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그레이엄이 1940년 초연한 <세계에 보내는 편지>. ⓒ 마사 그레이엄 컴퍼니


‘숙녀에게 나이와 몸무게를 묻지 말라’는 말은 최근에 와서 양성 불평등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고 있다. 사실 이 말은 무대 위의 숙녀인 발레리나에게 가장 많이 적용되어 왔다. 발레 명작 중에 <잠자는 미녀>의 주인공 오로라 공주의 나이는 16세. 발레리나들은 나이가 들어도 이 역을 춤추기 위하여 연령과 몸무게를 초월하려는 피나는 노력을 해왔지만 20~30대의 전성기를 거쳐 40대에 접어들면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100세시대를 이야기하는 현대에 와서 인류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무용가의 무대 위 수명도 길어졌다. 대다수의 현대무용가들은 연령과 몸무게가 제각각인 무용수들의 개별적 특성을 존중한다. 예전에 비하여 과학적으로 신체훈련을 익힌 덕분에 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출연도 한다. 게다가 기술보다 표현에 가치를 두는 성숙한 무용수를 선호하는 안무자들이 많아지고 있어 무용수의 연령은 점점 높아가고 있고 심지어 브랜드화되기도 한다.


80세 넘어서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미국의 초기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은 ‘춤추는 것과 춤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론 춤추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다음 세대인 머스 커닝햄 역시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인 92세까지 플라스틱 관절을 달고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들이 출연하는 공연마다 좌석이 빨리 매진됐다는 것은 무대에서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경지의 성숙한 무용가들을 관객들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이 경우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일본 부토무용가 오노 가즈오이다. 71세 때 발표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무용가 반열에 올랐고 104세에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휠체어에 몸을 싣고 춤을 춘 전설같은 행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순박한 농부의 건강한 춤으로 평가받았던 하보경 밀양북춤명인이 있다. 80대 중반에 손자의 등에 업혀 등장한 그의 무대를 본 기억이 있는데 발이 땅에 닿자마자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였다. 한발 앞으로 딛기도 힘든 상태라 한자리에 줄곧 서서 장단과 가락을 정교하게 짚으면서 관절을 섬세하게 흔드는 그의 춤에 모두가 취했다. 


춤을 사랑하는 무용가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무대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춤은 젊은이들만 추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푸라기 하나라도 들을 힘이 있으면 이 세상의 어느 무용가도 무대에서 춤출 수 있다.


<남정호 |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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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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