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 솔로 꿈꿀 권리, 2004년, 호암아트홀 ⓒ박상윤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맨발로 춤춘 최초의 무용가로 알려져 있다.


돌이켜보면 태초에 원시인들은 대지를 두 발로 딛고 자신을 땅과 결합시키면서 모두 맨발로 춤을 추었다. 발은 신체 중에서 땅과 만나는 가장 가까운 부분이며 발이 온몸을 받쳐줌으로써 인간은 서고 걷고 달릴 수 있다. 


어른이 되면 두 발로 서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게 획득한 큰 사건이었는지 잊어버리지만, 갓난아이가 두 발로 서게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몇 번이나 쓰러지면서도 끝내 일어서는 순간 아이는 최초로 독립하는 인간이 된다. 바닥과 접해 있던 신체의 많은 부분이 땅과 분리되고 두 발이 다른 모양으로 땅과 재결합되는 과정은 네 발 유인원이 두 발 직립인간으로 진화한 과정의 축소판으로 볼 수도 있다. 


이후 발은 신체의 가장 밑바닥에서 묵묵히 모든 신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을 감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에서 가장 낮은 위치와 평행하여 낮은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그러한 발이 주역으로 등장할 때는 발길질을 당하는 것이 최대의 모욕이 되는 것처럼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이다.


성경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발을 씻기고,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 


왜 하필이면 발일까? 


신체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발을 대할 때는 자신의 몸 위치를 발에 근접하게 아주 낮추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절대적 존중과 신뢰 그리고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자세다. 


맨발은 현대무용의 상징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이사도라 덩컨이 맨발로 춤춘 지 한 세기가 흘렀다. 지금은 맨발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무용가가 점점 사라지고 양말, 운동화, 구두를 신고도 춤을 추지만 현대무용의 시작은 맨발이었다. 맨발로 춤추는 것은 전족과 같은 발레 토슈즈를 벗어 던진 기세당당한 초기 여성 무용가들의 자부심이었다. 맨발로 춤을 추게 되면서 여자는 언제나 반쪽의 도움이 필요한 여자 무용수가 아니라 혼자서도 뛰어오르고, 돌고 그리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온전한 무용수가 되었다. 이후 현대무용의 역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여성 해방의 역사와 나란히 길을 가고 있다.


초기 현대무용의 본질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혁명이었다. 이 초심을 기억하고 훼손하지 않을 때 현대무용은 가치를 가장 크게 발휘한다.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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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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