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로 알려진 ‘마이 웨이’는 샹송이 원곡이었다. 1967년 가수 클로드 프랑수아가 질 티보와 함께 작사하고, 자크 루보와 함께 작곡한 ‘콤 다비튀드(Comme d’Habitude)’는 의역하자면 ‘늘 그랬듯이’다. 원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랫말과는 사뭇 다르다.


“눈을 떠서 너를 흔들어 보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않네. 늘 그랬듯이/ 나는 네가 추울까 봐 이불을 덮어주지. 늘 그랬듯이/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네 머리칼을 쓰다듬지. 늘 그랬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마치 옆에 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의 얘기를 시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랑 얘기가 부드러운 프랑스어와 어우러진 노래다.


1969년 27세의 싱어송라이터 폴 앵카는 프랭크 시내트라를 염두에 두고 영어로 개사해 헌사했고,원곡보다 유명해졌다. 그러나 고독한 사랑노래는 확신에 찬 인생노래로 변질됐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왔고, 이뤄야 할 것들을 다 이뤘노라고 노래한다. 또 모든 것에 정면으로 맞서왔고, 부끄러운 짓은 안 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노랫말 때문에 이 노래는 한때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중장년 신사들의 18번이었다. ‘자존감의 끝판왕’쯤 되는 노래지만 젊은층들에게는 ‘꼰대들의 애창곡’으로 비치기도 했다.


‘클로클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클로드 프랑수아는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이 노래는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샹송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1978년 3월 파리의 자택에서 전구를 바꿔 끼우려다 감전당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정작 클로클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만났지만 ‘마이 웨이’를 쓴 원곡자라고 밝히지 못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생충>이 올해 오스카의 얼굴이 됐지만 감독상 후보에 오른 모두가 남성이었고 배우상 후보 대부분도 백인이었다.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로렌 스카파리아, 그레타 거윅, 셀린 시아마 등 훌륭한 작품을 냈지만 아카데미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 영화인들의 이름을 새겨넣은 망토를 걸친 채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네번째 오스카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회의가 한창일 때였다. 휴대폰 화면에 단톡방 메시지가 떴다. “작품상 받았대요”라는 말 뒤로 글자보다 많은 여덟 개의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코로나19를 필두로 쏟아지는 무거운 소식들 때문에 발랄한 기분이기 어려운 시기에, 모처럼 모두에게 얼마간 들뜬 얼굴이 되게 하는 단비였다. 나 역시 각종 영상과 이런저런 뒷얘기와 해석들을 찾아보며 <기생충>의 성취를 흠뻑 즐겼다. 그후 며칠간, 누구와 만나도 대화의 얼마간은 <기생충> 얘기로 채워졌다. 대단한 개인의 성취를 목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근사한 일일뿐더러, 그 성취를 얼마간 ‘우리의’ 성취처럼 느낄 만한 구석이 있다면 함께 고양되는 흐뭇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시상식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으로 쏠리기 시작한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감독상’이 주어졌을 때였다. 봉 감독이 무대에 서서 마틴 스코세이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옮기고 무대 아래 영화인들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칠 때, 등줄기가 살짝 서늘해지는 비현실감이 느껴졌다.  봉 감독은 외부자에게 문을 열어준 아카데미에, 나 역시 당신들과 연결된 일부라는 메시지를 우아하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봉 감독의 이 소감은 탁월하고 영리했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성취를 향한 여정의 출발엔 영화를 그저 미친 듯이 좋아했던 12살 소년의 개인적 열망이 있었을 뿐이다.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한 과거의 한 강연에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라. 누가 뭐라든 듣는 척만 하고 무시해라.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힘줘 한 바도 있다. 긴 시간 개인적인 열망을 놓지 않는 게 순탄하기만 했을 리 없다. 매끈하지만은 않았을 길을 걷는 동안, 스코세이지의 그 말이 희미한 가로등 하나쯤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4개 부문에서 오스카를 수상하는 데는 탁월한 영화와 위대한 감독 이상이 필요하다. <기생충>은 딱 알맞은 순간 등장한 작품이었고, 2020년 아카데미를 몰아가는 바람은 <기생충>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OscarsSoWhite(오스카는 백인 일색) 해시태그 운동으로 요약되는 다양성 요구는 5년 넘게 이어지며 점점 세가 커진 사회적 요구였다. 카메라의 뒤든 앞이든 백인 남성으로 한가득 채워진 영화들, 그런 영화들로만 가득 채워진 오스카 시상식을 사람들은 부자연스럽게 느끼기 시작했고, 백인 일색의 오스카는 낡고 뒤처진 것으로 보이기에 이르렀다. 한둘의 목소리가 사회적 요구가 되고, 사회적 요구가 시장의 흐름이 되면, 그때부터 목소리는 놓치면 안되는 기회이자, 넘기면 도태될 위협이 된다. 바로 이 변곡점이 가장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2020년의 오스카 시상식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을 밀어준 사회적 요구의 바람은 영화계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의 기회로 해석하고 포착하는 임팩트 비즈니스는 이런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기 시작하는지 보여주는 풍향계의 역할을 한다.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술, 포용적인 금융, 젠더 편견을 탈피하는 패션, 일하는 자의 복지를 돌보며 만들어지는 서비스. 임팩트 비즈니스가 지향하는 가치들의 예시다. 이런 가치들은 개별의 창업자들이 자기 마음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기에 비즈니스로 구현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 되는 순간들이다.

