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 한 명은 퀸 엘리자베스, 다른 한 명은 록 밴드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 대영제국 영광의 상징, 퀸 엘리자베스 여왕과 탄자니아의 자치령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인도계 이주민이자 에이즈로 사망한 록스타 프레디 머큐리의 묘한 대조는 이성애와 동성애, 본국인과 이민자, 정치와 문화 사이의 건조한 이항대립을 조롱한다. 그리고 그 시절은 ‘퀸’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중후반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이 시절은 역설적이게도 록음악의 황금기이자 1980년대 초 ‘뉴웨이브’로 통칭되던 신보수주의 문화로 가는 비극적 이행기였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거라던 대영제국의 하늘 아래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는 이 알레고리적 수사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역사 향수주의를 소환하기에 제격이다.            

 

배우 라미 말렉이 출연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 영화가 머나먼 한국에서 개봉 35일차, 627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최고의 흥행 음악영화가 된 비결도 아마 퀸의 소환이 몰고 온 역사 향수주의일 것이다. 물론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된 흥행은 비틀스, 아바에 견줄 만한 퀸의 수많은 히트곡들과 프레디 머큐리의 파란만장한 생애사, 그리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감동적 서사 때문일 것이다. 관객들은 퀸이 일군 록의 역사를 지금 현재의 공간에서 소비하길 원하고, 젊은 세대는 주옥같은 히트곡을 들으면서 굳이 그 시절의 역사적 이해 없이도 퀸의 음악과 동일시할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예술영화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자체로 시대적 조명과 상관없이 대중적인 음악영화로서 흥행 코드를 많이 내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이 영화가 왜 머나먼 한국에서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을까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퀸을 열정적으로 소환한 국지적 상황의 이면에 어떤 ‘정치적 무의식’이 있지 않을까? 퀸의 전성기인 1970년대 영국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보수당과 노동당 사이의 정권교체가 빈번했고, 경제는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악화일로에 달했다. 노동자들의 삶은 궁핍해졌고, 근대적 산업체계는 붕괴되고, 영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퀸’과 동시대를 살았던 전설의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즈는 영국 왕실과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롱하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벌이며, 노동자 계급 청년 하위문화의 저항을 대변했다. 그리고 위기의 영국을 구하기 위해 등장한 철의 여왕 마거릿 대처는 민영화, 감세, 노조파괴로 요약되는 강력한 신보수주의 정책을 펼치며 유럽의 1980년대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른바 ‘뉴 웨이브’ 문화는 음악의 상업화, 스타일의 탈정치화, 사운드의 시각화라는 퇴행적 양식들을 생산했다. 1985년 에티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에이드’는 전 세계 콘서트 역사상 최고의 이정표였지만, 음악적으로는 1970년대 록스타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퀸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도 퀸은 너무나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지금 퀸의 소환은 마이클 잭슨, 듀란듀란, 웸으로 대변되는 화려했던 1980년대 뉴웨이브팝의 향수마저도 잊게 만든다. 1975년 4집에 수록된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1977년 6집에 수록된 ‘위 윌 록유’ ‘위 아 더 챔피언’은 정치적 격변기, 여왕마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될 수 없었던 1970년대 정치사회의 음악적 오마주이기에 충분하다. 

 

퀸의 소환, 그것은 정말 ‘시대의 소환’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옥같은 그의 노래 안에는 아웃사이더, 부적응자, 이주민이라는 1970년대의 정치적 무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멜로디와 가사가 매혹적일수록, 그 시절 정치적 무의식의 서사들은 망각되기는커녕 강렬하고 처절하게 소환된다. 퀸의 수많은 사랑의 서사들은 타자를 향한 것이고, 시대를 향한 것이다. 음악이 전자적 노이즈에 저당잡힌 지금, 퀸의 소환은 시대의 소환이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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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