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6년 학생들을 가르치면, 새로운 경험과 정보, 강의 준비 및 연구자료 수집을 위해 교수들은 7년째에 연구년을 다녀온다. 필자는 생소한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만들고도 이런저런 연구 프로젝트와 강의 때문에 20여년째 연구년을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다른 대학에서 강의하는 아내가 올여름 연구년이 되어 캐나다로 가게 되었다. 결국 아내 덕분에 폭염을 피해 늦가을 날씨인 밴쿠버에서 난생처음 오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 휴가 중 로키산맥의 중심부인 밴프국립공원에 다녀오던 길에 묵었던 호텔에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았다. OTT 서비스인 넷플렉스의 글로벌 네트워크 서비스 덕분이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중독성 있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서도 다른 생각이 많아졌다. 예전 국내 위성방송사에서 들었던 현장상황인데, 난시청 지역 주민들을 위해 위성안테나를 설치하고 방송을 연결해 드렸더니, 지상파 화면이 잘 나오는 것만 확인하고는 안심하시더라는 이야기였다. 지상파는 본래 일반 안테나만 설치해도 수신이 가능하다. 위성방송과 케이블방송 등 유료방송을 설치하면 모두 확인해 볼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전문채널이 홈쇼핑과 함께 쏟아진다. 그래도 노년층은 여전히 지상파를 선호한다. 이에 반해, 요즘 신혼부부들은 새집 장만을 하면서도 집전화기는 물론 대형 TV와 냉장고 등을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단다. 부부가 바쁘다 보니, 대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로 몰아보기를 하고, 식사는 외식을 하거나 소량의 냉동식품과 즉석식품 등을 데워 먹는 등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과 조건이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탄력적인 플랫폼 형태가 OTT 서비스다.

 

1970~90년대 초에는 학교 숙제를 하려면 백과사전을 찾았다. 1990년대 말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학교 숙제는 포털서비스가 담당했다. 전국의 초등학교 숙제 답안이 모두 같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포털의 ‘지식검색’이라는 범국민 동행서비스의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지금의 세대는 학교 숙제와 궁금한 문제를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OTT 서비스에서 해결한다. 광고도 그래서 바뀐다. 신문과 지상파 중심의 광고가 포털사이트의 배너광고로 부분 전환되더니, 이제는 스마트폰 콘텐츠앱의 서비스 삽입배너로 확대되고, 2018년엔 자생적 1인 VJ 광고형 동영상, 즉 네이티브 콘텐츠가 브랜디드 콘텐츠와의 경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자동차를 직접 렌트해서 타보고 이래서 이 자동차가 좋다며 자세한 분석과 시승 경험을 공유한다. 또한 중간중간 유머와 개그, 차종 간 비교와 개인적 평가의 과장 등 섬세한 재미가 빠른 속도로 편집되어 색다르다. 그러한 동영상에 주목한 소비자는 직접 그 자동차를 찾게 되고, 결국 유사한 팬덤을 경험하게 된다. 해당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사들도 그 VJ에게 후속 광고영상을 의뢰한다. ‘브랜디드 콘텐츠’로 불리는 광고정보형 콘텐츠가 예능과 드라마를 능가하는 조회수를 기록한다.

 

김은숙 작가의 인기 드라마에는 광고효과를 넘어서는 PPL이 스토리텔링과 대사 곳곳에 얄궂게 숨겨져 있다. <미스터 선샤인>에도 커피와 제과점 등 기존 역사드라마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방식으로 브랜드가 노출된다. 비판도 많지만, 변화하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진화 방향에 따라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일 시간이다. ‘브랜디드 드라마’로 불리는 PPL을 위한 인기드라마가 당당하게 나설 시간이 머지않았다. 항상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 PPL조차도 앙증맞고, 그 또한 그렇게 변형시켜 보여줄 정도의 센스로 평가되면 소비자는 당연히 반응한다. 광고도 이제 어쩔 수 없이 콘텐츠를 보기 위해 봐주는 선심형 동영상이 아니다. 광고 또한 콘텐츠로 작동되어야 소비자는 환호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가득 채우는 체험형 과장광고 동영상 등이 비난받고 있다. 광고는 일회용이 아니고 한탕주의로 끝낼 동영상이 아니다. 콘텐츠로 기억되고 그 소비의 감성이 이야기로 공유되어야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의 보완재를 넘어서는 대체재가 된다.

 

박노해의 시 ‘여행을 떠나라’의 일부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둘이 손잡고 오라’. 늘 새롭고 변화하는 고민과 만난다. 그 시간이 공유되기를 희망한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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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