 

임팩트 비즈니스가 영화 한 편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면,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요구를 알아채는 데서 출발한다. 임팩트 투자는 개별의 개인적인 것들이 사회적 요구가 되고, 곧이어 시장의 흐름이 되는 순간을 한발 앞서 포착하려는 시도다. 어느 지점 어떤 순간에 자본을 투입해야, 그 시장의 기회를 한발 앞서 잡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다음의 질문과 다르지 않다. 어떤 사회적 요구에 언제 힘을 실어야 가장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어떤 사람들의 가장 개인적인 욕구는 사회적 바람의 풍향계가 되어준다. 그 바람이 너무 거세져 돛을 세울 수 없어지기 전에 큰 돛을 지어 좋은 배에 달아주는 일이 임팩트 투자다.

 

<기생충>이 올해 오스카 얼굴이 되었지만, 오스카를 향한 다양성 요구는 멈추지 않는다. 감독상 후보에 오른 모두가 남성이었다는 점, 배우상 후보 대부분이 백인이었다는 점은 빠지지 않고 지적을 받았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내년의 오스카도, 점점 더 많은 영화자본도 이 바람에 반응할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바람을 거스르는 사람이 바람을 등에 업은 사람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책<2019년 제 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1월 초부터 불거진 ‘이상문학상 사태’는 2월4일 문학사상사가 올해 수상자 발표를 하지 않고 계약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낸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학사상사는 공식 입장문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출판사가 저작권 양도 조항에 대해 몰랐을 리 만무하지만, 만에 하나 몰랐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에 대한 무지는 출판사의 기본적인 자격을 위협하는 몹시 심각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구가 저작권 갈취의 고의성을 덮기 위해 공식 입장문에 쓰인다는 사실은 돈 문제에 대한 무지가 문학계에서 양해될 만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문학상 사태’와 관련해 발표된 일부 글에서 문제의 핵심이 굴절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가 가지게 마련인 특유의 자존심” “상징권력” “창작자와 출판사는 동반자적 존재” “우정과 연대”와 같은 말들은 작가의 권익 보장과 불공정한 계약 거부라는 이번 사태와 섞일 이유가 없다.


돈 문제에 대한 무지가 용인되거나 그 심각성이 경시되는 현실의 밑바닥에는 문학의 경제적인 조건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정하기까지 하는 오랜 폐습이 있다. 한국 사회는 문학과 돈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있어 매우 미숙하다. 문학 작품에 그려지는 가난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현실에서 작가가 돈에 대해서 말하면 불편해한다. 한국문학의 독자가 늘어나길 바라지만 많이 팔리는 문학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저작권, 선인세 및 원고료 지급을 비롯한 공정한 계약 조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무디다. 집단적인 경제불감증이다.


이는 문학에 대한 관념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한국 문학이 지켜내야 할 오랜 미덕이자 자부였다. 산업사회 이후에도 문학의 존재 이유를 보증해주고 소위 대중예술과 구분되는 가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을 위태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위험은 자본주의에 침윤되거나 시장 논리에 좌우되는 상황이 아니라 문학이 돈과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온다.


