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복타복 타복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이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주랴 명태 싫다. 가지 주랴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양병집이 발굴해 부른 ‘타복네’는 함경도에서 구전돼 온 민요였다. 원래 표기는 ‘타박네’로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그의 책에서 ‘타박타박 걷는 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제목이라고 주장했다. 정태춘 노래 ‘양단 몇 마름’의 2절 가사를 쓰기도 했던 양씨의 어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준 노래였다. 함경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구전돼 오면서 제목과 가사 또한 지역마다 다르게 전해져 왔다.

 

김민기·한대수와 더불어 1970년대 3대 저항가수였던 양병집은 굵고 짧게 한국 포크계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서라별예대 작곡과를 다니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증권사에 입사한 양병집은 밥 딜런의 노래를 개사한 ‘역(逆)’-훗날 김광석이 부르면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이 바뀜-으로 포크 콘테스트에 참가한다. 결국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신촌 라이브카페로 간다. 그곳에서 조동익과 최성원, 정태춘, 전인권 등과 어울린다.

 

1974년 발표한 <넋두리>는 포크의 본령이 살아 있는 앨범이었다, ‘역’과 ‘서울하늘’ ‘타복네’ 등은 유신 독재정권을 향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했다. 결국 이듬해 ‘가사와 창법, 방송 부적격’을 이유로 판매가 금지된다. 가요계에 불어닥친 대마초 파동 이후 양병집은 증권회사에 재입사했다. ‘타박네’는 서유석이 불러 더 유명해졌고, 이연실도 양병집이 개사한 ‘소낙비’와 함께 불렀다.

 

1986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생활하던 양병집은 1999년 영구 귀국해 후배들과 함께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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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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