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2.04.02 (42) 탈북 청년들 (1)
  2. 2012.03.01 (41) 배우 하정우
  3. 2011.12.23 (26)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서해성 작가 (1)
  4. 2011.12.22 (40) 배우 손예진
  5. 2011.11.07 (39) 성악가 조수미
  6. 2011.10.19 (38) ‘나는 꼼수다’ 김어준
  7. 2011.09.30 (25)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
  8. 2011.09.27 (36) 영화 ‘도가니’ 원작소설 쓴 공지영


 
ㆍ“주민등록증도 나왔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투명인간 취급 받죠”


서울 남산 기슭의 여명학교 지하 2층 미술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여러 그림들은 이내 숨을 옥죄며 가슴을 짓눌러왔다. 감옥, 창살, 총칼 그리고 절망스럽게 묶여 있는 자신의 몸. “아이들이 이곳에 왔던 초기에 그린 그림들이에요. 시점은 각기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죠.”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의 설명은 그림에서 배어나오던 어렴풋한 공포를 현실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탈북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게 잡을 손이, 기댈 어깨가 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이라도 하루빨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이현실 “북한 사투리 쓰니까 이상한 눈으로 봐요. 전화도 못 받고 자꾸 움츠러들어요.” 김제동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나도 처음엔 지하철에서 말 한마디 못했어. 엄마, 아빠 때부터 해왔던 말이잖아. 자부심을 가져.” 




김제동 = 와, 헤어스타일 멋있는데? 어디서 했어? 


강현수(20) = 미용실에서요.


제동 = 그런데 너무 잘생겨지진 마라. 이 아저씬 태생적으로 잘생긴 것들을 싫어해.


정재석(21) = 아저씨도 괜찮아요. 


제동 = 됐어. 그렇게 위로 안해도 돼. 그런데 내가 나온 프로그램 많이 봤냐? 요즘 별로 안 많아서 보기 힘들었을 텐데. 


재석 = 웬만한 건 다 봤어요. <무한도전>에서 재판하는 것도 봤고. 


제동 = 쓸데없이 그런 걸 보고…. 여자친구는 있냐? 


재석 = 네. 있어요. 


제동 = 어라. 이러면 나보다 훨씬 나은데? 남한 사회에서 넌 나보다 훨씬 적응을 잘한 거야. 어떠냐? 힘든 것 많지? 


재석 =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두렵고 사회 진출하는 것도 걱정되고. 특히 실력이 많이 모자라니까요.


제동 = 뭘 하고 싶어? 


재석 = 외교관요. 


제동 = 좋아. 그런데 왜?


재석 = 통일된 뒤에 특히 의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제동 = 혹시 외국에 가본 적은 있니? 


재석 = 중국이랑 태국요. 감방에 있어서 구경은 못했습니다. 하하하.


제동 = 웃지마. 짠하다.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어? 


재석 = 5년요.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여기 와서 중학교 다녔는데 처음엔 좋은 선생님 만나 괜찮았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간 뒤 환경이 바뀌고 공부도 어렵고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었어요. 열등감이랑 자괴심도 생기고. 투명인간 같은 취급 받고. 난 누군가 싶고 그랬어요. 결국 학교생활 못 버티고 자퇴했어요. 주민등록증도 나왔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그 대열에 끼지 못한다는 자괴감이죠. 어떤 분들은 나라에서 돈 다 대줘서 공부시키고 먹이고 재워주는데 왜 열심히 안하냐고 해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내 편도 없고.


제동 = 여기 와선 어때?


재석 = 처음엔 기대 안했어요. 고등학교 과정이라도 마치자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이젠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됐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깡촌에서 대구로 전학을 갔다. 저들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당시 촌놈이 대구에서 적응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몇 개월 동안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기죽기 싫어서 매일 입었던 옷은 체육관 도복. 힘들어도 누군가와 같이하면 좀 낫지만. 하지만 힘든 일은 그 자체보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더 큰 상처를 준다. 


▲ 과거

“중국에서 공안이 다가올 때 그 공포는 말도 못해요…

다시 생각하기 싫죠”


▲ 현재

“명동에 갔는데 우리 보고 조선족은 설치지 말래요

울면서 돌아왔어요”


▲ 미래

“남다른 경험 글로 쓸래요… 저처럼 상처받은 이 보살피는

사회복지사 되고 싶어요”



“남한 사람·북한 사람에서

남한·북한 떼면 결국 사람 문제

그걸 잊지 않고 사는 게 중요”



현수 = 전 적응은 비교적 괜찮았는데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고등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마치고 싶었지만 중간에 그만뒀어요. 시간은 지나고 성인은 되어가는데 어느 순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리로 왔어요. 막상 해보니 대학도 가고 싶어요. 


제동 = 뭘 하고 싶어? 


현수 = 헤어디자이너요. 


제동 = 너 보니 딱이다. 남이 깎아줘도 머리 이렇게 손질하고 정리하기는 쉽지 않아. 간지 난다. 친구는 뭐 하고 싶어? 


박혜정(20) = 전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실력이 부족한 게 고민이긴 하지만. 


제동 = 고민할 것 없어. 좋아하는 것 하면 돼. 아저씨는 돈 많이 벌었어. 이런 이야기 들으면 짜증나지? 아저씨도 반지하에 살았고 열여덟 살부터 내가 학비 벌었어. 지금도 생각나. 그때도 아저씨는 사회 보는 게 좋았고 남 앞에서 말하는 게 좋았어. 그런데 그게 꿈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때 하고 싶은 건 관광가이드였어. 전문대 관광과를 간 것도 그 때문이지. 내가 보기에 너희들이 하는 고민은 스무 살 또래의 남한 아이들이 하는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아.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야.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이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겠다 싶은 것. 그 일을 찾아가다 보면 돈은 따라와. 돈을 앞세우면 행복은 뒤에 안 따라와. 남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면 마지막에 행복하지 않아. 자기 가슴이 뛰고 좋은 일 있지? 그걸 해야 돼. 


혜정 = 주변에 꿈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굶어야 된대요. 배고픈 직업이라고. 전 그냥 제 실력이 고민인 건데. 


재석 = 얘 엄청 먹어요. 


제동 = 하하하. 배고픈 직업인데 엄청 먹어서 고민인 건 아니잖아. 배부른 직업 가지고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 많아. 세계가 다 그래. 글쓰고 싶은 게 돈 벌고 싶은 건 아니잖아? 누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거지. 그걸로 충분해. 간절하게 쓰고 싶고 읽히고 싶고. 그럼 글은 나와. 


혜정 = 저쪽에서 살던 경험도 있고 여기 경험도 있으니까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또 북에선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젠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해요. 가슴 아팠던 경험들, 남한으로 넘어올 때 힘들었던 과정들. 


제동 = 뭐가 제일 힘들었니? 


혜정 = 위험했던 모든 순간들이죠. 밤에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건너다녀야 했고 이리저리 빠지고 뒹굴며 수도 없이 다쳤어요. 중국에선 신분증 검열하는 공안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다가올 때 그 공포는 말도 못해요. 탄로나면 북송되는 거거든요. 제가 하나님을 전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고 외쳤어요. 


제동 = 그때를 생각하기도 싫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녀야했겠다.


혜정 = 다시 생각하기 싫죠. 그리고 거의 굶었어요. 짐이 무거우면 이동이 불편하니까요. 올 6월이면 만 2년이 돼요. 


제동 = 애썼다. 그런 힘든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할 필요없이 살 수 있었다면 가장 좋은 일인 건데. 그렇지만 작가를 꿈꾸는 혜정이 너에겐 이 아픔도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어떻게 너희들이 겪은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혜정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돼요. 


제동 = 좋아하는 작가는 있니? 


혜정 =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도 감동적이었고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열심히 봤어요. 


이현실(19) =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습관이 안돼서 힘들어요.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어야 하는데 갑자기 한국에 와서 읽으려니까요. 


제동 = 억지로 읽으려고는 하지 마. 재미있어 보이는 것, 마음이 당기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 야한 책이나 연애소설도 보고 그래야지. 현실이도 진로 문제가 고민이니?


현실 = 고3이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대학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남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요. 


제동 = 어떤 부분이 힘들어? 


현실 = 말투요. 북한 사투리 쓰니까 이상한 눈으로 봐요. 공공장소에서는 전화도 못 받고 자꾸 움츠러들어요. 이어폰 끼고 음악만 듣고요.


제동 = 하긴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나도 처음엔 지하철에서 말 한마디 못했어. 그런데 내가 태어나서 배운 말이고 엄마·아빠 때부터 해왔던 말이잖아. 그거 자부심 가지고 써도 돼. 


현실 =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조선족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전에 명동 상가에 갔는데 우리 보고 조선족은 설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울면서 돌아왔어요. 굉장한 상처였어요. 


제동 = 그때 기분이 어땠니? 


현실 = 북한 사람도 중국 사람도 다 사람인데 왜 차별할까 싶었어요. 


혜정 = 우린 정체성이 불명확하잖아요. 북한도 남한도 아니고요. 


현실 = 자꾸 그러다보니 나는 왜 북한에서 태어났나 싶고…, 자신감이 떨어져요.


제동 =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이념으로, 다른 잣대로 가르는 것은 폭력이야. 조선족이니 새터민이니 하며 가르고 종북좌파니 빨갱이니 지칭하고. 정말 폭력이지. 욕을 먹으면 화가 나는 건 괜찮은데 자기도 모르게 자책이 들어. 그런데 그건 잘못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야. 어떤 사람이 화가 나게 해도 절대 그 말이나 기분에 묻혀 있지 마.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겨. 그래야 내가 편한 거야. 욕 해놓고 그 사람은 잊어. 나만 짜증나. 고민하고. 누구 손해니? 이건 내 말 들어도 돼. 나 내년이면 마흔이거든.


쓰리고 아팠다. 이 아이들이 받은 짓밟힘과 상처를 내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친구, 이웃이 강제로 북송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거리로 뛰쳐나간 아이들. 사람들 앞에 서서도 목놓아 울지 못하고 숨죽여 흐느꼈던 아이들. 


제동 = 음악은 뭘 듣니? 


현실 = 옛날 노래요. 주로 발라드 들어요. 지금 나오는 댄스는 정신 사나워서. 


제동 = 나도 옛날 노래가 좋아. 우리 엄마는 TV에서 가수들이 랩하는 걸 보면 그러셔. 아이고, 야야. 쟈들 숨은 언제 쉬노? 저러다가 아~들 잡겠다. 가수는 누구를 좋아해? 


현실 = SG워너비랑 나몰라 패밀리요. 


제동 = 언제 왔니? 


현실 = 1년 좀 넘었어요.


제동 = 뭐가 되고 싶어? 


현실 = 사회복지사요. 봉사하고 도와주면서, 내 안에 있는 상처도 치료하고 싶어요. 


제동 = 제일 힘든 건 뭐야? 


현실 = 남한에 전 혼자 있어요. 가족 생각, 고향 생각 많이 나죠. 엄마가 보고 싶고 고향에 가고 싶고. 엄마는 북한에 있거든요. 


제동 = 엄마 소식은 아니? 


현실 = 전에 엄마가 국경에 가서 한 번 통화한 적이 있어요. 엄마 목소리 들으니까 눈물이 쏟아지려는데 엄마가 더 울어요. 그러니 울 수가 없잖아요. 괜찮다고 억지로 씩씩하게 말했죠. 


현실이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듯했다. 울음을 꾹꾹 삼키는 그의 입술과 눈물을 찍어내던 그의 손이 계속 애처롭게 떨렸다. 


혜정 = 처음엔 우리 모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어요. 감정 표현이 안되더라고요. 


제동 = 그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매순간 위로하고 살자. 이건 명백히, 전적으로 어른들 잘못이야. 그리고 우리가 잘해서 다음 세대엔 이런 거 물려주지 말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치유를 해줄 수 있어. 현실이는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 것 같아? 


현실 =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요. 


제동 =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줘. 그러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어. 현수, 넌 여친 없어? 


현수 = 공부하려고요. 


제동 = 여친 있다고 못하냐? 난 없는데도 공부 못했다. 


재석 = 정말 없어요? 


제동 = 있으면 내가 이 시간에 여기서 차 마시고 있겠냐? 


현수 = 우리 학교 선생님 괜찮은데.


재석 = 저희 때문에 노처녀 되신 것 같아서 저희가 책임져야 할 것 같아요. 만나 보실래요?


제동 = 왜 너희 때문에 청춘을 버려? 너희와 함께 청춘을 보람되게 보내고 계신 건데. 원래 일방적인 관계란 건 없어. 엄마가 애 키울 때 젖 먹이고 똥오줌 기저귀 갈아주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어? 사실은 아이보다 훨씬 기쁨을 얻는 게 누군데. 방긋방긋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엄마가 큰 기쁨을 얻는 건데. 지금 너희들이 그런 거야. 아프면서 자라는 거라 생각해. 자책하지 말고, 나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건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문제다. 미래를 함께 해나갈 이들 또래끼리 도우며 헤쳐나가야 한다. 남한 사람에서 남한 떼고, 북한 사람에서 북한 떼고 남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고 그걸 잊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떤 가치나 이념도 사람에 우선할 수 없다.


제동 = 연예인은 누구 좋아하니? 


현수 = 투애니원 산다라박요. 


재석 = 전 김제동!!


제동 = 넌 유엔 사무총장 될 거야, 하하. 


재석 = 그런데 <오마이텐트>는 왜 그만두셨어요? 


제동 = 그런저런 사정이 있었어. 


재석 = 나중에 다시 하면 같이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리고 한혜진씨 사인 한 장 받아주세요. 


제동 = 흠. 이제서야 본마음을 드러내는구나. 


현수 = 전 오로지 산다라박이에요. 


혜정 = 전 소녀시대 윤아요. 


현실 = 장근석이랑 소지섭이 좋아요. 


재석 = 혹시 김태희랑은 안 친하세요? 


제동 = 야. 너 점점? 내가 효리 사인은 받아다 줄게.


16세에서 25세까지, 65명의 학생이 몸담고 있는 작은 공간이 여명학교다. 탈북, 남한 정착 과정에서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일반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초·중·고 과정을 공부한다.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절반 이상이 당뇨와 빈혈을 앓고 있다. 체구가 또래의 남한 아이들보다 대체로 작을 뿐 이들의 관심사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다. “유재석 봤어요?” “이효리랑 진짜로 친한 거 맞아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는 정말로 지나가다가 그냥 나온 거예요?”


볼품없는 내 얼굴에 제 볼을 부벼대며 찍은 사진을 보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맘 같아선 머리카락 뽑아 내 분신을 여러 개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이효리는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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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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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픈아픔 2014.12.20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점점 퇴보되어 가고있는것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탈북단체들의 삐라살포에 무조건적인 종북몰이를 해대는 종편방송이야말로 진짜 김정은보다 더한 악질인것 같더군요? 저런 개념있는 탈북청년들이 있어야 대한민국이 살수있다는것을 느끼게됩니다!


 
ㆍ“연애는 신이 주신 선물이자 저주 같아요”


‘짐승남!’ 사람에 따라 이 단어에 어울릴 만한 이를 제각각 떠올리겠지만 나는 하정우(35)만한 다른 짐승남을 떠올리기 힘들다. <용서받지 못한 자>나 <추격자>에서 <황해>나 <범죄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당하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진짜 남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진짜 남자, 진짜 수컷의 냄새. 그가 그동안 영화 속에서 맡았던 역할들은 화려해 보이거나 멋져 보이는 것과 거리가 먼데도, 이 시대 가장 멋진 남자 배우로 그를 서슴없이 꼽을 수 있는 건 ‘진짜 수컷의 냄새’ 때문인 것 같다. 궁금했다. 그 안에 있는 수컷의 정체가….




 

김제동 “전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야 할까요?” 하정우 “선배님은 비욘세 같은 여자랑 잘 맞을 것 같아요. 내면의 야성, 수컷 같은 느낌을 꺼내줄….” _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범죄와의 전쟁>에서) 욕도 아주 ‘찰지게’ 하시던데…. 중국집에서 소주로 입 헹구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진짜 술꾼들만 할 수 있는 건데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전에 기사식당인지 어디선지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강렬한 인상을 받고 나중에 꼭 써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요란스럽지 않고 잔잔한 방식으로 상대를 완전히 깔아뭉개는 거잖아요. 정말 확 와 닿더라고요.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러브픽션>은 완전 다른 느낌의 영화던데요. 두 작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낙차가 커서 오히려 더 흥미를 갖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둘 다 워낙 오래전부터 준비됐던 거라 가능했죠.”


- 한 배역에서 빠져나오려면 오래 걸린다고 하잖아요. 어떠세요.


“영화 캐릭터의 습관이 일상에 배다 보면 힘든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바로 바로 다음 작품을 연결해 진행해서 그런지 큰 후유증은 없어요. 굳이 꼽자면 <황해> 찍을 때였어요. 11개월간 촬영했는데, 구남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 캐릭터가 어느 시점부턴가 제 일상에 침범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말투도, 욕도, 밥먹고 화내는 방식도. 그 습관들을 버리느라 힘들었어요. 보통 메이크업 지우고 거울을 보면 현실로 돌아왔구나 싶은데 구남이는 수염을 기른 상태로 있어야 하니까 세수해도 안 지워지잖아요. 그 느낌. 지루했어요. 그래서 당시엔 양수리든, 대전이든 웬만한 거리의 촬영지는 다 집에서 출퇴근했어요. 낯선 여관에서 자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하정우는 최근 개봉한 두 영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조폭과 연애에 매달리는 ‘찌질한’ 남자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그의 변신능력이 기가 막힐 정도다. 조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예전에 조폭들 모임에 사회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양쪽 계파가 모였던 행사장. 씩 웃으면서 “웃기든지, 손가락 잘리든지 알아서 하쇼”라고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싶은 마음에 무대에 올라 “문신 콘테스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을 사람 몸에서 다 봤다. 잘 보이지 않는 겨드랑이 밑에 거북이를 그려넣었던 한 조폭의 설명. “거북이는 습한 데를 좋아한다.”