문제는 그 사유의 부재와 미성숙의 대가를 개인이 매번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며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윤이형 소설가는 1월31일 작품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입장문에서 자신이 “용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저작권’과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을 구별하지 못”한 채로 양도 문서에 사인했다며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은영 소설가 역시 같은 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작년에 우수상을 받았던 저의 안일함을 지난 몇 주간 돌아보며 채찍질”했다고 적었다. 출판사의 명백한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부조리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문학출판계의 열악한 노동환경,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안 등 새로운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문학계의 이 거대한 무지와 불감증을 깨려는 움직임이다. 여러 작가들이 문학사상사 업무거부 해시태그 운동에 가담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불공정한 계약 조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인 동시에 문학장에 진입한 행위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발화하겠다는 의지다. 스스로를 무지한 상태에 두기를 거부하고 오랫동안 문학에 덧씌워진 순수한 이미지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할 때, 이것이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학 자체의 문제라는 당연한 말을 언제까지 해명하듯 덧붙여야 하는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남긴 여러 ‘어록’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LA비평가협회 감독상을 받은 뒤 말한 수상 소감이었다. 그것은 아카데미 4관왕과 봉준호붐이 가진 여러 역설 중 하나를 선명히 표현해줬다. 그는 자기 예술의 ‘원천’에 대해, 소년 시절 AFKN(미군방송)에서 “야하고, 폭력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몸속에 영화적 세포를 만”들었는데 영어를 몰라 멋대로 이야기를 상상했던 그게 “어른이 돼서 보니” 브라이언 드 팔마, 존 카펜터,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20~30대에겐 낯설 AFKN은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황금 채널(2번)을 노골적으로 차지한, 냉전문화와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상징이었다. 미군방송을 보며 자란 ‘시네마키드’가 이룬 아카데미 4관왕은 현대 한국(문화)과 미국(문화)의 관계를 압축하고, ‘한국적인 것’의 역설도 유감없이 나타낸다. 


과연 봉준호의 ‘영화 세포’들엔 ‘한국적인 것’의 지층이 축적돼 있다. 그는 식민지 모더니즘의 대표격이었다가 자진 월북한 소설가 박태원의 외손이며, 1980년대 말 학생운동에 참여해 구속된 적이 있다. 그런 청년 봉준호를 1990년대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충무로가 기린아로 양육했다. 처음부터 그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풍자와 유머로 감쌌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살인의 추억> <괴물>도 엄청난 매력과 규모를 가진 ‘봉준호 리얼리즘’(송강호) 서사였다. 이를 잘(?) 이해한 박근혜 정권은 ‘좌파’ 봉준호를 블랙리스트에 등재해줬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일면 무척 게으르고, 일면 역설적 탄성이 들려오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기실 ‘한국적인 것’은 이미 ‘미국적’이고 또 ‘주변’으로서 세계적이었던 것이다. 이 수상과 붐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은 한국인들이 이토록 기뻐한다는 사실 자체겠다. 물론 이는 제국의 인정에 갈급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식민지 의식과는 결이 좀 다른 듯하다. 이 성취는 한국영화사뿐 아니라 현대문화사에 온 ‘특이점’일까?


이로써 ‘한국문화’는 이전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단히 역설적으로, 재벌 CJ와 함께, 또 그 힘으로, 미국 중심 문화체제에 더 깊숙이 연루·개입된다. 이 사건은 (월드컵 4강처럼) 한국인의 자기인식 - 문화적 눈높이와 위치 감각을 한번 더 재조정할 것이다. 그리고 한류의 흐름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며 이정동 교수의 책 <축적의 시간>(2015)을 떠올렸다. 각 분야의 서울대 공대 교수들을 인터뷰해 쓴 것으로, 산업계뿐 아니라 대통령도 읽고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영향을 끼쳐 국가-이데올로기-서사 재구성의 중요한 소재가 됐다. 그 서사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추격형 발전’은 이제 끝났고, 앞선 미국·일본·유럽의 ‘선진국’과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저성장·저혁신 위기를 맞게 됐다는 줄거리다. ‘개념설계역량’이란 게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인데 추격형 발전국가인 한국엔 그게 없다. 그래서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하려면 서구 선진국과 같은 오랜 경험과 암묵지 축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계속 발전’ 구호를 초조히 외치면서도 한편 ‘오랜 축적’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당착이 책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의아하지만, 변해온 세계체제 속에서의 대한민국의 좌표와 위치 감각을 새로 표현해줬기 때문에 책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또한 이 사회가 축적한 또 다른 것의 결과다. <축적의 시간> 식이라면 ‘영미나 일본처럼 앞으로도 더 세계인에게 잘 팔릴 콘텐츠의 원천 기술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식으로 귀결되겠지만 문화예술의 축적과 탁발성은 그와 다를 것이다. 


봉준호 같은 ‘거장’이 또 나올까? 사람을 기생충처럼 만들고 저 깊은 지하로 수직계급화하는 극심한 불평등이 당장 해소될 전망이 없어 보이니 일면 낙관적(?)이다. 높은 예술은 비판정신과 고통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딘가에 제2, 제3의 청년 봉준호가 자라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회학과를 다니며 학생운동 덕분에 만든 원초적 ‘개념설계역량’ 같은 게 고갈되고, 예술과 문학 같은 데 투신하려는 청년들이 사라지고, 의대와 공무원 지망생만 양산하는 사회라면 비관적이다. 


