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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중에서.

‘울지 말라’고 했는데 울고 또 울었다. 외롭게 주저앉아 있던 내게 그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위로했다. 그 시구는 나에게 죽비소리였고, 따스한 어머니의 손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이 시대가 사랑하는 시인 정호승(60).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를 쓰는 그를 서울 봉은사 절마당에서 만났다. 시인을 만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정-제동씨 키가 크네요. 생각보다. 

김-선생님은 멋쟁이신데요. 이렇게 근사하게 양복 입으신 모습 보니. 

정-오늘 날도 춥고 그래서. 양복 처음 꺼내 입었어요. 집사람에게 양복 다려달라고 했지. 

김-전 제가 알아서 다려입어야 하는데... 요즘은 자꾸 결혼 어쩌구 이런 얘기들이 많아가지고. 남들 결혼식만 자꾸 가요. 에휴.

정-제동씨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남 결혼식에 가서. 

김-아뇨 선생님. 남 결혼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제가 결혼을 해야죠. 

정-제동씨는 노총각에 속합니까?

김-자꾸 사람들이 거기 넣을려고 해요. 

정-요즘은 그 개념이 없죠. 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랑 하는게 중요하죠. 언제를 생각하지 말고 누구를 새악하세요. 누가 있으신가보네. 

김-기자들이 자꾸 물어봐요. 얼마전에 설문했는데 제가 빨리 결혼시켜야 될 사람 1위로 선정됐대요. 

정-왜그럴까요?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이거나, 외로워 보이거나, 아니면 뭔가 보완이 필요해보인다는 게 제대로 들킨 것 아닌가요?

김-아닙다. 전 그래서 요즘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보면 아침 7시30분에 할거라고 해요. 

정-결혼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런데 남녀 모두 결혼은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에게 혁명적인 일이죠. 다른 사람의 재촉에 조금도 관심갖지 마시고 누구랑 할 것인가만 생각하세요. 만남이 중요한거지. 20년전 쯤 언젠가 광화문에서 신문로 지나다가 새문안교회 앞을 지나는데 설교제목이 게시판에 붙어 있더라구요.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그 말이 그때 굉장히 와 닿았어요. 

김-만남을 위해 시를 쓰신 적은 많으시잖아요. 

정-글쎄, 만남을 위해 썼나, 만나고 나서 썼나. 하하하. 

김-저는 선생님 시를 다 읽지는 못했어요. 

정-저도 그래요. 그걸 어떻게 다 읽었겠어요. 어느 몇구절 들으면 내 시라는 걸 알지만 확실하게 외우는 건 동시 1편, 시 1편 이에요.

김-그럼 선생님도 선생님 시가 시험으로 나오면 100점 못받으시겠네요. 

정-그렇죠. 시도 정답이 없어요. 신경림선생께서도 당신의 시가 문제화 된 것을 풀어보니 몇개 틀렸다고 그러시더라고. 저도 그렇게 살펴봤는데 틀린 경우도 있었어요.그다음부터는 풀 생각도 안합니다. 시험에 나오는 시의 문제는 정답이 있게 마련인데  상상력이 많은 학생은 틀리는거죠.  풍경달다 라는 시. 어떤 암자에 풍경을 달았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풍경을 달아보는 경험이라는게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직접 해보기 어렵잖아요. 어떤 기회가 있어 풍경을 단 적이 있는데 바람부는데 울리는 풍경소리가 그렇게 좋더라고. 그래서 그걸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 달았죠. 소리가 안나는거예요. 도시엔 풍경을 울릴 만한 바람이 안부는 거죠. 손으로 쳐봤어요. 그런데 바람이 내는 풍경소리와 내 손이 내는 것은 천지차이죠.