▲ “남자답다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과 통하는 것 같아요”


▲ “결국 그건 인간다움, 여성다움과도 다 통하는 것 같다. 난 요즘 방전됐다는 느낌이다. 다 집어치우고 사랑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 김제동






- <러브픽션>은 연애에 따르는 순차적인 감정의 변화를 묘사했잖아요. 그런 건 감정이입이 잘되나요. 


“낯섦은 없어요. 연애는 신이 주신 선물이자 저주 같아요. 사랑하는 순간 그 사랑을 갖기 위해 무모하게 도전하잖아요. 정작 갖는 순간은 그 맛이 떨어지고. 이 비극적인 감정이 어디 있어요. 감정이 식어가는 것에 대해 남자는 자꾸 명분을 찾게 되죠. 영화에선 포인트가 겨드랑이털이었던 것 같고요.”


- 남자는 그래요. 나는 순정적이고 문제없다. 그런데 그냥 헤어지면 내가 나쁜 놈 같다. 그래서 명분을 찾나 봐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이 영화하고 굉장히 비슷해요. 못 믿으시겠지만 저도 연애를 해봤는데 명분을 찾게 되는 감정상태까지 가기 전에 다 차였어요. 스태프들이 제 별명이라고 붙여준 게 전형적인 ‘고미오빠’래요. 고맙고 미안한 스타일. 


“새로운 걸 배웠네요. 전 뭔가 시작 전에 끝내든지, 끝장을 보든지 그래요. 중간 단계는 없는 것 같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먼저 고백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되겠다 싶으면 계속 가고, 안되면 멈추죠. 그런데 표현에 있어선 열려 있고 유연해야 해요. 뻘쭘해하면 안돼요.”


-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전 저쪽에서 아니다 하면 ‘찌질’해지기 싫고, 한편으론 저쪽의 확신이 없는데 내가 표현하는 건 이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면 편하게 해줘야 한다 싶고….


“그러면 안되는데….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일단 결실을 맺고 편하게 해줘야지, 그 전에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 편하고 좋은 오빠로 오래 보고 싶대요. 너랑은 맺어지고 싶다는 거 아닌가요.


“아름다운 거절이죠. 저도 예전에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어쨌거나 맘에 드는 사람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미숙해지기 마련이죠.”


- 선생님!(좌중 폭소) 그럼 전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야 할까요.


“팜므 파탈 같은 느낌? 비욘세 같은 여자랑 잘 맞을 것 같아요.”


- 왜죠?


“선배님 안에 있는 날것의 야성. 그걸 꺼내줘야 해요. 그것만 나오면 다 통할 것 같은데요.”


- 날것의 야성, 수컷냄새. 이런 건 정우씨를 지칭하는 단어 아닌가요. 전 정우씨 영화를 볼 때마다 궁금했어요. 도대체 저 안에 있는 수컷의 정체는 뭘까 하고요. 남자답다는 게 뭐죠.


“글쎄요. 설명하기 참 어려운데…. 남자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것과 통하는 것 같아요. 떳떳하고 바르고 진정한 것, 그래서 당당할 때 남자다움이 펼쳐지는 거라고 봐요. 남들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고.”


-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죠. 결국 그건 인간다움, 여성다움과도 다 통하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전 요즘 방전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 집어치우고 사랑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이번에 영화 찍으면서 최민식 선배에게 무척 감사했어요. 그동안 현장에서 나에게 뭔가 이야기해주고 혼내기도 해주는 사람, 기대고도 싶은 그런 사람이 간절하게, 무의식적으로 필요했어요. 그러던 차에 든든했죠. 난 그저 따라하기만 해도 되겠구나 싶었고. 어른의, 선배란 존재의 고마움을 느꼈던 작업이었어요.”


- 심리적으로 기대고 싶던 시점에 최민식 선배가 정확하게 나타난 거네요. 똑같은 노래를 들어도 훅 다가오는 느낌이 있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그런가 봐요. 주현 선생님에게서도 그랬어요. <구미호가족> 할 때 저를 챙겨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셨거든요. 전 제 분량 없는 날도 세트장에 가서 선생님과 시간을 보냈어요. 근처 선술집이나 밥집에서 밤새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죠.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또 선생님이 제 나이에 어떻게 하셨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제겐 어마어마한 가르침이었죠.”


- 그렇게 해주는 분도 흔치 않죠. 어쨌든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정우씨가 가진 그릇의 크기이자 복이죠.


“맞아요. 아버지도 배우니까 아버지 생각도 나고요. 저희 아버지도 촬영장에서 심심하고 외로우실 것 같거든요.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최민식 선배가 가끔 그 말을 쓰는데 그게 가슴에 팍 와요.”


- 연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아버지가 서른 셋에 결혼해서 가족들 건사하면서 작품활동하신 거죠.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겠다 싶어요. 점점 아버지를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드라마 <서울의 달>을 하던 당시 민식이 형이 제 나이였고, 아버지가 민식이 형 나이였대요. 참 짠하고 묘해요. 연민 같은 것도 있고.”


- 존경과 동시에 따라오는 거죠. 엊그제 한강엘 갔다가 ‘강’이라는 시를 봤어요. 강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있는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 죽 내려오고 있는 정우씨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물길을 찾아가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정우씨가 트고 싶은 물길은 어떤 건가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데…, 이순재 선생님 연세나 아버지 연세 때까지 거침없이 연기하는 배우였으면 해요. 롤 모델을 찾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영화에 대한 지금 감정은 어떤가요.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만큼 영화를 통해 상처받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많죠.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것을 할 수 없어요. 감독의 오브제로서. 거기까지인 거예요. 열정과 창조적인 것을 뿜어내고 싶어도 감독의 편집, 의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내가 뭘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오는 한계를 인정하고 작업해야 하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있죠. 그리고 역할이 커지고 위치가 달라지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해요.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그게 오해를 받거나 무시당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마다 괜한 짓 했다 싶고 내 밥그릇만 챙기자 싶은 마음을 먹게 돼요. 그런 게 힘들고 맥이 풀리는 일이죠. 게다가 뭘 몰랐을 때는 마음 편하게 연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는 알고 싶지 않은 것,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다 보면서 해야 하는 게 힘들죠. 결국 사람과 지내는 관계에서 힘든 부분이 나오는 거죠.”









▲ “서른 셋에 결혼해 작품활동 하시며 가족 챙기시던 아버지를 이제 알아가고 있어요”

▲ “존경과 동시에 따라오는 것 같다. 아버지로부터 죽 내려오고 있는 정우씨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물길을 찾아가는 거잖아요.” - 김제동






하긴 연애든 삶이든 인생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몰라도 되는 걸 알았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과 무기력감.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에 발 딛고 살아가는 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 좋은 영화다 싶은데 관객이 외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건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반대로 만듦새가 이상하고 아닌 것 같은 영화가 있는데 이상하게 잘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역시 이유가 있죠. 스토리나 기술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걸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인생철학 등이 다 연결돼 있는 거거든요. 그런 거 보면 영화는 사람과도 같은 거예요.”


- 그런데 한 명이라도 영화를 보고 마음에 변화가 있고 감동했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이고요.”


- 한 감독님과 여러 작품을 많이 했어요. 윤종빈 감독도 그렇고, 나홍진 감독도 있고.


“그분들과는 좋은 영화가 어떤 건지, 좋은 연기가 어떤 건지에 대한 생각이 일치해요. 그러다 보니 연달아 작품을 함께하고 있는 거고요.” 


하정우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식물이 되는 느낌이란다. 자신을 달구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존재, 모든 것이 휩쓸리듯 속도감 있게 들고 나는 현실에서 자신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가 그림이란다. 처음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들이 볼까 창피해하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그 자체의 가치와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단점에 연연하지 않고 장점을 통해 자신감을 찾는 에너지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용기이고 치유라고 하잖아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런데 막상 하려면 어렵기 때문에 끊임없이 단련하고 소화하면서 살아가는 거겠죠.”


- 살다 보면 내 모든 것을 받아주고 알아주는 내밀한 지지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우씨에겐 그게 뭔가요. 


“늘 변하지 않는, 어렸을 때 친구들이요. 종교도 그렇고. 기도할 때가 참 좋아요.”


- 전 한 여자의 내밀한 지지를 받고 싶어요. 흑, 저 어쩔 수 없나 봐요.


“아녜요. 그것도 중요하죠. 남자가 돈 버는 목적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결실을 맺는 것 아닌가요? 결국 남자가 돈 벌어서 어디다 쓰겠어요.”


- 그런 거죠? 그런데 정우씨가 여성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뭔가요.


“유머감각? 제가 말발이 좋아요. 선수기질이 있대요.”


- 말을 참 ‘찰지게’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자기 주도권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거죠. 사람을 다가오게 만드는 능력이랄까?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그러니까 능력이 배가되는 거죠.


“흐흣, 감사합니다.”


- 에잇. 짜증나서 그래요. 도대체 뭘 안 갖췄나 싶어서요.


“학교 다닐 때 과회장이었어요. 연극영화과에 다녔는데, 다들 연기에선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 거잖아요. 그 앞에서 장난치고 밑도끝도 없는 말을 던지는데 다 빵빵 터져요. 내가 개그 쪽에서는 뒤지지 않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한번 탄력받으면 회의를 다섯 시간씩 한 적도 있어요.”


- 원래 유머는 80%가 뻥이에요.


“<범죄와의 전쟁> 찍을 때도 장난하고 싶은 욕망이 제어할 수 없게 올라왔어요. 해서는 안될 장난들도 쳤고.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어마어마해요.”


하정우는 입이 떡 벌어지고 상상을 초월할 만한 장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금연 표시가 돼 있는 카페의 내부를 쓱 훑어보다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건네온다. 


“선배님. 우리 실수로 한대 피워 볼까요?”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이 매혹적인 권유를. 그가 불을 붙여주는 담배를 빨아 물며 물었다.


- 낮술 좋아해요?


“정말 낭만적이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죠.”


- 주량은요?


“소주 3병 정도? 서래마을 사시죠? 제가 낮술하러 한번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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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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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넘게 경향신문에서 ‘김제동의 똑똑똑’ 코너를 진행해온 방송인 김제동씨와 한겨레의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 진행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사진 왼쪽)·서해성 작가(오른쪽)가 한자리에서 만났다. 중간다리를 놓은 건 양사의 담당기자들이었다. 말하자면 ‘말품’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품앗이’ 자리를 만들자는 의도였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교수 작업실에서 3시간 동안 이뤄진 이날의 인터뷰는 때로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날선 비판이 어우러지며 불을 뿜었다. 한마디로 ‘유머’와 ‘직설’로 그린 우리 시대의 ‘걸개그림’이었다.



난 ‘먹물’들에게 거부감이 있다. 이 땅의 서민들보다 높은 시선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겪어보지 못한 삶에 알량한 이론과 얄팍한 동정심을 투영해 분석하고 판단하는 무리들. 고만고만한 ‘먹물’들끼리 어울려 세상을 다 꿰뚫고 있다는 듯 얘기하는 걸 보면 미안하지만 반감부터 생겼다. 당신들이 펼치는 ‘말의 성찬’이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 가슴까지 적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겨레의 ‘직설’도 내가 가진 프레임으로 볼 때는 그랬다. 지난해 ‘노무현 관장사’ 파문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그 코너 말이다. 한홍구 교수는 명문가에서 나고 자란 대표적인 역사학자이고, 지주집안 출신이라는 서해성 작가는 대한민국 운동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먹물에 대한 내 편견과 반감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적어도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가락양말을 신은 서 작가와 산신령처럼 기른 턱수염에 한복을 차려입은 한 교수는 같은 작업실을 쓰며 함께 살다시피하는 ‘소울 메이트’다. 그러나 한편으론 면박과 핀잔을 주고받으며 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톰과 제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분들을 만난다고 했을 때 혹자는 그랬다. ‘구라빨’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만나 ‘구라로 일합을 겨루는 장’이 되지 않겠느냐고. 그 말의 이면엔 주제와 수준을 따지자면 네가 명함을 내밀 자리가 못된다는 우려가 담겨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 교수에게 F학점을 받았다. 수업을 한번도 못들어갔기에 얼굴을 대면한 것도 처음이다.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바둑판이었지만 저잣거리에서 십수년간 단련된 ‘맷집’을 믿어봤다. ‘쪽수’에 밀렸기 때문일까. 질문보다는 대답하기 바빴다. 



김-종로구 재동이네요. 한선생님. 저한테 에프주신 분 하고 친한척 하려니.

한-그러게 나도 친한척 하려니. 에프준 학생하고 마주 앉아보니까. 

김-전 전문대 11년 다녔거든요. 그때 그 학교 앞에
올에프라는 술집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 에프에 에이가 두개였어요. 관광영어와 관광레크리에이션. 관광레크리에이션은 선생님이 저한테 배웠습니다. 관광영어는 외국인 선생님이었는데 에이주셨죠. 그 두분에게 일부러 에프달라고 찾아간 적 있어요. 올 에프 성적표를 가지고 가면 석달간 술이 공짜였거든요. 그래서 정정기간에 에프달라고 했어요. 기왕 먹은 학사경고. 




서-나가수 말인데요. 실패했는데 기회 안주는 것도 문제 아닌가요?

김-제가 어제 범죄 심리 담당하는 분과 술을 먹었거든요. 그분 말씀 중 와닿는 게 보통사람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기회를 더 주자 하면 공감했을 텐데 김건모라는 가수는 기득권의 전형, 이미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제 상황에 대한 변명이라면. 동네 노래방에서 노래 너무 잘하는 형인데 되게 좋아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잘보이고 싶어 노래 열심히 하는데 동생입장에서 보니까 막판에 오바를 한거죠. 그래서 이 형 한번만 더 시켜주면 안되겠냐. 처음 녹화였으니까. 그 이야기였는데, 저는 상처받았던게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어떻게 그걸 깰 수 있냐. 처음에는 반발했죠. 이것까지 떼붙이나. 그런데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워낙 전체적인 분위기가 원칙과 상식을 지키지 않는 분위기니까 '여기서만이라도 이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겠죠.

서-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가수를 재미있게 생각했던 이유는 슈스케처럼 아마추어들이 경쟁하는 건 있지만 이른바 시장 상품으로 인정된 사람들이, 그러니까 대중문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경쟁하는 것은 방송에서 뿐이죠.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 현장평가를 받고. 재벌들도 그렇게 공정해봐라,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피디라면 처음 떨어뜨리기 때문에 탈락시키기 힘들겠다 싶더라. 

한-난 떨어뜨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건 탈락대상을 주는 거잖아. 프로그램 대상 자체가 달랐으니까, 기득권자도 탈락할 수 있는 것이 재미인데 그게 헝클어지니까. 거기에 대해 불만같은데.
 
서-일반적으로 봤을 땐 유명한 대중연예인이 같이 다니니 잘 몰라요. 일반인이 어떤심리 가졌는지. 일은 저질러졌어. 수습이 문제야. 이제 진짜 실력을 어디서 보여줘야 하느냐. 15명이 대중과 먹고 사는 사람인데. 정치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서 대중에게 진정성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김건모가 아니라 나는 가수다 프로가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졌어요. 이소라가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던데, 그 말이 좋더라구요. '나는 기자다', '나는 피디다'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해요. 그렇게 지난주에 칭찬해 놨어요. 

김-어쨌든 무조건 제 잘못이죠.

서-제동씨는 정확하게 직업을 개그맨이라고 하나요?

김-저는 사회자에요. 개그맨이라는 호칭이 싫어서가 아니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개그맨은 다 할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개그, 사회, 연기, 웃길 줄도, 울릴 줄도 알고. 재석·호동·휘재형이 개그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마이크 들고 사회만 볼 줄 알아요. 그래서 개그맨이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것이 과하다 싶어요. 흔히 말하는 개콘·웃찾사에도 한번도 나온 적 없어요. 폭소클럽에는 '사회보는 법, 대중앞에 서는 법' 할 때 한 번 나왔어요. 그때도 어떤 분위기였냐면, 방송나가기도 그렇고 못나가기도 그렇고.

서-개그맨이란 말을 쓰나요?

김-전유성 선배가 처음으로 개발한 말이에요.

서-코미디와 개그의 차이가 뭐예요?

김-제가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웃김으로서 눈물과 웃음을 주는 것, 코미디라는 말에 이 말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한-어떤 의미에서는 차장이 어느날 안내양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식모는 가정부가 됐고. 식모와 파출부는 분명히 다른데, 그게 왜 달라졌어야 했는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게 포장해서 나가는 건데 그 포장이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왜냐면 그 때 코미디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장르였고, 정말 웃음과 슬픔과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개그맨이 되면서 더 화려해지고 템포가 빨라졌죠. 그런 맛이 있었는데 거품이 꺼지고 난 요즘은 코미디도 갈 데가 없고 개그도 갈 데가 없고 그런 것 같아요.

