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의 행위가 개별적으로 떳떳하다면, 개별행위들을 합쳐놓은 결과도 사회에 유익할 거라는 믿음은 우리 능력자 계층의 착각일 뿐이다.”


매튜 스튜어트가 <부당세습>에서 한 이 말을 오래 곱씹었다.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를 두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른바 86세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항변을 듣게 된다. 불평등이 계급 문제라고 하면 주억거리지만, 세대 문제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 심리를 스튜어트는 정확히 파악했다. 이름하여 대항서사. 그 서사를 우리 식으로 풀면 이렇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건 오로지 실력 덕일 뿐이다. 알다시피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근근이 살아갈 만큼만 벌어왔다. 어머니의 현명함과 희생이 없었다면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터다. 고액과외나 받아 보았겠는가, 부족한 과목만 학원에서 보충하면서 스스로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도 아르바이트와 성적 장학금으로 나왔다. 두루 내가 노력한 대가다. 


더욱이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사회 민주화에 이바지해왔다. 주변에 학생운동 안 한 녀석 없고, 여전히 운동성을 유지하는 녀석도 수두룩하다. 1억원 조금 넘는 연봉 가운데 후원금 명분으로 나가는 돈이 제법 되는 이유다. 그런데 왜 불평등의 원인이 우리 세대에 있다고 하나? 세대론을 들이대는 사람들 의도가 의심스럽다. 사회상층을 차지한, 특히 상위 1% 무리를 보라. 출발부터가 다르다. 실력과 노력으로 열매를 거둔 사람이 그 무리에 얼마나 되나. 금수저라는 딱지는 그쪽에 붙여야 마땅하다. 


자녀 문제에 이르면 핏대를 세우며 더 강한 대항서사를 써 내려간다. 재벌처럼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줄 게 없으니, 공부라도 제대로 시키려 했다. 내가 번 돈으로 유학도 보내고 입시 컨설팅도 받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널뛰는 입시제도 잘 활용했을 뿐이다. 융통성 있게, 네트워크 이용해 살아온 것일 뿐이다. 우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돈 있는 집안에서 하는 짓을 보아라.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말 그 사람들 너무 하더라.


지은이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집단을 능력자 계층이라 이름 짓는다. 대체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2016년 기준으로 적게는 120만달러(약 14억원), 많게는 1000만달러(약 12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진 계층이다. 능력자 계층의 소득수준을 보면 상위 9.9%에 해당한다. 흔히 사회 불평등 문제를 말하면 상위 1%를 지목해 그들을 악마화한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를 집중적으로 늘려온 집단은 최상위 0.1%였다. 이 집단이 2012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부의 22%를 차지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몫을 단단히 거머쥐고 잘 지켜낸 집단은 능력자 계층이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지만 최상위와 최하위 집단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했다. 더욱이 능력자 계층은 “이 모든 혜택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할 방법을 알아냈다.”


대물림 방법은 학벌세습이었다. 능력자 계층은 미국 대학 입시의 전형을 지혜롭게 활용했다. 꼭 공부만 잘할 필요는 없다. 동문 자녀 우대 정책이라는 에움길을 택하기도 했고, 체육특기자 선발을 이용하기도 했다. 스쿼시나 펜싱 같은 운동은 돈이 많이 드는지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쳐서 문제가 되기는 했다. 유명인들이 수십만달러에 이르는 뒷돈을 주고 자녀를 체육특기생으로 부정입학시킨 사건이 터져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학벌세습에 목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선 대졸자가 고졸 이하보다 70%나 돈을 더 번다.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대를 나오면 대졸자 평균보다 3배가량 연봉이 높다.


