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코로(Silakoro). 자연을 숭배하는 사람들.

2009년, 이 땅에서 무용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지쳐갈 무렵,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한 달간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편의 큐레이터를 제안해왔다.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로 ‘상아 해안(아이보리 코스트)’을 뜻하며, ‘아프리카의 기적’ ‘아프리카의 꿈’으로 불리는 나라이다. 66개 종족의 춤과 음악 등 아프리카 최고의 예술혼과 오랜 세월 그들의 삶 속에서 깊이 숨 쉬는 정령신앙은 호기심과 매력으로 다가왔다.

 

코트디부아르를 미지의 세계로만 생각했기에 수도 아비장의 고층빌딩과 시원스레 뻗은 도로들을 마주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카오 생산 세계 1위의 농장, 블룰레 마을의 신성한 마스크 바 춤, 리듬감의 춤 ‘테마테’, 삶의 터전 ‘방코 빨래터’, 전통신앙인 부두교, 춤과 음악을 담아내는 사람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철학과 교훈을 보듬고 있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과거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상아 해안에 더 이상 상실의 아픔은 존재하지 않았다. 풍요로운 바닷가에 깃들어 사는 소박하고, 평화롭고, 넉넉한 ‘비움’의 삶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건, 더 많이 갖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도시인의 삶보다 함께 나누는 그들의 여유로운 삶이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의 힘으로 이들의 전통문화예술을 서양화 혹은 상업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아프리카의 전통예술은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도, 인종도, 출신 지역도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그들과 나는 춤으로 교감했다.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예술, 춤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게 배웠고, 인식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교육 수준과는 상반되게 누군가는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등급을 나누는 현실에서 예술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에서는 경제적 수준, 사회적 위치, 외모 같은 물리적 제약이 불필요해 보인다. 이게 바로 10여년 전 내게 다가온 미지의 나라 아프리카에서의 깨달음이다.

바르게 보고, 뒤집어 보고, 물구나무를 서서 보고, 어떻게 보든 확실한 것들이 있다. ‘비움’이라는 행복의 키워드이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지쳐갈 무렵 만난 코트디부아르는 많은 울림을 주었다. 더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나누려 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춤은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삶 깊숙이 자리했을 때 빛난다는 것을 말이다.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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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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