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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이 들면서 누구나 아픔과 결핍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마주 앉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배우 손예진씨(29)를 내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뒤 이뤄진 첫 만남. 예전 이상형이던 배우 송윤아씨가 형수가 되고 난 뒤 ‘방황’했던 내 마음은 손예진씨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걸 두고 형수는 “넌 줏대도 없냐”고 비난했고, 내 주변에선 나를 한동안 놀려댔다. 그런 비난이나 놀림이 대수인가. 사랑은, 이상형은 움직이는 거다. 그렇지만 긴장과 떨림으로 터질 듯한 내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내게 ‘선방’을 날렸다. 





“얼마 전에 방송 보니까 여배우를 사귀신다고….”


-그게요. 제가 그렇게 폭탄발언을 하면 기자나 네티즌들이 추적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실체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그 기사 썼던 기자만 욕먹었더라고요. 댓글 보니 ‘여배우들이 미쳤겠냐’며….


 

김제동 “저 역시 편견을 갖고 있었나봐요. 말씀을 참 잘, 많이 하시네요. 흐흐흐.” 손예진 “제가 원래 1 대 1 대화에 강해요. 말하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웃음소리도 엄청나잖아요.” 김제동 “경상도 여자들이 원래 그래요.”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사실 저 송윤아 선배랑 친하거든요. 그래서 그 집에도 자주 놀러가요.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타워>라는 영화에서 설경구 선배랑 함께 출연해요.”


-아, 짜증나. 도대체 경구형은 내 인생의 장애물이에요. 전 이상형과는 결혼하고, 현 이상형과는 영화 찍고. 아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요.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죠. 어떠세요? <오싹한 연애>는 흥행 잘돼서 좋으시죠?


“다행히 그래요. 사실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개봉을 앞두고 책임감이 이렇게까지 컸던 적은 처음이에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열심히, 주어진 것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어요. 그전까지는 상대배우도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님들이셨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후배(이민기)였거든요. 영화라는 게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그 험난하고 아름다웠던 과정도 평가받지 못하고 그냥 묻히고 말거든요. 책임감, 부담감 때문에 개봉 한 달 전부터 제가 잠을 잘 못자고 있더라고요.”


-속 끓이고 잠 못 잔다고 해결되는 건 없는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토크콘서트>를 하다보니 공연 시작할 때 그 부담감과 두려움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결국은 극도로 쌓이던 스트레스가 개봉하기 직전에 자포자기 상태로 만들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죠. 다행히 개봉한 뒤 입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오히려 관객이 늘어났어요. 그런 경험 처음이었는데 기분 좋고 만족스러웠죠. 영화 보시면 알겠지만 그 작품은 호러, 로맨틱 코미디 등이 혼합된 거라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았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다 걱정됐죠.”


-고백하자면, 제가 아직 영화를 못 봤어요.


“영화를 안 보셨다면 얘기가 안되겠네요. 같이 가서 볼까요? 손잡고?”


-싫어요. 전 거절할래요.


“아마 영화 끝나면 제가 보고 싶으실 거예요. 하하하. 아, 참. 고향이 영천이시죠? 전 대구예요.”


-알아요. 지금은 ‘죄밑’이 있어서 제가 찍소리 못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죽었어! 대구 후배!


손예진씨는 처음부터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인터뷰하러 가면서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도 제대로 못보고 간, 기본도 안된 인터뷰어라는 죄책감 때문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예전에 현정이 누나(고현정)랑 인터뷰할 때는 제가 술을 많이 먹은 뒤에 깨고 나서였거든요. 정신이 살짝 어수선할 때였는데, 오늘은 맨정신에 하려니 영…. 술은 많이 하세요? 


“많이 늘었어요. 처음엔 한 잔도 못먹었는데.”


-얼마 전에 SBS <런닝맨>에 나오셨잖아요. 그때 담당 PD가 저한테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더러는 도현이 형이랑 함께 나오라고. 제가 막 짜증냈어요. 예진씨 나올 때 불러야지, 왜 도현이 형이랑 같이 부르냐고. 그때 열받아서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술마셨잖아요.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녜요?”


-집에 혼자 있다보면 술도 마시게 되고….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혼자 사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불쌍한 것 같아요.”


-심각한 단계에 왔다 싶은게, 불쌍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젠 울컥해져요. 화도 안나고,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에이, 분명히 여자친구 만날 여지가 충분한데 눈이 지나치게 높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보이는 것보다 성격이 많이 이상하신 거 아녜요? 하하, 농담이고요. 중요한 건 아직은 여자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절실하지 않다기보다 겁나요. 


“왜요? 성격 들킬까봐?”


-어떻게 아셨어요? 저 성격 완전 ‘뭐’ 같아요.


“좋은 의미로 까다롭고 예민하실 것 같은데요. 속으로 생각은 많아도 상대를 다 받아주시잖아요. 전 무지하게 예민했는데 그나마 좀 좋아진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죠?