이 정도면 수치는 다르지만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과 재산은 우리 사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녀 대학입시 문제로 정치인이 공분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학벌세습으로 부를 대물림한다고 대중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도 능력자 계층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분노를 문제 삼는다. 최상위 0.1% 세력은 만연된 불평등에 좌절한 집단을 포획해 능력자 계층과 대립하게 한다. 허무맹랑한 분석이라고 볼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성공이 이를 입증한다. 보수세력이 대중을 사로잡아 개혁이나 진보세력을 궁지로 모는 전략으로 공정성을 들고나오는 우리 정치현실도 여기에 들어맞는다.


인류는 지위와 부를 혈연관계에서 대물림하는 세습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나눠주는 능력주의 사회로 전환해 왔다. 미국이 대표적인 성공사례였고, 우리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 능력주의는 덫이 되었다. 능력이 세습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능력자 계층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역시 능력자 계층으로서 불평등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은 점을 반성한다. “전쟁, 혁명, 국가의 붕괴,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대재앙만이 불평등을 끝장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최상위층과 공모해 왔노라 고백한다. 나 또한 내가 포함된 86세대를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이철승이 말한 대로 “개인수준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수준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예는 비일비재”한 법이다. 공동체의 가치에 이바지했으나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강고해진 현실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할 따름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지은이가 한 다음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국혁명의 첫 세대는 대개 9.9%에 속했지만, 최상위층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혁명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중상위 계층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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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1995년 ‘패닉’의 이적과 김진표가 데뷔 앨범을 내놨을 때 대중은 단숨에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달팽이)라는 도발적 노랫말은 일찍이 우리 가요계에서 찾기 힘든 감성이었다. ‘왼손잡이’와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등은 훗날 시와 소설, 노래 등 전방위적인 글쓰기로 주목받은 이적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노래였다.


2007년 이적이 3집 <나무로 만든 노래>의 타이틀곡으로 내놓은 ‘다행이다’ 역시 따뜻한 노랫말과 어쿠스틱한 멜로디로 이 풍진 세상을 사는 우리를 위로하는 노래다. 같은 해 정옥희씨와 5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 이적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애시당초 1분30초 길이의 짧은 소품이었지만 주변에서 타이틀곡으로 적극 추천했다. 이적은 이 노래를 매만져서 3분이 넘는 지금의 곡으로 다시 썼다. 아내를 처음 소개받은 뒤 다른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했던 이적은 두 번째 만남에서 운명과 같은 사랑을 예감했다. 그래서 “나랑 사귈래요?”라고 고백했고 “예”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술을 마시면 전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적은 “나랑 사귀자고 물었고, 그녀가 예라고 답했다”고 메모를 해놨다. 그 운명같은 사랑의 얘기를 이 노래에 담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다’는 천천히 반응이 왔다. 다큐멘터리에 삽입되고, 파업 현장에서 불리는가 하면 연인들의 고백송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발표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인기를 얻게 된 건 단순한 사랑 노래를 뛰어넘어 사람 사이의 체온을 확인할 수 있는 따스함 때문이었다.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는 건 결국 사랑이 아닐까.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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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심형래씨가 1999년 영화처럼 만들어낸 영화 <용가리>(Yonggary)가 국내 배급은 물론 해외에 수출되었다. 해외에서는 국가에 따라 ‘용가리’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 위해 미리 이름특허까지 사전조율했다는 루머도 있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미국 현지 배우들을 제작에 참여시켰고,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특수효과에 투자했던 프로젝트다. 영화 엔딩크레디트에는 감독 심형래 스스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경험과 완성해 낸 자신의 성과를 자막으로 설명한 부분이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울컥함이 있었다. 물론 함께 영화를 본 당시 어렸던 딸은 아버지가 영화도 아닌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 내 반한감정과 반한류가 정치 문제와 연결되면서 재생산되고, 단교 수준까지 주장하는 우익집단의 협박에도 BTS의 지난 7월 일본공연은 일본 아미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틀 동안의 오사카공연 10만석이 매진됐다고 한다. 여성인권이 여전히 율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이슬람문화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10월 공연에서는 히잡을 쓴 6만8000명의 사우디 아미들이 열광했다. BTS 역시 노출을 자제한 무대의상을 입고 멤버들 간의 스킨십을 자제했으며 이슬람 율법을 고려해 사소한 동작과 발음에도 조심했다고 전해진다. <알라딘>의 지니처럼 콘텐츠에는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주문이 있나보다.  


