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번역된 일본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이름은 ‘강백호’였다. 1990년대 길거리농구를 유행시키며, 농구붐을 일으킨 전설적인 만화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 규칙과 함께 동료애와 스포츠정신을 자신은 익숙해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는 친절하게 이해시키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강백호라는 이름은 그렇게 당시 청소년들에게 10대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친구였고, 페어플레이와 사랑, 쉽게 만들어지지 않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우정을 가르쳐준 캐릭터였다.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소연이의 한마디에 농구를 시작하고, “난 천재니까”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도 제대로 골을 넣지도 못했던 초보선수 강백호, 그가 자신도 놀라는 점프력과 스피드로 버저비터의 슬램덩크를 해내며 역전승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독자들 모두 북산고 농구경기장에서 응원하는 관객이 되어버린다.

 

1960년대 <라이파이>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던 세대가 이제 그 시대를 훨씬 넘어 살고 있고, 1970년대 <우주소년 아톰>을 친구처럼 이해하던 세대가 로봇을 만들고 있는 지금, 만화 속 캐릭터는 늘 새로운 시간을 만드는 무한한 상상의 시작을 선물해 주었다. 1980년대 <달려라 하니>는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로 고도성장하던 한국에 스포츠로 이겨내는 휴머니즘을 보여주었고,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오혜성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5년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뛰어넘는 상남자의 한없는 사랑을 한국판으로 재현했다. 만화 속 캐릭터는 당시의 삶에 기반한 현실을 놓지 않으면서도 살아가야 할 방향의 당위성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무한궤도로 선사했다.

 

온라인게임을 만들어낸 한국 게임산업의 창의력은 실제 게이머와 만나는 출발점에서 만화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는 넥슨에서, 신일숙 작가의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에서 MMORPG로 재탄생했고,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소비붐을 만들어낸다. 만화의 캐릭터가 게임의 서사를 선도하고, 익숙지 않던 게이머들의 호기심을 캐릭터 스토리의 친근함으로 다가서게 한 것이다.

 

미국 대공황 시절 높은 실업률과 무법천지의 갱스터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슈퍼 히어로를 찾았고, 히틀러와 소련을 무찌르는 무적의 아메리칸드림을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로 화답한 것이 미국 만화계의 캐릭터다. 캐릭터는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반전시키는 긍정의 철학까지 제안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는 무언의 공감대로 통하는 몇 가지 공식이 있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의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면 주식시세가 좋아진단다. 킬러 콘텐츠의 또 다른 시작이 연관 산업의 부흥을 촉발시키는 전례의 기록들을 들썩이며 투자 의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가능성을 만든다. 가상의 이야기들이 실제처럼 재현되고, 그 상황 속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 극복과 성공은 과정으로 이해되지 않고,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로 청소년기 마음속 문신으로 기억된다. 캐릭터의 생명력은 기억의 경제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키덜트’라는 새로운 소비집단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프로야구 KT 구단의 강백호 선수는 2018년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괴물 고졸 신인’에서 진짜 한국 프로야구의 신인왕이 되었다. 올 시즌 KBO리그를 취재한 기자단 투표에서 555점 만점에 514점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서울고 시절 투수 겸 포수로 뛰었던 강백호는 이제 홈런 잘 치는 괴물같은 타자로 한국야구를 다시 살리고 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야구만화가 대세였던 일본 스포츠만화계를 농구로 살려냈듯이, 프로야구 선수 강백호는 아시안게임 이후 침체기에 빠진 한국야구계를 부활시키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가 될 것으로 믿는다. 강백호는 그렇게 가능성을 전설로 만든 천재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2019년에도 그를 응원하는 마음은 30년 전 만화책에서 거친 호흡과 땀 냄새를 느끼던 신기한 기억의 소환이다. 그런 캐릭터들의 부활과 투지를 기다린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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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