 번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다른 출판사들이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해방과 함께 설립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암사, 을유문화사 등이 내년이면 75주년을 맞이하고 한글세대가 주축이 되어 설립해 우리나라 출판을 이끌어 온 창비,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등이 반세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출판의 전통을 생각하면 KPA가 개발도상국의 출판사들을 도울 자격은 충분하다. 우리 출판사들이 그동안 책을 만들고 독자들을 만나온 경험들을 전하는 일은 지구촌 가족들이 더 좋은 내용의 책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이렇게 맺은 인연을 오래 이어가면서 아세안 지역의 출판사들과 폭넓은 교류와 깊은 우의를 다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저작권 보호와 거래의 기반이 되는 문학과 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6년. 협약의 초기 가입국인 독일이나 프랑스가 1887년, 일본은 1899년에 가입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늦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해외 저작권을 존중하는 쪽보다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데 훨씬 더 집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사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저작권 수출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누렸던 유예기간이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개발의 길에 있는 국가의 출판사들이 불법 복제를 통한 베끼기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고 작은 액수라도 저작권 거래를 통해 출판 콘텐츠를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이 오를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된다.


선진국이 환경오염, 노동자 저임금 등의 사다리를 타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후 개발에 막 나선 나라들에 강한 환경 및 노동규제를 시행하는, 즉 선진국이 타고 오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일은 숱하다. 혹시 이들을 불러 저작권의 중요함을 알리는 일이 이미 경쟁력을 갖춘 우리가 그들의 사다리를 없애는 일은 아닐까? 그들이 국제적인 출판 네트워크 속에서 그 관행을 따라 저작권료를 적절히 지불하면서 스스로 경쟁력이 있는 책들도 만들 수 있도록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을 한다. 트럼프의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중국과 이익을 다투면서 환경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이 미국의 일부 유권자들에겐 이익이 되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그래서는 보우소나루의 브라질이 추진하는 아마존 개발을 막을 방법도, 명분도 없다. 아마존 개발을 막지 않으면 지구의 허파는 불타버리고 산소가 부족한 지구에서 우리는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다. 당장 배불리 먹고 죽어 때깔이라도 좋기를 바라는 심산이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이렇게 빼앗아도 좋을까? 


KPA는 우리에게 돌아올, 혹은 선진국에 지불해야 하는 저작권료만 강조하지 않고, 이번에 참가하는 출판사들이 경쟁력 있는 책을 만들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음달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IPA 총회에서도 다룰 생각이다. IPA 총회에서 다룰 의제들과 심의 결과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러시아출판협회는 올해도 회원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러시아출판협회에 대한 자료들이 이들이 독립성을 갖춘 민간 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영향력 밑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지 않으면 회원으로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에 어긋난 회원국 중국은 역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사드 이후 한국 책을 한 권도 번역하지 않고 있다. 3년 넘게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도 묵묵부답인 이유는 출판사 차원에서 어찌할 수 없는 그네들의 구조 탓이겠지만 노력을 그만둘 수는 없다. 총회에서 만날 일본의 출판사들과 한·일관계의 경색을 넘어선 교류의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갖자고 제안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거대 출판사들이 지나친 이윤 추구로 인해 우리 대학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의제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낀 KPA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겨보고자 나름 분투하고 있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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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선 눈을 크게 뜨고 걷는 게 좋다. 빨강·파랑·노랑으로 칠해진 고전적 디자인의 문들에 정신이 팔려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오스카 와일드의 생가나 제임스 조이스 센터를 지나쳐 있을지도 모르니까.