하여 ‘봉하이브’와 <기생충> 붐엔 감당 안되는 더 큰 아이러니가 있다. 처음 개봉 때 호오·찬반이 엇갈렸던 <기생충>의 충격적이고 ‘불편한’ 계급적대 서사는 어떻게 수용 가능한 풍자·유머, 그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전환됐는가? 부자들은 느낀다는 빈자들의 ‘냄새’와 그런 부자를 도륙하고 싶은 빈자의 살의는 어떻게 할까? 이 세계적인, 세계에 ‘시전’된 불평등과 적대를 해결하러 나설 때가 아닌가.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윤이형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최근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


1년 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매년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깜짝’ 발표하는 그곳에 소설가 윤이형이 있었다. 반가웠다. 2016년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 당시, 윤이형은 문단의 남성중심성과 폭력성, 그 안에서 ‘여성 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였다. 그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문단의 구조와 가해자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문학계 성폭력의 방관자로서 폭력의 확대 재생산에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이런 일들을 자각한 여성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서사를 쓸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그가 내놓은 문학적 답변이었다. 함께 살던 고양이의 죽음과 함께 결혼 제도의 폐해를 그리면서도,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거나 성급하게 파국을 그리지 않았다. 끈질기게 해답을 찾고 대안을 모색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사회 속에서 필연적인 갈등에 부대끼는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감동과 위안을 받았다. 그런 작품이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호명됐기에 적잖게 기뻤다. ‘페미니즘에 입문한 작가’의 변화와 시도에 제도권 문학이 인정해준 것이므로. 그런데 그 인정과 호명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년 뒤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소설가 김금희가 이상문학상 우수상 조건으로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이 부당하다고 문제제기하며 시작됐다. 이어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오십명이 넘는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를 선언하며 보이콧에 나섰고, 그제서야 문학사상사는 저작권 양도 조항을 삭제하고, 이상문학상 수상작 발표를 취소했다. 겉보기엔 작가들의 단체행동이 거둔 ‘승리의 서사’로 읽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작가 한 명을 잃었다. ‘윤이형’은 소설 대신 SNS를 통해 문단·출판계의 불공정한 구조를 비판하는 ‘고발자’가 됐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과 세계와의 싸움을 기록하면서도 희망과 연대를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글을 써오던 작가가 그 꿈을 접고 분노와 절망 속에 고발의 글을 쏟아내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문학계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수많은 문제와 부패와 부조리들을 한 명의 작가가 제대로 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윤이형이 말했다. 지금까지 ‘지뢰’들은 표절 논란, 성폭력 사건, 저작권 침해 등으로 다양하게 터져나왔다. 윤이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한다. ‘지뢰밭’을 뚫고 나온 예외적 작가만이 생존하는 시스템이라면, 지뢰를 통과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춘 작가, 운이 좋은 작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지뢰’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당연히도 그 결과물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이상문학상 수상 조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문단·출판계의 문화와 구조, 법과 제도에 관한 문제다. 예술인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국회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한 답을 모두가 모색해야 한다. 그때 잃어버린 작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영경 문화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노래를 듣다가 가슴 한쪽이 무너져내린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들을 때마다 번번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노래가 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1991>이라는 제목의 앨범 수록곡으로 불혹을 눈앞에 둔 양희은이 쓰고, 26살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만들었다. 양희은이 단 하룻밤 만에 완성했다는 노랫말과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병우의 기타 선율이 어우러져 뜨겁고도 처연한 사랑과 절망의 노래를 조율해냈다.


1987년 결혼한 후 뉴욕으로 갔던 양희은이 ‘아침이슬’ 2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앨범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인 이병우를 뉴욕으로 불러서 노래를 만들어 연습하고 딱 하루 만에 앨범 전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정작 처음에는 장사 안되는 음악이라면서 제작자들이 외면했다. 이 노래가 유명해진 건 몇 년이 지난 뒤 드라마에 삽입되면서부터였다. 


불혹의 양희은은 이 앨범에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목소리를 선보인다. ‘아침이슬’과 ‘한계령’을 거쳐 이 노래로 보컬리스트로서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듯한 창법으로 그 안에 뜨겁고도 처연한 사랑을 펼쳐 보인다. 양희은과 이병우는 사랑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그네들의 슬픔을 거둬가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같이 쓸쓸한 겨울 저녁이면 이 노래의 울림이 다른 계절보다 더 크다. 조수미, 이은미, 나윤선 등 굵직한 보컬리스트들이 리메이크했지만 그 백미는 최백호가 아닐까.