서-개그맨은 한국에서만 쓰는 특별한 말이니까, 전유성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행동에서 말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니까 토크 중심으로 바뀐 거죠. 과거보다는 현학적이 되다보니 속도는 빠르고. 개그는 코미디에서 발전한 말이죠. 개그라는 말은 그렇게 보면 
엠씨에 가까운거죠.

한-어릴 때부터 끼가 있었어요? 

김-없었어요. 그런데 늘 조용하다가 판이 벌어지면 끼가 생겼어요.
 5살 때 동네어른들 앞에서 책상위에 올라가 돈을 받았던 기억나요. 군대에 있을 때는 훈련병 때 교관 흉내를 냈는데 교관님이 상사였어요. 대위분이 옆에 있다가 웃고. 중위, 상사 다 웃고. 그때 계시던 중대장이 '얘 문선대 보내봐.' 그래서 제 인생이 그 때 바뀌었어요. 제대하고 나와서도 과에서 신입생 환영화 사회봐달라고 하고, 다른 과에서도 와달라고 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도 축제 사회해달라. 그래서 제 길이 열렸죠. 

한-실력으로 바닥에서 소문나면서 떴네요.
우리가 성공담은 많이 들었는데 나갔다가 못 웃긴 적이 있나요?

김-사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웃겼는데 안 웃으면 안 웃긴척 하는 거에요. 안 웃긴 척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안
웃으면, '그래서~' 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요. 웃기고자 했던 의도가 없었던 것처럼. 숨길 수 있어야 해요. 

한-나도 강연 다니면서 재미있는 표현 써요. 어디가면 빵 터지고, 어디가면 아무도 안웃어. 왜 그럴까요? 내 잘못인가.

김-들숨 날숨 차이도 있어요. 그건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의 100% 잘못이에요. 대중이 늘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도, 설 이유도 없어요. 한때 겜돌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오늘의 사회자를 소개하는데, 난 여기 사회자로 왔으니 놈자 빼고 다시 소개하라고 했어요. 겜돌이 찾아보라고. 난 여기 사회자로 왔으니까. 치받았던 거죠. 그러니까 객기를 부렸어요. 과대표는 미치는거지, 이런 미친놈이. 학생은 상관없는데 정체성에 관해서 겜돌이라고 부르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 때 '겜돌이 사회자의 차이 보여드릴께요.'하고 2시간 동안 몇명 토하게 만들었어요. 웃음으로 고통을 줬지요. 지금도 동대구역에 변호사 사무실이 많은데, 그 한가운데에 사회자 김제동의 사무실을 내자. 천명 이천명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지자.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싶었어요. 

서-위대한 광대의 꿈을 갖고 있었네요.

김-그땐 거창하지 않았는데, 겜돌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는 용납할 수 없었고 바꾸고 싶었어요. 그 과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 문화를 바꾸고 싶었어. 

서-지금 웃음 이야기했는데 나 김제동에게 웃음이란 무엇인가요. 

김-제가 학교 나가서도 학생들에게 하는데, 내가 당신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당신 웃기고 싶다.' 이거에요. 싫어하는 사람 웃기고 싶지 않거든요. 전세계 어디도 없어요. 나는 이사람이 너무 싫은데 이사람 웃는 거 보고 싶을 이유 없어요. 어떤 썰렁한 농담도 가치가 있다는 것은 웃기려고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거거든요. 

서-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그 사람이 우리에게 웃길려고 한 의도가 없는데 우린 웃을 때에요. 예를 들면 이명박. 이 때 전쟁이 나요. 자신은
웃기려는 의도가 없는데, 우리가 웃겨. 웃기려고 하는 사람은 적의가 없지. 진짜 의도가 없는데 많이 웃게 돼.

한 -웃기고 자빠졌네 그런 말도 있잖아요.

서-그렇지, 그땐 웃기고 자빠진거죠. 웃는 사람이 괴롭거든.
 
감-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웃어주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거든요. 웃기려 했던 사람, 웃는 사람 모두 상대를 인정하고 좋아하는 원초적 증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웃는다는 것은 당신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것이죠. 

서-김제동 학생의 사회사의 이야기 중에 초기에 웃기려고 했는데 안웃으니 바께쓰에 물을 부었다는데 그 이야기 뭐예요?

김-티비에서 말한 건 아닌데, 잘못 전달된 것 같네요. 물을 머리에 붓고, 물인줄 알고 포카리스웨트를 부었다가 끈적한 적이 있었는데.
기득권 아닌 상태에서 마이크잡는건 대단히 거대한 권력이죠. 마이크는. 마이크로 제 목소리를 전달하는건 거대한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이크 잡지 않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들과 내가 생각이 똑같다는 것을 늘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야 대중은 마이크든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인정해요.
유명 가수 공연이 끝났는데도 끝까지 남아서 제 이름을 연호해줄 때 제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이 그 교감밖에 없었어요.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아마 이번에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김-대통령께서 웃길 의도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웃어요. 이건 웃기려는 선의와는 다른 거에요. 세상에서 가장 웃긴게 
진지하게 웃긴거거든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앞사람이 흰색 발가락양말 신고 절하는거예요. 웃음을 참아야 할 때 웃기는게 가장 웃깁니다. 예를 들면, 보온병 들고 '포탄입니까'. 소주병 들고 '이게 폭탄주'. 전혀 웃기지 않는 것을 가지고 웃기는 것, 그게 진짜 웃긴거죠. 그런 것은 웃기려는 선의가 아니라 블랙코미디, 슬픈 유머죠. 

서-2주사이에 있었던 일만 얘기하죠. 일본이 원자력 터졌는데 원자발전소 준공식하러 가고, 엄기영 후보자는 삼척에 원전 짓겠다고 하고. 그런 것들이 코메디인거죠. 블랙코미디. 정말 웃기려고 한 의도가 없는데 쓴웃음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앞으로도 그런 웃음을 계속 웃어야 해요. 

한-일본 뉴스를 보면서 얼마나 슬펐겠어요. 이것만 안 그랬으면 얼마나 내가 가오가 났겠어. 엄기영도 얼마나 민망했겠어요. 내 신세 좆같다고 생각했겠지. 

서-노통 노제 때 빼도 안티가 많았어요?


김-많았죠. 제 안티는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는 '잘난 척한다, 알면 얼마나 아냐.' 그런 것들이 좀 있었고 두드러지진 않았죠. '알고보니 너 전문대 출신이더라.' 이런 얘기. 저 정확하게 미네르바하고 일치합니다. 30대 중반의 전문대 독신. 고졸대통령 용납안되던 사회적 분위기까지 몰아가면 오바일수 있겠지만.
노통 노제가 3일전 기사 났어요. 유족의사 반영됐다는 것 보고 아무것없이 수락했어요. 전 기술자에요. 원수졌다 해도 그 집 상이 나면 그 집 가서 그 사람 보내는데 집중했던 그 문화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회자로서 내가 가진 기술이 필요하다면, 관을 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와야겠다. 
돌아가신 분이면 적어도 장례기간만큼은 모든 은원이, 원한관계가 있다하더라도 장례기간 만큼은 있는거죠. 게다가 은이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고. 그래서 갔던 건데 좌우모두에서 십자포화를 맞았죠. 좌에서는 명계남 문성근을 놔두고 왜 너 개그맨 따위가. 게다가 이명박 취임식 사회본 새끼가. 그때 그 취임식은 국가행사고, 선택에서 결정이 난 사항이면 늘 대중의 선택이 옳다는 생각에서 사회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당 행사가 아니니까.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좌우 양쪽 십자포화 맞을 때 되게 힘들었어요.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없고, 이야기할 데도 없고. 취임식 사회보고, 전임 대통령 장례식 사회보고. 이런 사례가 없어. 하버드대 사회봤을  때, '취임식 사회봤는데 그 대통령 죽었냐' '아니 다른 대통령이다'. 쇼킹하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노제 전날로 기억하는데 사회보러 가면서 그 때 들었던 생각은 '너무 아저씨한테 미안하다'였습니다. 나는 살아서 내가 어떤 평가 받을지 고민하고 있구나. 지금 슬퍼해야 하는 것이 나의 본질인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하는게 너무 죄송스럽더라구요, 돌아가신분에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그날 슬퍼하는데 집중하자 했어요. 그래서 올라가서 대본대로 사회 안보겠다고 그거 접었어요. 멘트까지도 다 적혀있었어요. 민감한 시기니 될 수 있으면 이걸로 진행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서-대중들이 현존 가해자라고 생각해요. 
난 이해 안 되는게 일본이 우리 싫어하는거였어요. 우리가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죄의식을 벗어나는 것은 미안한 놈을 공격하는 거거든. 

한-가해·피해로 인식할 때는 대등할 때나 하는거지. 깔보는 거야.

서-죽음 후에도 깔보는 것은. 계속 깔보다가, 미안함을 반전시키는 방법은 계속 미워하는거예요. 

김-저는 깔본다기 보다는 무서워하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어요. 깔 본 놈이 죽었는데 죽었는데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고 무섭다. 죽은 공명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 저는 그 공포감이라고 봐요. '검찰개혁이 필요하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한 당 의원이 말했어요. 그 분 표현 빌리더라도 맞아요. 고해성사라고 봅니다. 두려움이 있으니까 죄를 고백한 것이겠죠. 어쨌든 그 두려움에 훨씬 더 많은 요인이 깃들여 있다고 봐요. 

한-그날 제동씨 이야기 들으면서 숨이 콱 막혔는데 저 이야기를 어마어마하게 울렸잖아요. 사회자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안 울면서 저 이야기를 할 수 있나. 보통사람에게 시키면 울먹울먹하다가 이야기 못했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죽 하는 것을 보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느낌이었어요?

김-늘 그런 부채의식을 안고 삽니다. 아저씨를 이용한 관장사를 하고 있다는. 저 역시 그런 부채의식 있습니다. 

서-나보고 이야기하지 말고. 

김-관장사가 아니라 관에 대한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네요. 전 절독까지는 하지 않았구요. 

한-우리가 직설하다가 정말 당하네. 

김-절독과 분노 사이의 중도정도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때는 지배하는 정서가 분노와 슬픔이었어요. 저와 윤도현밴드는 그 전날 프라자호텔에서 잤습니다. 그날 아침에 서울광장이 개방됐습니다. 새벽 3시반 쯤에 내려보는데 경찰차들이 광장을 둘러쌌어요. 세상에서 제가 본 원중 가장 흉측한 원이었죠. '달도 해도 원은 다 아름다운데, 원은 언제까지나 이어지고 희망을 주고 영속성을 상징하는데' 그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겠다. 여기에 선동은 오히려 사람들의 감정을 해친다고 생각했어요. 있는 감정의 결 그대로를 살려주고 싶었어요 대본이 있었습니다만 대본없이 그대로 사회를 보겠다고 했어요. 
마이크 잡은 사람은 권력의 정당성 얻은 것이니,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하고 허락을 얻었어요. 멘트하고 내려와 울고, 닦고 올라가고. 울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다 우는데 나까지 울면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다 아는데요. 그랬습니다. 

서-늘 대중과 상대하고 살잖아요. 힘들게 성장하는 대중연예인 삶을 이해하지 않나요?

김-힘들지 않습니다. 다 그렇습니다.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왕조의 역사만 기록되어 있고, 있는자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만 되어있는 것도 많고. '죽어서 안다'라는 말이 가슴에 꽂혀요. 힘없는 사람은 죽어야 안다니까.

한-실제로 죽어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쌍용 기억하자고 했잖아요. 죽어도 기록해야죠. 쌍용 14명 죽었는데. 한국 대중연예인으로 쌍용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은데 했단 말예요. 2년이 다 되어가요. 어떠세요, 주변에 쌍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김-저도 매순간 기억 못합니다. 개인적 경험으로 바꿔 말씀드리면 첫째 매형이 대우 거제조선소에서 배만들다가 철근에 머리를 맞아서 돌아가셨거든요. 하관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보상금을 껴안고 있던 기억이 선명해요. 주로 오는 사람이 '이걸로 합의보든말든.' 이런 식이었어요. 그 땐 부지기수로 죽어갔어요. 늘 TV에서 데모 나오는 장면만 보면 저것들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새끼들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어른들, 신문, TV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죠, 초등학교때는. 그 때 제 마음들이 연결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쌍용, 지문처럼 남았겠네. 

서-죽어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게, 물론 전태일도 죽어서 알았지만 쌍용 이후 14명 죽었어요. 그런데 신문도 안나오고 그 유족밖에 몰라요. 

김-그러니 뭐하고 계시냐고요, 학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제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그렇습니다. 죽어있는 사람을 통해 산 자에게 수혜줄 수 있는 기록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한-'직설'같은 것 만들어서 그래도 우리가 시끄럽게 일주일에 한면씩 떠드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담으려고 하는데 세상이 참 넓네요. 우리가 떠들어도 앰프 출력이 참... 

김-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죽은 사람들만 어떻게 죽었냐고 기록해야 하는가에요. 앞으로 이렇게 죽어서는 안될 사람을 끊임없이 기록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복안은 뭐에요.

한-복안은 답답하죠. 제일 중요한건 공감. 난 역사학자건, 언론인이건 가장 밑바닥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고통의 현장에서. 장자연이라는 한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그 어마어마했던, 그 괴로웠던 순간이 그 부분이 지워지는 것. 이런게 널리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구체적인 부분을 어떻게 생생하게 대중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 중에서 그 순간을 어떻게 교감하고 전달할 것인지가 늘 고민이에요. 

서-죽음이란건 이렇게 정리합니다. 죽은자를 위한 장례, 산자를 위한 장례. 죽은 자를 위한 장례는 자연사로 죽은 사람. 그렇게 보면 4.19, 5.18, 
장자연, 광주는 산자를 위한 장례에요. 잊을 수 없는 것이고. 20세기가 고통스러운 것이 산자를 위한 장례였거든요. 살아서도 산채로 장사지는 삶을 계속 가고 있잖아요. 전태일의 장례는 쌍용에서 다시 치르고 4.19는 5.16에서 다시 치르는거고. 

김-역사서술 자체가 너무 잔인해요. 정말로 기록되어야 하는 사람은 늘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에프받은 학생입장에서 역사학자에게 에프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간첩사건을 조사하는데 억울해보이는 간첩사건이 수십수백건이에요. 진짜 억울해보이는 간첩사건 기록을 복사해 온 것이 열여섯건인데, 그중에서 네건했어요. 역사에 보면 너무 많으니까. 

김-저도 가수다에서 에프를 받았습니다만 저는 그런 고민이 늘 듭니다. 더이상 서민이라고 불리워지는, 그런 사람들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죄책감. 처음엔 억울했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제가 집에와서 가만 생각하니까, 나도 어느새 기득권에 물들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맞다. 충분히 그럴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나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모르지만 사람들이 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청문회보면서 늘 욕만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어요. 죄책감이라고 표현하기조차도 너무 죄스러워. 

한-사람이 살다보면 늘 밑바닥에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늘 달라지고 변화하고 달라질 수 있어요. 운동권이 사회기득권이 되기도 하고. 자기들이 기득권자가 됐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서-기득권자가 나쁜게 아니라 그게 되었다고 인식하는 것, 성찰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아니라고 해도 제동씨는 기득권자죠. 그걸 부인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죠. 그걸 인정했을 때 겸손이 가능해요. 기득권이 됐는데 자기가 아니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민주화 세력이 최고의 권력, 기득권이 됐는데 그럼에도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니까 완전한 개혁을 못했어요.
제동씨가 기득권으로서의 권력을 잘 행사할 때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류는 생길 수 있지만 중요한건 성찰의 자세를 갖는거죠. 대중과 함께 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하는  그 약속을 환기하는 것. 그게 중요한거라고 봐요. 

김-지금 이야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건모형이라는 거에요. 데
뷔 20년차인 가수고 200만장 판 가수인데. 형이 세계 언어만 할 수 있다면 대박인데. 형은 늘 그런 존경심. 가수 김건모의 목소리에 대해 존경이 있습니다. 이 가수의 무대를 더 볼 수 없다. 그게 안타까워요. 신인이어도 그랬겠냐는 비판, 맞죠.
전 정치인 중에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게 화가나요. 왕조시대에도 왕이 머리풀고 기우제 지냈던 이유가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인데. 정
조 벽서 때 '내가 잘하면 이런게 없어질테니 경들은 간하지 말라.'는게 공감이 되요. 옳다그르다를 떠나서 공감이 되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하는 공감이 된다는 거죠. 뭔가를 해줄 때의 위안보다 듣고 있다는 위안.

서-정치인들이 그렇게 미안해하고 들을 줄 알면 좋은데 안듣는거죠. 

한-어루만져줘야 하는데 MB가 남의 일 얘기하듯 하니까. 사람들 심정 같이 묻어버리고 싶었을 거에요.

서-대통령 권력이 어디까지냐고 말한다면 한계를 그을 수 없을텐데. 왜 국민이 슬픔을 느끼냐면 자기가 유리할 땐 권력을 무한정 사용하다가, 불리할 때는 벗어나려 하니 화가 나요. 아덴만 내가 결정했고 3분 전에 말했다고 하고. 공적에 대해선 자기가 다했고. 연평도는 철저히 통제하고. 구제역 문제는 농민파산, 생명파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국민을 어루만질 수 있는 인자한 인간미를 기대하는건데 면피하는 것에 상처를 받는거죠. 권력은 그 순간 따뜻해져야 하는데. 거짓말로도 따뜻하게 해야하거든요. 생명이 많이 죽었는데 안타깝다. 구제역 걸린 돼지 한마리 기르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 하는게 왜 어렵지. 



