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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역도영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만 5세 안시윤 어린이는 합기도 대결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을 가볍게 제압하고, 30㎏ 역기도 훌쩍 들어올린다.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맛있는 것만큼이나 역도가 좋다는 시윤양이 그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다. “왜 역도가 재밌어요?”라는 물음에 천진난만한 소녀 장사는 “무거워서”라고 답한다. 남들보다 뛰어난 최고의 능력이 아니라 그 분야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몰두하는 마음을 진정한 재능이라 말하는, 그래서 종종 ‘덕후발굴단’이라 불리는 <영재발굴단>의 미덕이 잘 드러난 순간이다.

 

MBC 청춘스포츠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를 보다 보면 자주 이 화제의 장면이 겹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너는 왜 역도를 하니. 열 살 때 아버지를 따라간 역도장에서 처음 들었던 바벨의 비릿한 쇠냄새가 난 요상하게도 좋았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역도를 해야지.” 주인공 김복주(이성경)가 역도를 처음 좋아하게 된 순간을 고백하는 도입부 장면부터가 그렇다. 복주가 역도를 대하는 태도는 말하자면 ‘덕질’에 가까워 보인다. 라이벌과의 경쟁, 연습의 힘겨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승리에 대한 갈망 등 스포츠물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 묘사는 별로 없다. 대신 전국체육대회 우승 뒤 꽃다발을 전해주는 선배에게 “제 롤모델이십니다”라며 ‘계 탄 덕후’ 같은 모습을 보이거나, 체급 유지를 위한 식사에서도 ‘스웩(swag)~’을 외치며 음식을 즐기는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 방송 캡처.

 

역도라는 비주류종목을 내세우면서 ‘언더독 효과’에 기대지 않는 것도 이 같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앞세워 응원하게 만드는 언더독 효과는 스포츠물의 감동을 견인하는 주된 흥행공식이지만 드라마는 특유의 경쾌한 태도로 이 공식을 비켜간다. 복주의 역도부는 ‘잘나가는’ 다른 부에 밀려 무시당하고 학교 행사 때마다 힘쓰는 일을 도맡고도 ‘루저 의식’은커녕 자부심으로 뭉쳐 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큰 가치도 없는 학내 체육대회 우승 전통이나 ‘생양볶냉’, 즉 생고기, 양념고기, 볶음밥, 냉면의 순서를 지키며 최대한 많이 먹는 회식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가벼운 것만도 아니다. 드라마는 ‘역도 덕후’ 김복주의 열정이 현실에 의해 흔들리는 순간 역시 놓치지 않으며 ‘헬조선’ 청년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가령 저성과부 판정으로 운영비를 삭감당하는 에피소드에서부터 사랑을 위해 비만클리닉에 등록하는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것은 청년층에게 ‘욕망의 거세’를 주문하는 사회의 억압이다. ‘몇 년 무리해서 메달 따고 몸 상해서 평생 몸담은 역도 떠나는’ 선수들의 현실을 지적하는 장면은 실제로 청년들 사이에서 ‘내일의 체력을 끌어 쓰는 악마의 음료’ 에너지 드링크가 열풍인 현상을 연상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김복주의 꿋꿋하고 경쾌한 덕질은 기성 사회가 청년층을 착취하는 핵심 기제인 ‘금욕과 노오력’에 저항하는 의미를 지닌다. 헬조선의 우울에 잠식되어 있던 청춘서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영화 <족구왕>과도 만나는 지점이다. 그저 ‘재미있는 족구’를 즐기고 싶은 주인공은 직업훈련소로 전락한 대학가 중심에서 씩씩하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열정을 좌절시키는 것은 어떤 사회인가.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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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