<오광수 부국장·시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여년 전 미국 유학생들은 비디오테이프 한 보따리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구석에서 비디오 복사하는 한국 식료품 가게가 흔했습니다. 한 집에서 잔뜩 빌려다 놓으면 다음 집에서 보고 또 돌려보고 했죠. 돈도 들고 수고스럽기도 하니 한국방송을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죠.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를 봅니다. 한류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할리우드의 반대쪽 미 동부 시골이라 그런지 한국영화를 개봉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생충>이 개봉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작품상 트로피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LA_ 로이터연합뉴스


반가운 마음에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직장 동료도 보러왔더군요. 그리고 지난 주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감독상을 받은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작품상을 받으며 대미를 장식할 땐 함성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뿐이 아니었죠. 세계 곳곳에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 그의 예전 작품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말대로 ‘로컬영화제’인, 백인 남성 위주라는 오명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였기에 더더욱 놀랍고 뜻깊습니다. 미국에서는 외국영화가 흥행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미국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죠. 한 분석에 따르면 총티켓 판매액의 1%도 못 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미국 사람들은 외국영화를 안 보는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영화의 인기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합니다.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은데(2019년 한국 영화시장 매출액 27%가 미국영화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오죽 좋아할까요. 굳이 외국영화를 찾아볼 필요를 못 느끼는 겁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11일 (출처:경향신문DB)


<기생충>도 마찬가지입니다. 2월10일 현재 미국 시장 총수입은 3603만2519달러로 430억원 정도 됩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앞으로 더 늘겠죠. 그래도 미국영화에 비하면 아직은 초라합니다. 이번 학기 가르치는 학생이 약 80명인데 물어보니 들어본 사람이 네댓 명, 본 사람이 두 명이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최고의 영예를 <기생충>에 준 겁니다. 물론 뛰어난 작품입니다. 하지만 <기생충>만 한 외국영화가 없진 않았죠. 


그렇다면 왜 <기생충>일까. 인종, 성별 등에서 다양성이 없다는 비난에 대한 자정 노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동적 사회 흐름에의 할리우드식 저항도 <기생충>의 성공에 한몫을 했을 겁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뒤지지 않기 위해 이선균 배우 말대로 <기생충>이 아닌 “오스카가 선을 넘은 것”이죠.


청룡영화상은 그 선을 넘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선을 넘을 수 있을까요?


2016년 <곡성>의 구니무라 준이 남우조연상을 받은 게 외국인으로 유일합니다. 최우수 외국영화상도 1990년에 와서야 시작했지만 1995년을 끝으로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수상작도 다 서구 영화였죠. 익숙지 못한 태국영화에 작품상을 주면 다음날 어떤 기사가 실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긴 제3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들이 겪는 고초를 생각하면 이는 한가한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한 신분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임금체불,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성폭력 등의 고초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개선책을 논의해도 갈 길이 먼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외국인은 세금도 안 냈고, 기여한 바도 없다”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 차등 지급을 주장했죠. 인권 차원에서도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국적·신앙·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선을 넘기에 저들과의 경계선은 아직 너무 멀리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그 선은 길고 높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늘리고 높여도 그 선은 넘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회라는 게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죠. 코를 막고 칼에 찔릴지, 선을 넘어 연대의 손을 내밀지 결정해야 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星邇輝吾頭頂上


 不知此亦星中一


“별은 가까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여기 또한 그 별들 중의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별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_ 700×690㎜ _ 화선지에 먹 _ 2014


몇 해 동안 오며 가며 지내던 원주 작업실에서 쓴 글이다. 거기서 참 많은 글들을 썼었다. 혼자 있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나와 만나는 것. 그리고,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난다는 것. 자연 아니, 우주 공간. 비록 또한 나의 눈으로 보고 만나는 새로운 세상이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상상과 사유는 달라진다. 그리고, 무슨 깊은 통찰이 없더라도 그 시간들은 ‘고요함’으로 내게 보상해 준다.


그 작업실을 지난주에 비워주었다. 내게 장기 임대해 주었던 마을에서 매물로 내놨기 때문이다.


거기 고적한 강변 펜션의 짐들을 서울 한복판으로 다시 끌고 들어오다니….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그 공간과 시간을 다시 만드는 수밖에. 형편 되는 만큼….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대중음악 블라블라 > 정태춘의 붓으로 쓰는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은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0) 2020.02.13
노래는 시다, 라는  (0) 2020.01.30
가자, 저 산  (0) 2020.01.16
차별하지 마라  (0) 2020.01.02
고향 평택①  (0) 2019.12.19
아나키…통제와 차별에 대한  (0) 2019.12.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