김-틀리는게 맞는 것 아닌가요? 얼마전 버스 정류장에서 고등학생 언어영역 문제집을 봤는데 시 한편에 형광펜으로 그어놓고 화자가 느끼는 심정, 주체, 대상 어쩌구 하는 그런 걸 보고 있더라구요. 저도 그런 시험 치기는 했지만 이게 맞는가 싶어요. 시를 즐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잖아요. 

정-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시를 읽고 생각되는 바를 써라 하는거죠. 이 시의 어느 부분에 대한 학생 개인의 생각은 어떠냐. 이렇게 자기 생각을 쓰면 그 내용이 뭐가 됐든 정답인거잖아요. 그런데 아직 그렇게 하기에 채점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들 수 있죠. 논란의 여지도 많고. 

김-저는 가끔씩 시한테 두드려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죽비로 내려맞는 듯한. 수선화에게가 그랬어요. 저녁이 되면 산그림자가 내려온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 구절이 가슴을 쳤었어요. 

정-아 그랬어요?

김-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산그림자가 마당까지 내려온다. 이런 모습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도 산이 외로워서 마을로 내려온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이걸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실 수 있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율이 느껴져요. 전 지금도 그 구절이 맴돌아요.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그 구절에게 고마웠죠. 또 한편으로는 아직 내게 문학소년같은 감성이 남아 있구나 싶어 제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했죠. 

정-저는 대구 변두리에 살았어요. 산그림자가 내집마당에까지 내려온 환경에서 살았는데 시는 과학이나 논리 이전의 상태에 있어요.당연히 해가 지니까 내려오는걸 이야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산그림자조차도 외로워서 사라지기 전에 인간의 냄새를 맡고 싶어서 인간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내려왔다가 사라지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외로움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수선화에게는 50대 초반에 섰는데 그 때 내 친구가 외롭다 하더군요. 집사람과 있어도, 자식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직장에서도 외롭다고. 그래서 제가 그건 당연한거다 했어요. 그게 인간의 본질이죠. 외로움은. 당연한 걸 가지고, 본질을 가지고 외롭다는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나이가 50이 되도록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했지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운 거라고. 그리고 제가 그랬어요. 야, 외로우니까 사람이야. 이렇게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결국 나자신에게 한 말이 되더군요. 그 말 때문에 그 시를 쓰게 됐죠. 시는 항상 은유의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외로움을 어디다 은유화, 비유할 수 있을까 했죠. 봄날에 수선화 하나 화분에 피어 오르는 거 팔잖아요. 이거 인간의 가장 약하고 외로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연노란 빛이 외로움을 말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 시를쓰게 됐죠. 그리고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이해하게 됐어요. 외로움은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인것, 존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절대자와 나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독문제보다 너와 나 사이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의 문제가 살아가는데 더 어렵고 힘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사람이 자기 혼자만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점이에요. 심지어 외롭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지금은 70대의 자살률이 더 높아요. 외로움이란건 당연한거니까 견뎌야 합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새로운 외로움이 시작됩니다. 

김-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코끝이 찡해져서 눈물이 날라고 그랬거든요.

정-제동씨도 시의 독자잖아요. 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중요한게 아니고 이 시가 내 삶을, 내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느냐가 더 중요해요. 이 시가 나의 삶과 어떻게 일치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전 시를 읽거나 그림을 볼 때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 안해요. 그저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하죠. 

김-선생님 시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렇게 영향을 미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의 시를 어떻게 보세요?

정-저는 1번 읽고 말아요. 싫어요. 내가 이걸 제대로 썼는지, 나의 진실을 다했는지 하는 성찰같은게 먼저 오죠. 그래서 마음에 안드는거예요. 자기 시집이 나오고 나서 한번은 읽어봐요. 혹시 오자는 없나 이러면서. 이렇게 읽고 나서 벅차오르는 충만한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쁨이 약해요. 다음에 시를 쓰면 좀 더 열심히 잘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죠. 이번에도 그렇더라구요. 

김-연결되는지 모르겠는데 저도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 못보겠어요. 손발오그라들고. 