한-대통령보다 더 절망적인게 참모들이에요. 월급받는 놈들 뭐하는거지. 정보기관 뭐하는거에요. 호텔 뒤지다 걸리기나 하고 사람들 마음 읽지 않고.. 쇼라도 했으면 해요. 마음만지는 걸 해야지. 

서-소문 못들었어요? 싫어하는 보고는 못올린대요.


한-권력의 생리에요. 모든 어느 시대나 다 했어. 그런데 어느 시대나 그래도 싫어하는 보고 올리는 사람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없는거지.

서-가계부채 900조에 물가가 이렇게 오르는데 그런 이야기가 안나와. 한국 TV는 세번의 변화가 있었어요, 꽃남이전과 이후. 꽃남이전만해도 부자가 나오면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이후는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풍요와 부가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거죠.
서민용은 코미디인데, 코미디에서 빚 이야기 나오는 데가 하나도 없어요. 전셋집 난리도 아니라는데. 이런 서민들의 이야기를 코미디에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안나와요. 코미디 프로도 없어지고.

한-헐리우드는 정치적 발언하거나 현안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 많은데 한국은 거의 없잖아요. 그나마 제동씨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신이 가진 견해를 밝히는데 다른 동료 연예인 반응은 어떻습니까?

김-그런 이야기 안합니다. 이승엽하고 전화할 때도 야구이야기 안합니다. 누구보다 깊이 자기 문제를 고민할테니. 동료연예인 만났을 때는 각기 자신이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지지하든 하지 않든간에 그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는 그 사람들 판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자기보다 더 고민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재도전의 기회 주라고 한것도 누구보다도 내가 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내가 미안한거지.

한-그 재도전 논란보면서 씁쓸했다고 하는게, 우리사회의 문제가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는 거죠.

김-강자들에게만 패자부활전,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 분노하는 거에요.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이 프로를 통해서만이라도 공정사회를 보고싶었던 것인데.
 그런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어렵고 힘없는 사람을 대변할 자격이 없어지는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한 죄책감, 갈등을 늘 갖고 있어서. 저는 상황이 역전된 케이스거든요. 내가 가난해봐서 아는데 나도 무명을 겪어봐서 아는데 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서-일제 강점기. 개화 이후에 중요한 좌파들은 상당수 지주출신이에요. 그건 부자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모른다는 건 아니에요. 사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면 되거든요. 이건희가 자기가 가진것 내려놓으면 되거든요. 일제강점기에 벽초 홍명희처럼 부자들이 내놓으면 되거든요. 

한-한국사회가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된게, 어느 사회나 그랬었지만 부잣집 자식, 귀족, 이런사람들의 헌신이 있었죠. 80년대가 문제도 많고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서울대 연고대 이른바 스카이 나온 사람들이 나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했을까 하면서 현장가고 좌절하고 쫓겨나고 그 숫자가 몇만명이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그 마음을 계속 갖고 살아가느냐하면 '내가 옛날에 해봐서 아는데~' 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프랑스 혁명도 상당수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대중을 위해 돌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러니 좋은 이론도 나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부잣집 아들, 귀족으로 태어나더라도 스스로 내던지고 개척하는거죠. 문제는 그 전통을, 그 거룩한 유산을 어떻게 한국에서 잇느냐. 어떻게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가능하고 그가치를 어떻게 전승하고 계승하느냐는거죠.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어떻게 겸손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거죠. 그렇게 된다면 한국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가 되겠죠.

김-따뜻한 자본주의는 가능하다고 보싶니까? 
제 가슴에 남아있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라는 말 자체에요. 자본이 어떻게 주의가 될 수 있느냐에요. 

한-따뜻한 자본주의, 불가능해요. 그러나 자본가는 따뜻해질 수 있을 것도 같아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자본은 구조적으로 자본가가 아무리 좋은 맘을 갖고 박애정신이 투철해도 자본주의 자체는 따뜻할 수 없는거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규제와 룰과 탐욕제어장치를 만들어야죠. 

서-따뜻한 자본주의는 형용모순이죠. 따뜻한 얼음이죠. 형용모순. 소리없는 아우성. 베이지 않는 날카로운 칼날. 명제로는 성립할 수 없죠. 탐욕을 옹호하는 것이 자본주의인데 그것이 따뜻한 것은 불가능하죠. 돈버는 구조는 악랄할 수 밖에 없어요. 남의 이윤을 가져와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을 쓸 때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그렇게 벌었으니 쓰는 것은 인간의 가죽을 가지고 써라. 쓸 때라도. 너 먹는 것 말고, 남는 것 좀 내놔라. 너 딸한테 주고 재단만들지 말고. 무슨 재단 만들어서 자기 친구에게 재단 이사장 주고. 기부라는 것은 나와 무관한 공정한 타자에게 맡기는 거죠. 재척 사유가 있는 사람에게 무슨 진정한 기부라고 하겠어.
집행권한을 가질 수 없는데 줘야 진정한 기부죠. 300억원이면 그만큼 어치의 눈물과 피거든요. 

김-저도 자본가거든요. 
원래 내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고 살려고 생각하는거죠. 기부는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전액은 돌릴 수 없고, 저도 일부 가질 겁니다만 분명한 것은 원래 내것은 아니라는 거죠.

서-자본주의는 자본사회가 아니라 화폐사회예요. 주머니 속의 거래는 없었죠. 추상적 셈법에서 날아간거지. 오늘날 고통은 금융자본주의고,
초과이익공유제는 남은 사과 나눠먹자는거에요. 처음에 잘 심자는 거지. 그거조차도 이건희는 반대하는데, 세금이나 잘내라고 해요. 

김-자본가는 따뜻할 수 있다는 것과 모순되는 말씀같네요.

한- 이건희가 구속이 되네 마네 하는 것에서는 따뜻하다고 보지 않아요. 정주영회장이 소떼 몰고 간거, 이런건 다른거지. 완전 쇼지만 잘하고 진실이 되고 역사를 만든거죠. 쇼가 나쁜 게 아니에요. 쇼가 왜 나빠요. 거짓말일 때 나쁜거죠. 진실을 확장하는 쇼. 정주영 쇼를 죽여버린게 나쁜거죠. 개처럼 벌었지만 황제처럼 쓴거지, 정회장은. 

서-기업도 욘사마도 일본에 돈 많이 내요. 한국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렇게 애정이 많구나. 이 정부는 북한의 고통에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인간의 따뜻함은 모두에게 같아야해요. 안 도와줘도 일어날 힘이 있는 일본에게는 이렇게 따뜻한데, 북한은 20년째 지진이고 똑같은 사람인데 왜 북한에는 관심을 못갖나요. 따뜻함에도 굴절, 색안경이 있는거에요. 따뜻함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왜곡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이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프레임이 있어요. 왜곡여부는 사람들 판단의 몫입니다. 흔히 말하는 좌파에 대한 비판 중에 왜 김정은 배가 나온거에 대한 거는 비판하지 않는가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시선이 존재합니다. 너 좌빨아니냐 옹호하는거 아니냐 하는 것. 북한의 삼대세습체제. 우리나라도 삼대째 해쳐먹는 인간이 많다 같이 비판해야 하는거 아니냐 했더니 어느 분이 나가다가 너 남북에서 다 미움받겠다 하더라고요. 
왕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비판받아야 해요. 북한 문제점은 명백해요. 근대사회 문제는 인격통치가 아니죠. 시스템통치이어야 하는데 북한의 문제는 인격통치, 초상화통치죠. 감시사회의 표본이거든요. 언제나 최고 권위자가 내 일상을 들여다보고, 존경을 강요당하는 것. 그런 기억이 있어요. 박정희가 내내 지켜보는 것. 그 사진을 돌려놓고 뭔가했죠. 좋은 사회는 시스템에 의한 통치, 합리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통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것이 안되는 것이 북한의 문제에요. 그게 3대에 왔을 때. 북한이 저렇게 된 이유가 있지만 3대째 왔을땐 충격이죠. 그건 비판받는 것이 마땅하죠.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2가지 비판이 있어요. 자기가 서있는 처지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라는 것이죠. 

한-북한이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는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것을 침묵하는 것이 우습다는 것을 지적하면 그게 좌빨이 되지. 

서-북한 비판하라는 겁니다. 그 비판하는 사람이 그 잣대로 한국에도 비판하라는 거예요. 인혁당 8명 죽을 때 아무도 북한 인권 이야기하는 사람중에서 독재시대 인권문제 이야기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요. 자격증문제야. 서티피케이션이 없는거지. 

한-우리가 자격증받고 민주화운동했냐고요. 그것보다 내가 분노하는 건 그 때 침묵한 놈이 북한인권이야기하는건 이의가 없지만, 그 때 죽인 놈들이 북한인권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가해자들이, 남한에서 서준식같은 고문가해자들이 북한 인권이야기하는 것은 화가 나. 자기들이 다 누리고 있는 자유도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좌빨이 만들어놓은건데.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거죠. 절차 민주주의가 가져온 위대한 선물을 망각하고 우리를 좌빨로 모는 거지. 
'북한에 과한 휴머니즘의 문제입니다. 휴머니즘 그게 바로 좌빨이론입니다.' 그래서 쓰러질 뻔 했어요. 세상에 인본주의가 좌빨이라는건 처음봤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인권 보편성, 배고픔의 보편성 말하는 것은 인간 본연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죠.

김-아까 하셨던 말씀 중에 든 생각은, 고양이를 밖에 집어던지고 개를 무참하게 괴롭혔던 사건은 분노하고 분노해야 당연한 사건이에요. 그러나 그 너머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폭력성을 건강하지 못하게 표출해야 했는가.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구제역 때 몇백만 마리를 생매장시킨 것에 대한 분노는 일어나지 않는가. 그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지가 고민된다는 것이죠. 

한-살처분이라는게 구덩이 파고 묻는거잖아요. 구덩이 파놓고 묻어. 한국사를 보면 구덩이파고 묻어서 인간살처분한 적이 있었어. 누구나 고양이 사건에 분노해요. 그런데 사람을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문제로 몰아가. 

서-잘못됐지만 책임묻기는 힘들어요. 증세가 거기 나타난거지. 고쳐야 할 건 따로 있죠. 유아원때부터 자본주의, 스펙을 끝없이 강요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1%에 못 끼어요. 이러한 스트레스가 누적되서 충동조절장치가 고장나고 어느순간 폭발한 거에요. 그래서 그런 사건들은 사회억압과 같이가는 문제죠.


한-이 대목에서 김제동하면 착한 연예인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착하게 보여야 한다는게 부담스럽거나 힘들다거나. 우울증도 있었다던데. 우리사회에서 착하게 살자는게 강요하는 건 아니더라도 사회적 압력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김-트라우마가 심해서. 그래서 사람들이 실망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죄송하다는 것이고. 연예인들은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힘들어요. 그러니 염치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할 뿐이죠.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염치가 없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늘 무엇인가에 억눌려 있습니다. 대중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이미지, 창, 지켜보고 있는 것. 그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 그게 힘듭니다.
심정적으로 공감합니다. 길거리 편하게 다니고 싶다고 하면 소주잔 던지면서 뭐라고 해요. 손잡고 다니면서 연애하고 싶어요 하는데 '나도 누가 내 연애 관심가졌으면 좋겠어, 이 새끼야.'하고. 사람들 대다수가 검색창에 자기이름 쳐보고 실망해요. 결과가 없으니까.

'절대로 난 착한 사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도 오바예요. 그럼 '나 너 착한사람으로 생각 안했어. 왜 지랄이야'하죠. '저 착해요'라고 이야기해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제가 선택하는 것이 결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에요. '난 이런 놈이에요', 그리고 판단은 개개인 입장에서 하는 판단의 문제이고 그걸 존중해요. 사람은 바꿀 수 없는거고요. '왜 내뜻 몰라줘요'하면 난 그것 역시 심정적 독재라고 생각해요. 늘 그런 것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제가 정신분석하면서 선생님이 '중과적, 이중적 감정. 상대방의 감정에 이입해서 공감하는 능력이 상담했던 모든 사람을 능가해. 최고다.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해 있어서 힘들거다. 끊임없이 사람들 눈치를 본다.'했어요.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사람씩 표정이 편집돼 보여요. '다 보인다 새끼들아'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아. 다들 생각 하는게 다 보여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게 늘 공황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서-장애라기 보다 강박이죠. 

김-발가락이 왜, 볼펜 왜 내이야기 지루한가. 알려진 사람이 되면서 힘든거죠. 물론 염치없다는 것은 대전제로 깔려 있어요. 그런것 감수하고서도 이름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착하게 보인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들의 판단과 자유다. 착하게 보든 보지않든. 상처가 안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분들의 자유라는 것을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단계에 조금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싫어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 좋아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늘 염치없다는 데에 전제를 깔고. 특히 요즘 힘이 듭니다.
법륜스님 뵈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요즘 견디는 중이에요. 노란색 책. 노란색 위험한 색이긴 하지만 세상 니 맘대로 되는 일 없다는 것 인정해야 니가 편하다. 너도 니맘대로 못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어떻게 다 니 마음먹은대로 되길 바라냐. 니 마음먹은데로 세상일 되어도 결코 좋은 것 아니다. 여기 깔린 전제 역시 대중들이 옳다 싶어요. 

서-오늘 전체 이야기 정리하면. 김제동 사회사의 <나는 가수다> 트라우마 치유과정. 

한-지난 토요일 만나서 했으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지금 제 정서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죄책감과 미안함이에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늘 큰집에 살면서 관장사, 저는 서민장사하는 것 아닌가. 착한척 하는 이미지에서 느낀 것하고 같습니다. 늘 힘없고 약한 사람을 팔아서 내가 투영되어지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만들어가고 싶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 

김-큰집살아요. 잘살고 있으니 물어보지 마세요. 나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그게 제일 미안해요. 이 일 터지면서 니가 노통얼굴에 먹칠했다는 트위터 보고 상처 깊은 데를 찔린 것 같았어요. 이건 과하다 싶었는데 몇시간 있다 보니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 

서-맛있는 음식점의 원리가 뭐라고 생각해요? 오감에 맞추면 돼요. 다양한 것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혹시 단음식만 좋아하는게 아닌가해요. 이번에 겪고 있는 일은 대중들이 제동씨가 차린 말의 밥상에 여러가지 중 하나만을 드신게 아닌가. 더 지나면 대중은 제동씨는 이렇게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라는걸 알았을텐데. 
난 안티없는게 불안해요. 우리가 말하는 것에 대해 저항감 반발심이 생겼으면 좋겠어. 안생기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있어요. 제동씨는 우리와 다르죠. 전투라기 보다 대중의 심리, 결을 따라가는 사람이니까. 좋은 뱃사공은 물결을 따라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야 배가 흔들리지 않고 힘 덜 들여 가요. 늘 좋은 뱃사공이었는데 돛을 잘못 틀면 긴항해에서 같은 결로 갑니다. 오늘 치유가 되어서 떠났으면 좋겠네요. 

한-우린 말 팔아먹는 사람이에요. 제동씨는 급이 다르지만. 이런 둘이 하는 장사고. 관장사 사건때 나는 비껴갔어. 100건 즘 악플 중 내 이름은 거의 없었어. 서가 그거 많이 당해봐서. 

서-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성찬을 차릴 수 밖에 없어. 대중에게 단말만 할 수 없어요.
악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그래요. 그래서 이 업종에서 대중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렵죠. 제동씨 말 중에 제일 재미있는 말 중 하나가 네잎클로버 따러 가면 세잎 클로버를 많이 밟아야 하는데, 행운을 잡기위해 행복을 밟아야 하는 거다. 그 말에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런 정신을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은 이번 상처처럼 남의 세잎클로버를 밟지않고 살수 있다는 거죠.

김-상처라고 하기에도 염치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영희 국장, 김건모, 소라누나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았어요. 첫 탈락자가 나오니 다들 공황상태였어요. 이런 형태는 처음이었으니까. 말그대로 실제상황이었으니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행운은 꺾였을지 몰라도 행복은 남아있을 지 몰라요. 미리 매를 맞았으니까 조금 더 사람들이 원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일찍 잡았어요. 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고 대원칙인 '좋은가수, 좋은 무대'를 주말황금시간대에 보내고 싶다는 중요한 원칙과 서바이벌이라는 규칙을 동시에 지키는 좋은 기회로 삼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제서야 술이 깨네요. 핑계같지만 편하고 솔직할 수 있었어요. 두분 만나서 흔히 말하는 먹물들에게 느꼈던 반감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좀 깼습니다. 깨주십시오. 노블리스 오블리주. 귀족으로서의 의무. 제가 자발적으로 먹물이라고 해드릴께요. 이정도면. 다른 분들에게 스스로 먹물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서-제동씨는 다른사람이에요.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자기언어를 갖고 있어요. 그 배경은 독서가 있겠죠. 제동씨는 자기 길을 개척해가는 사람이에요. 말의 길은 동시에 포승의 길이기도 해요. 더많은 대중을 끌어안는 연예인이 되었으면해요. 그런 연예인이 한국에 있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한-노제 때 대중과 공감하는게 이런거구나. 그 탁월한 능력, 결읽기. 그걸 좀 계속해서 해줘요. 다들 줄타고 싶지만 줄탈수 있는 사람많지 않잖아요. 그 역할을 계속하기위해서는 오만 잡동사니를 다 듣고 보고 정리하고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 끊임없이 실력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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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5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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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이 들면서 누구나 아픔과 결핍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마주 앉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배우 손예진씨(29)를 내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뒤 이뤄진 첫 만남. 예전 이상형이던 배우 송윤아씨가 형수가 되고 난 뒤 ‘방황’했던 내 마음은 손예진씨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걸 두고 형수는 “넌 줏대도 없냐”고 비난했고, 내 주변에선 나를 한동안 놀려댔다. 그런 비난이나 놀림이 대수인가. 사랑은, 이상형은 움직이는 거다. 그렇지만 긴장과 떨림으로 터질 듯한 내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내게 ‘선방’을 날렸다. 