1990년대생의 향수를 자극하며 20억원 후원을 이끌어낸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 프로젝트’


‘텀블벅’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일반 대중이 소액투자를 통해 좋아하는 콘텐츠의 완성을 만들어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라는 상품에 10월17일 기준, 23억원이 모였다. 시작할 때 목표액은 이미 초과됐는데 마감일이 6일이나 남아있다. 6만 명이 넘는 후원자들의 십시일반 투자금액이 기록적인 규모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에게 마감일에 지급되는 리워드, 즉 투자성과는 투자금액에 대비해 어떻게 구성될까. 막대한 투자금액에 공감해 확대된 9월30일자 리워드 수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슬리브형 3단 디지팩, USB카드형 음반 및 CD형 음반, 20페이지 북클릿, 키링 추가 증정, 사인엽서 3장 등 총 5종의 상품을 3만3000원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5만9000원 투자자에게는 이러한 상품세트를 2세트 지급한단다. 


<달빛천사>는 오래된 일본애니메이션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애니메이션에 더빙했던 일본인 성우가 중심인데, 강력한 팬덤을 구성하고 있는 그 성우의 목소리로 한국판 OST를 제작해 판매한다는 기획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아주 소박하고 오타쿠적인 팬덤의 목표여서 시작할 때의 목표금액도 3300만원이었을 것이다. 11월25일이 예상지급일인데, 소액투자한 팬들의 마음엔 모아진 금액도 기적일 터이지만, 지급될 상품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행복의 시간이란다. 크라우드펀딩을 기획·제안한 창작자는 국내 성우협회 소속 보이스 플랫폼이다. 일본상품의 불매운동 과정에서도 이 상품기획은 스스로도 놀라는 투자금액을 만들었다. 


우연히 찾은 강남 커피숍에서 한 연예인의 생일잔치를 조촐하게 준비하며 열심히 기념품을 진열하고 풍선을 꾸미고 있던 청년을 본 적이 있다. 휴가 중인 군인이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스타 생일을 위해 모든 일정을 생일잔치에 맞추고 있다고 했다. 느끼며 좋아하는 감성이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성을 만들고, 정주행으로만 직진한다. 이처럼 뜨거우면서도 절대로 눈치보거나 타협하지 않는 소소한 이성을 콘텐츠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설리가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이 계속되어서는 안되겠다. 소소한 이성이 건실한 응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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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 작곡가가 독일음악저작권협회에 7만200개의 음악저작물 사용허가 신청서를 트럭으로 제출했다. 33초 분량의 그의 음악 ‘제품 간접 광고’(product placements)에 그 수많은 음악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요하네스 크라이들러라는 인물로, 그는 당시 디지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음악 개념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며 기존 관념과 충돌하는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던 차였다. 인용된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제품 간접 광고’도 그 일환이었다. 음악학자 신혜수의 표현처럼 이는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젊은 작곡가의 해프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기존 체제가 디지털 시대에서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야기”했다. 그 작품을 과연 크라이들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인용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디지털 환경에서 한 음악의 정체성을 가르는 핵심요인은 무엇인지 등 이 33초의 소리더미는 음악에 관한 적지 않은 질문을 끌어냈다.


이 논쟁적인 음악이 하필 저작권협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음악저작권은 우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제화되어 개별 사례에 실천적으로 적용되는 일종의 최종관문이다. 국내의 경우 음악저작물은 “음 또는 소리를 그 핵심요소로 하며 가락, 리듬, 화음 등을 요소로 하는 악곡”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가사와 즉흥연주 모두 그 개념에 포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 사례가 음악저작물로 인정받으려면 법령에 명시된 음악의 구성요소들에서 한 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독창성이 발견되어야 할 테다.