정-편집하지 않나요?

김-저희에게 편집권이 없어요. 그래서 가끔 왜곡될 수 있고 제가 말했을 때 앞뒤가 있고 의도가 있는데 특정부분만 나오는 것을 보면 저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그땐 웃기다고 했는데 다시 보면 손발 오그라들고.

정-얼마전 환면에서 제동씨 모습봤는데 제동씨 얼굴 참 좋은 얼굴이에요. 특히 안경벗으면. 운주사에 석불들 있는데 한번 화순 운주사 가보세요. 오해하지도 마시고. 전 운주사의 석불들이 주는 감동이 있어요. 얼굴이 거의 마모됐는데 우리가 기존 절에서 볼 수 있는 단정하고 잘생긴 느낌의 얼굴이 아니라 거의 마모된 얼굴이죠. 그런데 그 석불의 감동이 어디서 오느냐면 마모되고 못생긴 얼굴이기 때문에 감동이 있어요. 

김-오해하지 말고 들으라는 말씀이 없었다면 그냐 운주사 가고 싶었을텐데 그 말씀이 오히려 저를 좀... 

정-하하. 나이가 들면 노파심이 많아져서 그래요. 운주사에 와불이 계세요. 두 분이 누워있는데 그 중 한 부처님 얼굴이 완전히 마모돼있어요. 그거 봤을 때가 내 나이 40대 중반이었는데 그 얼굴이 내 얼굴 같더라고. 깎일 대로 깎이고 고통받을 대로 다 받은 그 얼굴. 손은 무릎위에 손바닥이 보이도록 놨고 눈은 저 앞으로 바라보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눈물이 나더라고. 나도 그 부처님 석불앞에서 한참을 서서 보면서 일체감을 느꼈어요. 그 부처님이 나자신의 모습이더라 싶은거죠. 눈물이 났어요. 나도 그 부처님 석불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었어요. 그 사진이 내 책상앞에 있지요. 그때부터 불교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고 제 시에 불교적 이미지를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제동씨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삶을 사시잖아요. 앞으로도 그러실거고.

김-뭐, 얼굴도 마모됐으니까요. 

정-하하. 외모의 얼굴보다 마음의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인거죠. 육체의 얼굴은 가면같아요. 

김-사람이 마음이 그런게 육체의 가면을 잘 쓰고 싶어해요. 

정-마음의 얼굴과 육체의 얼굴이 일치되는 그런 분이 있어요. 시골 할머니들 뵙거나 간혹 가다가 거리에서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어요. 

김-이번에 시 중에서 눈밭에 이렇게 발자국을 봤는데 새 발자국이다. 다행이다. 이런구절이 있어요. 

정-그런 시가 있나

김-제목이 눈길인가 그런데.

정-그런가, 아닌가. 

김-선생님. 죄송하지만 시 직접 쓰신거 맞죠? 제목도. 우하하. 어쨌든 눈위에 발자국을 발견하셨는데 새 발자국이라 다행이다. 여기서 느낀게 제 느낌입니다.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깊은 산속에 사람 발자국이면 새니까 걷다가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행이다.작은 것도 연민을 가지는거고. 

정-하얀 눈길 위에 더러운 인간의 발자국이 먼저거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뜻으로 썼어요. 시는 침묵속에서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요. 끊임없이 숨긴다고 해야하나. 너무 드러내면 이해의 폭이 비밀을 잃어버리거든요. 인생에 많은 비밀이 있잖아요. 살다보면 그 비밀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번 시집은 짧은 시들로 이뤄져 있어요.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나이들어가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은 말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이가 들면 술을 먹고 취해서 잠이 들거나 침묵하라. 너무 말하지 말라는 거죠.

김-저는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그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많아요. 