“얼마 전에 방송 보니까 여배우를 사귀신다고….”


-그게요. 제가 그렇게 폭탄발언을 하면 기자나 네티즌들이 추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실체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그 기사 썼던 기자만 욕먹었더라고요. 댓글 보니 ‘여배우들이 미쳤겠냐’며….


 

김제동 “저 역시 편견을 갖고 있었나봐요. 말씀을 참 잘, 많이 하시네요. 흐흐흐.” 손예진 “제가 원래 1 대 1 대화에 강해요. 말하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웃음소리도 엄청나잖아요.” 김제동 “경상도 여자들이 원래 그래요.”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사실 저 송윤아 선배랑 친하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도 자주 놀러가요.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타워>라는 영화에서 설경구 선배랑 함께 출연해요.”


-아, 짜증나. 도대체 경구형은 내 인생의 장애물이에요. 전 이상형과는 결혼하고, 현 이상형과는 영화 찍고. 아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요.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죠. 어떠세요? <오싹한 연애>는 흥행 잘돼서 좋으시죠?


“다행히 그래요. 사실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개봉을 앞두고 책임감이 이렇게까지 컸던 적은 처음이에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열심히, 주어진 것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어요. 그전까지는 상대배우도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님들이셨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후배(이민기)였거든요. 영화라는 게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그 험난하고 아름다웠던 과정도 평가받지 못하고 그냥 묻히고 말거든요. 책임감, 부담감 때문에 개봉 한 달 전부터 제가 잠을 잘 못자고 있더라고요.”


-속 끓이고 잠 못 잔다고 해결되는 건 없는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토크콘서트>를 하다보니 공연 시작할 때 그 부담감과 두려움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결국은 극도로 쌓이던 스트레스가 개봉하기 직전에 자포자기 상태로 만들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죠. 다행히 개봉한 뒤 입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오히려 관객이 늘어났어요. 그런 경험 처음이었는데 기분 좋고 만족스러웠죠.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그 작품은 호러, 로맨틱 코미디 등이 혼합된 거라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았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다 걱정됐죠.”


-고백하자면, 제가 아직 영화를 못 봤어요.


“영화를 안 보셨다면 얘기가 안되겠네요. 같이 가서 볼까요? 손잡고?”


-싫어요. 전 거절할래요.


“아마 영화 끝나면 제가 보고 싶으실 거예요. 하하하. 아, 참. 고향이 영천이시죠? 전 대구예요.”


-알아요. 지금은 ‘죄밑’이 있어서 제가 찍소리 못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죽었어! 대구 후배!


손예진씨는 처음부터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인터뷰하러 가면서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도 제대로 못보고 간, 기본도 안된 인터뷰어라는 죄책감 때문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예전에 현정이 누나(고현정)랑 인터뷰할 때는 제가 술을 많이 먹은 뒤에 깨고 나서였거든요. 정신이 살짝 어수선할 때였는데, 오늘은 맨정신에 하려니 영…. 술은 많이 하세요? 


“많이 늘었어요. 처음엔 한 잔도 못먹었는데.”


-얼마 전에 SBS <런닝맨>에 나오셨잖아요. 그때 담당 PD가 저한테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더러는 도현이 형이랑 함께 나오라고. 제가 막 짜증냈어요. 예진씨 나올 때 불러야지, 왜 도현이 형이랑 같이 부르냐고. 그때 열받아서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술마셨잖아요.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녜요?”


-집에 혼자 있다보면 술도 마시게 되고….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혼자 사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불쌍한 것 같아요.”


-심각한 단계에 왔다 싶은게, 불쌍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젠 울컥해져요. 화도 안나고,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에이, 분명히 여자친구 만날 여지가 충분한데 눈이 지나치게 높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보이는 것보다 성격이 많이 이상하신 거 아녜요? 하하, 농담이고요. 중요한 건 아직은 여자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절실하지 않다기보다 겁나요. 


“왜요? 성격 들킬까봐?”


-어떻게 아셨어요? 저 성격 완전 ‘뭐’ 같아요.


“좋은 의미로 까다롭고 예민하실 것 같은데요. 속으로 생각은 많아도 상대를 다 받아주시잖아요. 전 무지하게 예민했는데 그나마 좀 좋아진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죠?


“이쪽(연예계) 생활을 많이 하다보면 오해를 받을 일이 많잖아요. 여자들은 특히 더 그렇고. 그전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오해도 많이 받았고. 그런저런 상처와 속상함이 쌓이면서도 진심은 언젠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통하고…. 그대로 쌓이면서 흘러가더라고요. 결국 남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고 고민하지 말고, 스스로를 편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해결책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신가요? 


“정말 심해요. 내가 불행해야 행복하기라도 한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죠. 결핍, 죄의식, 열등감에 사로잡혀서는….”


-항상 맑고 밝고 여리고 행복해 보이는데….


“배우, 특히 여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만들어야 하잖아요. 항상 빛이 나야 하고,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힘을 줘야 하잖아요. 슬퍼 보이거나 심란해 보이면 좀 그렇잖아요. 다 만들어진 이미지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방송에 나와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할 수도 없고요. 그리고 제가 그동안 맡아왔던 역할은 주로 여릿여릿한 주인공이었는데, 대중은 캐릭터 속의 저를 실제 저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그동안은 역할들이 옭아맨 측면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왜 아픈 역할, 죽는 역할, 예쁜 역할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것만 일부러 고르는 배우, 예쁘고 폼나는 것만 하려는 배우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특별히 의도했던 건 아니고 매번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던 거예요. 재미있는 건, 최근 몇 년간 억세고 웃기는 역할을 좀 했잖아요. 그랬더니 이번엔 변신을 시도한다고 많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어쨌든 저도 조금씩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누구나 어떤 결핍과 아픔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엔 365각형의 마음이 있다잖아요.


“전 어릴 때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거나 어떤 일을 겪은 뒤에, 밤에 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왜 그 상황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지’, 이러면서 밤을 새는 거예요. 또 그런 마음을 들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렇다고 내 마음을 남에게 내려놓을 수도 없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좀 그래요.”


-아까 좋아졌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의도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말로 소리 내서. ‘난 다 잊었어’ ‘기억이 안나’. 이러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요. 그게 좀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잠도 들고 잊어버리게 되고. 또 내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죠. 게다가 주변에 좋은 분들, 또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했고요. 예전엔 사람으로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고, 그 때문에 연예계와 관련된 분들 중에서는 친한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상대 배우로 함께 연기한 분들이 누구죠?


“최민식, 김명민, 차태현, 김주혁, 정우성, 배용준, 송일국 선배…. 그리고 지금 영화에선 설경구 선배….”


-아, 경구형 얘기는 그만하고요. 그럼 예전 영화랑 지금 찍는 <타워>는 대하는 마음이나 현장에서 갖는 느낌이 좀 다른가요?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은 처음이에요. 촬영 끝나고 술자리를 갖는데, 오죽하면 집에 가는 게 싫을 정도니까요. 배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저도 조금밖에 안나와요. 지금까지는 다 제가 중심이 되는 영화만 찍다보니 처음엔 적응을 못했는데, 찍다보니 이렇게 편하고 행복하게 영화를 찍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뭔가 제 속에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작품도 꼭 맞는 걸 만난 것 같아요.”


연예인으로서 내가 많이 받는 질문은 “연예인이 되면 어떤가요?”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은 작두 위에 서 있는 무당 같다는 것이다. 천민으로 대우받지만 신과 접신하는 그 순간은 모든 양반이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지배하지만 대신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자칫 삐끗해서 발이라도 베이는 순간은 완전히 내쳐지고 만다. 그 순간, 피가 난 발을 부여잡고 있을 때 수건으로 내 발을 감아줄 사람 하나만 있다면 연예인으로서 잘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거죠. 여자 연예인들은 더하고요.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언제까지나 주인공일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나도 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모, 엄마 역할을 하게 되겠죠. 얼마 전에 이미숙 선배님과 토크쇼 하셨잖아요. 전 그 선배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감동받았어요. 그렇게 살고 싶은데, 전 그렇게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고민과 변화 과정을 통해 ‘예쁜 연예인 손예진’에서 ‘배우 손예진’으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배우. 지금까지 그걸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그 짜릿함. 긴장감과 집중으로 가득 찬 그 순간의 느낌을 정말 사랑해요.”


-그 순간엔 관객들도 역시 떨린답니다.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까, 자신의 선택이 옳았을까 하는 거죠. 하하.


“오늘 뵈니까 연기하셔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사실 이전에 단막극 제의가 온 적이 있어요. 찌질한 어떤 고시준비생이 여자한테 차여요. 그리고 독하게 공부해서 고시에 붙어 검사가 되죠.


“어머, 그래서요?”


어떻게 됐을까? 결론은 ‘그래도 여자가 안 돌아온다’였다. ‘예쁜 배우 손예진’은 “우하하, 반전인데요”라며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나도 따라서 헤벌쭉 웃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래도 ‘예쁜 후배 손예진’의 전화번호를 챙겼으니 흐흐, 기대하시라. 손예진·김제동 주연 코믹멜로호러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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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혼모·입양아… 세상의 아픔에 다가갈수록, 음악 깊어져”

 



-누나, 오늘도 빨래하고 계셨던 건 아니죠?


“요즘은 세제가 참 좋은 것 같아. 예전엔 빨래하고 로션을 발라야 했는데, 요즘은 그냥 둬도 부드럽고 좋던데요?”


시작부터 웬 빨래타령? 그것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디바’ 조수미(48)를 만나서 말이다. 그 이유는 지난해 MBC <7일간의 기적>을 위해 ‘누나’를 만난 날에서 비롯됐다. 클래식 문외한인 나에게 조수미라는 이름은 구름 위의 세계나, 책에서나 만날 법한 것이었다. 그런 설렘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누나가 불의의 일격을 날렸다. “제동씨 만난다니 긴장돼서…. 긴장 풀려고 빨래하다 왔어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어요. 이렇게 한강이 보이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빨래하는 누나 모습을 상상해 봤거든요.



김제동 “자기를 놔주는 연습을 하려는데 잘 안돼요.” 조수미 “힘들어요. 카라얀이 ‘음악을 하다가 음악을 놓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방법을 안 가르쳐주고 돌아가셨어요.”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공주같이 공부만 하고 살다가 혼자 유학가서 긴장하고 살면서 그런 습관이 생겼어요. 그땐 빨래하면서 눈물 많이 흘렸는데….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살다가 간다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면 외로움이 덜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 언어도 시차도 생활습관도 모두 다른 곳, 게다가 동양인으로서는 불가능하다던 오페라를 하기 위해 본고장에 간 거잖아요. 지금에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수십년 전에 어떻게 그랬나 싶어요.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1980년대 초였거든. 1983년 3월27일.”


-어떻게 그 날짜를 기억해요? 


“거의 매일 일기를 썼어요.”


-전 대구에서 혼자 서울 와도 힘들던데, 누난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여자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대학교 1학년을 다니다 갔는데 이탈리아라는 곳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개방적이었어요. 차원이 달랐지. 길거리에서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예사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했어요. 그때 우리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봐요. 예술가들도 억압돼 있었고, 젊은이들도 많이 힘들었잖아요. 그런 사회에서 살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자유로운 나라에 가서 굉장한 문화적 쇼크를 받았어요.”


-제가 경북 영천 촌에서 코흘리며 뛰놀고 있을 때였네요. 그때 데모하는 모습이 TV에 나오면 어른들이 ‘다 나라 망칠 빨갱이다. 잡아넣어야 한다’고 욕하는 것 들으면서 맞장구쳤고, 어린 맘에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난 그 시절, 여느 음악하는 사람처럼 굉장히 좁게 살았어요. 자주 휴강을 했는데, 그저 공부 안하니까 좋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때 남자친구는 시위하러 나갔고, 난 그가 다치지 않길 바라면서 걱정하고. 완전히 내 개인만 보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죠.”


-누나 입장에선 그게 당연할 수도 있었겠죠. 어쨌든 그렇게 작고 여리던 동양의 소녀가 혼자 나가서 이렇게 되기까지 스스로 겪었던 갈등, 외로움이 엄청났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무서웠을 것도 같고.


“내가 의외로 무서움을 안타요. 1983년 그때 27시간 걸려 로마공항에 내렸더니 새벽 3시더라고. 나와 있기로 한 사람도 없고, 비도 왔어요. 말도 안 통하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런데 희한하게 하나도 무섭지 않은 거야. 무작정 택시를 타고 스페인 광장으로 가자고 했어요.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그 장소…. 허름한 여관에 짐을 풀고 다시 나가서 새벽 5시까지 계속 비를 맞으며 걷는데 그 자유와 통쾌함, 흥분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잘 쓸 것인가 하는 책임감이 어렴풋이 들더라고요. 처음 3개월간은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죠. 고작 스물한살이었는데 내가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큰 문제가 어찌나 나를 덮쳐 누르던지…. 도망칠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음악원에 들어가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노래하는데 ‘게임이 되겠다’ ‘해 볼만 하겠다’고 한 거죠. 다른 학생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심지어 가르쳐달라고 했거든요. 성악은 다른 악기와 달리 재능이 중요하거든요. 다행히 재능을 타고났고 그걸 부모님과 선생님이 알아본 거죠.”


-미모도 타고났잖아요. 


“아, 왜 이래. 이렇게 예쁜 말을 하니까 내가 제동씨를 안 예뻐할 수가 없어. 학교 다닐 땐 내가 구경거리였어요. 당시 이탈리아에 동양 여자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자기 나라 말로 오페라를 하니까 놀란 거지. 어떤 학생들은 와서 내 머리카락을 만져 보기도 했어요.”


-마치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온 백인 여자가 판소리를 엄청 잘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게 5년 과정 학교를 3년 만에 졸업했어요.”


-저와 정반대의 인생이네요. 전 2년제 학교를 11년 다녔는데…. 졸업하고는요? 


“콩쿠르 나갔죠. 상금이 꽤 쏠쏠해서 그걸로 생활고를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당시에 1등 상금이 5000달러 정도 됐거든요. 거의 휩쓸었죠. 그걸로 집에서 부쳐오던 경제적 원조 끊고, 레슨비 내고 집세도 내고 차도 샀어요.”


-국제 성악 콩쿠르계의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이네요. 입상을 못한 적도 있어요? 


“처음 도전했던 콩쿠르죠. 그때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느꼈어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콩쿠르인데 내가 노래하고 난 뒤 관객들의 환호도 엄청났고, 현지 신문에는 최연소 참가자인 나를 칭찬하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어요. 그런데도 탈락했죠. 알고 보니 그 해가 핀란드와 중국이 국교를 맺는 해였기 때문에 심사위원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1~3위 입상자도 중국인이었어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삶과 꿈’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그들이 가진 것을 넘어설 정도로 실력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나만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계발해 그들이 지속적으로 호기심과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


-너희들이 하는 것은 나도 다 할 수 있고, 너희가 갖지 못한 것도 내가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줬던 거네요.


“예를 들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 뒤 앙코르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요. 우리나라의 정치적 배경을 설명해 준 뒤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려요. 그렇게 음악을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하나가 돼요. 난 드레스도 앙드레 김 선생님의 의상만 입어요. 오히려 그런 점이 서양의 소프라노 가수와는 다른 분위기의 프리마돈나로 나를 기억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프리마돈나라는 말에는 대중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여신 같은 이미지가 수백년째 내재돼 있어요. 그런데 내 생각은 그게 아니거든요. 대중의 마음도 꿰고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 현대의 프리마돈나라고 봐요.”


-클래식 하면 왠지 거리가 느껴져요.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위압적인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쉽지 않죠. 특히 우리처럼 클래식 하는 사람은 나만의 음악세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도의 고음이나 테크닉도 ‘별 것 아니다. 그렇지만 너희는 절대 못 해’ 하는 식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누군가 우러러 봐주고, 뭔가 신비롭게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그걸 내려놓은 거네요. 터닝포인트가 있었나요?


“아마 2000년쯤? 뉴욕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쉬운 음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요나 팝과 같은 음악은 매일의 삶을 함께하지만 그들에게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를 내민다면 너무 건너기 힘든 강이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온리 러브>라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가교와 같은 앨범이었어요. 대중적 인기는 좋았는데 내가 부른다는 이유로 고고한 분들이 문제를 삼았죠. 클래식의 격을 낮춘다고. 그래도 밀고 나갔어요. 그게 국민에 대한 문화적 서비스라고 생각한 거죠.”


-고고한 분들에겐 뭐라고 했어요? 


