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인간단테 커튼콜.

부드러운 ‘카페라떼’는 나른한 오후에 위안을 준다. 가끔 느긋한 주말 아침에는 큼지막한 잔에 양껏 담아 마시기도 한다. 제조법에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카페오레라고도 불린다. 하트 모양, 나뭇잎 모양의 하얀 거품을 음미하며 마시는 카페라떼가 요즘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더 유행이다. 올 초에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제목의 노래도 발표됐다.

 

누구나 ‘라떼(나 때)는 말이야’ 하고 회상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무용수 시절 ‘나 때’는 마냥 용감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지금처럼 지구 반대편의 오디션 정보까지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시대가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나도 프랑스 유학 시절, 직접 발품을 팔며 벽에 붙은 오디션 홍보지를 베껴 적고, 우표를 붙인 신청서를 보내고 회신이 오면 참가했던 오디션들…. 이런 기다림을 이야기하면 ‘나 때는 말이야~ 라떼 꼰대 시작이군’ 하며 웃을 수도 있겠다. 기다림의 미학이 무색한 시대이고, 6개월 이상 비대면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다 보니 직접 얼굴을 보며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나 때는 말이야’의 시간이 되고 있다.

 

요즘 창작 작업을 하다 보면 같이 작업하는 무용수 부모님의 나이가 나보다 적을 경우도 있다. 당황스럽다. 세대는 다르지만 함께하고 싶어 뽑은 젊은 무용수들이 나의 작업방식이나 철학을 공유할 수 있을까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Y세대, Z세대 무용수들과 안무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시 나도 모르게 ‘나 때는 말이야’처럼 나의 기준에 맞춰 강요한 것은 아닐까. ‘라떼 꼰대’ 짓을 한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라떼 꼰대’ 증상은 그저 춤이 좋아 무대에 오르던 ‘나 때’의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 심해진다.

 

‘나 때’는 국가 창작지원금을 받지 못해도 창작 작업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창작 작업은 운명이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빚까지 져가며 공연하는 후배들이 많지 않다. 스마트한 세대다. 예술인들을 위한 국가보조금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되지만 근성 있게 꾸준히 작업하는 후배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런, 또 ‘나 때’가 되고 말았다.

 

‘나 때’는 진부한 것일까. ‘나 때’라 할 수 있었던 것들과 ‘나 때’라 못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후배 세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때’의 경험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유산이다. 최근 혼성 댄스그룹 싹쓰리가 1990년대 ‘나 때’ 감성의 뉴트로 노래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나 때’의 값진 경험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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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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