노스 그레이트 조지 스트리트를 뱅뱅 돈 게 몇 번인지 모른다. 유심칩이 고장나 전화기가 먹통이 된 탓에 종이 지도가 유일한 의지처였다. 친절한 ‘더블린 사람들’에게 지도를 들이밀며 ‘제임스 조이스 센터’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매번 다른 답을 듣고 헤매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 제임스 조이스 센터의 위치를 확인한 결과, 바로 코앞에서 헤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고, 대문짝만 한 간판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도 끝에 제임스 조이스 센터를 찾았다. ‘유네스코 지정 문학 도시’ 더블린에 왔으면 대표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 센터엔 들러야 하지 않겠냐는 문학기자로서의 책무감 때문이었다. 제임스 조이스 센터엔 작품과 관련된 자료뿐 아니라 음악·미술 작품 등이 전시돼 있었고, 일상적인 낭독회나 투어,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인근엔 ‘더블린 작가 박물관(Dublin Writers Museum)’이 있었다.


과연 더블린은 문학의 도시였다.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오스카 와일드, <걸리버 여행기>의 조너선 스위프트, <드라큘라>의 브램 스토커, 노벨 문학상을 탄 예이츠, 사뮈엘 베케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더블린 출신이었다. 유럽 변방에서 오랫동안 영국의 억압에 시달린 고통과 결핍이 위대한 작가를 낳은 토양이 된 걸까.


하지만 시민들이 이웃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 센터를 모른다는 건 뜻밖이었다. 우리 역시 이상이나 김수영의 생가를 모르듯이, 유명 작가의 흔적이란 관광객들에게나 흥밋거리일까.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진 것은 다른 곳에서였다.


오스카 와일드의 생가 맞은편 공원엔 시건방진 표정으로 비스듬히 기댄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이 있었다. 당대의 스타였지만 동성애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고 비극적 말년을 보낸 와일드의 동상 옆으로 더블린 성소수자 단체에서 심은 나무가 있었고, 다른 쪽엔 그의 동화 <거인의 정원>을 재현한 놀이터가 있었다. 거인 형상의 미끄럼틀에 아이들이 올라타 천진스레 놀았다. 그 순간, 오스카 와일드는 책이나 역사 속이 아닌 더블린의 일상 속에 함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풍스러운 가게가 눈에 띄었다.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스위니 약국이었다. 172년 역사의 스위니 약국은 그 어렵다는 <율리시스>를 59번이나 완독한 머피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제자로부터 선물받은 한국어판 <율리시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무료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스위니 약국은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사회적 펀딩을 받고 있었다. 더블린의 문학은 박물관이 아닌 도시 곳곳에 숨쉬고 있었다. 문학의 역사가 도시에 살아 있으니 제임스 조이스 센터를 찾는 건 관광객의 몫일지도 모른다.


더블린 작가들의 흔적을 보다보니 한국 현실이 떠올랐다. 역사상 최초로 국립한국문학관을 짓고 있지만 부지 선정부터 자료 수집까지 쉬운 일이 없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자료는 소실되거나 흩어졌고, 친일 논란과 이념 갈등 속에 문학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무에서 유를 빚어내야 하는 것이 한국문학관이 직면한 현실인지 모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더블린 작가 박물관에서 준비 중인 여성 작가들의 전시였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속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였다. 더블린의 문학적 전통은 갱신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의 접점 속에서 끝없이 갱신되는 것이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관의 마주한 현실도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문학관 안에만 있지 않은 법이니까.


<이영경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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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발표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를 읽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가 이제 강고한 기득권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음 세대의 미래를 가로막는다는 분석에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지은이가 던진 질문은 등골이 서늘한 긴장을 느끼며 곱씹어 보았다. 지은이는 물었다. 386세대가 노동시장에서 고통받는 청년세대와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맞서 싸웠던 산업화 세대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민주주의가 터 잡았는데 왜 우리 사회는 더 잔인한 계층화와 착취의 기제를 발달시켰는가, 라고.