“사실 음악은 설명이 필요없어요. 노래로 다 설명이 되거든요. 음악은 예쁜 조형물이 아니잖아요. 25년간 내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진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스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달려왔는데 이제 나이 들어 보니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눌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장례식 때도 무대에 섰고, 동생 장가가는 것도 못 볼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거든요. 뿐만 아니라 난 살면서 일부러 안 봤던 게 굉장히 많아요. 나한테 나쁘다, 노래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뭔가 슬프거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노래를 못할 지경이 되거든. 그래서 더 외면하고 지냈어요.”


수미 누나가 세상에 눈을 뜬 건 5~6년 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 공연차 갔을 때였다고 했다. 파벨라라는 빈민촌. 공연 이틀 전에 위험하다는 스태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곳을 찾았다. 똑같은 생명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장면은 누나에게 충격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누나의 공연 티켓을 사고, 그네들이 만족할 만한 노래를 불러주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연습해왔던 세월들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당시 묵고 있던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돌아와 화려한 욕조에 들어갔지만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이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담을 무너뜨리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아름다운 음악인으로 살려면 세상을 보고 만지고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내 음악이 심오해질 수 없다고. 지금까지 내가 힘들다고 외면했던 것을 이제라도 직면하자고. 그렇게 미혼모, 입양아, 유기견까지 만나면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고 눈물나는 것인지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만큼 내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진 거죠. 나 사실 몸을 무척 사리거든요. 노래해야 하는데 컨디션 나빠지면 안되니까. 그래서 비오는 날은 밖에도 안나갔는데 얼마 전에도 비가 쏟아지던 날 유기견보호소에 가서 한참을 씻겨주고 왔어요. 정신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하니까 오히려 컨디션이 최고였죠. 이젠 현실을,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눈 부릅뜨고 볼 거예요.”


-외롭고 힘든 고충도 있겠죠.


“화려해 보이겠지만, 많죠. 목표에 올라선 뒤 그걸 유지하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 그게 엄청난 책임감을 요구하거든요. 목에 문제 있을까봐 술 한잔도 못마시고, 기름진 음식도 못먹고, 친구들과 수다도 많이 못떨어요. 컨디션 걱정 때문에 잠도 푹 자지 못하고. 호텔방에만 얌전히 있는 거죠.”


-그런데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들잖아요. 게다가 늘 사람들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도 괴롭죠. 누나하고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저도 토크콘서트라는 것을 하는데 무대 오르기 전에는 무지하게 긴장되고 예민해져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저도 모르게 힘이 나고 편해지더라고요.


“그건 재능이고 저력이에요. 그냥 나오는 게 아니죠. 평소에도 사람들이 솔깃하게 귀를 세울 만한 화제를 준비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니까 나오는 거죠. 그냥 귀신 씌여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제동씨나 나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대치가 있고 내 스스로 만드는 기대치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끊임없이 팽팽하게 조여요. 잘못하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잘 조절해야 해요. 때로는 끊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때에 놓는 법도 배워야 하고.”


-누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내가 나를 보듬어주고 품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마다 크고 작은 고통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다 힘들어요. 그럼에도 아침에 눈 떠서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소한 습관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톡스도 맞고 싶은데 병원 갈 시간도 없고, 사우나 한번 맘놓고 할 여유도 없고.”


-누나가 안하는 거죠 뭐. 누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하세요? 


“멋진 자연과 아름다운 광경을 볼 때, 맛있는 것 먹을 때? 그런데 괜찮아요. 혼자 노는 게 습관이 됐어. 큰일이지?”


-저도 그런 단계에 간 것 같아요. 누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일 테니 오히려 혼자라서 더 좋다 싶고.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은데? 자기는 그런 상태가 너무 빨리 오는 것 같아. 난 강아지 3마리랑 10년을 같이 지냈잖아요. 이 아이들과 함께 뛰고 자연을 즐기면 그걸로 좋아요. 노래할 때만큼.”


-누나 얼마 전에 유기견 방지 교육센터 만드는 데 힘을 보태셨다면서요? 효리도 관심 많거든요.


“기사 봤어요. 이효리씨 보면서 강단 있고 속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랑은 어떤 사이인지 아시죠?


“친구 사이? 이야기는 서로 잘하지만 잘 때는 따로 가서 자는.”


‘일격’으로 시작된 누나와의 만남은 이렇게 ‘비수’로 마무리됐다. 여하튼 ‘누나 부자’인 나는 조수미라는 ‘세계적인 누나’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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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나꼼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될 것”


김어준(43). 그의 이름 석자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본 사람이라면 ‘푸흣’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웬만해선 참지 못한다. ‘김어준은 대한민국 언론인이다.’ 그런 어이없는 조합이라니. 반면 웃다가 ‘똥침’처럼 날아드는 생각은 그만한 대한민국 언론인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누구처럼 장외·장내 구분하지 말고, 닥치고 물어보자. 언론의 역할이 뭐냐고. 


십수년 전 <딴지일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허위의식에 똥침을 날린 그는 지금 <나는 꼼수다>로 세상을 다시 뒤흔들고 있다. 변두리에 머무르던 기발한 풍자와 패러디가 순식간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인 ‘변방의 혁명성’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무엇보다 그는 웃긴다. 그리고 쉽다. 잘나고 복잡한 논리는 결코 재미와 감성을 이기지 못한다, ‘씨바’. 참고로 이 인터뷰는 그의 MBC 라디오 퇴출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4일 밤 이뤄졌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그는 전매특허인 ‘씨바’와 각종 욕설을 내뱉었지만 지면에는 옮기지 못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김어준 “독재라는 게 물리적 폭력을 하는 게 다가 아냐.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듣지 않는 무한권력이거든. 그래서 그런 사람들 밥줄을 끊어버리는 것, 그게 독재야. 잡아 가두고 패는 대신 밥줄을 끊는 것. 현 정권의 방법이지.” 김제동 “화투의 기술과 속임수를 모른 채 치는 사람은 돈을 잃어도 자기 탓으로 생각하잖아요. 자기 생각에서 상대 타짜도 합법적이라고 보는 거지. 그렇게 화투를 치는 사람처럼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도 너무 많잖아요. 안타까워.” _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러니까, 방송을 못해서 잘린 거 아녜요?


“왜 너의 경우를 나한테 들이대?”


-그래도 잘렸잖아. 자르면서 뭐래요?


“이유는 말 안해줬어.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 담당 PD와의 첫 미팅에서 내가 했던 말이 이 방송은 6개월 내에 사라질 거라고 했어. 내가 들어간 건 김미화씨 퇴출 물타기 용도였기 때문이라고. 이제 그 역할이 끝난 거고 당연히 퇴출될 거라고 알고 있었지. 대단히 예측 가능한, 매우 투명한, MB식 방식이지. 그런데 이 인터뷰 콘셉트가 아무 말이나 막하는 거지?”


-예, 형님이 다 하세요. 


“그래? 그렇다면 난 그나마 남아 있는 김제동의 자투리방송을 끌어안고 함께 수장될게.” 


-잘려도 걱정마라, 밥은 먹여준다 뭐 이런 거예요, 지금? 나, 참. 담당 PD는 뭐래요?


“PD는 3주 전에 프로에서 잘렸어.”


-정말 예측 가능하게 자르는구나. 형한테는 아무도 뭐라고 안했어요?


“담당부장이 와서 말하려고 하는데 그 분 얼굴을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한 표정이더라고. 그래서 먼저 ‘알았다’고 했어. 그 분은 암말도 안했는데 내가 그냥 알았다고 하고 헤어졌어.” 


-불경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인데. 


“그 분의 잘못은 아니잖아. 단순한 메신저였으니까. 의사결정권자도 아니고. 그 분을 잡고 따질 일도 아니잖아.”


난 그동안 “잘린 적 없다. 내가 잘랐다”고 말해왔다. 왠지 “잘렸다”고 하면 찌질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딴지총수 김어준은 “잘렸다. 씨바”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내가 그랬잖아. 이것은 김제동이 전혀 다른 종류의 위상을 가지는 연예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제공받은, 고마운 일이라고.”


-엎드려 절하고 싶다고 했어요. 제 <토크 콘서트> 기획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늘 그렇게 대답해요.


“말하자면 ‘가카’로 상징되는 하나의 세력?”


-난 동의하거나 확인해 준 적 없어요.


“<나는 꼼수다>를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면 ‘가카’지. 우리의 기획실장이자 작가이자 상상력, 창의력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분, 우린 M실장이라고 불러. 그래서 매주 그 분에게 헌정하는 헌정방송인 거야. 사실 가카가 취임하자마자 내가 잘렸거든. SBS 라디오에서 3년간 진행하던 시사프로였는데 그땐 아무도 기억하거나 인지하지 못했지. 김제동이 잘린 건 대중적 인지도로 봤을 때 첫번째 사례이자, 그만큼 파급력을 가진 상징성 있는 사건이었어. 본의아니게 선지자가 된 거지.”


-선지자는 좀 과한 것 같고, 저를 엄청나게 광고해줬어요. 주요 일간지, 시사 주간지, 지상파 방송 3사 뉴스에 다 나왔거든요. 


“과거 어떤 연예인도 누려보지 못한 시사주간지 표지모델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거잖아. 보통 그런 경우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방송복귀가 불가능해 영구퇴출될 정도로 파장을 일으켰을 때만 나오거든. 결국 김제동의 포지셔닝을 가카께서 해주신 거지.”


-저를 가만히 놔뒀다면 방송에서 사라질 추세였어요. 이미 그전부터 프로그램도 줄어들고 인기도 뚜렷하게 하향세를 긋고 있었거든요.


“방송은 김제동을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해줬지만, 그를 진정 상징성 있는 연예인으로 끌어올린 것은 ‘퇴출’이었다. 그런 결론이네. 지금 시차를 두고 퇴출된 선후배가 만나서 어떤 사회적 불만을 토로한다거나 가카에 대해 성토하자고 모인 건 결코 아닌 거지. 우린 그 분께 감사하는 거야.”


-오랜만에 형 만났는데 기분이 그렇네. 정말 ‘X 됐다’. 


“맞아. 이건 ‘X 됐다’ 이상으로 표현할 단어가 없어.”


-콘서트도 한다면서? 그런 <토크 콘서트>는 제가 처음 도입한 거라는 거 알죠? 게다가 <닥치고 정치>라는 책도 냈던데…. 교보갔더니 내 책 바로 위에 있더라고. 그래서 위치를 바꿔놨죠.


“빨리 사!”


-흥,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난 그 책 옆에 있는 책만 사왔어요.


“내 책이 얼마나 훌륭한 대중 정치서적인 줄 알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치가 왜 필요한지 해설하고 현상을 분석했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예언서이기도 하고. 이 한 권만 읽으면 중등과정을 완료한 모든 국민이 정치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가질 수 있어.”


-<나는 꼼수다>를 놔두는데 언론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아량에 의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투력으로 버텨내고 있는 거야. <나는 꼼수다>에서 다루는 이슈들은 공중파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충분히 거론하고 검증했어야 할 사안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놔둘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됐다기보다는 실정법상 적용할 법이 없는 거지.” 


-이걸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잖아. 


“그런 걸로 알고 있어. 합법적인 공권력으로 우리 방송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상황이 닥쳐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이것을 새 형태의 미디어로 인정하게 만들도록 해야지. 마치 최초 인터넷 신문이 등장했을 때 이것을 신문으로 인정할까 말까 하는 논의가 꽤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결국 됐잖아.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소위 팟캐스트 다운로드 방식의 미디어도 하나의 미디어로 인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야. 그 시간까지 충분히 합의와 논의가 이뤄지도록 우리를 놔두길 바라는데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커. 제재할 욕구도 충만한 것으로 알고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연구 중이야.” 


-청취자라고 표현해야 하나? 자발적으로 듣는 사람이 많잖아요. 결국 지켜주는 원동력은 자발적인 청취자들 아닐까?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이것이 미디어로 발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지. 동조하든 그렇지 않든 많이 듣고 있다는 자체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 제재를 하려 할 때 부담으로 작용하겠지. 그런데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안돼. 새 미디어가 수행하는 역할이 기존에 존재해왔던 미디어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 그래서 공당의 후보 토론회도 하고 그러는 거지.”


-한 보수 언론에서 나처럼 팔로어가 많은 사람을 ‘장외언론’이라면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X까는 소리지. 장외언론이 안지는 책임이 뭐가 있지? 그렇다고 그들은 김제동이 지지 않는 책임을 뭘 지고 있나? 없다고 본다. 져야 할 책임도 회피하는 경우가 많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위협하니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팔로어들이 불쌍하다는 표현을 썼겠죠.


“그들이 불쌍하지. 그들이 쥐고 있는 한 줌도 안되는 권력…. X도 아닌데. 난 그들이 가련하다고 생각해. 졸렬하고 쪼잔하지. 음, 또 뭘 씹을까. 다시는 공중파에 복귀하지 못하게 해줄게.”


-잘 모르시나 본데 전 요즘 그 정도 각오는 해요. 내 강점은 아무래도 장외에 있는 것 같다는…. 흐흐흐. 


이건 진심이다. 내가 공중파에서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들 시청률이 급등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시청률이 안나오면 자연스레 퇴출될 것이다. 그러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시장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생각이었다. 방송 퇴출 이후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그런 점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장외에서 마이크를 들고 부당함을 알리러 다니게 됐다. 


“그걸 염치라고 해. 넌 염치가 있는 거지. 그게 네가 팬들에게 되갚을 길이지. 상징성 얻은 것을 이용해 발언할 필요가 있어.”


-혹, 겁은 안나세요? 


“청와대건 국정원이건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건 알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아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내가 뭔가를 하면서 그로 인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 일을 못하는 거야. 뭘 하는데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그것을 감수하는 거야.”


-형이 두고 있는 우선순위는 뭐예요?


“쫄지말라고 하고 싶고, 그 말이 위로가 되는 시대야. 그리고 <나꼼수> 메시지의 가장 큰 덩어리는 어떤 주장을 ‘쫄지 않고 말해도 된다’고 하는 태도, 그 자체야.” 


-그래도 별일없이 산다?


“그러다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면 기꺼이 당하겠다, 감수하겠다. 그러니 당신들도 쫄지 마라. 우리는 쫄지 않아도 된다, 이거지. 다 ‘가카’ 덕분이야. 어떤 이들은 선동이라고 하는데 맞아. 선동이야. 그런데 그 선동은 <나꼼수>가 이야기하는 특정주장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해도 된다는 태도를 선동하는 거야. 이 주장에는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안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가 다 이렇게 떠들어도 된다는 태도를 유포시키고 싶은 거야. 이게 가장 큰 메시지야. 에이 씨바. 말해놓고 보니 훌륭한데.”


-더 할 이야긴 없어요?


“음…. 나꼼수에 섭외하고 싶은 인물이 있어. 그 섭외 대상을 <나꼼수>로 끌어들이는데 회유, 유도, 조정, 기만, 유인, 협박하는데 김제동이 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은 있다. 흐흐.


“이렇게 다같이 X 되는 거지. 이것을 물귀신 작전이라고 해.”


-아마 형의 기대에 응할 것 같아. 희한하게 자꾸 몇몇 (섭외대상) 인물이 떠오르네. 아 X 됐다.


“결정적으로 김제동은 안된다. 대중들은 그의 정치색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거든.”


-왜 나는 안되는 거야? 나, <나꼼수>에서도 잘린 거야? 내가 요즘 불교에 심취해 있긴 한데 형 이야기를 듣다보면 성불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있어.


“그건 내가 덕볼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야. 그래서 내맘대로 할 수 있어.”


-당당, 교만은 한끗 차이야. 겸손과 비굴도 한끗 차이지. 당당과 겸손, 교만과 비굴은 각각 세트잖아. 그런데 형은 당당한데 겸손하진 않아.


“나에게 청소부나 대통령이나 똑같아. 그가 가진 권력으로 덕볼 생각 없어. 내가 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면 언제나 남사스러워. 그 정도 균형감각이나 염치는 있어. 난 염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게 세상의 균형을 만드는 거거든.”


-힘있는 자가 염치를 안다는 것, 중요한 능력이지.


“굉장히. 우리 가카께는 전무한 능력이지.”


-나는 그 말에 합의하지 않았어. 그렇게 들었을 뿐이야.


“결국 오늘 키워드는 ‘나는 이렇게 말했다’지.”


-나는 총론에는 합의했으나 민감한 몇몇 각론에는…, 에이 씨바. 그래 합의했다.


“이렇게 김제동은 X 됐다.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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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독방에 해가 삐뚤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점 하나 찍어놓은 크기였지만 그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해 나중엔 신문지 크기로 커진다. 신문지크기만 한 햇빛을 맞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정도다. 그러나 이 한 점의 햇살만으로도, 그 햇빛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게 손해는 아니다. 그 햇살이 없었으면 나도 숨을 끊었을지 모른다.”

수년 전 신영복 선생의 강연회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정수리에서 뭔가가 자르르 흘러내렸다. 당시 선생의 말씀은 나에게 당신을 살아가게 했던 ‘신문지만 한 크기의 햇살’ 이상이었다.

선생은 나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었고, 삶을 견뎌내는 원동력이었다. 아니 선생은 당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큰 선물이다.


공부라면 담쌓고 살던 내가 2년 전 큰 맘먹고 성공회대에 편입한 것도 순전히 선생 때문이었다. 물론 권총(F학점)을 수십개 차서, 얼마를 더 다녀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 대수인가? 난 전문대도 11년이나 다녔는데…. 여하튼 막 봄이 움트는 교정에서 선생과 마주 앉았다.



신-김창남 교수가 좀 있다 온대요. 제동씨가 수강신청을 안했다고. 