법으로 재단된 이 음악저작물의 개념은 일견 명료해 보이지만, 실제 창작의 현장에는 수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음악 현장에는 구전되며 조금씩 변형되어온 선율, 인용과 차용, 가락과 리듬과 화음의 틀은 같을지언정 연주·노래하는 이에 따라 음악이 상당히 달라지는 경우가 만연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창작자는 다른 음악의 일부를 가져와 그것을 조금씩 바꾸는 것으로 창작을 시작한다고도, 엄밀히 말해 완전한 1차 창작은 없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그런 광경을 보면 한 음악과 다른 음악이 명확히 구분된 영역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스펙트럼처럼 이어져 있는 듯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고군분투 끝에 다르게 들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저작권 문제를 전면적으로 맞닥뜨리는 이들도 있다. 기존 음악을 재료 삼아 ‘샘플 기반 음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디제이들이다. 여러 음악을 가져와 그것을 낯선 방식으로 뒤섞고 그로부터 생경한 묘미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작업방식은 저작권법을 위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들의 음악은 동시대 음악문화의 특수한 조건을 발 빠르게 반영하는 흥미로운 사례들이지만, 매번 진정한 창작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세간의 인식뿐만이 아니다. 작업물을 음반으로 발매하거나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 올리려 할 때, 샘플 기반 음악들은 저작권 필터링 단계를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나아가 이것은 때로 예술활동증명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진다. 저작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공식화된 창작물’의 문제는 창작자가 행정적으로 예술인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악저작권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간단치 않다. 누군가에게 샘플 기반 음악은 새로울 것 없는 실제적 침해 사례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음악의 존재론적 형식을 바꿔놓는 새로운 형식 실험이다. 저작권은 저작물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축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샘플링 금지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거나 미미한 분량을 샘플링한 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등 관련 판결들도 조금씩 누적되며 저작권에 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이 음악저작권 문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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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스웨덴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스웨덴 예테보리도서전에서는 그랬다. 지난달 26일 예테보리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한국 측 연사는 모두 남성이었다.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 현기영 소설가 등이 무대에 올랐다.


스웨덴은? 아만드 린드 문화부 장관, 프리다 에드만 도서전 디렉터, 아넬리 레딘 예테보리 시장 등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39세 여성인 아만다 린드 장관은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출산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린드 장관이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에게 수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개막식날 저녁에 열린 리셉션에선 아넬리 레딘 시장이 축사를 했다. 축사 후 한국 작가와 기자들이 있는 테이블에서 그는 “스웨덴은 성평등을 많이 이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불평등이 남아 있다. 여성은 아직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자와 난민을 언급하며 “스웨덴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삶을 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레딘 시장에게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았던 게 있다면 어깨에 두른 ‘금사슬’이었다. 예테보리의 문장이 새겨진 금 휘장을 거대한 목걸이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남성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크고 무겁다”고 말했다.


2019 예테보리국제도서전이 시작된 26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전시·회의 센터에서 주빈국 한국관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이영경 기자