정-말이라는게 침묵의 무게나 의미의 깊이가 중요한거죠. 말의 횟수나 말의 종류를 의미하는 건 아니고. 전 앞으로 김제동씨의 토크쇼가 굉장히 기대돼요. 라이브로 그렇게 계속한다는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속에 침묵이 있고 그것때문에 감동받고, 자기 내면의 어떤 부분을 해소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김-저도 하다보면 완전히 몰입돼서 말을 하는 것 같은데도 말하다가 몰입돼서 말이 끊어지면서 관객과 응시하는 접점이 있는데 그 때 큰 울림을 받아요. 박수받고 소리치는 것 보다 침묵속에서 응시할 때 느끼는 관객과의 교감이 큰 울림이 돼요. 


정-관객도 제동씨의 말과 울림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분노와 상처를 치유받을거예요. 그래서 시도 그런 역할이 있어요.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도, 시 존재 자체의 존재성의 역할도 있고. 꽃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홀로 피어있는 장미 그 자체의 존재도 소중하고 그런데 저 장미가 피어남으로 해서 무엇이 좋은가. 그러면 이 우주가,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그 장미를 바라보는 인간이 아름다워지고. 그래서 시도 인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결국 시가 인간을 위안해 주는 그게 소중한거죠. 시의 모성. 이런걸 소중하게 생각해요. 누구의 시든 모성적 역할을 하고요. 절대자의 사랑에는 모성적 부분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굉장히 공감될 때가 있어요. 우리가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절대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어머니처럼 나를 사랑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신의 사랑이 쉽게 이해되더라고요. 인간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의존이 필요하기도 한 것 같아요. 

김-선생님 이번에 모두 엎드려 미사드리는 것 같다는 싯구. 비닐하우스 성당. 생각나세요? 미사와 와불, 기독교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고. 저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교회에 가본지는 오래됐고 산에 다니니 절에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정-교회나 사찰은 나름의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 시스템안에 자주 드나들면 좋다는 거지만 그 시스템안에 자주 가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그 시스템을 주관하는 사람 입장에선 불만족스럽겠지만.

김-전 가끔 술 많이 먹으면 집 앞 성당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한번씩 울기도 해요. 그러다가 신부님과 마주친 적도 많구요. 절에가도 마음이 편해요. 그런데 우리어머니 알면 큰일나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정-저도 절에 가면 편해요. 제 어머니도 그래요. 저를 낳고 교회에 데려가 유아세례 받게 한 분이고 지금도 교회 열심이죠. 그런데도 전 운주사나 부석사 등 절에 갈 때마다 부처님앞에 가서 삼배합니다.처음에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불앞에서 해봤어요. 남들 하는거 따라서. 처음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상하게. 그 눈물이 어디서 일치되느냐면 성당가서 장궤대에서 무릎꿇고 기도할 때랑 비슷하더라구요. 우리가 얼마나 오만해요. 누군가에게 엎드릴 수 있다는게 좋아요. 타자에 대한 우월감을 지니고 살잖아요. 엎드릴 대상이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저도 집에서 108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까닭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무릎을 꿀고 내 몸을 바닥에 댄다는데서 느끼는 감동이죠. 

정-제 책상에 앉아 계신 부처님 상은 인사동에서 산거예요. 그 얼굴도 마모된 얼굴이죠. 불두들을 보면 얼굴이 다 달라요. 어떤 불두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것도 있거. 그런데 그 부처님 상은 손바닥만한 돌로 만든건데 미소가 참 좋더라고요. 그 앞에 십자보상도 뒀어요. 외로우실 것 같아서 두 분이 친하게 지내시라고.

김-친하게 지내시던가요? 

정-가끔 보상에 매달린 책상 밑으로 걸어다니시기도 해요. 도망자라는 시처럼. 

김-두분이 친하게 지내신다니 다행이네요. 언제 차 사들고 가겠습니다. 

정-저희 부모님이 계신 집이 제 작업실이에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매일 부모님을 뵐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거예요. 떠나고 나시면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잖아요. 제동시는 친한분 중에 세상을 떠난 분이 계신가요? 