김-흑. 어제 뵈었는데. 최근에 이사를 했어요. 선생님 한번 모셔야 하는데.

신-방배동이랬죠? 그 집 ‘안가’라고 소문 나서 많이 모인다고 하던데요. 

김-많이 옵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워낙 많아가지고요. 

신-많이 오면 좋지요. 

김-다들 와서 선생님 글씨를 훔쳐갑니다. 다른 건 안가져가고 말예요. 예전엔 승엽이 사인볼을 가져갔는데 이젠 별로 인기가 없고 주로 선생님 글씨를 가져가죠. 현정이 누나한테는 제가 선물했고, 전에 선생님이 재석이형이랑 승엽이한테는 축사를 써주셨잖아요. 선생님 글 받고 완전 감동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데요. 재석이형은 예전에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 하면서 선생님 뵌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여튼 훔쳐가는 인간들이 몇 있어요. 길, 하하…. 이 인간들이 글씨의 값어치는 모르면서 돈은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라서요. 참, 선생님 이번에 인문학 강좌도 하시잖아요. 

신-그래요. 이번에 강좌 수료생이 150명정도 되잖아요. 지난 1월엔 공개특강을 했는데 80명이 모여서 한달동안 결석도 안하고 성황리에 끝났어요. 제동씨도 인문학 공부해서 분위기 잘 알잖아요.

김-전 강좌도 강좌지만 선생님과 엠티갈 때가 좋았습니다. 솔아솔아 노래도 부르시고. 노래 정말 잘하시던데요. 

신-제가 노래 없는 세월 20년을 살았잖아요. 독방에서 허밍하는 수준이었죠.

김-아... 그 20년, 노래없는 세월 20년. 그 말씀이 마음에 와서 쿵쾅쿵쾅 합니다. 그때는 감옥 안에도, 밖에도 노래가 없었어요. 노래가 있어도 부를 수 없던 시절이죠.

신-그런가요? 그래도 출소하고 보니까 그래도 많은 성과를 이룬 분야가 노래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부지런히 배우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더 배워야하지만. 

김-요즘 노래 좀 아세요?

신-못 따라가겠어요. 그룹 노래는 노래보다 춤이 우선이기도 하고. 가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탄된 것 같아요. 뭐더라, 네가 떠나갔을 때 내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착각하지마.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공감은 잘 안돼요. 

김-예전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그대로 됐잖아요. 

신-노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팝, 재즈 가사집만 봤어요. 비틀즈 노래만 해도 엄청나잖아요. 변혁적이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가 많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노래는 깊이가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김-비틀즈의 이메진은 사실 혁명이죠. 정말 대단합니다. 

신-제가 가끔 감옥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서 엘 콘도르 파사라고 사이먼&가펑클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아주 서정적이고 좋아요. 내가 언젠가 해외 기행을 하면서 마추피추 산꼭대기에 올랐는데 원주민이 자기들 악기로 그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원주민들이 피사로 일당에게 쫓기다가 최후를 맞았던 자리로 알려져 있잖아요.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김-전 인문학 강좌 끝난 후에 공연하시는 더 숲 트리오가 더 좋아요. 성공회대 교수님끼리 만든 트리오 말예요. 전원 박사학위 소지자시고. 열심히 하시고 음악 수준도 높잖아요. 전 하여튼 엠티가서 모닥불을 피워놓은 자리에서 선생님 뒤에 앉아있었는데 솔아솔아 푸른 솔아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신-그 노래를 내가 주문을 받긴 하는데 노래가 너무 비장해요.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주문하는 사람도 아주 짖궂죠. 난 이제 피하고 싶어요. 

김-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선생님 책을 읽다 보면 저같으면 이런 오랜 세월을 못 견뎠을 것 같아요. 억울해서 어떻게 살지 싶어요.

신-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나로서는 부담이에요. 그 글은 주로 편지글이잖아요. 이중의 검열을 전제로 했지요. 교도소에서, 또 최종 독자인 가족들이 보잖아요. 교도소의 검열도 신경써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걱정을 덜어줘야 하고. 그래서 반듯하고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글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실제 내 삶은 그렇지 않아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무서움도 많이 느꼈어요. 힘들었고. 앞날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저는 독자들을 만나는 걸 피하고 싶어요. 계속 반듯한 모습,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저를 그렇게 보시는 모습이 부담스럽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나와서도 감옥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김-하하. 그래서 선생님이 인간적이세요. 사람들이 선생님을 글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고 하시는 모습 말예요. 
그런데 선생님. 20년하고도 20일입니다. 억울하고 분하지 않으셨나요?

신-그런 질문도 들어봤어요. 그런데 어느 시기를 보더라도 그런 역사적 격랑속에 희생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지금도 이집트, 리비아에서 희생되고 있고. 크게 보면 민족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 특정인에 대한 분노를 갖는 것은 큰 틀에서 온당치 않게 보고 있어요. 20년을 견디는 힘이었다고 한다면 하루하루가 많은 것을 깨닫는 나날이었어요. 그래서 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술회하지요. 뭔가 깨닫는 삶은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해요. 수업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빨리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데 우리같은 무기수는 빨리 간다고 나가는게 아니니까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고 뭔가 도달하려고 하는게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김-도로보다 길 위에서 라는 말씀이시네요. 

신-그렇죠. 도로는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잖아요. 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길의 정서를 갖고 살자는 거죠. 

김-도로는 빨리 가야 하지만 길은 함께 가는 거네요.

신-그렇죠. 지나가는 사람 발자국도 보고, 코스모스도 보고. 

김-발자국 전체가 의미가 있는거죠. 도로는 무조건 가는 거니까요. 

신-모든 동물은 직진하지 않아요. 길의 특성을 공부하면서 가죠. 자기 것을, 자기 표시를 남기잖아요. 그 어느 하나 의미없는게 없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하고. 그런데 모든게 청산되고 오로지 물적인 성과에만 매달리는 것이 오늘날의 삶이 아닌지 싶어요.

김-물적인 성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신-세계의 모든 질서가 그렇지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있고 그 중하위권에 우리나라가 매달려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여기서 떨어져나오면 우리 삶이 정지되는 구조속에 살고 있어요. 서서히, 중장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패권에 올인하는 것을 삼가면서 우리 나름의 계획을 갖고 가야 하는데. 

김-저희도 그래요. 비인간적이고 패륜적인 톱니바퀴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용감하게 도로에서 기수를 틀어 차문을 열고 길위에 서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가야하는 건 알겠지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신-서울 사람 70%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데 현실적으로는 못하잖아요.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지만 이 열차가 좋은 곳으로 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뛰어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살고 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중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아요.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있고, 고민이 깊은 공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럼 가능성은 있죠. 국내외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파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인데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막연하죠. 그러나 굉장히 비싼 학비를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공자는 학이지지 공이지지라고 했어요. 태어나서 아는게 아니고 곤이지지 곤이 부지. 곤경을 겪고도 그 곤경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이런 상태죠. 

김-지금 있는 여러가지 불합리, 부조리. 사람들이 겪는 곤경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신-그렇죠. 그렇지만 쉽지 않죠. 다 바쁘게 가니까. 그래서 강연회때도 이야기했지만 곳곳에 숲을 만들자는 거예요. 작은 숲을 만들어 우선 견디고 방어진으로 숲을 만들고. 많은 사람이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가지 수준의 연대를 해 나가면 사회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선생님 말씀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도 직접적인 단어가 없고 하나도 자극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자세히 듣고 있다 보면 그 어떤 격한 말보다 훨씬 깊이 와 닿을 때가 있어요.


신-아니에요. 김제동씨처럼 행간의 의미를 읽어주는 분이 많지 않아요. 전 제동씨의 그런 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감옥에서 참 많은 사람과 목욕탕 수준의 적나라한 인간관계를 부대끼며 살아오는 동안 뭔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해요. 함께 간다는 것이 중요하죠. 60년대 학생운동 때는 논리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고 그랬어요. 그건 애정이 없는 거예요. 같이 가면서 친구되고 강남가면서 친구되고. 이런 방식이 옳지 않은가 싶어요. 

김-적대감 같은 것이 배제된 상황에서 최소한의 애정을 갖고 충고하고요. 같이 살아야 할 대상이니까요. 

신-그래요. 제가 감옥에서 있을 때 북에서 온 정치경제학 교수들도 있었어요. 한방에서 있으면서 논쟁적인 지점에 이르면 그분들은 좌경적 입장에 서요. 왜냐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죠. 그때 많은 것을 느껴요. 좌경적 입장에 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우경적 입장에서 그 사람 정서에 맞게 함께 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껴요. 해방전후 격동기를 겪어온 나이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고 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에요. 놀던 물을 떠나기 어렵고. 우선 살아야 하니까. 

김-아침 이부자리 박차는 것도 힘들어요. 

신-맞아요. 우린 보수구조가 아주 완고해요. 우회전은 아무대나 할 수 있고 좌회전은 반드시 화살표 신호받아서 하잖아요. 입법사법행정 제 4부 언론까지. 굉장히 보수적이죠. 구조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니까 이념같은 날카로운 주장은 깨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포획돼 있는 정서에 다가가기 위해 이념적인 언어가 아닌 다정한 언어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요. 

김-보수, 진보의 개념보다 사람 사는 건 마땅히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네요.

신-그렇죠.

김-전 토크콘서트 할 때도 선생님 말씀 많이 인용해 씁니다. 허락도 안받고 말이죠. 

신-고맙죠. 그래주면.

김-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위층에서 뛰는 아이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거든 올라가서 그 아이 얼굴을 봐라. 그리고 아이스케키 하나라도 나눠 먹어라. 그러면 그 아이의 발자국 소리는 덜 시끄럽다. 그래서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알아야 저쪽의 언어로도 우리 정서를 표현해 줄 수 있는건데. 우린 의견의 소탕을 하고 있잖아요. 소탕이 아니라 소통을 시도해야 하는데.

신-난 토크콘서트 가서 감동받았어요. 내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구나 싶었어요. 학교 선생이라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언어를 벗어나기 힘든데 제동씨는 구애안받고 즐겁고 깊이 있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토크콘서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선생님하고 전에 했던 것처럼 전국에서 한번 같이 하시죠. 

신-좋죠. 필요하면 더 숲 트리오도 같이하죠. 

김-좋아요. 제가 지금 받는 학점으로 봐선 앞으로 학교에 2년 정도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한번 해 보시죠. 사실 저는 개념적으로 고급 단어는 몰라서 못 쓰는 겁니다. 전에도 선생님과 함게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라는 강연회를 했잖아요. 그게 많이 화제가 됐어요. 

신-그것과 관련돼 꾸준히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라는 붓글씨 액자를 찬조출품했는데 누가 그러더라구요. 여럿이 함께는 방법론이고 어디로 지향할까 하는 가치 지향성이 없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아래에 붓으로 작게 썼어요.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겨난다고. 계몽주의 이후에 진리는 절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 자신의 주체적 결정권이 없으면서 뭔가 밖에서 와야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아픈 잔재라고요. 그래서 여럿이 결정해야 돼요. 함께 고민하면 됩니다. 

김-지향점, 목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뜻을 모아 가면 그 뒤가 길이다 이거네요. 

신-그렇죠. 역사는 수많은 사건이 부딪히며 흘러가는거지, 목표를 정해놓고 도로의 생리로 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김-역사의 결정권자는 언제나 민중이라는 거네요. 전 그 말씀도 기억나요. 모든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식민주의적 사관이다. 1차적원인은 네 안에서 찾아라. 너의 결정에 의해 일어난 일 아니겠느냐. 그런데 사실 가혹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신-사실은 자기 성찰이 철저해야 해요. 그래서 글씨 중에 춘풍추상이라는 글씨가 있어요. 다른 사람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자기자신에게는 추상처럼 엄격하게 하자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반대로 하지요. 

김-그래야 함께 가는 길이 생기네요.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해줘야 할 날도 필요하잖아요. 요즘 같은 때는 선생님 강의 들으면서 소와 양을 바꾸는 이유. 맹자 이야기 말이에요. 
소는 안되고 양은 안되냐, 봤더니 못잡겠다, 아이고 개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던데 내가 귀여워하는 그집개더라.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 개짖는 소리가 안들리더라는 거죠.

신-요즘 들어 그런 고사가 떠오르는 건 구제역 때문인것 같아요. 지나가는 소를 그냥만 봐도 땅에 묻지 못할 것 같아요. 제물로 쓸 때도 뭔가가 나오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집단적 허위의식에 갇혀서 하나하나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어요. 동물 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전 구제역 걸린 가축이 산채로 매몰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인간적인 가치와 가능성도 매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김-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것, 빨리 깨야 하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신-배타적인 자기를 경쟁력있게 만드는 것이죠. 그게 물질적 성과를 획득하는 경쟁력을 키우는 거예요. 현재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가본 가치가 돼 있잖아요. 나라도 그런 포맷으로 만들고 있고. 그런데 많은 사람은 살면서 진짜 소중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바꾸지 못할 뿐이죠. 

김-과연 될까 싶은 두려움에 포기가 되는거죠. 그런데 선생님, 말씀 좀 낮춰주세요.

신-제가 아직도 감옥 모드인게 맞아요. 남한테도 뭘 잘 시키지 못하겠고. 

신-요즘 학생들 보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 어느때보다 정말 공부를 많이해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하고 단군이래 가장 실력 있는데 제일 힘들게 살고 있잖아요. 학교에 있으면서 느끼는 아픔이... 3월이 되면 참 좋아요. 개나리 필 때 새내기들이 캠퍼스에서 웃으면 개나리도 웃는 것 같은데 그 바탕에 아픔이 깔려 있으니까. 학교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요. 

김-연평도 포격사건 일어나고 얼마 안됐을 거예요. 입시치른 고3 수험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 따
라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이 콩 볶는 듯 생명력이 느껴지는데 문득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이... 앞으로 저 아이들을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충분히 이해돼요. 나도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어린이들이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부딪혀야 할, 수 없이 많은 힘든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김-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사람,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게 안타까워요. 

신-맞아요.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지요. 어느 역사적 시기를 보더라도 젊은 사람들 버릇 없다, 말세다 이런 이야기가 없는 때가 없었어요. 여하튼 젊은이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인데 이들이 개인적 대응만 하고 있잖아요. 자기 경쟁력, 실력을 높이는데 매진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의자가 4개밖에 없는데 10명이 경쟁하면 그중 6명은 반드시 못 앉아요. 이럴 경우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방법인가 하는 반문을 해봐요. 

김-기성세대가 함께 노력해서 의자의 숫자를 늘리거나 한 의자에 두세명씩 앉기, 아니면 다 치우고 땅바닥에 앉기 등의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릴 땐 왕따문제 이런게 없었던 것 같아요.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도 깍두기라고 해서 끼워주고 같이 놀았거든요.

신-그렇죠. 그런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 구조가 있는 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왕따가 없어지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가 그런거죠. 자기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약자를 왕따시키는데 가담하거든요. 교도소에도 감방마다 교도소말로 버릇없고 싸가지없는 사람이 다 있어요. 그 사람이 출소하는 날만 기다리죠. 그리고 출소하면 앓던 이 빠진 듯 한데 잠시예요. 또 생기는거지. 몇사람의 싸가지를 내보내고 나서 우리가 깨닫는거죠. 그에게 결함이 없진 않지만 이 억압구조가 그런 왕따를 필요로 하는구나. 그래서 우리 방에서는 왕따를 만들지 말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어요. 사회문제의 책임을 모두 그 사람에게 돌리는거죠. 신자유주의적 패권논리가 바탕에 깔린 상태에서 불안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을 반성해야죠. 

김-피라냐떼엑 먹잇감을 던져줘서 우루루 몰리게 하는 거네요. 그런 먹잇감이 없으면 언제 자기한테 피라냐가 달려들지 모를 불안함 때문에.

신-그렇죠. 물론 우리가 등산할 때 가장 짧은 시간안에 갈 수 있는 코스는 있어요. 그런데 그 길을 가려면 노약자나 어린이는 빼놓고 가야해요. 그러면 물어봐야죠. 오늘 우리의 등산 목표가 뭔가 하고. 빨리 가서 기네스 북에 남기기 위함인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인지, 아니면 이 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목적인지. 우리 삶도 마찬가지죠. 

김-전 산에 업히러 간다고 하는데 가장 즐거웠던 등산은 꼭대기 가는 것도 좋지만 중턱에서 계곡에 발 담그고 막거리 한잔 먹는 거예요.

신-다 힘들어요. 힘들지 않은 사람 없어요. 제가 그림으로 자주 보여주는 것 중에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만 금빛이고 나머지는 붕괴되어가는 그림이 있어요. 경제성장이든 우리 삶이든 많은 사람이 배제되고 고통받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거든요. 크게 보면 이웃, 함께 동시대를 사는 사람과의 공감. 이게 사회의 본질인데 그 점을 우리가 배제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게 마음이 아픈거죠. 

김-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한편의 동화같아요. 전 어린왕자 읽는 느낌도 들었구요. 특히 천국의 추억 같은 책 말예요. 그런데 다 읽고 책을 덮고나면 섬뜩한 생각도 들어요. 이 시대가 이 예쁜 이야기를 이렇게 섬뜩한 이야기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죠. 아이들과 어떤 사람의 예쁜 이야기를 간첩이야기로 몰아붙였다는 것 말예요.