386세대는 반체제 지식인과 민중세력의 결집으로 권위적인 정치권력을 무너뜨렸다. 민주화 이후 386세대는 대거 직업정치인이나 전문관료로 변신했다. 지은이는 이를 ‘시민사회의 국가화’라 했다. ‘1987년 체제’라는 말은 386세대가 이룬 역사적 성과의 한 상징이다. 운도 따랐다. 1997년에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386세대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위기를 이겨내려고 자본은 구조조정의 칼을 뺐다. 윗세대가 경제영역에서 강제퇴역 당하고, 다음 세대는 아예 진입이 막혔다. 정보화 시대는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는 결정타였다. 정치와 경제, 시민사회를 장악한 386세대는 ‘이익 네트워크’를 이뤄내며 우리 사회의 확실한 지배그룹이 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386세대가 맞이한 화양연화의 시대는 찬란하나니, “다른 세대를 압도하는 고위직 장악률과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과 소득점유율, 꺾일 줄 모르는 최고의 소득상승률, 세대 간 최고의 소득격차”, 참으로 다 이루었도다! 라고 감탄할 만하다. 그런데 지은이가 또 물었다.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 놓고 내 자식이 신분제 사회의 상층에 오를 확률을 높이는 전략과,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만드는 전략 중 어느 쪽이 현명한가?”라고.


아무리 386세대가 득세한다고 하더라도 신분제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항변할 수 있을 터다. <불평등의 세대>는 이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지를 밝히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산업화 세대는 주로 1930년대생이다. 이들은 벼농사 문화에서 비롯한 신분제와 위계문화가 몸에 배었다. 그러다보니, 산업화 세대는 교육과 자산 투자를 통해 과거의 신분제적 위계를 재생산하거나 극복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화 세대의 불평등은 대물림되었다. 오늘의 노동 지위를 분석하는 틀로 지은이는 결합노동시장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고용형태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일터가 대기업인지 중소기업인지, 작업장에 노조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세 가지 기준을 내세웠다. 이 기준에서 두 개 이상을 충족하면 노동시장에서 상층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정규직-유노조의 조건에 들면 상층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20%가량이다. 대기업-비정규직-무노조는 중층으로 약 30%다.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는 하층으로 50%를 차지한다. 이 결합노동시장 지위가 중요한 것은 한 지위에 들어서 줄곧 그 상태를 유지하면 신분계급화의 초기 단계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세대의 노동시장 지위가 자식세대에게도 이어진다면 이를 세습화라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여러 지표로 새로운 의미의 신분제 사회가 닥쳤음을 입증했다.


이제 지은이의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386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난리냐는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젊은날을 희생한 세대다. 그런데 자본의 자유는 실현되었을지언정 일하는 사람의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나서야 한다. 이 예기치 못한 지옥도를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젊은날 목청껏 외쳤던 평등의 가치가 오롯이 실현되도록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지은이는 그 방법으로 “한국사회에 대한 386세대의 두 번째 희생”을 촉구했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불리한 자리에 놓인 다음 세대에게 최대의 기회를 보장하려면 386세대의 양보를 전제로 몇 가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임금 삭감, 임금피크제, 연금 혜택 축소로 마련한 돈으로 청년고용을 확대하자고 한다. 지금의 연공제는 불황일 때 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리고 고용을 동결하는 핑계가 되니 직무제로 전환해야 한단다. 그리고 증여나 상속에 따른 세금을 엄격히 집행해 그 일부를 청년세대 주거권 보장을 위해 사용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청년세대를 위한 복지국가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대안도 제시했다. (재)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취업 및 창업 알선기관을 확장해야 한단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정규직 위주의 유연화를 지양하잔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하여 “도발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담대한 젊은이가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호소한다. 지은이는 이 대안을 ‘사회적 자유주의’라 이름 붙였다. 고삐 풀린 자본의 횡포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회와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국가의 힘을 빌리자는 뜻을 담았다.


책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386세대는 과연 희생의 길을 택할까? 도리질만 했다. 지은이도 말했지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경우는 드물다”. 거기다 지은이의 대안은 자본계급의 양보가 포함되지 않았다. 일방적 양보를 택할 세대는 없다. 내가 보건대 세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역시 지은이도 말했지만, 다음 세대가 “386세대를 통한 대리정치를 끝내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데 있다. 청년세대가 정치세력화해 386세대를 압박해야 한다. 자기 세대에게 주어진 소명을 명예롭게 마치고 퇴장할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추방당할 것인지 택일하라고 말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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