성평등 지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나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도서전의 주제는 ‘성평등(Gender Equality)’과 ‘미디어 정보 해독력’이었다. 주빈국인 한국관 주제는 ‘인간과 인간성(Human and Humanity)’이었는데, 나는 조금 의아했다. 성평등에 대한 요구는 근 몇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목소리였고 한국 문학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페미니즘과 퀴어 등 여성과 소수자를 다룬 문학이 많이 창작되고 있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에 이어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한국 문학과 문단엔 적잖은 변화가 일었다. 한국 문학은 ‘성평등’에 대해 누구보다 뜨겁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도서전에서 열린 ‘한국 문학의 페미니즘과 그 미래’라는 세미나엔 김금희 소설가와 김동식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김동식 평론가는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성 평론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더 적합한 여성 평론가를 갖고 있지 않은가. 한편 세미나 참여자들은 ‘#비혼’ 운동과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가수 아이린에 대해 질문할 만큼 한국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인간과 인간성’이란 주제에 대해 주최 측은 “‘성평등’을 인간 조건의 문제로 끌어안고자 했다” “도서전 주제인 성평등보다 ‘인간과 인간성’이란 주제로 더 근본적인 걸 건드렸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성’이란 주제가 포괄적일 순 있지만 지금 어떤 ‘인간’이 차별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못한다. ‘인간’이란 범주에 속하지 못하고 지워진 존재를 가시화하는 과정이 인권 확장의 역사였고, 지금 ‘젠더’는 ‘인간’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주최 측은 주빈국으로서 한국 문학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에 관해 분출하고 있는 한국 문학의 열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전에 참여한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휴먼(Human)은 그냥 맨(man)이야.” 한국 문학의 ‘주류’라 불리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이 말에 있지 않을까. 적어도 예테보리도서전에서 우리는 과감히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춤하는 제스처를 보여주고 말았다.


<이영경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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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먹고살기는 힘들다. 책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음악책은 어떻겠나. 한국에서 음악책이 귀한 이유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인기를 얻은 음악가의 전기는 더욱 귀하다. 


이런 와중에 책 한 권을 읽었다. 콜드플레이의 전기다. 국내에서는 처음 출간된 그들의 전기다. 199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만난 네 친구들이 밴드를 결성한 이후 2015년 <A Head Full of Dreams>까지 총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세계 정상의 팀으로 군림하는 과정을 풍부하게 묘사한 책이다. 보통 뮤지션의 전기는 평전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평가보다는 묘사에 치중한다. 멤버들을 포함해 그들의 역사에 발을 디뎠던 사람들의 코멘트를 빼곡히 인용한다.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찍었던 사진은 물론이고 첫 공연의 포스터 같은 희귀자료에서 색채 미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최근 공연 사진까지, 풍성한 시각 자료가 함께한다. 


이런 구성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저자 덕분일 텐데, 이 책은 두 명이 함께 썼다. 무명 시절의 콜드플레이를 맨체스터의 한 클럽에서 발견해 자신이 다니던 레이블로 픽업한 A&amp;R담당자 뎁스 와일드와 음악 작가인 맬컴 크래프트(방탄소년단에 대한 팬북을 쓰기도 했다)는 콜드플레이와의 오랜 친분을 통해 격의 없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 그들이 레이블 계약을 맺지 않고 있었던 1998년, 영국의 음악 전문지 ‘NME’는 ‘1999년 주목해야 할 이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냈다. 여기에는 콜드플레이도 있었다.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인 더 시티에서 콜드플레이가 화제를 모은 이후다. 크리스 마틴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해 크리스마스였는데 부모님 집 화장실에 있었어요. ‘NME’를 펼치자 1999년에 주목할 밴드를 소개하는 기사가 보였어요. 인 더 시티에서 알게 된 밴드도 있으려나, 하고 읽어봤죠. 뮤즈, 엘보, 벨라트릭스, 게이 대드…. 콜드플레이! 이건 뭐지? 진짜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거의 기절할 뻔했어요.” 


그들의 첫 히트곡이자 오늘의 콜드플레이를 만든 노래, ‘Yellow’에 대한 일화도 살펴보자. 데뷔 앨범을 녹음하는 기간 동안 레이블 관계자들의 걱정은 이 앨범에서 싱글로 낼 만한 곡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멤버들은 스튜디오 마당에서 별이 쏟아지는 맑은 밤하늘을 함께 보며 경탄했고, 다음날 크리스는 모든 소절의 가사가 ‘Yellow’로 끝나는 신곡을 멤버들 앞에서 흥얼거렸다. 조니가 16세 때 만든 기타 리프를 그 곡에 입혔다. 이렇게 탄생한 ‘Yellow’를 들은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회상한다. “ ‘Yellow’를 처음 들었을 때 난 바로 기타를 집어들면서, ‘젠장 내가 왜 이 곡을 먼저 안 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도 콜드플레이 팬이라면 흥미있을, 에피소드들이 이 책을 마치 지방이 거의 없는 고기처럼 만든다. 그 일련의 에피소드와 증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21세기의 록 스타로 만들었는가다. 