신-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통혁당 무기수로 복역하고 나온 사람의 책이라고 하기엔 전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전 오히려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가 훨씬 설득력있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렵게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전 그래서 글쓰는게 참 힘들어요. 단어 하나 고를 때도 이 단어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이 단어에서 독자들이 어떤 연상세계를 이끌어낼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거든요. 일상 대화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배려가 필요해요. 

김-제가 전에 새내기들 데리고 학교 뒷산에가서 막거리를 6시간 동안 마셨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혼났는데,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자유라는게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제 나름대로 가슴 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 말씀을 수많은 청춘들에게도 해주세요. 

신-자기 주체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 근대 문맥에 갇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타의에 의한 포획의 기제는 굉장히 발전해 있어요. 매스컴 영상에 이르기까지 개인을 포획해내는 기제가 말입니다. 이 속에서 자기의 이유를 갖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기는 자기 이유라 생각했는데 어느날 다른 사람에게 포획돼 있는 자기를 발견하거든요. 반 에덴이 쓴 동화이야기를 자주 예화로 들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깊숲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독버섯이 충격을 받아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 버섯이 위로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먹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리일 뿐인데 우리가 왜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거지? 
우리가 자신의 인간적인 이유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자유주의 가치와 질서가 포획하는 이 환경에서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합니다. 

김-자기 이유를 가지면 개인은 어떤게 달라지나요


신-견딜 수 있고 자기 삶을 인간적으로 살 수 있지요. 자기 행위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죠.

김-선생님 말씀 들으면 부처님 말씀 듣는 것 같아요.

신-그게 문제이긴 해요. 나도 내가 이야기하는 만큼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김-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자기 이유로 사는 것. 그건 각자가 모여 손잡고 사는거죠. 

신-그렇죠. 자기를 배타적 자기로 갖지 말고 자기가 맺고 있는 굉장히 광범한 관계성,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자꾸 비교하는 세상이잖아요. 줄 세우고 아이들을 비교하고. 비교라는 건 부문의 차이를 확대하고 차별성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쓰신 걸 봤는데. 

신-그렇죠.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개인을 다른 개인과 비교해서 판단하려는게 사회적 구조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그래서 우리 학교는 더불어 사는 펠로쉽을 강조하는데 그런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비교보다는 연대,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는 거네요.

신-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이죠.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이 뛰어넘을 객관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트위터, 소셜네트워크, 인터넷이라고 하는 게 온라인의 인간관계가 훨씬 깊이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광범한 넓이와 속도에서는 사회변화의 유려한 토대가 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의 유연성, 과거 우리가 가졌던 공간 공동체, 열연공동체에서 젊은이가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오히려 변화된 상황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훨씬 발전하고 자기의 개념을 넓혀주고 다른 사람과의 연대성을 높이고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객관적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젊은 세대, 파릇파릇한 청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신-요즘 학생들은 우리세대 보다 훨씬 자유로워요. 스티브잡스와 의상에서 차이가 없고, 소유한 사람에 대해 크게 주눅들지도 않죠. 자기를 자유롭게 오픈하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졸업하면 취업이 어렵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노마드의 정서를 키우라고 하고 싶어요. 파울루 코엘료의 연금술사 이야기를 종종 해요. 가죽 물푸대 하나와 양떼, 그리고 담요한장과 책 한권. 젊은이들의 정서는 상당부분 노마드의 정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바래요. 모든 방황과 고뇌도 엄청난 교훈이고 그 자체가 황금의 순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바탕에 깔고 즐겁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김-전에 졸업식때 다른 교수님도 그러셨어요. 가다가 마음껏 넘어지고 마음껏 시도하라고. 등 뒤에 우리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예요. 

신-제 경우도 20년 감옥살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 시절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술회하듯이 방황과 고뇌도 그 자체로 엄청난 의미가 있어요. 바로 그 점을 깨닫기만 하면 인생은 결코 손해가 아니지요. 


김-선생님이 감옥 독방에 갇혀 계실 때 햇살이 점 하나에서 점점 커져서 신문지만해졌다고 하시면서, 그것, 그 햇살이 없었으면 나도 숨을 끊었을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신-그래요. 그때 느낀 것은 이 햇볕만으로도, 이 한점의 햇살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손해는 아니구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인생은 선물이다고 생각했어요

김-선생님의 말씀이 제 삶에 햇볕같은 말씀이었어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신-길게 봐야죠. 사회변화는 국가 권력을 탈취하면 확실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예로 나치스 독일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러시아가 있는데 그 사회는 변화에 실패했죠. 그건 국가 권력의 탈취나 일회적인 실천에서 사회변혁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꾸준히 부단하게 그 사회에 참여해서 소통하고 노력해야죠.

김-창문 밖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땅을 밟는 것이네요. 

전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인터뷰하러 온건데 계속 뭔가 인생 상담만 늘어놓고 있고. 

신-인생은 공부가 맞아요. 깨닫는거죠. 가져갈 게 뭐가 있겠어요. 

김-저는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선생님도 죽을 결심을 한 적이 있다고 하신게 가장 위안이 됐어요. 저런 선생님도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 나도 내가 말한만큼 못산다고 하신 그런 말씀 말예요. 위로와 위안이 됐어요. 

신-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아주 다양한 수위의 수많은 실천이 모여야해요. 오케스트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다양한 노력이 결집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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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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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줌도 안되는 권력층 횡포에 분노… 나도 영화보며 울었다”


공지영(48)이란 이름은 당대의 보통명사다. 이 시대에 그의 이름 앞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그의 날카로운 펜끝에서 생산된 소설과 영화, 에세이가 독자와 관객을 울고 웃게 한다. 나에게 공지영은 예쁘고 글 잘쓰지만, 술 마시면 한 얘기를 또 하는 ‘동네누나’였다. 적어도 며칠 전 누나의 초대로 영화 <도가니>의 시사회에 가서 펑펑 울기 전까지는 그랬다.


몇년 전 지방의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졌던 성폭행 사건을 다룬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서 전국이 분노로 들끓고 있다. 이 때문에 지영이 누나의 트위터는 불이 났다. 수많은 멘션이 밀려들고, 누나 역시 그 사건과 관련된 각종 자료며 기사, 이야깃거리들을 하루종일 트윗, 리트윗하느라 바쁘다.


 



공지영 “무대인사 갔을 때 공유 옆모습을 봤더니 그리스 조각이야. 연기도 감동적이었는데 잘생기기까지 했어.” 김제동 “누나, 나도 조각상 중에 뭐 없을까?” 공지영 “그리스 신들이 탄 수레 끄는 사람도 있어.” 김제동 “아이구, 됐어요. 이래서 난 잘생긴 데다 개념까지 있는 사람들은 짜증나. 조국 교수처럼 말야. 뭐 하나 부족한 게 있어야 인간미도 있는 거지.”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공개적으로 소감도 많이 밝혔겠지만, 막상 영화보고 나니 느낌이 어때요? 


“확실히 영상으로 표현되는 게 장난이 아니야. 강렬하고 무섭다는 걸 느꼈어요. 나도 작품 쓰면서 꽤 많이 감정이입하고 썼는데 영화를 보니 훨씬 더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더 클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성추행, 성폭행이란 단어를 별 생각 없이 말하잖아. 그런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지…. 그 중대성을 몰라요.”


-성폭행과 함께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구조적 비리가 다 드러나잖아요.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계층이동이 심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멈췄지. 그게 1990년대 중반인 것 같아요. 이후엔 공고화가 진행된거고. 중하층이 상류층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상류층이 막잖아요.”


-사다리를 걷어차는 거네요. 


“그렇죠. 자기끼리 혼인하고 인맥, 혈연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가열차게 진행된 거죠. 내가 이 책을 2년 전에 냈는데, 구상하고 쓰는 동안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연행되고 미네르바가 구속됐어요.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돌아가셨고. 사회가 그렇게 형편없이 무너져 가고 있던 차에 이 영화로 뚜껑을 여니까 ‘도가니’가 지방도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대한민국에 퍼져있다는 게 확인된 거죠. 한줌도 안되는 권력층의 횡포와 부패는 더 심해지고 있는 거고. 나도 보면서 화가 나고 눈물이 많이 났어요.” 


-제가 두 칸 옆에서 봤는데 많이 우시던데. 


“연기도 너무 잘해. 공유씨도 다른 배우도 마찬가지고. 얼마나 절절하게 연기하는지 느껴져요.”


-원작이 좋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렇게 말해주면 좋지.” 


-영화를 보면서 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고민하게 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하고.


“그 이야기로 내 트위터 멘션이 몽땅 채워졌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일에 눈감고 살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이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저런 아이들이 짓밟히고 있다는 걸 깨닫고 미안한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어머, 세상에 저런 일이 있었네’ 하고 느끼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들 너무 잘 알고 있던 일인데 그냥 외면하고 있었던 거죠.”


▲ “짓밟히는 약자들 목격… 나도 곧 저렇게 되겠구나

사람들에게 일깨워줬지”

“현실에서 얻은 상처가 안으로 쌓이고 쌓이다가 영화를 보면서 표출되는 거네요.” - 김제동


-영화 만드는 과정도 힘들었다던데요. 


“원작을 사간 제작사가 무척 가난하고 힘든 회사였어요. 그분들은 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뭉쳐 있더라고. 그래서 대기업을 물리치고 그분들에게 줬는데, 제작과정에서 자금을 못 구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나한테 준 원작료도 다 빚이었을 텐데. 공유도 톱스타인데 미안했지. 천신만고 끝에 CJ 한자락을 잡아서 촬영이 개시돼 나름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사가 영화를 찍는 내내 주변에서는 냉소했었나봐. 요즘같이 먹고 살기 힘든데 누가 저런 불편한 걸 보느냐고. 고사를 지내러 갔다가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죠. 스태프, 배우 모두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봉사하다시피 참여했더라고.”


-일종의 재능기부처럼 만든 거네요.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촬영했어요. 영화 외적인 분위기는 별로였지만. 게다가 제작보고회에 기자들도 거의 안왔대요. 그런데 막상 언론시사회로 뚜껑을 열었더니 분위기가 확 바뀐 거죠. 입소문 나고. 예매를 시작하고 나니 결과도 놀랍고.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이 ‘이 영화는 전국민이 꼭 봐야 한다’고 홍보를 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내가 보기엔, 약자들이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당하는 것을 본 거죠. 모르던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던 것. 게다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봐요. 이 정부 들어 특히 심해지고 있는데, 이처럼 약자가 당하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거죠. 나도 곧 저렇게 짓밟힐 수 있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영화가 일깨워줬다고 할까. 사람들은 그래요. 부자들은 저 영화 안볼 거라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고 분노할 테고. 어쨌든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남의 눈을 의식하니 위선이나 꼼수도 부리는 거죠. 당장 분노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이제 너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겁니다.”


-현실에서 얻은 상처가 안으로 쌓이고 쌓이다가 영화를 보면서 표출되는 거네요.


“사실 이 작품을 쓸 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현실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아요. 원래 개봉은 지난해 이맘 때쯤이었는데 제작비 때문에 이번에 개봉된 거고. 그 1년 사이에 부패의 늪은 더 깊어졌고 우리의 무력감은 심해졌죠. 오히려 늦어진 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하늘의 배려일 수도 있고. 영화가 제작과정부터 잘 나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1년 사이에 불안감과 무력감이 더 커진 거네요. 


“내가 요 몇년새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화가 날까 생각해봤어요. 민주주의의 후퇴니 뭐니 하는데 핵심은 이거지. 지금 권력은 약자를 끝까지 짓밟아. 용산부터 시작해서 김진숙, 유성기업, 쌍용 등 모든 게 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싸운다고 쳐봐요. 플라이급이 덤비면 헤비급이 한대 뻥 찰 수 있어. 와서 또 덤빈다고 해도 한대 쥐어박고는 ‘까불지 마라’ 이러고 상대를 안하죠. 그게 무림의 세계에서도 자연스러운 건데 지금 권력이 하는 것을 봐요. 약한 사람이 잽을 한번 날렸다는 이유로 가루가 될 때까지 밟아. 항복은 물론이고, 관전자들이 잔인해서 못 보겠다고 할 때까지 곤죽을 만들어요. 그게 지난 몇년간 반복됐어. 매일 그런 뉴스를 접하게 되고. 아마도 현실의 그런 모습이 <도가니>를 통해 한꺼번에 분출한 거죠. 소설을 쓸 때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의도는 없었어요.”


-다들 무력감과 공포심에 빠져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느끼는 거죠. 다 함께 가서 봐야 할 영화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고. 


“트위터 멘션에 이런 글이 왔어요. 밤 12시인데 좌석이 반 넘게 찼어요, 일요일 오전 11시인데도 매진이에요, 이런 식으로. 이런 걸 왜 알려주겠어요.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우리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거죠.”


-사실 그동안 우리 모두 사회의 문제에, 남의 일에 눈감고 살았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관심만이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일깨워주고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거죠.


“우리가 지난 10년간 너무 무장해제를 했어요. 사회의식의 무장해제. 역사의 반동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하잖아요. 또 의혹이 있어도 경제만 잘 되면 좋다고 표를 행사한 국민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죠. 오히려 다행이라고 봐요. 아마 이전의 10년과 같은 분위기가 계속됐다면 시민운동, 민주주의의 역사를 전수해 줄 사람도 없고 그 소중함이 뭔지 알지도 못했을 거야. 사회의식을 놓는 순간 이렇게 된다는 것도. 지난 몇년간 저축은행이니 뭐니 그렇게 난리가 났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산 거잖아. 미국 쇠고기 수입할 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미국 소가 들어오면 싸니까, 그래도 없는 사람들은 좋아하며 사먹을 거라고. 그 심리가 뭐겠어요. ‘저들은 조금만 배 채워주면 별 소리 안해요, 자기들 먹고 살기 바빠 절대 딴 데 정신 팔 틈이 없어요’ 하는 거지. 내가 <도가니>에도 썼지만 이 지저분한 성폭행 사건에 왜 무진시의 엘리트들이 달려드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게 핵심이죠. 그들은 가문의 일원이고, 다같이 뭉쳐서 서로 지켜주는 거죠.”


지영 누나는 본의 아니게 시사회 때 젊은 친구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가 우리보다 얼마나 더 잘살았는 줄 아느냐고. 하지만 상류층의 부패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이런 식으로 상류층이 똘똘 뭉치는데 우리가 눈감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나는 많이 살았지만 앞으로 창창한 20대가 이렇게 눈돌리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영화를 보러왔다가 ‘잔소리’를 듣고 간 20대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 “성희롱해도 또 의원 되고 여기자에 폭언 일삼는데

그런 국회 뭘 기대하겠어”

“난 약하지만 함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목격자가 늘고 있어 희망적이다.” - 김제동


-대중들이 각자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몫이라는 게 있는데, 누나가 제시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호통치고 이야기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와요?


“생각하는 것을 그냥 말하는 거지. 난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아줌마라고. 이 아줌마가 피부로 느끼고 있으면 다들 느낄 거 아녜요. 난 특별히 정치의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번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야만의 시대 같아요. 좌도 우도 아니고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


“상식과 몰상식, 양식과 무식의 대결이지.”


-성희롱한 사람을 다시 국회의원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죄 없으면 돌을 던지라잖아요.


“이 사건이 예전에 「PD수첩」으로 방송된 적이 있었어. 요즘 다시 보기로도 많이 본다는데, 실제 가해자 8명에 수많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죠. 소설이나 영화는 축소한 건데 현실이 더하다니 끔찍한 거고. 소리도 못 지르고 들리지도 않는 아이들의 장애를 전적으로 이용한 거잖아. 게다가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런 사건이 2005년에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범죄는 공소시효도 없애고 가중처벌을 해야해요. 그럴려면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해야 하는데 답답하죠. 영화에서 서유진이 말했던 것처럼 ‘발정난 나라’니까. 성희롱 했던 사람을 다시 국회의원 만들고, 여기자에게 까불면 맞는다고 하고. 그런 국회의원들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이런 걸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다른 작품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이었어요. 촛불시위 때인 것 같아. 기사를 봤는데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청각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법정을 울렸다’는 구절이 나와요. 이상하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들이 울부짖었을까. 사건을 찾아봤는데 정말 기기묘묘해요.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자료를 찾아보고 광주로 내려갔죠. 당시 광주는 이 영화 끝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절망감과 초토화된 울분만 남아 있었어요. 피해자들과 함께 3년을 싸웠던 분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큰 승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면서 열심히 취재했죠.”


-시사회 때 보니까 판사, 변호사도 많이 오셨던데요.


“보고 나서 괜히 민망해서 괜찮으셨냐고 물어봤어요. 기독교인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고. 이번에 최고의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장로님이래요. 오히려 그분은 그래서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정말 하나님 잘 믿고 올바른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모독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영화는 필요한 거죠. 그런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죠? 


“지금 있는 시설이나 시스템만으로도 돼요. 문제는, 한번도 아무도 감시·감독하지 않았다는 거니까.”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어요?


“나도 한동안 개인적인 부분에만 치중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봤잖아. 부패하는 권력을. 한눈은 내 삶을, 한눈은 우리가 선출해서 권력을 위임해 준 그들을 봐야 해요. 눈을 떼고 있으면 그들이 우리를 성폭행하러 올지 모른다고 생각해야지. 지켜봐야해요.”


흥행이나 반응만 놓고 본다면 누나는 작가로서 행운이고 행복하다. 나 역시 코미디를 하는 사람으로서 코미디 소재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행운이다. 동시에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불행한 시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 약하지만 함께 손을 잡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목격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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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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