김-아버지가 저 100일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알고 있던 분의 부재라는 개념은 아니고, 그런 면에서는 큰 매형이 계시죠. 제가 5학년땐가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 정말 좋은 썰매를 만들어주셨거든요. 제가 경북 영천이 고향인데 집 뒤 강에서 얼음배 만들어서 많이 타고 놀았어요.


정-나도 어릴 때 얼음배 많이 탔어요. 요즘 아이들은 얼음배 탈 기회가 없죠. 위험하잖아요. 얼음과 얼음 사이를 건너뛰면서 우리는 놀았잖아요. 항상 그런 위기 가운데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얼음이 있으면 숨구멍도 있잖아요. 시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어느 부분의 얼음의 숨구멍과 같은 존재가 시다. 김제동씨도 마찬가지예요. 제동씨의 사회적 역할이 없다면. 제동씨는 어둡게 얼음장처럼 얼어버린 이 시대의 숨구멍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김-제 역할이 아니라 유머나 웃음의 역할이죠. 그 말씀 들으니까 결빙이라는 시가 생각나는데요. 

정-나는 생각 안나는데 어떻게 다 기억해요?

김-그렇게 껴안아야 삶의 새로운 숨구멍이 생겨요.뜨거운 순간이지. 서로 한몸이 되는 것. 한몸을 이룰 때 차갑게 이루는 것이 아니고 뜨겁게 이룬다.서로 덜 미워하며 살아야겠죠. 결빙이라는 시에 그 의미가 숨어 있죠. 시라는게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언 강을 봐도 결빙이라는 시 때문에 덜 추울 것 같습니다. 뜨겁게 어니까. 겨울 쩡쩡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무섭게 느껴졌는데 프리허그 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시한테 고맙고 시인에게 고맙습니다. 저희에게 숨구멍같은거죠. 

정-제가 가까이 지냈던 분 중에 육신의 형처럼 생각했던 분이 정채봉 시인이에요. 그분이 떠난지가 내년이면 10년인데요 3, 4년쯤 지났을 때 지하철 타고 가다 참 보고 싶더라고. 샘터에 근무했으니까 혜화역에 내리면 바로 찾아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죽었으니까 내가 보고싶을 때 만날 수 없잖아요. 죽음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게 죽음이잖아요. 정시인도 엄마 얼굴을 모르고 자랐어요. 지니고 있는 유일한 사진이 스무살 때 엄마인데 그래서 산문집 제목이 스무살 어머님이라는게 있어요. 제동씨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비슷하겠죠. 그래서 내가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보고싶어할게 아니라 자주보자. 그래서 작업실을 부모님 집으로 옮겼어요. 그럼 매일 볼 수 있잖아요. 

김-시에도 그런 내용 쓰셨더라구요. 어머니한테 하시는 내용 중 유난히 죽음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신 것 같아요

정-그렇죠. 죽음은 남녀노소 누구나 자기 삶의 화두다. 인생의 화두가 사랑이듯 같은 의미로 인생의 화두가 죽음이지 않은가 싶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죽음은 바다의 파도같아요. 파도가 밀려와서 절벽에 부딪히면 파도가 사라지잖아요. 그렇다고 바다가 없어지나요? 죽음이 이런 것 같아요. 터키에 에페소라는 도시가 있는데 로마시대에 225만명이 살았대요. 그 유적을 보니까 상점, 집창촌, 대저택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들이 살았던 집은 남아 있지만 인간이 사라진거죠. 그런데 인간이 사라졌을까요? 영속성의 한 선 속에서 점을 하나씩 찍고 가는거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이 어떻게 보면 연약한 존재지만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위대한 존재인 것 같아요. 

김-그 속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간은 나약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한데 어떨 땐 이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느껴지다가도 어떨 땐 그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시대잖아요. 