20세기 중반, 10대 백인 청소년들의 댄스 뮤직으로 로큰롤이 탄생한 이래 록스타란 대중 앞에서 거만해도 괜찮은, 아니 거만할수록 추앙받는 몇 안되는 직업이었다. 술과 마약, 여자로 점철된 사생활은 그들의 특권이다시피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인터넷의 발달은 은폐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팬들은 신화적 존재 대신, 소통하는 존재를 원하게 됐다. 록과 팝의 경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처럼 무너지고 융합했다. 


2000년에 데뷔한, 즉 21세기와 함께 세상에 등장한 콜드플레이는 새로운 세기가 원하는 덕목에 스스로 동기화됐다. 거만함 대신 선량함, 방탕함 대신 성실함, 위압 대신 친근으로 스타덤의 세계를 항해해 왔다. 저자는 크리스 마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크리스는 본연의 자아를 잃지 않았다. 그는 거친 바다를 항해해 왔지만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늘 노력한다.” 음악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시대는 끝났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태도가 중요하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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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가을과 닮았다. 붉은 단풍처럼 타오르다가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진다. 사랑은 모든 잎을 대지에 주고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와도 닮았다. 그런 사랑이 그리운 계절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목소리와 애절한 노랫말이 어우러져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뒤흔들려도 당신이 나만 사랑해준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노래한다. 또 검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라면 그리할 것이고, 도둑질을 하라면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말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릴 수 있다고 노래한다. 


142㎝의 작은 키에 연약한 몸 때문에 예명조차 참새(피아프·piaf)라고 지은 그는 삶 자체가 비극이었다. 그가 노랫말을 쓴 ‘사랑의 찬가’는 그 비극의 정점에 있는 노래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14살 때부터 서커스단원인 아버지를 따라 유랑생활을 했던 에디트 피아프는 가끔씩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탁월한 노래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파리의 클럽에서 스타가 됐다.       


그녀는 뉴욕 공연에 갔다가 만난 세계미들급 챔피언인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미 세 아이를 둔 유부남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르당은 1949년 10월28일 포르투갈 인근의 아조레스 제도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피아프를 만나러 뉴욕으로 가던 길이었다. ‘사랑의 찬가’는 연인을 잃은 아픔을 담은 노래다.  


1951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에디트 피아프는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과 술에 의지했다. 그 와중에도 노래를 향한 사랑과 열정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러나 남편 자크 필스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1963년 10월10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그녀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라 비앙 로즈>(장밋빛 인생)가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삶이야말로 어떤 영화보다도 더 파란만장했기에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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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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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邊秋蘆田(강변추로전) 강변엔 가을 갈대밭


西天熱火海(서천열화해) 서편 하늘엔 뜨거운 불바다 


붉은 노을 장엄하다 _ 700×340㎜ _ 초배지에 동양화 물감과 먹 _ 2018


유소년 시절에도 시골의 고향 들판에서 노을은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광활한 간척지와 거기 연이은 갯벌 너머로도 해는 날마다 졌을 테니까. 그런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 들어 도시 살면서, 또 옥상 있는 집에 살면서 거기서 만나는 노을에 너무 많이 감격스러워한다. “오오… 저거 좀 봐아….”


아마도 노을 장관의 각별함이 나이와도 관련 있을 듯싶다. 그래서 어린 시절까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들판에서 무감하게 노을 바라보던 그때 그 소년은 지금의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감정 과잉과 한 편의 청승. 


그 소년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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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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