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오직 인의일 따름인데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느냐는 맹자의 결기가 말이다. 젊은 날 <맹자>를 읽었을 때는 당당함이 돋보였다. 권력자 앞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양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모든 것의 가치가 오로지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에서 맹자는 돈에 미친 시대를 건너게 해주는 지혜의 등대라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읽으면서 맹자 철학의 두터운 지층 가운데 한 켜가 철학 논쟁의 결과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맹자는 공자의 직계 제자가 아니다. 그는 제후의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널려 있건만 들판에는 주려 죽은 백성의 시신이 널브러진 전란의 시대를 끝장내려면 어떤 철학이 필요한지 고심했다. 당대를 지배한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의 것을 섭렵하며 마침내 공자 철학에 동의했다. 그 철학을 이어나가되 비판하여 더 옹골찬 사유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맹자는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당장 전국시대를 사로잡았던 묵가와 싸워야 했다. 양주파 역시 그와 논쟁을 벌인 짝패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명가, 법가, 병가와도 논전을 벌였다. 맹자 이해하기가 뜻밖에 어려운 것은 철학사의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인데, 달리 말해 맹자를 읽다보면 백가쟁명의 동양 고대철학을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배병삼의 책은 바로 이 논쟁점을 돋을새김하여 맹자 철학의 고갱이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데다 맹자와 맞붙은 쪽의 관점을 잘 해설해 놓아 두루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특히 묵가와 그 영향권에 놓인 고자와 벌인 치열한 철학적 전투는 흥미진진한 데다 다른 <맹자> 해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맹자 철학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하필왈리를 해설한 대목부터 묵가와 벌인 진검승부를 박진감 있게 풀이했다. 묵자 철학은 겸애로 수렴한다. 그런데 이 겸애하는 목적이 서로 이익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점은 주목하지 않는다. 겸상애(兼相愛)는 곧 교상리(交相利)다. 맹자가 보기에 이 철학이야말로 교정리(交征利), 그러니까 이익을 다투는 위기를 몰고 온 주범이다. 묵자는 “남의 나라 위하기를 자기 나라 위하듯 한다면 그 누가 자기 나라를 들어 남의 나라를 치겠는가”라고 말했다. 배병삼은 이 구절에서 위민(爲民)주의를 읽어낸다. “요컨대 겸애를 바탕으로 군주가 백성을 ‘위하면’ 백성의 수가 늘어나고 군사력이 강해지므로 결과적으로 군주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일 뿐이다. 배병삼은 맹자 철학을 위민주의나 민본주의라 여겨온 통념을 비판하면서 맹자는 한마디로 여민(與民)의 철학이라는 점을 설득력 높게 풀이해냈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부동심을 여쭙자 맹자가 직접 인용한 고자의 말은 교양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다. 고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했다. 배병삼은 고자가 한때 묵가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 말을 묵가의 군사조직 원리에 기대어 풀이했다. 고자의 말은 상명하복의 피라미드식 조직이었던 묵가의 조직운영 원리인 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은 이해되지 않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가리킨다. 묵가에서 마음은 “생존을 위한 계산 능력”에 불과했으니,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는 계산하지 말라는 뜻이다. 묵가는 마음을 다양하고 변화가 심해 고정불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의는 외부에 있다는 의외론(義外論)을 펼쳤다. 반면, 맹자는 인의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했다. 제사에 쓸려고 끌고 가는 소가 부들부들 떨자 그 꼴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한 제선왕이나, 모르는 아이가 우물로 기어들어 갈 적에 선뜻 구해주는 것은 오로지 누군가 겪는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마음에 깃든 선한 것을 지키고 키우고 확장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세우자는 게 맹자 철학이다.


이 대목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고자와 본성론을 두고 벌인 격론을 이해한다. 고자가 “인성으로 인의를 만드는 것이 꼭 버드나무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외부에서 사람을 교정하는 제작적인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고자가 성은 용출수와 같다고 하거나, 생이란 성이라 한 것이나, 성은 식색의 욕망이라 한 것은 인간을 한낱 본능적 동물로만 보았기에 한 말이다. 맹자가 공자에 이어 주목한 것은 기희(幾希)다. 사람이 금수와 구별되는 극히 드문 그 무엇을 찾았으니, 차마 못 본 척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맹자 철학은 위태롭다. 고작 마음에, 그것도 드문, 그런데 고작 ‘차마’라는 부사어로만 표현될 것으로 여민의 세상을 이루고자 했으니.


배병삼의 <맹자, 마음의 정치학>을 읽다보면 맹자의 고독을 느끼게 된다. 짐승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이루어내려면 어떤 방도가 있을까? 너도나도 지적 고투 끝에 방책을 내놓지만 결국에는 군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이르고 만다. 다른 길을 뚫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때 인의 가치를 신화적인 인물인 요순에 기대어 설파하는 공자를 발견한다. 맹자도 마음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발명하고 이를 널리 알렸으나, 권력자는 그의 철학을 외면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2300년 된 &lt;맹자&gt;라는 현을 다시 켜 살아있는 음을 내려는 배병삼의 고독 또한 느껴진다. 여전히 이익만을 내세우는 시대에 맹자의 목소리는 한낱 소음으로 들리겠지만, 십여 년을 바쳐 &lt;맹자&gt;를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해서 하는 말이다. 스스로 길을 낼 만한 인물이 아니라 자조한다면, 주저앉을 일이 아니라 길을 내며 남긴 발자취라도 따라가야 하는 법. 배병삼이 다시 연 맹자가 꿈꾼 그 길을 기꺼운 마음으로 걸어보자.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