“이쪽(연예계) 생활을 많이 하다보면 오해를 받을 일이 많잖아요. 여자들은 특히 더 그렇고. 그전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오해도 많이 받았고. 그런저런 상처와 속상함이 쌓이면서도 진심은 언젠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통하고…. 그대로 쌓이면서 흘러가더라고요. 결국 남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고 고민하지 말고, 스스로를 편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해결책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신가요? 


“정말 심해요. 내가 불행해야 행복하기라도 한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죠. 결핍, 죄의식, 열등감에 사로잡혀서는….”


-항상 맑고 밝고 여리고 행복해 보이는데….


“배우, 특히 여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만들어야 하잖아요. 항상 빛이 나야 하고,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힘을 줘야 하잖아요. 슬퍼 보이거나 심란해 보이면 좀 그렇잖아요. 다 만들어진 이미지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방송에 나와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할 수도 없고요. 그리고 제가 그동안 맡아왔던 역할은 주로 여릿여릿한 주인공이었는데, 대중은 캐릭터 속의 저를 실제 저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그동안은 역할들이 옭아맨 측면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왜 아픈 역할, 죽는 역할, 예쁜 역할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것만 일부러 고르는 배우, 예쁘고 폼나는 것만 하려는 배우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특별히 의도했던 건 아니고 매번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던 거예요. 재미있는 건, 최근 몇 년간 억세고 웃기는 역할을 좀 했잖아요. 그랬더니 이번엔 변신을 시도한다고 많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어쨌든 저도 조금씩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누구나 어떤 결핍과 아픔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엔 365각형의 마음이 있다잖아요.


“전 어릴 때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거나 어떤 일을 겪은 뒤에, 밤에 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왜 그 상황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했지’, 이러면서 밤을 새는 거예요. 또 그런 마음을 들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렇다고 내 마음을 남에게 내려놓을 수도 없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좀 그래요.”


-아까 좋아졌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의도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말로 소리 내서. ‘난 다 잊었어’ ‘기억이 안나’. 이러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요. 그게 좀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잠도 들고 잊어버리게 되고. 또 내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죠. 게다가 주변에 좋은 분들, 또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했고요. 예전엔 사람으로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고, 그 때문에 연예계와 관련된 분들 중에서는 친한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상대 배우로 함께 연기한 분들이 누구죠?


“최민식, 김명민, 차태현, 김주혁, 정우성, 배용준, 송일국 선배…. 그리고 지금 영화에선 설경구 선배….”


-아, 경구형 얘기는 그만하고요. 그럼 예전 영화랑 지금 찍는 <타워>는 대하는 마음이나 현장에서 갖는 느낌이 좀 다른가요?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은 처음이에요. 촬영 끝나고 술자리를 갖는데, 오죽하면 집에 가는 게 싫을 정도니까요. 배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저도 조금밖에 안나와요. 지금까지는 다 제가 중심이 되는 영화만 찍다보니 처음엔 적응을 못했는데, 찍다보니 이렇게 편하고 행복하게 영화를 찍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뭔가 제 속에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작품도 꼭 맞는 걸 만난 것 같아요.”


연예인으로서 내가 많이 받는 질문은 “연예인이 되면 어떤가요?”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은 작두 위에 서 있는 무당 같다는 것이다. 천민으로 대우받지만 신과 접신하는 그 순간은 모든 양반이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지배하지만 대신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자칫 삐끗해서 발이라도 베이는 순간은 완전히 내쳐지고 만다. 그 순간, 피가 난 발을 부여잡고 있을 때 수건으로 내 발을 감아줄 사람 하나만 있다면 연예인으로서 잘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거죠. 여자 연예인들은 더하고요.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언제까지나 주인공일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나도 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모, 엄마 역할을 하게 되겠죠. 얼마 전에 이미숙 선배님과 토크쇼 하셨잖아요. 전 그 선배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감동받았어요. 그렇게 살고 싶은데, 전 그렇게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고민과 변화 과정을 통해 ‘예쁜 연예인 손예진’에서 ‘배우 손예진’으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배우. 지금까지 그걸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그 짜릿함. 긴장감과 집중으로 가득 찬 그 순간의 느낌을 정말 사랑해요.”


-그 순간엔 관객들도 역시 떨린답니다. 돈을 내고 들어왔으니까, 자신의 선택이 옳았을까 하는 거죠. 하하.


“오늘 뵈니까 연기하셔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사실 이전에 단막극 제의가 온 적이 있어요. 찌질한 어떤 고시준비생이 여자한테 차여요. 그리고 독하게 공부해서 고시에 붙어 검사가 되죠.


“어머, 그래서요?”


어떻게 됐을까? 결론은 ‘그래도 여자가 안 돌아온다’였다. ‘예쁜 배우 손예진’은 “우하하, 반전인데요”라며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나도 따라서 헤벌쭉 웃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문다. 그래도 ‘예쁜 후배 손예진’의 전화번호를 챙겼으니 흐흐, 기대하시라. 손예진·김제동 주연 코믹멜로호러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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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