정-우리가 다 테레사수녀님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야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돼요. 믿음을 버리면 지구가 사라질걸요. 전 20대를 70년대에 살았잖아요. 20대 전체를 군부독재의 시대를 살아왔어요. 그땐 어두움에 완전히 호떡처럼 눌려서 살았다고 해야할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어둠이 존재해요. 먼 역사를 봐도 우리 현대사를 봐도 다 어둠의 순간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거예요. 왜 어둠이 있느냐, 밝음을 위해서죠. 그래서 우리가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라는 밤하늘을 통과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별이지만 별은 어둠이 존재해야 빛나요. 신부님이 하신 말씀인데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증오도 필요하다는 거죠. 역사라는 시간은 밝음을 지향하기 위해 흘러갑니다. 아마 2020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밝아진 시대를 살지않을까요?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제가 70년대 뚝섬에서 나루배를 타고 봉은사에 왔어요. 여기 허허 벌판이었지. 법정스님이 팔만대장경 번역사업 하고 계셨어요. 우리 삶이 KTX타고 가는 삶이라면 불과 40년전은 배타고 다니던 목가적 시대였어요. 

김-가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그래요.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도 더 오래 머무르고 길었으면 좋겠다고요. 대구에 연고가 있는데 예전엔 가면 반드시 하루를 잤어요.그런데 요즘 대구는 당연히 하루만에 갔다오는 코스죠. 속도가 인간적 관계를 끊어버리죠. 

김-빨라지고 삭막해지면서 많은 것을 끊어버렸어요. 요즘 애기들 참 예쁘잖아요. 아이만큼 예쁜 꽃이 없는데 아이를 예뻐하면 경계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정- 어떤 의미에서 사악하고 불행한 시대죠. 엘리베이터를 여고생과 탔을 때 오히려 내가 경계의 대상이 되지요. 나를 위협적인 존재, 불안한 존재로 생각할까 싶어서 눈도 들지 못해요. 그래야 저 사람이 집에 편히 가지. 어제만해도 일원역앞에서 버스를 탔는데 아이를 데리고 탄 엄마에게 아이를 앉히라고 했더니 싫어하더라구요. 

김-하도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빨리 퍼지고 알려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자꾸 생기고.
누구한테 웃고 다가가는게 이상해지잖아요. 버스를 편하게 타고 가려면 옆사람 보고 히죽 웃으면 된다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니까요. 어떻게 해야하죠?

정-할 수 없어요. 그런 시대를 사는거예요. 보다 성숙된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어떤 때는 정말 하루가 긴장속에서 살아가야 할 때도 있고, 지하철에서 싸운 적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피해버리고, 점점 회피하는 삶을 살아요.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그럴 땐 우리사회에서 사는게 힘들어요. 운전자 역시 자기도 보행자일 때가 있는데 너무 무시하는 거야. 어떨 때는 차를 차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김-선생님도 그렇게 화가 나실 때가 있군요. 

정-그럼요. 자기 스스로 차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김-저도 아직 수양이 덜됐는지는 모르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내가 대우받겠다는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춰달라는거죠.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아이랑 엄마가 다가왔어요. 그럼 당연히 인사하고 이러면 좋은데 아이를 데리고 바싹 다가와서는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봐, TV에서 봤지?’ 이러는 거예요. 아이는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절 쳐다보고 엄마는 계속 손가락질로 가리키고. 제가 이런 행복한 일을 하는게 누구덕분인지 알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줬으면 하죠.

정-그런 고충 충분히 있을거예요. 그럴 땐 속으로 욕을 한번 하세요. 

정-다른 사람의 삶을 쫓아갈 필요는 없어요. 내 삶은 내 삶이다. 그 누구와도 비교해서도 안되고 비교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수없이 비교하면서 살잖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초라해지고 비루해져요. 젊은이에게는 목표를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러면 불행하죠. 나이가 든다는 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기어이 하려고 하면 거기서 불행의 씨가 싹트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족하는 것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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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