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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빠른 장면 전환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헤이트 스피치 미디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개그, 예능 프로그램들이 갑자기 정의의 용사로 변신해 최순실 풍자를 봇물 터진 듯 쏟아낸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다시 열린 풍자의 전성시대’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지금 방송가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풍자인가?

 

풍자란 무엇인가. 유머를 통해 간접적으로 빈정거리는 것이다. 왜 간접적으로 빈정거리는 화법이 인류의 오랜 역사에 걸쳐 사랑을 받아왔나? 그 대상이 힘센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본을 흉내 내고 조롱하는 것도 풍자의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고귀한 것을 비천한 것으로(혹은 그 반대) 전도시킬 때만 풍자로서 유효하다.

 

tvN 'SNL 코리아8'에 출연하는 배우 김민교가 비선 실세 최순실을 패러디한 모습. tvN 화면 캡처

 

그동안 한국의 예능은 기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불구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불편한 사회적 맥락은 웃음으로 부드럽게 눌러 없애며 몰인권의 공동체를 공고화했다.

 

동시에 공공연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을 거치며 풍자는 왜소해졌고, 대신 주로 여성, 장애인, ‘일반’이 아닌 외모 등 소수자 비하를 통해 폭력적 웃음을 생산해왔다.

 

<개그콘서트>와 <SNL> 등의 최순실 패러디는 여기서 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들은 최순실의 외모, 프라다 신발, 곰탕 등 주로 자극적·직관적인 재미 요소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비판에 어떤 의미가 있나? 이미 국민의 95%가 증오하는 것으로 판정난 끈 떨어진 권력, 모두가 제멋대로 갖고 노는 데 여념이 없는 ‘강남 아줌마’를 확인 사살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뉴스에 나오는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며 호통쳐 놓고 ‘시사풍자’라고 이름 붙이는 줄곧 봐오던 그 행태다. 더구나 그간의 전력으로 미루어, 그녀가 ‘뚱뚱한’ ‘아줌마’라는 점이 코미디언들에게 본능적 영감을 주었으리라는 의심도 거두기 어렵다.

 

각종 프로그램들의 ‘자막풍자’도 마찬가지다. 크게 보면 그들은 원래 하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 유행하는 말과 농담을 자막으로 끌어들이는 일, ‘국민의 관심사’를 따라다니는 일. 그러면서 현 시대를 발 빠르게 반영하는 감각적 방송이라고 자부하는 일. 한 예능 PD는 미디어오늘에 “정치풍자를 안 하는 이유로 외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외압보다는 껄끄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재미있는 정치 아이템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더 크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평소처럼 ‘재미있는’ 것을 좇았는데 어쩌다보니 그것이 권력의 (전)실세였다는 편이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물론 몸을 사리고 침묵하던 목소리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터져 나오는 것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원래 거기에 있었는데 억눌려 있던 것인지, 원래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인지는 돌이켜 보아야 한다. 정작 권력이 서슬 퍼럴 때 풍자를 감행했던 이들은 징역형을 받거나, 재판을 거듭하며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TV가 풍자의 전선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유머다. 그러려면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없이 빠르게 쏟아지는 권력 비판의 시류에 올라탄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게 나을 것이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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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